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해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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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지 해리슨은 영국의 음악가, 작곡가, 프로듀서로, 비틀즈의 기타리스트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43년 리버풀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대 후반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을 만나 쿼리맨에 합류하며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비틀즈의 멤버로 활동하며 그는 "Something", "Here Comes the Sun"과 같은 곡을 작곡하며 밴드의 창작력에 기여했다. 비틀즈 해체 후에는 솔로 활동을 시작하여 앨범 《All Things Must Pass》를 발표했으며, 이후에도 여러 앨범과 콘서트를 통해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또한 방글라데시 난민을 위한 콘서트를 조직하며 자선 활동에도 참여했으며, 1980년 존 레논의 사망 이후에도 음악 활동을 지속했다. 1990년대 후반 후두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으나, 2001년 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에는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그의 음악적 업적은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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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해리슨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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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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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조지 해리슨 |
출생일 | 1943년 2월 25일 |
출생지 | 리버풀, 잉글랜드 |
사망일 | 2001년 11월 29일 |
사망지 | 베벌리힐스, 캘리포니아, 미국 |
국적 | 영국 |
직업 | 음악가 가수 작곡가 음악 및 영화 프로듀서 |
활동 기간 | 1958년–2001년 |
배우자 | 패티 보이드 (1966년–1977년, 이혼) 올리비아 아리아스 (1978년–사망) |
자녀 | 다니 해리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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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크기 | 150px |
공식 웹사이트 | 조지 해리슨 공식 웹사이트 |
음악 정보 | |
장르 | 록 음악 팝 음악 인도 고전 음악 |
악기 | 기타 보컬 시타르 건반 악기 |
레이블 | 팔로폰 캐피틀 스완 애플 비제이 다크 호스 그놈 |
참여 그룹 | 쿼리맨 비틀즈 플라스틱 오노 밴드 델라니 & 보니 앤 프렌즈 트래블링 윌버리스 |
著名 사용 악기 | 그레치 6122 컨트리 젠틀맨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로키 깁슨 레스폴 루시 리켄배커 360/12 |
훈장 | |
훈장 | 대영 제국 훈장 5등급 (MBE) |
기타 | |
로마자 표기 | George Harrison |
2. 생애
2. 1. 어린 시절 (1943-1957)
조지 해리슨은 1943년 2월 25일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교외 와버트리구 12 아놀드 그로브에서 태어났다.[145] 아버지 해롤드 해리슨(Harold Hargreaves 또는 Hargrove Harrison, 1909–1978)은 웨일스계 출신의 버스 운전사였고, 어머니 루이즈(née French;[6] 1911–1970)는 아일랜드계 출신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146] 동시에 독일인의 피도 섞여 있었다.[141] 해리슨은 형제자매로 여동생 루이스(1931년 8월 16일 – 2023년 1월 29일)와 두 형 해롤드(1934년 7월 20일 - ?)와 피터(1940년 7월 20일 – 2007년 6월 1일)가 있었다. 그는 네 형제 중 막내였으며, 노동계급 출신이었다. 당시 국왕 조지 6세의 이름을 따 조지라고 이름 지어졌다.
해리슨의 어머니는 그를 지지했다. "그녀가 원한 건 자식들의 행복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음악보다도 해리슨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없다는 걸 알아챘다."[225] 열렬한 음악 팬이었던 어머니는 시끄러운 가창력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해졌으며, 때때로 창문을 흔들면서 방문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225] 조지를 임신한 동안에는 종종 주간 라디오 방송인 '라디오 인디아'를 들었다. 해리슨의 전기 작가 조슈아 그린은 "그녀는 이국적인 음악이 자궁 안의 아기에게 평화와 평온을 가져오길 희망하며, 매주 일요일 시타르와 타블라가 자아내는 마법 적인 소리를 들었다"고 썼다.[225]
해리슨은 1950년 1월 1일까지 12 아놀드 그로브에 살았다.비틀즈 - 48페이지 - 마크 루이스혼 막다른 길에 있는 테라스 하우스로, 야외 화장실이 있었고, 유일한 난방은 단 하나의 석탄 난로였다. 1949년 가을, 가족은 협의회 주택을 제공받아 스피크의 25 업튼 그린으로 이사했다. 해리슨이 여섯 살이 되었을 때, 가족은 업톤 그린 25번지로 이사했다. 더브딜 로드 유아학교, 더브딜 초등학교에 다녔고, 에 입학했다. 당시 동급생들은 그를 "혼자 앉아 있는 아이"라고 평가했다. 1954년에서 1959년까지 리버풀 인스티튜트 남자 고등학교에 다녔다.[7][8] 이 학교에는 음악 수업이 있었으나, 해리슨은 기타가 없다는 것에 실망했고, 학교가 "[학생들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고 느꼈다.[228]
해리슨은 초기에 조지 폼비, 캡 캘러웨이, 장고 라인하르트, 그리고 호기 카마이클의 영향을 받았다. 1950년대에는 특히 칼 퍼킨스, 로니 도네건에게 영향을 받았다.[229] 1956년 초에 해리슨은 자전거를 타다 우연히 인근 집에서 흘러나온 엘비스 프레슬리의 〈Heartbreak Hotel〉을 들었고, 이는 로큰롤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230] 그는 반에서 뒤쪽에 앉아 교과서에 기타를 그리곤 했다. 해리슨은 후에 "나는 기타에 완전히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해리슨은 당시 슬림 휘트먼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난 슬림 휘트먼으로 기타 연주를 처음 보았다. 아마도 잡지의 사진에서 보았거나, 텔레비전에서 생중계로 보았을 거다. 기타는 날 완전히 지배했다."[231]
록큰롤과 로큰롤에 열중하여 스키플 밴드를 결성하기 위해[147], 첫 악기로 워시보드를 잡았다. 해리슨이 14살쯤 되었을 때, 그의 친구인 레이먼드 휴즈(Raymond Hughes)가 기타를 팔겠다고 제안했다. 해리슨의 어머니는 그 후 기타 값인 3파운드 10실링(£3.10s. –)을 지불했다.[11][12] 해리슨의 아버지는 1956년 후반에 네덜란드제 에그몬드 플랫 탑 어쿠스틱 기타를 사주었다.[232] 아버지의 친구인 렌 휴튼은 해리슨에게 〈Whispering〉, 〈Sweet Sue〉와 〈Dinah〉를 연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도네간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해리슨은 그의 동생 피터와 친구인 아서 켈리와 함께 반란군(the Rebels)이라는 스키플 그룹을 조직했다.[233] 레벨스가 처음 무대에 섰던 날, 다른 출연 예정 밴드들이 모두 출연을 취소했기 때문에, 곡 수가 적었던 그들은 한 곡을 반복해서 연주하며 수십 분간의 공연을 마쳤다고 한다. 학교 버스에서 폴 매카트니를 만난 해리슨은 음악에 가진 사랑이라는 공통점으로 친해졌다.[234] 1950년대 중반에 폴 매카트니를 만났다. 매카트니의 소개로 존 레논[149]이 속해 있던 비틀즈의 전신 밴드인 "쿼리맨"에 합류했다.
2. 2. 비틀즈 (1958-1970)
해리슨은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이 멤버로 있던 스키플 그룹 쿼리맨에 합류했다. 1958년 3월, 해리슨은 로리 스톰의 모그 스키플 클럽에서 쿼리맨 오디션을 보았는데, 아서 "기타 부기" 스미스의 〈기타 부기 셔플〉을 연주했다.[235] 하지만 레논은 당시 15세였던 해리슨이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다. 매카트니의 주선으로 리버풀 버스 2층에서 두 번째 오디션이 이루어졌고, 해리슨은 〈Raunchy〉의 리드 기타 파트를 연주했다.[15] 그는 그룹과 어울리며 필요에 따라 기타 멤버로 받아들여졌고, 후에는 정식 멤버가 되었다. 해리슨의 아버지는 그가 교육을 계속하기를 원했지만, 그는 16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지역 백화점인 블랙클러스에서 전기 기술자 견습생으로 몇 개월간 일했다.[16] 1960년에 스코틀랜드에서 진행된 그룹의 첫 투어에서 해리슨은 칼 퍼킨스의 이름을 따온 칼 해리슨(Carl Harrison)이란 가명을 사용했다.[237]
1960년 앨런 윌리엄스는, 비틀즈라고 불리는 밴드를 함부르크에 위치한 브루노 코슈마이더 소유의 카이저켈러 클럽에서 연주시켰다. 해리슨은 비틀즈와 함께 오랜 시간 연주하면서 즉흥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고, 토니 쉐리던의 백 그룹으로 지내면서 그에게 기타 수업도 받아 자신의 사운드와 조용함의 기초를 다졌다.[221][238] 함부르크에서 밴드의 첫 거주는 나이트 클럽에서 일하기에는 해리슨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일어난 추방으로 조기 종료되었다. 1961년 12월에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그룹의 매니저가 되었고, 그룹의 이미지를 갈고 닦아 EMI와 녹음 계약을 맺었다.[17] 비틀즈의 첫 싱글 〈Love Me Do〉는 레코드 리테일러 차트 17위를 기록했으며, 1963년 데뷔 음반 《Please Please Me》가 발표됨과 동시에 비틀마니아가 시작되었다.[18] 무대에서 밴드와 함께할 때 진지하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던 해리슨은 "조용한 비틀"로 알려져 있었다.[19][20] 그들의 두 번째 앨범 《With the Beatles》(1963)에는 해리슨이 처음으로 솔로로서 쓴 〈Don't Bother Me〉가 수록되어 있다.

1965년 《Rubber Soul》에서는 버즈와 밥 딜런에 대한 관심으로 비틀즈를 포크 록으로 이끌었고, 인도 고전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에 시타르를 사용했다.[22] 그는 후에 《Rubber Soul》을 그의 "가장 좋아하는 비틀즈 앨범"이라고 말했다. 1966년 《Revolver》에서는 〈Taxman〉, 〈Love You To〉, 〈I Want To Tell You〉의 3곡을 작곡했다.[23] 그는 레논이 쓴 〈Tomorrow Never Knows〉에 느릿한 탬부라 파트를 도입했고, 이는 밴드의 비서구권 악기 탐구를 보여주었다. 타블라 연주가 들어간 〈Love You To〉로 비틀즈는 인도 음악에 진정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민속 음악 학자 데이비드 레크는 이 노래가 서양인이 정중히, 그리고 패러디 없이 표현한 아시아 문화의 사례라고 썼다.[24] 해리슨은 〈Strawberry Fields Forever〉에서 스와르 만달을 연주하면서 비서구 악기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졌다.
1966년 말에 해리슨의 관심사는 비틀즈에게 멀어졌고, 1967년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커버는 동양의 구루와 종교적 지도자에 대한 그의 선택를 반영하고 있다. 그는 인도 음악의 영향을 받은 〈Within You Without You〉을 비틀즈 멤버의 그 어떤 도움 없이 혼자서 작곡했다.[25] 이 트랙에서 그는 시타르와 타블라를 연주했고, 런던의 아시아 음악 서클에서 딜루바, 스와르만달, 그리고 타블라를 연주하여 백 트랙을 제공했다. 그는 후에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그건 음악 산업에서 맷돌(millstone)이자 획기적인 사건(milestone)이었다 ... 거기 있는 곡 중 반은 맘에 들지만, 다른 반쪽은 도저히 못 들어주겠다."고 언급했다.

1968년 자신의 노래인 〈The Inner Light〉를 뭄바이에 위치한 EMI 스튜디오에서 녹음했고, 지역의 음악가가 여러 인도의 전통 악기를 연주했다. 매카트니의 〈Lady Madonna〉와 함께 싱글로 발매되어 해리슨은 처음으로 비틀즈 싱글에 자신의 곡을 담았다. 《도덕경》을 인용한 노래의 가사는 해리슨이 힌두 신화와 명상에 깊이 빠져있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음악적으로는 이전 작품에서 나타난 힌두 스타일이 아닌 카르나타카의 인도 음악을 받아들였다.[26] 같은 해에 《The Beatles》를 녹음하고 있을 당시 그룹 내의 긴장감은 고조되었으며, 드럼 연주자인 링고 스타는 잠시 밴드를 그만두었다. 해리슨은 두 장의 음반에 에릭 클랩턴과 함께 리드 기타를 연주한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와, 〈Piggies〉, 〈Long, Long, Long〉 〈Savoy Truffle〉를 써서 기여했다.[246]
해리슨은 비틀즈 경력 막바지에 딜런과 더 밴드에게 주요한 영향을 받았다. 1968년 말 우드스톡을 방문할 당시 그는 딜런과 우정을 쌓았고, 더 밴드의 음악 공동체 의식과 밴드 멤버들 사이의 창조적인 평등 의식에 이끌렸다. 이들은 비틀즈에서 레논과 매카트니 둘이서 작곡 및 창조적인 방향을 지배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때부터 해리슨은 작곡가로서 다작을 쓰기 시작했고, 비틀즈로부터의 독립의 욕구가 증가했다. 1969년 1월 트워크넘 스튜디오에서 음반 《Let It Be》의 리허설을 촬영하고 있었을 때 그들 사이의 긴장이 다시 부상했다. 해리슨은 냉담하고 불모한 영화 스튜디오에서의 열악한 제작 환경에 좌절감을 나타냈을 뿐 아니라, 레논의 창조적 이탈과 매카트니의 군림하려 드는 태도에 화나 1월 10일에 그룹을 나가버렸으나, 12일 후 설득을 통해 돌아왔다.
{{Listen
| filename = Something (Beatles song - sample).ogg
| title = Something
| description = 비틀즈의 1969년 스튜디오 앨범 ''애비 로드''에 수록된 사랑 발라드 "썸씽"은 해리슨의 가장 위대한 작곡 중 하나로 널리 칭찬받고 있다.
}}
비틀즈 멤버간의 관계는 최종 음반인 《Abbey Road》의 세션에서는 좀 더 유순해졌으나, 여전히 긴장은 존재했다. LP에는 해리슨의 가장 존경받는 두 개의 비틀즈 노래인 〈Here Comes the Sun〉과 〈Something〉이 수록되어 있다.[247] 〈Something〉은 더블 A 싱글의 절반에 수록되었고, 해리슨의 첫 A면 노래이자 해리슨이 처음으로 차트 1위를 차지하게 했다. 1969년에 프랭크 시나트라는 〈Something〉을 녹음한 후 "지난 50년간 나온 것 중 가장 훌륭한 사랑 노래"라고 일컬었다. 레논은 《Abbey Road》에서 이 곡을 가장 좋은 곡으로 여겼으며, 〈Yesterday〉 이후 비틀즈의 가장 보편적인 곡이 되었다.[27]
1970년 4월 해리슨은 〈For You Blue〉를 써서 매카트니의 〈The Long and Winding Road〉와 함께 미국에 더블 A 싱글로 발표했다. 이는 밴드의 두 번째 차트 정상 더블 A 싱글이 되었고, 〈For You Blue〉는 해리슨의 두 번째 차트 1위 곡이 되었다. 그는 많은 곡을 쓰게 되었지만 비틀즈는 해리슨의 곡을 음반에 포함시키는 것을 꺼렸고, 그는 미발매 노래를 보관해 두었다. 해리슨은 작곡가로서 성장했지만, 비틀즈 음반에 수록된 그의 노래는 2곡에서 3곡으로 제한되었고, 그는 이에 좌절하여 밴드의 해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해리슨이 비틀즈와 마지막으로 녹음한 것은 1970년 1월 4일이었다. 이 때 자신과 매카트니, 그리고 스타는 해리슨의 노래 〈I Me Mine〉을 녹음했다.
2. 3. 솔로 활동 (1968-1987)
2. 3. 1. 초기 솔로 활동 (1968-1969)

비틀즈 해체 전, 해리슨은 이미 두 장의 솔로 음반인 《원더월 음악》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발매했는데, 두 음반 모두 주로 기악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8년 영화 《원더월》의 사운드트랙인 《원더월 음악》은 인도와 서양 악기를 혼합한 반면,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무그 신디사이저를 중점적으로 사용한 실험적인 음반이다.[28] 1968년 11월에 발매된 《원더월 음악》은 비틀즈 멤버 최초의 솔로 음반이자 애플 레코드에서 발매한 첫 번째 LP였다.[29] 이 음반에는 인도 음악가 아시시 칸과 시브쿠마르 샤르마가 참여했으며, 레논의 "레볼루션 9"보다 몇 달 전에 녹음된 실험적인 사운드 콜라주인 "드림 씬"이 수록되어 있다.[30]
1969년 12월, 해리슨은 미국 그룹 델러니 & 보니 앤 프렌즈와 함께 유럽을 짧게 순회 공연했다. 클랩튼, 바비 휘트록, 드러머 짐 고든과 밴드 리더 델러니와 보니 브램릿이 참여한 이 투어에서 해리슨은 슬라이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그의 첫 번째 솔로 싱글이 된 "마이 스윗 로드"를 쓰기 시작했다.[30]
2. 3. 2. 《All Things Must Pass》 (1970)
비틀즈 음반에 자신의 노래가 수년간 제한된 끝에, 해리슨은 트리플 음반 《All Things Must Pass》를 발표했다.[166] 두 디스크에는 자신의 곡을 담았고, 세 번째 디스크는 친구들과 가진 잼 세션의 녹음물을 담았다. 그의 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간주되는 이 음반은 미국과 영국 앨범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는 대히트를 기록했다.[166] LP는 차트 정상을 차지한 히트 싱글 〈My Sweet Lord〉와 상위 10위에 진입한 싱글 〈What Is Life〉를 수록하고 있다. 음반은 필 스펙터와 공동으로 프로듀싱했고, 그는 자신의 "워 오브 사운드" 기법을 사용했다. 이외에도 링고 스타, 에릭 클랩턴, 게리 라이트, 빌리 프레스턴, 클라우스 부어만, 보니즈 프렌즈 밴드의 구성원 전부와 애플 그룹 배드핑거가 참여했다. 세션 초기에 클랩턴, 휘틀록, 고든, 그리고 칼 래들은 단명한 밴드 데렉 앤 더 도미노스를 결성했다.
《All Things Must Pass》은 발표와 동시에 극찬을 받았다. 《롤링 스톤》지의 벤 거슨은 "고전적인 스펙터풍, 바그너풍, 브루크너풍이며 산 꼭대기와 광대한 지평선의 음악"이라고 평했다.[32] 작가이자 음악학 연구가인 이안 잉글리스는 음반 타이틀 트랙의 가사가 "인간 존재의 비영구성에 대한 인식"이며 해리슨의 전 밴드에게 보내는 "간단하고 신랄한 결론"이라고 썼다. 1971년 브라이트 튠스(Bright Tunes)는 시폰스의 히트곡 〈He's So Fine〉과 〈My Sweet Lord〉의 유사성을 지적하면서 저작권 침해로 고소했다.[167] 사건이 1976년 미국 지방 법원에서 제기되었을 때, 그는 의도적으로 표절한 것이 아니라는 의사를 밝혔지만, 판사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판결하면서 소송에 패했다.
2000년, 애플 레코드는 음반의 30주년 기념 에디션을 발표했으며 해리슨은 적극적으로 홍보에 참여했고,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반영한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건 비틀즈에서부터 계속 해오던 것일 뿐이었어요, 정말로요. 비틀즈에서 벗어나서 저만의 길을 간 거죠 ... 전 정말 기뻤어요"[165] 제작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음, 당시에는 에코가 제가 지금하는 것보다 조금 더 사용된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에코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요. 그건 도저히 못 견디겠거든요 ... 그게, 뭐든지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건 힘들고, 여러분은 지금 그것이 어떻게 될지 기대해주셨으면 해요."
2. 3. 3.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 (1971)


조지 해리슨은 라비 샹카르의 요청으로 1971년 8월 1일에 열린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를 조직했다. 이 콘서트는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으로 인한 동파키스탄 난민의 참상을 알리고 돕기 위한 것이었다.[170]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오후 2시 30분과 오후 8시, 두 차례에 걸쳐 열린 이 콘서트에는 4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모였다.[33] 샹카르가 공연을 시작했고, 밥 딜런, 에릭 클랩턴, 레온 러셀, 배드핑거, 빌리 프레스턴, 링고 스타 등이 출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172][173]
이 공연의 실황은 1971년 12월에 3장짜리 음반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로 발매되었고,[166] 1972년에는 콘서트 영화로도 공개되었다. 이후 캐벗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라이브 음반 발매를 지연시킨 캐피톨 레코드를 비난하고 방글라데시 난민을 위한 기금의 일부를 요구했습니다.}} "조지 해리슨과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된 이 음반은 영국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미국에서는 2위에 올랐으며,[100] 제15회 그래미상 올해의 앨범 상을 수상했다.[174]
세금 문제와 의문스러운 지출로 인해 수익의 상당 부분이 묶이기도 했지만,[34] 해리슨은 "주로 이 콘서트는 상황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모은 돈은 부차적인 것이었고, 돈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받았습니다… 비록 바다의 한 방울이었지만 말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소식을 퍼뜨리고 전쟁이 끝나는 데 도움을 준 것입니다."라고 밝혔다.[34] 이 행사는 라이브 에이드를 비롯한 대규모 자선 록큰룰 콘서트의 혁신적인 선구자로 평가받는다.[255]
2. 3. 4. 《Living in the Material World》와 《George Harrison》 (1973-1979)
1973년 앨범 《물질세계에서 살아가기 (Living in the Material World)》는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5주 동안 1위를 차지했으며, 싱글 〈사랑을 주세요 (지상의 평화를 주세요)(Give Me Love (Give Me Peace on Earth))〉 또한 미국에서 1위에 올랐다.[256] 영국에서는 LP가 2위를 차지했고, 싱글은 12주 만에 8위에 올랐다. 이 음반은 아낌없이 제작 및 포장되었고, 해리슨의 힌두 신앙에 대한 메시지를 다분히 포함시켰다. 그린은 "그의 경력 중 가장 강력한 구성을 많이 포함시켰다"고 썼다. 《롤링 스톤》의 스티븐 홀든(Stephen Holden)은 음반이 "대단히 매력적"이고 "매혹적"이며, "그 빛을 기적적으로 믿는 신조로서" 홀로 서있다고 적었다. 다른 평론가들은 어색하고, 독실한 체하며,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며, 덜 열광적으로 평가하여 해리슨을 낙담시켰다.1974년 11월 해리슨은 45일간의 다크 호스 투어(Dark Horse Tour)를 떠났는데, 이는 전 비틀즈 멤버의 첫 북미 투어였다. 프레스턴, 톰 스콧, 윌리 위크, 앤디 뉴마크, 짐 호른과 같은 음악가들의 앙상블과 해리슨의 공연 외에도 투어에는 "라비 샹카르의 가족과 친구들(Ravi Shankar, Family and Friends)"이 진행한 전통 및 현대 인도 음악이 포함되어 있었다.[257] 수많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투어에 대한 합의 반응은 내용, 구조, 그리고 길이에 대한 불만과 함께 부정적이었다. 2시간 30분의 공연 시간은 과한 것으로 여겨졌다.[258] 일부 팬들은 해리슨만 공연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샹카르의 중요한 존재로 인해 실망을 표했다. 또한 해리슨의 "잔소리"에 많은 이들이 화를 냈다. 더구나 그는 몇몇 비틀즈 노래 가사를 다시 만들었고, 일부는 "불쾌감을 주는 공격"으로 여겨졌다. 후두염에 걸린 해리슨의 보컬은 팬들과 비평가들에게 실망감을 안겼고, 이들은 투어 이름을 "쉰 목소리(dark hoarse)"로 바꾸기도 했다.[259] 독설로 인해 완전히 지친 해리슨은 1990년대까지는 투어를 돌지 않았다. 로버트 로드리게스는 "다크 호스 투어는 고귀한 실패로 볼 수도 있으나, 이에 적응한 팬들도 없잖아 있었다. 그들은 결코 되풀이 될 수 없는 그 뭔가를 목격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황홀해했다."고 썼다. 랭은 투어를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인도 음악 발표"라 일컬었다.
1974년 11월 16일, 해리슨과 투어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은 백악관을 방문했다. 그들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아들 잭의 초청을 받았다.[39]
1974년 12월, 해리슨은 《다크 호스 (조지 해리슨 앨범)》를 발매했는데, 이 앨범은 그의 작업물 중 가장 낮은 평가를 얻었다. 《롤링 스톤》은 다음과 같이 썼다. "공연자로서의 그의 요소와, 마감일까지 작업한 것과, 혹사로 하여금 악화된 그의 재능으로 급히 제작된 새로운 'LP 상품', 밴드의 리허설, 그리고 나라를 가로질러 이루어진 투어를 한데 모은 것의 연대기. 이 모든 게 3주만에 이루어졌다." 음반은 미국 빌보드 차트 4위에 올랐고, 싱글 〈다크 호스 (조지 해리슨 노래)〉는 15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260] 음악 평론가 미칼 길모어(Mikal Gilmore)는 《다크 호스》를 "해리슨의 가장 매력적인 작업물 중 하나"이며, "변모와 상실에 대한 음반"이라고 썼다.

1975년, EMI와 애플 레코드에서 해리슨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소울 음악(soul music)에서 영감을 받은 《추가 질감 (모든 것을 읽어보세요)》를 발표했다. 해리슨은 이 음반을 《올 띵스 머스트 패스》부터 제작해 온 세 음반 중 가장 불만족스러운 음반으로 여겼다. 랭은 음반의 대부분 수록곡이 "떫고, 실망스럽다"고 표현했다. 그와 오랜 친구 사이였던 클라우스 부어만은 "그는 그걸 할 기분이 아니었다 ... 내가 기억하기로 그 때 조지는 코카인에 취해 살았다. 난 그냥 모른 척을 했다 ... 난 그의 기분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LP에서 두 개의 싱글을 발매했다. 〈당신(조지 해리슨 노래)〉는 빌보드 상위 20위까지 올랐고, 〈이 기타(울음을 그칠 수 없어)〉는 애플이 발매한 마지막 오리지널 싱글이었다.
해리슨이 처음으로 다크 호스 레코드 레이블을 달고 발표한 《서른셋과 삼분의 일》(1976)의 싱글인 〈이 노래〉와 〈크래커박스 팰리스〉는 둘다 미국 차트 상위 25위까지 올랐다. 〈Crackerbox Palace〉의 이상한 유머는 해리슨과 몬티 파이튼의 멤버 에릭 아이들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멜로디와 음악에 중점을, 그리고 이전 음반의 신적인 메시지보다 영리한 주제를 담은 《Thirty Three & 1/3》은 《All Things Must Pass》 이후로 미국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음반이다. 발매 홍보의 일환으로 해리슨은 폴 사이먼과 함께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 출연했다.
1979년, 그의 두 번째 결혼과 아들 다니 해리슨의 출산 이후에 해리슨은 《조지 해리슨 (앨범)》을 발표했다. 음반과 싱글 〈블로우 어웨이〉는 둘 다 빌보드 상위 20위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261] 음반은 해리슨이 음악 사업에서 점진적으로 퇴진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All Things Must Pass》에서 보여진 아이디어의 결실을 나타내었다. 1978년 5월 아버지를 여의고, 8월 아들이 태어난 일은 해리슨에게 일보다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다는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랭은 음반을 "선율적이고 싱싱하며 ... 평화롭다 ... 로큰롤이라는 꿈에서 두 번이나 살아오고, 이제 영적인 행복뿐만이 아닌 가정을 포옹하려는 남자의 작품"이라고 썼다.
2. 3. 5. 《Somewhere in England》와 《Cloud Nine》 (1980-1987)
1980년 12월 8일에 발생한 존 레논 피살 사건은 해리슨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스토킹에 대한 우려를 더욱 강화시켰다. 비록 레논 사망 전 몇 년 동안 해리슨과 레논의 접촉이 거의 없었지만, 이 비극은 해리슨에게 매우 큰 개인적인 손실이었다.[262]}} 레논 피살 후 해리슨은 "우리가 함께 겪었던 모든 일들을 생각해 볼 때, 나는 존 레논을 여전히 매우 사랑하고 존경한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해리슨은 스타에게 썼던 노래의 가사를 수정하여 레논을 기리는 노래로 만들었다. 폴 매카트니와 린다 매카트니가 보컬에 참여하고 스타의 원래 드럼 파트가 포함된 "그 모든 세월 동안"은 미국 차트에서 2위에 올랐다. 이 싱글은 1981년 발매된 앨범 ''잉글랜드 어딘가에''에 수록되었다.해리슨은 1982년 발매된 ''곤 트로포''가 비평가와 대중으로부터 거의 주목받지 못한 후 5년 동안 새로운 앨범을 발매하지 않았다.[263] 이 기간 동안 그는 여러 게스트 출연을 했는데, 1985년 칼 퍼킨스를 기리는 공연인 ''블루 스웨이드 슈즈: 로커빌리 세션''에서의 공연도 포함된다.}} 1986년 3월에는 버밍햄 하트 비트 자선 콘서트의 피날레에 깜짝 등장했는데, 이 행사는 버밍햄 어린이 병원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조직되었다. 이듬해에는 런던 웸블리 아레나에서 열린 프린스 트러스트 콘서트에 출연하여 "내 기타가 조용히 운다"와 "해가 온다"를 연주했다. 1987년 2월에는 딜런, 존 포거티, 제시 에드 데이비스와 함께 블루스 음악가 타지 마할과 2시간 동안 무대에 올랐다. 해리슨은 "밥이 나에게 전화해서 저녁에 나와서 타지 마할을 보고 싶냐고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 갔고 몇 잔의 맥시코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몇 잔 더 마셨다… 밥은 '이봐, 우리 모두 일어나서 연주하고, 네가 노래를 부르면 어떻겠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마이크 근처에 갈 때마다 딜런이 나타나서 내 귀에 쓰레기 같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며 나를 방해하려고 했다."라고 회상했다.
1987년 11월, 해리슨은 플래티넘 앨범 ''클라우드 나인''을 발매했다.[264]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O)의 제프 린과 공동 제작한 이 앨범에는 해리슨이 제임스 레이의 "갓 마이 마인드 셋 온 유"를 부른 버전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 노래는 미국에서 1위, 영국에서 2위를 차지했다.[265][298] 이와 함께 제작된 뮤직 비디오는 많은 방송을 타고,[266] 비틀즈 경력을 회고하는 또 다른 싱글 "웬 위 워즈 팹"은 1988년 MTV 뮤직 비디오 어워드에서 두 개의 후보 지명을 받았다.[267] 프라이어 파크에 있는 그의 저택에서 녹음된 이 앨범에서는 해리슨의 슬라이드 기타 연주가 두드러지게 특징지어졌으며, 클랩튼, 짐 켈트너, 짐 혼을 포함한 그의 오랜 음악 동료들이 참여했다. ''클라우드 나인''은 미국과 영국 차트에서 각각 8위와 10위에 올랐으며, 앨범의 여러 트랙은 ''빌보드''의 메인스트림 록 차트에 등장했다 – "데블스 라디오", "디스 이즈 러브", "클라우드 9".[265]
2. 4. 후기 활동 (1988-1996)
1991년 12월, 에릭 클랩튼과의 합동 투어로 일본을 방문했다.[190] 이 투어는 클랩튼이 같은 해 3월 아들을 사고로 잃은 직후 해리슨에게 직접 제안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클랩튼의 밴드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진행되었다.[191] 해리슨에게는 1974년 북미 투어 이후 17년 만이자, 비틀즈 해산 후 두 번째 콘서트 투어였으며, 비틀즈 재적 시절인 1966년 이후 25년 만의 일본 공연이었다. 그는 히로시마 공연 도중 몰래 히로시마 평화기념 자료관을 방문하여 원자폭탄의 무서움을 절감했다.[192] 클랩튼의 코너를 제외한 거의 전부는 이듬해 발매된 2장짜리 앨범 『라이브 인 재팬』에 수록되었다. 일본에서만 개최된 이 투어가 그의 생애 마지막 콘서트 투어가 되었다.이듬해인 1992년 4월 6일, 로열 앨버트 홀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인 내추럴 로우 파티를 지원하기 위한 콘서트를 개최했다. 일본 공연과 거의 같은 멤버와 내용으로, 클랩튼은 불참했지만, 링고 스타, 조 월시, 게리 무어 등이 함께 공연했다. 모국에서의 공개 연주는 1969년 1월 루프탑 콘서트 이후였으며, 이것이 그의 생애 마지막 공개 연주가 되었다. 같은 해 10월 16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밥 딜런의 레코드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에 클랩튼 등과 함께 출연했다. 이것이 해리슨에게 있어 생애 마지막 공식 무대 연주가 되었다.
1994년, 「비틀즈 앤솔로지」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어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와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존 레논이 생전에 남긴 데모 음원에서 「프리 애즈 어 버드」「리얼 러브」의 두 곡을 비틀즈의 공식적인 신곡으로 1995년과 1996년에 연이어 발표하여 각국의 차트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1997년, 라비 샹카르의 앨범 『찬츠 오브 인디아』를 프로듀스했다. 이 앨범 제작에 전면적으로 협력한 해리슨의 애정은 강했고, 그는 샹카와 함께 적극적으로 홍보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후두암이 발견되어 7월에 수술을 받았다. 이후 방사선 치료를 계속했고, 1998년에 세상에 수술 사실이 알려진 후에도 수년간 재발은 없었다고 한다.
2. 4. 1. 트래블링 윌버리스 (1988-1990)
해리슨은 1988년에 밥 딜런, 제프 린, 로이 오비슨, 톰 페티와 함께 트래블링 윌버리스를 결성했다. 밴드는 딜런의 차고에 모여 해리슨이 유럽에 발매할 싱글 음반에 수록시킬 노래를 녹음했다.[268] 해리슨의 레코드 회사는 〈Handle with Care〉라는 트랙이 싱글 B면에 수록되기에는 너무 좋아, 이를 전체 음반에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LP 《Traveling Wilburys Vol. 1》은 1988년 10월에 출시되었으며, 찰스 트라우소트 윌버리 경(Charles Trausott Wilbury, Sr.)의 아들인 이복형제들이 발표한 음반이라는 설정이 있었다. 첫 번째 앨범에서 해리슨의 가명은 "넬슨 윌버리(Nelson Wilbury)"였다.[269] 그는 두 번째 앨범에선 "스파이크 윌버리(Spike Wilbury)"라는 이름을 사용했다.1988년 12월 오비슨의 죽음 이후 그룹은 4인조로 녹음을 했다.[270] 두 번째 음반인 《raveling Wilburys Vol. 3》는 1990년 10월 발매되었다. 전작과 숫자가 이어지지 않는 음반의 희안한 제목에 대해 린은 이렇게 말했다. "그건 조지의 아이디어입니다. 그가 말했죠, '멍청이들을 햇갈리게 하자'"[270] 음반은 영국에서 14위까지 올랐고 3,000,000장이 넘는 판매량으로 플래티넘을 기록했다.[271] 밴드는 라이브로 단 한번도 공연하지 않았으며, 이 두 번째 음반 이후로 함께 모여 음반을 녹음하는 일은 없었다.[272]
1989년에 해리슨과 스타는 톰 페티의 노래인 〈I Won't Back Down〉의 뮤직비디오에 출현했다.[273]
2. 4. 2. 비틀즈 앤솔로지 (1995-1996)
1994년, 해리슨은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 그리고 프로듀서 제프 린과 함께 비틀즈 앤솔로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존 레논이 생전에 남긴 데모 음원을 바탕으로 제작한 두 곡의 새로운 비틀즈 노래, 〈Free as a Bird〉와 〈Real Love〉가 포함되었다. 〈Free as a Bird〉는 1995년에, 〈Real Love〉는 1996년에 각각 발표되었으며, 이는 1970년 이후 처음으로 발매된 비틀즈의 신곡이었다.[276], [54] 해리슨은 세 번째 노래인 "나우 앤 덴"의 완성을 거부했는데, 카세트의 오디오 품질이 "끔찍한 쓰레기"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곡은 훗날 매카트니와 스타에 의해 완성되어 2023년에 발매되었다.[277] 그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내가 죽었을 때, 이 구린 데모들을 누군가 모조리 히트 싱글로 내보내준다면 퍽이나 좋겠다."라는 말을 남겼다.[277]2. 5. 말년과 죽음 (1997-2001)
1997년에 후두암 진단을 받은 해리슨은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이는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279] 그는 이후 수년에 걸친 흡연으로 병에 걸렸다며 비난을 들었다.[280] ''인도의 찬송가(Chants of India)'' 작업에 협력했고, 마지막 텔레비전 출연은 1997년 5월에 녹화된 이 앨범을 홍보하기 위한 VH-1 특집 방송이었다.[55]1998년 1월, 해리슨은 잭슨(테네시주)(Jackson, Tennessee)에서 열린 칼 퍼킨스(Carl Perkins)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퍼킨스의 노래 "너의 진실된 사랑(Your True Love)"을 짧게 연주했다.
[[File:Lodge_at_Friar_Park_-_geograph.org.uk_-_1588804.jpg|thumb|right|upright=1.3|해리슨의 프라이어 파크(Friar Park) 저택(헨리온템즈(Henley-on-Thames)])의 정문과 관리인 집.
1999년 12월 30일, 해리슨과 그의 아내 올리비아는 프라이어 파크(Friar Park)에서 36세의 편집증적 정신분열증 환자인 마이클 에이브럼에게 공격당했다.[279]집을 부수고 들어온 그는 해리슨을 부엌칼로 찔렀다. 올리비아가 화로쇠와 램프로 여러번 내리찍어 공격자를 무력화했고, 조지 해리슨은 폐에 구멍이 났고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279] 사건 이후 해리슨은 40군데가 넘는 자창으로 입원했다.[279] 그는 머지않아 가해자에 관한 성명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그는 절도범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트레블링 윌버리스의 오디션을 보러 온 것도 당연 아니었죠."[57]
2001년 5월에 해리슨은 폐 중 하나에서 암종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을 받았으며,[284] 7월에는 스위스의 한 병원에서 뇌종양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285] 스위스에 있을 당시 스타가 방문했지만, 스타는 딸의 뇌 수술로 급히 보스턴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해리슨은 그에게 "나도 같이 따라갈까?"라고 물었다.[286] 2001년 11월, 뉴욕의 스태튼 아일랜드 대학병원(Staten Island University Hospital)에서 뇌에 전이된 비소형 폐암 세포를 위해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287] 뉴스가 이를 보도하자 해리슨은 의사의 사생활 침해에 대해 유감을 표했고, 후에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65][288][289] The suit was ultimately settled out of court under the condition that the guitar be "disposed of".[290]}}
11월 12일, 뉴욕에서 해리슨, 스타, 그리고 매카트니는 마지막으로 함께 모였다.[291] 3주 뒤인 2001년 11월 29일, 해리슨은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친구 집에서 향년 58세의 나이에 사망했다.[292] 그는 할리우드 포에버 공동묘지에서 화장되었고, 장례식은 캘리포니아주 퍼시픽팰리세이즈의 '셀프 리얼아제이션 펠로프십 레이크 슈라인'에서 열렸다.[293] 그의 재는 인도의 바라나시 인근의 갠지스강과 야무나강에서 힌두교 전통에 따라 가족과 친척에 의해 뿌려졌다.[294] 그는 거의 1억 파운드에 가까운 유산을 남겼다.[295]
발매된 해리슨의 마지막 음반 《브레인워시드》(2002)는 아들 다니와 제프 린이 완성했다.[296] 음반의 라이너 노츠에는 다음과 같은 바가바드 기타의 인용문이 있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란 없으며, 사람들을 다스리는 자들도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없느니라. 또한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74] 싱글 〈Stuck Inside a Cloud〉은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27위에 올랐고, 렝은 이를 "질병과 사망에 대한 희귀하고 솔직한 반응"이라고 표현했다.[75] 2003년 5월에 발표된 싱글 〈Any Road〉는 영국 싱글 차트(UK Singles Chart)에서 37위를 기록했다.[298] 〈Marwa Blues〉는 2004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팝 기악 퍼포먼스 부문에서, 〈Any Road〉는 최우수 남성 팝 보컬 퍼포먼스 부문에서 후보로 선정되었다.[299]
3. 사후
1965년 6월, 해리슨과 다른 비틀즈 멤버들은 MBE 회원으로 임명되었다.[123] 1971년, 비틀즈는 영화 ''레트 잇 비''로 작곡상을 수상했다.[124] 1984년 발견된 소행성 4149 해리슨(4149 Harrison)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고,[125] 여러 종류의 달리아(Dahlia) 꽃도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126]
1992년 12월, 그는 빌보드 센추리 어워드를 최초로 수상했다.[127] ''롤링 스톤''지는 그를 "역대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인" 목록에서 11위, "역대 가장 위대한 작곡가 100인"에서는 65위로 선정했다.
2002년 사망 1주년에 조지 해리슨을 위한 콘서트(Concert for George)가 로열 알버트 홀(Royal Albert Hall)에서 열렸다. 에릭 클랩튼이 주최하고, 매카트니와 스타등 해리슨의 많은 친구들과 음악적 동료들이 공연했다.[129] 콘서트 수익금은 해리슨의 자선 단체인 머티리얼 월드 자선 재단(Material World Charitable Foundation)에 기부되었다. 같은 해 11월 18일, 그가 제작하던 신작이 『브레인워시드(Brainwashed)』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196] 제46회 그래미상에서는 이 앨범이 최우수 팝 보컬 앨범 부문에, "애니 로드(Any Road)"가 최우수 남성 팝 보컬 성능 부문에, "마르와 블루스(Marwa Blues)"가 최우수 팝 인스트루멘탈 연주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마르와 블루스"가 수상했다.
2004년 3월 15일,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97] 2006년에는 방글라데시 콘서트로 매디슨 스퀘어 가든 명예의 거리에 헌액되었다.[130] 2009년 4월 14일, 명예의 거리에 해리슨에게 별이 수여되었다. 맥카트니, 린, 페티가 별 제막식에 참석했다. 해리슨의 미망인 올리비아, 배우 톰 행크스(Tom Hanks)와 아이다가 연설을 했고, 해리슨의 아들 다니는 하레 크리슈나 만트라를 낭송했다.[131]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 ''조지 해리슨: 머티리얼 월드에서 살다(George Harrison: Living in the Material World)''가 2011년 10월에 개봉되었다.[132]
해리슨은 2015년 2월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에서 녹음 아카데미(The Recording Academy)의 그래미 평생 공로상(Grammy 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사후 수상했다.[133][134]
일리노이 주립 역사 협회(Illinois State Historical Society)의 일리노이주 벤턴(Benton, Illinois) 표지판은 1963년 그의 여동생을 만나러 이 마을을 방문한 해리슨을 기념하며, 그를 미국을 방문한 최초의 비틀즈 멤버로 기리고 있다.[135] 2017년, 해리슨 마을에 존 서니(John Cerney)가 그린 벽화가 공개되었다.[136] [137] 해리슨의 동상은 그의 고향인 리버풀 전역을 포함해 전 세계에 있으며, 부조는 방글라데시 다카의 샤딘노타르 샤그람 삼각 조각 정원에 있으며, 방글라데시 문화에 대한 해리슨의 공헌을 기념하고 있다.
2024년 5월 24일, 영국 역사 유적(Historic England)의 푸른 명판(blue plaque)이 그의 부인 올리비아에 의해 웨버트리의 아놀드 그로브 12번지에 있는 해리슨의 어린 시절 집에 제막되었다.[138][139]
2003년, 스타는 해리슨을 추모하는 곡 "네버 위드아웃 유(Never Without You)"를 싱글로 발표했다. 2005년에는 그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뱅글라데시 난민 구호 콘서트(The Concert for Bangladesh)』(1971년) 실황을 담은 『뱅글라데시 콘서트(Bangladesh Concert)』의 CD와 DVD가 새롭게 재발매되었다. 2006년 9월에는 미국 빌보드 차트 1위 앨범 『리빙 인 더 머티리얼 월드(Living in the Material World)』(1973년)의 리마스터반이 오리지널 앨범에는 미수록되었던 2곡을 추가하여 발매되었다.
2009년 6월 16일, 통산 세 번째 베스트 앨범 『렛 잇 롤: 송스 오브 조지 해리슨(Let It Roll: Songs of George Harrison)』이 발매되었다.[199]
2010년, 해리슨이 프로듀싱한 샹카르의 앨범을 중심으로 올리비아가 편집한 CD 박스 『콜래보레이션(Collaborations)』이 발표되었다.
현재 매카트니, 스타에 이어 영국 왕실로부터 "Sir" 칭호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4.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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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더월 뮤직''' (1968)
- '''일렉트로닉 사운드''' (1969)
- '''올 띵스 머스트 패스''' (1970)
- '''리빙 인 더 머티어리얼 월드''' (1973)
- '''다크 호스''' (1974)
- '''익스트라 텍스처 (리드 올 어바웃 잇)''' (1975)
- '''써티 쓰리 앤드 원 서드''' (1976)
- '''조지 해리슨''' (1979)
- '''섬웨어 인 잉글랜드''' (1981)
- '''곤 트로포''' (1982)
- '''클라우드 나인''' (1987)
- '''브레인워시드''' (2002)
4. 1. 정규 음반
조지 해리슨의 정규 음반은 다음과 같다.- 《Wonderwall Music》 (1968) 미국 #49
- 《Electronic Sound》 (1969) 미국 #191
- 《All Things Must Pass》 (1970) 영국 #4, 미국 #1
- 《Living in the Material World》 (1973) 영국 #2, 미국 #1
- 《Dark Horse》 (1974) 미국 #4
- 《Extra Texture (Read All About It)》 (1975) 영국 #16, 미국 #8
- 《Thirty Three & 1/3》 (1976) 영국 #35, 미국 #11
- 《George Harrison》 (1979) 영국 #39, 미국 #14
- 《Somewhere in England》 (1981) 영국 #13, 미국 #11
- 《Gone Troppo》 (1982) 미국 #101
- 《Cloud Nine》 (1987) 영국 #10, 미국 #8
- 《Brainwashed》 (2002) 영국 #29, 미국 #18
각 음반은 다음과 같이 리마스터되어 재발매되었다.
- 『미지의 벽』 - ''Wonderwall'' (1968년, 리마스터 2014년)
- 『전자음악의 세계』 - ''Electronic Sound'' (1969년, 리마스터 2014년)
- 『올 띵스 머스트 패스』 - ''All Things Must Pass'' (1971년, 리마스터 2001년&2014년)
- 『리빙 인 더 머티리얼 월드』 - ''Living in the Material World'' (1973년, 리마스터 2006년&2014년)
- 『다크 호스』 - ''Dark Horse'' (1974년, 리마스터 2014년)
- 『조지 해리슨 제국』 - ''Extra Texture (Read All About It)'' (1975년, 리마스터 2014년)
- 『33 1/3』 - ''Thirty Three & 1/3'' (1977년, 리마스터 2004년)
- 『자애의 빛』 - ''George Harrison'' (1979년, 리마스터 2004년)
- 『생각은 끝없이〜어머니인 잉글랜드』 - ''Somewhere in England'' (1981년, 리마스터 2004년)
- 『곤 트로포』 - ''Gone Troppo'' (1982년, 리마스터 2004년)
- 『클라우드 나인』 - ''Cloud Nine'' (1987년, 리마스터 2004년)
- 『브레인워시드』 - ''Brainwashed'' (2002년)
4. 2. 라이브 음반
조지 해리슨은 1971년 The Concert for Bangladesh를 발매하여 영국에서 1위, 미국에서 2위를 기록했다. 1992년에는 Live in Japan을 발매하여 미국에서 126위를 기록했다.4. 3. 컴필레이션 음반
- 《The Best of George Harrison》 (1976) US #31
- 《Best of Dark Horse 1976-1989》 (1989) US #132
- 《The Dark Horse Years 1976-1992》 (2004)
4. 4. 트래블링 윌버리스와 함께한 음반
조지 해리슨은 트래블링 윌버리스와 함께 두 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1988년에 발매된 《Traveling Wilburys Vol. 1》은 영국에서 16위, 미국에서 3위를 기록했다. 1990년에 발매된 《Traveling Wilburys Vol. 3》는 영국에서 14위, 미국에서 11위를 기록했다.5. 서훈
- 1965년 대영 제국 훈장 5등급(MBE)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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