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요시노리 (1954년)
1. 개요
사토 요시노리(1954년)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코치이다. 1977년 한큐 브레이브스에 입단하여 1998년까지 선수로 활동하며 신인왕, 다승왕, 최우수 평균 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다. 통산 165승을 기록했으며, 1995년에는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은퇴 후에는 오릭스, 한신, 닛폰햄, 라쿠텐, 소프트뱅크 등에서 투수 코치를 역임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아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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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사토 요시노리 (佐藤 義則) |
|---|---|
| 출생일 | 1954년 9월 11일 |
| 출생지 | 홋카이도 오쿠시리 군 오쿠시리정 |
| 사망일 | 해당사항 없음 |
| 신장 | 181 |
| 체중 | 86 |
| 포지션 | 투수 / 코치 |
| 투타 | 우투우타 |
| 고등학교 | 하코다테 유토 고등학교 |
|---|---|
| 대학교 | 니혼 대학 |
| 프로 입단 | 한큐 브레이브스 (1977년 ~ 1998년) |
| 드래프트 | NPB 1976년 드래프트 1위 |
| 소속 구단 | 한큐 브레이브스 (1977년 ~ 1988년) 오릭스 브레이브스 (1989년 ~ 1990년)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1년 ~ 1998년) |
| 첫 출장 | 1977년 5월 11일 |
| 마지막 경기 | 1998년 10월 1일 (은퇴 경기) |
| 코치 팀 |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9년 ~ 2000년) 한신 타이거스 (2002년 ~ 2004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005년 ~ 2007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9년 ~ 2014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5년 ~ 2017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8년 ~ 2019년) 간 메디 베이스볼 아카데미 |
|---|
| 승-패 | 165승 137패 |
|---|---|
| 세이브 | 48 |
| 평균 자책점 | 3.97 |
| 탈삼진 | 1755 |
| 일본 시리즈 우승 | 2회 (1977년, 1996년) |
|---|---|
| 신인왕 | 1977년 퍼시픽 리그 신인왕 |
| 승리왕 | 1회 (1985년) |
| 평균 자책점 | 1회 (1986년) |
| 탈삼진왕 | 2회 (1984년, 1985년) |
| 올스타 | 7회 (1978년, 1984년, 1985년, 1988년, 1989년, 1993년, 1994년) |
| 채널명 | 佐藤義則チャンネル (사토 요시노리 채널) |
|---|---|
| 채널 URL | 사토 요시노리 채널 |
| 활동 시작일 | 2016년 12월 20일 |
| 장르 | 야구 |
| 구독자 수 | 1.41만 명 |
| 조회수 | 2,011,791회 |
-
홋카이도 출신 야구 선수 -
이가라시 료타
이가라시 료타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해외 리그에서 활약하며 핵심 불펜 투수로 명성을 얻었고, 현재는 야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
홋카이도 출신 야구 선수 -
이토 히로미
이토 히로미는 2021년부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에서 활동하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이며, 2020년 도쿄 올림픽 금메달, 202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에 기여하고, 2024년에는 최다승과 최고 승률을 기록하며 월간 MVP를 수상했다. -
오릭스 브레이브스 선수 -
후쿠하라 미네오
후쿠하라 미네오는 닛폰 통운 우라와 사회인 야구 선수에서 한큐 브레이브스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하며 1984년 퍼시픽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은퇴 후에는 일본과 한국 프로야구 구단에서 20년 이상 코치,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로 활동했다. -
오릭스 브레이브스 선수 -
가도타 히로미쓰
가도타 히로미쓰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1970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하여 1988년 MVP를 수상하고 1992년 은퇴했으며, 2006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20세기 일본 사람 -
쇼와 천황
쇼와 천황은 메이지 천황의 손자로 태어나 124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사망할 때까지 재위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침략 전쟁에 관여했다는 논란이 있으며, 전후에는 상징적인 천황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의 전쟁 책임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다. -
20세기 일본 사람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2. 선수 경력
홋카이도오쿠시리군오쿠시리정 출신으로, 오쿠시리 브레이크스에서 야구를 시작하여 오쿠시리 중학교 3학년 때 하코다테 지구 우승, 전도 대회에 출전했다. 하코다테 아리토 고등학교에서 우에노 미키오의 지도를 받았으며, 1972년 춘계 홋카이도 대회 결승에서 도마코마이 공업고등학교를 꺾고 우승했다. 같은 해 여름 고시엔 남홋카이도 예선 결승에서 패해 고시엔 진출은 좌절되었다. 니혼 대학 시절 도토 대학 야구 리그에서 1976년 추계 리그 8승 4패, 시즌 78탈삼진(당시 리그 2위)을 기록했다. 1974년, 1976년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 1975년 제11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1977년 한큐 브레이브스에 입단하여 5월 21일 일본 햄 파이터스전 첫 승리, 9월 4일 롯데 오리온스전 첫 완봉승, 시즌 7승으로 신인왕을 수상했다. 1978년 올스타전 첫 출전, 13승을 기록하며 규정 투구 이닝을 달성했다. 1981년 허리 통증으로 임의 은퇴 처리되었으나, 1982년 구원 투수로 복귀, 1983년 수호신으로 활약했다.
1984년 선발 복귀, 리그 우승에 기여하며 17승, 리그 최다 탈삼진을 기록했다. 1985년 21승으로 다승왕, 2년 연속 리그 최다 탈삼진을 기록했다. 1986년 14승, 최우수 방어율을 획득했다. 1988년 13승, 리그 1위 5완봉을 기록했다. 1989년 개막전 완봉승 후 6연승을 기록했으나, 7월 이후 부진하며 9승에 그쳤다.
1993년 홋카이도 남서쪽 지진으로 이모를 잃는 슬픔 속에서도 4년 만에 규정 투구 이닝을 채웠다. 1994년 통산 150승 완봉승, 올스타전 선발 등판했다.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피해를 입은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힘내라 KOBE"를 구호로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데 기여, NPB 사상 최고령 및 최초 40세 이상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1996년부터 등판 수가 줄었고, 1998년 은퇴를 발표, 은퇴 경기에서 2이닝 2실점 후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요시 볼"이라는 독특한 변화구와 은퇴까지 유지한 시속 140km/h대 강속구가 특징이다.
2.1. 아마추어 시절
홋카이도오쿠시리군오쿠시리정 출신이다. 오쿠시리 브레이크스에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으며, 오쿠시리 중학교 3학년 때 하코다테 지구에서 우승하여 전도 대회에 출전했다。 졸업 후 하코다테 아리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우에노 미키오의 지도를 받았다. 에이스로서 1972년 춘계 홋카이도 대회 결승에 진출하여, 도마코마이 공업고등학교의 구도 토시히로(호세이 대학)와 맞붙어 완봉승으로 우승했다。 같은 해 여름의 고시엔 남홋카이도 예선에서도 결승에 진출했지만, 도마코마이 공업고등학교에 0-2로 패하여 고시엔 출장을 놓쳤다。 졸업 후에는 니혼 대학에 진학했다。
당시 니혼 대학은 부진한 시기였으며, 도토 대학 야구 리그에서는 1974년 추계 리그 후에 2부 강등(1시즌만)도 경험했다. 하지만 1976년 추계 리그에서는 8승 4패, 시즌 78탈삼진(도토 대학 야구 리그 엔코 히로시의 83탈삼진에 이은 당시 2위)을 기록했다。 1974년, 1976년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 1975년 제11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1부 리그 통산 62경기 등판, 22승 21패, 방어율 2.48, 242탈삼진을 기록했다. 대학 동기로는 이즈미 타카키(히타치 제작소 - 니혼 대학 감독) 등이 있다.
2.2. 프로 선수 시절
한큐 브레이브스·오릭스 브레이브스·오릭스 블루웨이브 (1977년 ~ 1998년)
* 1977년 5월 21일 일본 햄 파이터스와의 경기(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 9회 1실점으로 완투하여 프로 첫 승리, 9월 4일 롯데 오리온스와의 경기(메이지 진구 야구장, 더블헤더 제1경기)에서 프로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 시즌 7승을 거두며 신인왕으로 선출되었다。 1977년 일본 시리즈에도 등판했다. 12월 16일 계약 갱신에서는 70% 증가한 추정 연봉 5.2에 사인했다。
* 1978년에는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시즌에서도 13승을 기록하고 처음으로 규정 투구 이닝 (리그 13위, 방어율 3.62)을 달성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벤치에 들어갔지만 부상으로 인해 등판하지 못했다.
* 1979년 10승을 기록했지만, 1980년은 4승 13패로 크게 부진했다。
* 1981년에는 허리 통증으로 인해 1군 등판이 없어 한때 임의 은퇴 처리되었다。
* 1982년에 구원 투수로 4승 13세이브, 이듬해 1983년에도 1승 16세이브로 수호신으로 부활했다。
* 1984년부터 선발 투수로 복귀하여 4월 17일 일본 햄과의 경기(고라쿠엔 구장)에서 9회 7실점으로 시즌 첫 승리이자 4년 만의 완투 승리를 거두었다。 5월 8일 일본 햄과의 경기(고라쿠엔 구장)에서는 1979년 4월 12일 이후 첫 완봉승, 6월 28일 난카이 호크스와의 경기(오사카 스타디움)에서 시즌 두 번째 완봉으로 10승을 거두었다。 9월 4일 일본 햄과의 경기(고라쿠엔 구장), 9월 19일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경기(오카야마현 야구장)에서 총 2번의 완봉승을 거두며, 시즌 17승 6패, 방어율 3.51(리그 5위), 리그 최다 136 탈삼진으로, 그 해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12월 4일 계약 갱신에서는 약 130% 증가한 추정 연봉 25에 사인했다。
* 1985년 6월 5경기에 등판하여 4번의 완투승을 포함한 5승을 거두며 첫 월간 MVP로 선정되었다。 9월 26일 세이부와의 경기(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 9회 4실점 완투승으로 시즌 20승을 거두며, 시즌 21승으로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2년 연속 리그 최다 탈삼진을 기록하고 리그 우승팀 세이부와의 경기에서 최다 8승을 거두었다。 이 해의 방어율은 퍼시픽 리그 10위인 4.29였으며, 이는 다승왕을 수상한 투수로는 1 리그 시대 및 센트럴 리그 측 수상자 전원을 포함한 역대 최악의 기록이다(2018년 시점). 그의 뒤를 이어 퍼시픽 리그에서 2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2003년 사이토 가즈미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10월 11일, 출신지인 오쿠시리초에서 1985년도 마을 공로상을 수여받았다。 12월 19일, 계약 갱신에서 45% 증가한 추정 연봉 38에 사인했다。
* 1986년 4월 10일 난카이와의 경기(오사카 스타디움)에서 9회 1실점으로 시즌 첫 승리를 완투로 장식했다。 5월 4일 세이부와의 경기(세이부 구장), 5월 10일 난카이와의 경기(오사카 스타디움)에서 2경기 연속 완봉승을 기록했지만, 6월 16일 오른 팔꿈치를 다쳐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복귀 후 7월 28일 세이부와의 경기(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 완봉승。 8월 17일 킨테츠 버팔로스와의 경기(후지이데라 구장, 9회 7실점), 8월 24일 난카이와의 경기(오사카 스타디움, 9회 1실점), 8월 28일 일본 햄과의 경기(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완봉)에서 승리하며 3경기 연속 무사사구 완투를 기록했다。 시즌 14승 6패, 방어율 2.83의 좋은 성적을 기록, 최우수 방어율 타이틀을 획득했다。 12월 16일 계약 갱신에서는 3% 감소한 추정 연봉 37을 제시받았으나 유보, 이듬해 1987년 1월 13일 두 번째 계약 갱신에서 현상 유지인 추정 연봉 38에 사인했다。
* 1987년에는 12년 연속으로 개막 투수를 맡았던 야마다 히사시에 이어 프로 입단 11년 만에 처음으로 개막 투수를 맡았다。 4월 10일 난카이와의 개막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는 5회 6실점, 4점 뒤진 채 강판했지만 9회말에 부머 웰스의 만루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최종 결과는 6-6, 9회 시간 초과 무승부였다。 4월 26일 일본 햄과의 경기(고라쿠엔 구장)에서 9회 5실점 완투로 시즌 첫 승리, 5월 16일 난카이와의 경기(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는 시즌 유일의 완봉승을 거두었지만, 시즌은 7승에 그쳤다.
* 1988년 4월 8일 킨테츠와의 개막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는 9회 초까지 아와구치 겐지, 벤 오그리비에게 총 3개의 홈런을 맞고 패전 투수가 되었다。 4월 23일 일본 햄과의 경기(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는 9회 1실점 완투로 시즌 첫 승리, 8월 21일 킨테츠와의 경기(후지이데라 구장)에서 8회 3실점으로 시즌 10승을 거두며, 리그 1위인 5완봉(6월 8일 일본 햄과의 경기(도쿄 돔, 무사사구), 6월 15일 킨테츠와의 경기(니시쿄고쿠 구장), 7월 6일 킨테츠와의 경기(니시쿄고쿠 구장), 9월 6일 일본 햄과의 경기(도쿄 돔), 9월 22일 롯데와의 경기(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을 포함하여 동료 호시노 노부유키와 함께 13승을 거두었다。 12월 26일, 계약 갱신에서 10 증가한 추정 연봉 54에 사인했다。
* 1989년 4월 9일 킨테츠와의 개막전(후지이데라 구장)에 개막 투수로서 등판하여 완봉승을 거두자, 5월 20일 롯데와의 경기(아키타시립 야바세 구장)에서 6연승을 기록했다。 6월 종료 시점에서 8승 2패로 순항했지만, 7월 이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중간 구원 투수로 전환했지만 개선되지 않았고, 8월 13일 세이부와의 경기에서는 9회 1점 차 1사 1, 2루 상황에서 구원 등판했지만 2개의 볼넷으로 밀어내기 동점,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에게 역전 끝내기 만루 홈런을 맞고 패전 투수가 되었다。 10월 13일 롯데와의 경기(가와사키 구장)에서 선발 등판, 4회까지 노히트 피칭을 했지만 5회에 무너지며 패배, 팀은 우승을 놓쳤다。 시즌 9승 13패, 7월 이후 1승 11패의 성적이었다.
* 1990년에도 개막은 순조로워 5월까지 6연승을 기록했지만, 6월에 3연패, 7월 1일에 1군 등록이 말소。 올스타 이후 복귀하여 7월 31일 킨테츠와의 경기(오사카 스타디움)에서 후반기 첫 등판을 승리로 장식했지만, 8월에 4연패하여 다시 등록이 말소되어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 12월 18일, 계약 갱신에서 약 4% 감소한 추정 연봉 50에 사인했다。
* 1993년 4월 11일 지바 롯데 마린즈와의 경기(그린 스타디움 고베)에서 7회 초까지 2실점으로 시즌 첫 승리, 5월 28일 다이에와의 경기(후쿠오카 돔)에서 완봉승을 거두었다。 올스타전에 선출되어 7월 21일 제2전(그린 스타디움 고베)에 등판, 2회 4 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지만, 7월 12일에는 출신지 오쿠시리 섬이 홋카이도 남서쪽 지진 및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지진으로 이모를 잃었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역투했다. 8월 11일 일본 햄과의 경기(그린 스타디움 고베)에서 시즌 두 번째 완봉승을 거두었다。 시즌에서도 4년 만에 규정 투구 이닝을 채웠다. 12월 4일, 계약 갱신에서 20 증가한 추정 연봉 90에 사인했다。
* 1994년 4월 12일 일본 햄과의 경기(도쿄 돔)에서 9회 1실점 완투로 시즌 첫 승리。 4월 19일 롯데와의 경기(그린 스타디움 고베)에서는 통산 150승을 완봉으로 장식했다。 올스타전에 선출되어 7월 20일 제2전(나고야 구장)에서 선발로 3회 1실점의 호투를 보였다。 오릭스 투수가 올스타전에 선발 등판한 것은 이 해의 사토 이후 2019년 제2전에서 야마오카 야스히로가 선발 등판할 때까지 25년이 걸렸다. 이후 오릭스의 홈 구장( 교세라 돔 오사카 포함)에서 개최된 올스타전은 2000년 제2전(그린 스타디움 고베), 2008년 제1전(교세라 돔 오사카), 2012년 제1전(교세라 돔 오사카), 2018년 제1전(교세라 돔 오사카)이었지만, 퍼시픽 리그는 모두 오릭스 이외의 투수가 선발 투수를 맡았다. 시즌에서는 개막부터 주축 투수가 부진한 가운데 베테랑 야마오키와 함께 호조를 유지, 전반기 8승 3패로 다승왕 경쟁에도 참가했지만, 후반기 1승도 하지 못하고 5연패로 시즌을 마쳤다. 12월 28일, 계약 갱신에서 25 증가한 추정 연봉 115에 사인했다。
* 1995년, 소속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홈 구장인 고베가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4월 1일 롯데와의 경기(그린 스타디움 고베)에서 40세에 개막 투수로 지명되어, 7회 2실점, 1점 뒤진 채 강판되었지만, 7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연속 2루타로 동점, 8회말 스구로스 도모의 결승 홈런으로 팀은 3-2로 승리했다。 4월 16일 세이부와의 경기에서 9회 1실점 완투로 시즌 첫 승리。 8월 26일 킨테츠와의 경기(후지이데라 구장)에서 당시 NPB 사상 최고령, NPB 사상 최초 40세 이상에서의 노히트 노런을 달성。 팀은 "힘내라 KOBE"를 구호로 1984년 이후 11년 만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야쿠르트와 대결한 일본 시리즈에서는 제1전(그린 스타디움 고베)에 등판했지만 5회 초까지 3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시즌 종료 후 홋카이도 신문 스포츠상의 특별상을 수상했다。 12월 19일, 계약 갱신에서 현상 유지인 추정 연봉 115에 사인했다。
* 1996년 무렵부터 쇠퇴가 현저해져 등판 수가 줄었고, 팀은 퍼시픽 리그 연패를 달성했지만, 일본 시리즈에서는 등판 기회가 없었다.
* 1998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9월 21일에 현역 은퇴를 발표。 9월 29일, 퍼시픽 리그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10월 1일 롯데와의 경기(그린 스타디움 고베)에서 은퇴 경기가 열렸다. 선발 등판하여 2회 2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경기 후 은퇴 행사에서 관계자와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고, 동료들에게 헹가래를 받았다。
낙차가 큰 독특한 변화구는 "요시 볼"이라고 불렸다. 이 공은 손가락이 짧아서 포크볼을 던질 수 없는 사토가 "엄지와 검지로 잡을 수 없다면 엄지와 검지로 잡자"라는 생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시속 140km/h대의 강속구를 은퇴할 때까지 계속 던질 수 있었다. 현역 시절 에비스 노부유키를 지도했다。
3. 지도자 경력
사토 요시노리는 여러 프로 야구팀에서 투수 코치를 역임하며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했다.
| 연도 | 팀명 | 직책 |
|---|---|---|
| 1999년 ~ 2000년 | 오릭스 블루웨이브 | 2군 투수 코치 |
| 2002년 ~ 2004년 | 한신 타이거스 | 1군 투수 코치 |
| 2005년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 2군 투수 코치 |
| 2006년 ~ 2007년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 1군 투수 코치 |
| 2009년 ~ 2014년, 2018년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1군 투수 코치 |
| 2015년 ~ 2017년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1군 투수 수석 코치 |
| 2019년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2군 투수 코치 ("테크니컬 코치") |
* 한신 시절(2002~2004년)에는 이가와 케이를 에이스로 키우고, 요시노 마코토를 승리 공식에 투입하는 등 투수진을 강화했다. 제프 윌리엄스를 마무리 투수로 기용하여 팀을 18년 만의 센트럴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 닛폰햄 시절(2005~2007년)에는 2군 투수 코치로서 다케다 히사와 다르빗슈 유를 육성했다. 1군 투수 코치로 승격한 후에는 팀 평균 자책점을 리그 1위(3.05)로 개선하여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제패에 공헌했다. 구단 사상 최초의 리그 2연패를 달성했으나, 일본 시리즈 이후 계약이 갱신되지 않았다.
* 라쿠텐 시절(2009~2014년, 2018년)에는 다나카 마사히로를 에이스로 키우는 등 투수진을 정비했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을 보좌하며, 2013년 구단 사상 첫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4년에는 호시노 감독의 건강 문제로 감독 대행을 맡아 23경기에서 9승 14패(승률 .391)를 기록했다.
* 소프트뱅크 시절(2015~2017년)에는 "요시볼"을 다케다 쇼타에게 가르쳐 에이스급으로 성장시켰다. 팀 평균 자책점을 개선하고 투수 왕국을 구축하여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가야마 신야를 사이드스로로 전향시켰다.
그는 한신, 라쿠텐 시절 감독이었던 호시노 센이치로부터 "일본 제일의 투수 코치"라는 칭찬을 받았다. 투수 코치를 맡았던 팀 중 오릭스를 제외한 한신, 니혼햄, 라쿠텐, 소프트뱅크에서 우승을 경험하여 '우승 청부인'으로 불린다.
4. 수상 및 타이틀 경력
4.1. 타이틀
| 타이틀 | 횟수 | 연도 |
|---|---|---|
| 다승왕 | 1회 | 1985년 |
| 최우수 평균 자책점 | 1회 | 1986년 |
| 최다 탈삼진 | 2회 | 1984년, 1985년 |
당시는 타이틀이 아니었음. 퍼시픽 리그에서는 1989년부터 타이틀로 제정됨.
4.2. 수상
* 신인왕 (1977년)
* 월간 MVP: 3회 (1985년 6월, 1990년 5월, 1992년 7월)
* 다승왕(1985년)
* 최우수 방어율 (1986년)
* 탈삼진왕: 2회 (1984년, 1985년) ※당시 퍼시픽 리그 표창 없음, 1989년부터 표창
* 오쿠시리 정 공로상 (1985년)
* 홋카이도 신문 스포츠상 특별상 (1995년)
* 퍼시픽 리그 공로상 (1998년)
5. 개인 기록
| 달성일 | 달성 기록 | 상대팀 | 구장 | 비고 |
|---|---|---|---|---|
| 1977년 5월 11일 | 첫 등판 |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스 | 니시쿄고쿠 구장 | 3회초 1사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4와 2/3이닝 무실점 |
| 1977년 5월 11일 | 첫 탈삼진 |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스 | 니시쿄고쿠 구장 | 4회초에 모토이 미쓰오로부터 |
| 1977년 5월 21일 | 첫 선발·첫 승리·첫 완투 승리 | 닛폰햄 파이터스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9이닝 1실점 |
| 1977년 9월 4일 | 첫 완봉 승리 | 롯데 오리온스 | 메이지 진구 야구장 | |
| 1977년 10월 6일 | 첫 세이브 | 긴테쓰 버펄로스 | 오카야마 현 야구장 | 9회초 2사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마무리, 1/3이닝 무실점 |
| 1985년 5월 15일 | 통산 1000투구 이닝 | 긴테쓰 버펄로스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5회초 3아웃에 달성 |
| 1987년 8월 27일 | 통산 1500투구 이닝 | 긴테쓰 버펄로스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7회초 2아웃에 달성 |
| 1987년 8월 27일 | 통산 1000탈삼진 | 긴테쓰 버펄로스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8회초에 벤 오길비로부터 ※역대 74번째 |
| 1988년 4월 30일 | 통산 100승 | 롯데 오리온스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9이닝 4실점(2자책점) 완투 승리 ※역대 95번째 |
| 1991년 4월 28일 | 통산 2000투구 이닝 | 긴테쓰 버펄로스 | 후지이데라 구장 | 2회초 2아웃에 달성 ※역대 69번째 |
| 1993년 7월 9일 | 통산 1500탈삼진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그린 스타디움 고베 | 5회초에 하마나 지히로로부터 ※역대 35번째 |
| 1994년 4월 19일 | 통산 150승 | 지바 롯데 마린스 | 그린 스타디움 고베 | 9이닝 완봉 승리 ※역대 39번째 |
| 1995년 8월 15일 | 통산 2500투구 이닝 | 지바 롯데 마린스 | 그린 스타디움 고베 | 3회초 1아웃에 달성 ※역대 39번째 |
| 1995년 8월 26일 | 노히트 노런 | 긴테쓰 버펄로스 | 후지이데라 구장 | ※역대 61번째 |
| 1998년 9월 26일 | 통산 500경기 등판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그린 스타디움 고베 | 9회초 2사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마무리 ※역대 69번째 |
* 올스타전 출장: 7회 (1978년, 1984년, 1985년, 1988년, 1989년, 1993년, 1994년)
* 다승왕: 1회 (1985년)
* 최우수 평균자책점: 1회 (1986년)
* 탈삼진왕: 2회 (1984년, 1985년) ※당시 연맹 표창 없음, 퍼시픽 리그에서는 1989년부터 표창
* 신인왕 (1977년)
* 월간 MVP: 3회 (1985년 6월, 1990년 5월, 1992년 7월)
* 오쿠시리정 공로상 (1985년)
* 홋카이도 신문 스포츠상 특별상 (1995년)
* 퍼시픽 리그 공로상 (1998년)
6. 기타
* 노히트 노런 : 1995년 8월 26일, 대 긴테쓰 버펄로스 19차전(후지이데라 구장) ※역대 61번째
* 올스타전 출장 : 7회(1978년, 1984년, 1985년, 1988년, 1989년, 1993년, 1994년)
* 다승왕: 1회 (1985년)
* 최우수 평균자책점: 1회 (1986년)
* 탈삼진왕: 2회 (1984년, 1985년) ※당시 연맹 표창 없음, 퍼시픽 리그에서는 1989년부터 표창
* 신인왕 (1977년)
* 월간 MVP: 3회 (1985년 6월, 1990년 5월, 1992년 7월)
* 오쿠시리정 공로상 (1985년)
* 홋카이도 신문 스포츠상 특별상 (1995년)
* 퍼시픽 리그 공로상 (1998년)
* 2022년 5월 31일, DeNA 대 오릭스(요코하마 스타디움)의 레전드 OB 1타석 대결에 등판하여 다시로 토미오와 대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