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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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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善, good)은 올바르고 바람직한 자질을 의미하는 철학적 개념으로, 서양 철학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었다. 서양 철학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도덕적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하며,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를 강조하며 정의와 같은 어려운 개념을 인지하는 기초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좋음의 이데아를 비판하며, 실제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윤리를 탐구했다.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선신과 악신의 이원론적 대립을 통해 선과 악을 설명했으며, 기독교 철학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최고선의 개념을 중시했다. 근대 이후 칸트는 선의지를 강조했고, 롤스는 정의를 공정성으로 정의하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선을 규정했다. 선과 악의 이분법은 종교, 윤리학, 철학에서 널리 사용되며, 불교에서는 선과 악을 넘어선 공의 개념을 제시한다. 또한, 생물학에서는 도덕성을 진화의 산물로 보고 연구하며, 한국 사회에서는 유교 사상, 민주화 운동 등을 통해 선의 가치가 강조되고, 사회적 양극화 해소와 공정 경쟁을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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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철학)

2. 서양 철학에서의 선의 역사

모든 언어에는 "올바르거나 바람직한 자질"을 의미하는 "선"(ἀρετή)과 "바람직하지 않은"을 의미하는 "악"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 도덕적 판단에 대한 감각과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구분은 문화 보편성이다.[1]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소크라테스 흉상


서양 문명에서 κακός와 ἀγαθός의 기본적인 의미는 각각 "나쁜, 비겁한"과 "좋은, 용감한, 유능한"이며, 그 절대적인 의미는 기원전 400년경, 특히 데모크리토스를 포함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과 함께 나타난다.[4] 이러한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도덕성은 플라톤의 대화에서 굳어지며, 일신교 사상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다(특히 경건함(τὸ ὅσιον)의 개념을 도덕적 절대성으로 고찰하는 『에우튀프론』에서).

"선(善)" 개념과 의미의 사용 기원에 대한 역사는 다양하지만, 이 주제에 대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주목할 만한 논의는 역사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글라우콘과 소크라테스의 대화(454c–d)에서 나타난다. 정의의 정의와 관련된 어려운 질문에 답하려 할 때, 플라톤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차이와 동일성을 도입"해서는 안 되며, "삶의 특정한 방식과 관련된 단 하나의 동일성과 차이의 형태", 즉 좋음의 이데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이데아는 다른 모든 이데아를 이해하는 기초가 되며, 다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의 대화를 통해(508a–c)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를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태양에 비유한다. 여기서 플라톤은 태양이 어떻게 시야를 제공하는지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매우 중요한 구분을 하는데, "태양은 시야 자체가 아니라" "시야 자체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태양이 가시적인 영역에 있듯이, 좋음의 이데아는 지성적인 영역에 존재한다. 그것은 "알려진 것들에 진실을 부여하고, 아는 자에게 앎의 힘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지식과 진실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지식의 대상"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가 어떻게 정의와 같은 어려운 개념을 인지할 수 있게 하는지 밝힌다. 그는 지식과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소크라테스를 통해(508d–e) "좋음은 더 가치 있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그는 "좋음은 존재가 아니지만" "등급과 힘에서 그것보다 우월"하며, "지식과 진실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508e).[2]

"선(善)" 개념에 대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는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글라우콘과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통해 좋음의 이데아를 처음 언급한다.(454c–d)[2] 플라톤은 정의를 정의하는 것과 같은 어려운 질문에 답할 때, 좋음의 이데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좋음의 이데아는 다른 모든 이데아를 이해하는 기초가 되며, 다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의 대화에서(508a–c)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를 태양에 비유한다.[2] 태양이 시야를 제공하는 것처럼, 좋음의 이데아는 지성적인 영역에 존재한다. 플라톤은 "태양은 시야 자체가 아니라" "시야 자체의 원인"이라고 구분한다. 좋음의 이데아는 "알려진 것들에 진실을 부여하고, 아는 자에게 앎의 힘을 주는 것"이며, "지식과 진실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지식의 대상"이다.[2]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가 정의와 같은 어려운 개념을 인지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지식과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소크라테스를 통해(508d–e) "좋음은 더 가치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좋음은 존재가 아니지만" "등급과 힘에서 그것보다 우월"하며, "지식과 진실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508e).[2]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주요 윤리 작품인 『에우데모스 윤리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플라톤의 좋음의 이데아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여러 번 논한다.[3]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좋음의 이데아가 물리적 세계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플라톤은 현존하는 세계의 어떤 것에도 "좋음"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3] 플라톤의 좋음의 이데아가 물리적 세계의 사건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좋음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믿을 이유가 없으며, 따라서 좋음의 이데아는 인간의 윤리와 무관하다.[3]

파라바하르(Faravahar, 또는 페로하르)는 조로아스터교의 주요 상징 중 하나이며, ''프라바시''(수호령)를 묘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대 페르시아 동부 지역에서 조로아스터는 초기 이란 신들의 판테온을 두 개의 상반된 힘으로 단순화했다.[5] 이들은 서로 갈등 관계에 있었는데, 선신은 아후라 마즈다(계몽적인 지혜)이고 악신은 앙그라 마이뉴(파괴적인 영)였다.[5]

이러한 이원론적 사상은 서양 세계에서 여러 종파를 낳은 종교로 발전했으며, 일부 종파는 물질 세계를 피하고 영적인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이원론적 믿음을 가지기도 했다. 영지주의적 아이디어는 많은 고대 종교에 영향을 미쳤으며,[6] ''영지''(다양하게 깨달음, 구원, 해탈, 또는 "하느님과의 일치")은 개인적인 빈곤에 이를 정도로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성적 금욕 (''신자''에게는 가능한 한, ''입문자''에게는 완전히),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돕는 방식으로 부지런히 지혜를 추구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7]

기독교 철학에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경 무오설과 성경 무오성의 관점에서 악을 이해하고,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최고선의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침묵 속의 관상은 선의 개념을 이해하는 방법이었다.[8]

많은 중세 기독교 신학자들은 '선과 악'의 기본 개념을 확장하거나 축소하여 여러 정의를 내렸다.[9] 여기에는 칭찬이나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개인적 선호나 주관적 판단, 신정 정치 당국의 판단, 신의 섭리에서 비롯되어 성인 또는 지옥으로 인도하는 신법에서 발생하는 종교적 의무, 집단의 생존이나 부를 향상시킬 수 있는 문화적 기준, 강력한 정서적 반응을 유발하는 자연법 또는 행동,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법률 등이 포함된다.

세인트 조셉 가톨릭 교회 (켄터키주 센트럴 시티)의 토마스 아퀴나스 스테인드글라스 창


기독교 철학에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경 무오설과 성경 무오성의 관점에서 악을 이해하고,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최고선의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침묵 속의 관상은 선의 개념을 이해하는 방법이었다.[8]

많은 중세 기독교 신학자들은 '선과 악'의 기본 개념을 확장하거나 축소하여 여러 정의를 내렸다.[9] 여기에는 칭찬이나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개인적 선호나 주관적 판단, 신정 정치 당국의 판단, 신의 섭리에서 비롯되어 성인 또는 지옥으로 인도하는 신법에서 발생하는 종교적 의무, 집단의 생존이나 부를 향상시킬 수 있는 문화적 기준, 강력한 정서적 반응을 유발하는 자연법 또는 행동,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법률 등이 포함된다.

2. 1.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선(善)" 개념과 의미의 사용 기원에 대한 역사는 다양하지만, 이 주제에 대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주목할 만한 논의는 역사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글라우콘과 소크라테스의 대화(454c–d)에서 나타난다. 정의의 정의와 관련된 어려운 질문에 답하려 할 때, 플라톤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차이와 동일성을 도입"해서는 안 되며, "삶의 특정한 방식과 관련된 단 하나의 동일성과 차이의 형태", 즉 좋음의 이데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이데아는 다른 모든 이데아를 이해하는 기초가 되며, 다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의 대화를 통해(508a–c)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를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태양에 비유한다. 여기서 플라톤은 태양이 어떻게 시야를 제공하는지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매우 중요한 구분을 하는데, "태양은 시야 자체가 아니라" "시야 자체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태양이 가시적인 영역에 있듯이, 좋음의 이데아는 지성적인 영역에 존재한다. 그것은 "알려진 것들에 진실을 부여하고, 아는 자에게 앎의 힘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지식과 진실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지식의 대상"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가 어떻게 정의와 같은 어려운 개념을 인지할 수 있게 하는지 밝힌다. 그는 지식과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소크라테스를 통해(508d–e) "좋음은 더 가치 있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그는 "좋음은 존재가 아니지만" "등급과 힘에서 그것보다 우월"하며, "지식과 진실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508e).[2]

플라톤과 대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주요 윤리 작품인 『에우데모스 윤리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좋음의 이데아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여러 번 논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좋음의 이데아가 물리적 세계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플라톤은 현존하는 세계의 어떤 것에도 "좋음"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좋음의 이데아가 물리적 세계의 사건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좋음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믿을 이유가 없으며, 따라서 좋음의 이데아는 인간의 윤리와 무관하다.[3]

2. 1. 1.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



서양 문명에서 κακός와 ἀγαθός의 기본적인 의미는 각각 "나쁜, 비겁한"과 "좋은, 용감한, 유능한"이며, 그 절대적인 의미는 기원전 400년경, 특히 데모크리토스를 포함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과 함께 나타난다.[4] 이러한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도덕성은 플라톤의 대화에서 굳어지며, 일신교 사상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다(특히 경건함(τὸ ὅσιον)의 개념을 도덕적 절대성으로 고찰하는 『에우튀프론』에서).

2. 1. 2. 플라톤의 좋음의 이데아



"선(善)" 개념에 대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는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글라우콘과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통해 좋음의 이데아를 처음 언급한다.(454c–d)[2] 플라톤은 정의를 정의하는 것과 같은 어려운 질문에 답할 때, 좋음의 이데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좋음의 이데아는 다른 모든 이데아를 이해하는 기초가 되며, 다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의 대화에서(508a–c)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를 태양에 비유한다.[2] 태양이 시야를 제공하는 것처럼, 좋음의 이데아는 지성적인 영역에 존재한다. 플라톤은 "태양은 시야 자체가 아니라" "시야 자체의 원인"이라고 구분한다. 좋음의 이데아는 "알려진 것들에 진실을 부여하고, 아는 자에게 앎의 힘을 주는 것"이며, "지식과 진실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지식의 대상"이다.[2]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가 정의와 같은 어려운 개념을 인지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지식과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소크라테스를 통해(508d–e) "좋음은 더 가치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좋음은 존재가 아니지만" "등급과 힘에서 그것보다 우월"하며, "지식과 진실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508e).[2]

2. 1. 3.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주요 윤리 작품인 『에우데모스 윤리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플라톤의 좋음의 이데아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여러 번 논한다.[3]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좋음의 이데아가 물리적 세계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플라톤은 현존하는 세계의 어떤 것에도 "좋음"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3] 플라톤의 좋음의 이데아가 물리적 세계의 사건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좋음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믿을 이유가 없으며, 따라서 좋음의 이데아는 인간의 윤리와 무관하다.[3]

2. 2. 고대 서양 종교



고대 페르시아 동부 지역에서 조로아스터는 초기 이란 신들의 판테온을 두 개의 상반된 힘으로 단순화했다.[5] 이들은 서로 갈등 관계에 있었는데, 선신은 아후라 마즈다(계몽적인 지혜)이고 악신은 앙그라 마이뉴(파괴적인 영)였다.[5]

이러한 이원론적 사상은 서양 세계에서 여러 종파를 낳은 종교로 발전했으며, 일부 종파는 물질 세계를 피하고 영적인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이원론적 믿음을 가지기도 했다. 영지주의적 아이디어는 많은 고대 종교에 영향을 미쳤으며,[6] ''영지''(다양하게 깨달음, 구원, 해탈, 또는 "하느님과의 일치")은 개인적인 빈곤에 이를 정도로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성적 금욕 (''신자''에게는 가능한 한, ''입문자''에게는 완전히),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돕는 방식으로 부지런히 지혜를 추구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7]

2. 3. 중세 시대

기독교 철학에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경 무오설과 성경 무오성의 관점에서 악을 이해하고,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최고선의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침묵 속의 관상은 선의 개념을 이해하는 방법이었다.[8]

많은 중세 기독교 신학자들은 '선과 악'의 기본 개념을 확장하거나 축소하여 여러 정의를 내렸다.[9] 여기에는 칭찬이나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개인적 선호나 주관적 판단, 신정 정치 당국의 판단, 신의 섭리에서 비롯되어 성인 또는 지옥으로 인도하는 신법에서 발생하는 종교적 의무, 집단의 생존이나 부를 향상시킬 수 있는 문화적 기준, 강력한 정서적 반응을 유발하는 자연법 또는 행동,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법률 등이 포함된다.

2. 3. 1.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기독교 철학에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경 무오설과 성경 무오성의 관점에서 악을 이해하고,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최고선의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침묵 속의 관상은 선의 개념을 이해하는 방법이었다.[8]

많은 중세 기독교 신학자들은 '선과 악'의 기본 개념을 확장하거나 축소하여 여러 정의를 내렸다.[9] 여기에는 칭찬이나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개인적 선호나 주관적 판단, 신정 정치 당국의 판단, 신의 섭리에서 비롯되어 성인 또는 지옥으로 인도하는 신법에서 발생하는 종교적 의무, 집단의 생존이나 부를 향상시킬 수 있는 문화적 기준, 강력한 정서적 반응을 유발하는 자연법 또는 행동,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법률 등이 포함된다.

2. 4. 근대 이후

2. 4. 1.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

이마누엘 칸트는 그의 저서 ''실천 이성 비판''에서 선의지를 강조하며, 도덕 법칙에 따르는 행위가 선이라고 주장했다.

2. 4. 2. 롤스의 정의론

존 롤스는 저서 《정의론》에서 정의를 '공정성'으로 정의하고, 절차적 관점에서 공정한 분배를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재화 분배에 있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원초적 입장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개인의 특수한 정보를 배제하여 객관적인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절차를 의미한다. 롤스는 원초적 입장에서 합의된 사회적 원칙이 곧 선이라고 보았다.

3. 선과 악의 대립

종교, 윤리학, 철학에서 "선과 악"은 매우 흔한 이분법이다.[10] 마니교와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영향을 받은 문화에서 악은 일반적으로 선의 대립되는 반대로 인식되며, 선이 우세하고 악은 패배해야 한다.[10]

종교적 개념으로서 선과 악의 이분법은 서구 문화에서 발전되어, ''선''은 생명, 자선, 지속성, 행복, 사랑, 정의와 연결된다.[11] 반면 ''''은 의도적인 잘못, 차별, 굴욕, 파괴성, 폭력 등과 관련된다.[11] 인간 조건의 딜레마와 선과 악의 활동을 모두 수행하는 능력이 있다.[12]

다섯 개의 ''악의 제거'' 그림 중 하나는 불교의 여덟 수호신 중 한 명인 센단 켄다츠바가 악을 물리치는 모습을 묘사한다.

3. 1. 종교적 관점

종교, 윤리학, 철학에서 "선과 악"은 매우 흔한 이분법이다.[10] 마니교와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영향을 받은 문화에서 악은 일반적으로 선의 대립되는 반대로 인식되며, 선이 우세하고 악은 패배해야 한다.[10]

종교적 개념으로서 선과 악의 이분법은 서구 문화에서 발전되어, ''선''은 생명, 자선, 지속성, 행복, 사랑, 정의와 연결된다.[11] 반면 ''''은 의도적인 잘못, 차별, 굴욕, 파괴성, 폭력 등과 관련된다.[11] 인간 조건의 딜레마와 선과 악의 활동을 모두 수행하는 능력이 있다.[12]

3. 2. 불교적 관점

불교의 영적 영향이 있는 문화권에서는 선과 악의 이분법을 넘어선 의 개념을 제시한다.[10] 이는 선과 악이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전체, 즉 통일성, 일원성, 일원론의 두 부분임을 인식하는 것이다.[10]

4. 생물학에서의 도덕성 연구

일부 생물학자(에드워드 O. 윌슨, 제레미 그리피스, 데이비드 슬론 윌슨, 프란스 드 발)는 도덕을 생물학 분야에서 다루어야 할 중요한 문제로 간주한다. 이들은 도덕성을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적 본능으로 간주하며, 인간의 선과 악의 행동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5. 한국 사회와 선

5. 1. 유교 사상과 선

5. 2. 민주화 운동과 정의

5. 2. 1. 5.18 민주화운동과 광주 정신

5.18 민주화운동은 국가 폭력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항쟁이었다. '광주 정신'은 공동체 의식과 연대, 정의를 추구하는 한국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5. 3. 현대 사회의 문제와 선의 역할

5. 3. 1.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

소득 불평등, 교육 기회 격차, 지역 간 불균형 등 다양한 형태의 양극화와 불평등은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5. 3. 2. 공정 경쟁과 기회 균등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과 기회 균등 보장은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적 이동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참조

[1] 서적 Human Universals http://condor.depaul[...] Temple University Press 1991
[2] 서적 Republic Hackett Publ. Co 1992
[3] 서적 Plato on Knowledge and Forms https://archive.org/[...]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4] 논문 Democritus and the Origins of Moral Psychology 1985
[5] 간행물 1979
[6] 서적 The Penguin Dictionary of Religion Penguin Books UK
[7] 서적 Gnostic Philosophy: From Ancient Persia to Modern Times Inner Traditions – Bear & Company 2005
[8] 서적 Introduction to the Reading of Hegel 1980
[9] 서적 Good and Evil: Interpreting a Human Condition Fortress Press / Vanderbilt University
[10] 서적 Buddhist-Christian Dialogue: Mutual Renewal and Transformation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6
[11] 서적 Overcoming evil: genocide, violent conflict, and terrorism Oxford University Press
[12] 서적 The Book of Real Answers to Everything!
[13] 서적 The Social Conquest of Earth https://archive.org/[...] W. W. Norton & Company
[14] 서적 The Book of Real Answers to Everything!
[15] 서적 Evolution for Everyone: How Darwin's Theory Can Change the Way We Think About Our Lives Random House Publishing
[16] 서적 Moral behavior in animals http://www.ted.com/t[...] 2012-11-20
[17] 백과사전 선·악 https://ko.wikisou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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