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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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광래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이자 지도자, 행정가이다. 선수 시절 포항제철, 상무, 대우 축구단에서 활약하며 1980년 AFC 아시안컵, 1986년 FIFA 월드컵 등에 출전했다. 지도자로서 대우 로얄즈, 안양 LG 치타스, 경남 FC,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으며, 2014년 대구 FC 대표이사 겸 단장으로 선임되어 축구 행정가로 활동했다.

조광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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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의 조광래
선수 정보
풀 네임조광래
출생일1954년 3월 19일
출생지진주시, 경상남도
1.71m
포지션중앙 미드필더
유소년 클럽진주고등학교 (1971–1973)
대학교연세대학교 (1974–1977)
프로 클럽POSCO FC (1978–1979)
ROK Army (징병) (1980–1981)
대우 로얄즈 (1982–1987)
클럽 출장 및 득점? (?) (포항 스틸러스)
? (?) (ROK Army)
44 (3) (대우 로얄즈)
국가대표 B팀대한민국 B (1976)
국가대표팀대한민국 (1977–1986)
국가대표팀 출장 및 득점100 (15)
국가대표팀 출장 및 득점99 (15)
감독 정보
감독 경력대우 로얄즈 (코치) (1987–1992)
대한민국 (코치) (1992)
대우 로얄즈 (1992–1994)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1995–1997)
안양 LG 치타스 (1999–2004)
경남 FC (2007–2010)
대한민국 (2010–2011)
대구 FC (단장 겸 대표이사) (2014–)
수상 내역
FISU 월드 유니버시아드금메달 (1976 우루과이)
아시안 게임금메달 (1978 방콕)
금메달 (1986 서울)
AFC 아시안컵은메달 (1980 쿠웨이트)
동메달 (2011 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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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경상남도 진주시 출생으로 봉래초등학교, 진주중학교, 진주고등학교(1971년~1974년), 연세대학교(1974년~1978년)를 졸업하였다. 선수 시절 자로 잰 듯한 정교한 패스와 폭넓은 시야, 영리한 두뇌 플레이로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이 붙었다. 진주고등학교를 특기생이 아닌 입학 시험으로 합격하여 진학했다.

연세대학교 졸업 후 1978년 포항 제철 축구단(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다. 1980년 상무에 입대해 군 복무를 마친 뒤, 1982년 부산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1987년 은퇴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서 1986년 월드컵 멕시코 대회에 출전했다.

*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조광래는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와 몸싸움을 벌이다 넘어져 자책골을 기록했다. 허정무가 곧바로 골을 넣어 추격했지만, 결국 2-3으로 패했다.

* 1976년 세계 대학 축구 선수권 대회에 대학생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브라질, 칠레, 네덜란드를 꺾고 결승에 진출, 파라과이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파라과이 선수 2명이 심판을 폭행하여 퇴장당하고 기권하면서 대한민국이 우승했다.

* 1986년 아시안 게임에서 조광래는 준결승과 결승에서 연속으로 팀의 첫 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조광래는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결승전을 자신의 국제 경기 중 최고의 경기로 꼽았다.

2.1. 클럽 경력

1978년 당시 실업 축구단이었던 포항제철에서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하였다. 1980년 상무에 입대해 군 복무를 마쳤다. 1982년 대우 축구단에서 데뷔하였고, 다음 해 슈퍼리그가 출범하고 대우 축구단이 참여하여 자연스럽게 프로 축구 선수가 되었으며 그 해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1987년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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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소속팀비고
1978년 ~ 1979년포항 제철아마추어
1980년 ~ 1981년상무군 복무
1982년 ~ 1987년대우 로얄즈 

2.2. 국가대표팀 경력

조광래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1980년 AFC 아시안컵, 1986년 FIFA 월드컵 등 많은 대회에 참가했다. A매치 80경기에서 12골을 넣었다.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조광래는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와 몸싸움을 벌이다 넘어져 자책골을 기록했다. 허정무가 곧바로 골을 넣어 추격했지만, 결국 2-3으로 패했다.

1976년 세계 대학 축구 선수권 대회에 대학생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브라질, 칠레, 네덜란드를 꺾고 결승에 진출, 파라과이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파라과이 선수 2명이 심판을 폭행하여 퇴장당하고 기권하면서 대한민국이 우승했다.

1986년 아시안 게임에서 조광래는 준결승과 결승에서 연속으로 팀의 첫 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조광래는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결승전을 자신의 국제 경기 중 최고의 경기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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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별 출장 및 득점 (연도별)
국가대표팀연도출장득점
대한민국1977202
1978153
197954
1980164
1981110
1982100
1985130
1986102
통산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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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별 출장 및 득점
대회출장득점
친선 경기140
기타 대회407
아시안 게임144
아시안컵 예선20
아시안컵50
올림픽 예선64
월드컵 예선160
월드컵30
합계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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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의 국제 경기 득점 목록
No.날짜장소출장상대득점결과대회
11977년 7월 22일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9Indonesia인도네시아어2–05–11977 머데카 대회
21977년 7월 26일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10Burma미얀마어3–04–01977 머데카 대회
31978년 7월 12일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24Japan일본어1–04–01978 머데카 대회
41978년 12월 10일방콕, 태국29Bahrain아랍어1–05–11978 아시안 게임
52–0
61979년 9월 8일서울, 대한민국38Sudan아랍어6–08–01979 코리아컵
71979년 9월 16일인천, 대한민국40Bangladesh벵골어4–09–01979 코리아컵
86–0
99–0
101980년 3월 22일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44Japan일본어2–03–11980 올림픽 예선
113–0
121980년 3월 31일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47Brunei말레이어1–03–01980 올림픽 예선
131980년 4월 3일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48Indonesia인도네시아어1–01–01980 올림픽 예선
141986년 10월 3일서울, 대한민국99Indonesia인도네시아어1–04–01986 아시안 게임
151986년 10월 5일서울, 대한민국100Saudi Arabia아랍어1–02–01986 아시안 게임

3. 지도자 경력

1987년 은퇴 후 대우 로얄즈에서 코치로 지냈고, 1992년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1992년 대우 로얄즈의 감독으로 부임하였지만, 1994년 성적 부진으로 인해 감독직에서 해임됐다. 이후 1995년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활동하다가 김호 감독과 마찰을 빚어 1997년 팀을 떠나게 되었다.

1999년 안양 LG 치타스의 감독에 선임되어 축구계에 복귀하였고, 김호 감독과의 악연 등으로 인하여 수원 삼성 블루윙즈안양 LG 치타스 간의 더비 경기인 지지대 더비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감독 부임 이후 2000년 클럽의 K리그 우승, 2001년 K리그 준우승, 1998년 FA컵 우승을 이끌었다. 2002년 3월 K리그 감독 최고 연봉으로 안양 LG 치타스와 3년 재계약에 합의하였고, 2004년 5월 15일 K리그 통산 7번째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였다. 하지만, 2004년 성적 부진에 따른 책임을 지고 팀에서 물러났다.

2007년 12월 경남 FC 감독에 취임하였다. 부임 첫 시즌, FC 서울과의 홈 경기에서 전반 13분 김은중의 슈팅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으나 부심의 판단에 의해 판정이 번복되었고, 이에 판정에 항의하여 35분여를 지연시켜 전반전을 83분 동안 치르는 사태가 발생하여,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5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5000000KRW의 징계를 받았다. 팀을 2008 대한민국 FA컵 결승전에 진출시켰으나 결승전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9 K리그에선 K리그 챔피언십에 진출하진 못했으나, 팀을 어린 선수 위주로 개편한 후 시즌 후반기에 어린 선수들의 활약으로 무서운 무패행진을 이어가자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2010 K리그 초반, 어린 선수들과 용병 루시오의 활약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던 중,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 경남이 2-1로 리드하는 상황에서 경기 종료 직전 홍진호 주심이 성남에 PK를 선언하자 이에 항의하며 선수들을 불러모으는 등의 행동으로 경기를 지연시켜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4경기 출장 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2010년 7월 20일 대한축구협회는 조광래 감독을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에 내정했으며, 조 감독은 이를 수락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2010년 7월 21일에는 대한축구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조 감독을 대표팀 감독에 선임하고 그의 대표팀 감독과 경남 감독 겸임을 허용했다. 계약은 2년이고 성적에 따라서 월드컵까지 연장할 수 있었다. 그는 경남 FC에서 새로운 감독을 선임할 때까지 경남 감독직을 수행하겠다고 밝혔으나, 2010년 7월 28일에 구단과 상의를 통해 경남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2011년 AFC 아시안컵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C조 2위로 8강에 진출했고, 8강에서 1996년 대회 이후 5회 연속으로 이란을 만나 연장 승부 끝에 윤빛가람의 골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전에서 일본과 전후반 1:1로 마치고 연장 후반 종료 직전 황재원의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차기까지 갔으나 구자철, 이용래, 홍정호의 연속 실축으로 51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은 좌절되었다. 3위 결정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을 3:2로 이기며 2015년 AFC 아시안컵 본선 자동진출권을 획득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2011년 8월 10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일본과의 정기전에서 좋지 않은 경기력으로 0-3으로 패해 이른바 '삿포로 참사' 라 불리며 여론의 뭇매를 받았다.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서 레바논에게 1대 2로 진 뒤, 과도한 해외파 선수들의 차출로 인한 해외파 선수들의 소집 거부와 컨디션 저하의 우려, 그리고 선수단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한축구협회는 이 상황으로는 최종 예선 진출이 힘들다고 판단해 2011년 12월 7일,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경질되었다. 그의 후임으로는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을 맡고 있던 최강희가 긴급 선임되었다.

4. 행정가 경력

2014년 8월 28일 대구 FC의 대표이사 겸 단장으로 선임되어 본격적으로 프런트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노후화되고 전력 시설 등이 좋지 못한 상태였던 대구시민운동장 주경기장을 축구전용구장으로 리모델링할 것을 대구광역시청에 제안했고,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2019년DGB대구은행파크가 탄생했다. DGB대구은행파크대구스타디움과 달리 시내 및 대구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그의 결정은 축구 중흥기와 함께 2019년 K리그1에서 대구 FC의 흥행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 플레이 스타일

조광래는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처럼, 조광래는 컴퓨터가 계산하듯 정확한 패스 기술과 지능적인 판단력을 보여주었다.

6. 기타

조광래는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이던 2011년 5월 23일,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이회택국가대표팀 선수 선발 과정에서 차출 선수 명단을 내팽개쳤다고 말하며 이회택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2011년 12월 26일2012년 2월 24일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전격 경질된 뒤 가진 인터뷰에서는, 이회택 기술위원장이 국가대표팀 선수 선발에 압력을 넣었다고 말했다.

2012년 8월 23일에는 대한축구협회브라질 출신 가마 전 국가대표팀 코치의 잔여 연봉 지급 문제로 법적 분쟁까지 간 것에 대해 비판하며 대한축구협회의 미숙한 행정을 질타했다.

한편, 조광래 축구재단의 이사장이기도 한 조광래는 2012년 11월 10일 FC 바르셀로나와 손을 잡고 유소년 선수를 육성하는 '바르셀로나 조광래 축구교실'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