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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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랍 사회주의는 아랍 민족의 단결, 제국주의 세력 구축, 인민의 안정된 삶을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 사상이다. 1940년대 바트 운동을 통해 시작되었으며, 서구 세속주의와 근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꾸란을 통해 법 원리를 구상하며, 서구식 민주주의와는 다른 정치 이론을 제시했다.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후 아랍 사회주의는 쇠퇴했으며,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경제 개방을 겪었다. 세속주의를 지향하며, 산업 국유화와 국가 주도 경제 개발을 추진했다. 여성 권리 신장을 강조했지만, 이슬람 원리주의와는 대립했다. 아랍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자, 서구 사회, 이슬람 원리주의자로부터 다양한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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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하며 고대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이자 아랍 세계의 주요 국가로, 나일강 유역을 중심으로 문명이 발달하여 피라미드 건설 등 눈부신 문화를 꽃피웠고, 이후 여러 제국의 지배를 거쳐 1952년 혁명 이후 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
아랍 사회주의 | |
---|---|
개요 | |
명칭 | 아랍 사회주의 |
로마자 표기 | al-ishtirākiyya al-'arabiyya |
주요 목표 | 아랍 민족주의 강화 사회 정의 실현 경제 발전 도모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의 독립 |
정치 이념 | 사회주의 범아랍주의 민족주의 반제국주의 |
역사적 배경 | |
배경 |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 몰락 이후 아랍 세계의 민족주의 운동 대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국주의 세력의 영향력 감소와 아랍 독립 국가들의 등장 서구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비판과 사회주의 이념의 확산 |
발전 | 1950년대 ~ 1960년대, 가말 압델 나세르의 나세르주의를 중심으로 확산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알제리 등에서 아랍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권 수립 냉전 시대,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 |
쇠퇴 | 1970년대 이후, 나세르의 사망, 석유 파동, 이스라엘과의 전쟁 패배 등으로 인해 쇠퇴 경제 정책의 실패, 관료주의, 정치적 억압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지지 상실 소련 붕괴 이후, 사회주의 이념의 영향력 약화 |
주요 특징 | |
경제 정책 | 주요 산업의 국유화 또는 사회화 토지 개혁을 통한 농민 지원 계획 경제 체제 도입 사회 복지 제도 확대 |
정치 체제 | 단일 정당 체제 또는 제한적인 다당제 권위주의적인 통치 방식 언론 및 표현의 자유 제한 |
외교 정책 | 반제국주의 노선 견지 비동맹 운동 참여 아랍 국가 간의 협력 강화 추구 |
주요 인물 | |
이론가 | 미셸 아플라크 (바트당 창시자)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주의 창시자)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지도자, 제3의 국제 이론 주창) |
정치인 | 하페즈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
영향 | |
긍정적 영향 |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의 독립에 기여 사회 복지 제도 확대를 통한 사회 불평등 완화 아랍 민족주의 의식 고취 |
부정적 영향 | 권위주의적인 통치 방식과 인권 탄압 경제 정책의 실패와 경제 침체 아랍 국가 간의 갈등 심화 |
현재 | |
현황 | 아랍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은 거의 사라짐. 일부 국가에서 아랍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정치 세력들이 활동 중. 아랍 사회주의는 아랍 세계의 역사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친 사상으로 평가됨. |
2. 역사
아랍 사회주의는 20세기 중반, 나세르주의의 부상과 함께 이집트를 중심으로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 국유화, 토지 개혁, 산업 국유화 등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하며 아랍 세계의 지도자로 떠올랐다.[5]
1958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통합하여 아랍 연합 공화국을 수립하면서 아랍 사회주의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1961년 시리아의 분리 독립으로 통합은 실패했고,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패배하면서 나세르의 권위는 실추되었다.
2. 1. 쇠퇴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 조인 이후, 사다트 대통령이 이끄는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평화 노선을 채택했고, 아랍 사회주의의 영향력은 급속히 위축되었다. 이와 더불어, 1980년대 소련의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아랍 사회주의 진영은 크게 약화되었다.[5]이집트는 1978년 아랍 사회주의 연합의 일당 독재를 포기하고 다당제를 도입, 국민민주당으로 개편하였다. 국민민주당은 친서방 노선, 국가 자산 민영화, 문화 개방 등의 정책을 추진하여 아랍 사회주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이로 인해 수단, 시리아, 리비아 등의 영향력이 축소되었고, 이라크는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이란 공격에 앞장섰다.
1989년 몰타 회담에서 소련이 반제국주의 전선에서 이탈하면서, 아랍 사회주의 정부들은 부분적으로 친서방 외교 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경제적 지원을 받던 아랍 사회주의 진영은 경제 개방 노선을 채택해야 했다. 리비아는 1990년대 초반 이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및 외교 개방 노선을 채택하여 해외 투자와 제한적인 관광을 허용했다.[6] 시리아는 미국과 관계 정상화에 힘썼으며, 이라크는 걸프 전쟁 패배로 경제 성장이 둔화되었다.
2003년 미국의 침략으로 이라크 범아랍주의 정권이 붕괴하고, 2007년 이집트에서 국민민주당 일당 우위제가 종식되었다. 2011년 리비아 사태와 이후 이어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현재 아랍 사회주의 진영의 영향력은 이전보다 축소된 상태이다.
3. 이론
아랍 사회주의의 핵심은 아랍 민족의 단결을 통해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내고, 인민의 안정된 삶을 위해 사회를 사회주의적으로 변혁하는 데 있다. 서구 사회의 세속주의와 근대주의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인 교육 체계와 여성 인권을 확립하여 강력한 근대 국가를 세우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아랍 사회주의는 꾸란의 권위와 신의 존재를 인정하며, 꾸란을 통해 법 원리를 구상하는 관념론에 기초하고 있어, 유물론과 무신론에 기초한 마르크스주의와는 구별된다.
3. 1. 아랍 사회주의에서 꾸란의 역할
아랍 사회주의는 세속주의를 지향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와 이전의 이슬람 사회를 배척하였다. 그러나 범아랍주의 담론에서 꾸란을 기초로 아랍 특유의 자연법을 구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아랍 사회주의 운동은 이러한 기조를 흡수하였다. 미셸 알플라크는 이를 〈샤리아법 체계의 현대화〉라고 칭했는데, 이는 근대 시기 유럽이 성경을 기초로 근대법을 연구하던 역사적 실례에 기초한 것이었다. 미셸 알플라크는 꾸란이 아랍 사회의 자연법을 성립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 문헌이라고 평가했다.3. 1. 1. 꾸란에 기초한 정치 이론
아랍 사회주의는 꾸란의 권위와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꾸란을 통한 법 원리 구상에서 관념론에 기초하고 있기에 유물론과 무신론에 기초한 마르크스주의와 구분된다.미셸 알플라크는 꾸란을 통해 헌법 원리를 구상하려고 했다. 그러나, 알플라크는 서구식 복수정당제에 기초한 정치, 민주주의 정치는 꾸란으로부터 연역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아랍 사회주의의 정치 이론은 서구식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모델과 상당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7]
결과적으로 알플라크는 서구 사회에서 인정되는 민법 체계, 다당제, 다원주의의 가치를 거부하였고, 이 가치들이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수단이라고 여겼다. 성경 연구가이기도 했던 그는 서구 근대법의 기원이라 평가받는 성경의 내용이 그들이 구성한 ‘민주주의’와 무관하다고 하였다.[8] 그는 실정 정치 제도가 꾸란의 원리에서 파생된 현실 정치 원리를 구현할 수 있는 최선 조직의 권력을 광범위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일종의 독재 이론을 구사하였다.[7]
서구의 몇몇 연구자들은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학술적 정당성을 얼마나 갖는지와 무관하게, 미셀 알플라크와 이후 아랍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미시적 관점에서 서구 사회의 정치 제도를 도입하길 꺼려했다고 평가한다. 바트당 정부는 바트당에 의한 일당 독재 통치, 그리고 그러한 통치 수단의 인력으로서 군인·국가노동조합 간부·민간 공무원에 기반한 관료제를 바탕으로 정치 질서를 확립하려 했다.[7]
알플라크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이슬람을 근시안적으로 해석한 결과에 지나지 않으며, 꾸란의 참뜻을 알지 못하는 견해라고 비판했다. 그는 꾸란의 텍스트가 아랍인의 영성과 직접적으로 관계하고 있고, 이 근본적인 이유로 인해 아랍 사회에서 인민이 참된 주인이 되는, 통일된 자주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꾸란 교리의 최종적인 현실 지향성이라 하였다. 따라서, 과거 인민을 착취하고 여성을 억압하던 전근대적 이슬람 정치는 꾸란 텍스트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7]
나세르주의자인 무아마르 카다피는 《녹색서》에서 꾸란의 진정한 정치적 성격은 〈인민에 의한 정치 공동체〉라는 뜻을 가진 자마히리야(جماهيرية) 정치에 있다고 하였다. 즉, 인민이 직접적으로 의사를 표함으로써 정치 향방에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직접적 의견 통합’에 기초한 직접민주주의가 꾸란에서 형상하는 최상의 정치 구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최상의 정치 구조를 이끄는 힘은 〈인민 권력〉이라고 하는 인민의 직접적인 정치권 행사에 있다고 하였다.[9]
3. 1. 2. 꾸란에 기초한 복지 정책
꾸란에 기초한 아랍 법철학은 유럽의 자연법 형성과 유사한 경로를 거쳤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달랐다. 서구의 자연법 체계는 주로 재산권과 이와 관련된 민법을 헌법에서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법 체계로 보았다. 반면, 아랍 사회주의의 꾸란 법체계는 인민의 생활 안정, 복지, 정신 안정을 제공하는 복지법을 헌법에서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법 체계로 규정했다.[10]이러한 흐름은 아랍 세계의 민법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서구 민법 체계는 개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경제 활동에서 정의를 실현하려 했다. 반면 아랍 세계의 민법은 재산권, 개인의 함구적인 자유, 생존권, 더 나아가 전체 인민의 생활 수준 향상과 연결된 구성을 따랐다. 이에 따라 아랍 사회주의의 꾸란법 체계는 토지 개혁, 복지 서비스 무상화, 노동 착취 엄금, 광범위한 이익 공유, 국가의 경제 투자를 옹호하는 법 원리를 파생하였다.[10]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무아마르 카다피는 저서 《녹색서》를 통해 꾸란을 현대 사회주의 정치 체제에 적용하였다. 그는 재산권을 제일 원리로 규정한 서구 법 체계와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분석했고, 자본주의가 꾸란의 절대법을 거스르는 원리라고 주장했다.
3. 2. 세속주의
아랍 사회주의는 서구 사회의 세속주의와 근대주의에 영향을 받아, 근대적인 교육 체계와 여성 인권을 확립하여 강력한 근대 국가를 성립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1]아랍 사회주의는 꾸란의 권위와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꾸란을 통한 법 원리 구상에서 관념론에 기초하고 있기에 유물론과 무신론에 기초한 마르크스주의와는 구별된다.[1] 이슬람교는 사제가 없다는 점에서 아랍 사회주의의 세속주의는 서구의 전통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속주의의 내용과 부분적인 차이점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아랍 사회에서 세속주의는 이전 이슬람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이슬람법 연구가, 이슬람 지도자의 비정규적인 정치 관여를 금지하고 이들의 정치적 특권을 모두 박탈한다는 노선을 의미한다.[1]
따라서 아랍 사회주의가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꾸란에 기초한 정치 원리를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아랍 사회주의 정치는 세속 민간에 의해 이루어지고 예외 없이 이슬람 지도자 및 귀족의 정치적 특권을 배제·박탈했기에 세속주의를 핵심 원리로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1]
3. 3. 근대화의 급진적 추진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를 주축으로 일어난 이집트 혁명 이후, 아랍 사회주의는 아랍 민족의 단결을 통해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내고 인민의 안정된 삶을 위한 사회주의적 변혁을 추구했다. 서구 사회의 세속주의와 근대주의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 교육 체계와 여성 인권 확립을 통해 강력한 근대 국가를 성립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설정했다.아랍 사회주의는 아랍을 서구 경제에 대항할 수 있는 경제권으로 만드는 데 주력했으며, 그 일차적 목표로 기반 시설, 교육, 생활 양식의 근대화를 핵심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아랍 사회주의 정부는 사회 기반 시설 확충, 사회 서비스 인프라 구축, 서구식 행정 제도를 모방하여 국내에 적극 도입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냉전 시기 범아랍주의 진영에 속한 나라들이 이전의 전근대적 이슬람 사회의 낙후성을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11]
3. 4. 산업의 국유화와 국가 주도 경제 개발
1960년대에 걸쳐 이라크, 시리아, 수단 등에서 탄생한 바트당 정부는 산업에 대한 정부 계획, 국유화, 무상 복지, 반서구, 제3세계를 축으로 한 비동맹 노선 등을 취하며 세력을 확장하였다. 이 시기 아랍 사회주의 진영은 석유 국유화와 제2세계 이중가격제의 부분적인 도입, 국가 주도 산업 개발을 병행하여 자국의 경제 성장과 군사 현대화를 이뤘다. 이러한 발전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경제적 지원이 있었다.아랍 사회주의는 제국주의의 경제 침략에 대응하고,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산업 자본을 국영으로 운용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경제 개발은 민간 자본이 아닌, 국가의 투자 정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 결과 이집트는 1950년대 후반부터 토지, 기업이 국유화되었고, 이후 일어난 아랍 사회주의 정부도 이러한 수순을 밟았다.
1960년대에 이르러 소비에트 연방의 기술 지원과 그로 인한 기술 관료제의 발달로 국가 주도 경제 노선이 확립됐다. 그러나, 정부 계획은 정부 주도의 투자로 이루어졌을 뿐, 소비에트식 계획 기구를 설립하지는 않았으며, 정부의 직접적 개입과 주기성을 갖는 계획 경제라기보다는 통제 경제에 가까운 정책을 선호하였다.
생산 계획, 관리 차원에서 이윤 생산의 폐지라는 목적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주요 자본주의 국가와 유사하게 이윤 생산 체계를 받아들였다. 사유 재산제의 폐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랍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라고 할 수 없다.
종합하면, 아랍 사회주의 경제 관리 방식은 제3세계 개발 독재 유형 중에서도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했다고 볼 수 있으나, 사회주의 경제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3. 5. 여성 권리 신장과 여성에 대한 관점
아랍 사회주의는 여성의 교육권, 노동권, 재산권, 참정권 등을 보장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비록 일부다처제를 폐지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개혁은 당시 북아프리카와 아랍 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였다. 예를 들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통치 시기에는 종교적 차별로 교육 수준이 낮았던 여성들을 위한 교육을 통해 문맹률을 크게 낮추고 학력 수준을 향상시켰다. 여러 중동의 아랍 사회주의 국가들은 양성평등을 정치적 슬로건으로 내세웠다.[12]아랍 사회주의자들은 여성이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므로, 여성 또한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여성의 사회 활동을 제한했던 여러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었다. 아랍 사회주의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의 사회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에, 이들이 정권을 잡으면 경제, 사회적으로 낙후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12]
아랍 사회주의는 양성의 성격에 대해 꾸란이 규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여성은 모성애, 자비, 평화와 같은 특성을 지니며, 여성 권리 신장은 이러한 특성이 이미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전제하에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랍 사회주의의 여성관은 여성 권리 신장을 긍정하면서도 남성과 여성의 성격 차이와 그 본질적 기능을 명확히 구분하는 상호보완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4. 사회주의 지향성 국가
소비에트 연방은 아랍 사회주의 국가를 '사회주의 지향성 국가'(Страны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ой ориентацииru)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이어서, 아랍 사회주의 사상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아랍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성격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혁명 노선이라고 정의했다. 사회주의 지향성 국가는 이전 사회의 봉건적 생산·소유 관계를 철폐하면서, 동시에 사회주의 변혁을 예비하는 단계에 있는 민주주의 국가를 의미하는데, 냉전 시기 소비에트 연방과 교류하고 반서구를 고수하던 독재 국가에게 주어진 명칭이었다.
5. 이슬람 원리주의와의 관계
세속주의를 부정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은 아랍 사회주의를 기본적으로 적대한다. 마찬가지로, 아랍 사회주의 정부는 정권을 유지하는 내내 이슬람 원리주의자를 탄압하였다.[6]
1952년 이집트 혁명을 주도한 군부 지도자인 가말 압델 나세르는 혁명기 내내 무슬림 형제단의 암살 위협에 시달렸으며, 무슬림 형제단의 과격파를 숙청하고 형제단 내 온건파를 흡수했다.
이라크의 지도자였던 사담 후세인은 국내에서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를 탄압했다.
시리아 내전에서 자유 시리아군의 일부인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과 동남부 지역의 IS가 시리아 정부에 대항했다. 시리아 정부는 원리주의 표출을 금하고 IS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군사 작전을 실시하고 있으며, 헤즈볼라와 같은 시아파 무장 단체를 지원한다. 이는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서구 세력의 견제가 어려워지면서 진영 구성의 판도가 바뀐 것과 관련된다.
6. 인물
아랍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끼친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이념 |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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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주의 | 자키 알아르수지, 미셸 알플라크, 살라흐 알딘 알비타르, 타릭 아지즈, 사담 후세인, 하페즈 알아사드, 바샤르 알아사드, 아메드 벤 벨라, 후아리 부메디엔, 메디 방바카, 야세르 아라파트, 조지 하바시, 카말 줌블라트, 왈리드 줌블라트, 아크람 알푸라니 |
나세르주의 | 가말 압델 나세르, 무아마르 카다피 |
6. 1. 바트주의파
미셸 알플라크 주도로 성립된 아랍 사회주의의 종파이며, 바트당이 이 이념을 따르기 때문에 바트주의라고도 한다. 바트주의는 세속주의를 강하게 고수하고 있고, 사회주의 제도 성립에서 이슬람 경전인 꾸란의 영향력을 나세르주의파에 비해 가볍게 여긴다. 바트주의는 시리아 바트당 내에서 사회주의적 변혁을 중시하는 급진파와 아랍 민족의 가치를 중시하며 사회주의적 변혁에는 부정적인 온건파 사이의 사상 투쟁 노선으로 인해 발전하였기에, 사회주의 정책에 관해서는 온건적인 축에 속한다.바트주의파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 자키 알아르수지
- 미셸 알플라크
- 살라흐 알딘 알비타르
- 타릭 아지즈
- 사담 후세인
- 하페즈 알아사드
- 바샤르 알아사드
- 아메드 벤 벨라
- 후아리 부메디엔
- 메디 방바카
- 야세르 아라파트
- 조지 하바시
- 카말 줌블라트
- 왈리드 줌블라트
- 아크람 알푸라니
6. 2. 나세르주의파
가말 압델 나세르는 1952년 이집트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나세르주의라는 사회주의적 사상을 이론적으로 구상했다.[1] 나세르주의파는 이슬람주의 세력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그들과 밀접하게 활동한다.[1] 이들은 사회주의 제도 성립에서 꾸란의 권위를 중시하고, 그에 따른 사회주의 변혁을 일관되게 추진한다.[1] 그러나 바트주의에 비해 세속주의 성향이 덜하다.[1]- 가말 압델 나세르
- 무아마르 카다피
7. 비판
아랍 사회주의는 여러 관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아랍 사회주의가 계급 투쟁에 대한 관점이 모호하고, 운동 주력의 계급적 기반이 불투명하며, 제국주의 세력에 쉽게 굴복하고, 신흥 부르주아 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거짓된 사회주의라고 비판했다.
서구 사회는 아랍 사회주의가 제3세계의 일반적인 독재 이론에 불과하며, 이 이념에 기반한 정부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짓밟았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선진 서구 국가들이 아랍 사회주의 정부를 공격하고 경제 제재를 가하는 형식적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아랍 사회주의가 타락한 서구 사상을 바탕으로 한 무신론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또한, 이들이 소비에트 연방의 앞잡이가 되어 이슬람 전통을 파괴했다고 주장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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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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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bbc.c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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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아랍 사회주의’ 이집트 시장경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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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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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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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Libya defends its princi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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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making of Arab soc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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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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