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양군
1. 개요
복양군은 중국의 옛 행정 구역으로, 서진 시기 사마윤이 복양왕에 봉해지면서 동군을 개편하여 설치되었다. 복양국으로 시작하여 복양군으로 변경되었으며, 연주, 제주, 서연주, 사주 등에 속했다. 수나라 때 폐지되었다가 당나라 시기에 부활하여 복주로 개칭되면서 복양군의 명칭은 사라졌다. 영가의 난 이후에는 동진이 강남에 남복양군을 설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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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성의 군 -
하남군
하남군은 전국 시대 한나라에서 처음 설치되어 진나라를 거쳐 전한 시대에는 삼하로 불렸으며, 후한 시대에는 하남윤으로 개칭되어 낙양을 관할하는 중요한 지역으로 위진 시대까지 존속한 군이다. -
허난성의 군 -
남양군 (중국)
남양군은 기원전 272년 진나라 소양왕 때 설치되어 한수 북쪽의 옛 초나라 땅을 관할했던 군으로, 시대에 따라 소속과 영역이 변하다 수나라 때 잠시 등주로 바뀌었다가 당나라 때 폐지되었다. -
진나라 (위진)의 군 -
회계군
회계군은 중국 고대 월나라의 중요 지역으로, 우와 관련이 깊으며 진시황에 의해 설치되어 여러 왕조를 거치며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번영을 누렸던 행정 구역이다. -
진나라 (위진)의 군 -
하남군
하남군은 전국 시대 한나라에서 처음 설치되어 진나라를 거쳐 전한 시대에는 삼하로 불렸으며, 후한 시대에는 하남윤으로 개칭되어 낙양을 관할하는 중요한 지역으로 위진 시대까지 존속한 군이다. -
산둥성의 군 -
태산군
태산군은 중국의 행정 구역으로, 진나라의 제북군을 전신으로 하여 전한 시대에 설치되어 예주에 속했으며, 후한, 서진, 남조 송, 북위 시대를 거치며 관할 현의 변화와 명칭 변경을 겪다가 북제 시대에 동평군으로 개칭되었다. -
산둥성의 군 -
제북군
제북군은 진나라가 제나라를 멸망시킨 후 설치된 군으로, 전한 시대에는 제북나라로 바뀌었으며, 유흥거의 반란으로 폐지되었다가 제북군과 제남군으로 분리되기도 했다.
2. 연혁
복양군은 시대에 따라 그 위치와 관할 지역이 여러 차례 변동되었다.
277년(서진 함녕 3년)에 처음 설치된 이후, 영가의 난과 남북조 시대의 혼란을 거치며 여러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북위 시기에는 제주와 서연주에 속하기도 했고, 동위 시기에는 사주에 속하기도 했다.
583년 (수나라 개황 3년) 수나라가 군제를 폐지하면서 복양군은 폐지되었고, 이후 수나라와 당나라때까지 복주, 동평군 등으로 개칭되었다.
2.1. 서진
277년(서진 무제 함녕 3년) 8월 무제의 아들 중 한 명이었던 사마윤이 복양왕으로 책봉됨에 따라 동군이 복양국(濮陽國)으로 승격되었다. 289년(서진 무제 태강 10년) 그가 회남왕으로 책봉되면서 동군으로 격하되었다. 이후 조왕 사마륜이 진 혜제의 손자였던 사마장(司馬臧)을 복양왕으로 책봉하면서 다시 복양국으로 바뀌었다. 책봉 당시 어린아이였던 사마장이 301년 사망하면서 복양국은 폐지되었지만 복양군으로 바뀌었다. 서진대 복양국은 4현 21,000호를 거느렸다. 영가의 난 이후 후조로 편입되었고 동진이 연주를 교치하면서 장강 일대에서 교치되었다.
2.2. 북조
401년(북위 도무제 천흥 4년) 활대성(滑臺城)에 연주가 설치되었을 때 연주의 속군으로 편제되었다. 487년(북위 효문제 태화 11년) 제주(齊州)의 속군이 되었으나 효창 말기 서연주로 소속이 바뀌었다. 북위가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었을 때 동위가 업을 수도로 삼고 그 일대를 사주로 개명하면서 사주로 편입되었다. 이후 동위의 복양군은 4현 18,664호 55,512명을 거느렸다.
| 현명 | 한자 | 대략적 위치 | 비고 |
|---|---|---|---|
| 늠구현 | 廩丘縣 | 허쩌시 쥐안청현 수보향(水堡鄕) 일대 | 현 경내에 양각애좌백도총(羊角哀左伯桃冢), 관공명총(管公明冢)이 있었다. |
| 복양현 | 濮陽縣 | 푸양시 푸양현 남 어둔촌(于屯村) 일대 | |
| 성양현 | 城陽縣 | 미상 | 호자하(瓠子河)와 뇌택(雷澤)이 있다. |
| 견성현 | 鄄城縣 | 허쩌시 쥐안청현 구성진(舊城鎭) |
천평 초년, 동위에 의해 복양군은 사주로 전속되었다. 동위의 복양군은 름구, 복양, 성양, 권성의 4개 현을 관할했다.
2.3.1. 동진, 유송
영가의 난 이후 후조의 침공을 피해 경구(京口)와 그 일대 지역에 정착한 복양군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동진이 복양군을 교치했다. 이후 동연군이 분리되었으나 유송 초기에 폐지되었다. 유송 대에 교치된 복양군은 2현 2,026호 8,239명을 거느렸다. 속현의 위치는 알 수 없다.
영가의 난 이후 복양군 본토가 오호의 여러 나라에 함락되자, 동진은 강남에 남복양군을 설치했다.
남조 송 시대에 남복양군은 남서주에 속했으며, 늠구, 유지 2현을 관할했다.
남조 제 시대에 남복양군은 늠구, 동연, 회, 유지, 현성 5현을 관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