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히나스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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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베르토 히나스테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곡가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나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했다. 그의 음악은 아르헨티나 민족주의적 요소를 바탕으로 출발하여, 점차 현대적인 기법을 수용하며 세 시기(객관적 민족주의, 주관적 민족주의, 신표현주의)를 거쳐 발전했다. 오페라, 발레, 관현악, 협주곡, 실내악, 피아노곡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으며, 아스토르 피아졸라를 비롯한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알베르토 히나스테라
기본 정보
본명알베르토 에바리스토 히나스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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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작곡가 알베르토 히나스테라
출생1916년 4월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망1983년 6월 25일, 제네바
국적아르헨티나
IPAalˈβeɾto eβaˈɾisto dʒinaˈsteɾa (카탈루냐어)
경력
직업작곡가
기타 정보
장르클래식 음악
활동 시기20세기
배우자아우로라 나타
델리아 마리아 카르멜
자녀알베르토 에밀리오 히나스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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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히나스테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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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아르헨티나의 작곡가이다. 스페인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만년에는 자신의 성을 카탈루냐어와 이탈리아어식으로 발음하는 것을 선호했다.

1938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윌리엄스 음악원을 졸업하고, 젊은 시절 교육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45년부터 1947년까지 미국을 방문하여 탱글우드 음악 센터에서 애런 코플런드에게 사사했다. 이후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와 작곡가 협회를 공동 설립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의 제자 중에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와 같은 유명 음악가들이 있다.

1968년 미국으로 다시 이주했으며, 1970년부터는 유럽에서 활동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곳 왕들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2.1. 유년 시절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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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히나스테라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스페인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만년에 자신의 성을 카탈루냐어와 이탈리아어 발음(영어 'George'의 첫소리와 유사한 부드러운 'G' 발음)으로 불리기를 선호했으며, 스페인어식 발음은 사용하지 않았다.

히나스테라는 1938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윌리엄스 음악원을 졸업했다. 젊은 시절에는 리세오 밀리타르 헤네랄 산 마르틴에서 가르쳤다. 1945년부터 1947년까지 미국을 방문하여 탱글우드 음악 센터에서 애런 코플런드에게 사사했다. 이후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와 작곡가 협회를 공동으로 설립하고 여러 교육 기관에서 가르쳤다. 1949년에는 오늘날 지랄도 지랄디 음악원으로 불리는 음악·무대 예술원을 설립했다.

그의 유명한 제자로는 아스토르 피아졸라(1941년 사사), 알시데스 란자, 호르헤 안투네스, 왈도 데 로스 리오스, 자클린 노바, 블라스 아테오르투아, 라파엘 아폰테-레데 등이 있다.

2.2. 미국 유학 및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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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스테라는 1945년부터 1947년까지 미국을 방문하여 탱글우드에서 애런 코플런드에게 사사했다. 이후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와 작곡가 협회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그는 귀국 후 리세오 밀리타르 헤네랄 산 마르틴 등 여러 곳에서 교육 활동을 펼쳤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중에는 탱고 음악의 거장으로 성장한 아스토르 피아졸라(1941년 사사)를 비롯하여 알시데스 란자, 호르헤 안투네스, 왈도 데 로스 리오스, 자클린 노바, 블라스 아테오르투아, 라파엘 아폰테-레데 등이 있다. 1949년에는 오늘날 지랄도 지랄디 음악원으로 불리는 음악·무대 예술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2.3. 유럽 이주와 사망

1968년 미국으로 다시 이주했으며, 1970년에는 유럽으로 건너갔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곳 왕들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3. 음악적 특징

히나스테라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는 "객관적 민족주의"(1934–1948), "주관적 민족주의"(1948–1958), 그리고 "신표현주의"(1958–1983) 시기이다. 이 시기 구분은 특히 아르헨티나 전통 음악 요소를 활용하는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초기 작품에서는 아르헨티나 민속 주제를 직접적으로 사용했지만, 후기로 갈수록 이러한 요소들을 점차 추상적인 형태로 작품에 통합시켰다.

그의 많은 작품은 아르헨티나의 상징적 존재인 평원의 기마병 가우초를 다루는 가우체스코 전통에서 영감을 받았다. 초기에는 오스티나토 기법을 풍부하게 사용한 명쾌한 작풍을 보였으나, 점차 원시주의적이고 무조적인 경향으로 나아갔으며, 후기에는 12음 기법이나 미분음 같은 현대적인 작곡 기법도 사용했다.

히나스테라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했는데, 여러 편의 오페라, 피아노 협주곡 2곡, 첼로 협주곡 2곡, 바이올린 협주곡 1곡, 하프 협주곡 1곡 등이 있다. 특히 "하프 협주곡 작품 25"는 수가 많지 않은 하프를 위한 협주곡 중 하나로 종종 연주된다. 이 외에도 발레 음악, 실내악, 피아노 독주곡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미국 방문 중 탱글우드 음악 센터에서 애런 코플랜드에게 사사했으며, 탱고 음악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그의 초기 제자 중 한 명이다.

3.1. 객관적 민족주의 (1934-1948)

히나스테라는 자신의 음악을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 번째 시기는 1934년부터 1948년까지 해당하는 객관적 민족주의(nacionalismo objetivo스페인어) 시기이다. 이 시기는 이후의 "주관적 민족주의"(1948–1958)와 "신표현주의"(1958–1983) 시기와 구분되는데, 특히 아르헨티나 전통 음악 요소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객관적 민족주의 시기 작품들의 가장 큰 특징은 아르헨티나 민속 음악의 주제나 리듬을 직접적으로 작품에 통합했다는 점이다. 히나스테라 본인은 이 시기를 "객관적 애국심"이라고도 표현하며, 아르헨티나 민요를 직접 사용한 곡이 많다고 언급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아르헨티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평원의 기마병 가우초를 다루는 가우체스코 전통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

3.2. 주관적 민족주의 (1948-1958)

히나스테라 본인은 자신의 음악 세계를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그중 두 번째 시기는 "주관적 민족주의" (1948년 ~ 1958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아르헨티나 민속 음악의 요소를 이전 시기처럼 직접적으로 가져와 사용하기보다는, 그 느낌이나 특징만을 보다 추상적인 형태로 작품 속에 담아냈다는 점이다. 즉, 민요 가락을 그대로 쓰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아르헨티나 음악 특유의 개성과 색깔은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작곡했다. 이는 첫 번째 시기인 "객관적 민족주의"에서 아르헨티나 민속 주제를 직접적으로 활용했던 것과는 차이를 보이는 접근 방식이다.

3.3. 신표현주의 (1958-1983)

히나스테라 본인이 분류한 세 번째 음악 시기는 "신표현주의"로, 1958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983년까지 해당한다. 이 시기 그의 음악은 이전 시기와 비교하여 아르헨티나 전통 음악 요소를 사용하는 방식에 변화를 보인다. 민족적 요소들은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보다는 점점 더 추상적인 형태로 작품에 통합되었으며, 민요의 요소는 연속 기법을 사용하여 보다 현대적인 작풍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 히나스테라는 원시주의적이고 무조적인 작풍으로 나아갔으며, 12음 기법이나 미분음 등을 사용하는 등 더욱 현대적인 음악 어법을 탐구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고대 콜럼버스 이전의 전설을 바탕으로 극적인 소프라노와 53개의 타악기를 위해 작곡된 Cantata para América Mágica스페인어 (1960)가 있다. 이 곡은 1963년 로스앤젤레스 타악기 앙상블에 의해 앙리 테미앙카와 윌리엄 크라프트의 지휘로 UCLA에서 미국 서부 해안 초연을 가졌다.

1968년 미국으로 다시 건너갔고, 1970년부터는 유럽으로 이주하여 활동했다. 1978년에는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 지휘 부문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는데, 이때 쓰쓰미 슌사쿠가 최고상을 수상했다. 쓰쓰미는 후에 히나스테라의 발레 음악 『에스탄시아』의 일본 초연을 지휘했다.

그의 음악은 클래식계를 넘어 대중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EL&P는 히나스테라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4악장을 편곡하여 Toccata라는 제목으로 자신들의 앨범 Brain Salad Surgery에 수록했다. 편곡 허가를 받으러 온 키보디스트 키스 에머슨에 대해, 히나스테라는 그 솜씨를 절찬했다고 한다.

히나스테라는 198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6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4. 주요 작품

히나스테라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 번째는 "객관적 민족주의"(1934–1948) 시기로, 이 시기에는 아르헨티나 민속 음악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작품에 통합하는 경향을 보였다. 두 번째는 "주관적 민족주의"(1948–1958) 시기이며, 마지막은 "신표현주의"(1958–1983) 시기이다. 후기로 갈수록 그는 전통적인 음악 요소들을 더욱 추상적인 형태로 사용하였다.

히나스테라의 많은 작품은 아르헨티나의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가우초(평원의 원주민 기마병)의 전통, 즉 '가우체스코' 전통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Cantata para América Mágica스페인어(1960)는 극적인 소프라노와 53개의 타악기를 위한 곡으로,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고대 전설을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이 곡은 1963년 로스앤젤레스 타악기 앙상블에 의해 앙리 테미앙카와 윌리엄 크라프트의 지휘 아래 UCLA에서 미국 서부 해안 초연을 가졌다.

히나스테라의 주요 작품들은 아래 하위 섹션에서 다루는 바와 같이 오페라, 발레,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 피아노곡, 가곡, 합창곡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다.

4.1. 오페라

* 돈 로드리고, Op. 31 (1963–64)
* 보마르초, Op. 34 (1966–67) - 1972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상연이 금지되었다.
* 베아트리스 첸치, Op. 38 (1971) - 퍼시 비시 셸리의 희곡 The Cenci (1819)를 기반으로 한다.

4.2. 발레

* 파남비 Panambi스페인어, 작품 1 (1934년 ~ 1937년 작곡, 모음곡 버전 있음)
* 에스탄시아 Estancia스페인어, 작품 8 (1941년 작곡, 모음곡 버전 있음)

4.3. 관현악곡

* 관현악 모음곡, 작품 1a (1937)
* 발레곡 에스탄시아 중 춤, 작품 8a (1943)
* 크리오요 파우스트 서곡 (Obertura para el "Fausto" Criollo스페인어), 작품 9 (1943)
* 오얀타이 (Ollantay스페인어): 3개의 교향 악장, 작품 17 (1947)
* 협주 변주곡 (Variaciones Concertantes스페인어), 작품 23 (1953)
* 팜페아나 제3번 (교향적 파스토랄), 작품 24 (1954)
* 현악 협주곡, 작품 33 (1965)
* 교향 연습곡, 작품 35 (1967)
* 포폴 부흐, 작품 44 (1975–1983, 미완성)
*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파우 카잘스 주제에 대한 주석, 작품 46 (1976)
* 풀 오케스트라를 위한 파우 카잘스 주제에 대한 주석, 작품 48 (1976–77)
* 이우빌룸 (소리침), 작품 51 (1979–80)

4.4.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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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없음 || 1937년
|-
| 하프 || 하프 협주곡 || 작품 25 || 1956~65년
|-
| 피아노 || 피아노 협주곡 1번 || 작품 28 || 1961년
|-
| 바이올린 || 바이올린 협주곡 || 작품 30 || 1963년
|-
| 첼로 || 첼로 협주곡 1번 || 작품 36 || 1968년
|-
| 피아노 || 피아노 협주곡 2번 || 작품 39 || 1972년
|-
| 첼로 || 첼로 협주곡 2번 || 작품 50 || 1980~81년
|}

4.5. 실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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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작품명작품 번호작곡 연도
피아노아르헨티나풍 협주곡 {{lang|es|Concierto argentinos|}
히나스테라의 실내악 작품 목록
작품명악기 편성작품 번호작곡 연도비고
이중주플루트, 오보에Op. 131945년
팜페아나 1번바이올린, 피아노Op. 161947년
현악 사중주 1번현악 사중주Op. 201948년
팜페아나 2번첼로, 피아노Op. 211950년
현악 사중주 2번현악 사중주Op. 261958년1968년 개정
피아노 오중주피아노, 현악 사중주Op. 291963년
현악 사중주 3번소프라노, 현악 사중주Op. 401973년
푸네냐 1번플루트Op. 411973년작곡가 사망 당시 미완성
푸네냐 2번첼로Op. 451976년파울 사허에게 헌정
기타 소나타기타Op. 471976년1981년 개정
첼로 소나타첼로, 피아노Op. 491979년
팡파레네 대의 트럼펫Op. 51a1980년

4.6. 피아노

* 동요 소품집(어린이를 위한 소품집) Piezas infantiles스페인어 (작품번호 없음, 1934년)
* 아르헨티나 댄스 Danzas argentinas스페인어, 작품번호 2 (1937년)
* 밀롱가 Milonga스페인어 (《두 개의 가곡》 작품 3의 제1곡을 작곡가 자신이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한 작품, 1938년)
* 세 개의 소품 Tres piezas스페인어, 작품번호 6 (1940년)
* 말람보 Malambo스페인어, 작품번호 7 (1940년)
* "작은 " Pequena Danza스페인어 (발레 Estancia스페인어, 작품 번호 8에서) (1941년)
* 12개의 아메리카 전주곡 12 Preludios americanos스페인어, 작품번호 12 (1944년)
* 크리오요 모음곡 Suite de danzas criollas스페인어, 작품번호 15 (1946년, 1956년 개정)
* 아르헨티나 어린이 주제에 의한 론도 Rondó sobre temas infantiles argentinos스페인어, 작품번호 19 (1947년) - "나의 아이 알렉스와 헤오르히나에게 헌정한다"라고 적혀 있다.
* 피아노 소나타 1번, 작품번호 22 (1952년)
* 도메니코 치폴리(Domenico Zipoli)의 오르간 토카타 편곡 (1970년)
* 피아노 소나타 2번, 작품번호 53 (1981년)
* 피아노 소나타 3번, 작품번호 54 (1982년) - 히나스테라의 마지막 작품. 단일 악장으로 구성된다.
* 어린이를 위한 아르헨티나 댄스 Danzas argentinas para los ninos스페인어 (미완성, 작품번호 없음)
Moderato: para Alex스페인어
Paisaje: para Georgina스페인어

4.7. 가곡

* 《두 개의 노래》(Dos canciones, 노래와 피아노) 작품3 (1938년)
** 제1곡 "망각의 나무의 노래"는 히나스테라의 가곡 중에서도 특히 알려져 있으며, 연주회 등에서도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다. 또한 피아노곡 "밀롱가"는 작가 자신이 이 가곡을 독주용으로 편곡한 작품이다.
* 《투쿠만의 노래》(Cantos del tucuman, 노래, 플루트, 바이올린, 하프와 2개의 타악기) 작품4 (1938년)
* 《아르헨티나 민요에 의한 5개의 가곡집》(Cinco canciones populares argentinas, 노래와 피아노) 작품10 (1943년)
* 《어느 농장에서의 하루》(Las horas de una estancia, 노래와 피아노) 작품11 (1943년)
* 《마법의 아메리카 대륙에 부치는 칸타타》(Cantata para america magia, 소프라노타악기군을 위한) 작품27 (1960년)
* 칸타타 《보마르초》(Bomarzo) 작품32 (1964년) - 작품34의 오페라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 《빼앗긴 키스의 노래》(Cancion del beso robado, 노래와 피아노) - 작곡 연대 불명이며, 위작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4.8. 합창

wiki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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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작품명작품 번호편성
1938시편 150편작품 5혼성 합창, 어린이 합창단, 오케스트라
1946예언자 예레미야의 애가작품 14합창
1975그레고리오 수난곡의 군중들작품 43독창자, 합창, 소년 합창단, 오케스트라

5. 영향 및 평가

히나스테라의 작품은 아르헨티나 음악의 영향을 받아 오스티나토 기법을 풍부하게 사용한 명쾌한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원시주의적이고 무조적인 스타일로 변화했으며, 나중에는 12음 기법이나 미분음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히나스테라 자신은 자신의 음악 세계를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했다.
* 객관적 애국심 (Objective Nationalism): 첫 시기로, 이 시기 작품들은 아르헨티나 민요를 직접적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다.
* 주관적 애국심 (Subjective Nationalism): 1948년부터 시작된 두 번째 시기로, 민요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아르헨티나적인 색채가 뚜렷하게 남아있다.
* 신 표현주의 (Neo-Expressionism): 1958년부터 시작된 세 번째 시기로, 민요적 요소는 연속 기법 안에서 활용되며 더욱 현대적인 음악 어법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으로는 여러 편의 오페라, 2곡의 피아노 협주곡, 2곡의 첼로 협주곡, 1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1곡의 하프 협주곡 등이 있다. 특히 "하프 협주곡 작품 25"는 몇 안 되는 하프를 위한 협주곡 중 하나로 종종 연주된다. 이 외에도 발레 음악, 실내악,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탱고 음악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그의 초기 제자 중 한 명이다. 또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ELP는 자신들의 앨범 브레인 살롱 서저리Brain Salad Surgery영어에 히나스테라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4악장을 편곡한 곡 "토카타"(Toccata영어)를 수록했다. 편곡 허가를 받기 위해 찾아온 키보디스트 키스 에머슨에게 히나스테라는 편곡 실력을 극찬하며 흔쾌히 허락했다고 전해진다.

히나스테라는 국제적으로도 활동했는데, 1978년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 지휘 부문에서 쓰쓰미 슌사쿠가 최고상을 수상했을 당시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쓰쓰미 슌사쿠는 이후 히나스테라의 발레 음악 에스탄시아Estancia스페인어를 일본에서 초연했다. 교육 분야에서도 그는 194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음악·무대 예술원을 설립했는데, 이 기관은 오늘날 지랄도 지랄디 음악원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