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테 겐세이
1. 개요
미조테 겐세이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1942년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에서 태어나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후지 제철(현 일본제철)에 입사하여 기업인으로 활동하다가 1987년 미하라 시장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1993년 참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참의원 의원을 5번 역임했으며,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 국가공안위원장 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을 지냈다. 2019년 참의원 선거에서 낙선했고, 2023년 노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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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미조테 겐세이 |
|---|---|
| 원어 이름 | 溝手 顕正 (みぞて けんせい) |
| 출생일 | 1942년 9월 13일 |
| 출생지 | 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미나미구 |
| 사망일 | 2023년 4월 14일 |
| 사망지 | 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
| 학력 | 도쿄 대학 법학부 졸업 |
| 전직 | 후지 제철 종업원 고요 조선 대표이사 사장 |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가토파 → 고가파 → 기시다파) |
| 칭호/훈장 | 종3위 |
| 배우자 | 미조테 미에코 |
| 종교 | 알려진 정보 없음 |
| 서명 | 알려진 정보 없음 |
| 웹사이트 | 알려진 정보 없음 |
| 사이트 제목 | 알려진 정보 없음 |
| 직책 | 제74대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방재) |
|---|---|
| 내각 | 제1차 아베 내각 |
| 임기 시작 | 2006년 9월 26일 |
| 임기 종료 | 2007년 8월 27일 |
| 직책 | 참의원 의원 |
| 선거구 | 히로시마현 선거구 |
| 당선 횟수 | 5회 |
| 임기 시작 | 1993년 12월 5일 |
| 임기 종료 | 2019년 7월 28일 |
| 직책 | |
| 당선 횟수 | 2회 |
| 임기 시작 | 1987년 |
| 임기 종료 | 1993년 |
| 기타 직책 | |
| 임기 시작 | 2013년 |
| 임기 종료 | 2016년 8월 3일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금융 담당)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금융 담당)은 일본 내각부의 특명담당대신으로서 금융 행정을 총괄하며 금융의 원활화를 위한 정책, 금융 제도 기획, 금융기관 검사·감독 등을 담당하고 금융 위기 대응 회의 의장, 다중 채무자 대책 본부장 등을 겸임하여 서민 경제 안정에도 기여하는 직책이다.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행정 쇄신 담당)
내각부 특명담당대신(행정 쇄신 담당)은 일본 내각부에 설치되어 국가 및 지방 공공 단체의 행정 개혁을 담당했으며, 1990년대 행정 기구 비대화 지적에 따라 설치되어 내각부 내 행정 쇄신 회의 부의장을 겸임하다가 2012년 폐지되었다. -
일본의 미식축구 선수 -
요나미네 가나메
요나미네 가나메는 일본계 미국인 2세로, 프로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하다 야구 선수로 전향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은퇴 후에는 주니치 드래건스 감독으로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등 선수와 지도자 모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
일본의 미식축구 선수 -
이창영
이창영은 리쓰메이칸 대학과 마쓰시타 전공 임펄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약한 일본의 미식축구 선수이자, 니혼 대학 피닉스 등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고시엔 보울 우승에 기여한 지도자이다. -
조선업자 -
토머스 앤드루스 (조선업자)
아일랜드 조선업자 토머스 앤드루스는 하랜드 앤 울프 조선소의 상무이사로서 화이트 스타 라인 여객선 올림픽, 타이타닉, 브리타닉의 설계를 감독했으며, 특히 타이타닉호 설계에 깊이 관여했고, 침몰 당시 승객 대피를 돕다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
조선업자 -
니콜라스 빗선
니콜라스 빗선은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정치가, 지도 제작자, 조선 기술자, 예술 후원가로, 러시아 외교 협상 참여, 시베리아 지도 제작, 조선 기술 서적 저술, 잉글랜드 횡단 계획 참여, 예술 및 과학 후원 등의 활동을 펼쳤다.
2. 생애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지금의 히로시마시 미나미구)에서 1942년 9월에 태어나, 아키군, 가모군 하라촌(지금의 히가시히로시마시)을 거쳐 미하라시로 이사 가서 정착했다. 히로시마 대학 부속 미하라 중학교, 히라시마 대학 부속 고등학교를 거쳐 1966년에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후지제철(지금의 일본제철)에 입사했으나, 1971년 퇴사하고 장인이 경영하는 조선사의 부사장을 거쳐 1979년에 대표이사 사장이 되었다. 1987년 미하라시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1991년 재선에 성공했다. 1993년 후지타 유잔이 히로시마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생긴 히로시마현 선거구 보궐선거에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 참의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1997년 통상산업정무차관, 2004년 참의원 의원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를 지지하여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방재 담당)으로 처음 입각했다. 2007년 참원선에서 4선, 2013년 참원선에서 5선 의원이 되었다. 2013년에는 참의원 의원회장에 선출되었으나, 2014년 선거 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간사장 와키 마사시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19년 참원선에서 6선에 도전했으나, 자유민주당이 가와이 안리를 추가 공천하면서 낙선했다. 2021년 2월 뇌경색으로 미하라시의 한 병원에 입원했고, 2023년 4월 14일 노쇠로 사망했다. 향년 80세. 사후 종3위에 추서됐다.
2.1. 유년 시절 및 학창 시절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지금의 히로시마시 미나미구)에서 1942년 9월에 태어났다. 이후 아키군, 가모군 하라촌(지금의 히가시히로시마시)을 거쳐 미하라시로 이사가서 정착했다.
히로시마 대학 부속 미하라 중학교, 히라시마 대학 부속 고등학교를 거쳐 1966년에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고등학생 때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을 했고, 대학생 때는 도쿄 대학 운동회 미식축구부 주장을 맡았다.
2.2. 기업인 시절
1966년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후지제철(지금의 일본제철)에 입사하여 히로하타 제철소에 배속되었다. 1971년 회사를 퇴직하고 장인이 경영하는 고요 선거의 부사장이 되었다가 1979년에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 기간 동안 일본조선공업회 상임이사와 미하라시 상공회의소 부회장도 역임했다.
2.3. 정치 입문: 미하라 시장
1987년, 지역 상공계의 지지를 받아 미하라시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1년에 재선되었다. 이 기간 동안 전국 시장회 평의원 및 히로시마 시장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2.4. 참의원 의원 시절
1993년 후지타 유잔이 히로시마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사임함에 따라 치러진 히로시마현 선거구 보궐선거에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97년 9월 통상산업정무차관을 지냈고, 2004년에는 참의원 의원운영위원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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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자민당 총재 선거 때 아베 신조를 지지했고, 아베가 당선되자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방재 담당)에 임명되어 처음 입각했다. 대신정무관과 부대신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입각한 이례적인 경우였다. 재임 중 정부에 알리지 않고 사회복지법인 이사장을 맡으면서 보수를 받아 「대신 규범」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미조테는 그때까지 받은 보수를 모두 사회복지법인에 반환했을 뿐 각료나 의원 사임은 부정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2007년 7월 참원선 선거 유세 중 니가타현 주에쓰 해역 지진이 발생하자 선거 운동을 중지하고 정부조사단장이 되어 피해 지역을 시찰했다. 이후 진행된 선거에서 당선되어 4선 의원이 되었고, 8월에 출범한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에서 유임되었다. 12월 북일국교정상화를 주장하는 의원 연맹인 자유민주당 한반도문제 소위원회가 출범하자 부위원장이 되었으며, 2008년에 참의원 예산위원장, 2009년에 참의원 국가기본정책위원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2011년 9월, 나카소네 히로후미 자민당 참의원 의원회장이 고사카 겐지를 참의원 간사장에, 야마모토 이치타를 참의원 정책심의회장에 유임시키는 안을 제시했지만, 자유민주당 집행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사카는 2009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2010년 참원선에서 당선된 인물이었고, 야마모토는 나카소네와 같은 지역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카소네는 참의원 간사장에 고노이케 요시타다를 새로 추천했지만 집행부는 이것도 부결했다. 이후 미조테를 간사장에, 이와키 미쓰히데를 정책심의회장에 추천하는 안이 승인되면서 미조테는 참의원 간사장에 취임했다.
2013년 참원선에서 당선되어 5선 의원이 되었다. 같은 해 7월 26일 나카소네의 임기 만료로 열린 참의원 의원회장 선거에 출마해 31표를 얻은 고노이케를 꺾고 82표를 얻어 당선됐다.
2014년 9월 9일, 한 표의 격차를 시정하기 위한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해 미조테가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자 참의원 간사장 와키 마사시로부터 비판을 받은 뒤 의원회장 사임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미조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3일 뒤 와키를 간사장에서 경질했다. 선거 제도 개혁은 신당 개혁 대표 아라이 히로유키가 제안한 합동선거구를 창설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받아들여져 2015년 7월 28일 국회를 통과했다.
2016년 참의원 의원회장에서 경질됐다.
2.5. 가와이 부부 선거 위반 사건과 낙선
6선 도전을 앞두고 미조테 겐세이의 자유민주당 공천은 일찍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2018년 말, 아베 신조 당시 총리나 스가 요시히데 당시 관방장관 등의 의중을 헤아린 당 본부는 당 히로시마현 연합에 2명째 후보를 옹립할 것을 타진했다. 현 연합에서는 "조직이 분열될 수 있다"며 일제히 반발했다. 현 연합은 당 본부에 방침 철회를 거듭 요구했지만, 2019년 3월 13일, 자유민주당은 가와이 가쓰유키 중의원 의원의 아내이자 히로시마현 의회 의원인 가와이 안리를 정식으로 두 번째 공천 후보로 결정했다.
2019년 4월부터 6월에 걸쳐 자유민주당 본부는 가와이 안리가 지부장을 맡고 있는 "히로시마현 참의원 선거구 제7지부"에 75, 가와이 가쓰유키가 지부장을 맡고 있는 "히로시마현 제3선거구 지부"에 75, 총 150의 파격적인 선거 자금을 지급했다. 이에 반해 미조테에게 지급된 금액은 15이었다.
| 히로시마현 참의원 선거구 제7지부 (지부장: 가와이 안리) || style="background-color:#EAECF0; text-align:center;" | 히로시마현 제3선거구 지부 (지부장: 가와이 가쓰유키) | ||
|---|---|---|
| 4월 15일 | 15★ | |
| 5월 20일 | 30★ | |
| 6월 10일 | 30★ | 45★ |
| 6월 27일 | 30 | |
| 계 | 75 | 75 |
가와이 진영의 물량 공세에 밀려, 같은 해 7월 21일에 치러진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차점으로 낙선했다. 미조테는 낙선 직후, 지지자들에게 "두 명을 공천한 것은 역시 어리석은 이야기다. 앞으로 자유민주당으로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조테 겐세이 측에서 공시 전 달, 오쿠하라 신야 측에 500이 입금된 사실이 2020년 11월 11일에 밝혀졌다. 미조테의 비서에 따르면, 2019년 6월 3일에 미조테가 대표인 "자유민주당 히로시마현 참의원 선거구 제2지부"에서 오쿠하라의 후원회장이 대표인 "자유민주당 구레 제1지부"의 계좌로 500을 송금했지만, "선거 응원을 의뢰할 목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3. 정책 및 입장
미조테 겐세이는 내정, 외교 및 안보, 경제 및 재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 내정:
* 선택적 부부 별성 도입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 대규모 자연재해 발생 시 주택 재건 자금 지원은 현행 유지를 주장한다.
* 원자력 발전소는 필요하며, 총리 및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 외교 및 안보:
*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이전 찬성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 참조).
*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일본국 헌법 제9조 해석 재검토 필요.
* 경제 및 재정:
* 아베노믹스로 고용과 소득이 증가할 것이라고 보며, 2019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 10% 인상에 대해서는 법률에 따라 인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 기타:
* 2016년 부락 차별 해소를 추진하는 법률안(중의원 제출)에 찬성표를 던졌다.
3.1. 내정
* 선택적 부부 별성 도입에 대한 찬반에 대해서는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 대규모 자연재해 발생 시 주택 재건을 위해 1세대당 최대 3의 공적 자금이 지급되지만, 이 이상의 증액은 불필요하다.
* 원자력 발전소는 필요하다.
* 총리 및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문제없다.
3.2. 외교 및 안보
*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이전 찬성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 참조).
*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해 일본국 헌법 제9조 해석 재검토 필요.
4.1. 대신 규범 위반 의혹
제1차 아베 내각에서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방재)을 역임했던 2007년에, 미신고 상태로 사회복지법인 이사장을 맡아 보수를 받았고, 국무대신, 부대신 및 대신 정무관 규범 위반 혐의가 제기되었다. 이후 미조테는 받았던 보수를 2007년 7월 3일까지 사회복지법인에 반환했지만, 각료 사임이나 의원 사직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4.2. 아베 신조 비판
2007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오자와 이치로가 이끄는 민주당에 참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총리직을 유지하려 했던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해 "총리 본인의 책임이 있다. (계속되는 것을) 본인이 말하는 것은 제멋대로지만, 정해진 것은 없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2012년 2월 25일 요미우리 TV의 프로그램에서 조기 해산을 주장한 아베 전 총리에 대해, "이제 과거의 사람이다. 주도권을 잡으려고 발언한 것이겠지만, 집행부 내에 그런 이야기는 없다"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4.3. 간 나오토 비판
2007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오자와 이치로가 이끄는 민주당에 참패했음에도 아베 신조 총리가 직을 유지하려 하자, 당시 방재상이었던 미조테는 "(아베) 총리 본인의 책임이다. (계속되는 것을) 본인이 말하는 것은 제멋대로지만, 정해진 것은 없다"라며 통렬하게 비판했다.
2011년3월 11일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으로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당시, 간 나오토 총리(당시) 등 민주당 정권의 대응에 대해, 2012년2월 28일 기자회견에서 "후진국이었다면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다"라고 말하며 간 총리를 강하게 비판했다.
4.4. 미야자키 겐스케 관련 발언
미야자키 겐스케가 불륜 보도로 인해 의원직을 사임한 것에 대해 "부러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5. 소속 정당 및 단체
* 자민당 자민당 담배 의원 연맹
* 자유민주당 한반도 문제 소위원회 부위원장
* 해사 진흥 연맹 부회장
* 한일 의원 연맹
*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
* TPP 교섭에서의 국익을 지켜내는 회
6. 역대 선거 기록
| 선거명 | 집행일 | 나이 | 선거구 | 정당명 | 득표수 | 득표율 | 득표순 | 후보자 수 | 당락 |
|---|---|---|---|---|---|---|---|---|---|
| 1987년 미하라시장 선거 | 1987년 4월 26일 | 44세 | 미하라시 | 자유민주당 | 1위 | 당선 | |||
| 1991년 미하라시장 선거 | 1991년 4월 21일 | 48세 | 미하라시 | 자유민주당 | 1위 | 당선 | |||
| 제15회 참의원 의원 보궐 선거 | 1993년 12월 5일 | 51세 | 히로시마현 선거구 | 자유민주당 | 305,413표 | 57.82% | 1위 | 3명 | 당선 |
| 제17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 1995년 | 52세 | 히로시마현 선거구 | 자유민주당 | 310,801표 | 34.53% | 1위 | 5명 | 당선 |
| 제19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 2001년 | 58세 | 히로시마현 선거구 | 자유민주당 | 408,857표 | 31.91% | 2위 | 6명 | 당선 |
| 제21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 2007년 | 64세 | 히로시마현 선거구 | 자유민주당 | 389,881표 | 29.99% | 2위 | 6명 | 당선 |
| 제2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 2013년 | 70세 | 히로시마현 선거구 | 자유민주당 | 521,794표 | 46.28% | 1위 | 6명 | 당선 |
| 제25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 2019년 | 76세 | 히로시마현 선거구 | 자유민주당 | 270,183표 | 26.47% | 3위 | 7명 | 낙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