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
1. 개요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는 2006년 9월 26일 출범했으나, 각료 문제, 연금 기록 문제, 참의원 선거 패배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2007년 8월 27일 단행된 내각 개조에도 불구하고, 각료들의 비리, 테러 대책 특별 조치법 연장 난항 등의 문제로 아베 총리는 2007년 9월 12일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했다. 이로 인해 내각은 총사직되었고, 아베 신조는 1년의 짧은 총리 재임 기간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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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일본 -
라이브 어스
라이브 어스는 케빈 월과 앨 고어가 주도하여 2007년 7월 7일 7개 대륙에서 열린 대규모 콘서트를 통해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전 세계적인 행동 변화를 촉구한 프로젝트로, "S.O.S." 캠페인을 통해 개인의 소비 습관 변화와 기업 및 정치 지도자들의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했다. -
2007년 일본 -
후쿠다 야스오 내각
후쿠다 야스오 내각은 아베 신조 총리 사임 후 출범한 일본 내각으로, 정치 불신 해소와 정책 과제 해결을 목표로 했으나 여러 논란과 민주당과의 대연립 구상 실패 끝에 후쿠다 총리의 사임으로 막을 내린 일본 헌정 사상 최초의 부자 총리 내각이다. -
일본의 역대 내각 -
제2차 고이즈미 내각
제2차 고이즈미 내각은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이라크 자위대 파병 결정과 연금 개혁 추진,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 사임, 우정 민영화 법안 부결 등의 사건이 있었고, 자유민주당을 중심으로 구조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사회적 논란과 비판도 있었다. -
일본의 역대 내각 -
제3차 고이즈미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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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시대의 내각 -
제2차 고이즈미 내각
제2차 고이즈미 내각은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이라크 자위대 파병 결정과 연금 개혁 추진,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 사임, 우정 민영화 법안 부결 등의 사건이 있었고, 자유민주당을 중심으로 구조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사회적 논란과 비판도 있었다. -
헤이세이 시대의 내각 -
제3차 고이즈미 내각
2. 출범 배경
2006년 9월 26일에 출범한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은 출범 직후부터 각료의 문제, 연금 기록 문제, 정치자금 문제, 사회적 격차 등의 영향을 받아 지지율이 하락했다. 결국 제2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민주당에 제1당 자리를 내주며 크게 패했다. 이로 인해 내각의 진퇴가 주목받았지만 아베 신조 총리는 내각을 지속시킬 의향을 천명했다.
당초 개조는 9월 초순에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8월 27일로 앞당겨졌다. 아베 총리는 8월 하순 해외 순방 전에 “이미 새 내각의 구상은 거의 끝났다”고 밝힌 바 있다.
2006년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는 발족 직후부터 복수의 각료에 의한 부적절한 발언과 '정치와 돈' 문제, 엉성한 실태가 드러난 연금 기록 문제, 고이즈미 개혁의 폐해라고 불리는 격차 사회 심화 문제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아베의 대응이 매번 큰 주목을 받았다.
2007년 7월 29일 제2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자유민주당·공명당 연립 정권은 역사적인 참패를 겪었다. 특히 자민당은 당 창립 이후 유지해온 참의원 제1당 자리를 민주당에 빼앗겼다. 이에 따라 자공 연립 정권은 참의원에서 소수 여당으로서 '교착 국회'에 대응해야 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아베 총리의 거취가 주목받았지만, 아베는 선거 다음 날 기자 회견에서 "반성해야 할 것은 반성하고", 당 삼역·각료를 바꾸어 "인심 일신"하고, "개혁을 멈춰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또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나가야 한다"고 하여 퇴진을 부정했다.
3. 내각 개조 과정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은 출범 직후 각료들의 문제, 연금 기록 문제, 정치자금 문제, 사회적 격차 심화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2007년 7월 29일 제2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자민당은 민주당에 제1당 자리를 내주며 크게 패했다. 이에 아베 신조 총리는 내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으나, 당초 9월 초순으로 예정되었던 내각 개조는 모리 요시로 등의 압력으로 8월 27일로 앞당겨졌다. 아베 총리는 8월 하순 해외 순방 전에 이미 새 내각 구상을 거의 완료했다고 밝혔다.
내각 개조 과정에서 고이케 유리코 방위대신은 이지스함 정보 누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야노 테츠로 참의원 자민당 국대위원장은 입각이 유력했으나 불발되었고, 이에 대해 아베 총리에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스가 요시히데 총무대신은 사무실 비용 관련 의혹이 제기되어 재입각하지 못하고 자유민주당 선거대책총국장을 맡게 되었다. 나카가와 쇼이치는 당 삼역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나카야마 타로의 후임으로 자민당 헌법 심의회장에 취임했다.
아베 총리의 속행에 비판적이었던 타니가키파는 이번에도 당 삼역 진입 및 입각에서 배제되었다. 타니가키 사다카즈 회장은 아베 정권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는데, 이는 집권 자민당 내 파벌 간 갈등과 아베 총리의 파벌 정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4. 각료 명단
| 직책 | 성명 | 소속 | 특명 사항 등 | 비고 | |
|---|---|---|---|---|---|
| 내각총리대신 | |||||
| 아베 신조 | 중의원 자유민주당 (마치무라 파) | 자유민주당 총재 유임 | |||
| 총무대신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지방 분권 개혁 담당) | |||||
| 마스다 히로야 | 민간 | 우정 민영화 담당 도주제 담당 지방·도시 격차 시정 담당 | 첫 입각 전 이와테현 지사 | ||
| 법무대신 | |||||
| 하토야마 구니오 | 중의원 자유민주당 (쓰시마 파) | 재입각 | |||
| 외무대신 | |||||
| 마치무라 노부타카 | 중의원 자유민주당 (마치무라 파) | 재입각 | |||
| 재무대신 | |||||
| 누카가 후쿠시로 | 중의원 자유민주당 (쓰시마 파) | 재입각 | |||
| 문부과학대신 | |||||
| 이부키 분메이 | 중의원 자유민주당 (이부키 파) | 국립국회도서관 연락 조정 위원회 위원 | 유임 | ||
| 후생노동대신 | |||||
| 마스조에 요이치 | 참의원 자유민주당 (무파벌) | 첫 입각 | |||
| 농림수산대신 | |||||
| 엔도 다케히코 | 중의원 자유민주당 (야마자키 파) | 첫 입각 2007년 9월 3일 면 | |||
| 아마리 아키라 | 임시 대리 2007년 9월 3일 지정 2007년 9월 4일 면 경제산업대신 겸임 | ||||
| 와카바야시 마사토시 | 참의원 자유민주당 (마치무라 파) | 재입각 2007년 9월 4일 임명 | |||
| 경제산업대신 | |||||
| 아마리 아키라 | 중의원 자유민주당 (야마자키 파) | 유임 | |||
| 국토교통대신 | |||||
| 후유시바 테츠조 | 중의원 공명당 | 관광 입국 담당 해양 정책 담당 | 유임 | ||
| 환경대신 | |||||
| 카모시타 이치로 | 중의원 자유민주당 (쓰시마 파) | 지구 환경 문제 담당 | 첫 입각 | ||
| 방위대신 | 고무라 마사히코 | 중의원 자유민주당 (다카무라 파) | 재입각 | ||
| 내각관방장관 | |||||
| 요사노 가오루 | 중의원 자유민주당 (무파벌) | 납치 문제 담당 | 재입각 | ||
|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방재 담당) (식품 안전 담당) | |||||
| 이즈미 신야 | 참의원 자유민주당 (니카이 파) | 첫 입각 | |||
|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경제 재정 정책 담당) | |||||
| 오타 히로코 | 민간 | 유임 | |||
|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저출산 대책 담당) (남녀 공동 참가 담당) | |||||
| 가미카와 요코 | 중의원 자유민주당 (고가 파) | 첫 입각 | |||
|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규제 개혁 담당) (국민 생활 담당) (재도전 담당) (과학 기술 정책 담당) | |||||
| 기시다 후미오 | 첫 입각 | ||||
|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금융 담당) | |||||
| 와타나베 요시미 | 중의원 자유민주당 (무파벌) | 국·지방 행정 개혁 담당 공무원 제도 개혁 담당 | 유임 | ||
* 2007년 (헤이세이 19년) 8월 27일 임명.
* 조각 당시 평균 연령: 60.4세
최고령: 71세 (후유시바 테츠조)
최연소: 50세 (기시다 후미오)
개조 내각 각료 명단은 위와 같다.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각료 후보자들의 "신원 조사"에 할애했다. 파벌 영수급 실력자(고무라 마사히코, 마치무라 노부타카, 이부키 분메이, 누카가 후쿠시로)를 기용했다. 아소 타로가 원했던 간사장으로, 내각의 안정감을 더하기 위해 요사노 가오루를 내각관방장관에 기용했다. 연금 문제, 의료 과소 문제, 개호 파탄 문제, 팽창하는 사회 보장비 문제 등을 안고 있는 후생노동상에 말솜씨가 뛰어난 마스조에 요이치를 발탁했다. 지방 분권, 지역 간 격차를 안고 있는 총무상에 민주당 대표오자와 이치로와 대립하고 있다고 알려진 전 이와테현 지사 마스다 히로야를 기용했다.
농림수산대신은 엔도 다케히코가 2007년 9월 3일 사임하여, 와카바야시 마사토시가 2007년 9월 4일 임명될 때까지 아마리 아키라가 임시 대리를 겸임했다.
5.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는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정원이 5명이었으나, 개조 내각에서는 2명으로 줄었다.
*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납치 문제 담당) - 나카야마 쿄코 (유임, 참, 무파벌)
*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교육 재생 담당) - 야마타니 에리코 (유임, 참, 마치무라파)
6. 내각관방부장관 등
* 내각관방 부장관 - 오노 마쓰시게 (중의원, 마치무라파)
* 내각관방 부장관 - 이와키 미쓰에 (참의원, 마치무라파)
* 내각관방 부장관 - 마토바 준조 (유임)
* 내각 위기 관리 감 - 노다 켄
* 내각 법제국 장관 - 미야자키 레이이치
7. 부대신
| | 직책 || 이름 || 정당 || 파벌 | ||||
|---|---|---|---|---|
| 내각부 | 내각부 부대신 | 기무라 벤 | 자유민주당 | 야마자키 파 |
| 내각부 | 내각부 부대신 | 야마모토 아키히코 | 자유민주당 | 무소속 |
| 내각부 | 내각부 부대신 | 나카가와 요시오 | 자유민주당 | 이부키 파 |
| 총무성 | 총무부 부대신 | 사토 벤 | 자유민주당 | 타니가키 파 |
| 총무성 | 총무부 부대신 | 우오즈미 유이치로 | 공명당 | 무소속 |
| 법무성 | 법무부 부대신 | 카와이 카츠유키 | 자유민주당 | 쓰시마 파 |
| 외무성 | 외무부 부대신 | 오노데라 이츠노리 | 자유민주당 | 고가 파 |
| 외무성 | 외무부 부대신 | 기무라 히토시 | 자유민주당 | 쓰시마 파 |
| 재무성 | 재무부 부대신 | 엔도 오토히코 | 공명당 | 무소속 |
| 재무성 | 재무부 부대신 | 모리야마 히로시 | 자유민주당 | 야마자키 파 |
| 문부과학성 | 문부과학 부대신 | 마츠나미 겐시로 | 자유민주당 | 니카이 파 |
| 문부과학성 | 문부과학 부대신 | 이케노보 야스코 | 공명당 | 무소속 |
| 후생노동성 | 후생노동 부대신 | 니시카와 쿄코 | 자유민주당 | 이부키 파 |
| 후생노동성 | 후생노동 부대신 | 키시 코이치 | 자유민주당 | 타니가키 파 |
| 농림수산성 | 농림수산 부대신 | 이마무라 마사히로 | 자유민주당 | 무소속 |
| 농림수산성 | 농림수산 부대신 | 이와나가 히로미 | 자유민주당 | 쓰시마 파 |
| 경제산업성 | 경제산업 부대신 | 신도 요시타카 | 자유민주당 | 쓰시마 파 |
| 경제산업성 | 경제산업 부대신 | 나카노 마사시 | 자유민주당 | 마치무라 파 |
| 국토교통성 | 국토교통 부대신 | 히라이 타쿠야 | 자유민주당 | 고가 파 |
| 국토교통성 | 국토교통 부대신 | 마츠시마 미도리 | 자유민주당 | 마치무라 파 |
| 환경성 | 환경 부대신 | 사쿠라이 이쿠조 | 자유민주당 | 아소 파 |
| 방위성 | 방위 부대신 | 에토 사토노리 | 자유민주당 | 타카무라 파 |
부대신은 2007년 8월 29일에 임명되었다.
8. 대신정무관
| 부처 | 직책 | 성명 | 비고 |
|---|---|---|---|
| 내각부 | 내각부 대신 정무관 | 니시무라 아키히로 | 중의원, 마치무라파 |
| 내각부 | 내각부 대신 정무관 | 가토 가쓰노부 | 중의원, 쓰시마파 |
| 내각부 | 내각부 대신 정무관 | 토이다 토오루 | 중의원, 쓰시마파 |
| 총무대신 정무관 | 총무대신 정무관 | 오카모토 요시로 | 중의원, 쓰시마파 |
| 총무대신 정무관 | 총무대신 정무관 | 아키바 겐야 | 중의원, 무파벌 |
| 총무대신 정무관 | 총무대신 정무관 | 니노유 사토시 | 참의원, 쓰시마파 |
| 법무대신 정무관 | 법무대신 정무관 | 후루카와 요시히사 | 중의원, 야마자키파 |
| 외무대신 정무관 | 외무대신 정무관 | 나카야마 야스히데 | 중의원, 마치무라파 |
| 외무대신 정무관 | 외무대신 정무관 | 우노 오사무 | 중의원, 이부키파 |
| 외무대신 정무관 | 외무대신 정무관 | 사카모토 유키코 | 참의원, 고가파, 2007년 9월 3일 사임 |
| 외무대신 정무관 | 외무대신 정무관 | 고이케 마사카쓰 | 참의원, 쓰시마파, 2007년 9월 4일 임명 |
| 재무대신 정무관 | 재무대신 정무관 | 미야시타 이치로 | 중의원, 마치무라파 |
| 재무대신 정무관 | 재무대신 정무관 | 고이즈미 아키오 | 참의원, 야마자키파 |
| 문부과학대신 정무관 | 문부과학대신 정무관 | 하라다 레이지 | 중의원, 타니가키파 |
| 문부과학대신 정무관 | 문부과학대신 정무관 | 호사카 타케시 | 중의원, 쓰시마파 |
| 후생노동대신 정무관 | 후생노동대신 정무관 | 마쓰나미 겐타 | 중의원, 이부키파 |
| 후생노동대신 정무관 | 후생노동대신 정무관 | 이토 와타루 | 중의원, 공명당 |
| 농림수산대신 정무관 | 농림수산대신 정무관 | 타니가와 야이치 | 중의원, 마치무라파 |
| 농림수산대신 정무관 | 농림수산대신 정무관 | 사와 유지 | 참의원, 공명당 |
| 경제산업대신 정무관 | 경제산업대신 정무관 | 오기하라 겐지 | 참의원, 무파벌 |
| 경제산업대신 정무관 | 경제산업대신 정무관 | 야마모토 가나에 | 참의원, 공명당 |
| 국토교통대신 정무관 | 국토교통대신 정무관 | 가네코 젠지로 | 중의원, 니카이파 |
| 국토교통대신 정무관 | 국토교통대신 정무관 | 타니 코이치 | 중의원, 이부키파 |
| 국토교통대신 정무관 | 국토교통대신 정무관 | 야마모토 준조 | 참의원, 마치무라파 |
| 환경대신 정무관 | 환경대신 정무관 | 나미키 마사요시 | 중의원, 마치무라파 |
| 방위대신 정무관 | 방위대신 정무관 | 테라다 미노루 | 중의원, 고가파 |
| 방위대신 정무관 | 방위대신 정무관 | 아키모토 쓰카사 | 참의원, 이부키파 |
모든 대신정무관은 2007년 8월 29일에 임명되었다.
9. 개조 내각의 특징
* 각료 후보자들의 신원 조사에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 고무라 마사히코 방위상,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상, 이부키 분메이 문부과학상, 누카가 후쿠시로 재무상 등 파벌 영수급 실력자를 기용했다.
* 아소 다로가 원했던 간사장으로, 내각의 안정감을 더하기 위해 요사노 가오루를 내각관방장관에 기용했다.
* 연금 문제, 의료 과소 문제, 개호 파탄 문제, 팽창하는 사회 보장비 문제 등을 안고 있는 후생노동상에 말솜씨가 뛰어난 마스조에 요이치를 발탁했다.
* 지방 분권, 지역 간 격차를 안고 있는 총무상에 민주당 대표 오자와 이치로와 대립하고 있다고 알려진 전 이와테현 지사 마스다 히로야를 기용했다.
이 인사를 보고 "아베 내각은 처음부터 이 포진으로 갔어야 했다"는 감상을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10. 여론 및 평가
민주당 간사장 하토야마 유키오는 파벌 회장 3명(마치무라 노부타카, 다카무라 마사히코, 이부키 분메이)과 파벌 영수 1명(누카가 후쿠시로)이 입각한 것을 두고 "파벌 영수 내각", "놀랍지 않은 것이 놀랍다"라고 평가했다. 일본공산당 서기국장 이치다 타다요시는 "지금, 분위기(K)를 못 읽는(Y)다는 말이 유행인데, 긁어 모으고(K), 끌어 모으는(Y) 의미에서도 KY 내각"이라고 평가했다. 사회민주당 당수 후쿠시마 미즈호는 "아베 PTA 내각"이라고 평가했다. 언론들은 팀 아베("아베 친위대")의 후퇴를 간파하고 "벼랑 끝 내각"이라고 평가했으며, 당시 이시야 제과에서 발생한 유통기한 연장 문제에 빗대어 "하얀 연인 내각"이라고 비꼬았다.
11. 주요 활동
2007년 8월 27일,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이 발족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정치와 돈 문제는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각료는 뭔가 지적받으면 설명을 해야 한다",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없다면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개조 전 문제 각료를 감싸던 태도에서 벗어나, 문제 발생 시 해당 각료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으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개조 내각 출범 불과 4일 만인 8월 31일, 엔도 다케히코 농림수산대신이 대표로 있는 자유민주당 야마가타현 제2선거구 지부가 농림수산성 소관 독립행정법인의 보조금을 받는 야마가타현 가축 상업 협동조합으로부터 5만 엔의 헌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정치자금규정법 위반에 해당한다. 또한 엔도가 조합장 이사를 맡고 있는 오키타마 농업 공제조합이 농업재해보상법에 따른 보험료 115만 엔을 부당 수급한 사실도 밝혀졌다. 엔도는 처음에는 사임 의사가 없음을 밝혔으나, 결국 9월 3일 사표를 제출했다. 같은 날, 사카모토 유키코 외무대신 정무관도 정치 활동비 중복 계상 문제로 사임했다.
이 외에도 누카가 후쿠시로 재무대신의 사무소 미등기, 카모시타 이치로 환경대신의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 차입금 기재 누락 등 여러 각료들의 비리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아베 총리의 임명 책임론으로 이어졌다.
9월 9일, 아베 총리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APEC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 회의) 정상 회의 후 기자 회견에서 테러 특조법 연장 문제와 관련, 급유 활동이 지속될 수 없을 경우 내각 총사퇴할 각오임을 밝혔다.
12. 갑작스러운 사임
2007년 9월 10일, 제168회 국회에서 아베 신조는 "직책을 다해 전력을 다하겠다"는 소신 표명 연설을 했다. 그러나 9월 12일 정오가 지나, 테러 대책 특별 조치법 연장이 어려워진 점과 야당과의 당수 회담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이유로 국회 대책 위원장 오시마 리모리에게 총리 사임 의사를 전달했다. 오후 2시부터 열린 기자 회견에서 아베는 정식으로 총리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당일 오후 1시부터 소신 표명 연설에 대한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나가츠마 아키라의 대표 질문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사임 표명으로 인해 정권 교체를 목표로 하던 민주당 의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내각 관방 장관 요사노 가오루는 총리 사임 기자 회견 직후, 아베가 언급하지 않은 건강 문제를 주요 사임 이유로 보충 설명했다. 그러나 해외 언론을 포함하여 "적전 도망", "정권 내팽개치기", "거짓 소신 표명" 등 혹평이 쏟아졌다.
아베의 사임 이유에 대해, 맹우로 여겨지는 전 관방 장관 시오자키 야스히사는 "구실임이 분명하다"고 해설했다. 또한, 사임 회견 며칠 전부터 아베가 간사장 (아소 다로) - 관방 장관 (요사노) 라인에 주도권을 빼앗긴 듯한 점, 팀 아베가 내각 개조로 공중 분해되어 아베가 고립된 듯하다는 점 등이 신문 등 বিভিন্ন 방면에서 제기되었다.
9월 13일부터 아베는 컨디션 불량 (게이오기주쿠 대학 병원이 공개한 병명은 기능성 위장 장애)으로 입원했다. 9월 24일 오후 5시, 병원에서 첫 기자 회견을 열어 국민에게 사죄하고, 병으로 사임한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해야 했다고 인정했다. 팀 아베의 공중 분해를 사임 이유로 보는 설에 대해서는 질의응답에서 완강히 부인했다.
11일간의 입원 기간 동안 아베는 병원 밖으로 나가지 않았지만, 정부는 아베와 연락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총리 임시 대리를 두지 않았다. 총리 집무는 병실 옆 방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아사히 신문사가 9월 13일 실시한 긴급 여론 조사에서는 70%가 "이러한 형태의 사임은 무책임하다"고 답했고, 50%는 "조기에 중의원 해산해야 한다"고 답했다.
13. 지지율 변화
내각 개조 후의 여론 조사에서는 지지율이 다소 회복되었다. 각 신문사의 차이는 있지만, 지지율은 상승하고 부지지율은 감소했다.
14. 총사직 후
2007년 9월 12일 아베 신조 총리가 사임을 발표하면서, 내각은 총사직하게 되었다. 이후 후쿠다 야스오가 새로운 총리로 취임하면서 후쿠다 야스오 내각이 출범했다. 아베 신조의 총리 재임 기간은 366일로, 전후 최단명 총리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아베 신조 내각의 총사직으로 인해 국회의원 요람과 국회 편람 등 관련 서적의 판매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내각은 결국 "환상의 내각"으로 남게 되었다.
아사히 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사임에 대해 "당연하다"는 의견이 57%,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이 28%로 나타났다. 또한, 조기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61%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