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곡 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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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상곡 마씨는 중국 허베이성 상곡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회회왕국의 왕 마립이며, 한국의 마씨는 정유재란 때 명나라 원군의 제독 마귀의 후손이다. 마귀는 마립의 원손이자 마록의 아들로, 정유재란에 참전하여 조선을 지원했으며, 그의 증손 마순상은 조선에 귀화하여 전라남도 광주에 정착했다. 현재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에 집성촌이 있으며, 마귀 장군을 중시조로 하여 숭모제를 지내고 있다. 주요 인물로는 조선 헌종 때 하백(夏帛)이란 이름을 받은 마시가, 독립운동가 마두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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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곡 마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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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유형 | 씨족 |
국가 | 한국 |
지역 | 청더시 |
창시자 | 마귀 |
가문 정보 | |
가명 | 상곡 마씨 |
한자 표기 | 上谷 麻氏 |
한국어 표기 | 상곡 마씨 |
역사 | |
원시조 | 마립(麻立) |
시조 | 마귀(麻貴) |
중시조 | 마순상(麻舜裳) |
인물 | |
주요 인물 | 마록, 마순상, 마하백, 마두원, 마호섭 |
통계 | |
2015년 인구 | 232명 |
집성촌 | |
위치 |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송림리 |
2. 역사
정유재란 때 명나라 원군의 제독(提督) 마귀는 회회국 왕 마립의 후손이다. 마귀의 자는 명회(溟回), 호는 이천(而泉), 시호는 충무후(忠武侯)이다. 마귀 장군의 증손 마순상(麻舜裳)은 1627년(조선 인조 5년)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조선에 귀화하였다.[4]
2. 1. 시조 및 초기 역사
회회왕국(回回王國)의 왕이었던 '''마립'''(麻立)이 시조이다. 1512년 회회왕국이 망했을 때 6세였던 태자 마록(麻祿)은 신하의 등에 업혀 안남국(安南國)으로 망명하여 왕에게 의탁, 성장하여 왕의 사위가 되었고, 1522년 중원(中原)으로 들어가 벼슬을 하여 총병관 및 포정사 등을 지냈다. 마록(麻祿)의 자는 윤집(允執), 호는 지지당(知止堂)이다.한국의 마(麻)씨는 정유재란 때 명나라 원군의 제독(提督)이었던 '''마귀'''(麻貴) 장군의 후손이다. 마귀는 회회국(回回國) 왕 마립(麻立)의 원손으로 포정사(布政使) 마록(麻祿)의 아들이다.[4]
2. 2. 정유재란과 마귀
정유재란 때 명나라 원군의 제독(提督) '''마귀'''는 회회국(回回國) 왕 마립(麻立)의 후손으로,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나라가 파견한 구원병의 제독으로 군사를 거느리고 조선에 들어왔다.[4] 그 해 12월 도원수 권율(權慄)과 합세하여 울산 도산성을 포위공격 하였으나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이끄는 왜군에게 패하여 경주로 후퇴하였다.[4] 1598년 만세덕(萬世德)이 거느린 14만 원군을 따라 들어와 또 동래로 내려가 도산성을 공격하였다.[4] 조선에서 뛰어난 용병술로 왜적을 무찔러 국가 위기 회복에 큰 공을 세우고, 왜란이 끝나자 1599년 봄에 본국인 명나라로 돌아갔다.[4]마귀의 아들 마승은(麻承恩)은 대동초병관을 지냈으며, 손자 마암(麻巖)은 조부와 함께 정유재란에 참전한 후 1619년에 후금(後金)과의 심하 전투에서 총병관으로 활약하다가 순절하였다.[4]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송림리에 마귀 장군의 묘단소(墓壇所)를 설치하고 조선 선조(宣祖)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영정(影幀)을 종가에 봉안 춘추로 숭모제를 올리고 있다.[4]
2. 3. 마순상의 귀화와 정착
정유재란 때 명나라 원군의 제독(提督) 마귀 장군의 증손 마순상(麻舜裳)은 산동성 등주의 군량을 배로 순찰 감독하는 남경통판겸 조병독량사였다. 1627년(조선 인조 5년) 9월, 묘도(廟島)에서 풍랑을 만나 3일만에 황해도 풍천에 이르렀는데, 함께 탔던 29명은 모두 죽고 혼자 살아남아 조선에 귀화하였다.[4] 이후 마순상은 풍천에서 홍주를 거쳐 전라남도 광주군 외거면 용산리에 정착하여 함참현감 강덕용(姜德龍)의 딸과 혼인하여 아들 마봉직(麻蓬直)을 두었다.[4] 또한 조선 조정의 도움을 받아 중국 요녕성 태안현에 있던 마암(麻巖) 공의 묘를 평안북도 강계군 압록리로 이장하였다가 다시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동변리 자규산으로 이장하여 보호하고 있다.[4]3. 본관
4. 인물
조선 헌종은 마귀 장군의 9대손 마시가에게 하백(夏帛)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기장 현감을 제수하고 이어 후주도호부사를 제수하였다.[1]
마하백의 아들 마두원은 1890년(고종 27년) 곽산군수가 되고 이어 강화부중군에 봉직하던 중 일본이 침략하여 이에 항거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의병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운동에 앞장서 활약하다가 1919년 4월 10일에 일본 경찰에 붙잡혀 끌려가 옥고를 치르고 세상을 떠났다.[1]
현대 인물로는 포항시 정책보좌관 마호형, 경상대학교 마호섭 교수 등이 있다.[1]
4. 1. 조선 후기
조선 헌종은 마귀 장군의 9대손 마시가에게 삼(麻)은 여름 비단이라는 뜻에서 하백(夏帛)이란 이름을 내리고 비단에는 베틀[機]이 제격이라면서 기장 현감을 제수하고 이어 후주도호부사를 제수하였다.[1]마하백의 아들 마두원은 1890년(고종 27년) 곽산군수가 되고 이어 강화부중군에 봉직하던 중 일본이 침략하여 이에 항거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났다.[1]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의병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운동에 앞장서 활약하다가 1919년 4월 10일에 일본 경찰에 붙잡혀 끌려가 옥고를 치르고 세상을 떠났다.[1]
4. 2. 현대
마두원은 1890년(고종 27년) 곽산군수를 지냈고, 이후 강화부중군으로 봉직하던 중 일본의 침략에 항거하다 관직에서 물러났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는 의병 동지를 모아 독립운동에 앞장섰으며, 1919년 4월 10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세상을 떠났다.[1]현대 인물로는 포항시 정책보좌관 마호형, 경상대학교 마호섭 교수 등이 있다.[1]
5. 세계표
조선 후기 음보(蔭譜)로 관직에 진출한 마두원의 자는 기립(基立)이며, 아버지는 기장(機張) 현감, 후주도호부사를 역임한 마하백(麻夏帛)이고, 외조부는 김계승(金繼升)이다. 『문음진신보(文蔭縉紳譜)』에 기록된 마두원(麻斗元)의 조상 세계는 다음과 같다.[5]
세계 | 1세 | 2세 | 3세 | 4세 | 5세 | 6세 | 7세 | 8세 | 9세 | 10세 | 11세 |
---|---|---|---|---|---|---|---|---|---|---|---|
관직 | 제독(提督) | 대국총병(大國總兵) | 총병(總兵) | 호부낭중(戶部郞中) | 도지휘사(都指揮使) | - | - | - | - | 부사(府使) | 가선(加宣) |
성명 | 마귀 | 마승은(麻承恩) | 마암(麻巖) | 마순상(麻舜裳) | 마봉직(麻蓬直) | 마면잠(麻綿蚕) | 마엽풍(麻葉豊) | 마세복(麻世服) | 마겸(麻縑) | 마하백 | 마두원 |
6. 집성촌
7. 인구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 조사에 따르면, 상곡 마씨는 2000년에 21가구, 63명으로 조사되었고, 2015년에는 232명으로 조사되었다.
8. 관련 문화재
- '''서생포 왜성'''(倭城) :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산54에 위치하며, 문화재자료 제8호이다. 1593년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오 기요마사가 지휘하여 돌로 축성한 전형적인 일본식 석성이다. 계단식으로 쌓았고, 산 정상부에서 아래로 성벽을 겹으로 둘렀으며, 성벽은 기울기가 큰 특징을 가지고 있어 16세기 말 일본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임진왜란 이후 석축 성벽만 남아 있지만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비록 일본이 축성했으나 후에 우리 측에서도 사용했던 성이다. 이 성은 기장왜성과 임랑포왜성, 자성대왜성, 동래왜성 및 울산왜성(학성)과 봉화로 서로 신호 연락하였다 하여 "봉화성"이라고도 불린다. 성터에는 당시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한 충신과 애국지사를 모신 창표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1598년 명나라 마귀 제독이 정유재란 때 왜군을 대파하고 이 성을 탈환했다. 기록에 따르면 1594년 사명대사가 4차례에 걸쳐 이곳을 찾아와 가토오 기요마사와 담판을 벌였으나 결렬되었고, 마침내 명나라 마귀 제독의 도움으로 서생왜성을 탈환했다.[1]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31,04460000,38 합천 송림리 마씨종택 철검'''(陜川 松林里 麻氏宗宅 鐵劍) :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송림리의 마씨종택(麻氏宗宅)에 있는 경상남도문화재 제446호로 지정된 철검(鐵劍)이다. 마호영 씨가 관리하고 있다. 손잡이가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이 철검의 원래 주인은 정유재란 때 명나라 원병으로 온 마귀 제독의 증손인 마순상이다.[1]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31,04190000,38 합천 송림리 충무후 마귀 영정'''(陜川松林里忠武侯麻貴影幀)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19호. 이 영정은 정유재란에 공을 세운 명나라 장수 마귀 제독(1541~1612)의 영정이다. 명주 바탕에 채색을 한 좌안 8분면의 금관조복 차림으로 호피를 두른 의자에 앉은 채 양손을 모아 공수자세로 홀을 쥐고 있는 전신교의좌상이다. 상곡마씨 대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1]
- 상곡마씨 교지(上谷麻氏 敎旨) :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588호[1]
9. 관련 연구
참조
[1]
학술지
A Comparison of the Korean and Japanese Approaches to Foreign Family Names
http://www.sciea.org[...]
2014
[2]
서적
Academy of Korean Studies 상곡마씨 上谷麻氏
http://terms.naver.c[...]
Academy of Korean Studies
[3]
웹사이트
KOSIS
https://kosis.kr/sta[...]
2022-11-19
[4]
웹인용
한국족보박물관 - 상곡 마씨
http://djjunggu.go.k[...]
2015-01-06
[5]
한국학중앙연구원
마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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