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이시오 슈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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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로이시오 슈월츠는 1930년 미국에서 태어나 1992년 선종한 로마 가톨릭 사제이다. 그는 한국과 필리핀 등지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 사업을 펼쳤으며, 마리아 수녀회와 그리스도 수도회를 설립했다. 슈월츠는 1983년 라몬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으며, 1989년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다가 1992년 선종했다. 그는 '하느님의 종'으로 불리며, 2015년 가경자로 선포되어 시복시성 절차를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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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이시오 슈월츠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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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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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칭 접두사 | 가경자 |
이름 | 알로이시오 필립 슈왈츠 |
출생일 | 1930년 9월 18일 |
출생지 | 워싱턴 D.C., 미국 |
사망일 | 1992년 3월 16일 |
사망지 | 마닐라, 필리핀 |
안장 장소 | 실랑, 카비테 |
상세 정보 | |
직업 | 가톨릭 신부, 몬시뇰, 가경자 |
소속 | 마리아 수녀회, 그리스도 수도회 |
창설 | 마리아 수녀회, 그리스도 수도회 창설자 |
2. 유년 시절
알로이시오 슈월츠는 1930년 9월 18일 워싱턴 D.C.에서 아버지 루이스 슈월츠(Louis Schwartz)와 어머니 시델라이 보우라사(Cedelia Bourassa) 사이에서 8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몬태나주 출신의 시델라이 보우라사는 1차 세계 대전 중 워싱턴 D.C.로 이사했고, 당시 가구 방문 판매를 하던 루이스 슈월츠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알로이시오는 어려서부터 가난하고 필요한 사람을 돕는 신부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1930년 10월 5일 [http://www.holynameparishdc.org/ 홀리 네임 성당] (워싱턴 D.C.)에서 유아 세례를 받았다.
알로이시오 슈월츠는 1947년 메리놀 외방 선교회에 입회하여, 1948년부터 1952년까지 메리놀회 신학교에서 학사과정을 마쳤다.[6] 그러나 그는 메리놀회의 정신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가난한 재속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를 찾기 시작했다.[7] 그러던 중 레브 벵상 신부가 창설한 '선교 협조자회'(S.A.M)를 알게 되었고, 정식으로 입회 허락을 받았다.[7][8]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루벵 가톨릭대학에서 당시 사회학을 공부하던 장 요셉 신부[11]를 통해 전쟁 이후의 피폐한 한국의 상황을 듣게 되었다. 당시의 한국 천주교회도 역시 물질적으로 그들의 고통을 크게 덜어 줄 처지가 못 되었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한국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자신의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슈월츠는 십 대 고아들이 함께 나치에 맞서 싸우는 내용의 만화 ''보이 코만도스''를 읽었는데, 이 만화는 그가 선행을 하고자 하는 열망을 키웠다고 한다.[1] 어린 나이에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슈월츠는 예수회 고등학교의 장학금을 거절하고, 1944년 메릴랜드주 캐턴스빌에 있는 작은 신학교인 세인트 찰스에 입학했다.[1] 1948년부터 1952년까지는 메리놀회 신학교(Maryknoll College at Glen Ellen, IL)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3. 신학교와 사제 서품
루벵 가톨릭 대학 신학부에서 공부하면서(1953~1957) 알로이시오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9] 하지만 여름 방학 동안 히치하이킹을 통한 무전여행을 하며 유럽 농촌의 공동체를 경험하고, 바뇌 성모 성지를 방문하면서 깊은 내적 평화를 얻고 가난한 삶에 대한 결심을 굳혔다.[10]
1957년 6월 29일, 알로이시오는 미국 워싱턴 D.C.의 성 마틴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9] 그 해 겨울, 그는 선교지인 한국에서 활동하기 위해 부산교구에 입적하였다(1957.12.8).[10]
4. 한국과 필리핀에서의 자선 사업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1961년에 워싱턴에서 민간 원조 기관인 한국 자선회(Korean Relief. lnc. 현재는 [https://web.archive.org/web/20161029050355/http://www.worldvillages.org/Home.html World Villages for Children (Annapolis, MD)로 바뀜)]를 설립, 이 기관을 통하여 모금한 기금으로 한국에서 구호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부산교구 송도 본당의 주임신부로 재직(1962~1966)하면서 마리아 수녀회를 창설하였고(1964),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마리아수녀회의 소명에 전념하기 위하여 5년 동안의 송도 본당 주임직을 사임하였다. 그 이후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한국, 필리핀, 멕시코의 6개 도시에 의료시설과 정규교육기관을 갖춘 6개소의 소년의 집, 소녀의집을 설립하여 수많은 불우 어린이와 청소년을 돌보았다. 부산시의 노숙자 200명을 보호하는 마리아수녀회 구호소를(1969. 7), 그리스도 수도회를 창설하였고(1981. 5. 1) 이 수도회를 통해 서울특별시의 노숙자 2000명을 돌보는 그리스도 수도회 ‘은평의 마을‘ 운영을 시작하였다(1981).[12]
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의 사업을 이어받은 '''마리아 수녀회'''는 현재 한국, 필리핀,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브라질, 탄자니아 등 7개국 11개 도시에 의료시설과 정규 교육기관을 갖춘 10개의 소년의 집과 소녀의집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무료 기숙사와 교육시설을 통해 20,665명의 가난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정규 교육과 직업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2020년 기준). 또한 마리아 수녀회는 브라질리아의 소녀의집에 이어 상파울로에서 대규모 소년의집 사업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소년/소녀의집 사업 이외에 한국에서 두개의 무료병원, 노숙자를 위한 부산 구호소, 2개의 미혼모 보호시설을 부산과 서울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리스도 수도회'''는 서울 홍은동 본원에 정신지체장애인(작은 숨골) 그룹홈과 파주분원에 정신지체장애인(한우리 공동체) 그룹홈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리고 60여명의 알콜올 중독, 도박 중독 등 재활치료 및 자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필리핀 카비테 실랑 분원에 청소년 교육사업과 필리핀 아마데오에 무연고자 장애인 복지 시설을 운영하고있으며, 멕시코에 분원을 두어 청소년 교육 사업을 위한 수도회의 사도직 사업을 계획과 추진 중에 있다.
1983년, 슈왈츠는 라몬 막사이사이상 국제 이해 부문을 필리핀 마닐라에서 수상했다.[5] 그는 당시 마닐라 대교구의 대주교였던 제이미 신 추기경을 만나, 그로부터 자신의 종교 공동체를 대교구의 빈곤층을 돕는 데 활용하라는 초청을 받았다.[5]
1985년, 슈왈츠는 자선 사업을 확대하며 필리핀 마닐라의 산타 메사에 마리아 수녀회를 설립했다.[5] 건물들이 건설되었고, 빈민가와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이 모집되었다.[5]
4. 1. 마리아 수녀회와 그리스도 수도회
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의 사업을 이어받은 '''마리아 수녀회'''는 현재 한국, 필리핀,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브라질, 탄자니아 등 7개국 11개 도시에 의료시설과 정규 교육기관을 갖춘 10개의 소년의 집과 소녀의집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무료 기숙사와 교육시설을 통해 20,665명의 가난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정규 교육과 직업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2020년 기준). 또한 마리아 수녀회는 브라질리아의 소녀의집에 이어 상파울로에서 대규모 소년의집 사업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소년/소녀의집 사업 이외에 한국에서 두개의 무료병원, 노숙자를 위한 부산 구호소, 2개의 미혼모 보호시설을 부산과 서울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리스도 수도회'''는 서울 홍은동 본원에 정신지체장애인(작은 숨골) 그룹홈과 파주분원에 정신지체장애인(한우리 공동체) 그룹홈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리고 60여명의 알콜올 중독, 도박 중독 등 재활치료 및 자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필리핀 카비테 실랑 분원에 청소년 교육사업과 필리핀 아마데오에 무연고자 장애인 복지 시설을 운영하고있으며, 멕시코에 분원을 두어 청소년 교육 사업을 위한 수도회의 사도직 사업을 계획과 추진 중에 있다.
1983년, 슈왈츠는 라몬 막사이사이상 국제 이해 부문을 필리핀 마닐라에서 수상했다.[5] 그는 당시 마닐라 대교구의 대주교였던 제이미 신 추기경을 만나, 그로부터 자신의 종교 공동체를 대교구의 빈곤층을 돕는 데 활용하라는 초청을 받았다.[5]
1985년, 슈왈츠는 자선 사업을 확대하며 필리핀 마닐라의 산타 메사에 메리 수녀회를 설립했다.[5] 건물들이 건설되었고, 빈민가와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이 모집되었다.[5]
5. ALS 투병과 선종
알로이시오 슈월츠는 1989년 10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 일명 루게릭 병) 진단을 받았다.[13] ALS를 하느님의 선물이라 여겨 기쁘게 받아들였으며, 투병 중에도 휠체어에 의지하여 필리핀, 한국, 멕시코를 왕래하며 자선 사업을 펼쳤다. 1991년 10월 멕시코 찰코시에 2000명의 불우 청소년을 돌보는 소녀/소년의집의 1단계 사업을 완성 개원하였다.
1990년 2월 1일 교황청으로부터 고위 성직자 몬시뇰(Msgr.) 칭호를 받았다. 1992년 3월 16일, 마닐라 산타 메사의 소녀의 집 사제관에서 선종하였다.[13] 꺼져가는 목소리로 녹음기에 구술 저서인 '조용히 다가오는 나의 죽음’ (원명: Killing Me Softly)의 원고를 임종 9일 전에 탈고하였다.
소 알로이시오 신부의 유언에 따라 마리아 수녀회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를 기리는 벨기에 바뇌의 성모님 발현 기념 경당의 복제 경당을 필리핀 실랑 소녀의집 구내에 건립하였다. 그 제대 아래 신부의 시신을 묻고, 무덤 위에는 소 알로이시오 신부가 직접 작문하고 임종 하루 전날에 문장과 철자를 확인한 비문이 새겨진 동판을 놓았다.
{{인용문|여기 알로이시오 슈월쓰 신부가 묻히다. 모든 찬사와 영예와 영광과 감사를 가난한 이의 동정녀에게 바친다.
Here lies Fr.Al Schwartz. All praise, honor, glory and thanksgiving to the Virgin of the Poor!|}}
그리스도의 삶과 그리스도를 열렬히 증거한 삶을 살았던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하느님의 종’이라고 불리었고, 교황청은 2015년 1월 22일 가경자 (Venerable)로 선포하여 현재 시복시성 절차를 밟고 있다.[13]
6. 시복시성
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의 시복 절차는 2003년 12월 10일 마닐라 대성당에서 시작되었다. 2004년 5월 29일, 카비테에 있는 마리아 수녀회 걸스 타운 단지에서 소크라테스 B. 빌레가스 주교는 슈월츠의 시복 절차가 종결되었음을 선언했다.
2012년 10월 6일, 슈월츠의 'Positio Super Vita Virtutibus et Fama Sanctitatis'(생애, 덕, 성덕에 대한 보고서)가 로마의 성인 시성성 장관인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에게 제출되었다. 신학 자문 특별 회의는 2014년 3월 6일 긍정적인 투표를 했다. 아마토가 주재한 2014년 12월 16일 정기 회의에서 추기경과 주교들은 슈월츠가 신학적, 추기경적, 그리고 부수적인 덕을 영웅적 단계까지 실천했다고 확인했다.
2015년 1월 22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슈월츠의 영웅적 덕에 대한 칙령 반포를 명령하여, 가경자 (Venerable)로 선포되었다.
2015년 3월 14일, 마닐라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이 집전하는 성체 성사가 실랑 걸스 타운에서 열렸다. 이 기념 행사에는 마리아 수녀회와 그리스도 형제회 회원들과 함께 한국, 필리핀, 멕시코에서 온 보이즈 타운과 걸스 타운 졸업생 약 9,000명이 참석했다.
7. 수상 및 서훈
알로이시오 슈월츠는 1975년 5월 28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였다. 1976년 5월 16일에는 5·16 민족상(교육 부문)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5월 29일에는 [https://www.fordham.edu 포담 대학교]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8월 30일에는 막사이사이상 국제 협동 부문(Peace and International Understanding (PIU))을 수상하였다.[https://web.archive.org/web/20170116174425/http://rmaward.asia/awardees/schwartz-aloysius/ (막사이사이상 공식 홈페이지 수상자 목록 바로가기)]
1984년과 1992년에는 미국의 하원의원들에 의해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하였다. 2004년 4월 8일에는 마리아 수녀회가 호암상을 수상하였고, 2010년 12월 3일에는 도티 기념병원이 아산상을 수상하였다. 2015년 12월 23일에는 2015 국민추천포상 대통령 포상을 받았다.
8. 저서
- The Starved and The Silent영어, 1966
- Armenpfarrer in Koreade, 1967
- Poverty: sign of our times영어, 1968
- To live is Christ: The Sisters of Mary book of spirituality영어, 1991
- Killing Me Softly:The Inspiring Story of a Champion of the Poor영어, 1993
- 가난은 구원의 징표이다한국어, 2002
- 굶주린 자와 침묵하는 자한국어, 2002
-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한국어, 2009
- 조용히 다가오는 나의 죽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소 알로이시오 신부의 마지막 편지한국어, 2012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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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알로이시오 신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아버지한국어, 2016
참조
[1]
웹사이트
Ven. Aloysius Schwartz: Modern Missionary to Korea
https://www.ncregist[...]
2020-12-04
2024-10-02
[2]
웹사이트
The remarkable life, challenging example of Venerable Aloysius Schwartz
https://www.catholic[...]
2024-10-02
[3]
웹사이트
Founder & History
https://worldvillage[...]
2024-10-03
[4]
웹사이트
The Founder – ASMSI
https://www.asmsi.or[...]
2024-10-03
[5]
서적
Priest and Beggar: The Heroic Life of Venerable Aloysius Schwartz
https://books.google[...]
Ignatius Press
2021-06-17
[6]
문서
소 알로이시오,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
2009
[7]
문서
소 알로이시오,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
2009
[8]
문서
[9]
문서
소 알로이시오,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
2009
[10]
문서
[11]
문서
[12]
문서
[13]
웹인용
알로이시오 슈월츠 몬시뇰 ‘가경자’로 선포, 평화신문, 2015. 1.
http://www.pbc.co.kr[...]
201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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