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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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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명응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이다.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역학에 통달하고 북학파의 시조로 불렸으며, 영조의 명으로 악보를 수집하여 《대악후보》를 간행하고, 《보만재집》, 《계몽도설》 등을 저술했다. 1778년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태일택이라고 명명했으며, 백두산 등정 기록은 당시 조선 지식인의 백두산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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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응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씨명서명응
명응
한글 이름서명응
한자 이름徐命膺
로마자 표기Seo Myeong-eung
기본 정보
출생1716년
사망1787년
직업학자, 고급 관료
가족 관계
아버지서종제
본관대구 서씨

2. 생애

한성부 출신인 그는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고,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역학에 통달했으며 실학 연구에 전력한 북학파의 시조로 일컬어지며 학자로서 명망이 높았다. 영조의 명으로 악보를 수집하여 《대악후보》를 간행했으며 글씨에도 능했다.[1]

2. 1. 관직 생활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우장사, 정언, 부수찬, 수찬, 헌납, 교리, 함경도어사, 집의, 부응교 등을 거쳤다.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집의, 필선, 부응교, 교리, 응교 등을 거쳐 당상관으로 승진했다. 대사간, 승지, 대사성, 부제학, 이조참의, 황해도관찰사, 예조참판, 대사헌을 거쳤다. 홍문관 제학, 대사성, 대사헌, 부제학, 도승지, 이조참판, 예문관 제학, 예조참판, 갑산부사, 황해도 관찰사, 수군절도사, 형조판서, 병조판서, 이조판서, 예조판서, 지중추부사, 우참찬, 경기도 관찰사, 대제학, 공조판서, 호조판서, 평안도관찰사, 규장각제학, 판중추부사, 수어사, 한성부 판윤 등을 지냈다. 그리고 지경연사와 약방제조도 겸했다.

2. 2. 학문적 업적

역학에 통달했으며 실학 연구에 전력한 북학파의 시조로 일컬어지며 학자로서 명망이 높았다. 영조의 명으로 악보를 수집하여 《대악후보》를 간행했으며 글씨에도 능했다.[1] 저서로는 《보만재집》, 《계몽도설》 등이 있다.[1]

3. 일화

1778년 서명응은 백두산에 올라 산 정상의 연못을 '태일택(太一澤)'이라 명명했다. 태일택은 만물이 태극에서 기원하고 태극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3]

이영훈은 이를 두고, 오늘날 백두산은 한국인의 성지로 여겨지지만,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적 자연관과 역사관을 상징하는 산이었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민족 의식을 공유하게 되면서 한국인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한다.[3]

3. 1. 백두산 등정과 태일택 명명

1778년 백두산 등정 기록에 따르면, 서명응은 백두산 정상에서 "이곳은 중국 영토도 아니고, 조선 영토도 아닌 아득한 변방이며, 천 년에 한두 명이나 오르내릴까 말까 하는 곳인데, 드디어 내가 올라와 보니, 이 큰 연못에 이름이 없으니, 하늘이 나에게 이름을 지으라는 뜻일 것이다"라고 말하며, 태일택(太一澤)이라고 이름 지었다[3]. 태일택은 만물이 태극에 기원을 두고, 만물은 태극으로 귀일한다는 의미이다[3].

이와 관련하여 이영훈은, 현재 백두산은 조선인성지이지만, 조선 시대의 백두산은 성리학의 자연관과 역사관을 상징하는 산이었고 조선인의 성지는 아니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소멸 위기에 처한 조선인이 민족 의식을 공유하면서 백두산이 조선인의 성지로 거듭났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3]. 즉, 백두산 정상의 분화구와 연못을 보고 태극을 떠올린 서명응에게서, 단군이 강림한 곳이라며 흥분하는 오늘날 한국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서명응 외에도 여러 사람이 백두산 등산기를 남겼는데, 어떤 사람은 백두산을 천하에 명성이 높은 중국 곤륜산의 맥을 정통으로 계승하는 산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백두산에서 조선 영토를 내려다보며 기자의 나라가 펼쳐져 있다고 읊었으며, 20세기에 들어 일본의 억압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조선인은 민족이라는 새로운 발견에 이르렀고, 백두산이 민족의 성지로 바뀌었다[3].

3. 2. 백두산 인식 관련 논쟁

1778년 서명응은 백두산 등정 기록을 남겼다. 그는 백두산 정상에서 "이곳은 중국 영토도 아니고, 조선 영토도 아닌 아득한 변방이며, 천 년에 한두 명이나 오르내릴까 말까 하는 곳인데, 드디어 내가 올라와 보니, 이 큰 연못에 이름이 없으니, 하늘이 나에게 이름을 지으라는 뜻일 것이다"라고 말하며, 태일택(太一澤)이라고 이름 지었다.[3] 태일택은 만물이 태극에 기원을 두고, 만물은 태극으로 귀일한다는 의미이다.[3]

이영훈 교수는 이를 근거로, 현재 백두산은 조선인성지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적 자연관과 역사관을 상징하는 산이었고, 조선인의 성지는 아니었다고 주장한다.[3] 즉, 백두산 정상의 분화구와 연못을 보고 태극을 떠올린 서명응에게서 단군이 강림한 곳이라며 흥분하는 오늘날 한국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영훈 교수는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여러 사람이 남긴 백두산 등반기를 분석하며, 어떤 사람은 백두산을 천하에 명성이 높은 중국 곤륜산의 맥을 정통으로 계승하는 산이라 칭송하고, 어떤 사람은 백두산에서 조선 영토를 내려다보며 기자의 나라가 펼쳐져 있다고 읊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20세기에 들어 일본의 억압을 받아 소멸 위기에 처한 조선인이 민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발견했고, 그 과정에서 백두산이 민족의 성지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3]

4. 저서

영조의 명으로 악보를 수집하여 《대악후보》를 간행했으며 글씨에도 능했다. 저서로는 《보만재집》, 《계몽도설》, 箕子外紀|기자외기중국어 등이 있다.[1]

4. 1. 《보만재집》

그는 역학에 통달했으며 실학 연구에 전력한 북학파의 시조로 일컬어지며 학자로서 명망이 높았다. 저서로는 《보만재집》, 《계몽도설》 등이 있다.[1]

4. 2. 《계몽도설》

서명응은 역학에 통달했으며, 실학 연구에 전력한 북학파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학자였다. 저서로는 《보만재집》, 《계몽도설》 등이 있다.[1]

4. 3. 《기자외기》

箕子外紀|기자외기중국어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명응이 저술한 책이다.

참조

[1] 웹사이트 서명응(徐命膺) http://encykorea.aks[...] 2022-08-18
[2] 서적 韓國歷史與現代韓國 https://books.google[...] 台湾商務印書館 2005-08-01
[3] 서적 大韓民国の物語 문예춘추 2009-02-01 # 날짜 형식을 YYYY-MM-DD로 변환. 일자가 없으므로 01로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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