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관 (전한)
1. 개요
부관은 전한 초기의 인물로, 위나라의 오대부기장에서 시작하여 유방을 섬기며 진나라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한나라 건국 후에는 공덕군에 봉해지고 우기장을 거쳐 조음 지역을 식읍으로 받았다. 이후 제나라 정복 전쟁에 참여하여 양릉후에 봉해졌으며, 제나라 우승상과 상국을 역임했다. 진희의 난을 진압하고 대나라 상국을 거쳐 혜제 5년에 사망했으며, 시호는 경(景)이다. 유방의 신임을 받았으며, 제나라 상국과 대나라 상국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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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 부(傅) |
|---|---|
| 이름 | 관(寬) |
| 시호 | 경(景) |
| 작위 | 양후(陽侯) |
| 생몰년도 | 기원전 ?년 ~ 기원전 190년 |
| 초기 이력 | 패현 출신으로, 본래 관영의 수레를 모는 일을 하였다. |
|---|---|
| 진나라 말기 | 패공을 따라 종군하였다. |
| 한나라 건국 | 낭중(郎中)이 되었고, 위(魏)나라와 싸워 많은 공을 세워 도위(都尉)가 되었다. |
| 이후 행적 | 항우를 격파하는 데 공을 세워, 양릉후(陽陵侯)에 봉해졌다. |
| 흉노와의 전투 | 한신을 따라 흉노를 치고 돌아와 기(旗)를 하사받았다. |
| 진희 토벌 | 진희를 토벌할 때, 조참의 지휘를 받아 별도로 군사를 이끌고 동원을 함락시켰다. |
| 죽음 | 기원전 190년, 죽으니 시호를 경(景)이라 하였다. |
| 낭중 (郎中) | 황제를 모시는 관직 |
|---|---|
| 도위 (都尉) | 군사 지휘관 |
| 양릉후 (陽陵侯) | 봉읍 1,30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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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90년 사망 -
조참
조참은 전한 초기의 장군이자 정치가로, 유방을 도와 진나라 멸망과 초한쟁패 승리에 기여했으며, 한나라 건국 후 제나라 상국과 한나라 승상을 역임하며 안정적인 통치를 펼쳤고, 특히 소하의 법제를 따라 '소규조수' 고사를 남겼다. -
기원전 190년 사망 -
선의 (전한)
선의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한서》, 《사기》, 《후한서》 등 여러 역사서에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전한의 열후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전한의 열후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2. 생애
부관은 원래 위나라의 오대부기장이었다가 고제를 섬겨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공을 세워 경의 작위를 받았다. 기원전 206년 고제가 한나라 왕으로 봉해지자 공덕군에 봉해졌고 우기장이 되었다. 삼진 평정 후 조음을 식읍으로 받았으며, 항관, 주란, 용저 격파에 종군해 식읍이 늘었다. 한신, 조참과 함께 제나라 정복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기원전 201년 양릉후에 봉해졌고, 제나라 우승상이 되어 전횡을 수비했다. 기원전 196년 제나라 상국이 되었고, 주발과 함께 진희의 난을 진압하고 대나라 상국으로 전임되었다. 기원전 194년 대나라 승상이 되었으며, 기원전 190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경이라 하였다.
2.1. 초기 생애 및 한나라 건국 기여
부관은 원래 위나라의 오대부기장(五大夫騎長)이었다가 당시 패공(沛公)이던 고제를 섬겼다.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공을 세워 경(卿)의 작위를 받았다. 유방을 따라 전전하며, 진나라 장수 조분의 군대를 계봉에서, 같은 진나라 장수 양웅의 군대를 곡우·양무에서 격파하는 등의 공적을 세웠다.
기원전 206년, 고제가 한왕(漢王)으로 봉해지자 공덕군(共德君)의 봉호를 받았고, 고제가 한중에 도착하자 우기장(右騎將)이 되었다. 한왕이 옹 · 새 · 적 삼진을 평정하자 조음(雕陰)을 식읍으로 받았다. 이후 항관(項冠) · 주란(周蘭) · 용저 격파에도 종군해 식읍이 늘었다. 한신 · 조참 등이 이끄는 제나라 정복 전쟁에 참여해 공적을 세워 식읍이 늘었고, 제나라가 완전히 평정되자 한왕 6년(기원전 201년)에 양릉후(陽陵侯)에 봉해져 식읍 2,600호를 받고 이전 식읍은 제했다.
2.2. 제나라 평정과 양릉후
기원전 201년, 제나라가 완전히 평정되자 한왕 6년에 양릉陽陵중국어후(陽陵侯)에 봉해져 식읍 2,600호를 받고 이전 식읍은 제했다. 이때 제나라 왕 한신을 초나라로 옮기고 제나라 왕에는 고제의 서장자 유비를 임명하면서, 부관은 제나라의 우승상이 되어 아직 항복하지 않은 제나라 왕 전횡 때문에 제나라를 수비했다.
2.3. 제도혜왕 유비의 상국
기원전 201년, 유비가 제나라 왕으로 봉해지면서 부관은 제나라의 우승상이 되어 아직 항복하지 않은 전횡에 대비했다. 기원전 196년에는 제나라의 상국이 되었다. 같은 해 4월에 주발과 함께 진희의 난을 진압하러 출정했고, 1월에는 대나라의 상국으로 전임되었다.
2.4. 진희의 난 진압과 대나라 상국
기원전 196년, 주발에 속해 진희의 난 진압에 나섰고, 1월에는 대나라의 상국으로 전임했다. 진희가 대나라 땅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주발에 속하여 이를 격파했으며, 제나라 상국으로서 번쾌를 대신하여 진희를 공격했다. 대나라 평정 후, 상국으로 옮겨 주둔군 통솔을 겸했다. 2년 후인, 혜제 원년(기원전 194년)에는 제후국에 상국을 두지 못하게 하면서 대나라 승상으로 전임돼 계속해서 주둔군을 통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