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키타가와
1. 개요
메리 키타가와는 192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으며, 쟈니즈 사무소의 대표이사 사장인 자니 기타가와의 누나이다. 태평양 전쟁 중 일본계라는 이유로 억류되었다가 귀국 후 사업을 시작했으며, 동생 자니가 쟈니즈 사무소를 설립한 후 경리를 담당하며 공동 경영했다. 쟈니즈 사무소 부사장을 역임했으며, 쟈니 기타가와 사망 후 대표이사 회장을 거쳐 명예 회장으로 물러났다. 2021년 사망했으며, 2023년 쟈니 기타가와 성학대 문제 조사에서 피해 확대를 방조하고 은폐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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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메리 기타가와 |
|---|---|
| 원어 이름 | ja: メリー喜多川 en: Mary Y. Kitagawa |
| 본명 | 후지시마 메리 야스코 (ja: 藤島メリー泰子) |
| 출생일 | 1927년 12월 26일 |
| 출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 사망일 | 2021년 8월 14일 |
| 사망지 | 일본 도쿄 |
| 국적 | 일본 미국 |
| 배우자 | 후지시마 다이스케 |
| 자녀 | 후지시마 주리 케이코 |
| 형제자매 | 자니 기타가와(남동생) |
| 직업 | 사업가 연예 기획자 |
| 출신 학교 | 로스앤젤레스 시티 칼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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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스 사무소의 인물 -
타키자와 히데아키
타키자와 히데아키는 쟈니스 사무소에서 활동한 일본의 배우, 가수, 탤런트, 연출가, 사업가로, 타키 & 츠바사 데뷔, 드라마 출연, 무대 연출 등을 거쳐 쟈니스 아일랜드 사장을 역임 후 TOBE를 설립하여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자니스 사무소의 인물 -
자니 키타가와
자니 키타가와는 1931년 미국에서 태어나 쟈니스 사무소를 설립하고 SMAP, 아라시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을 프로듀싱하며 일본 연예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사망 후 성 학대 문제가 불거지면서 관련 기록이 삭제되고 논란이 일었다. -
2021년 사망 -
이완구
이완구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국회의원과 충청남도지사를 지냈으며 국무총리를 역임했으나 성완종 리스트 사건 연루 의혹으로 사퇴 후 혈액암으로 사망했다. -
2021년 사망 -
김영주 (1920년)
김영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김일성의 동생이자 김정일의 삼촌이며, 한때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김정일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났고, 7·4 남북 공동 성명 당시 북측 대표, 국가부주석 등을 역임했다. -
20세기 일본 사람 -
쇼와 천황
쇼와 천황은 메이지 천황의 손자로 태어나 124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사망할 때까지 재위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침략 전쟁에 관여했다는 논란이 있으며, 전후에는 상징적인 천황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의 전쟁 책임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다. -
20세기 일본 사람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2. 약력
메리 키타가와는 1926년 12월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3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동생은 쟈니즈 사무소의 대표이사 사장 자니 기타가와이다.
태평양 전쟁 개전 후 일본계 미국인 강제 수용에 따라 아버지, 남동생 3명과 함께 캘리포니아주에 억류되었지만, 1942년 6월 18일 1차 미일 교환선으로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부모의 고향인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로 이주했다. 주류군과의 통역으로 오사카 쇼치쿠 소녀 가극단에 입단했다. 그러나 1945년 7월 9일 와카야마 대공습으로 집이 불타버렸다.
종전 후, 남동생 3명과 함께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로스앤젤레스 시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동생인 쟈니 키타가와와 함께 1952년 일본으로 다시 돌아왔다. 또 다른 남동생은 NASA에서 아폴로의 디자인을 했던 과학자였지만 1980년대에 50대 중반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1950년대부터 요쓰야 산쵸메의 엔쓰지자카 언덕 입구 오른쪽편에 있었던 "스폿"이라는 이름의 카운터 바를 개업, 사업을 하였다. 그 시기에 바의 손님이었던 도쿄 신문 기자(이후 작가)인 후지시마 다이스케와 만나 결혼하였다.
1962년 6월 동생 쟈니 키타가와가 연예 기획사 쟈니즈 사무소를 설립하였을때, 바를 폐점하고 쟈니즈 사무소의 경리를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소속 가수 스타일리스트 등도 맡는 등 사실상 동생과 공동 경영격으로 쟈니즈 사무소를 운영하였다. 동생은 소속 탤런트나 쇼의 프로듀스를 주로 맡고 본인은 회사 경영 전반을 관리했다고 알려져있다. 생전 일본 연예계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재계 인사들과도 교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1. 생애 초기
메리 키타가와는 1926년 12월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3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야산 진언종 미국 별원의 승려 기타가와 테이도였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아버지 기타가와 테이도는 프로 야구팀 "골드스타"의 매니저였다. 동생은 쟈니즈 사무소의 대표이사 사장 자니 기타가와이다.
1933년, 기타가와 일가는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시에서 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사망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 메리 키타가와를 포함한 아이들만 와카야마현 히가시무로군나치카쓰우라정으로 피난했다. 그 후 메리 키타가와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OSK 일본 가극단에 드나들게 되었고, 전쟁 후 극단이 주둔군에서 위문 공연을 할 때 통역도 맡았다.
태평양 전쟁 개전 후에는 일본계 미국인 강제 수용에 따라 아버지, 남동생 3명과 함께 캘리포니아주에 억류되었다. 1942년 6월 18일 1차 미일 교환선으로 일본으로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부모의 고향인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로 이주했다. 1945년 7월 9일 와카야마 대공습으로 집이 불타버렸다.
1947년, 남동생 2명과 함께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로스앤젤레스 시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그리고 남동생 자니는 1952년에, 메리는 1957년에 일본으로 귀국했다. 또 다른 남동생은 NASA에서 아폴로의 디자인을 했던 과학자였지만 1980년대에 50대 중반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2. 사업가로서
메리 키타가와는 1950년대부터 요쓰야 산쵸메의 엔쓰지자카 언덕 입구 오른편에 있었던 "스폿"이라는 이름의 카운터 바를 개업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바의 손님이었던 도쿄 신문 기자(이후 작가)인 후지시마 다이스케와 만나 결혼하였다.
1950년대 후반, 요쓰야 3초메의 엔쓰지자카 입구 오른쪽 모퉁이에서 카운터 바 "스폿"을 개업하며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바의 손님이었던 도쿄 신문 기자 (후에 작가)인 후지시마 타이수케와의 사이에 후지시마 쥬리 케이코를 낳았다.
동생 쟈니 키타가와가 1962년 6월 연예 기획사 쟈니즈 사무소를 설립하자, 메리는 바를 닫고 쟈니즈 사무소의 경리를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소속 가수의 스타일리스트 등도 맡는 등 사실상 동생과 공동 경영자로서 쟈니즈 사무소를 운영하였다. 동생은 소속 탤런트나 쇼의 프로듀스를 주로 맡고 메리는 회사 경영 전반을 관리했다고 알려져 있다.
막내 동생 자니가 1962년 6월 연예 기획사 "쟈니스 사무소"를 설립하자, 메리도 바를 폐점하고 사무소의 경리를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포 리브스의 스타일리스트 등도 맡았다. 쟈니스 사무소 부사장 시절에는 탤런트의 취급이나 쇼의 프로듀스를 하는 동생 자니를 대신하여 회사 경영의 전반을 총괄했다.
쟈니스의 탤런트가 무대 위에서 빠르게 의상을 갈아입는 '재빠른 옷 갈아입기'에 사용되는 '재빠른 옷 갈아입기 의상'의 실용 신안을 1976년에 출원했다.
2.3. 쟈니스 사무소 회장 취임과 사망
2019년 7월 쟈니가 사망하면서, 같은 해 9월 27일 쟈니즈 사무소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다。
2020년 9월 4일 대표이사 회장에서 물러나 명예 회장이 되었다。
2021년 8월 14일 오전 7시 35분, 폐렴으로 인해 도쿄도 내 병원에서 사망했다。향년 93세. 묘는 동생 쟈니와 같은 와카야마현 이토군 고야정, 고야산에 있다。
3. 인물 및 평가
메리 키타가와는 1926년 12월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3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동생은 쟈니즈 사무소의 대표이사 사장 자니 기타가와이다. 태평양 전쟁 발발 후 일본계 미국인 강제 수용에 따라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 주에 억류되었다가, 1942년 일미 교환선을 통해 일본으로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부모의 고향인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로 이주하여 오사카 쇼치쿠 소녀 가극단에서 통역으로 일했다. 1945년 와카야마 대공습으로 집이 전소되기도 했다.
종전 후, 메리는 남동생 3명과 함께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로스앤젤레스 시립대학을 졸업하고, 1952년 동생 쟈니 기타가와와 함께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또 다른 남동생은 NASA에서 아폴로 우주선의 디자인을 담당한 과학자였으나, 1980년대에 50대 중반의 나이로 사망했다.
1950년대부터 메리는 요쓰야 산쵸메의 엔쓰지자카 언덕 입구에 있던 "스폿"이라는 카운터 바를 운영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바의 단골 손님이었던 도쿄 신문 기자(이후 작가) 후지시마 다이스케와 만나 결혼했다.
1962년 동생 쟈니 기타가와가 쟈니즈 사무소를 설립하자, 메리는 바를 닫고 쟈니즈 사무소의 경리를 담당하게 되었다. 소속 가수들의 스타일리스트 역할도 맡는 등, 사실상 동생과 공동 경영을 하며 쟈니즈 사무소를 운영했다. 동생이 소속 연예인 및 공연 프로듀싱을 주로 담당했다면, 메리는 회사 경영 전반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전 일본 연예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정·재계 인사들과도 교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리는 쟈니와 함께 많은 연예인을 키워냈지만, 사무소의 방침이나 결정에 따르지 않거나 불상사를 일으킨 소속 연예인에게는 엄벌을 내리는 등, 기업인이자 연예 프로모터로서 엄격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녀와 갈등을 겪은 전 소속 연예인으로는 전 SMAP의 모리 카츠유키, 전 오토코구미의 다카하시 카즈야 등이 있다.
메리는 연예의 신을 모시는 것으로 알려진 도요카와이나리 도쿄별원을 오랫동안 후원해 왔으며, 도요카와이나리의 이름을 따서 도요카와 탄에게 예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사후에는 『여제 메리 키타가와』(고스게 히로시, 아오이샤, 2022년 4월)가 출판되었다. 저자인 고스게 히로시는 슈에이샤의 전 연예지 편집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