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유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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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노 유타카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1977년부터 1998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최고 구속 150km/h에 육박하는 직구와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며 '일곱 빛깔 변화구'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8년과 1997년에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1991년에는 최우수 구원 투수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1988년 사와무라상 수상, 2013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은퇴 후에는 해설가 및 코치로 활동했으며, 2021년 히로시마 OB 회장으로 취임했다.

오노 유타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오노 유타카
원어 이름大野 豊일본어(오노 유타카)
로마자 표기Yutaka Ohno
출생일1955년 8월 30일
출생지시마네현 이즈모시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오노 유타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일본 대표팀 투수 코치 시절)
신장177cm
체중75kg
투구좌투
타석좌타
포지션투수 / 코치
선수 경력
아마추어이즈모 시 신용조합 (연식 야구)
프로히로시마 도요 카프 (1977 ~ 1998)
코치 경력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9, 2010 ~ 2012)
NPB 경력
드래프트드래프트 번외
첫 출장1977년 9월 4일
마지막 출장1998년 9월 27일 (은퇴 경기)
통산 성적148승 100패, 138세이브, 평균자책점 2.90, 1733탈삼진
수상
타이틀NPB 평균 자책점 2회 (1988, 1997)
NPB 최우수 구원 투수 (1991)
NPB 세이브 2회 (1991, 1992)
기타에이지 사와무라상 (1988)
명예의 전당
종류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년도2013년
득표율84.3% (273표)
헌액 방식경기자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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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大野 豊일본어는 1977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드래프트 외 입단으로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과 1997년 최고 ERA, 1991년 올해의 구원 투수상, 1991년과 1992년 최다 세이브를 기록했으며, 1988년 사와무라 상을 수상했다. 프로 통산 148승, 138세이브, 59완투, 19완봉, 1733탈삼진을 기록했다. 1999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 투수 코치, 2003-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 코치, 2007-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 코치를 역임했다.

2.1. 프로 입단 전

오노 유타카는 모자 가정에서 자랐으며, 어머니의 고생을 보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취업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바람으로 고등학교만은 졸업하기를 원했고, 빨리 취업하기 위해 실업계 고등학교인 이즈모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수로 던지기 시작했으며, 이때 이미 프로 입단 후와 거의 같은 투구 폼을 갖추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는 시마네현에서 주목받는 투수가 되었고, 여러 사회인 야구팀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다. 히로시마 스카우트 코바 키요시도 오노를 주목했다. 하지만 오노는 체력에 자신이 없었고, 어머니를 돕기 위해 연식 야구부만 있는 이즈모시 신용조합에 취업했다. 3년간 창구 업무와 영업 활동을 하면서 연식 야구부에서 야구를 계속했다.

1976년, 시마네현립 이즈모 고등학교와의 연습 경기를 경식 야구로 치렀는데, 5이닝 동안 13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경식 야구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프로에 도전하여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3개월 뒤인 1976년 가을, 이즈모 시내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야구 교실이 열렸다. 당시 야마모토 카즈요시 타격 코치와 주전 투수 이케야 코지로가 강사로 참가했고, 오노의 고등학교 시절 감독이 야마모토 코치와 호세이 대학 야구부 선후배 관계였기 때문에 오노는 감독에게 프로 진출을 부탁했다.

1977년 2월, 은사의 부탁으로 구레 시영 니카와 야구장에서 열린 2군 캠프에서 야마모토와 코바 키요시의 입회 하에 특별 입단 테스트를 받고 합격했다. 3월 6일, 연식 야구 출신이라는 특이한 경력으로 히로시마에 드래프트 외 입단을 달성했다. 계약금은 없었고, 준비금 1, 연봉 1.35, 월급 125을 받았다.

2.2.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 (1977~1998)

大野 豊일본어는 1977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첫 경기였던 9월 4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는 ⅓이닝 동안 5실점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카타오카 신노스케에게 만루 홈런을 허용하며 강판되었고, 평균자책점 135.00으로 시즌을 마쳤다. 훗날 오노는 "이때의 경험 덕분에 슬럼프 때도 정신적으로 편해졌다"고 회상했다.

1978년, 에나쓰 유타카의 지도를 받으며 폼 교정과 변화구 습득에 힘썼다. 에나쓰는 오노를 "동생 같은 존재"로 여기며 가혹하게 지도했고, 오노는 이에 힘입어 팀의 핵심 중간 계투로 성장했다. 그해 10월 9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는 프로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

1979년에는 리그 최다인 58경기에 등판하며 중계 투수로 활약했다. 1981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이적한 에나쓰를 대신해 마무리 투수로 발탁되었다. "소심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1981년 8승 11세이브, 1982년 10승 11세이브를 기록하며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1984년부터는 선발 투수로 전향하여, 1984년 일본 시리즈 우승과 1986년 센트럴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1988년에는 13승 7패, 평균자책점 1.70으로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과 사와무라상을 수상했다. 1989년에도 평균자책점 1.92를 기록하며 2년 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최고 구속 150km/h에 육박하는 직구와 팜볼, 맛슬라, 슬러브, 슈트, 드롭 등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여 '일곱 빛깔 변화구'라는 별명을 얻었다. 키타벳푸 마나부, 카와구치 카즈히사와 함께 1980년대 히로시마 투수 왕국을 이끌었다.

1991년, 츠다 츠네미가 병으로 이탈하면서 다시 마무리 투수를 맡게 되었다. 6승 26세이브로 최우수 구원 투수 타이틀을 획득하고, 개막 이후 14경기 연속 세이브라는 일본 기록(당시 기준)을 세우며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1992년에도 26세이브로 리그 최다 세이브를 기록했다.

1993년 시즌 후, MLB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고령 등을 이유로 거절하고 히로시마에 잔류했다. 당시에는 노모 히데오가 미국에서 활약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MLB 구단이 일본 현역 선수에게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1995년, 다시 선발 투수로 전향하여 활약했다. 1997년에는 41세의 나이로 평균자책점 2.85를 기록하며 두 번째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다.

1998년, 혈행 장애 악화로 은퇴를 결심했다. 9월 27일 은퇴 경기에서 나카네 히토시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내가 선택한 길에, 후회는 없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통산 707경기 등판, 148승 100패 138세이브, 평균자책점 2.90의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다음은 오노 유타카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 연도별 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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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No.경기세이브이닝탈삼진ERA타이틀
1977히로시마6010000.30135.00
1978574131074.3543.77
19795758552105.3643.86리그 우승, 일본 시리즈 우승
19802449721109.7762.70리그 우승, 일본 시리즈 우승
198124578411111.0782.68
1982245710711106.3822.63
198324497109115.3893.51
198424241052147.0952.94리그 우승, 일본 시리즈 우승
198524321072161.7864.06
1986241565092.0632.74리그 우승
198724251350159.71452.93
198824241370185.01831.70최고 평균자책점, 사와무라상 수상
19892419860145.71391.92
199024275113125.01183.17
19912437622646.3581.17올해의 구원 투수상, 최다 세이브, 리그 우승
19922442532659.0771.98최다 세이브
19932431312338.0462.37
19942442421848.7382.40
19952422754102.7663.07
19962419540119.0723.93
19972423960135.7802.85최고 평균자책점
1998241332043.3242.91

3. 지도자 경력

1999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 1군 투수 코치를 맡았지만, 팀 평균자책점은 4.78로 전년도(4.01)보다 악화되었다. 3년 연속 리그 최하위의 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투수진 부진의 책임을 지고 같은 해 퇴단했다.

아테네 올림픽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호시노 센이치 감독 아래 일본 국가대표팀 투수 코치를 맡았다. 아테네에서는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지만, 베이징에서는 다르빗슈 유, 와쿠이 히데아키 등 우수한 선발진을 보유하고도 중간 계투 전문 투수를 선발하지 않아 투수진 붕괴를 초래,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노무라 겐지로 감독 체제의 히로시마에서 1군 수석 코치 겸 투수 코치를 맡았다. 마티 브라운 전 감독의 투구 수 제한 등을 철폐하고 선발 투수에게 7~8이닝을 던지도록 요구하는 등 투수진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오픈전부터 선발 투수진의 컨디션 난조를 겪었고, 시즌 중반에는 부상자가 속출했다. 마에다 겐타가 투수 3관왕을 차지하며 분전했지만, 팀 평균자책점은 4.80으로 오히려 악화되었다. 시즌 후, A클래스 진입과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팀을 떠났다.

2014년 한신 타이거스의 임시 코치를 맡았다.

4. 플레이 스타일

오노 유타카는 허리를 극도로 낮추고, 축발을 깊이 가라앉히는 독특한 투구 폼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투구 폼과 여러 가지 변화구를 통해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 특기였으나, 하반신을 안정시키기 어려워 따라 하는 투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입단 당시 히로시마 헤드 코치였던 돈 브레이저는 "그것을 고치지 않는 한 (시합에서) 쓰지 않겠다"라고 말했고, 오노 유타카 본인도 교정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잘 되지 않아 오히려 장점이 사라진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얼굴을 가리듯 오른팔을 쳐들고, 왼팔을 허리 뒤쪽까지 돌리는 독특한 상반신 동작은 선배인 이케가이 코지로의 폼과 공통점이 많았다. 오노 자신은 "호쾌함"이라고 불리는 이케가이의 폼을 평하며 "나를 오른쪽에 둔 것 같은 폼"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에는 이 특징이 더욱 극단적이어서 오른팔은 하늘로 쳐들고 얼굴도 위를 보는 듯한 동작을 했지만, 에나츠의 권유로 앞서 언급한 형태로 교정했다고 한다.

투구 시에는 "스트레이트를 던질 때만, 다리를 드는 타이밍에 글러브를 꽉 쥐는" 버릇이 있었다.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스카우터였던 미이 야스히로가 이것을 발견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현역 말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이용당했다. 본인은 현역 당시에 이 버릇을 몰랐던 듯하며, 은퇴 후 NHK 해설자 시절에 미이와 만날 기회가 있었을 때, 미이가 그것을 전하자 "너희들 더럽네 (웃음)"라고 말했다고 한다.

5. 인간 관계

키바 오사무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냈지만, 오노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아버지의 성을 사용했기 때문에 키바는 입단 당시 "오노 유타카"라는 이름을 듣고 바로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다시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고 한다.

에나쓰 유타카를 스승으로 존경하며 "투구 폼이나 배구뿐만 아니라 로진백을 놓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정말 세세하게 지도받았다", "테스트 선수였던 선수에게, 당시 스타 선수가 코치를 해 주시는 것은 꿈만 같았다"라고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은퇴 후에도 『프로 야구 릴리프 대감』에서 대담을 하기도 했다. 다만, 에나쓰의 까다로운 성격에 대해서는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라고도 말했다. 또한, 에나쓰는 오노의 성공에 대해 "그의 노력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절친이자 팀 동료였던 다쓰카와 미쓰오, 가케후 마사유키, 에가와 스구루 등과 동갑이다. 오노가 현역 말년에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을 때 (시즌 폐막 시점 42세)는, 이미 은퇴하고 해설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던 그들과 비교하여 "현역으로 1군에 있다는 것조차 경이적인 나이임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들의 학년은 많은 스타 선수를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등학교 3학년 때가 쇼와 48년이었기 때문에 "꽃의 48년조"라고도 불린다.

야구에서는 왼손으로 던지고 왼손으로 쳤지만, 펜은 오른손으로 잡는다

2023년 6월에 팀 동료였던 기타벳푸 마나부가 사망했을 때, 그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었다.

6. 수상 및 타이틀 경력

오노 유타카는 선수 시절 뛰어난 활약으로 여러 상을 받았다. 1988년에는 리그 최고 평균 자책점(1.70)을 기록하며 사와무라 상을 수상했고, 1991년에는 최다 세이브를 기록하며 올해의 구원 투수상을 받았다. 1997년에도 다시 한번 리그 최고 평균 자책점(2.85)을 기록했다. 통산 148승, 138세이브, 59완투, 19완봉, 1733탈삼진을 기록했다.

6.1.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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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횟수연도
최우수 평균 자책점2회1988년, 1997년
최우수 구원 투수1회1991년

6.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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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수 및 연도
월간 MVP3회 (1984년 4월, 1989년 8월, 1997년 4월)
사와무라 상1회 (1988년)
파이어맨 상1회 (1991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2013년

7. 개인 기록

오노 유타카의 주요 개인 통산 기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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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일달성 기록상대팀구장비고
1986년 7월 16일통산 1000투구 이닝요미우리 자이언츠히로시마 시민 구장4회초 2사에 달성
1988년 9월 16일통산 1000탈삼진한신 타이거스한신 고시엔 구장3회말에 오카다 아키노부로부터, 역대 77번째
1989년 9월 20일통산 1500투구 이닝요미우리 자이언츠히로시마 시민 구장2회초 2사에 달성
1989년 9월 27일통산 100승요미우리 자이언츠도쿄 돔선발 등판으로 7이닝 2실점, 역대 100번째
1991년 8월 11일통산 500경기 등판한신 타이거스히로시마 시민 구장9회초 2사에 2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마무리, 1/3이닝 무실점으로 세이브 달성, 역대 66번째
1993년 4월 29일통산 100세이브야쿠르트 스왈로스히로시마 시민 구장9회초에 2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마무리, 1이닝 무실점, 역대 6번째
1994년 5월 29일통산 600경기 등판요미우리 자이언츠히로시마 시민 구장9회초에 5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마무리, 1이닝 2실점, 역대 31번째
1995년 6월 4일통산 1500탈삼진요미우리 자이언츠도쿄 돔2회말에 마키하라 히로미로부터, 역대 37번째
1996년 6월 8일통산 2000투구 이닝야쿠르트 스왈로스후쿠시마 현영 아즈마 구장6회초 3사에 달성, 역대 73번째
1998년 5월 16일통산 700경기 등판한신 타이거스히로시마 시민 구장선발 등판으로 1이닝 2실점에서 패전 투수, 역대 13번째

7.1. 첫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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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내용
첫 등판1977년 9월 4일, 대 한신 타이거스 18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8회초에 4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 1/3이닝 5실점
첫 탈삼진1978년 4월 1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1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8회초에 찰리 매뉴엘로부터
첫 선발1978년 4월 10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6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1이닝 3실점
첫 승리1978년 8월 12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18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4회초 1사에 5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마무리, 5와 2/3이닝 무실점
첫 선발 승리·첫 완투 승리·첫 완봉 승리1978년 10월 9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26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첫 세이브1979년 6월 20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26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6회말 2사에 3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마무리, 3와 1/3이닝 무실점

7.2. 기록 달성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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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일달성 기록상대팀구장비고
1986년 7월 16일통산 1000투구 이닝요미우리 자이언츠히로시마 시민 구장4회초 2사에 달성
1988년 9월 16일통산 1000탈삼진한신 타이거스한신 고시엔 구장3회말에 오카다 아키노부로부터, 역대 77번째
1989년 9월 20일통산 1500투구 이닝요미우리 자이언츠히로시마 시민 구장2회초 2사에 달성
1989년 9월 27일통산 100승요미우리 자이언츠도쿄 돔선발 등판으로 7이닝 2실점, 역대 100번째
1991년 8월 11일통산 500경기 등판한신 타이거스히로시마 시민 구장9회초 2사에 2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마무리, 1/3이닝 무실점으로 세이브 달성, 역대 66번째
1993년 4월 29일통산 100세이브야쿠르트 스왈로스히로시마 시민 구장9회초에 2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마무리, 1이닝 무실점, 역대 6번째
1994년 5월 29일통산 600경기 등판요미우리 자이언츠히로시마 시민 구장9회초에 5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마무리, 1이닝 2실점, 역대 31번째
1995년 6월 4일통산 1500탈삼진요미우리 자이언츠도쿄 돔2회말에 마키하라 히로미로부터, 역대 37번째
1996년 6월 8일통산 2000투구 이닝야쿠르트 스왈로스후쿠시마 현영 아즈마 구장6회초 3사에 달성, 역대 73번째
1998년 5월 16일통산 700경기 등판한신 타이거스히로시마 시민 구장선발 등판으로 1이닝 2실점에서 패전 투수, 역대 13번째

8. 출신 학교

시마네현립 이즈모 상업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