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택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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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택왕후는 백제 무왕의 왕비이며, 사택적덕의 딸이다. 2009년 미륵사지 석탑 해체 중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는 사택왕후가 미륵사 창건을 주도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로 인해 삼국유사에 무왕의 비로 기록된 선화공주와의 관계에 대한 논란이 발생했다. 사택왕후의 휘에 대해서는 금제사리봉안기 문구 해석을 두고 종선이라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사택왕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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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사택왕후(沙宅王后)
원래 이름사택씨(沙宅王后 沙宅氏)
미상(未詳)
다른 이름사택비(沙宅妃)
별호왕후 사택씨(王后 沙宅氏)
작위왕후(王侯), 황후(皇妃)
직업백제(百濟) 왕후(王侯)
별칭미상(未詳)
출생일생년 미상(生年 未詳)
출생지미상(未詳)
사망일몰년 미상(沒年 未詳)
사망지655년일본서기에서는 고교쿠 천황 원년인 642년의자왕의 어머니가 죽었다고 기록되어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사이메이 천황 원년인 655년 일어난 일로 본다.
사망 원인미상(未詳)
재위?~ 642년일본서기에서는 고교쿠 천황 원년인 642년에 의자왕의 어머니가 죽었다고 기록되어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사이메이 천황 원년인 655년 일어난 일로 본다.
백제의 왕후백제의 30대 왕후
재위 기간600년 음력 5월~655년
매장지미상(未詳)
배우자무왕(武王)
자녀부여교기(扶餘翹岐)
친인척미상(未詳)
부친사택적덕(沙宅積德)
모친미상(未詳)
형제자매미상(未詳)
전임자해왕후(解王后)
후임자선화공주(善花公主)
묘호미상(未詳)
시호사택왕후(沙宅王后)
법명미상(未詳)
존호사택왕후(沙宅王后)
묘소미상(未詳)
능묘미상(未詳)
거주지백제(百濟)
국적백제(百濟)
성별여성(女性)
가문사택씨(沙宅氏)
연호미상(未詳)
왕조백제(百濟)
종교미상(未詳)
호칭왕후(王后), 황후(皇后)
목록백제의 30대 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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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3. 미륵사 창건

4. 선화공주와의 관계 논란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한국 고대사에서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란 어렵다. 고려 시대의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에 따르면 무왕의 비는 선화공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는 선화공주를 진평왕의 막내딸이라고 하였고 서동요 설화도 일연의 삼국유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재야사학자 박영규는 그녀를 법왕의 딸이라고 주장하였다. 기존에는 삼국유사를 기반으로 미륵사 창건이 선화공주가 중심이 됐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09년 1월 전라북도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 해체 중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의 기록에 따르면 무왕의 왕비는 사택적덕의 딸인 사택왕후라고 명시돼 있다. 또한 그녀가 미륵사를 창건하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삼국유사》에서 선화공주를 무왕의 비로 기록한 부분의 사실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금제사리봉안기의 발견에도 불구하고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당대 왕들은 일반적으로 2명의 왕비를 두고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설화적 요소가 더해졌을 지라도 섣부른 결론을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4.1. 삼국유사의 기록

고려 시대의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에 따르면 무왕의 비는 진평왕의 막내딸인 선화공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서동요 설화도 이를 기반으로 한다. 재야사학자 박영규는 그녀를 법왕의 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9년 1월 전라도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 해체 중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무왕의 왕비가 사택적덕의 딸인 사택왕후이며, 그녀가 미륵사를 창건하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라 《삼국유사》의 기록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으나,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당대 왕들이 일반적으로 2명의 왕비를 두었다는 점을 들어 신중한 접근을 주장하고 있다.

4.2. 금제사리봉안기의 기록

한국 고대사는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실상 파악이 어렵다. 고려 시대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에는 무왕의 비가 선화공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서동요 설화도 이를 기반으로 한다. 삼국유사는 선화공주를 진평왕의 막내딸이라고 기록했다. 재야사학자 박영규는 그녀를 법왕의 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9년 1월 전라도 익산 미륵사지 석탑 해체 중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무왕의 왕비가 사택적덕의 딸인 사택왕후이며, 그녀가 미륵사 창건을 주도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이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배치되는 내용으로, 선화공주가 무왕의 비라는 기록의 사실 여부에 대한 논란을 야기했다.

금제사리봉안기 발견에도 불구하고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당대 왕들이 일반적으로 2명의 왕비를 두었다는 점을 들어 섣부른 결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4.3. 역사학계의 논란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한국 고대사에서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란 어렵다. 고려 시대의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에 따르면 무왕의 비는 선화공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는 선화공주를 진평왕의 막내딸이라고 하였고 서동요 설화도 일연의 삼국유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재야사학자 박영규는 그녀를 법왕의 딸이라고 주장하였다. 기존에는 삼국유사를 기반으로 미륵사 창건이 선화공주가 중심이 됐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09년 1월 전라북도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 해체 중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의 기록에 따르면 무왕의 왕비는 사택적덕의 딸인 사택왕후라고 명시돼 있다. 또한 그녀가 미륵사를 창건하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삼국유사》에서 선화공주를 무왕의 비로 기록한 부분의 사실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금제사리봉안기의 발견에도 불구하고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당대 왕들은 일반적으로 2명의 왕비를 두고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설화적 요소가 더해졌을 지라도 섣부른 결론을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5. 휘 논란

《금제사리봉안기》에 있는 문장 중 "我百濟王后佐平沙宅積德女種善"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가 제기된다.

손환일 경기대 연구교수는 "나(我) 왕후(百濟王后)인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女) 종선(種善)…"으로 해석하여 사택왕후의 휘가 종선(種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김상현 동국대 교수는, 위 문장의 바로 뒤에 나오는 因於曠劫을 함께 해석하여 "나(我) 왕후(百濟王后)인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女)은 오랜 세월(曠劫) 동안 선인(善因)을 심어(種)…"라고 주장하였다. 이 경우, 사택왕후의 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게 된다.

5.1. '종선'이 휘라는 주장

《금제사리봉안기》에 있는 문장 중 "我百濟王后佐平沙宅積德女種善"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가 제기된다.

손환일 경기대 연구교수는 "나(我) 왕후(百濟王后)인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女) 종선(種善)…"으로 해석하여 사택왕후의 휘가 종선(種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김상현 동국대 교수는, 위 문장의 바로 뒤에 나오는 因於曠劫을 함께 해석하여 "나(我) 왕후(百濟王后)인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女)은 오랜 세월(曠劫) 동안 선인(善因)을 심어(種)…"라고 주장하였다. 이 경우, 사택왕후의 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게 된다.

5.2. '종선'이 휘가 아니라는 주장

《금제사리봉안기》에 있는 문장 중 "我百濟王后佐平沙宅積德女種善"은 해석에 논란이 있다. 손환일 경기대 연구교수는 이 문장을 "나(我) 왕후(百濟王后)인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女) 종선(種善)…"으로 해석하여 사택왕후의 휘가 종선(種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김상현 동국대 교수는, 위 문장의 바로 뒤에 나오는 因於曠劫을 함께 해석하여 "나(我) 왕후(百濟王后)인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女)은 오랜 세월(曠劫) 동안 선인(善因)을 심어(種)…"라고 주장하였다. 이 경우, 사택왕후의 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게 된다.

6. 가계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로, 무왕의 왕비이다. 남편 무왕과의 사이에서 아들 부여교기를 낳았다.

7. 대중문화에서의 묘사

* 《삼국기》(KBS, 1992년~1993년 배우:안영주)
* 《계백》(MBC, 2011년~2011년 배우:오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