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프 샤우카트
1. 개요
아세프 샤우카트는 시리아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1950년 시리아 타르투스에서 태어났다. 다마스쿠스 대학교에서 법학 및 역사학을 공부하고 1970년대 초 시리아군에 입대했다. 하페즈 알 아사드의 딸 부슈라와 결혼하여 대통령 일가가 되었고, 군사 정보국장, 시리아 아랍군 참모차장, 국방 차관을 역임하며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2012년 다마스쿠스 자살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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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책 | 국방부 차관 |
|---|---|
| 임기 시작 | 2011년 9월 |
| 임기 종료 | 2012년 7월 18일 |
| 장관 | 다우드 라지하 |
| 대통령 | 바샤르 알아사드 |
| 출생일 | 1950년 1월 15일 |
| 출생지 | 시리아 타르투스 알-마데흘레흐 |
| 사망일 | 2012년 7월 18일 |
| 사망지 | 시리아 다마스쿠스 |
| 정당 | 아랍 사회주의 바트당 시리아 지역 branch of the 아랍 사회주의 바트당 |
| 배우자 | 부쉬라 알아사드(1995년 결혼) |
| 자녀 | 5명 |
| 친척 | 하페즈 알아사드(장인) 바셀 알아사드(처남) 바샤르 알아사드(처남) 마지드 알아사드(처남) 마헤르 알아사드(처남) |
| 계급 | |
| 국적 | 시리아 |
| 출신 이름 언어 | ar |
| 복무 기간 | 1970년대–2012년 |
| 사망 원인 | 암살 |
| 군종 |
| 직책 | 시리아군 부참모총장 |
|---|---|
| 임기 시작 | 2009년 |
| 임기 종료 | 2011년 |
| 직책 | 군사 정보국 국장 |
| 임기 시작 | 2005년 |
| 임기 종료 | 2009년 |
| 이전 | 하산 칼릴 |
| 이후 | 압델-파타흐 쿠드시에 |
| 주요 전투/전쟁 | 욤 키푸르 전쟁 레바논 내전 시리아 개입 시리아 이슬람주의 반란 1982년 레바논 전쟁 시리아 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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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장군 -
무스타파 틀라스
무스타파 틀라스는 1932년 시리아에서 태어나 2004년까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바트당에 가입하여 하페즈 알아사드와 인연을 맺고 반체제 인사를 탄압했으며, 여러 저서를 출판하고 비판을 받았으며, 2017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
시리아의 장군 -
마헤르 알아사드
시리아의 군인이자 정치가인 마헤르 알아사드는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바샤르 알아사드 현 대통령의 동생으로, 시리아 내전에서 제4기갑사단을 지휘하며 반군 진압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고, 마약 밀매 연루 혐의와 반인도적 범죄 공모 및 전쟁 범죄 공모 혐의로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다. -
시리아 내전 관련자 -
자바드 포루기
자바드 포루기는 이란의 사격 선수이며, 2020년 하계 올림픽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이란 최초의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
시리아 내전 관련자 -
바셀 카르타빌
시리아의 팔레스타인계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자유 문화 운동가인 바셀 카르타빌은 팔미라의 3D 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시리아 내전 중 투옥, 고문 끝에 처형되었고,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국제적인 캠페인과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 기금 및 펠로우십이 설립되었다. -
시리아의 무슬림 -
무함마드 파리스
무함마드 파리스는 시리아 출신으로 소련의 우주 비행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미르 우주 정거장에서 우주 비행을 수행한 최초의 시리아인이며, 시리아 내전 중 반군에 합류하여 시리아 임시 정부의 국방장관을 역임하다가 2024년에 사망했다. -
시리아의 무슬림 -
무하마드 나지 알오타리
시리아 알레포 출신의 건축학 전공 정치인 무하마드 나지 알오타리는 알레포 시의회 의장과 시리아 의회 의장을 거쳐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시리아 총리를 역임했다.
2. 생애
아세프 샤우카트는 1950년 1월 15일 시리아 타르투스 주의 알마데흘레 마을에서 알라위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마스쿠스 대학교에서 법학 및 역사학을 공부했으며, 1970년대 초 시리아군에 입대했다. 샤우카트는 군 입대 전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다.
1968년, 다마스쿠스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하여 바트당 당원이 되었다. 1972년부터 1976년까지 동 대학교 역사학부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1978년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1980년대 당시 시리아 육군에서 샤우카트는 늦깎이 중견 장교에 불과했지만, 1980년대 말에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의 애제자 부슈라를 알게 되었다. 아사드 일가는 딸의 교제를 반대했지만, 차남 바샤르만이 샤우카트 편을 들었다. 장남 바실의 교통사고 사망으로 후계자 후보로 여겨지게 된 바샤르의 지원 덕분에 1995년 샤우카트는 전처와 이혼하고 부슈라와 결혼할 수 있었다. 동시에 대통령 일가가 된 샤우카트는 45세에 소장으로 승진했다.
아세프 샤우카트는 1950년 1월 15일 시리아 타르투스에서 태어났다. 군사 학교를 졸업한 후 보병 장교로 1973년 라마단 전쟁(제4차 중동전쟁)에 참전했다. 1968년 다마스쿠스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하여 바트당 당원이 되었고, 1972년부터 1976년까지 동 대학교 역사학부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1978년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1982년에는 하페즈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동생 리파트 알아사드가 이끄는 준군사조직인 시리아 방위 여단(سرايا الدفاع)의 장교가 되어 하마에서 일어난 이슬람주의 봉기 진압에 참여했다.
1983년 하페즈 알아사드가 심장마비를 겪은 후, 리파트 알아사드가 다마스쿠스를 장악하려는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샤우카트는 하페즈 알아사드에게 충성을 유지했고 대령으로 진급하는 보상을 받았다.
1980년대 말, 샤우카트는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의 딸 부슈라와 교제했으나, 아사드 일가는 이를 반대했다. 그러나 바샤르 알아사드의 지원으로 1995년 샤우카트는 전처와 이혼하고 부슈라와 결혼하여 소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바샤르의 안보 담당 고문으로 임명되어 군, 정, 당의 숙청을 발의하기도 했다.
2005년 2월, 샤우카트는 군사 정보국장에 임명되었다. 이는 라피크 하리리 암살 사건과 관련하여 하산 칼릴(Hasan Khalil) 장군이 퇴임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샤우카트는 시리아 아랍군 참모차장에 취임했다. 일설에는 헤즈볼라 간부 이마드 무그니야/Imad Mughniyah영어 암살과 이스라엘의 알 키바르(al-Kibar) 핵 시설 공습(Operation Orchard)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군사 정보국장에서 해임된 것이라고 한다.
2011년, 국방 차관에 취임하여,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 정부군을 지휘하였다. 그러나 2012년 7월 18일, 다마스쿠스 자살 폭탄 테러로 국가보안기구 청사에서 회의 중 다우드 라자 국방부 장관, 하산 투르크마니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폭사하였다.
1980년대 초, 아세프 샤우카트는 다마스쿠스 대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하던 부슈라 알 아사드를 만났다. 부슈라는 하페즈 알아사드의 첫째이자 외동딸이었으며, 아버지와 돈독한 관계였다. 바셀 알 아사드는 샤우카트가 부슈라보다 10살 연상이고, 5명의 아이를 둔 이혼남이며, 평범한 배경을 가졌다는 이유로 이들의 관계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1993년 바셀은 샤우카트를 투옥시키기도 했지만, 1994년 1월, 바셀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1995년, 샤우카트와 부슈라는 도피 결혼을 감행했다. 하페즈 알아사드는 샤우카트를 가족으로 받아들였고, 샤우카트는 소장으로 진급했다. 샤우카트는 부슈라와의 사이에서 5명의 자녀를 두었다.
결혼 후, 샤우카트는 부슈라의 남동생 바샤르와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반면, 또 다른 남동생 마헤르와는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1999년 마헤르가 샤우카트를 총으로 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1950년 1월 15일에 시리아 타르투스 시에서 태어난 샤우카트는 군사 학교를 졸업한 이후 보병 장교로써 1973년의 라마단 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그는 하페즈 알아사드의 동생 리파트 알아사드가 지휘하는 준군사조직인 시리아 방위 여단(سرايا الدفاع)에서 복무하였다. 다마스쿠스 대학교 법학부에서 수학후 바트당 당원이 되었으며, 1972년부터 1976년까지 동 대학교 역사학부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1978년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샤우카트는 하페즈 알아사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샤르 알아사드의 지지로 1995년, 하페즈 알아사드의 딸이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누나인 부쉬라 알아사드와 결혼하였다. 샤우카트는 대통령의 최고 보안통 가운데 한 명으로 여겨지는 인물로, 9.11 테러 이후, 샤우카트는 미국과 유럽의 정보 기관과의 주요 연락 담당자였으며, 두 국가 간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된 후 중단된 시리아 내 미국 정보 작전을 조정했다.
바샤르 알 아사드가 그의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의 사망 이후 2000년 6월 시리아 대통령이 되었을 때, 샤우카트는 시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널리 여겨졌다. 2001년, 샤우카트는 시리아 정보 기구의 주요 부서 중 하나인 군사 정보국 부국장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임무에는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와 같은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와의 연락이 포함되었으며, 그는 시리아의 레바논 지배의 핵심 설계자였다.
2005년 2월, 샤우카트는 친구인 하산 칼릴(Hasan Khalil) 장군을 대신하여 군사 정보국장에 임명되었다. 칼릴의 퇴임은 공식적으로 칼릴의 정년(60세) 도달 때문이라고 하지만, 전 레바논 총리 라피크 하리리 암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설도 있다.
2009년 샤우카트는 시리아 아랍군 참모차장에 취임했다.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 조직 헤즈볼라 간부 이마드 무그니야/Imad Mughniyah영어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암살된 일과, 시리아에게 불구대천의 원수인 이스라엘에 의해 알 키바르(al-Kibar) 핵 시설이 공습된 것(Operation Orchard)에 대한 책임을 지는 형태로 군사 정보국장 직에서 해임되어, 참모차장이라는 한직으로 밀려났다는 추측이 있다.
2011년 국방 차관에 취임했다. 시리아 국방성은 사실상 마헤르 아사드의 휘하에 있었지만, 샤우카트가 국방 차관에 취임하면서 국방성의 지배권을 장악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2년 7월 18일, 다마스쿠스 바트당 국가 보안국 빌딩에서 회의 중 자폭 공격을 당해 사망했다。향년 62세.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아세프 샤우카트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그의 형 마헤르 알아사드와 함께 반정부 시위 진압을 주도했다. 그는 알 아사드 대통령이 창설한 군사 위기 조직의 일원이었다.
2012년 5월, 자유 시리아군은 샤우카트를 포함한 8명의 군사 위기 조직원을 독살했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오보였다.
샤우카트는 2012년 7월 18일 다마스쿠스의 바트당 국가 보안국 빌딩에서 회의 중 자폭 공격으로 사망했다.
2012년 7월 18일, 샤우카트는 다마스쿠스의 라와다 광장에 있는 시리아 국가 안보 위원회 본부에서 열린 중앙 위기 관리 세포(CCMC)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 중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로 인해 다우드 라지하 국방장관, 하산 투르크마니 전 국방장관과 함께 사망했다.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교수인 아사드 아부칼릴은 샤우카트가 암살된 그룹의 핵심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샤우카트의 장례식은 다마스쿠스 무명 용사의 묘에서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불참하고 파루크 알 샤라아 부통령이 참석했다. 샤우카트는 타르투스 주에 매장되었으며, 장례식에는 그의 아내 부슈라 알아사드와 장모 아니사 알아사드가 참석했다. 이라크 대통령 잘랄 탈라바니는 부슈라 알아사드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아세프 샤우카트는 1950년 1월 15일 시리아 타르투스 주의 알마데흘레 마을에서 알라위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마스쿠스 대학교에서 법학 및 역사학을 공부했으며, 1970년대 초 시리아군에 입대했다. 샤우카트는 군 입대 전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다.
1968년, 다마스쿠스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하여 바트당 당원이 되었다. 1972년부터 1976년까지 동 대학교 역사학부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1978년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1980년대 당시 시리아 육군에서 샤우카트는 늦깎이 중견 장교에 불과했지만, 1980년대 말에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의 애제자 부슈라를 알게 되었다. 아사드 일가는 딸의 교제를 반대했지만, 차남 바샤르만이 샤우카트 편을 들었다. 장남 바실의 교통사고 사망으로 후계자 후보로 여겨지게 된 바샤르의 지원 덕분에 1995년 샤우카트는 전처와 이혼하고 부슈라와 결혼할 수 있었다. 동시에 대통령 일가가 된 샤우카트는 45세에 소장으로 승진했다.
2.2. 군 경력
아세프 샤우카트는 1950년 1월 15일 시리아 타르투스에서 태어났다. 군사 학교를 졸업한 후 보병 장교로 1973년 라마단 전쟁(제4차 중동전쟁)에 참전했다. 1968년 다마스쿠스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하여 바트당 당원이 되었고, 1972년부터 1976년까지 동 대학교 역사학부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1978년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1982년에는 하페즈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동생 리파트 알아사드가 이끄는 준군사조직인 시리아 방위 여단(سرايا الدفاع)의 장교가 되어 하마에서 일어난 이슬람주의 봉기 진압에 참여했다.
1983년 하페즈 알아사드가 심장마비를 겪은 후, 리파트 알아사드가 다마스쿠스를 장악하려는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샤우카트는 하페즈 알아사드에게 충성을 유지했고 대령으로 진급하는 보상을 받았다.
1980년대 말, 샤우카트는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의 딸 부슈라와 교제했으나, 아사드 일가는 이를 반대했다. 그러나 바샤르 알아사드의 지원으로 1995년 샤우카트는 전처와 이혼하고 부슈라와 결혼하여 소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바샤르의 안보 담당 고문으로 임명되어 군, 정, 당의 숙청을 발의하기도 했다.
2005년 2월, 샤우카트는 군사 정보국장에 임명되었다. 이는 라피크 하리리 암살 사건과 관련하여 하산 칼릴(Hasan Khalil) 장군이 퇴임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샤우카트는 시리아 아랍군 참모차장에 취임했다. 일설에는 헤즈볼라 간부 이마드 무그니야/Imad Mughniyah영어 암살과 이스라엘의 알 키바르(al-Kibar) 핵 시설 공습(Operation Orchard)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군사 정보국장에서 해임된 것이라고 한다.
2011년, 국방 차관에 취임하여,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 정부군을 지휘하였다. 그러나 2012년 7월 18일, 다마스쿠스 자살 폭탄 테러로 국가보안기구 청사에서 회의 중 다우드 라자 국방부 장관, 하산 투르크마니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폭사하였다.
2.3. 부슈라 알아사드와의 결혼
1980년대 초, 아세프 샤우카트는 다마스쿠스 대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하던 부슈라 알 아사드를 만났다. 부슈라는 하페즈 알아사드의 첫째이자 외동딸이었으며, 아버지와 돈독한 관계였다. 바셀 알 아사드는 샤우카트가 부슈라보다 10살 연상이고, 5명의 아이를 둔 이혼남이며, 평범한 배경을 가졌다는 이유로 이들의 관계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1993년 바셀은 샤우카트를 투옥시키기도 했지만, 1994년 1월, 바셀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1995년, 샤우카트와 부슈라는 도피 결혼을 감행했다. 하페즈 알아사드는 샤우카트를 가족으로 받아들였고, 샤우카트는 소장으로 진급했다. 샤우카트는 부슈라와의 사이에서 5명의 자녀를 두었다.
결혼 후, 샤우카트는 부슈라의 남동생 바샤르와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반면, 또 다른 남동생 마헤르와는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1999년 마헤르가 샤우카트를 총으로 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2.4. 정치 경력
1950년 1월 15일에 시리아 타르투스 시에서 태어난 샤우카트는 군사 학교를 졸업한 이후 보병 장교로써 1973년의 라마단 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그는 하페즈 알아사드의 동생 리파트 알아사드가 지휘하는 준군사조직인 시리아 방위 여단(سرايا الدفاع)에서 복무하였다. 다마스쿠스 대학교 법학부에서 수학후 바트당 당원이 되었으며, 1972년부터 1976년까지 동 대학교 역사학부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1978년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샤우카트는 하페즈 알아사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샤르 알아사드의 지지로 1995년, 하페즈 알아사드의 딸이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누나인 부쉬라 알아사드와 결혼하였다. 샤우카트는 대통령의 최고 보안통 가운데 한 명으로 여겨지는 인물로, 9.11 테러 이후, 샤우카트는 미국과 유럽의 정보 기관과의 주요 연락 담당자였으며, 두 국가 간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된 후 중단된 시리아 내 미국 정보 작전을 조정했다.
바샤르 알 아사드가 그의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의 사망 이후 2000년 6월 시리아 대통령이 되었을 때, 샤우카트는 시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널리 여겨졌다. 2001년, 샤우카트는 시리아 정보 기구의 주요 부서 중 하나인 군사 정보국 부국장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임무에는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와 같은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와의 연락이 포함되었으며, 그는 시리아의 레바논 지배의 핵심 설계자였다.
2005년 2월, 샤우카트는 친구인 하산 칼릴(Hasan Khalil) 장군을 대신하여 군사 정보국장에 임명되었다. 칼릴의 퇴임은 공식적으로 칼릴의 정년(60세) 도달 때문이라고 하지만, 전 레바논 총리 라피크 하리리 암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설도 있다.
2009년 샤우카트는 시리아 아랍군 참모차장에 취임했다.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 조직 헤즈볼라 간부 이마드 무그니야/Imad Mughniyah영어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암살된 일과, 시리아에게 불구대천의 원수인 이스라엘에 의해 알 키바르(al-Kibar) 핵 시설이 공습된 것(Operation Orchard)에 대한 책임을 지는 형태로 군사 정보국장 직에서 해임되어, 참모차장이라는 한직으로 밀려났다는 추측이 있다.
2011년 국방 차관에 취임했다. 시리아 국방성은 사실상 마헤르 아사드의 휘하에 있었지만, 샤우카트가 국방 차관에 취임하면서 국방성의 지배권을 장악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2년 7월 18일, 다마스쿠스 바트당 국가 보안국 빌딩에서 회의 중 자폭 공격을 당해 사망했다。향년 62세.
2.5. 시리아 내전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아세프 샤우카트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그의 형 마헤르 알아사드와 함께 반정부 시위 진압을 주도했다. 그는 알 아사드 대통령이 창설한 군사 위기 조직의 일원이었다.
2012년 5월, 자유 시리아군은 샤우카트를 포함한 8명의 군사 위기 조직원을 독살했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오보였다.
샤우카트는 2012년 7월 18일 다마스쿠스의 바트당 국가 보안국 빌딩에서 회의 중 자폭 공격으로 사망했다.
2.6. 암살
2012년 7월 18일, 샤우카트는 다마스쿠스의 라와다 광장에 있는 시리아 국가 안보 위원회 본부에서 열린 중앙 위기 관리 세포(CCMC)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 중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로 인해 다우드 라지하 국방장관, 하산 투르크마니 전 국방장관과 함께 사망했다.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교수인 아사드 아부칼릴은 샤우카트가 암살된 그룹의 핵심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샤우카트의 장례식은 다마스쿠스 무명 용사의 묘에서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불참하고 파루크 알 샤라아 부통령이 참석했다. 샤우카트는 타르투스 주에 매장되었으며, 장례식에는 그의 아내 부슈라 알아사드와 장모 아니사 알아사드가 참석했다. 이라크 대통령 잘랄 탈라바니는 부슈라 알아사드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