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1. 개요
제22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는 2010년 7월 11일에 실시되었으며, 2004년 선거로 당선된 의원들의 임기가 만료되어 치러졌다. 민주당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와 소비세 증세, 재정 재건,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선거 결과, 민주당은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소수 여당으로 전락했고, 자유민주당은 의석을 늘렸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국가 | 일본 |
|---|---|
| 선거 유형 | 의회 선거 |
| 이전 선거 | 2007년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 이전 선거 년도 | 2007 |
| 다음 선거 | 2013년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 다음 선거 년도 | 2013 |
| 선출 의석 | 참의원의 242석 중 121석 |
| 과반수 의석 | 122 |
| 선거 날짜 | 2010년 7월 11일 |
| 제1당 지도자 | 간 나오토 |
|---|---|
| 제1당 | 민주당 (일본, 1998년) |
| 제1당 이전 선거 의석 | 109석, 39.5% |
| 제1당 선거 후 의석 | 106 |
| 제1당 의석 변동 | 3 |
| 제1당 득표수 | 18,450,139 |
| 제1당 득표율 | 31.6% |
| 제1당 변동율 | 7.9pp |
| 제2당 지도자 | 다니가키 사다카즈 |
| 제2당 | 자유민주당 (일본) |
| 제2당 이전 선거 의석 | 83석, 28.1% |
| 제2당 선거 후 의석 | 84 |
| 제2당 의석 변동 | 1 |
| 제2당 득표수 | 14,071,671 |
| 제2당 득표율 | 24.1% |
| 제2당 변동율 | 4.0pp |
| 제3당 지도자 | 야마구치 나쓰오 |
| 제3당 | 공명당 |
| 제3당 이전 선거 의석 | 20석, 13.2% |
| 제3당 선거 후 의석 | 19 |
| 제3당 의석 변동 | 1 |
| 제3당 득표수 | 7,639,433 |
| 제3당 득표율 | 13.1% |
| 제3당 변동율 | 0.1pp |
| 제4당 지도자 | 와타나베 요시미 |
| 제4당 | 모두의 당 |
| 제4당 이전 선거 의석 | – |
| 제4당 선거 후 의석 | 11 |
| 제4당 의석 변동 | 신설 |
| 제4당 득표수 | 7,943,649 |
| 제4당 득표율 | 13.6% |
| 제4당 변동율 | 신설 |
| 제5당 지도자 | 시이 가즈오 |
| 제5당 | 일본공산당 |
| 제5당 이전 선거 의석 | 7석, 7.5% |
| 제5당 선거 후 의석 | 6 |
| 제5당 의석 변동 | 1 |
| 제5당 득표수 | 3,563,556 |
| 제5당 득표율 | 6.1% |
| 제5당 변동율 | 1.4pp |
| 제6당 지도자 | 후쿠시마 미즈호 |
| 제6당 | 사회민주당 (일본) |
| 제6당 이전 선거 의석 | 5석, 4.5% |
| 제6당 선거 후 의석 | 4 |
| 제6당 의석 변동 | 1 |
| 제6당 득표수 | 2,242,735 |
| 제6당 득표율 | 3.8% |
| 제6당 변동율 | 0.7pp |
| 제7당 지도자 | 히라누마 다케오 |
| 제7당 | 일어서라 일본 |
| 제7당 이전 선거 의석 | – |
| 제7당 선거 후 의석 | 3 |
| 제7당 의석 변동 | 신설 |
| 제7당 득표수 | 1,232,207 |
| 제7당 득표율 | 2.1% |
| 제7당 변동율 | 신설 |
| 제8당 지도자 | 가메이 시즈카 |
| 제8당 | 국민신당 |
| 제8당 이전 선거 의석 | 4석, 2.2% |
| 제8당 선거 후 의석 | 3 |
| 제8당 의석 변동 | 3 |
| 제8당 득표수 | 1,000,036 |
| 제8당 득표율 | 1.7% |
| 제8당 변동율 | 0.5pp |
| 제9당 지도자 | 마스조에 요이치 |
| 제9당 | 신당개혁 |
| 제9당 이전 선거 의석 | – |
| 제9당 선거 후 의석 | 2 |
| 제9당 의석 변동 | 신설 |
| 제9당 득표수 | 1,172,395 |
| 제9당 득표율 | 2.0% |
| 제9당 변동율 | 신설 |
| 선거 전 의장 | 에다 사쓰키 |
|---|---|
| 선거 전 의장 소속 정당 | 민주당 (일본, 1998년) |
| 선거 후 의장 | 니시오카 다케오 |
| 선거 후 의장 소속 정당 | 민주당 (일본, 1998년)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2010년 7월 -
2010년 FIFA 월드컵
2010년 FIFA 월드컵은 아프리카 대륙 최초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개최되어 스페인이 우승했으나, 부패 의혹과 개최국의 조별 리그 탈락, 자불라니와 부부젤라 소리 등 여러 화제를 낳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이미지 제고와 사회적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대회이다. -
2010년 7월 -
2010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
2010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는 7월과 10월에 걸쳐 국회의원,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을 선출했으며, 한나라당과 민주당,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다. -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제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제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는 1953년 4월 24일 치러졌으며, 자유당이 46석을 얻어 제1당을 유지했으나 과반수에는 미치지 못했고, 투표율은 63.18%를 기록했다. -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제8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1968년에 실시된 제8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는 참의원 의석의 절반을 선출하는 선거로, 지역구와 전국구에서 자유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획득했으나 야당도 상당수 의석을 확보했다.
2. 선거 배경
2008년 6월 11일, 야당이 장악한 참의원은 후쿠다 야스오 당시 총리에 대해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일본국 헌법 하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었지만, G8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던 후쿠다 총리에게 큰 압박으로 작용했다. 결국 후쿠다 총리는 사임했고, 후임 총재 선거에서 아소 다로가 승리했다.
2009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며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일본사회당, 국민신당과 연립하여 두 번째 비자민당 정부를 구성하였다. 아소 다로는 자민당 총재직에서 사퇴했고, 다니가키 사다카즈가 후임 총재가 되었다.
2010년 참의원 선거는 이러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 치러지게 되었다. 자민당에서는 마스조에 요이치, 요사노 가오루 등 유력 정치인들이 탈당하여 신당을 창당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한편, 민주당 역시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와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의 자금 스캔들로 인해 지지율이 하락한 상황이었다. 간 나오토가 하토야마 유키오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되었고, 소비세 인상을 제안하면서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2010년 6월 16일, 제174회 국회(임시국회)가 폐회됨에 따라 같은 날 열린 임시 각의에서 6월 24일 선거 공시, 7월 11일 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되었다. 이번 선거는 2004년 제20회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의 임기 만료에 따라 치러지는 선거였다. 민주당에게는 정권 교체 이후 첫 대형 국정 선거였으며, 자민당에게는 야당으로서 처음 치르는 대형 국정 선거였다. 또한,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유권자들이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선거이기도 했다.
2.1. 정권 교체와 하토야마 내각 출범
2009년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자유민주당(LDP) 창당 이후 처음으로 하원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는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기간 동안 두 번째 비자민당 정부를 이끌게 되었다(상원 동맹인 일본사회당과 국민신당과 함께). 선거 이후 아소 다로는 자유민주당 총재직에서 사퇴했다. 다니가키 사다카즈가 2009년 9월 28일 자유민주당 총재로 선출되었다.
전년(2009년, 헤이세이 21년) 8월 30일에 시행된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역사적인 대승을 거두면서 정권 교체가 실현되었다. 같은 해 9월 16일에는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발족했다.
하토야마 내각은 초기에 70%를 넘는 높은 내각 지지율을 얻으며 출범하여, 발족 직후부터 국제연합(UN)에서의 일반 연설에서 온실가스 등 이산화탄소(CO₂) 감축 목표 상향(1990년, 헤이세이 2년 대비 25% 감축 목표), 자위대 인도양 파병 철수, 공공사업 재검토(소위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 등의 정책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11월에는 행정 낭비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 사업 선별이 실시되었고, 이 역시 여론으로부터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민주당 매니페스토 실행을 위한 아동 수당법이나 고교 무상화법 등의 새로운 세출과 불황에 의한 세수 감소로 인해, 헤이세이 22년도 예산에서는 과거 최대인 44조 엔의 국채를 발행하게 되었다.
한편,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의 정치 자금 수지 보고서 허위 기재 문제가 다시 불거졌고,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자신에게도 하토야마 야스코 어머니로부터의 다액의 생전 증여에 대해 상속세를 납부하지 않았던 사실이 발각되었다. 자민당 정권 시대부터 이어지는 "정치와 돈"을 둘러싼 불신에 더해, 하토야마보다 오자와에게 실질적인 권력이 집중되는 "이중 권력 구조"와 선거 지원과 교환으로 예산 배분을 하는 오자와의 정치 수법 등이 당 안팎에서 문제시되면서 비판이 점차 강해지고 내각 지지율도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예산이 연도 내에 성립된 것도 있어 이 단계에서는 정권 운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이와 동시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 미군의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였다. 이전지를 "최소한 오키나와현 외가 기대된다"고 하며 총선거를 치른 하토야마는 현지 및 미국이 합의했던 오키나와현 나고시 베노코 연안부(캠프 슈와브)로 이전하는 현행 안을 일단 백지로 돌리고, 오키나와현 외, 일본 국외 이전의 길을 찾고 있었다. 후텐마 문제는 정권 교체 초기에는 반드시 중요시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문제가 하토야마 정권을 몰아넣게 된다.
2.2.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와 내각 지지율 하락
2009년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역사적인 대승을 거두면서 정권 교체가 실현되었다. 같은 해 9월 16일,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발족했다.
하토야마 내각은 초기에는 70%를 넘는 지지율을 얻으며 출범하여, 국제연합에서의 연설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 자위대 인도양 파병 철수, 공공사업 재검토 등의 정책 전환을 추진했다. 그러나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의 정치 자금 문제, 하토야마 총리 자신의 상속세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정치와 돈"을 둘러싼 불신이 커졌다. 또한 오자와에게 실질적인 권력이 집중되는 "이중 권력 구조"와 그의 정치 수법에 대한 비판이 강해지면서 내각 지지율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와 동시에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전지를 "최소한 오키나와현 외"로 하겠다고 공약했지만, 결국 오키나와현 나고시 辺野古 연안부(캠프 슈와브)로 이전하는 현행 안으로 되돌아갔다. 이는 중대한 약속 위반으로 비판받았고, 내각 지지율은 20%를 밑돌게 되었다.
--
사회민주당은 연립을 해소하고 야당으로 돌아갔다. 미야자키현에서 발생한 구제역 유행에 대한 정부의 초기 대응 지연도 비판을 받았다. 6월 2일, 하토야마는 민주당 대표 및 내각총리대신 직 사퇴를 표명했고, 오자와도 함께 사퇴했다.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간 나오토가 승리하여 내각총리대신 지명 선거를 통해 제94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되었고, 6월 8일 간 내각을 조각했다. 국민신당 대표 카메이 시즈카는 우정개혁 법안 성립 연기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나, 정권은 이탈하지 않았다.
간 내각 출범 초기 지지율은 60%대로, 하토야마 내각의 지지율에서 V자 반등을 이루었다. 그러나 간 총리가 소비세 증세를 언급하면서 지지율이 급락했고, 선거 직전에는 40%대로 떨어졌다.
2.3. 간 나오토 내각 출범과 소비세 증세 논란
2009년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자유민주당(자민당)은 창당 이후 처음으로 하원에서 과반수를 잃었다. 이후 일본사회당, 국민신당과 연립하여 두 번째 비자민당 정부를 구성하였다. 선거 이후 아소 다로 총재는 사퇴하고 다니가키 사다카즈가 2009년 9월 28일 자유민주당 총재로 선출되었다.
2010년 참의원 선거는 자민당의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마스조에 요이치, 요사노 가오루 등 자민당 내 인기 의원들이 선거 전에 탈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와 오자와 이치로 사무총장을 둘러싼 자금 스캔들로 인해 민주당의 인기는 타격을 입었고, 두 사람은 2010년 6월 2일에 사퇴했다. 간 나오토가 하토야마의 사임 후 총리가 되었고, 일본의 공공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소비세 인상을 제안했다.
2010년에 접어들면서 후텐마 문제가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고, 이전지에 대해 여러 차례 변경 끝에 하토야마 정권은 안보상의 제약으로 현(縣)외 이전을 단념했다. 결국 현행안인 캠프 슈와브(キャンプ・シュワブ) 연안 부근으로 거의 되돌아가는 형태로 다시 미일 합의를 맺었고, 하토야마는 공동성명 발표 자리에서 사과했지만, 이 중대한 약속 위반은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내각 지지율이 20%를 밑도는 등, 정권 출범 후 가장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되었다.
--
민주당·국민신당·사회민주당 연립정권에서 이전지를 현행안으로 되돌리는 각의에서 서명을 거부한 후쿠시마 미즈호 사민당 당수가 소비자·저출산 담당 대신에서 파면당하자, 사민당은 8개월 만에 연립을 해소하고 야당으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여당이 과반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의석수가 3당(민사국련립정권) 54석 이상에서 2당(민국련립정권) 56석 이상으로 늘어나 유지가 어려워졌다. 더욱 압박을 가한 것은 미야자키현에서 발생한 구제역 유행에 대한 정부의 초기 대응 지연과 미야자키현에 대한 책임 전가였다.
6월 2일 하토야마는 민주당 양원의원총회에서 민주당 대표 및 내각총리대신 직을 사퇴하겠다고 의사를 표명했고, 오자와도 함께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4일에 민주당 대표 선거가 실시되어 간 나오토가 승리했다. 같은 날 국회에서 내각총리대신 지명 선거에 의해 제94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되어, 6월 8일 간 내각을 조각하고, 천황의 인증식을 거쳐 정식으로 취임했다. 국민신당 대표·카메이 시즈카우정개혁·금융 담당 장관은 이번 국회에서 우정개혁 법안의 성립이 폐기, 연기된 책임을 지고 조각 직후 사임했다. 그러나 정권은 이탈하지 않았다. 후임에는 동당의 지미 쇼자부로 간사장이 취임했다.
간 내각 출범 초기 지지율은 대체로 60%대로, 말기에는 20% 전후까지 떨어졌던 하토야마 내각의 지지율에서 V자 반등을 이루었고, 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 채 선거에 돌입하기 위해, 민주당은 야당과의 당수 토론도 예산위원회도 하지 않고 국회를 폐회했다. 이대로 민주당이 완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간 총리가 소비세 증세에 언급하고, 또 그 발언이 여러 차례 바뀐 것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했고, 선거 직전에는 40%대로 떨어졌다.
참의원 선거 임기 만료 직전에 총리가 교체되었기 때문에 선거관리내각의 성격을 보였지만, 내각 출범 34일 만에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투표일에 들어간 것은 역대 최단 기록이다.
2.4. 자민당 분열과 신당 난립
2009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참패하여 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에서는 현직 국회의원 14명과 전직 국회의원 11명 등 총 25명이 탈당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번 참의원 선거를 겨냥하여 신당을 창당했다.
* 일본을 일으켜 세우자는 "우정민영화"에 반대하여 자민당을 탈당한 헤이누마 타케오가 대표가 되었고, 여기에 전 재무대신 요사노 가오루 등이 자민당을 탈당하여 합류, 5명의 국회의원을 확보하여 법률상의 정당 요건을 충족했다.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가 별도 발기인·응원단장으로 참여했다. 10석 이상 확보를 목표로 했다.
* 신당 개혁은 자민당 집행부 비판을 되풀이해 온 마스조에 요이치와 일부 의원이 자민당을 탈당, 중의원 선거 후 자민당과 연립 교섭단체를 구성했던 개혁 클럽에 합류하여 명칭 변경 형태로 발족했다. 자민당과의 연립 교섭단체를 해소하고 마스조에가 대표가 되었다. 이에 반발한 나카무라 키시로와 오에 야스히로가 개혁 클럽을 탈당했다. 비례대표에서 10석 확보를 목표로 했다.
이들 정당 외에도 국민신당, 모두의 당도 존재했고, 2010년 4월에 지방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일본 혁신당이 창당되는 등, 보수 세력에서 많은 정당이 난립했다.
일련의 탈당 움직임에 대해 자민당 집행부, 특히 당 간사장 오시마 리소가 강하게 비판했다. 탈당한 현직 및 전직 국회의원 중, 당기위원회 심사를 거쳐 6명(마쓰다 이와오, 시미즈 코이치로, 요사노 가오루, 마스조에 요이치, 나카야마 시게아키, 미즈노 켄이치)에 대해 제명 처분이 내려졌다. 특히 요사노와 마스조에의 제명이 주목받았지만, 당기위원회에서는 정당득표로 당선된 비례대표 의원이라는 점과 신당 창당 주모자로서 다른 자민당 국회의원에게 신당 창당을 위해 자민당 탈당을 종용한 것을 반당 행위로 간주했다.
3. 선거 데이터
이번 선거는 2004년 7월 11일에 실시된 제20회 참의원의원 통상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의 임기 만료로 인해 실시되었다. 민주당은 정권 교체 이후 처음으로 여당으로서, 자민당은 야당으로서 첫 대형 국정 선거를 치렀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57.92%로 집계되었다.
3.1. 개선 의석 수
2004년 7월 11일 실시한 제20회 참의원의원 통상선거로 당선되었던 의원들의 의석이 개선 대상이었다. 참의원의 임기는 6년이지만, 3년마다 참의원 전체 의석 242석 중 절반을 선출한다.
2010년 6월 24일 공직선거법 개정에 따라, 지난 선거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 2개 지역구 증원, 2개 지역구 감원이 시행되었다.
* 증원 지역구: 도쿄도 선거구(1개 증원), 지바현 선거구(1개 증원)
* 감원 지역구: 도치기현 선거구(1개 감원), 군마현 선거구(1개 감원)
이번 선거의 개선 의석 수는 다음과 같다.
* 총 121석 (변동 없음)
* 지역구: 73석 (변동 없음)
* 비례대표: 48석 (변동 없음)
| 정당 | 비례대표 | 선거구 | 선출 의석 | 선거 비대상 | 최종 의석 | 증감 | |||||
|---|---|---|---|---|---|---|---|---|---|---|---|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 | ||||||
| 18,450,139 | 31.56% | 16 | 22,756,000 | 38.97% | 28 | 44 | 62 | 106 | -10 | ||
| 1,000,036 | 1.71% | 0 | 167,555 | 0.29% | 0 | 0 | 3 | 3 | -3 | ||
| 여당 소계 | 19,450,176 | 33.27% | 16 | 22,923,555 | 39.25% | 28 | 44 | 65 | 109 | -13 | |
| 14,071,671 | 24.07% | 12 | 19,496,083 | 33.38% | 39 | 51 | 33 | 84 | +13 | ||
| 7,639,433 | 13.07% | 6 | 2,265,818 | 3.88% | 3 | 9 | 10 | 19 | -2 | ||
| 7,943,649 | 13.59% | 7 | 5,977,391 | 10.24% | 3 | 10 | 1 | 11 | +10 | ||
| 3,563,557 | 6.10% | 3 | 4,256,400 | 7.29% | 0 | 3 | 3 | 6 | -1 | ||
| 2,242,735 | 3.84% | 2 | 602,684 | 1.03% | 0 | 2 | 2 | 4 | -1 | ||
| 1,232,207 | 2.11% | 1 | 328,475 | 0.56% | 0 | 1 | 2 | 3 | ±0 | ||
| 1,172,395 | 2.01% | 1 | 625,431 | 1.07% | 0 | 1 | 1 | 2 | -4 | ||
| 229,026 | 0.39% | 0 | 291,810 | 0.50% | 0 | 0 | 1 | 1 | ±0 | ||
| - | - | - | - | - | - | - | 1 | 1 | ±0 | ||
| 군소정당 | 908,583 | 1.55% | 0 | 318,847 | 0.55% | 0 | 0 | 0 | 0 | ±0 | |
| - | - | - | 1,314,313 | 2.25% | 0 | 0 | 2 | 2 | -1 | ||
| 나머지 소계 | 39,003,257 | 66.73% | 32 | 35,477,253 | 60.75% | 45 | 77 | 56 | 133 | +14 | |
| 총계 | 58,453,432 | 100.00% | 48 | 58,400,808 | 100.00% | 73 | 121 | 121 | 242 | (결1) | |
| -- |
3.2. 투표 제도
2004년 7월 11일에 실시된 제20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치러진 선거이다. 참의원 의원 임기는 6년이지만, 3년마다 전체 의석 242석의 절반을 새로 선출한다.
이번 선거 투표율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57.92%였다.
공직선거법 개정에 따라 지난 선거에 이어 4개 지역구 증원, 4개 지역구 감원이 결정되었고, 이번 선거에서는 2개 지역구 증원, 2개 지역구 감원이 시행되었다.
* 증원 지역구: 도쿄도 선거구 (1석 증가), 지바현 선거구 (1석 증가)
* 감원 지역구: 도치기현 선거구 (1석 감소), 군마현 선거구 (1석 감소)
이번 선거의 개선 의석은 총 121석으로 변동이 없으며,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지역구: 73석 (변동 없음)
* 소선거구제: 29개 선거구 (2개 증가) - 2인 선거구 (1인 선출)
* 중선거구제: 44개 선거구 (유지)
* 4인 선거구 (2인 선출): 12개 선거구
* 6인 선거구 (3인 선출): 5개 선거구 (사이타마현 선거구, 지바현 선거구, 가나가와현 선거구, 아이치현 선거구, 오사카부 선거구)
* 10인 선거구 (5인 선출): 1개 선거구 (도쿄도 선거구)
* 비례대표: 48석 (유지) - 자유투표식 비례대표제
| -- |
3.3. 유권자 수
총 14,029,135명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남성은 7,026,918명, 여성은 6,902,217명이었다.
4. 주요 쟁점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통해 민주당 정권이 출범한 지 8개월 만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하토야마 내각과 간 내각에 대한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띠었다. 주요 쟁점으로는 소비세 증세 문제, 재정 재건 및 경제 성장 전략,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2010년 일본 구제역 유행에 대한 정부의 대응, 아동 수당, 사업 선별 등이 있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간사장의 정치자금 문제도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4.1. 정책
2009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두며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은 출범 초기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 자위대 인도양 파병 철수, 공공사업 재검토 등 여러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공약 실행을 위한 예산 확보 과정에서 대규모 국채 발행이 불가피해졌고,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의 정치 자금 문제, 하토야마 총리의 상속세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내각 지지율이 하락했다.
미군의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또한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하토야마 총리는 오키나와현 외 이전을 모색했으나, 이는 결국 정권 붕괴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종전의 선거 공약 대신 '매니페스토'를 제시하는 흐름이 있었으나, 민주당이 제시한 매니페스토의 상당수가 지켜지지 않으면서 '매니페스토'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각 정당은 '매니페스토' 대신 다른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각 정당의 주요 정책은 다음과 같다:
주요 쟁점으로는 민주당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 소비세 증세 문제, 재정 재건 및 경제 성장 전략,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2010년 일본 구제역 유행에 대한 정부 대응, 아동 수당, 사업 선별 등이 있었다.
4.2. 정국
2008년 6월 11일, 야당이 장악한 참의원은 후쿠다 야스오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일본 헌법 하에서 총리에 대한 최초의 불신임안이었다. G8 정상회의를 앞두고, 인기 없는 의료 계획을 포함한 국내 문제 처리에 대한 비판과 조기 총선 또는 사퇴를 요구했다. 후쿠다 총리는 이후 사퇴했고, 아소 다로가 후임 총재 선거에서 승리했다.
2009년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며 자유민주당(자민당) 창당 이후 처음으로 하원에서 과반수를 차지했다. 사회민주당, 국민신당과 연립하여 두 번째 비자민당 정부를 이끌었다. 선거 이후 아소는 자민당 총재직에서 사퇴했고, 다니가키 사다카즈가 2009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승리했다.
2010년 참의원 선거는 자민당의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마스조에 요이치, 요사노 가오루 등 자민당의 인기 의원들이 선거 전에 탈당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와 오자와 이치로 사무총장을 둘러싼 자금 스캔들로 민주당의 인기는 타격을 입었고, 두 사람 모두 2010년 6월 2일에 사퇴했다. 간 나오토가 하토야마의 사임 후 총리가 되었고, 소비세 인상을 제안했다. 3주에 불과한 선거운동 기간은 정책 논쟁을 어렵게 했다.
2009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의 역사적인 대승으로 정권 교체가 실현되었다. 같은 해 9월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출범했다. 하토야마 내각은 초기 7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얻었으며,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 자위대 인도양 파병 철수, 공공사업 재검토 등 적극적인 정책 전환을 추진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공약 실행을 위한 세출 증가와 불황으로 인한 세수 감소로, 2010년도 예산에서는 과거 최대인 44조 엔의 국채를 발행해야 했다.
한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의 정치 자금 문제와 하토야마 총리 자신의 상속세 미납 문제가 불거졌다. "정치와 돈" 문제에 대한 불신과 오자와의 "이중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내각 지지율은 하락했다.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도 심각해졌다. 하토야마는 오키나와현 외 이전을 약속했지만, 결국 현행안으로 돌아가면서 비판을 받았다. 사회민주당은 연립에서 이탈했고, 구제역 유행에 대한 정부의 대응 지연은 민심 이반을 가속화했다. 2010년 6월 2일, 하토야마는 민주당 대표 및 총리직 사퇴를 표명했고, 오자와도 함께 사퇴했다.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간 나오토가 승리하여 내각총리대신 지명 선거를 통해 제94대 총리로 지명되었다. 6월 8일 간 나오토 내각이 출범했다. 국민신당 대표 카메이 시즈카는 우정개혁 법안 성립 연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지만, 정권은 유지되었다.
간 내각 초기 지지율은 60%대로 높았지만, 간 총리의 소비세 증세 언급과 발언 번복으로 지지율이 급락했다. 참의원 선거는 선거관리내각의 성격을 보였으며, 내각 출범 34일 만에 치러진 것은 역대 최단 기록이다.
2009년 총선에서 참패하여 야당이 된 자민당에서는 현직 의원 14명, 전직 의원 11명 등 총 25명이 탈당했다. 이들 중 일부는 신당을 창당했다.
* 일본을 일으켜 세우자: 헤이누마 타케오 대표, 요사노 가오루 등 참여. 10석 이상 확보 목표.
* 신당 개혁: 마스조에 요이치 대표. 비례대표 10석 확보 목표.
이 외에도 국민신당, 민나노당, 일본 혁신당 등 보수 정당들이 난립했다. 자민당은 탈당 의원들을 제명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각 정당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 민주당 (간 나오토 대표): 2004년 참의원 선거 획득 의석(50석) 또는 현유 의석(54석) 유지.
* 국민신당 (카메이 시즈카 대표): 외국인 참정권 반대,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반대, 우정 개혁 등 보수층 공략.
* 자민당 (다니가키 사다카즈 총재): 민주당 단독 과반 저지, 여당 과반 미만. 다니가키 총재는 패배 시 사임 의사 표명.
* 공명당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 모든 후보 당선 등 지난번과 같은 의석 수 목표.
* 일본 공산당 (시이 가즈오 위원장): 비례대표 5석 확보, 2001년 참의원 선거 이후 첫 선거구 당선 목표.
* 사회민주당 (후쿠시마 미즈호 당수): 비례대표 3명 이상, 선거구 3명 이상 당선 목표.
* 민나노당 (와타나베 요시미 대표): 10석 이상 확보, 정계 재편 추진.
신당일본, 신당 다이치는 비례대표 출마를 준비했으나, 신당일본은 다나카 야스오 대표가 제3극 육성을 이유로 이번 선거 전 민주당과의 통일교섭단체를 해소하고 국민신당과 통일교섭단체를 구성했다. 일본창신당은 5석 이상 획득을 목표로 했다. 행복실현당은 재도전을 목표로 했지만, 당수 교체 등 유동적인 상황이었다. 오에 야스히로가 입당하여 국회 의석을 확보했다.
신당본질, 아키츠신당, 평화당핵무기폐절평화운동은 처음으로 참의원 선거에 참가했다. 여성당, 세계경제공동체당, 신당프리웨이크럽, 스마일당은 지난번에 이어 후보를 냈다. 이신정당·신풍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오키나와사회대중당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이유로 독자 후보를 내지 않고, 사민당 계열 후보를 냈다.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았다.
* 민주당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 및 총괄
* 소비세 증세 문제
* 재정 재건, 경제 성장 전략
*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 2010년 일본 구제역 유행에 대한 정부 대응
* 아동 수당
* 사업 선별
* 하토야마 유키오, 오자와 이치로의 정치자금 문제
5. 선거 결과
제22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결과, 여당인 민주당은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여 참패하였고, 야당인 자민당은 2007년 선거에 비해 의석을 늘리며 선전하였다. 당신의 당은 약진하였으나, 민주당의 연립 여당인 국민신당은 부진하였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57.92%로 집계되었다.
| 정당 | 비례대표 | 선거구 | 합계 의석 | ||||
|---|---|---|---|---|---|---|---|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 | ||
| 민주당 | 18,450,139 | 31.56% | 16 | 22,756,000 | 38.97% | 28 | 44 |
| 자민당 | 14,071,671 | 24.07% | 12 | 19,496,083 | 33.38% | 39 | 51 |
| 당신의 당 | 7,943,649 | 13.59% | 7 | 5,977,391 | 10.24% | 3 | 10 |
| 공명당 | 7,639,433 | 13.07% | 6 | 2,265,818 | 3.88% | 3 | 9 |
| 공산당 | 3,563,557 | 6.10% | 3 | 4,256,400 | 7.29% | 0 | 3 |
| 사회민주당 | 2,242,735 | 3.84% | 2 | 602,684 | 1.03% | 0 | 2 |
| 일어나라 일본 | 1,232,207 | 2.11% | 1 | 328,475 | 0.56% | 0 | 1 |
| 신당개혁 | 1,172,395 | 2.01% | 1 | 625,431 | 1.07% | 0 | 1 |
| 국민신당 | 1,000,036 | 1.71% | 0 | 167,555 | 0.29% | 0 | 0 |
| 행복실현당 | 229,026 | 0.39% | 0 | 291,810 | 0.50% | 0 | 0 |
|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 - | - | - | - | - | - | 1 |
| 군소정당 | 908,583 | 1.55% | 0 | 318,847 | 0.55% | 0 | 0 |
| 무소속 | - | - | - | 1,314,313 | 2.25% | 0 | 0 |
※선거구 민주당의 득표수·후보자 수에는 가가와현·오키나와현의 여당계 무소속 후보를 포함한다.
5.1. 개요
2004년 7월 11일에 실시된 제20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의 임기가 만료되어 실시되었다. 참의원 의원은 6년 임기지만, 3년마다 전체 의석(242석)의 절반을 새로 선출한다. 민주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자민당은 야당으로서 처음 치르는 대형 국정선거였다.
투표율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57.92%였다.
선거 결과, 제21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와 마찬가지로 참의원에서 여야가 역전되어, 민주당과 국민신당은 소수 여당이 되었다. 이로 인해 중의원(衆議院)에서 여당이 법안을 재가결할 수 없는, 이른바 '뒤틀린 국회'(네지레 국회, ねじれ国会) 상황이 발생했다.
5.2. 정당별 득표율 및 의석 수
| 정당 | 비례대표 | 선거구 | 선출 의석 | 선거 비대상 | 최종 의석 | 증감 | |||||
|---|---|---|---|---|---|---|---|---|---|---|---|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 | ||||||
| 18,450,139 | 31.56% | 16 | 22,756,000 | 38.97% | 28 | 44 | 62 | 106 | -10 | ||
| 1,000,036 | 1.71% | 0 | 167,555 | 0.29% | 0 | 0 | 3 | 3 | -3 | ||
| 여당 소계 | 19,450,176 | 33.27% | 16 | 22,923,555 | 39.25% | 28 | 44 | 65 | 109 | -13 | |
| 14,071,671 | 24.07% | 12 | 19,496,083 | 33.38% | 39 | 51 | 33 | 84 | +13 | ||
| 7,639,433 | 13.07% | 6 | 2,265,818 | 3.88% | 3 | 9 | 10 | 19 | -2 | ||
| 7,943,649 | 13.59% | 7 | 5,977,391 | 10.24% | 3 | 10 | 1 | 11 | +10 | ||
| 3,563,557 | 6.10% | 3 | 4,256,400 | 7.29% | 0 | 3 | 3 | 6 | -1 | ||
| 2,242,735 | 3.84% | 2 | 602,684 | 1.03% | 0 | 2 | 2 | 4 | -1 | ||
| 1,232,207 | 2.11% | 1 | 328,475 | 0.56% | 0 | 1 | 2 | 3 | ±0 | ||
| 1,172,395 | 2.01% | 1 | 625,431 | 1.07% | 0 | 1 | 1 | 2 | -4 | ||
| 229,026 | 0.39% | 0 | 291,810 | 0.50% | 0 | 0 | 1 | 1 | ±0 | ||
| - | - | - | - | - | - | - | 1 | 1 | ±0 | ||
| 군소정당 | 908,583 | 1.55% | 0 | 318,847 | 0.55% | 0 | 0 | 0 | 0 | ±0 | |
| - | - | - | 1,314,313 | 2.25% | 0 | 0 | 2 | 2 | -1 | ||
| 나머지 소계 | 39,003,257 | 66.73% | 32 | 35,477,253 | 60.75% | 45 | 77 | 56 | 133 | +14 | |
| 총계 | 58,453,432 | 100.00% | 48 | 58,400,808 | 100.00% | 73 | 121 | 121 | 242 | (결1) | |
2010년 7월 11일에 실시된 제22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결과, 집권 민주당은 많은 의석을 잃었고, 야당인 자민당은 2007년 선거에 비해 의석을 늘렸다. 당신의 당은 이번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반면, 민주당의 소수 연립 정당인 신국민당은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57.92%로 집계되었다.
| 정당 | 비례대표 | 선거구 | 합계 의석 | ||||
|---|---|---|---|---|---|---|---|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 | ||
| 민주당 | 18,450,139 | 31.56% | 16 | 22,756,000 | 38.97% | 28 | 44 |
| 자민당 | 14,071,671 | 24.07% | 12 | 19,496,083 | 33.38% | 39 | 51 |
※선거구 민주당의 득표수·후보자 수에는 가가와·오키나와의 여당계 무소속 후보를 포함한다.
5.3. 투표율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57.92%로 집계되었다.
5.4. 분석
ねじれ国会일본어는 '뒤틀린 국회'라는 의미로, 제22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결과 참의원에서 여당과 야당의 의석 분포가 역전된 상황을 말한다. 2004년 7월 11일에 실시된 제20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참의원 전체 의석 242석 중 절반인 121석을 새로 선출했다.
민주당은 정권 교체 후 처음으로 여당으로서, 자민당은 야당으로서 치르는 첫 대형 국정 선거였다. 투표율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57.92%였다.
선거 결과, 집권 민주당은 많은 의석을 잃었고, 야당인 자민당은 2007년 선거에 비해 의석을 늘렸다. 당신의 당(Your Party)은 좋은 성적을 거둔 반면, 민주당의 소수 연립 정당인 국민신당은 부진한 결과를 보였다.
이로 인해 민주당과 국민신당은 참의원에서 소수 여당이 되었고, 중의원에서 여당이 법안을 재가결할 수 없는 '뒤틀린 국회' 상황이 발생했다.
정당별 분석
| 정당 | 결과 |
|---|---|
| 민주당 | 현직 각료 등 주요 의원들이 낙선하고, 특히 승패를 좌우하는 1인 선거구에서 8승 21패로 부진했다.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의 방침에 따라 여러 선거구에서 두 명의 후보를 공천했으나, 도쿄도 선거구와 아이치현 선거구를 제외하고는 1명만 당선되었다. 득표수와 득표율, 선거 후 의석 수는 여전히 제1당이었다. |
| 국민신당 | 비례대표에서 하세가와 켄세이가 40만 표 이상을 얻었지만,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
| 자민당 | 1인 선거구에서 21승 8패로 크게 이겼고, 복수 선거구에서도 대부분 승리하여 공시 전보다 13석 증가한 51석을 얻었다. 지난 중의원 선거 이후 계속된 당세 침체에 제동을 걸었다. 2001년 제19회 참의원 선거 이후 9년 만에 참의원 선거에서 개선 제1당이 되었고, 선거구에서 39석을 얻은 것도 제19회 참의원 선거에 육박하는 결과였다. 그러나 비례대표에서는 12석만 얻어, 창당 이래 최저 기록(14석)을 경신했다. |
| 기타 야당 | 국민의 당이 선거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10석을 얻어 제3당이 되었다. 신당 개혁은 4석 감소했고, 일어서라 일본은 현상 유지에 그쳤다. 공명당, 공산당, 사민당도 의석이 줄었다. 국민의 당은 선거구에서 부진했다. |
| 기타 정당·무소속 | 행복실현당은 모든 선거구와 비례대표에서 공탁금 반환 기준에 미달하여 전원 낙선했다. 일본 혁신당은 야마다 히로시와 나카타 히로시가 각각 20만 표와 12만 표 이상을 얻었지만 의석을 얻지 못했다. 그 외 기타 정당 및 무소속 당선자는 없었다. |
득표수 및 의석수 분석
선거구와 비례대표 득표수에서는 민주당이 자민당보다 많았지만, 의석 수에서는 자민당이 더 많았다. 이는 민주당이 2인 이상 선거구에서 2명의 후보를 공천한 반면, 자민당은 도쿄와 지바 2개 선거구에서만 2명의 후보를 공천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비판 여론은 1인 선거구에서 자민당 후보에게 집중되어 민주당이 참패했다. 3인 이상 선거구에서는 자민당, 공명당, 당신의 당(Your Party)에 표가 분산되어 민주당의 낙선이 늘었다. 2인 선거구에서는 민주당과 자민당이 의석을 나눠 갖는 현상이 나타났다.
| 정당 | 비례대표 | 선거구 | 합계 의석 | ||||
|---|---|---|---|---|---|---|---|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 | ||
| 민주당 | 18,450,139.059 | 31.56% | 16 | 22,756,000.342 | 38.97% | 28 | 44 |
| 자민당 | 14,071,671.422 | 24.07% | 12 | 19,496,083.000 | 33.38% | 39 | 51 |
| 정당 | 비례대표 | 선거구 | ||||
|---|---|---|---|---|---|---|
| 득표수 | 득표율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 | 후보자 수 | |
| 민주당 | 5,294,575.400 | 30.30% | 7,064,614.050 | 40.14% | 8 | 29 |
| 자민당 | 4,986,223.900 | 28.53% | 8,251,162.000 | 46.89% | 21 | 29 |
| 공명당 | 2,210,957.300 | 12.65% | - | - | - | - |
| 당신의 당(Your Party) | 2,084,197.500 | 11.93% | 681,994.910 | 3.88% | 0 | 6 |
| 자민·공명·당신의 당(Your Party) 3당 비례구 합계 득표수 | 9,281,378.700 | 53.11% | - | - | - | - |
※선거구 민주당의 득표수·후보자 수에는 가가와현·오키나와현의 여당계 무소속 후보를 포함한다.
| 정당 | 비례대표 | 선거구 | ||||
|---|---|---|---|---|---|---|
| 득표수 | 득표율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 | 후보자 수 | |
| 민주당 | 7,247,797.000 | 31.43% | 8,694,617.290 | 37.88% | 8 | 12 |
| 자민당 | 4,778,885.900 | 20.72% | 5,182,453.000 | 22.58% | 6 | 8 |
| 공명당 | 3,079,605.900 | 13.35% | 2,265,818.000 | 9.87% | 3 | 3 |
| 당신의 당(Your Party) | 3,577,772.500 | 15.51% | 3,256,255.580 | 14.19% | 3 | 6 |
| 자민·공명·당신의 당(Your Party) 3당 비례구 합계 득표수 | 11,436,264.300 | 49.58% | - | - | - | - |
6. 당선자
제22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의 당선자 일람은 다음과 같다.
| 선거구/비례대표 | 정당 | 이름 | 비고 |
|---|---|
| 선거구 | 민주당 | 도쿠나가 에리 (홋카이도) | |
| 오오노 모토히로 (사이타마) | |
| 코자이 요시유키 (지바) | |
| 코미야마 코우지 (기후) | |
| 민주당 | 사이토 요시타카 (아이치) | |
| 야스이 미사코 (아이치) | |
| 하세가와 가쿠 (홋카이도) | |
| 이시이 코로 (아키타) | |
| 쿠마가이 다이 (미야기) | |
| 우에노 미치코 (토치기) | |
| 이누구치 쿠니코 (지바) | |
| 나카하라 하치이치 (니이가타) | |
| 와카바야시 켄타 (나가노) | |
| 이와이 시게키 (시즈오카) | |
| 와타나베 타케유키 (기후) | |
| 후지카와 마사토 (아이치) | |
| 미야자와 요이치 (히로시마) | |
| 하마다 카즈유키 (돗토리) | |
| 아오키 카즈히코 (시마네) | |
| 나카니시 유우스케 (도쿠시마) | |
| 이소자키 요시히코 (가가와) | |
| 오오야마 사토시 (후쿠오카) | |
| 후쿠오카 스마루 (사가) | |
| 카네코 겐지로 (나가사키) | |
| 이시카와 히로타카 (오사카) | |
| 타케야 토시코 (도쿄) | |
| 나카니시 켄지 (가나가와) | |
| 미즈노 켄이치 (지바) | |
| 마츠다 코우타 (도쿄) | |
| 비례대표 | 민주당 | 아리타 요시오 | |
| 타니 료코 | |
| 이시바시 미치히로 | |
| 타시로 이쿠 | |
| 에자키 타카시 | |
| 난바 쇼지 | |
| 니시무라 마사미 | |
| 나오시마 마사유키 | |
| 고바야시 마사오 | |
| 야나가사와 미츠미 | |
| 츠다 야타로 | |
| 나타야야 마사요시 | |
| 후지스에 켄조 | |
| 카토 토시유키 | |
| 마에다 타케시 | |
| 백진훈 | |
| 카타야마 사츠키 | |
| 사토 유카리 | |
| 타카이 에미코 | |
| 미하라 준코 | |
| 코사카 켄지 | |
| 우토 타카시 | |
| 아카이시 키요미 | |
| 나카무라 히로히코 | |
| 와키 마사후미 | |
| 후지이 모토유키 | |
| 미즈오토 토시에이 | |
| 아키노 코우조 | |
| 나가사와 히로아키 | |
| 요코야마 신이치 | |
| 타니아이 마사아키 | |
| 아라키 키요히로 | |
| 하마다 마사요시 | |
| 타무라 토모코 | |
| 이치다 타다요시 | |
| 다이몬 미키후미 | |
| 요시다 타다토모 | |
| 후쿠시마 미즈호 | |
| 시바타 타쿠미 | |
| 에구치 카츠히코 | |
| 우에노 히로후미 | |
| 테라다 노리시로 | |
| 오노 지로 | |
| 코구마 신지 | |
| 사쿠라이 후미키 | |
| 아라이 히로유키 | |
| 카타야마 코레노스케 |
민진당 결성에 참여.
국민신당 해당 후, 활기차게 하는 모임 결성에 참여.
국민신당 해당 후, 무소속으로 원내 교파 「무소속 클럽」을 거쳐, 자민당 교파에 입회.
민주당 탈당 후, 국민의 생활이 우선 , 미래의 당 , 생활의 당 결성에 참여.
참의원 부의장 취임에 따라, 당적 이탈.
참의원 부의장, 참의원 의장 취임에 따라, 당적 이탈.
국민신당 탈당 후, 결의의 당, 이신의 당을 거쳐 무소속으로 민진당 의원 모임에 입회.
국민신당 탈당 후, 차세대의 당을 거쳐 이신의회에 입당.
국민신당 탈당 후, 이신의회 결성에 참여.
국민신당 탈당(제명) 후, 이신의회 결성에 참여.
6.1. 선거구
| 개선 정수 1 | |||||||||
|---|---|---|---|---|---|---|---|---|---|
| 아오모리현 | 야마자키 치카라 | ||||||||
| 이와테현 | 슈하마 루이 | ||||||||
| 아키타현 | 이시이 히로오 | ||||||||
| 야마가타현 | 키시 코이치 | ||||||||
| 토치기현 | 우에노 미치코 | ||||||||
| 군마현 | 나카소네 히로후미 | ||||||||
| 야마나시현 | 요시이시 아즈마 | ||||||||
| 토야마현 | 노가미 코타로 | ||||||||
| 이시카와현 | 오카다 나오키 | ||||||||
| 후쿠이현 | 야마자키 마사아키 | ||||||||
| 미에현 | 시바 히로이치 | ||||||||
| 시가현 | 하야시 쿠미코 | ||||||||
| 나라현 | 마에카와 키요나리 | ||||||||
| 와카야마현 | 츠루보 요스케 | ||||||||
| 돗토리현 | 하마다 카즈유키 | ||||||||
| 시마네현 | 아오키 카즈히코 | ||||||||
| 오카야마현 | 에다 잇세이 | ||||||||
| 야마구치현 | 키시 노부오 | ||||||||
| 도쿠시마현 | 나카니시 유우스케 | ||||||||
| 카가와현 | 이소자키 요시히코 | ||||||||
| 에히메현 | 야마모토 준조 | ||||||||
| 고치현 | 히로타 하지메 | ||||||||
| 사가현 | 후쿠오카 스케마로 | ||||||||
| 나가사키현 | 카네코 겐지로 | ||||||||
| 쿠마모토현 | 마츠무라 요시후미 | ||||||||
| 오이타현 | 아시다 신야 | ||||||||
| 미야자키현 | 마츠시타 신페이 | ||||||||
| 가고시마현 | 노무라 테츠로 | ||||||||
| 오키나와현 | 시마지리 야스이코 | ||||||||
6.2. 비례대표
| 1-8 | 아리타 요시오 | 카타야마 사츠키 | 타니 료코 | 시바타 타쿠미 | 아키노 코우조 | 사토 유카리 | 나오시마 마사유키 | 야마야 에리코 |
|---|---|---|---|---|---|---|---|---|
| 9-16 | 고바야시 마사오 | 에구치 카츠히코 | 나가사와 히로아키 | 야나가사와 미츠미 | 이치다 타다요시 | 타카이 에미코 | 이시바시 미치히로 | 미하라 준코 |
| 17-24 | 우에노 히로후미 | 난바 쇼지 | 요코야마 신이치 | 나카무라 히로히코 | 츠다 야타로 | 후쿠시마 미즈호 | 나타야야 마사요시 | 와키 마사후미 |
| 25-32 | 테라다 노리시로 | 타니아이 마사아키 | 에자키 타카시 | 타무라 토모코 | 후지이 모토유키 | 후지스에 켄조 | 오노 지로 | 코사카 켄지 |
| 33-40 | 카토 토시유키 | 하마다 마사요시 | 마에다 타케시 | 미즈오토 토시에이 | 코구마 신지 | 타시로 이쿠 | 우토 타카시 | 아라키 키요히로 |
| 41-48 | 카타야마 코레노스케 | 백진훈 | 다이몬 미키후미 | 아카이시 키요미 | 아라이 히로유키 | 니시무라 마사미 | 사쿠라이 푼죠 | 요시다 타다토모 |
7. 선거 이후
(출력 내용 없음)
7.1. 뒤틀린 국회와 정국 불안
선거 결과, 2007년 제2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와 마찬가지로 참의원에서 여야가 역전되어, 민주당과 국민신당은 소수 여당이 되었다. 이로 인해 중의원에서 여당이 법안을 재가결할 수 없는 완전한 네지레 국회(뒤틀린 국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