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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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애플 레코드는 1968년 비틀즈가 설립한 레코드 레이블이다. 비틀즈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사망 이후 비틀즈의 사업 구조 개편의 일환으로 설립되었으며, EMI를 통해 음반을 유통했다. 비틀즈 멤버들의 솔로 앨범과 메리 홉킨, 배드핑거, 빌리 프레스턴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음반을 발매했으며, 앨런 클라인 시대와 닐 에스피놀 시대를 거쳐 제프 존스 시기에 이르렀다. 애플 레코드는 Zapple Records라는 자회사를 통해 실험적인 음악도 발매했으며, 현재는 칼더스톤 프로덕션스가 비틀즈 음반 목록을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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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레코드 - 닐 아스피날
닐 아스피날은 비틀즈의 로드 매니저, 개인 비서, 애플 코어의 경영자, 《비틀즈 앤솔로지》의 총괄 프로듀서로서 밴드의 사업적 활동을 총괄하고 유산을 관리하는 데 기여한 영국의 음악 산업 경영자이다. - 영국의 음반사 - 데카 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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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레코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애플 레코드 |
원어 이름 | Apple Records |
종류 | 국제적인 레코드 레이블 |
모회사 | 애플 코어 |
설립일 | 1968년 |
설립자 | 비틀즈 |
유통사 | 캘더스톤 프로덕션 캐피틀 레코드 유니버설 뮤직 그룹 |
국가 | 영국 |
장르 |
2. 역사
1968년 비틀즈는 애플 코어의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로 애플 레코드를 설립했다.[13] 애플 코어의 5대 프로젝트(전자, 영화, 출판, 음반, 소매업) 중 음반 사업이 가장 성공적이었다. 애플 레코드 설립 전, 비틀즈는 미국에서는 캐피틀, 영국에서는 파로폰(EMI 산하)과 계약을 맺고 있었다. 이후 EMI와 캐피틀은 1975년까지 애플 레코드의 작품을 판매하는 데 동의했다. EMI는 비틀즈 음원의 소유권을 계속 보유했고,[13] 애플 코어는 계약한 아티스트의 모든 권리와 비틀즈의 비디오 클립 및 영화에 대한 권리를 소유했다.
애플 레코드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 '''초기(1967-1969)'''
브라이언 엡스타인 사후, 비틀즈는 1967년 절세를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애플 코어를 구상했다.[1] 1968년 인도에서 돌아온 비틀즈는 애플 코어의 하위 부서인 애플 레코드를 공식 설립했다. EMI와 새로운 계약을 맺어 1976년까지 애플 레코드를 유통하기로 합의했다. 애플 레코드는 제임스 테일러, 메리 홉킨, 빌리 프레스턴 등 여러 아티스트와 계약을 맺었다.[2]
- '''앨런 클라인 시대(1969-1973)'''
1969년, 존 레논은 앨런 클라인을 애플의 경영자로 영입했다.[3] 클라인은 애플의 일부 부서를 폐쇄하고, 아티스트 명단을 정리했다. 클라인은 1973년 3월 계약 만료까지 애플을 경영했다.
- '''닐 애스피놀 시대(1973-2007)'''
클라인이 떠난 후, 닐 애스피놀이 애플을 관리했다. 1976년 EMI와의 계약 만료로 비틀즈 카탈로그에 대한 통제권이 EMI로 돌아갔다. 1989년 애플이 EMI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해결된 후, 비틀즈 앤솔로지 프로젝트 등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2006년에는 애플 코어 대 애플 컴퓨터 소송이 발생했다.
- '''제프 존스 시대와 칼더스톤 프로덕션스(2007-현재)'''
2007년, 닐 에스피놀이 은퇴하고 제프 존스가 최고 경영자가 되었다.[5] 비틀즈의 음반 목록은 2009년 리마스터되어 발매되었고, 2010년 아이튠즈에서 이용 가능하게 되었다.[6][7] 유니버설 뮤직 그룹이 EMI를 인수하면서, 2012년 칼더스톤 프로덕션스가 설립되어 비틀즈의 음반 목록을 관리하게 되었다.
2. 1. 1967–1969: 초기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사망한 후, 비틀즈는 1967년에 절세 목적의 사업 구조 계획의 일환으로 애플 코어(Apple Corps Ltd)를 구상했다. 애플 코어는 애플 소매, 애플 출판, 애플 전자 등 소규모 회사 그룹으로 구성될 예정이었다.[1] 애플 코어 설립 후 밴드가 처음으로 발표한 프로젝트는 애플 필름스에서 제작한 영화 ''Magical Mystery Tour''였다. 1968년, 비틀즈는 인도에서 돌아온 후 애플 코어의 또 다른 하위 부서인 애플 레코드를 공식적으로 설립했다.당시 비틀즈는 EMI와 계약을 맺고 있었다. 새로운 유통 계약에서 EMI와 그 미국 자회사인 캐피톨 레코드는 1976년까지 애플 레코드를 유통하기로 합의했고, EMI는 그들의 녹음에 대한 소유권을 유지했다. 영국에서 애플 레이블로 발매된 비틀즈 녹음은 Parlophone 카탈로그 번호를 사용했고, 미국 발매는 Capitol 카탈로그 번호를 사용했다. 애플 레코드는 비틀즈의 모든 비디오와 영화 클립에 대한 권리와 레이블과 계약한 다른 아티스트의 녹음에 대한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
애플 레코드의 첫 번째 카탈로그 번호인 애플 1은 프랭크 시나트라가 링고 스타의 아내 모린의 21번째 생일을 위한 깜짝 선물로 "The Lady Is a Tramp" 멜로디에 맞춰 부른 "Maureen Is a Champ"(새미 칸 작사)의 싱글 음반이었다.
애플 레코드와 애플 출판은 비틀즈가 개인적으로 발견하거나 지원하는 많은 아티스트와 계약을 맺었고, 대부분의 경우 비틀즈 중 한 명 이상이 녹음 세션에 참여했다. 제임스 테일러, 메리 홉킨, 빌리 프레스턴, 모던 재즈 콰르텟, 아이비스(후에 배드핑거가 됨), 도리스 트로이, 그리고 조지 해리슨의 "Sour Milk Sea"를 녹음한 전 리버풀 가수 재키 로맥스를 포함하여 여러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가 첫해에 계약을 맺었다.[2]
2. 2. 1969–1973: 앨런 클라인 시대
1969년, 비틀즈는 재정적, 경영적 지도가 필요했고, 존 레논은 롤링 스톤스의 매니저인 앨런 클라인에게 접근했다.[3] 클라인이 애플을 경영하게 되자, 비틀즈 멤버 중 3명이 그를 지지했고, 폴 매카트니만이 그의 참여에 반대했다. 매카트니는 장인 리 이스트먼을 그 자리에 추천했었다.클라인은 애플의 지휘권을 잡고 애플 전자 등 몇몇 부서를 폐쇄했으며, 애플 레코드의 예술가 명단 일부를 정리했다. 이후 레이블에 새로 합류하는 아티스트의 수는 많지 않았고, 전 비틀즈 멤버들의 개별적인 활동을 통해 영입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엘리펀트 메모리는 레논을 통해, 라비 샹카는 해리슨을 통해 영입되었다. 매카트니는 1970년 이후 애플 레코드의 아티스트 명단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클라인은 1973년 3월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애플 군단을 경영했다. 비틀즈의 애플 이전 모든 카탈로그는 1971년 5월 애플 레이블에서 재발매되었으며, "I Want to Hold Your Hand"부터 "Lady Madonna"까지의 싱글과 ''Meet the Beatles!''부터 ''Magical Mystery Tour''까지의 앨범이 포함되었다. 앨범 표지는 캐피톨 로고가 그대로 유지된 채 변경되지 않았다.
2. 3. 1973–2007: 닐 애스피놀 시대
클라인이 떠난 후, 애플은 네 명의 비틀즈와 그들의 상속인을 대신하여 닐 애스피놀이 관리했다. 1976년 애플 레코드와 EMI 간의 배급 계약이 만료되면서 조지 해리슨, 존 레논, 링고 스타의 솔로 녹음을 포함한 비틀즈 카탈로그에 대한 통제권이 EMI로 돌아갔다. (폴 매카트니는 1975년 캐피톨과 재계약하면서 자신의 솔로 녹음 소유권을 얻었다.)[4]1987년과 1988년에 비틀즈 앨범의 오리지널 영국 버전이 파롤폰 레이블을 통해 EMI에서 컴팩트 디스크로 전 세계에 발매되었다. 그전에는 1983년 일본에서 도시바-EMI 레이블로 애비 로드가 CD로 발매되었으나, 이는 비틀즈, EMI, 애플 코퍼레이션의 승인을 받지 않은 발매였다. 1989년 애플이 EMI를 상대로 제기한 10년간의 소송이 해결된 후, 닐 애스피놀의 주도로 비틀즈 앤솔로지 프로젝트와 라이브 앳 더 BBC 앨범을 포함한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앤솔로지'' 프로젝트 이후, 회사는 다시 상당한 이익을 창출하며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2006년, 애플 레코드의 모회사와 애플(Apple Inc.) 간의 오랜 분쟁이 고등 법원으로 넘어가면서(''애플 코어 대 애플 컴퓨터'' 참조) 이 레이블은 다시 뉴스거리가 되었다.
2. 4. 2007–현재: 제프 존스 시대와 칼더스톤 프로덕션스
2007년, 오랜 기간 최고 경영자였던 닐 에스피놀이 은퇴하고 미국의 음악 산업 경영인 제프 존스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5] 비틀즈의 음반 목록은 2009년 9월에 리마스터되어 다시 발매되었고, 2010년 11월에는 아이튠즈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6][7] 2009년 6월, 애플 레코드는 ''렛 잇 롤: 조지 해리슨의 노래들''을 마지막으로 발매했다. 유니버설 뮤직 그룹이 EMI와 비틀즈의 음반 목록을 인수하면서, 2012년 칼더스톤 프로덕션스가 설립되어 비틀즈의 음반 목록을 관리하게 되었다.3. 디자인
애플 레코드의 사과 마크는 폴 매카트니가 소유한 벨기에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푸른 사과 그림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 사과는 그래니 스미스 애플이라는 품종으로, 일본인이 흔히 보는 둥근 모양이 아니라 약간 옆으로 긴 타원형이다.
레코드 재킷에는 일부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이 사과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윤곽선만으로 그려진 사과 마크 안에 "Apple RECORDS"라고 쓰인 디자인이 사용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사실적인 푸른 사과 또는 단색 사과 마크 아래에 "Apple" 표기를 붙인 것이 레이블 로고로 사용되고 있다.
3. 1. 로고
폴 매카트니는 1960년대에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접하고 그의 그림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8] 1967년, 매카트니는 "Au Revoir"라는 글자가 적힌 녹색 사과를 묘사한 "르 쥬 드 무르(Le Jeu De Mourre)"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이 그림 속 사과 이미지를 애플 레코드 회사의 로고로 사용하였다.[9] 매카트니는 1966년에 제작된 이 작품을 현재까지 소장하고 있다.[10]애플 레코드의 사과 마크는 매카트니가 소유한 르네 마그리트의 푸른 사과 그림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 사과는 그래니 스미스 애플이라는 품종으로, 옆으로 약간 긴 타원형 모양이다.
레코드 재킷에는 일부를 제외하고 이 사과 마크가 그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윤곽선만으로 그려진 사과 마크 안에 "Apple RECORDS"라고 쓰인 디자인이 사용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사실적인 푸른 사과 또는 단색 사과 마크 아래에 "Apple" 표기를 붙인 것이 레이블 로고로 사용되고 있다.
3. 2. 레이블
애플 앨범과 싱글 레이블은 A면에 밝은 녹색의 그레니 스미스 사과를, 뒷면에는 사과의 단면을 표시했다. 밝은 녹색 사과는 파롤폰에서 처음 CD를 발매한 후 1990년대 비틀즈 CD 발매에 다시 사용되었다.비틀즈의 미국 발매 앨범 ''렛 잇 비''에서는 그레니 스미스 사과가 빨간색이었다. 그 이유는 같은 이름의 영화 사운드트랙인 이 앨범이 계약상의 이유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레코드에서 제작 및 배포되었고, 캐피톨 레코드에서는 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이를 표시하기 위해 빨간색 사과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빨간 사과는 뒷면 표지에도 나타났으며, 2009년 리마스터드 에디션 뒷면 표지에도 등장했다. 캐피톨의 모회사인 EMI는 1970년대 후반에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레코드를 인수했고, 캐피톨은 ''Let It Be'' 사운드트랙 앨범(1964년의 또 다른 이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비틀즈 영화 사운드트랙 LP인 ''하드 데이즈 나이트''의 미국 권리와 함께)의 미국 권리를 얻었다.
빨간 사과 외에도 사과가 변경된 다른 예로는 조지 해리슨의 앨범 ''All Things Must Pass'' 트리플 앨범이 있는데, 첫 번째 두 디스크에는 주황색 사과가 있고 세 번째 디스크에는 "Apple Jam"이라고 적힌 항아리 레이블이 있다. 존 레논의 앨범 ''John Lennon/Plastic Ono Band''과 오노 요코의 앨범 ''Yoko Ono/Plastic Ono Band''에는 흑백 사과가, 링고 스타의 싱글 "Back Off Boogaloo"에는 파란색 사과가 사용되었다. 해리슨의 앨범 ''Extra Texture (Read All About It)''에는 사과(축소된 만화 형태)가 중심부에서 갉아 먹힌 모습(이는 애플 레코드가 쇠퇴하기 시작했을 때 발매되었기 때문에 농담으로 의도되었다)이, 스타의 컴필레이션 앨범 ''Blast from Your Past''에는 빨간 사과가 사용되었다. 다른 유형의 사과도 사용되었다. 1971년 레논의 ''이매진''과 오노의 ''플라이''의 경우 사과에는 각각 레논과 오노의 사진이 실렸으며, 오노의 1973년 ''Approximately Infinite Universe''와 이 세 앨범에서 발매된 싱글도 마찬가지였다.
4. Zapple Records
'''Zapple Records'''는 애플 레코드의 자회사로, 폴 매카트니의 친구인 배리 마일스가 운영했다. 이 레이블은 스포큰 워드와 아방가르드 레코드를 저가에 발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11] 1969년 2월 3일부터[11] 1969년 6월까지 짧은 기간 동안 활동했다.
Zapple에서는 비틀즈 멤버들의 솔로 앨범 2장만이 발매되었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아방가르드 앨범 ''Unfinished Music No. 2: Life with the Lions''(Zapple 1)과 조지 해리슨의 ''Electronic Sound''(Zapple 2)가 발매되었다.[11]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낭독 앨범도 Zapple 3으로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앨런 클라인이 레이블을 폐쇄하면서 무산되었다. 마일스는 "비틀즈 멤버들은 아무도 이 앨범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11] 브라우티건의 앨범은 결국 애플의 배급사인 EMI의 자회사인 Harvest Records를 통해 미국에서만 ''Listening to Richard Brautigan''이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1969년 1월, 마일스는 미국 동부 해안을 여행하며 시인들의 집에서 현장 녹음을 진행했다. 여기에는 시인이자 Fugs의 드러머인 켄 위버와 블랙 마운틴 시인 찰스 올슨이 포함되었다.[11] 로렌스 펄링게티와 마이클 매클루어의 스포큰 워드 앨범도 녹음되었으나 발매되지 못했다.[11] 레니 브루스의 영국 공연,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 켄 키지의 런던 인상 녹음 등도 계획되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Zapple은 1969년 6월, 앨런 클라인에 의해 폐쇄되었다.[12]
5. 소속 아티스트
애플 레코드에는 비틀즈 멤버들 외에도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메리 홉킨, 배드핑거, 빌리 프레스턴 등이 대표적이다.[2]
'''배드핑거(The Iveys)'''는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존 레논의 승인을 받아 애플과 계약했다. 이들은 영미권에서 여러 톱 10 히트곡을 냈고, 매카트니가 작곡한 "Come and Get It"을 포함하여 애플에서 5개의 앨범을 냈다.
'''메리 홉킨'''은 모델 트위기의 제안으로 발탁되었다. 매카트니가 프로듀싱한 초기 녹음에는 레논-매카트니 원곡 "Goodbye"와 히트곡 "Those Were the Days"가 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참가곡("Knock, Knock Who's There?")과 두 개의 스튜디오 앨범도 애플에서 발매했다.
'''빌리 프레스턴'''은 1969년 1월 비틀즈의 "Get Back"/"Let It Be" 세션에 참여한 후 솔로 아티스트로 계약했다. 해리슨은 "That's The Way God Planned It"을 포함한 프레스턴의 녹음을 프로듀싱했다. 프레스턴은 ''That's the Way God Planned It''(1969), ''Encouraging Words''(1970) 두 앨범을 애플에서 발매했다.
'''도리스 트로이'''는 미국의 소울 아티스트로, 해리슨, 프레스턴과 함께 작업했다. 애플 앨범 한 장과 두 개의 싱글을 발매했으며, 첫 싱글 "Ain't That Cute"는 해리슨과 공동 작곡했다.
'''제임스 테일러'''는 매카트니와 함께 녹음했으며, 그의 데뷔 앨범에 매카트니가 참여했다.
이 외에도 재키 로맥스, 모던 재즈 콰르텟, 라비 샹카, 엘리펀츠 메모리, 존 타브너, 블랙 다이크 밀스 밴드, 핫 초콜릿 밴드, 데이비드 필, 론 앤 데렉 반 이튼, 라다 크리슈나 사원, 크리스 호지, 로니 스펙터, 트래시, 엘라스틱 오즈 밴드, 선다운 플레이보이즈, 브루트 포스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애플 레코드와 계약했다.
5. 1. 비틀즈 및 멤버 솔로
1969년, 비틀즈는 재정적, 경영적 지도가 필요했고, 존 레논은 롤링 스톤스의 매니저인 앨런 클라인에게 접근했다.[3] 앨런 클라인이 애플을 경영하게 되자, 비틀즈 멤버 중 3명이 그를 지지했고, 폴 매카트니만이 그의 참여에 반대했다. 매카트니는 장인 리 이스트먼을 그 자리에 추천했었다.클라인은 애플의 지휘권을 잡고 애플 전자 등 몇몇 부서를 폐쇄했으며, 애플 레코드의 예술가 명단 일부를 정리했다. 이후 레이블에 새로 합류하는 아티스트의 수는 많지 않았고, 전 비틀즈 멤버들의 개별적인 활동을 통해 영입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엘리펀트 메모리는 레논을 통해, 라비 샹카는 해리슨을 통해 영입되었다. 매카트니는 1970년 이후 애플 레코드의 아티스트 명단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클라인은 1973년 3월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애플 군단을 경영했다. 비틀즈의 애플 이전 모든 카탈로그는 1971년 5월 애플 레이블에서 재발매되었으며, "I Want to Hold Your Hand"부터 "Lady Madonna"까지의 싱글과 ''Meet the Beatles!''부터 ''Magical Mystery Tour''까지의 앨범이 포함되었다. 앨범 표지는 캐피톨 로고가 그대로 유지된 채 변경되지 않았다.
5. 2. 그 외 주요 아티스트
배드핑거(원래 이름은 The Iveys)는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존 레논의 승인을 받아 애플과 계약을 맺었다. 로드 매니저 말 에반스가 여러 데모 테이프를 가져온 후였다. 영국과 미국에서 여러 톱 10 히트곡을 기록했으며, 매카트니의 곡 "Come and Get It"을 포함하여 애플을 위해 5개의 앨범을 녹음했다.[2]메리 홉킨은 영국 텔레비전 탤런트 쇼에 출연한 후 모델 트위기의 제안으로 발견되었다. 그녀의 초기 녹음은 매카트니가 프로듀싱했으며, 레논-매카트니 원곡 "Goodbye"와 그녀의 히트곡 "Those Were the Days"가 포함되었다. 그녀는 또한 애플에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참가곡("Knock, Knock Who's There?")과 두 개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했다.[2]
빌리 프레스턴은 1969년 1월 비틀즈의 "Get Back"/"Let It Be" 세션에 참여했으며 솔로 아티스트로 계약했다. 해리슨은 1969년 히트 싱글 "That's The Way God Planned It"을 포함하여 프레스턴의 녹음을 프로듀싱했다. 프레스턴의 해리슨의 "My Sweet Lord" 녹음은 해리슨의 버전보다 먼저 애플에서 발매되었다. 프레스턴은 애플에서 두 개의 앨범을 발매했는데, 1969년에는 조지 해리슨, 에릭 클랩튼, 키스 리처드가 참여한 ''That's the Way God Planned It'', 1970년에는 조지 해리슨, 에릭 클랩튼, 링고 스타, 델라니 브램렛이 참여한 ''Encouraging Words''가 발매되었다.[2]
도리스 트로이는 1960년대 초반부터 활동한 미국의 소울 아티스트로, 프레스턴이 애플과 계약한 동안 해리슨, 프레스턴과 함께 작업했다. 트로이는 애플 앨범 한 장을 녹음했으며 1970년에 두 개의 스핀오프 싱글을 발매했는데, 그 중 첫 번째 싱글인 "Ain't That Cute"는 해리슨과 공동 작곡했다. 스타도 앨범에 참여했으며, 일부 트랙에서 해리슨 및 트로이와 공동 작곡가로 이름을 올렸다.[2]
제임스 테일러는 매카트니와 함께 녹음했는데, 매카트니는 그의 경력을 시작하게 한 애플 LP에 출연한다.[2]
5. 3. 기타 아티스트
다음은 애플 레코드와 계약한 아티스트 목록이다.- 재키 로맥스
- 모던 재즈 콰르텟
- 라비 샹카
- 엘리펀츠 메모리
- 존 타브너
- 블랙 다이크 밀스 밴드
- 핫 초콜릿 밴드
- 데이비드 필
- 론 앤 데렉 반 이튼
- 라다 크리슈나 사원
- 크리스 호지
- 로니 스펙터
- 트래시
- 엘라스틱 오즈 밴드
- 선다운 플레이보이즈
- 브루트 포스
6. 기타 릴리스
1963년 미국의 필레스 레코드에서 발매된 필 스펙터의 크리스마스 앨범은 영국과 미국 모두 애플 레코드에서 재발매되었다.[13]
닐슨이 주연하고 링고 스타가 감독한 1974년 사운드트랙 《Son of Dracula》(일본 제목: 흡혈귀 드라큘라 2세)는 "Rapple"이라는 레이블로 발매되었다. 이는 영화 배급은 애플 필름이 담당했고, 레코드 판매는 RCA가 담당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레이블 면에 Rapple을 사용했지만, 띠 등에서는 일반적인 RCA 레이블로 취급되어 발매되었다.
애플 레코드는 미국에서만 "Cometogether", "Raga"(일본에서도 발매), "El Topo" 등 3장의 사운드트랙 앨범을 발매했다.
참조
[1]
서적
[2]
웹사이트
George Harrison produces Jackie Lomax's Sour Milk Sea
https://www.beatlesb[...]
1968-06-24
[3]
서적
[4]
웹사이트
Deconstructing Pop Culture: The Beatles' Contract History with Capitol Records
http://musewire.com/[...]
MuseWire
2009-05-15
[5]
뉴스
Magical Mystery Tour Ends for Apple Corps Executive
https://www.nytimes.[...]
The New York Times
2007-04-12
[6]
웹사이트
The Beatles: Here, There And Everywhere Except iTunes
https://www.billboar[...]
Billboard Music
2009-09-09
[7]
웹사이트
Beatles Catalog Finally Coming to iTunes, Apple Announces
https://www.billboar[...]
Billboard Music
2010-11-16
[8]
웹사이트
Pop Goes Magritte
https://news.wttw.co[...]
2014-06-30
[9]
웹사이트
Interview for Flemish Public Radio
https://www.the-paul[...]
1993-01-01
[10]
웹사이트
Mary Hopkin is filmed for Apple promo film
https://www.the-paul[...]
2024-10-06
[11]
문서
Barry Miles, as quoted by [[Richie Unterberger]] in the sleevenotes to the eventual non-Apple release of ''Listening to Richard Brautigan''
http://www.richieunt[...]
[12]
라디오
The Archive Hour
BBC Radio 4
2004-06-12
[13]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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