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오노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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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주축이 되어 결성된 개념적인 밴드로, 고정된 멤버 없이 매번 다른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열린 형태를 특징으로 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레논과 오노의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시작되었으며, 1969년 7월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밴드는 실험적인 음악 스타일을 시도하고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활동을 펼쳤으며, 1970년대 초반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했다. 1975년 존 레논의 활동 중단과 1980년 그의 사망 이후 활동이 중단되었으나, 2009년 오노 요코에 의해 재결성되어 2015년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플라스틱 오노 밴드 - [음악 그룹]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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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플라스틱 오노 밴드. 왼쪽부터 클라우스 부어만, 앨런 화이트, 오노 요코, 존 레논, 에릭 클랩튼
별칭플라스틱 오노 엘리펀트 메모리 밴드, 플라스틱 유에프 오노 밴드, 플라스틱 오노 뉴클리어 밴드, 요코 오노 플라스틱 오노 밴드, 엘라스틱 오즈 밴드
결성지런던, 잉글랜드
활동 기간1968년–1974년, 2009년–2015년
레이블애플, Chimera Music
관련 활동비틀즈, 더티 맥, 엘리펀츠 메모리, 플래밍 립스
웹사이트플라스틱 오노 밴드 공식 웹사이트
멤버플라스틱 오노 밴드 라인업 목록 참고
음악 스타일
장르, 실험 음악, 아트 록, 개념 미술, 아방가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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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1969년 존 레논이 "실존하지 않는 개념적인 밴드", "고정 멤버가 없음", "관객도 밴드 멤버"라는 구상에 기초하여 결성되었다. 녹음이나 공연마다 초빙된 뮤지션이 멤버로 크레딧되었고, 밴드명도 매번 바뀌었다. 밴드 이름은 오노 요코가 스튜디오에서 플라스틱 스탠드를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다.

* 폴 매카트니는 커밍 업 뮤직 비디오에서 자신을 포함한 10명의 뮤지션을 연기했는데, 드럼 세트에 "THE PLASTIC MACS"라고 적혀 있었다. 이는 플라스틱 오노 밴드와 레논이 1968년 록큰롤 서커스 출연 시 결성한 밴드 더티 맥에서 유래했다.
* 일본 록 밴드 사디스틱 미카 밴드는 플라스틱 오노 밴드를 패러디하여 이름 지어졌다.

2.1. 결성 이전 (1966년 ~ 1968년)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1966년에 만났다. 레논은 비틀즈의 세계적인 멤버였고, 오노는 아방가르드 예술가이자 공연자였다. 1968년 무렵, 두 사람은 연인 관계가 되었고 여러 음악 프로젝트에서 협업을 시작했다.

플라스틱 오노 밴드라는 이름과 열린 형태의 플라스틱 밴드라는 플럭서스 아이디어는 1967년 오노가 베를린에서 열릴 예술 전시회의 아이디어로 구상했다.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1968년 존 레논에 의해 멀티미디어 머신 마케트(maquette)로 실현되었으며, 이 역시 플라스틱 오노 밴드라고 불렸다. 1968년, 레논과 오노는 개인적, 예술적 관계를 시작했고, 이후의 모든 작업을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작품으로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오노와 레논은 플라스틱 오노 밴드 컨셉과 연결된 좀 더 표준적인 록 음악 기반의 앨범을 녹음하고 발매하기 전에 여러 예술 전시회, 콘서트, 해프닝 및 실험적인 노이즈 음악 녹음 프로젝트에서 협업했다.

1968년 5월에 함께 녹음한 음원은 11월에 실험적인 앨범 Unfinished Music No.1: Two Virgins로 발매되었다. 두 사람은 여름 내내 비틀즈의 동명의 더블 앨범 (일명 "화이트 앨범")에 수록된 실험적인 곡 "Revolution 9" 작업을 했다. 1968년 12월, 레논과 오노는 롤링 스톤스 록 앤 롤 서커스에 에릭 클랩튼, 롤링 스톤스의 키스 리처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미치 미첼, 바이올리니스트 이브리 기틀리스로 구성된 슈퍼그룹 "The Dirty Mac"으로 함께 출연했다.

2.2. 결성 및 초기 활동 (1969년 ~ 1970년)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1969년 여름, 비틀즈가 애비 로드(Abbey Road) 앨범 작업을 마무리하며 활동을 잠시 중단한 시기에 결성되었다. 밴드는 "실존하지 않는 개념적인 밴드", "고정 멤버가 없음", "관객도 밴드 멤버"라는 존 레논의 구상에 기반했다. 녹음이나 공연마다 초빙된 뮤지션이 멤버로 크레딧되었고, 밴드명도 매번 바뀌었다. 밴드명은 오노 요코가 스튜디오에서 플라스틱 스탠드를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다.

1969년 1월, 비틀즈 멤버들은 각자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레논은 3월 20일 오노와 결혼 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평화를 위한 베드-인"을 진행하며 평화 활동을 펼쳤다. 5월 12일, 레논과 오노는 EMI 스튜디오에서 잼 세션 음원을 믹싱하고 박수를 오버더빙한 "Jam Peace"를 "플라스틱 오노 밴드" 명의로 발표했다.

5월 26일부터 레논과 오노는 캐나다퀘벡주몬트리올에서 두 번째 "베드-인"을 열고, 6월 1일 "평화를 우리에게"와 "요코의 마음"을 녹음했다. 이 두 곡은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첫 싱글로 발매되어 영국 싱글 차트 2위, 빌보드 14위를 기록했다.

9월 12일, 레논은 토론토 록 앤 롤 리바이벌(Toronto Rock and Roll Revival) 페스티벌 주최 측의 제안으로 에릭 클랩튼, 클라우스 부어만, 앨런 화이트와 함께 급히 밴드를 구성했다. 토론토행 비행기에서 리허설을 진행한 후, 페스티벌에서 록과 실험적인 곡들을 연주했다. 이 공연은 토론토 평화 콘서트 1969(Live Peace in Toronto 1969)로 발매되어 밴드의 첫 LP가 되었다.

9월 말,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콜드 터키(Cold Turkey)를 녹음했다. 폴 매카트니의 거절로 비틀즈 싱글이 되지 못한 이 곡은 링고 스타가 드럼을 연주하고 10월 24일 발매되었으며, 레논의 마약 중독 경험을 다뤄 BBC 등에서 방송 금지되었다.

11월 26일, 레논은 유 노우 마이 네임 (넘버를 찾아봐)(You Know My Name (Look Up the Number))와 왓츠 더 뉴 메리 제인(What's the New Mary Jane) 싱글 발매를 추진했으나, EMI와 비틀즈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12월 15일, 런던 유니세프 자선 콘서트 "크리스마스를 위한 평화(Peace for Christmas)"에 에릭 클랩튼, 조지 해리슨, 빌리 프레스턴 등과 "플라스틱 오노 슈퍼그룹"으로 참여했다. 이후 레논과 오노는 "전쟁은 끝났다! 원한다면 - 존 & 요코로부터 해피 크리스마스(WAR IS OVER! If You Want It – Happy Christmas from John & Yoko)"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1970년 1월, 레논은 인스턴트 카르마!(Instant Karma!)를 하루 만에 작곡, 녹음하고 필 스펙터 프로듀싱으로 2월 6일 발매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2.3.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앨범 (1970년 ~ 1971년)

1970년 여름, 존 레논오노 요코는 아서 야노프의 지도 아래 원시 요법을 받았다. 이 요법은 레논의 작곡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해 9월 말, 두 사람은 런던으로 돌아와 존 레논/플라스틱 오노 밴드요코 오노/플라스틱 오노 밴드 녹음을 시작했다.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핵심 멤버는 베이스의 클라우스 부어만과 드럼의 링고 스타였다. 필 스펙터는 레논의 음반을 공동 프로듀싱했고, 그와 빌리 프레스톤은 몇몇 트랙에서 키보드를 연주했다. 조지 해리슨은 오노의 앨범에 시타르를 연주했다. 레논의 음반은 간결하고 단순한 록으로 구성되었고, 오노의 음반은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음악을 특징으로 했다. 두 앨범 모두 12월 11일에 발매되었다. 싱글 "Mother" / "Why"가 발매되었으며, 이 곡들은 각각 존 레논요코 오노에서 가져온 것이다.

1971년 초, 레논은 빌리 프레스톤, 바비 키스, 클라우스 부어만, 앨런 화이트와 함께 "Power to the People"을 녹음했다. 오노의 B 사이드 "Open Your Box"에는 부어만과 짐 고든이 참여했다. 이 싱글은 3월에 발매되었으며, "John Lennon/Plastic Ono Band"와 "Yoko Ono/Plastic Ono Band"로 각각 명시되었다.

1971년 봄과 여름, 레논과 오노는 각각 앨범 ImagineFly를 녹음했다. "John Lennon/Plastic Ono Band"와 "Yoko Ono/Plastic Ono Band"라는 아티스트 크레딧을 사용했으며, 이 앨범에는 조지 해리슨, 니키 홉킨스, 클라우스 부어만, 앨런 화이트, 짐 켈트너, 짐 고든이 참여했고, 필 스펙터는 Imagine을 공동 프로듀싱했다.

2.4. 뉴욕으로의 이동과 사회 참여 (1971년 ~ 1973년)

1971년 12월 집회에서 공연하는 오노와 레논
1971년 12월 집회에서 공연하는 오노와 레논

1971년 가을, 레논오노는 영국을 떠나 뉴욕에 정착했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이들은 정치적으로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며 저항적인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노래들은 다음 앨범인 Some Time in New York City의 기반이 되었다.

레논과 오노는 엘리펀츠 메모리라는 뉴욕 밴드와 함께 이 앨범을 제작했다. 엘리펀츠 메모리는 기타리스트 웨인 '텍스' 가브리엘, 베이시스트 게리 반 스코이옥, 색소폰 연주자 스탠 브론스타인, 키보디스트 아담 이폴리토와 존 라 부스카, 드러머 리처드 프랭크 주니어로 구성되었다. 필 스펙터가 공동 프로듀싱을 맡았고, 짐 켈트너도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Some Time in New York City는 1972년 6월 12일에 "존 & 요코/플라스틱 오노 밴드 with 엘리펀츠 메모리 플러스 인비저블 스트링스"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1969년 평화를 위한 크리스마스 콘서트와 클라우스 부어만이 베이스를 오버더빙한 1971년 프랭크 자파와의 공연 실황을 담은 Live Jam이라는 두 번째 디스크가 포함되어 있었다.

1972년 8월 30일, 플라스틱 오노 엘리펀츠 메모리 밴드(짐 켈트너 포함)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제럴도 리베라가 주최한 두 번의 "One to One" 자선 콘서트에 참여했다. 이 시점에서 라 부스카는 밴드를 떠났고, 존 워드가 베이시스트로 합류했다. 이 공연은 촬영 및 녹음되어 1986년 2월 앨범 Live in New York City로 발매되었다. 이들은 제리 루이스 MDA 노동절 텔레톤에도 출연했다.

플라스틱 오노 밴드와 엘리펀츠 메모리의 마지막 협업은 오노의 더블 앨범 Approximately Infinite Universe였다. 이 앨범은 1972년 가을 내내 녹음되었으며, 1973년 1월에 발매되었다.

2.5. 존 레논의 별거와 음악 활동 (1973년 ~ 1974년)

1973년,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8월, 레논은 "잃어버린 주말"이라 불리는 별거 기간을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레논은 메이 팡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같은 해, 레논은 필링 더 스페이스와 같은 연주자들이 참여한 "플라스틱 U.F.오노 밴드"라는 이름으로 《마인드 게임스》 앨범을 녹음하여 11월에 발매했다. 10월에는 로큰롤 옛 노래 앨범 녹음을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많은 플라스틱 오노 밴드 정규 멤버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이 앨범은 1975년에 《로큰롤》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을 때 레논 단독 명의로 등재되었다.

《로큰롤》의 세션은 매우 어려움을 겪었고, 나중으로 연기되었다. 1974년 7월, 레논은 《월스 앤 브릿지스》를 녹음하기 위해 뉴욕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플라스틱 오노 핵 밴드"는 《마인드 게임스》에서부터 짐 켈트너, 케네스 아셔, 아서 젠킨스가 계속 참여했고, 클라우스 부어만, 니키 홉킨스, 바비 키스가 복귀했으며, 제시 에드 데이비스와 에디 모토의 기타리스트가 추가되었다. 녹음은 8월에 완료되었고, 앨범은 9월에 발매되었다.

2.6. 활동 중단과 존 레논의 죽음 (1975년 ~ 1980년)

제공된 소스에는 해당 섹션 제목(활동 중단과 존 레논의 죽음 (1975년 ~ 1980년))에 부합하는 내용이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요약에 따르면 존 레논의 음악 활동 중단, 숀 레논의 출생, 존 레논의 피살 사건, 그리고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다루어야 하지만, 소스에는 이러한 내용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주어진 소스만으로는 해당 섹션을 작성하기 어렵습니다. 섹션 제목과 요약에 맞는 내용을 소스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섹션은 비워두거나 추가적인 자료를 참고해야 합니다.

2.7. 재결성 및 현재 (2009년 ~ 현재)

2009년, 오노 요코는 EP Don't Stop Me!를 통해 플라스틱 오노 밴드라는 이름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앨범 Between My Head and the Sky의 선공개 버전이었다. 이 두 앨범과 이후의 활동은 "요코 오노 플라스틱 오노 밴드"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새로운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핵심 멤버는 숀 레논(오노와 레논의 아들), 코르넬리우스(오야마다 케이고), 혼다 유카였다.

2009년부터 밴드는 베이시스트 시미 히로타카 시미즈, 호른 연주자 마이클 레온하트, 첼리스트 에릭 프리들랜더, 드러머 아라키 유코 등 추가 멤버들과 함께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또한 킴 고든, 서스턴 무어, 베트 미들러, 레이디 가가, 마크 론슨, Scissor Sisters, 하퍼 사이먼, 폴 사이먼, 진 윈 등 많은 게스트와 함께 공연했다.

2010년, "We Are the Plastic Ono Band"라는 콘서트에서 오노와 숀 레논은 에릭 클랩튼, 클라우스 부어만, 짐 켈트너와 다시 함께 공연했다. 2011년에는 플레밍 립스와 함께 EP The Flaming Lips with Yoko Ono/Plastic Ono Band를 발매했다. 요코 오노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가장 최근 앨범은 2013년에 발매된 Take Me to the Land of Hell이다. 요코 오노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2015년까지 라이브 활동을 계속했다.

3. 멤버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존 레논이 구상한 "실존하지 않는 개념적인 밴드"이자 "고정 멤버가 없는" 밴드로, 녹음이나 공연에 참여한 뮤지션들이 멤버로 기록되었다. 밴드 이름은 오노 요코가 스튜디오에서 플라스틱 스탠드를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다.

1969년, 비틀즈 멤버들은 각자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레논은 오노와 결혼 후 언론을 이용한 평화 운동을 전개했다. 5월, 레논과 오노는 평화를 우리에게와 요코의 마음을 녹음했고, 이는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첫 싱글로 발매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8월, 애비 로드 녹음 후, 레논과 오노는 에릭 클랩튼 등과 함께 캐나다에서 열린 "토론토 록 앤 롤 리바이벌 콘서트"에 플라스틱 오노 밴드로 처음 출연했다. 이후 콜드 터키와 교코, 걱정 마세요를 녹음해 두 번째 싱글로 발매했다. 콜드 터키는 영국에서 14위, 미국에서 30위를 기록했다. 12월에는 조지 해리슨, 에릭 클랩튼 등이 포함된 "플라스틱 오노 슈퍼 그룹"으로 유니세프 주최 공연에 참여했다.

1970년, 필 스펙터가 프로듀싱한 인스턴트 카르마를 발표, 영국 5위, 미국 3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레논과 오노는 각각 솔로 앨범 『존의 영혼』과 『요코의 마음』을 발표했다. 1971년에는 파워 투 더 피플과 해피 크리스마스 (전쟁은 끝났다)를 발표했다.

3.1. 주요 멤버

다음은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주요 멤버들이다.

* 존 레논 : 밴드의 창립 멤버이자 리더였다. 기타, 보컬, 키보드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했으며, 밴드의 음악적 방향을 설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 오노 요코 : 밴드의 공동 창립 멤버이자 존 레논의 아내였다. 보컬, 퍼포먼스, 작곡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밴드에 기여했다.
* 숀 레논 :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아들이다. 2009년 밴드 재결성 이후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고 프로듀싱에도 참여했다.
* 코르넬리우스(오야마다 케이고) : 2009년 밴드 재결성 이후 핵심 멤버였다. 기타, 베이스, 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 혼다 유카 : 2009년 밴드 재결성 이후 핵심 멤버였다. 프로툴스, 샘플러, 키보드 등 전자 음악 관련 장비를 담당했다.

이 외에도 에릭 클랩튼, 클라우스 포어만, 링고 스타, 조지 해리슨 등 많은 유명 음악가들이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다양한 시기에 멤버로 참여했다.

3.2. 협력 멤버

다음은 플라스틱 오노 밴드와 협력한 주요 뮤지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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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일시구성원
록앤롤 리바이벌 콘서트1969년 9월 13일존 레논(보컬, 기타), 오노 요코(보컬, 퍼포먼스), 에릭 클랩튼(기타), 클라우스 포어만(베이스), 앨런 화이트(드럼)
싱글 「콜드 터키 / 쿄코짱 걱정하지마」 레코딩1969년 9월 30일, 10월 3일존 레논(보컬, 기타), 오노 요코(보컬), 에릭 클랩튼(기타), 클라우스 포어만(베이스), 링고 스타(드럼)
유니세프 『피스 포 크리스마스』 콘서트1969년 12월 15일존 레논(보컬, 기타), 오노 요코(보컬, 퍼포먼스), 조지 해리슨(기타), 에릭 클랩튼(기타), 델라니 & 보니(기타, 퍼커션), 클라우스 포어만(베이스), 니키 홉킨스(피아노), 빌리 프레스턴(오르간), 보비 휘트록(키보드), 키스 문(드럼), 짐 고든(드럼), 앨런 화이트(드럼), 디노 다넬리(드럼), "레그스" 래리 스미스(드럼), 짐 프라이스(트럼펫), 보비 키즈(색소폰), "수천 명의 관객"
싱글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레코딩1970년 1월오노 요코(보컬, 플루트, 리코더), 존 레논(기타), 존 바햄(쳄발로)
싱글 「인스턴트 카르마」 레코딩1970년 1월 27일존 레논(보컬, 키보드), 오노 요코(백 보컬), 빌리 프레스턴(피아노), 클라우스 포어만(베이스, 백 보컬), 앨런 화이트(드럼, 피아노, 백 보컬), 조지 해리슨(기타, 피아노, 백 보컬), 말 에반스(차임, 손뼉, 백 보컬), 앨런 클라인(백 보컬), 근처 나이트클럽의 손님(백 보컬)
앨범 『존의 영혼』 레코딩1970년 9월 26일~10월 9일존 레논(보컬, 기타, 피아노, 오르간), 클라우스 포어만(베이스), 링고 스타(드럼), 빌리 프레스턴(피아노), 필 스펙터(피아노)
앨범 『요코의 마음』 레코딩1970년 10월 10일~11월 6일오노 요코(보컬), 존 레논(기타), 클라우스 포어만(베이스), 링고 스타(드럼), 조지 해리슨(시타르), 오넷 콜먼(트럼펫), 찰리 헤이든, 데이비드 이젠존(콘트라베이스), 에드 블랙웰(드럼)
싱글 「사람들에게 용기를」 레코딩1971년 1월 22일~2월존 레논(보컬,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보비 키즈(색소폰), 빌리 프레스턴(피아노, 키보드), 클라우스 포어만(베이스), 짐 고든(드럼), 로제타 하이타워 외(백 보컬)
싱글 「오픈 유어 박스」 레코딩1971년 1월~3월오노 요코(보컬), 존 레논(기타), 클라우스 포어만(베이스), 짐 고든(드럼)
프랭크 자파 & 더 마더스 오브 인벤션의 라이브에 게스트 출연1971년 6월 6일존 레논(보컬, 기타), 오노 요코(보컬, 퍼포먼스), 클라우스 포어만(베이스, 백 보컬), 프랭크 자파(리드 기타, 보컬), 에인즐리 던바(드럼), 밥 해리스(키보드), 하워드 케일런(백 보컬), 짐 폰스(베이스, 백 보컬), 돈 프레스턴(키보드, 일렉트로닉스), 이안 언더우드(키보드, 백 보컬, 우드 윈드), 마크 볼먼(보컬)
앨범 『이매진』 레코딩1971년 6월 23일~7월 5일존 레논(보컬, 일렉트릭 기타,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하모니카, 휘슬), 클라우스 포어만(베이스, 콘트라베이스), 조지 해리슨(일렉트릭 기타, 슬라이드 기타, 도브로 기타), 니키 홉킨스(피아노, 일렉트릭 피아노), 앨런 화이트(드럼, 팅샤, 비브라폰), 짐 켈트너(드럼), 짐 고든(드럼), 킹 커티스(색소폰), 존 바햄(하모늄, 비브라폰), 존 투아웃(피아노), 테드 터너(어쿠스틱 기타), 로드 린턴(어쿠스틱 기타), 조이 모랜드(어쿠스틱 기타), 톰 에반스(어쿠스틱 기타), 앤디 크레스웰 데이비스(어쿠스틱 기타), 마이크 핀더(탬버린), 스티브 브렌델(콘트라베이스, 마라카스) 필 스펙터(백 보컬), 더 플럭스 피들러스(현악기)
앨범 『플라이』 레코딩1971년 1월~7월오노 요코(보컬, 클래베스), 존 레논(일렉트릭 기타, 피아노, 오르간, 키보드), 클라우스 포어만(베이스, 일렉트릭 기타, 벨, 심벌즈, 퍼커션), 보비 키즈(클래베스), 에릭 클랩튼(기타), 짐 켈트너(드럼, 타블라, 퍼커션), 링고 스타(드럼), 짐 고든(드럼), 크리스 오스본(도브로 기타), 조 존스(키보드)
『원 투 원』 콘서트 출연1972년 8월 30일존 레논(보컬, 기타, 키보드), 오노 요코(보컬, 키보드), 존 워드(베이스), 짐 켈트너(드럼), 웨인 텍스 가브리엘(리드 기타), 게리 반 쇼크(베이스), 스탠 브론스타인(색소폰), 아담 이폴리토(키보드), 리차드 프랭크 주니어(드럼)
앨범 『거의 무한한 우주』 레코딩1972년 10월~11월오노 요코(보컬, 피아노), 존 레논(기타, 백 보컬), 믹 재거(기타), 웨인 텍스 가브리엘(리드 기타), 게리 반 쇼크(베이스, 트럼펫), 스탠 브론스타인(색소폰, 플루트, 클라리넷), 아담 이폴리토(피아노, 해먼드 오르간, 하모니움, 트럼펫), 리차드 프랭크 주니어(드럼, 퍼커션), 달리아 프라이스(캐스터네츠)
앨범 『마인드 게임스』 레코딩1973년 7월~8월존 레논(보컬, 기타, 클라비코드, 퍼커션), 켄 아셔(피아노, 해먼드 오르간, 멜로트론), 데이비드 스피노자(리드 기타), 고든 에드워즈(베이스), 짐 켈트너(드럼), 릭 마로타(드럼), 마이클 브레커(색소폰), 스니키 피트 클라이노우(페달 스틸 기타), 썸씽 디퍼런트(백 보컬)
앨범 『어린 시절의 꿈』 레코딩1974년 7월~8월존 레논(보컬, 기타, 피아노, 휘슬, 퍼커션), 엘튼 존(보컬, 피아노, 오르간), 니키 홉킨스(피아노), 제시 에드 데이비스(기타), 클라우스 포어만(베이스), 짐 켈트너(드럼), 할 블레인(드럼), 줄리안 레논(드럼), 에디 모토우(어쿠스틱 기타), 켄 아셔(피아노, 해먼드 오르간, 멜로트론), 아서 젠킨스(퍼커션), 해리 닐슨(백 보컬), 리틀 빅 혼스, 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현악기, 관악기), 44th 스트리트 페어리즈
앨범 『A STORY』, 싱글 「꿈을 갖자」 레코딩1974년오노 요코(보컬), 데이비드 스피노자(기타), 휴 맥크라켄(기타), 고든 에드워즈(베이스), 켄 아셔(키보드), 레온 펜더비스(키보드), 아서 젠킨스(퍼커션), 릭 마로타(드럼), 마이클 브레커(테너 색소폰), 랜디 브레커(트럼펫), 앨런 루빈(트럼펫), 루 델 가토(바리톤 색소폰, 베이스 클라리넷), 조지 영(플루트, 클라리넷), 앤 E. 서튼(백 보컬), 에린 디킨스(백 보컬), 게일 칸타(백 보컬), 루이즈 메시나(백 보컬), 썸씽 디퍼런트(백 보컬)
앨범 『비트윈 마이 헤드 앤 더 스카이』 레코딩2009년오노 요코(보컬), 숀 레논(어쿠스틱 & 일렉트릭 기타, 피아노, 키보드, 베이스, 드럼, 퍼커션), 고야마다 케이고(기타, 베이스, 테노리온, 프로그래밍, 퍼커션), 시미즈 히로타카(기타, 퍼커션), 아라키 유코(드럼, 퍼커션), 혼다 유카(프로툴스, 샘플러, 일렉트릭 피아노, 오르간, 퍼커션), 샤자드 이스마일리(기타, 베이스, 드럼, 퍼커션), 마이클 레온하르트(트럼펫, 비브라폰, 퍼커션), 에릭 프리드랜더(첼로), 다니엘 카터(테너 색소폰, 플루트), 인디고 스트리트(기타)
「WE ARE PLASTIC ONO BAND」 뉴욕 공연2010년 2월 16일오노 요코(보컬), 숀 레논(기타), 혼다 유카(키보드), 고야마다 케이고(기타), 시미즈 히로타카(기타, 퍼커션), 아라키 유코(드럼, 퍼커션), 호소노 하루오미(베이스), 스페셜 게스트: 에릭 클랩튼, 클라우스 포어만, 서스턴 무어, 킴 고든, 폴 사이먼, 벳 미들러, 짐 켈트너, 마크 론슨
앨범 『지옥의 끝까지 데려가줘』 레코딩2013년오노 요코(보컬), 숀 레논(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머신, 키보드, 퍼커션, 신시사이저), 혼다 유카(키보드, 로즈 피아노, 신시사이저), 고야마다 케이고(기타, 신시사이저), 시미즈 히로타카(기타), 아라키 유코(드럼, 퍼커션, 신시사이저), 크리스토퍼 쉰 파웰(퍼커션), 레니 크라비츠(드럼, 클라리넷), 메릴 가버스 (빈 병, 드럼, 퍼커션, 로즈 피아노, 목소리), 네이트 브레너(베이스, 빈 병, 퍼커션, 목소리), 케빈 하퍼(빈 병), 애드락(프로그래밍 드럼), 마이크 D(프로그래밍 드럼), 마이클 레온하르트(멜로폰, 퍼커션), 넬스 클라인(기타, 랩 스틸 기타, 루프 스테이션, 퍼커션), 퀘스트러브(드럼), 자레드 새뮤얼(퍼커션, 신시사이저), 샤자드 이스마일리(기타, 베이스, 퍼커션), 앤드류 와이어트(로즈 피아노), 에릭 프리드랜더(첼로), 조이스 햄먼(바이올린), 로이스 마틴(비올라), 빌 다블로우(드럼, 퍼커션), 줄리안 레이지(어쿠스틱 기타), 토마스 바틀렛(피아노)

4. 음악 스타일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음악 스타일은 매우 실험적이고 전위적(아방가르드)이다. 록, 팝, 프리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한 음악을 선보였다. 특히 오노 요코의 독특한 보컬은 밴드의 음악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1969년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평화를 우리에게"를 녹음하여 플라스틱 오노 밴드 명의로 첫 싱글을 발매했다. 이 곡은 영국 싱글 차트 2위, 빌보드 차트 14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콜드 터키"와 "교코, 걱정 마세요"를 싱글로 발매했다. "콜드 터키"는 BBC 등에서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되었지만, 영국 14위, 미국 30위를 기록했다.

1970년에는 필 스펙터 프로듀싱 하에 "인스턴트 카르마"를 발표하여 영국 5위, 미국 3위를 기록하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같은 해, 레논과 오노는 각각 《존의 영혼》과 《요코의 마음》을 발표했다.

1971년에는 "파워 투 더 피플"을 발표했으며, 같은 해 프랭크 자파 & 더 마더스 오브 인벤션의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해피 크리스마스 (전쟁은 끝났다)"를 녹음하여 발표했다.

1972년에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앨범 《섬타임 인 뉴욕 시티》를 발표했지만,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고 상업적으로도 실패했다.

이후에도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이어갔으며, 오노 요코는 2009년 밴드를 재결성하여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5. 사회적, 정치적 활동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음악 활동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활동에 참여했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1969년 3월 20일에 결혼한 후, 첫 번째 "평화를 위한 베드인" 행사를 개최했다. 이들은 언론의 관심을 평화 옹호에 활용했다. 1969년 5월 말과 6월 초에 몬트리올에서 열린 두 번째 베드인에서는 "Give Peace a Chance"를 녹음하여 플라스틱 오노 밴드 명의의 싱글로 발매했다. 이 곡은 반전 운동의 상징적인 노래가 되었다.

1969년 몬트리올에서 "Give Peace a Chance"를 연주하는 레논
1969년 몬트리올에서 "Give Peace a Chance"를 연주하는 레논


1969년 12월 15일,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런던에서 UNICEF 자선 콘서트 "크리스마스를 위한 평화(Peace for Christmas)"에 참여했다. 이후 레논과 오노는 주요 도시 광고판에 "전쟁은 끝났다! 원한다면 - 존 & 요코로부터 해피 크리스마스(WAR IS OVER! If You Want It – Happy Christmas from John & Yoko)"라는 문구를 내걸며 평화 캠페인을 벌였다.

1971년, 레논과 오노는 뉴욕으로 이주하여 정치적으로 더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저항적인 노래를 썼고, 이는 앨범 Some Time in New York City의 기초가 되었다. 1971년 크리스마스 싱글 "Happy Xmas (War Is Over)"는 "John & Yoko/The Plastic Ono Band"로 발매되었으며, 이 곡 역시 반전 운동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았다.

1971년 12월 집회에서 공연하는 오노와 레논
1971년 12월 집회에서 공연하는 오노와 레논


1972년 8월 30일, 플라스틱 오노 엘리펀츠 메모리 밴드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한 자선 콘서트 "One to One"을 열었다.

6. 음반 목록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정규 음반, 라이브 음반, 컴필레이션 음반, EP 등 다양한 형태의 음반을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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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음반 목록
종류음반명발매일비고
정규 음반
라이브 음반
컴필레이션 음반
EP

6.1. 정규 음반

* 《John Lennon/Plastic Ono Band》 (1970)
* 《Yoko Ono/Plastic Ono Band》 (1970)
* 《Imagine》 (1971)
* 《Fly》 (1971)
* 《Some Time in New York City》 (1972)
* 《Approximately Infinite Universe》 (1973)
* 《Feeling the Space》 (1973)
* 《Mind Games》 (1973)
* 《Walls and Bridges》 (1974)
* 《Between My Head and the Sky》 (2009)
* 《Take Me to the Land of Hell》 (2013)

6.2. 라이브 음반

* 《토론토 평화 라이브 1969》 (1969)
* 《렛츠 해브 어 드림: 1974 원 스텝 페스티벌》 (2022)

6.3. 컴필레이션 음반

* 《Shaved Fish

6.4. EP

* Don't Stop Me! (2009)
* The Flaming Lips with Yoko Ono/Plastic Ono Band (2011)

7. 평가 및 영향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대중음악 역사에서 매우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밴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밴드는 실험적인 음악과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노래로, 기존 대중음악의 틀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오노 요코의 예술적인 영향은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음악적 정체성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록 밴드 사디스틱 미카 밴드는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이름을 패러디하여 밴드 이름을 지었다. 또한, 폴 매카트니는 자신의 노래 커밍 업의 뮤직 비디오에서 "THE PLASTIC MACS"라는 드럼 세트와 "ザ・プラスティック・マックス"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베이시스트를 등장시켜 플라스틱 오노 밴드를 오마주하기도 했다.

8. 한국과의 관계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한국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이들의 음악적 철학과 실험 정신은 한국 대중음악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8.1. 한국 대중음악에 미친 영향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실존하지 않는 개념적인 밴드", "고정 멤버가 없음", "관객도 밴드 멤버"라는 존 레논의 구상에 기초하고 있다. 녹음이나 공연을 할 때마다 초빙된 뮤지션이 멤버로 기록되었고, 밴드 이름도 그때마다 변화했다. 밴드 이름은 오노 요코가 스튜디오에서 플라스틱제 스탠드를 사용했던 것에서 연유하여 레논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