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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이그나티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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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캐나다의 작가, 역사가, 정치인, 그리고 대중 지식인이다. 토론토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아이재야 벌린의 지도를 받았으며,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BBC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인권론을 강의하다가 2006년 캐나다 하원 선거에 당선되었고, 자유당 대표를 역임했으나 2011년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후 학계에 복귀하여 하버드 대학교와 토론토 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중앙유럽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그는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으며, 저서로는 『러시아 앨범』, 『피와 소속감』, 『아이작 베를린: 그의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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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이그나티에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1년의 이그나티에프
이름마이클 그랜트 이그나티에프
로마자 표기Michael Grant Ignatieff
출생일1947년 5월 12일
출생지온타리오주 토론토
국적캐나다
서명Michael Ignatieff Signature.svg
공식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직함
중앙유럽대학교 총장 및 학장재임 시작: 2016년 9월 1일
재임 종료: 2021년 7월 1일
전임: 존 샤툭
후임: 샬리니 랜데리아
캐나다 야당 대표재임 시작: 2008년 12월 10일
재임 종료: 2011년 5월 2일
국왕: 엘리자베스 2세
총리: 스티븐 하퍼
전임: 스테판 디옹
후임: 잭 레이턴
캐나다 자유당 대표재임 시작: 2008년 12월 10일
재임 종료: 2011년 5월 25일
(대행: 2008년 12월 10일 – 2009년 5월 2일)
전임: 스테판 디옹
후임: 밥 레이 (대행)
하원 의원선거구: 에토비코-레이크쇼어
의회: 캐나다
재임 시작: 2006년 1월 23일
재임 종료: 2011년 5월 2일
전임: 진 오귀스틴
후임: 버나드 트로티에
개인 정보
소속 정당자유당
배우자수잔 배로클로 (1977–1997, 이혼)
주잔나 조하르 (1999–)
자녀2명
친척니콜라이 이그나티예프 (증조부)
폴 이그나티에프 (조부)
조지 이그나티에프 (부친)
학력토론토 대학교 (문학사)
옥스퍼드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문학 석사, 철학 박사)
훈장
프린세스 오브 아스투리아스 사회과학상2024년 수상

2. 초기 생애와 교육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1947년 토론토에서 러시아 출신 캐나다 외교관 조지 이그나티에프와 캐나다인 어머니 제시 앨리슨(née 그랜트) 사이에서 태어났다.[9] 아버지의 외교관 பணி로 인해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자주 해외로 이주해야 했다.[9]

11세 때인 1959년, 어퍼 캐나다 칼리지 기숙학교에 입학했다.[10] 그는 학교 교감, 웨드 하우스 대표, 축구팀 주장, 학교 연감 편집장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학교생활을 했다.[11] 1965년 캐나다 연방 총선에서 자유당 자원봉사자로, 1968년에는 피에르 트뤼도의 당 대표 선거 운동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에 참여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토론토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역사학을 전공(B.A., 1969)했다.[12] 대학교에서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출신 밥 레이와 룸메이트이자 토론 파트너로 지냈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아이재야 벌린의 지도를 받았으며, 1964~65년에는 ''글로브 앤 메일''에서 파트타임 기자로 일했다.[13] 1976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1978년 킹스 칼리지 펠로우십과 함께 케임브리지 M.A. 학위를 받았다.

2. 1. 가계 배경

이그나티에프는 1947년 5월 12일 토론토에서 러시아 태생 캐나다인이자 로즈 장학생 겸 외교관인 조지 이그내티프와 캐나다 태생 아내 제시 앨리슨(née 그랜트)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9] 그의 외조부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러시아 교육부 장관을 지낸 백작 파벨 이그내티예프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던 백작 니콜라이 파블로비치 이그나티예프였다.[14][15]

그의 어머니 쪽 외조부는 조지 몬로 그랜트와 경 조지 로버트 파킨이었고, 어머니의 남동생은 캐나다 보수당 정치 철학자 조지 그랜트 (1918–1988)로, 「한 국가를 위한 애가」의 저자였다. 그의 고모 앨리스 파킨 매시는 캐나다 최초의 토종 출신 총독인 빈센트 매시의 아내였다. 그는 또한 노바스코샤 은행의 초대 행장인 윌리엄 로슨의 후손이기도 하다.

이그내티예프는 헝가리 출신인 주주잔나 M. 조하르와 결혼했고,[16] 런던 출신 수잔 배로클로와의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테오와 소피 두 자녀가 있다.[17][18] 그의 동생 앤드류는 사회복지사로, 그의 선거 운동을 돕기도 했다.[11]

그는 자신이 종교적이지 않다고 말하지만, 러시아 정교회 신앙으로 자랐으며 가족과 함께 가끔 예배에 참석한다.[19] 그는 자신을 무신론자나 "신앙인"이라고 칭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20]

2. 2. 학창 시절

이그나티에프는 1947년 5월 12일 토론토에서 러시아계 캐나다인이자 외교관인 조지 이그나티에프와 캐나다인 어머니 제시 앨리슨 사이에서 태어났다.[9] 아버지의 외교관 பணி로 인해 가족은 자주 해외로 이주했다.[9]

1959년, 11세의 이그나티에프는 어퍼 캐나다 칼리지 기숙 학교에 들어갔다.[10] 그는 학교 교감으로 선출되어 웨드 하우스의 대표가 되었고, 축구팀 주장을 맡았으며, 학교 연감 편집장을 역임했다.[11] 1965년 캐나다 연방 총선 당시 요크 사우스 선거구에서 자유당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68년에는 피에르 트뤼도의 당 대표 선거 운동을 위한 전국 청년 조직자이자 대표로 자유당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토론토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역사를 전공하여 1969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12] 유니버시티 칼리지 출신의 밥 레이와는 토론 상대이자 4학년 때 룸메이트였다. 학부 졸업 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자유주의 철학자 아이재야 벌린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를 이어갔다. 1964~65년에는 ''글로브 앤 메일''의 파트타임 기자로 일했다.[13] 1976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78년 킹스 칼리지에서 펠로우십을 수행하며 케임브리지 M.A. 학위를 취득했다.

3. 학자 및 작가 경력

캐나다 토론토 출생의 러시아계 캐나다인으로, 토론토 대학교를 졸업하고 1976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영국방송협회(BBC)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참여했다.

아이재야 벌린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인도주의적 개입을 지지하는 리버럴 호크로, 이라크 전쟁에 찬성한 것은 논란이 되었다.[173] 2003년에 발표한 「가벼운 제국(Empire Lite)」에서는 미국의 "인도주의적 제국"으로서의 책무를 역설했다.[174] 2000년 9월 캐나다 정부가 설치한 “개입과 국가 주권에 관한 국제 위원회”(ICISS) 위원으로서 책임보호(Responsibility to Protect) 개념 정립에 기여했다. 2019년 댄 데이비드 상, 2024년 아스투리아스 황태자상 사회과학 부문을 수상했다.

증조부는 러시아 제국의 정치가 니콜라이 이그나체프, 조부는 파벨 이그나체프이다. 아버지 조지 이그나티에프는 캐나다 외교관이었다.

역사학자로서 산업혁명 시대 감옥에 관한 역사서 『정의로운 고통의 척도』(A Just Measure of Pain)를 저술했다. 아이제이아 벌린 전기는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철학자를 조명한다. 철학 저서로는 『낯선 이들의 필요』(The Needs of Strangers), 『권리 혁명』(The Rights Revolution) 등이 있으며, 사회복지와 공동체에 대한 벌린의 영향을 보여준다. 민족 자결과 민주적 자치에 관한 정치 저술과도 연관된다. 국제 문제에 대한 저술도 활발했다.[46] 회고록 『러시아 앨범』(The Russian Album)은 가족사를 통해 볼셰비키 혁명 전후 러시아의 모습을 그린다.

국제 개발, 평화유지, 서구 국가의 국제적 책임에 대해서도 폭넓게 저술했다. 1993년 『피와 소속감(Blood and Belonging)』은 유고슬라비아, 북아일랜드 등 민족주의의 이중성을 다룬다. 1998년 『전사의 명예(The Warrior's Honour)』는 아프가니스탄, 르완다 등 민족 분쟁을, 『가상 전쟁(Virtual War)』은 코소보 전쟁을 통해 현대 평화유지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2003년 저서 ''가벼운 제국''은 미국이 "인도주의적 제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주목받았다. 코소보 전쟁과 르완다 대학살에서 NATO의 소극적 개입을 비판하며, 개발도상국 분쟁에 대한 서구의 적극적 개입과 지상군 배치를 옹호했다.[50]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으나,[49] 신보수주의와 달리 이타적 동기의 외교 개입을 주장했다.[50]

2004년 저서 ''작은 악''[51]은 테러 대응을 위해 무기한 구금, 강압적 심문,[25] 암살, 선제 공격 등 "작은 악"이 필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26] 민주주의 보호를 위해 이러한 필요악이 민주주의를 해치지 않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보았다.[52] 코너 기어티 등 인권 옹호가들은 고문 합법화 가능성을 들어 비판했지만,[53] 휴먼 라이츠 워치의 케네스 로스는 고문 지지와 동일시할 수 없다고 옹호했다.[54] 이그나티에프는 고문 완전 금지를 지지하며,[28] 2004년 ''뉴욕 타임스'' 칼럼에서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지속적 해를 끼치지 않는 수면 박탈" 등은 고문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55]

2005년 ''프로스펙트''와 ''포린 폴리시'' 선정 영향력 있는 지식인 37위에 올랐다.[44]

2005년경 자유당 후보로 거론되며 정계 진출설이 돌았고, 하버드 대학교를 떠나 토론토 대학교 잭맨 인권 정책 석좌교수 겸 먼크 국제 연구소 선임 연구원이 되었다.[29]

이라크 침공 지지 입장을 유지했지만, 점차 지지 강도가 약해졌다. 2007년 ''뉴욕 타임즈 매거진'' 기사에서 자신을 포함한 침공 지지 논평가들의 판단을 비판하며, 학자와 지식인들이 "특정 사실을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32] 사무엘 모인은 이그나티에프의 이라크 전쟁 옹호를 비판하며, 후기 사과가 "공허하다"고 주장했다.[33]

2011년 총선 패배 후 토론토 대학교 매시 칼리지 고위 연구원이 되어 먼크 글로벌 문제 연구소, 공공정책 및 거버넌스 대학원, 법학부에서 강의했다.[34] 2013년 하버드 케네디 스쿨로 복귀, 2014년 에드워드 R. 머로 언론, 정치 및 공공정책 석좌교수가 되었다.[36]

3. 1. 초기 경력

2000년, 이그내티에프는 하버드대학교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인권 정책 카 센터 (Carr Center for Human Rights Policy) 소장직을 수락했다.[21] 가레스 에번스와 함께 국제 개입 및 국가 주권 위원회 (International Commission on Intervention and State Sovereignty)를 위한 보고서 ''보호 책임 (The Responsibility to Protect)''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이 보고서는 코소보와 르완다에서 국제 개입의 역할을 조사하고 미래의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 대한 '인도주의적' 개입의 틀을 옹호했다. 2000년에 ''권리 혁명 (The Rights Revolution)''이라는 제목의 매시 강연 (Massey Lectures)을 했고,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World Economic Forum)에 참가하여 패널 리더가 되었다.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하여 외교 정책과 국가 건설 문제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새롭게 높아졌다. 서구의 개입주의적 정책과 국가 건설에 관한 이그내티에프의 저서 ''가상 전쟁: 코소보와 그 너머 (Virtual War: Kosovo and Beyond)''는 2001년에 오웰상(Orwell Prize) 정치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22] 언론인으로서 이그내티에프는 미국이 "자유 시장, 인권, 민주주의를 특징으로 하고 세계가 알고 있는 가장 막강한 군사력으로 강화된 세계적 패권인 가벼운 제국 (empire lite)을 수립했다"고 지적했다.[24] 이는 2003년 저서 ''가벼운 제국: 보스니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국가 건설 (Empire Lite: Nation-Building in Bosnia, Kosovo and Afghanistan)''의 주제가 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미국이 국가 건설과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통해 "인도주의적 제국"을 건설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50] 2005년 더블린에서 열린 앰네스티 강연에서 그는 "미국의 리더십 없이는 국제 인권이 없을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했다.[23]

이그내티에프의 개입주의적 접근 방식은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게 만들었다.[49] 이그내티에프에 따르면 미국은 국제 안보와 인권을 위해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을 축출할 의무가 있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주장, 즉 제재와 위협을 통한 억제가 후세인이 국제 테러리스트들에게 대량살상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였으며, 잘못된 정보에 기초하여 그 무기들이 이라크에서 여전히 개발 중이라고 믿었다.[24]

2004년, 9/11 이후 세계에서 인권을 분석하는 철학적 저서인 ''작은 악: 테러 시대의 정치 윤리 (The Lesser Evil: Political Ethics in an Age of Terror)''를 출판했다. 이그내티에프는 테러와 싸우기 위해 테러 용의자에 대해 무기한 구금이나 강압적인 심문이 필요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25][26] 민주적 제도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해야 하며, 이러한 필요악이 그들이 막으려는 악만큼 민주주의를 해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52] 이 책은 라이오넬 겔버 상 (Lionel Gelber Prize) 후보에 올랐지만, 비판도 받았다. 2005년, 인권 운동가 코너 기어티가 이그내티에프를 "인권 침해에 대해 손을 놓고 사과하는 변명가"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한 ''검열 지수 (Index on Censorship)'' 편집위원회 동료들로부터 비판을 받자, 이그내티에프는 ''검열 지수'' 편집위원회에서 사임했고,[27] 고문에 대한 완전한 금지를 지지한다고 주장해 왔다.[28]

2005년까지 이그내티에프의 인권과 외교 문제에 관한 저술은 ''프로스펙트 (Prospect)''와 ''포린 폴리시 (Foreign Policy)'' 잡지가 작성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목록에서 37위를 차지했다.[44]

2005년경, 이그내티에프는 차기 연방 선거의 자유당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정치 경력 시작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이때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떠나 토론토 대학교의 잭맨 인권 정책 석좌교수이자 해당 대학교 먼크 국제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 되었다.[29]

그는 이라크 문제에 대한 글쓰기를 계속하면서, 그 방법론은 아니더라도 이라크 침공에 대한 지지를 반복했다. 이그내티에프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이 쿠르드족과 시아파에게 저지른 일은 침공에 대한 충분한 정당성이었다.[30][31]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전쟁 지지는 약해졌다. 그는 "나는 의도를 신뢰하지 않았던 행정부를 지지했지만, 결과가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나는 의도가 결과를 형성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49] 결국 그는 전쟁 지지를 완전히 철회했다. 2007년 ''뉴욕 타임즈 매거진'' 기사에서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사는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을 비난했지만, 논평가로서 침공을 지지했던 다른 많은 사람들, 나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판단도 비난했다"라고 썼다. 이그내티에프는 자신이 저지른 오판을 일반적인 학자와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해석하면서, 그들을 "특정한 사실을 어떤 큰 아이디어의 사례로 일반화하고 해석하는" 사람들로 묘사했다. 반대로 정치에서는 "구체적인 사실이 일반적인 것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32] 하버드 대학교의 인권과 인도주의적 개입 역사가인 사무엘 모인은 이그내티에프가 이라크 전쟁을 옹호하면서 "명성을 더럽힌" 사람들 중 한 명이며, 그의 후기 공개 사과는 "매우 공허하다"고 주장했다.[33]

3. 2. 인권 정책 연구

2000년, 이그내티에프는 하버드대학교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인권 정책 카 센터 (Carr Center for Human Rights Policy) 소장직을 수락했다.[21] 그는 가레스 에번스와 함께 국제 개입 및 국가 주권 위원회 (International Commission on Intervention and State Sovereignty)를 위한 보고서 ''보호 책임 (The Responsibility to Protect)''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보고서는 코소보와 르완다에서 국제 개입의 역할을 조사하고 미래의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 대한 '인도주의적' 개입의 틀을 옹호했다. 그는 2000년에 ''권리 혁명 (The Rights Revolution)''이라는 제목의 매시 강연 (Massey Lectures)을 했다.

2001년, 9·11 테러로 인해 외교 정책과 국가 건설 문제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새로워졌다. 서구의 개입주의적 정책과 국가 건설에 관한 이그내티에프의 저서 ''가상 전쟁: 코소보와 그 너머 (Virtual War: Kosovo and Beyond)''는 2001년에 오웰상(Orwell Prize) 정치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22] 이그내티에프는 미국이 "자유 시장, 인권, 민주주의를 특징으로 하고 세계가 알고 있는 가장 막강한 군사력으로 강화된 세계적 패권인 가벼운 제국 (empire lite)을 수립했다"고 주장했다.[24] 2003년 저서 ''가벼운 제국: 보스니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국가 건설 (Empire Lite: Nation-Building in Bosnia, Kosovo and Afghanistan)''에서 미국이 국가 건설과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통해 "인도주의적 제국"을 건설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50]

이그내티에프의 개입주의적 접근 방식은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게 만들었다.[49] 그는 미국이 국제 안보와 인권을 위해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을 축출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이그내티에프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주장, 즉 제재와 위협을 통한 억제가 후세인이 국제 테러리스트들에게 대량살상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는 잘못된 정보에 기초하여 그 무기들이 이라크에서 여전히 개발 중이라고 믿었다.[24]

2004년, 그는 9/11 이후 세계에서 인권을 분석하는 철학적 저서인 ''작은 악: 테러 시대의 정치 윤리 (The Lesser Evil: Political Ethics in an Age of Terror)''를 출판했다. 이그내티에프는 테러와 싸우기 위해 테러 용의자에 대해 무기한 구금이나 강압적인 심문이 필요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25][26] 그는 민주적 제도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해야 하며, 이러한 필요악이 그들이 막으려는 악만큼 민주주의를 해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52] 2005년, 인권 운동가 코너 기어티는 이그내티에프를 "인권 침해에 대해 손을 놓고 사과하는 변명가"라고 비판했다. 이그내티에프는 ''검열 지수 (Index on Censorship)'' 편집위원회에서 사임했고,[27] 고문에 대한 완전한 금지를 지지한다고 주장해 왔다.[28]

3. 3. 캐나다 학계 복귀

2000년, 이그내티에프는 하버드대학교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인권 정책 카 센터 (Carr Center for Human Rights Policy) 소장직을 수락했다.[21] 가레스 에번스와 함께 국제 개입 및 국가 주권 위원회 (International Commission on Intervention and State Sovereignty)를 위한 보고서 ''보호 책임 (The Responsibility to Protect)''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보고서는 코소보와 르완다에서 국제 개입의 역할을 조사하고 미래의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 대한 '인도주의적' 개입의 틀을 옹호했다. 그는 2000년에 ''권리 혁명 (The Rights Revolution)''이라는 제목의 매시 강연 (Massey Lectures)을 했다.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하여 외교 정책과 국가 건설 문제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새롭게 높아졌다. 서구의 개입주의적 정책과 국가 건설에 관한 이그내티에프의 저서 ''가상 전쟁: 코소보와 그 너머 (Virtual War: Kosovo and Beyond)''는 2001년에 오웰상(Orwell Prize) 정치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22] 2003년 저서 ''가벼운 제국: 보스니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국가 건설 (Empire Lite: Nation-Building in Bosnia, Kosovo and Afghanistan)''에서는 미국이 국가 건설과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통해 "인도주의적 제국"을 건설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50]

이그내티에프의 개입주의적 접근 방식은 그가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게 만들었다.[49] 이그내티에프는 처음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였으나, 잘못된 정보에 기초하여 그 무기들이 이라크에서 여전히 개발 중이라고 믿었다.[24]

2004년, 그는 ''작은 악: 테러 시대의 정치 윤리 (The Lesser Evil: Political Ethics in an Age of Terror)''를 출판했다. 이 책에서 이그내티에프는 테러와 싸우기 위해 테러 용의자에 대해 무기한 구금이나 강압적인 심문이 필요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25][26]

2005년경, 이그내티에프는 차기 연방 선거의 자유당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정치 경력 시작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이때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떠나 토론토 대학교의 잭맨 인권 정책 석좌교수이자 해당 대학교 먼크 국제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 되었다.[29]

그는 이라크 문제에 대한 글쓰기를 계속하면서, 그 방법론은 아니더라도 이라크 침공에 대한 지지를 반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전쟁 지지는 약해졌다. 결국 그는 전쟁 지지를 완전히 철회했다. 2007년 ''뉴욕 타임즈 매거진'' 기사에서 그는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사는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을 비난했지만, 논평가로서 침공을 지지했던 다른 많은 사람들, 나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판단도 비난했다."라고 썼다.[32]

3. 4. 정치 이후 학계 복귀 및 하버드 복귀

2000년, 이그내티에프는 하버드 대학교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인권 정책 카 센터 (Carr Center for Human Rights Policy) 소장직을 수락했다.[21] 그는 가레스 에번스와 함께 국제 개입 및 국가 주권 위원회 (International Commission on Intervention and State Sovereignty)를 위한 보고서 ''보호 책임 (The Responsibility to Protect)''을 준비하여, 코소보와 르완다에서 국제 개입의 역할을 조사하고 미래의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 대한 '인도주의적' 개입의 틀을 옹호했다. 같은 해, ''권리 혁명 (The Rights Revolution)''이라는 제목의 매시 강연 (Massey Lectures)을 하고 책으로 출판했다. 그는 세계경제포럼 (World Economic Forum)에 참가하여 패널 리더가 되었다.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하여 외교 정책과 국가 건설 문제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그내티에프의 저서 ''가상 전쟁: 코소보와 그 너머 (Virtual War: Kosovo and Beyond)''는 2001년에 오웰상(Orwell Prize) 정치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22] 그는 미국이 "자유 시장, 인권, 민주주의를 특징으로 하고 세계가 알고 있는 가장 막강한 군사력으로 강화된 세계적 패권인 가벼운 제국 (empire lite)을 수립했다"고 지적했다.[24] 2003년 저서 ''가벼운 제국: 보스니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국가 건설 (Empire Lite: Nation-Building in Bosnia, Kosovo and Afghanistan)''에서 미국이 국가 건설과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통해 "인도주의적 제국"을 건설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50] 2005년 더블린에서 열린 앰네스티 강연에서 그는 "미국의 리더십 없이는 국제 인권이 없을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했다.[23]

이그내티에프는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다.[49] 그는 미국이 국제 안보와 인권을 위해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을 축출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주장, 즉 제재와 위협을 통한 억제가 후세인이 국제 테러리스트들에게 대량살상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그내티에프는 잘못된 정보에 기초하여 그 무기들이 이라크에서 여전히 개발 중이라고 믿었다.[24]

2004년, ''작은 악: 테러 시대의 정치 윤리 (The Lesser Evil: Political Ethics in an Age of Terror)''를 출판하여, 테러와 싸우기 위해 테러 용의자에 대해 무기한 구금이나 강압적인 심문이 필요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25][26] 민주적 제도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해야 하며, 이러한 필요악이 그들이 막으려는 악만큼 민주주의를 해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52] 이 책은 라이오넬 겔버 상 (Lionel Gelber Prize) 후보에 올랐지만, 비판도 받았다. 2005년, 인권 운동가 코너 기어티는 이그내티에프를 "인권 침해에 대해 손을 놓고 사과하는 변명가"라고 비판했다. 이그내티에프는 ''검열 지수 (Index on Censorship)'' 편집위원회에서 사임했고,[27] 고문에 대한 완전한 금지를 지지한다고 주장했다.[28]

2005년까지 이그내티에프의 인권과 외교 문제에 관한 저술은 ''프로스펙트 (Prospect)''와 ''포린 폴리시 (Foreign Policy)'' 잡지가 작성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목록에서 37위를 차지했다.[44]

3. 5. 중앙유럽대학교 총장 겸 학장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중앙유럽대학교 총장 겸 학장'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해당 섹션에는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4. 정치 경력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2006년, 2008년, 2011년 캐나다 연방 선거에서 캐나다 하원 의원(이토비코-레이크쇼어 선거구)으로 출마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선거명대수정당득표율득표수결과당락
2006년 캐나다 연방 선거39대캐나다 자유당43.63%24,337표1위
이토비코-레이크쇼어 하원의원 당선
2008년 캐나다 연방 선거40대캐나다 자유당46.13%23,536표1위
2011년 캐나다 연방 선거41대캐나다 자유당35.08%19,128표2위낙선



2006년 폴 마틴(Paul Martin)이 캐나다 자유당 대표직에서 사퇴한 후, 이그나티에프는 자유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으나 스테판 디옹에게 패배했다. 이후 디옹은 2006년 12월 18일 이그나티에프를 자유당 부대표로 임명했다.[71]

2008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패배하면서 디옹은 당 대표직 사퇴를 발표했고, 이그나티에프는 다시 당 대표직에 도전했다. 도미니크 르블랑과 밥 레이가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2008년 12월 10일 이그나티에프는 임시 대표로 선출되었고, 2009년 5월 당 대회에서 정식 대표로 확정되었다.[3]

2009년 2월 1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타와를 방문하여 스티븐 하퍼 총리와 회담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이그나티에프와도 만나 기후 변화, 아프가니스탄, 인권 문제 등을 논의했다.

2009년 2월 19일 오타와에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와 함께 있는 이그네티에프


2011년 봄 연방 총선에서 이그나티에프는 캐나다 신민주당(NDP)과 퀘벡 블록(Bloc Québécois)과의 연정 구성을 배제하며, "선거일에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이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114][115]

4. 1. 정계 입문

2005년경, 이그나티에프는 차기 연방 선거의 자유당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그의 정치 경력 시작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이때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떠나 토론토 대학교의 잭맨 인권 정책 석좌교수이자 해당 대학교 먼크 국제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 되었다.[29]

그는 이라크 문제에 대한 글쓰기를 계속하면서, 그 방법론은 아니더라도 이라크 침공에 대한 지지를 반복했다. 이그나티에프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이 쿠르드족과 시아파에게 저지른 일은 침공에 대한 충분한 정당성이었다.[30][31]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전쟁 지지는 약해졌다. 그는 "나는 의도를 신뢰하지 않았던 행정부를 지지했지만, 결과가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나는 의도가 결과를 형성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49] 결국 그는 전쟁 지지를 완전히 철회했다. 2007년 ''뉴욕 타임즈 매거진'' 기사에서 그는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사는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을 비난했지만, 논평가로서 침공을 지지했던 다른 많은 사람들, 나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판단도 비난했다."라고 썼다.[32] 이그나티에프는 자신이 저지른 오판을 일반적인 학자와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해석하면서, 그들을 "특정한 사실을 어떤 큰 아이디어의 사례로 일반화하고 해석하는" 사람들로 묘사했다. 반대로 정치에서는 "구체적인 사실이 일반적인 것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썼다.[32] 하버드 대학교의 인권과 인도주의적 개입 역사가인 사무엘 모인은 이그나티에프가 이라크 전쟁을 옹호하면서 "명성을 더럽힌" 사람들 중 한 명이며, 그의 후기 공개 사과는 "매우 공허하다"고 주장했다.[33]

2004년, 전 자유당 후보였던 알프레드 앱스(Alfred Apps), 상원의원 키스 데이비(Keith Davey)의 아들 이안 데이비, 그리고 변호사 다니엘 브록 등 자유당 조직자 3명이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Cambridge, Massachusetts)로 가서 이그나티에프를 설득해 캐나다로 돌아와 캐나다 하원에 출마하고, 폴 마틴이 은퇴할 경우 자유당 대표직에 도전할 것을 고려하도록 했다.[56] 당시 핵심 자유당 조직자였던 로코 로시(Rocco Rossi)는 앞서 데이비에게 데이비의 아버지가 이그나티에프는 "총리가 될 자질이 있다"고 말했다고 언급했다.[57] 2005년 1월, 앱스, 브록, 데이비의 노력의 결과로, 이그나티에프가 차기 선거에서 자유당의 스타 후보가 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집권 캐나다 자유당(Liberal Party of Canada) 대표인 총리 폴 마틴(Paul Martin)의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언론의 추측이 나왔다.

수개월간의 소문과 여러 차례 부인 끝에, 이그나티에프는 2005년 11월 2006년 겨울 선거에서 하원 의석에 출마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이그나티에프는 토론토의 이토비코크-레이크쇼어 선거구에서 자유당 후보 지명을 추구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일부 우크라이나계 캐나다인 선거구 협회 회원들은 이그나티에프가 저서 ''피와 소속감(Blood and Belonging)''에서 "나는 우크라이나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 독립은 수놓은 셔츠를 입은 농민들, 코를 찌르는 민족 악기 소리, 망토와 부츠를 입은 가짜 코사크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라고 언급한 것을 들어, 그 책에서 드러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이유로 후보 지명에 반대했다.[54][58]

비평가들은 또한 그가 30년 이상 캐나다를 떠나 살았고 여러 차례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언급한 점을 지적하며 그의 캐나다에 대한 헌신에 의문을 제기했다. 2006년 4월 6일 발행된 ''맥클린스(Maclean's)'' 인터뷰에서 피터 C. 뉴먼(Peter C. Newman)이 그 점에 대해 질문했을 때, 이그나티에프는 "때때로 청중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기 위해 그들의 목소리를 차용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하버드에서 내 강의를 들었던 85개국 출신 학생들은 나에 대해 한 가지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재미있는 캐나다인이었다."라고 말했다.[59]

다른 두 후보도 지명을 신청했지만 자격이 박탈되었다(한 명은 당원이 아니었고, 다른 한 명은 선거구 협회 집행부 직위에서 사퇴하지 않았기 때문). 이그나티에프는 보수당 후보를 약 5,000표 차이로 누르고 의석을 차지했다.[60]

4. 2. 자유당 대표 경선

2006년 1월 연방 총선에서 자유당 정부가 패배한 후, 폴 마틴(Paul Martin)은 같은 해 3월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2006년 4월 7일, 이그내티에프는 자유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것을 발표하며, 이미 출마를 선언한 다른 후보들과 경쟁하게 되었다.

이그내티에프는 여러 고위 인사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의 선거 운동은 상원의원 데이비드 스미스(장 크레티앵(Jean Chrétien)의 선거 운동 조직자)가 이끌었으며, 이언 데이비(Ian Davey), 다니엘 브록(Daniel Brock), 알프레드 앱스(Alfred Apps) 그리고 토론토 변호사이자 마크 라롱드(Marc Lalonde)의 아들인 폴 라롱드(Paul Lalonde)가 함께했다.[61]

토론토 변호사 브래드 데이비스(Brad Davis)가 이끄는 정책 자문팀이 구성되었는데, 브록과 동료 변호사들인 마크 사카모토(Mark Sakamoto), 사친 아가르왈(Sachin Aggarwal), 제이슨 로시척(Jason Rosychuck), 존 페니(Jon Penney), 나이젤 마쉬먼(Nigel Marshman), 알렉스 메이저(Alex Mazer), 윌 아모스(Will Amos), 앨릭스 도스탈(Alix Dostal), 이그내티에프의 제자였던 제프 앤더스(Jeff Anders), 은행가 클린트 데이비스(Clint Davis), 경제학자 블레어 스트랜스키(Blair Stransky), 레슬리 처치(Leslie Church), 엘리스 웨스트우드(Ellis Westwood), 그리고 자유당 당원 알렉시스 레빈(Alexis Levine), 마크 젠드론(Marc Gendron), 마이크 팔(Mike Pal), 줄리 드제로위츠(Julie Dzerowicz), 파트리스 라이언(Patrice Ryan), 테일러 오웬(Taylor Owen), 제이미 매크도널드(Jamie Macdonald) 등이 포함되었다.[62]

9월 마지막 주말에 열린 당의 "슈퍼 주말(Super Weekend)" 행사에서 대의원들이 선출된 후, 이그내티에프는 다른 후보들보다 더 많은 대의원들의 지지를 얻어 3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06년 8월, 이그내티에프는 레바논에서의 군사 작전 중 이스라엘의 카나(Qana) 공격으로 인해 발생한 수십 명의 민간인 사망에 대해 "잠 못 이루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63] 이그내티에프는 다음 주에 그 말을 번복했다. 그러다 2006년 10월 11일, 이그내티에프는 카나 공격을 (이스라엘이 저지른) 전쟁 범죄라고 묘사했다. 이그내티에프의 선거 운동 공동 의장이었던 수잔 카디스(Susan Kadis)는 이 발언 이후 지지를 철회했다. 다른 자유당 대표 후보들도 이그내티에프의 발언을 비판했다.[64] 유대인 공동체 지도자이자 저명한 자유당 국회의원 어윈 코틀러(Irwin Cotler)의 아내인 아리엘라 코틀러(Ariela Cotler)는 이그내티에프의 발언 이후 당을 탈당했다.[65] 이그내티에프는 나중에 자신의 발언을 수정하며 "카나 공격에서 전쟁 범죄가 저질러졌는지는 국제 기구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카나 사건이 끔찍한 비극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66]

10월 14일, 이그내티에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을 만나 "상황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직접 듣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그리고 이스라엘의 베첼렘(B'Tselem)이 카나에서 전쟁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밝힌 사실을 언급하며, 이러한 주장을 "이스라엘이 전쟁법과 인권에 대한 준수, 우려 및 존중의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라고 묘사했다.[67] 이그내티에프는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팔레스타인 지도자들과는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4. 3. 자유당 부대표

2006년 12월 18일, 스테판 디옹은 새로운 자유당 대표가 되면서, 이전 대표 경선 경쟁자들에게 고위직을 제공하려는 계획에 따라 이그나티에프를 부대표로 임명했다.[71]

2007년 9월 18일에 치러진 세 번의 보궐선거 기간 동안, 핼리팩스 크로니클 헤럴드는 익명의 디옹 지지자들이 이그나티에프 지지자들이 보궐선거 노력을 방해하여 디옹이 당의 퀘벡 기반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고 비난했다고 보도했다.[72] 토론토 스타의 수전 델라쿠르는 이를 당내에서 대표 경선 준우승자와 관련된 반복적인 문제라고 묘사했다.[73] 내셔널 포스트는 이 사건을 "반란의 은밀한 징후"라고 언급했다.[74]

이그나티에프는 디옹에게 전화하여 이러한 주장을 부인했지만, 글로브 앤드 메일은 기사 발표 후 신민당의 지지율 확대를 언급하며, 해당 보도가 자유당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시사했다.[75] 자유당은 전통적인 텃밭인 우트몽에서 패배했다. 그 이후 이그나티에프는 자유당에 서로의 차이점을 제쳐두고 "단결하면 승리하고, 분열하면 패배한다"고 촉구했다.[76]

4. 4. 자유당 임시 대표

총선에서 자유당이 패배한 후, 디옹은 다음 당 대회에서 자유당 대표직을 사퇴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그내티에프는 2008년 11월 13일 기자 회견을 열고 캐나다 자유당 대표직에 다시 한번 출마할 의사를 밝혔다.[77]

자유당이 다른 야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정부를 몰아내기 위한 합의에 도달했을 때, 이그내티에프는 마지못해 이를 지지했다. 그는 신민당과의 연정과 퀘벡 블록의 지지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알려졌으며, 연정에 동참한 마지막 자유당원 중 한 명으로 묘사되기도 했다.[78][79][80] 의회를 연기하고 불신임안을 2009년 1월까지 연기한다는 발표 후, 디옹은 당이 새로운 대표를 선출할 때까지 대표직을 유지할 의사를 밝혔다.[80]

대표 후보 도미니크 르블랑은 출마를 포기하고 이그내티에프를 지지했다. 12월 9일, 자유당 대표직을 놓고 경쟁했던 다른 후보 밥 레이가 경쟁에서 철수하면서 이그내티에프는 사실상 승자가 되었다.[81] 12월 10일, 그는 의원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임시 대표로 선포되었고, 그의 지위는 2009년 5월 대회에서 승인되었다.[3]

2009년 2월 19일,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으로 스티븐 하퍼 총리를 만나기 위해 오타와를 방문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의회 관례에 따라 야당 대표가 외국 고위 인사를 만나는 자리에서 이그내티에프와도 만났다. 그들의 논의에는 기후 변화,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인권이 포함되었다.

4. 5. 자유당 대표

2006년 1월 연방 총선에서 자유당 정부가 패배한 후, 폴 마틴(Paul Martin)은 같은 해 3월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2006년 4월 7일, 이그내티에프는 자유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것을 발표하며, 이미 출마를 선언한 다른 후보들과 경쟁하게 되었다.[60]

이그내티에프는 여러 고위 인사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의 선거 운동은 상원의원 데이비드 스미스(장 크레티앵(Jean Chrétien)의 선거 운동 조직자), 이언 데이비(Ian Davey), 다니엘 브록(Daniel Brock), 알프레드 앱스(Alfred Apps), 마크 라롱드(Marc Lalonde)의 아들 폴 라롱드(Paul Lalonde)가 이끌었다.[61]

토론토 변호사 브래드 데이비스(Brad Davis)가 이끄는 정책 자문팀에는 브록, 마크 사카모토(Mark Sakamoto), 사친 아가르왈(Sachin Aggarwal), 제이슨 로시척(Jason Rosychuck), 존 페니(Jon Penney), 나이젤 마쉬먼(Nigel Marshman), 알렉스 메이저(Alex Mazer), 윌 아모스(Will Amos), 앨릭스 도스탈(Alix Dostal), 이그내티에프의 제자 제프 앤더스(Jeff Anders), 은행가 클린트 데이비스(Clint Davis), 경제학자 블레어 스트랜스키(Blair Stransky), 레슬리 처치(Leslie Church), 엘리스 웨스트우드(Ellis Westwood), 자유당 당원 알렉시스 레빈(Alexis Levine), 마크 젠드론(Marc Gendron), 마이크 팔(Mike Pal), 줄리 드제로위츠(Julie Dzerowicz), 파트리스 라이언(Patrice Ryan), 테일러 오웬(Taylor Owen), 제이미 매크도널드(Jamie Macdonald) 등이 포함되었다.[62]

9월 마지막 주말에 열린 당의 "슈퍼 주말(Super Weekend)" 행사에서 대의원들이 선출된 후, 이그내티에프는 30%의 득표율로 다른 후보들보다 더 많은 대의원들의 지지를 얻었다.

2006년 8월, 이그내티에프는 레바논에서의 군사 작전 중 이스라엘의 카나(Qana) 공격으로 발생한 민간인 사망에 대해 "잠 못 이루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63] 그는 다음 주에 그 말을 번복했다. 2006년 10월 11일, 이그내티에프는 카나 공격을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라고 묘사했다. 이그내티에프의 선거 운동 공동 의장 수잔 카디스(Susan Kadis)는 이 발언 이후 지지를 철회했다. 다른 자유당 대표 후보들도 이그내티에프의 발언을 비판했다.[64] 유대인 공동체 지도자이자 자유당 국회의원 어윈 코틀러(Irwin Cotler)의 아내 아리엘라 코틀러(Ariela Cotler)는 이 발언 이후 당을 탈당했다.[65] 이그내티에프는 "카나 공격에서 전쟁 범죄가 저질러졌는지는 국제 기구가 판단할 문제지만, 카나 사건이 끔찍한 비극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수정했다.[66]

10월 14일, 이그내티에프는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이스라엘 베첼렘(B'Tselem)이 카나에서 전쟁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밝힌 것을 언급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을 만나 "상황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직접 듣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전쟁법과 인권에 대한 준수, 우려 및 존중의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심각한 문제"라고 묘사했다.[67] 이그내티에프는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팔레스타인 지도자들과는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너무 많은 언론의 주목으로 인해 이 여정을 후원했던 유대인 단체가 이 여행을 취소했다.

몬트리올(Montreal) 몬트리올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지도자 협약에서 이그내티에프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등장했다. 그러나 여론 조사에서는 2차 투표에서 지지율이 약하다는 결과가 꾸준히 나타났고, 이미 그에게 묶여 있지 않은 대의원들은 나중에 그를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2006년 12월 1일, 이그내티에프는 1차 투표에서 29%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렸다. 다음 날 2차 투표에서 31%로 지지율을 소폭 상승시켜 밥 레이(Bob Rae)(24%)와 스테판 디옹(Stéphane Dion)(20%)을 제치고 선두를 유지했다. 그러나 제라드 케네디(Gerard Kennedy) 지지자들이 디옹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이그내티에프는 3차 투표에서 2위로 밀려났다. 3차 투표 직전, 디옹-케네디 연대가 알려지자 이그내티에프 선거 운동 공동 의장 드니스 코데르(Denis Coderre)는 레이에게 연합하여 디옹이 자유당 지도자가 되는 것을 막자고 호소했다(스테판 디옹의 열렬한 연방주의가 퀘벡 주민들을 소외시킬 것이라는 이유). 하지만 레이는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의 대의원들을 자유롭게 했다.[68]

케네디 대의원들의 도움으로 디옹은 3차 투표에서 37%의 지지율로 이그내티에프(34%)와 레이(29%)를 앞섰다. 레이는 탈락했고, 그의 대의원 대부분은 이그내티에프가 아닌 디옹에게 투표했다. 4차이자 마지막 투표에서 이그내티에프는 2084표를 얻었지만 2521표를 얻은 디옹에게 패했다.[69]

5. 저서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대중 지식인[44]이자 역사가, 소설가로서 국제 관계와 국가 건설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영국 예술위원회(British Arts Council)는 그의 글쓰기 스타일과 주제가 "매우 다재다능하다"고 평가했다.[46] 그는 ''글로브 앤드 메일(The Globe and Mail)'', ''뉴 리퍼블릭(The New Republic)'', ''뉴욕 타임즈 매거진(The New York Times Magazine)'' 등 여러 출판물에 기고했다.

그의 저서는 소설과 논픽션으로 나뉜다.

5. 1. 소설


  • 아시아(Asya) (1991)[129]
  • 흉터 조직(Scar Tissue) (1993)[130]
  • 불길 속의 찰리 존슨(Charlie Johnson in the Flames) (2005)[131]


이그나티에프는 소설 작품에서 러시아 소녀의 삶과 여정(《아시아》), 신경 질환으로 인한 어머니의 쇠락(《흉터 조직》), 코소보에서 기자가 겪은 잊을 수 없는 기억(《불길 속의 찰리 존슨》)을 다루었다. 이 작품들은 어느 정도 자전적인 요소를 포함하는데, 예를 들어 이그나티에프는 기자로 일하면서 발칸 반도와 쿠르디스탄을 여행하며 현대 민족 전쟁의 결과를 직접 목격했다.

5. 2. 논픽션


  • 《고통의 정당한 척도: 산업혁명 시대의 형무소, 1780-1850》(A Just Measure of Pain: Penitentiaries in the Industrial Revolution, 1780–1850), 1978[132]
  • (István Hont영어와 공저) 《부와 덕: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에서 정치 경제의 형성》(Wealth and Virtue: The Shaping of Political Economy in the Scottish Enlightenment), 1983[133]
  • 《타인의 필요》(The Needs of Strangers), 1984[134]
  • 《러시아 앨범》(The Russian Album), 1987[135]
  • 《피와 소속: 새로운 민족주의로의 여정》(Blood and Belonging: Journeys Into the New Nationalism), 1994[136]
  • 《전사의 명예: 민족 전쟁과 현대의 양심》(Warrior's Honour: Ethnic War and the Modern Conscience), 1997[137]
  • 아이작 베를린: 그의 삶》(Isaiah Berlin: A Life), 1998[138]
  • 《가상 전쟁: 코소보와 그 너머》(Virtual War: Kosovo and Beyond), 2000[139]
  • 《권리 혁명》(The Rights Revolution), 2000[140]
  • 《인권: 정치와 우상숭배》(Human Rights as Politics and Idolatry), 2001[141]
  • 《제국 라이트: 보스니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국가 건설》(Empire Lite: Nation-building in Bosnia, Kosovo, Afghanistan), 2003[142]
  • 《더 작은 악: 테러 시대의 정치 윤리》(The Lesser Evil: Political Ethics in an Age of Terror), 2004[143] (2003 기포드 강좌)
  • (편집) 《미국 예외주의와 인권》(American Exceptionalism and Human Rights), 200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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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명예 학위

지역날짜대학교학위
Quebec|퀘벡영어1995년비스숍 대학교법학 명예 박사 (DCL)
Scotland|스코틀랜드영어1996년 6월 28일스터링 대학교대학교 명예 박사 (D. Univ)[116]
Ontario|온타리오영어2001년 10월 25일퀸즈 대학교법학 명예 박사 (LL.D)[117]
Ontario|온타리오영어2001년 10월 26일웨스턴온타리오 대학교문학 명예 박사 (D.Litt.)[118]
New Brunswick|뉴브런즈윅영어2001년뉴브런즈윅 대학교문학 명예 박사 (D.Litt.)[119]
Quebec|퀘벡영어2002년 6월 17일맥길 대학교문학 명예 박사 (D.Litt.)[120][121]
Saskatchewan|서스캐처원영어2003년 5월 28일리자이나 대학교법학 명예 박사 (LL.D)[122]
Washington|워싱턴영어2004년휘트먼 대학교법학 명예 박사 (LL.D)[123]
New York|뉴욕영어2006년 5월 21일나이아가라 대학교인문학 명예 박사 (DHL)[124]
Netherlands|네덜란드영어2007년틸뷔르흐 대학교명예 박사[125]
Scotland|스코틀랜드영어2018년에든버러 대학교사회과학 명예 박사[126]
Netherlands|네덜란드영어2019년 1월 25일마스트리흐트 대학교명예 박사[127]
GBR|영국영어2024년케임브리지 대학교명예 박사[128]


7.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직책명대수정당득표율득표수결과당락
2006년 선거하원의원 (이토비코-레이크쇼어 선거구)39대캐나다 자유당43.63%24,337표1위당선
2008년 선거하원의원 (이토비코-레이크쇼어 선거구)40대캐나다 자유당46.13%23,536표1위당선
2011년 선거하원의원 (이토비코-레이크쇼어 선거구)41대캐나다 자유당35.08%19,128표2위낙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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