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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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蘇), 소(邵), 소(蕭)는 한국과 중국의 성씨이다.
'''소(蘇)'''씨는 중국과 한국에서 사용되는 성씨이다.
소(邵)씨는 중국과 한국에서 사용되는 성씨이다.
소(蘇)씨는 2015년 대한민국 인구 67위로, 진주를 본관으로 한다. 소벌도리의 후손 알천이 시조이며, 고려 시대 소희철과 조선 시대 소세량, 소세양 형제가 대표적이다. 중국 소씨는 여러 계통이 있으며, 당나라 장군 소정방 등이 있다.
소(邵)씨는 중국 박릉에서 기원하며, 2015년 대한민국 인구는 1,309명이다. 평산 소씨가 대표적이며, 시조는 소옹, 중시조는 소태보이다.
소(蕭)씨는 2015년 대한민국 인구 15명으로, 중국과 한국에 모두 존재한다. 요나라 황후들이 소씨였으며, 고려 시대 문헌에도 등장한다.
2. 소(蘇)씨
중국에서 소(蘇)씨는 성씨 순위 41위이며, 초나라에 병합된 소나라, 고대 중국의 소수민족, 북위 선비족 등 대략 7가지 계통이 있다. 위구르와 유사한 유고족(裕固族), 이족, 창족 등도 소(蘇)씨를 사용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 대만 가수 겸 배우 소유붕(蘇有朋)이 있다.[1]
한국의 소(蘇)씨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을 참조하라.
2. 1. 한국의 소(蘇)씨
'''소(蘇)'''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52,427명으로 조사되어 한국의 성씨 인구 67위이다. 진주 소씨 단본이다.
요임금의 후손인 기곤오가 소성의 하백에 봉해지고 기원전 2266년 소성이 단군조선에 영속되었으며 기씨를 소씨로 고쳤다고 한다. 소곤오(기곤오)의 후손이 신라 6부 촌장 중 한 명인 돌산 고허촌(突山 高墟村)의 소벌도리(蘇伐都利)라고 전해진다. 진주 소씨는 소벌도리의 후손인 알천을 시조로 한다.
2. 1. 1. 진주 소씨
신라 진덕왕 때 상대등(上大等)을 지낸 소벌도리의 25세손 알천이 소경(蘇慶)으로 개명하여 시조가 되었다.[1]
15세손 소계령은 고려 헌종 때 이부상서가 되었으며 그의 딸은 회순왕후(懷純王后)로 봉해져 진산부원군이 되었다.[1]
고려 말기 상호군(上護軍)을 지낸 '''소희철'''(蘇希哲)이 중시조이다.[1]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을 지낸 소세량(蘇世良)과 좌찬성(左贊成)에 이른 소세양(蘇世讓) 형제는 소희철의 9세손이다.[1]
2. 2. 중국의 소(蘇)씨
중국에서 소(蘇, Su)씨는 성씨 순위 41위이며, 대략 7가지 계통이 있다. 초나라에 병합된 소나라, 고대 중국의 소수민족, 북위 선비족 3가지 계통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위구르와 유사한 유고족(裕固族), 이족, 창족 등이 창성했다고 한다. 인물로는 당나라의 장군 소정방(蘇定方), 대만의 가수 겸 배우 소유붕(蘇有朋)이 있다.[1]
3. 소(邵)씨
소(邵)씨는 중국 박릉(博陵: 산둥성 동림도 박평현의 제나라 때 지명)에서 계출된 성씨이다. 주(周)나라 왕족인 소공(召公)이 소(召; 陝西 歧山) 지역을 식읍으로 하여 주 성왕(成王) 때에 삼공(三公)의 위(位)에 올랐으며, 태보(太保)를 지냈다고 한다. 소공의 후예가 소(召)자에 우부방변(阜)을 붙여서 소(邵)를 성(姓)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평산 소씨 시조 소옹은 중국에서 영천 단련추관을 지내고 신안백에 봉해졌으며[1], 중시조 소태보는 고려 문종때 호부시랑을 거쳐 여러 관직을 지냈고, 숙종때 문하시중으로 치사하였다.[2]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소(邵)씨는 1,309명으로 조사되었다.
3. 1. 한국의 소(邵)씨
소(邵)씨는 중국 박릉(博陵: 산둥성 동림도 박평현의 제나라 때 지명)에서 계출된 성씨이다. 주(周)나라 왕족인 소공(召公)이 소(召; 陝西 歧山) 지역을 식읍으로 하여 주 성왕(成王) 때에 삼공(三公)의 위(位)에 올랐으며, 태보(太保)를 지냈다고 한다. 소공의 후예가 소(召)자에 우부방변(阜)을 붙여서 소(邵)를 성(姓)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소(邵)씨는 1,309명으로 조사되었다.
평산 소씨는 한국의 소(邵)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3. 1. 1. 평산 소씨
평산 소씨(平山邵氏)의 시조(始祖) '''소옹'''(邵雍)은 중국에서 영천 단련추관(潁川團鍊推官)을 지내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신안백(新安伯)에 봉해졌다고 한다.[1]
중시조 '''소태보'''(邵台輔)는 고려 문종 때 호부시랑(戶部侍郞)을 거쳤고, 선종 때 형부상서(刑部尙書),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 이부상서(吏部尙書), 좌복야(左僕射)를 지냈다. 1094년에 헌종이 즉위하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 상주국(上柱國)이 되었으며, 숙종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치사하였다.[2]
3. 2. 중국의 소(邵)씨
주나라 왕족인 소공(召公)은 소(召; 산시성(陝西省) 치산현(岐山縣)) 지역을 식읍으로 하였고 주 성왕(成王) 때에 삼공(三公)의 지위에 올랐으며, 태보(太保)를 지냈다고 한다. 소공의 후예가 소(召)자에 우부방변(阜)을 붙혀서 소(邵)를 성(姓)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4. 소(蕭)씨
소(蕭, Xiao)씨는 한국과 중국의 성씨로 다양한 계통이 있다. 그 가운데 영성 계열도 있다. 요나라(거란) 예지황후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황후들이 소(蕭)씨였는데, 요나라 안에서 본래는 한 가지 계통이었으나, 후에 최고 공족의 성을 야율아보기와 소(蕭) 두 성씨로 일원화하여 계통이 증가하였다. 고려가 거란과 전쟁, 교섭하였을 때 문헌에 등장한다.
4. 1. 한국의 소(蕭)씨
한국의 소(蕭)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5명으로 조사되었다.소(蕭, 병음 Xiao)씨는 한국과 중국의 성씨로 다양한 계통이 있다. 그 가운데 영성 계열도 있다. 요나라(거란) 예지황후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황후들이 소(蕭)씨였는데, 요나라 안에서 본래는 한가지 계통이었으나, 후에 최고 공족의 성을 야율아보기와 소(蕭) 두 성씨로 일원화하여 계통이 증가하였다. 고려가 거란과 전쟁, 교섭하였을 때 문헌에 등장한다.
4. 2. 중국의 소(蕭)씨
소(蕭)씨는 중국의 성씨로 여러 계통이 있다. 영성 계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요나라(거란)의 예지황후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황후가 소(蕭)씨였다. 요나라에서는 본래 한 가지 계통이었으나, 이후 최고 공족의 성을 야율과 소(蕭) 두 성씨로 일원화하면서 계통이 늘어났다. 고려가 거란과 전쟁, 교섭을 진행했을 때 문헌에 소(蕭)씨가 등장한다.참조
[1]
웹인용
평산 소씨
http://www.jokbo.re.[...]
[2]
역사기록
高麗史』 卷 九十五, 列傳 八
http://db.history.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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