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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오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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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19세기 독일의 상인이자 탐험가로, 1860년대 조선과의 통상을 시도하고,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함부르크 출신의 유대인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형제들은 동양학자로 활동했다. 1851년 홍콩에서 무역업을 시작했으나, 1867년 사업 실패 후 쇄국 정책을 펼치던 조선과의 교역에 관심을 가졌다. 1866년과 1868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거나 묘를 도굴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을 저술했다. 이 책은 19세기 서양인의 시각에서 본 조선 사회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역사적, 서지학적 가치를 지닌다.

2. 생애

함부르크의 부유한 유대인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형제들인 율리우스와 구스타프는 저명한 동양학자가 되었다. 오페르트는 1851년 홍콩에서 무역업을 시작했으나, 1867년 회사가 파산하자 당시 서양과 통상을 거부하던 조선과의 교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19][20]

1866년 영국인 모리슨과 함께 로나(The Rona)호를 타고 충남 아산만 해미현 조금포(調琴浦)에 들어와 통상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같은 해 다시 강화도 갑곶진에서 통상을 요구하려 했으나 병인박해로 실패했다.[20] 이후 오페르트는 상하이에서 프랑스 출신 천주교 신부 스타니스라스 페롱과 공모하여 1868년 남연군 분묘 도굴사건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21]

그는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Ein verschlossenes Land. Reisen nach Corea.de / A Locked Country. Trips to Korea.영어)을 저술했는데, 이 책은 《하멜 표류기》와 함께 외국인이 쓴 한국 역사 자료로, 19세기 서양인의 한국 연구에 대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22]

2. 1. 초기 생애와 무역 활동

함부르크의 부유한 유대인 은행가에서 태어난 오페르트는 1851년 홍콩에서 무역업을 시작했다.[19] 그의 형제들인 율리우스와 구스타프는 저명한 동양학자가 되었다.[1] 1867년, 오페르트의 회사가 파산하면서,[20] 그는 당시 서양과의 통상 수교를 거부하던 조선과의 교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2]

2. 2. 조선과의 첫 만남

오페르트는 1867년에 회사가 파산하자, 서양과의 통상을 거부하던 조선과의 교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20] 1866년, 영국인 모리슨과 함께 로나(The Rona)호를 타고 충남 아산만 해미현 조금포(調琴浦)에 들어와 조선에 통상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20] 같은 해 다시 강화도의 갑곶진에서 통상을 요구하려 했으나, 때마침 일어난 병인박해 때문에 실패하였다.[20]

3. 남연군 분묘 도굴 미수 사건

오페르트는 통상 조약 체결을 강요하기 위해 프랑스 출신 천주교 신부 스타니스라스 페롱(Stanislas Féron) 등과 공모하여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했다. 이들은 1868년 남연군 분묘 도굴사건을 일으켰으나 무덤 위에 놓인 견고한 생석회층으로 인해 도굴에 실패하였다.[21]

3. 1. 사건의 배경과 계획

1866년 오페르트는 영국인 모리슨과 함께 로나(The Rona)호를 타고 충남 아산만 해미현 조금포(調琴浦)에 들어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했고, 그 해 다시 강화도의 갑곶진에서 통상을 요구하려 했으나, 때마침 일어난 병인박해 탓에 실패하였다.[20]

이후 오페르트는 상하이에서 프랑스 출신 천주교 신부인 스타니스라스 페롱(Stanislas Féron)과 함께 음모를 계획하였다.[21] 1868년, 오페르트는 프랑스 신부 페롱(Feron)과 미국인 젠킨스(Jekins)를 대동하고 차이나호를 타고 충청도 행담도(行擔島)에 정박, 조선의 천주교 탄압에 보복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21]

3. 2. 도굴 시도와 실패

1868년 오페르트는 프랑스 출신 천주교 신부 페롱(Feron), 미국인 젠킨스(Jenkins)와 함께 차이나호를 타고 행담도에 정박했다. 이들은 조선의 천주교 탄압에 보복한다는 구실로 구만포에 상륙했다.[21] 오페르트 일행은 덕산군청을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고,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가 있는 가야동으로 향했다.[21] 이들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했으나, 무덤을 덮고 있던 견고한 생석회층 때문에 실패했다.[21]

남연군 묘


이후 오페르트 일행은 인천 영종진을 습격하거나 통상을 요구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실패하고 조선에서 물러났다.[21]

3. 3. 사건의 영향

1868년에 발생한 남연군 분묘 도굴 미수 사건은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쇄국 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21][5][6][13][14] 이 사건으로 인해 조선인들은 외국과의 교역에 더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6][14]

A. H. S. 랜도어에 따르면, 오페르트의 실패한 묘 도굴 이야기는 19세기 말에도 한국에서 잘 알려져 있었고, 도착하는 외국인들에게 이야기되었으며, 습격에 가담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제물포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7]

4.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 저술

오페르트는 1880년 자신의 조선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Ein verschlossenes Land. Reisen nach Corea.)》을 출판했다.[10] 이 책은 라이프치히브로크하우스에서 출판되었으며,[1] 영어로도 번역되었다.[3][5] 하멜 표류기와 함께 외국인이 쓴 한국의 중요한 역사 자료로 평가받는다. 오페르트는 한국어를 배운 경험은 없었지만, 한국어가 중국어나 일본어보다 배우기 훨씬 어렵다고 판단했다.[3]

4. 1. 책의 내용과 의의

오페르트가 저술한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Ein verschlossenes Land. Reisen nach Corea./A Locked Country. Trips to Korea.)》은 《하멜 표류기》와 함께 외국인이 쓴 한국 역사 자료이다. 이 책은 지지, 인종, 국법과 정체, 역사, 풍속 및 관습, 종교, 언어와 문자, 산업, 박물, 상업 등 조선 사회 각 분야에 걸친 내용을 6장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어, 19세기 서양인의 조선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서지학적 가치를 지닌다.[22]

오페르트는 책에서 조선의 지리, 역사, 문화, 정치 제도와 대외 관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특히,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종주권이 전면적이었다는 기존의 통설을 반박하며, 과거에도 중국의 종주권은 형식적인 것이었고 특별히 규정된 권리에만 한정되었으며 책봉 체제도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단언했다. 또한 조선의 개항과 이를 둘러싼 서양 열강의 각축이 시작된 것에 대해 언급하며, 러시아의 보호국이 되는 것이 조선에게 더 낫다고 제안했다.

정치 기구에 대해서는 의정부, 육조,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암행어사를 자세히 설명했으며, 아전과 같은 지방 관료, 육군, 해군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었다. 또한 국내에는 광물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치안은 안정되어 있으며, 살인이나 절도 등의 흉악 범죄는 적다고 보았다.

5. 오페르트에 대한 평가

오페르트는 함부르크의 부유한 유대인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두 형제 울리우스 오페르트(Julius Oppert])와 구스타프 오페르트(Gustav Solomon Oppert])는 저명한 동양학자가 되었지만, 오페르트는 1851년 홍콩에서 무역업을 시작했다.[19] 1866년 고종 치하에서 영국인과 함께 조선에 통상을 요구했으나 병인박해 등의 이유로 실패했다.[20]

1868년에는 프랑스 신부 스타니스라스 페롱, 미국인 젠킨스와 함께 남연군 분묘 도굴사건을 일으켰다.[21] 이 사건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사건으로,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오페르트는 이 사건으로 독일로 돌아가 사업가로 살았고, 몇 달 동안 감옥에 갇혔다는 기록도 있다.[6][8][9] A. H. S. 랜도어에 따르면, 이 도굴 미수 이야기는 19세기 말에도 한국에서 잘 알려져 외국인들에게 회자되었다고 한다.[7]

1880년 오페르트는 한국에 관한 책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을 라이프치히에서 출판했고,[1] 영어로도 번역되었다.[3][5]

5. 1. 긍정적 평가

오페르트는 서양 사회에 조선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그의 저서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은 《하멜 표류기》와 함께 외국인이 쓴 한국 역사 자료로서, 당시 조선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22] 이 책은 지지, 인종, 국법과 정체, 역사, 풍속 및 관습, 종교, 언어와 문자, 산업, 박물, 상업 등 사회 각 분야에 걸친 내용을 6장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어 19세기 서양인에 의한 한국 연구의 하나로서 서지학적 가치를 지닌다.[22]

5. 2. 부정적 평가

오페르트의 행동은 제국주의적 침략 행위로 비판받는다. 특히 1868년에 발생한 남연군 분묘 도굴사건은 조선의 주권과 문화를 심각하게 침해한 행위로 간주된다.[21] 이 사건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여 유해를 인질로 삼아 조선 정부에 통상을 강요하려 한 시도였다.[4]

오페르트는 프랑스 신부 스타니스라스 페롱과 미국인 젠킨스 등과 함께 이 사건을 모의하고 실행했다.[21] 이들은 덕산군 관아를 습격하고 무기를 탈취하는 등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했다.[21] 비록 무덤의 견고한 생석회 층 때문에 도굴에는 실패했지만,[21] 이 사건은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서양 세력에 대한 반감을 더욱 강화시켰다.

더불어민주당 관점에서는 오페르트의 행위가 당시 조선의 쇄국 정책이 불가피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강조된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적 의도에 맞서 조선의 주권과 문화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6. 가족 관계

이름설명
율리우스 오페르트동양학자
구스타프 오페르트동양학자


7. 관련 서적


  • 핫토리 유키쓰구, 《흑선 전후·지사와 경제 외 16편》 (이와나미 문고 이와나미 쇼텐, 1981년) 중 "발릉 원정대"[22]
  • 강재언, 《조선 근대의 풍운지》 (청구문화총서 청구문화사, 2000년) 중 "제2부 서양과의 만남과 충격 E・오페르트의 일 - 남연군 묘 도굴 미수 사건"[22]
  • 김학준, 《서양인이 본 조선》 (김용권 역, 산카이 출판사, 2014년)[22]

참조

[1] 웹사이트 Ernst Jakob Oppert: "Ein verschlossenes Land" - Die erste Reisebeschreibung eines Deutschen über Korea http://www.uni-erfur[...] 2002
[2] 뉴스 A Grave enterprise http://times.hankook[...] The Korea Times 2005-01-20
[3] 서적 A Forbidden Land: Voyages to the Corea https://archive.org/[...] S. Low, Marston, Searle, and Rivington
[4] 뉴스 German merchant's bodysnatching expedition in 1868 https://www.koreatim[...] 2015-06-22
[5] 서적 Oppert's Kingdom of Corea http://cdl.library.c[...] New Englander and Yale review 1880-09
[6] 뉴스 The Ghouls of Choson http://times.hankook[...] The Korea Times 2004-10-29
[7] 서적 Corea or Cho-sen, Chapter 1 https://www.gutenber[...]
[8] 서적 Korea – A Century of Change https://web.archive.[...] World Scientific Publishing Company
[9] 서적 Korea, and her relations to China, Japan and the United States ... https://catalog.hath[...] Chronicle book and job printing office 1884
[10] 문서 https://archive.org/[...]
[11] 웹사이트 Ernst Jakob Oppert: "Ein verschlossenes Land" - Die erste Reisebeschreibung eines Deutschen über Korea https://web.archive.[...] 2002
[12] 뉴스 A Grave enterprise https://web.archive.[...] The Korea Times 2005-01-20
[13] 서적 Oppert's Kingdom of Corea http://cdl.library.c[...] New Englander and Yale review 1880-09
[14] 뉴스 The Ghouls of Choson https://web.archive.[...] The Korea Times 2004-10-29
[15] 서적 Korea – A Century of Change http://www.worldscib[...] World Scientific Publishing Company
[16] 문서 黒船前後・志士と経済
[17] 서적 한국사 이야기 17 한길사 2009-04-10
[18] 백과사전 에른스트 오페르트 [Ernst Jacob Oppert] 두산백과
[19] 웹사이트 Ernst Jakob Oppert: "Ein verschlossenes Land" - Die erste Reisebeschreibung eines Deutschen über Korea http://www.uni-erfur[...] 2002
[20] 뉴스 A Grave enterprise http://times.hankook[...] The Korea Times 2005-01-20
[21] 서적 한국사 이야기 17 한길사 2009-04-10
[22] 논문 大院君 執政期 Oppert事件 硏究 http://www.riss.k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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