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다 아키노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오카다 아키노부는 일본의 야구 선수, 코치, 감독이다. 1979년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1980년 신인왕을 수상하고 1985년에는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93년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이적하여 1995년 은퇴했다.
이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여 오릭스 2군 타격 코치, 한신 2군 감독, 1군 코치를 거쳐,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한신 타이거스 감독을 맡았다. 2009년 오릭스 버펄로스 감독으로 취임하여 2010년 교류전 우승을 이끌었지만, 2012년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2022년 한신 타이거스 감독으로 복귀하여 2023년 18년 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 38년 만에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024년 구단 감독 최다 승리 기록을 경신하고, 시즌 종료 후 퇴임했다. 그는 견실함을 중시하는 감독 스타일로, '그것'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며, 2군 선수 육성에 관심을 가졌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오사카시의 야구 선수 - 미키 하지메
미키 하지메는 일본의 전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며, 선수 시절 내야수로 활동했고, 은퇴 후 닛폰햄, 야쿠르트에서 코치를 역임했으며, 라쿠텐 골든이글스 2군 감독으로 우승을 이끌고 1군 감독을 맡았다. - 오사카시의 야구 선수 - 노모 히데오
노모 히데오는 독특한 투구폼으로 유명하며 NPB와 MLB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일본의 前 프로 야구 선수이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투수로, 일본 선수들의 메이저 리그 진출 붐을 일으킨 선구자이다. - 오릭스 블루웨이브 선수 - 후쿠하라 미네오
후쿠하라 미네오는 닛폰 통운 우라와 사회인 야구 선수에서 한큐 브레이브스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하며 1984년 퍼시픽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은퇴 후에는 일본과 한국 프로야구 구단에서 20년 이상 코치,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로 활동했다. - 오릭스 블루웨이브 선수 - 다구치 소
다구치 소는 간사이 학생 야구 연맹 최다 안타 기록을 세우고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데뷔하여 NPB와 MLB에서 외야수로 활약하며 골든 글러브,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고 오릭스 코치를 역임한 뛰어난 수비력과 클러치 능력을 가진 야구 선수이다. - 일본 프로 야구 신인왕 수상자 - 도마시노 겐지
도마시노 겐지는 198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1989년 신인왕을 수상하고 빠른 발과 수비력을 갖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야구 해설가이다. - 일본 프로 야구 신인왕 수상자 - 후지타 모토시
후지타 모토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활약하며 리그 MVP를 2연패하고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으며,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오카다 아키노부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출생일 | 1957년 11월 25일 () |
출생지 |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 |
포지션 | 내야수 / 감독 |
투구 | 우투 |
타석 | 우타 |
데뷔 리그 | NPB |
데뷔 | 1980년 4월 11일 |
데뷔 팀 | 한신 타이거스 |
최종 리그 | NPB |
최종 경기 | 1995년 10월 2일 |
최종 팀 | 오릭스 블루웨이브 |
선수 경력 | |
선수 | 한신 타이거스 (–) 오릭스 블루웨이브 (–) |
감독/코치 경력 | |
감독 | 한신 타이거스 (–) 오릭스 버펄로스 (–) 한신 타이거스 (–) |
코치 |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6-1997) 한신 타이거스 (1998-2008) 오릭스 버펄로스 (2010-2012) |
수상 | |
우승 | 일본 시리즈 2회 우승 (, ) |
신인왕 | 센트럴 리그 신인왕 () |
기록 (NPB) | |
타율 | 0.277 |
안타 | 1,520 |
홈런 | 247 |
타점 | 1434 |
감독 승리 | 747 |
감독 패배 | 639 |
2. 선수 경력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 다마쓰쿠리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한신 타이거스의 열렬한 팬이었다.[177] 아버지는 ‘오사카 지공소’라는 작은 공장을 경영하며 한신의 유력한 후원자였고, 무라야마 미노루, 후지모토 가쓰미 등 선수들과 친분이 두터웠다.[7] 유치원 시절에는 한신 3루수였던 미야케 히데시와 공을 주고받는 연습을 했고, 이후 미야케를 동경하게 되었다. 오카다가 한신 입단 후 등번호 16번을 희망한 것도 미야케가 착용했던 등번호였기 때문이다.[178] 오사카 시립 아이니치 초등학교 5학년 때 난카이 호크스가 운영하던 소년 야구팀 ‘리틀 호크스’에 입단하여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179]
1972년 메이세이 중학교 3학년 때 중학교 야구 오사카부 대회에서 우승했고, 1973년 3월에는 무라야마의 은퇴 경기 전 캐치볼 상대를 맡았다.[182] 1973년 호쿠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학년 때 제55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좌익수로 출전, 3차전에서 아리타 후미오가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지만 준준결승에서 패했다.[183] 3학년 때인 1975년에는 에이스 겸 4번 타자로 오사카부 예선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고코쿠 고에 패하며 고시엔 대회 출전은 좌절되었다.[184]
와세다 대학 진학 후, 와세다 대학 야구부의 선발 시험에서 15타수 14안타 14홈런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며 합격했다.[185] 도쿄 6대학 야구 리그에서는 1학년 때인 1976년 추계 리그부터 좌익수로 출전, 호세이 대학의 에가와 스구루로부터 3안타를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2학년 때부터는 3루수로 포지션을 변경, 3학년 때인 1978년 추계 리그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1979년 춘계 리그에서는 주장을 맡아 리그 2연패에 기여했고, 같은 해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1978년과 1979년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4번 타자를 맡아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
도쿄 6대학 리그 통산 88경기에 출전, 309타수 117안타, 20홈런, 81타점, 타율 0.379를 기록했는데, 특히 타점과 타율은 리그 기록으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77년 추계 리그부터 5시즌 연속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고, 1978년 춘계 리그 도쿄 대학과의 경기에서는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는 등 대학 야구의 간판 선수로 성장했다.
1979년 가을 드래프트 회의를 앞두고 프로 입단 기자회견에서 “한신이라면 좋겠지만 한큐(브레이브스)와 같은 구단을 희망하고 있다. 그 외의 구단이라면 지명됐을 때에 생각해보겠다. 그러나 프런트가 제대로 된 우승을 경쟁할 수 있는 구단이라면 가고 싶다”[186]라고 말했다.
- **
오카다 아키노부는 1979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6개 구단의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추첨 결과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다.[22][23] 계약금 6000만 엔, 연봉 480만 엔에 계약했다.[24][25]
입단 첫 해인 1980년, 돈 블레이저 감독은 오카다를 2루나 외야수로 기용하려 했으나, 팬들의 반발과 데이브 힐튼의 부진으로 4월 22일부터 3루수로 기용되었다.[194] 힐튼은 5월 10일에 방출되었고, 블레이저 감독은 5월 15일에 해임되었다.[195][196][197] 이후 오카다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108경기에 출전, 타율 0.290, 18홈런, 54타점을 기록하여 신인왕을 수상했다.[198] 그해 올스타전 1차전에서 22세 7개월의 나이로 대타 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2015년까지 올스타전 대타 홈런 최연소 기록이었다.[199][200]
1981년에는 처음으로 시즌 130경기에 모두 출전해 20홈런을 기록했고, 포지션은 2루수로 고정됐다.[201] 1982년에는 안도 모토오 감독 부임 하에 처음으로 3할 타율을 기록했다. 1983년에는 7월 10일 경기 중 다리 근육 파열 부상을 당해[202][203] 이후 슬럼프를 겪었다.[204] 1984년에는 부상에서 복귀, 2루수와 우익수로 기용되며 타율 0.297, 15홈런을 기록했다.[205]
1985년, 요시다 요시오 감독 부임과 함께 다시 2루수로 복귀,[206] 5번 타자로 활약했다.[207] 4월 17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요미우리전에서 랜디 바스, 가케후 마사유키에 이은 '백 스크린 3연발' 홈런을 쳐냈다. 그해 8월에는 타율 0.429, 10홈런, 31타점으로 월간 MVP를 수상했다. 최종적으로 타율 0.342(리그 2위), 35홈런(리그 4위), 101타점(리그 5위)을 기록, 베스트 나인과 다이아몬드 글러브상을 수상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는 4번과 5번 타자를 오가며 활약했다. 1989년에는 가케후 마사유키의 은퇴로 3루수로 변경되었으며, 6월 25일 요미우리전에서 역전 만루 홈런을 기록하고, 월간 MVP를 수상했다. 1990년에는 다시 2루수로 복귀했다. 1991년에는 타율, 안타, 타점 모두 개인 최저 성적을 기록했다.
1992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회 회장으로서 FA 제도 도입에 주력했다.[53][54] 선수로서는 와다 유타카에게 2루수 자리를 내주고 1루수로 변경되었으나, 신조 쓰요시, 가메야마 쓰토무 등과의 경쟁에서 밀려 선발 출전 기회가 줄었다. 1993년에는 외야수로 기용되었지만 출전 기회가 감소했고, 시즌 후 한신에서 방출되었다.[211]
- **
1993년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어 오기 아키라 감독이 이끄는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이적했다. 기자 회견에서 "앞으로도 한신의 팬으로 쭉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등 신인 시절부터 몸담았던 한신 타이거스와의 결별을 안타까워했다.[212] 이적 직전 불륜 스캔들이 폭로되었으나, 자칭 '애인'이라는 여성의 자작극으로 밝혀졌고, 오카다가 오히려 공갈 협박을 당해 200만 엔을 빼앗긴 피해자였음이 드러났다. 경찰 수사 결과 여성은 공갈 혐의로 체포되었고, 오릭스는 회사 내 조사 요원을 동원해 사건 해결에 기여했다.[212]
1994년 춘계 스프링 캠프에서 펀치 사토가 오카다에게 함께 카메라 앞에서 "올해는 부활할 것이다"라고 말하자고 제안했지만, 오카다는 "부활이라니, 너는 그런 좋은 때가 있기나 하였는가?"라며 거절했다. 오픈전에서는 타석에 섰을 때 한신 팬들로부터 응원을 받기도 했다.
1995년에는 출전 기회가 급격하게 줄었지만, 팀은 11년 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오카다는 1985년 한신 타이거스 시절 이후 10년 만에 우승을 경험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일본 시리즈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996년 3월에는 친정팀 한신 타이거스와 오릭스와의 시범 경기에서 은퇴 경기가 치러졌고, 오카다는 경기 종료 직후 양 팀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았다.[213] 현역 시절에는 스포츠 용품 제조업체인 SSK의 스태프를 맡았다.[60]
2. 1. 프로 입단 전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 다마쓰쿠리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한신 타이거스의 열렬한 팬이었다.[177] 아버지는 ‘오사카 지공소’라는 작은 공장을 경영하며 한신의 유력한 후원자였고, 무라야마 미노루, 후지모토 가쓰미 등 선수들과 친분이 두터웠다.[7] 유치원 시절에는 한신 3루수였던 미야케 히데시와 공을 주고받는 연습을 했고, 이후 미야케를 동경하게 되었다. 오카다가 한신 입단 후 등번호 16번을 희망한 것도 미야케가 착용했던 등번호였기 때문이다.[178] 오사카 시립 아이니치 초등학교 5학년 때 난카이 호크스가 운영하던 소년 야구팀 ‘리틀 호크스’에 입단하여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179]1972년 메이세이 중학교 3학년 때 중학교 야구 오사카부 대회에서 우승했고, 1973년 3월에는 무라야마의 은퇴 경기 전 캐치볼 상대를 맡았다.[182] 1973년 호쿠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학년 때 제55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좌익수로 출전, 3차전에서 아리타 후미오가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지만 준준결승에서 패했다.[183] 3학년 때인 1975년에는 에이스 겸 4번 타자로 오사카부 예선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고코쿠 고에 패하며 고시엔 대회 출전은 좌절되었다.[184]
와세다 대학 진학 후, 와세다 대학 야구부의 선발 시험에서 15타수 14안타 14홈런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며 합격했다.[185] 도쿄 6대학 야구 리그에서는 1학년 때인 1976년 추계 리그부터 좌익수로 출전, 호세이 대학의 에가와 스구루로부터 3안타를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2학년 때부터는 3루수로 포지션을 변경, 3학년 때인 1978년 추계 리그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1979년 춘계 리그에서는 주장을 맡아 리그 2연패에 기여했고, 같은 해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1978년과 1979년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4번 타자를 맡아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
도쿄 6대학 리그 통산 88경기에 출전, 309타수 117안타, 20홈런, 81타점, 타율 0.379를 기록했는데, 특히 타점과 타율은 리그 기록으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77년 추계 리그부터 5시즌 연속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고, 1978년 춘계 리그 도쿄 대학과의 경기에서는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는 등 대학 야구의 간판 선수로 성장했다.
1979년 가을 드래프트 회의를 앞두고 프로 입단 기자회견에서 “한신이라면 좋겠지만 한큐(브레이브스)와 같은 구단을 희망하고 있다. 그 외의 구단이라면 지명됐을 때에 생각해보겠다. 그러나 프런트가 제대로 된 우승을 경쟁할 수 있는 구단이라면 가고 싶다”[186]라고 말했다.
2. 2. 한신 타이거스 시절 (1980년 ~ 1993년)
오카다 아키노부는 1979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6개 구단의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추첨 결과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다.[22][23] 계약금 6000만 엔, 연봉 480만 엔에 계약했다.[24][25]입단 첫 해인 1980년, 돈 블레이저 감독은 오카다를 2루나 외야수로 기용하려 했으나, 팬들의 반발과 데이브 힐튼의 부진으로 4월 22일부터 3루수로 기용되었다.[194] 힐튼은 5월 10일에 방출되었고, 블레이저 감독은 5월 15일에 해임되었다.[195][196][197] 이후 오카다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108경기에 출전, 타율 0.290, 18홈런, 54타점을 기록하여 신인왕을 수상했다.[198] 그해 올스타전 1차전에서 22세 7개월의 나이로 대타 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2015년까지 올스타전 대타 홈런 최연소 기록이었다.[199][200]
1981년에는 처음으로 시즌 130경기에 모두 출전해 20홈런을 기록했고, 포지션은 2루수로 고정됐다.[201] 1982년에는 안도 모토오 감독 부임 하에 처음으로 3할 타율을 기록했다. 1983년에는 7월 10일 경기 중 다리 근육 파열 부상을 당해[202][203] 이후 슬럼프를 겪었다.[204] 1984년에는 부상에서 복귀, 2루수와 우익수로 기용되며 타율 0.297, 15홈런을 기록했다.[205]
1985년, 요시다 요시오 감독 부임과 함께 다시 2루수로 복귀,[206] 5번 타자로 활약했다.[207] 4월 17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요미우리전에서 랜디 바스, 가케후 마사유키에 이은 '백 스크린 3연발' 홈런을 쳐냈다. 그해 8월에는 타율 0.429, 10홈런, 31타점으로 월간 MVP를 수상했다. 최종적으로 타율 0.342(리그 2위), 35홈런(리그 4위), 101타점(리그 5위)을 기록, 베스트 나인과 다이아몬드 글러브상을 수상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는 4번과 5번 타자를 오가며 활약했다. 1989년에는 가케후 마사유키의 은퇴로 3루수로 변경되었으며, 6월 25일 요미우리전에서 역전 만루 홈런을 기록하고, 월간 MVP를 수상했다. 1990년에는 다시 2루수로 복귀했다. 1991년에는 타율, 안타, 타점 모두 개인 최저 성적을 기록했다.
1992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회 회장으로서 FA 제도 도입에 주력했다.[53][54] 선수로서는 와다 유타카에게 2루수 자리를 내주고 1루수로 변경되었으나, 신조 쓰요시, 가메야마 쓰토무 등과의 경쟁에서 밀려 선발 출전 기회가 줄었다. 1993년에는 외야수로 기용되었지만 출전 기회가 감소했고, 시즌 후 한신에서 방출되었다.[211]
2. 3.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1994년 ~ 1995년)
1993년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어 오기 아키라 감독이 이끄는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이적했다. 기자 회견에서 "앞으로도 한신의 팬으로 쭉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등 신인 시절부터 몸담았던 한신 타이거스와의 결별을 안타까워했다.[212] 이적 직전 불륜 스캔들이 폭로되었으나, 자칭 '애인'이라는 여성의 자작극으로 밝혀졌고, 오카다가 오히려 공갈 협박을 당해 200만 엔을 빼앗긴 피해자였음이 드러났다. 경찰 수사 결과 여성은 공갈 혐의로 체포되었고, 오릭스는 회사 내 조사 요원을 동원해 사건 해결에 기여했다.[212]1994년 춘계 스프링 캠프에서 펀치 사토가 오카다에게 함께 카메라 앞에서 "올해는 부활할 것이다"라고 말하자고 제안했지만, 오카다는 "부활이라니, 너는 그런 좋은 때가 있기나 하였는가?"라며 거절했다. 오픈전에서는 타석에 섰을 때 한신 팬들로부터 응원을 받기도 했다.
1995년에는 출전 기회가 급격하게 줄었지만, 팀은 11년 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오카다는 1985년 한신 타이거스 시절 이후 10년 만에 우승을 경험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일본 시리즈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996년 3월에는 친정팀 한신 타이거스와 오릭스와의 시범 경기에서 은퇴 경기가 치러졌고, 오카다는 경기 종료 직후 양 팀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았다.[213] 현역 시절에는 스포츠 용품 제조업체인 SSK의 스태프를 맡았다.[60]
3. 지도자 경력
1996년 오릭스 블루웨이브 2군 타격 코치를 맡았고, 1998년에는 한신 타이거스 2군 타격 코치로 복귀했다.[214] 1999년부터 2002년까지는 한신 2군 감독을 역임하며 젊은 선수 육성에 힘썼으며, 팜 일본 선수권에서 두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61] 그는 훗날 1군 감독 시절보다 이때의 추억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62] 2003년에는 한신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로 보직을 변경하여 3루 베이스 코치를 담당했다.[214]
오카다 아키노부는 2003년 시즌 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면서 한신 타이거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취임 당시 "기대하게 해서 좋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2004년에는 이가와 게이, 이라부 히데키 등 주력 선수들의 부진과 조지 아리아스의 부진, 마이크 킨케이드의 부상, 아테네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된 제프 윌리엄스와 안도 유야의 부재 등으로 인해 팀은 4위에 머물렀다.
2005년, 오카다는 제프 윌리엄스, 후지카와 규지, 구보타 도모유키를 묶어 'JFK'라는 강력한 불펜진을 구축했다.[215] 9월 7일 나고야 돔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에서 9회말 홈에서의 세이프 판정에 격분하여 선수 전원을 철수시키고 심판진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이후 경기에서 구보타 도모유키에게 "이제는 맞게 해라! 맞아 줘도 네 잘못 아니다.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마음껏 던져라!"라고 말하며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는 강한 각오를 보였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한신은 연승을 거듭했고, 9월 2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센트럴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일본 시리즈에서는 지바 롯데 마린스에게 4전 전패를 당하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2006년 3월 6일, 오카다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호랑이를 보호하기 위해 호랑이 보호기금으로 2006년 정규 시즌의 승리 수와 같은 호랑이 보호 레인저용의 장비를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006년 정규 시즌 승리 수(84승)와 똑같은 84개 분의 장비와 75만 6,000엔(1세트당 약 9,000엔)의 성금을 기부했다.
2007년 6월 8일 오릭스 버펄로스전에서는 타자 도리타니 다카시의 수비 방해를 놓고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퇴장당했고, 8월 16일 주니치전에서는 2루심에게 항의하다가 또다시 퇴장당했다.[64] 한 시즌에 두 번 퇴장당한 것은 센트럴 리그 일본인 감독으로서는 처음이었다.
2008년, 팀은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된 아라이 다카히로, 야노 아키히로, 후지카와 규지 등의 전력 이탈과 주전 선수들의 부진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리그 우승을 내주었다. 오카다는 리그 우승을 놓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8년 시즌을 끝으로 사임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1 스테이지 최종전에서 팀은 패했고, 이 경기가 오카다의 한신 감독으로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았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의 감독으로서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소속 | 순위 | 경기 | 승리 | 패전 | 무승부 | 승률 | 승차 | 팀 홈런 | 팀 타율 | 팀 평균자책점 | 연령 |
---|---|---|---|---|---|---|---|---|---|---|---|---|
2004 | 한신 | 4위 | 138 | 66 | 70 | 2 | .485 | 13.5 | 142 | .273 | 4.08 | 47세 |
2005 | 1위 | 146 | 87 | 54 | 5 | .617 | - | 140 | .274 | 3.24 | 48세 | |
2006 | 2위 | 146 | 84 | 58 | 4 | .592 | 3.5 | 133 | .267 | 3.13 | 49세 | |
2007 | 3위 | 144 | 74 | 66 | 4 | .529 | 4.5 | 111 | .255 | 3.56 | 50세 | |
2008 | 2위 | 144 | 82 | 59 | 3 | .582 | 2.0 | 83 | .268 | 3.29 | 51세 |
2009년 10월 13일, 오릭스 버펄로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계약 기간은 3년, 연봉은 1억 엔이었으며 등번호는 한신 타이거스 감독 시절과 같은 80번이었다.[216][217] 팀 편성과 홍보 등 구단 운영 전반에 걸쳐 전권을 위임받아 실질적인 단장(GM) 역할까지 겸임했다.[66]
2010년에는 교류전 우승을 이끌었지만, T-오카다와 가네코 지히로 등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후반기에 전력 약화로 5위에 그쳤다. 6월 8일에는 호시노 노부유키 투수 코치가 건강상의 이유로 휴양하면서, 고바야시 히로시가 후임으로 발탁되었으나, 경험 부족으로 인해 투수 기용은 오카다가 직접 결정하며 투수 코치를 겸임했다.[218] 3월 31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 승리하여 한신 감독 시절을 포함한 통산 400승을 달성했다.[67]
2011년 초반에는 팀 타율이 2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심한 타격 부진으로 최하위권에 머물렀으나, 교류전에서 15승 2무 7패로 2위를 기록하며 반등했다. 하지만 이후 연승과 연패를 반복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7월에는 3경기 연속 끝내기 승리를 기록하며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두 번이나 3경기 연속 끝내기 승리를 달성한 감독이 되었다. 8월 7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감독 통산 500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이 걸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최종전에서 패배하며 1모 차이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게 3위 자리를 내주고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 해 고토 미쓰타카, 아롬 발디리스, T-오카다 등 주력 선수들을 2군으로 강등시키는 등 선수 교체를 빈번하게 단행했다.[68]
2012년에는 대규모 보강을 통해 우승을 목표로 했으나,[220] 주력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개막 이후 최하위로 추락했다. 9월 22일, 3년 계약 만료와 함께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시즌 종료 후 감독직에서 물러날 것을 발표했다.[221] 구단은 시즌 종료까지 지휘를 맡길 방침이었지만, 최하위가 확정된 다음 날인 9월 25일 경질 통보를 받고 다카시로 노부히로 수석 코치와 함께 사실상 해임되었다.[222]
연도 | 소속 | 순위 | 경기 | 승리 | 패전 | 무승부 | 승률 | 승차 | 팀 홈런 | 팀 타율 | 팀 평균자책점 | 연령 |
---|---|---|---|---|---|---|---|---|---|---|---|---|
2010년 | 오릭스 | 5위 | 144 | 69 | 71 | 4 | .493 | 7.5 | 146 | .271 | 3.97 | 53세 |
2011년 | 4위 | 144 | 69 | 68 | 7 | .504 | 20.5 | 76 | .248 | 3.33 | 54세 | |
2012년 | 6위 | 144 | 57 | 77 | 10 | .425 | 17.5 | 73 | .241 | 3.34 | 55세 |
# 2012년 시즌에는 9월 25일부터 팀 성적 부진으로 휴양에 들어갔으며, 감독 대행은 모리와키 히로시가 맡았다.
# 2012년 시즌에 결장한 9경기(7승 2패)는 감독 성적에 포함되지 않는다.
2022년 10월 15일, 야노 아키히로의 후임으로 한신 타이거스 감독으로 복귀했다.[227] 등번호는 제1기 감독 시절 및 오릭스 버펄로스 감독 시절과 같은 '''80'''번을 사용했다.[227]
2023년, 오야마 유스케를 4번 타자 겸 1루수로, 사토 테루아키를 5번 타자 겸 3루수로 고정 기용하고, 나카노 타쿠무를 2루수로, 키나미 세이야를 유격수로 기용하는 등 선수 기용과 작전에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78] 투수진에서는 무라카미 쇼키와 오타케 코타로를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시키고, 이와사키 스구루를 마무리 투수로 기용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팀은 9월 14일, 18년 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78] 이는 65세 9개월로 센트럴 리그 최연장 우승 감독 기록이었다.[78] 또한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꺾고[79], 일본 시리즈에서 오릭스 버펄로스를 상대로 4승 3패를 기록하며 38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80] 오카다는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한신 타이거스 인물이 되었다.
2024년, 한신 감독 통산 515승을 달성하여 구단 감독 최다 승리 기록을 경신했다.[83] 10월 3일,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퇴임할 것을 발표했고,[84] 10월 6일에 공식적으로 퇴임을 표명했다.[85]
3. 1. 코치 시절
1996년 오릭스 블루웨이브 2군 타격 코치를 맡았고, 1998년에는 한신 타이거스 2군 타격 코치로 복귀했다.[214] 1999년부터 2002년까지는 한신 2군 감독을 역임하며 젊은 선수 육성에 힘썼으며, 팜 일본 선수권에서 두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61] 그는 훗날 1군 감독 시절보다 이때의 추억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62] 2003년에는 한신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로 보직을 변경하여 3루 베이스 코치를 담당했다.[214]3. 2. 제1기 한신 타이거스 감독 시절 (2004년 ~ 2008년)
오카다 아키노부는 2003년 시즌 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면서 한신 타이거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취임 당시 "기대하게 해서 좋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2004년에는 이가와 게이, 이라부 히데키 등 주력 선수들의 부진과 조지 아리아스의 부진, 마이크 킨케이드의 부상, 아테네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된 제프 윌리엄스와 안도 유야의 부재 등으로 인해 팀은 4위에 머물렀다.
2005년, 오카다는 제프 윌리엄스, 후지카와 규지, 구보타 도모유키를 묶어 'JFK'라는 강력한 불펜진을 구축했다.[215] 9월 7일 나고야 돔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에서 9회말 홈에서의 세이프 판정에 격분하여 선수 전원을 철수시키고 심판진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이후 경기에서 구보타 도모유키에게 "이제는 맞게 해라! 맞아 줘도 네 잘못 아니다.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마음껏 던져라!"라고 말하며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는 강한 각오를 보였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한신은 연승을 거듭했고, 9월 2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센트럴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일본 시리즈에서는 지바 롯데 마린스에게 4전 전패를 당하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2006년 3월 6일, 오카다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호랑이를 보호하기 위해 호랑이 보호기금으로 2006년 정규 시즌의 승리 수와 같은 호랑이 보호 레인저용의 장비를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006년 정규 시즌 승리 수(84승)와 똑같은 84개 분의 장비와 75만 6,000엔(1세트당 약 9,000엔)의 성금을 기부했다.
2007년 6월 8일 오릭스 버펄로스전에서는 타자 도리타니 다카시의 수비 방해를 놓고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퇴장당했고, 8월 16일 주니치전에서는 2루심에게 항의하다가 또다시 퇴장당했다.[64] 한 시즌에 두 번 퇴장당한 것은 센트럴 리그 일본인 감독으로서는 처음이었다.
2008년, 팀은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된 아라이 다카히로, 야노 아키히로, 후지카와 규지 등의 전력 이탈과 주전 선수들의 부진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리그 우승을 내주었다. 오카다는 리그 우승을 놓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8년 시즌을 끝으로 사임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1 스테이지 최종전에서 팀은 패했고, 이 경기가 오카다의 한신 감독으로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았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의 감독으로서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소속 | 순위 | 경기 | 승리 | 패전 | 무승부 | 승률 | 승차 | 팀 홈런 | 팀 타율 | 팀 평균자책점 | 연령 |
---|---|---|---|---|---|---|---|---|---|---|---|---|
2004 | 한신 | 4위 | 138 | 66 | 70 | 2 | .485 | 13.5 | 142 | .273 | 4.08 | 47세 |
2005 | 1위 | 146 | 87 | 54 | 5 | .617 | - | 140 | .274 | 3.24 | 48세 | |
2006 | 2위 | 146 | 84 | 58 | 4 | .592 | 3.5 | 133 | .267 | 3.13 | 49세 | |
2007 | 3위 | 144 | 74 | 66 | 4 | .529 | 4.5 | 111 | .255 | 3.56 | 50세 | |
2008 | 2위 | 144 | 82 | 59 | 3 | .582 | 2.0 | 83 | .268 | 3.29 | 51세 |
3. 3. 오릭스 버펄로스 감독 시절 (2010년 ~ 2012년)
2009년 10월 13일, 오릭스 버펄로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계약 기간은 3년, 연봉은 1억 엔이었으며 등번호는 한신 타이거스 감독 시절과 같은 80번이었다.[216][217] 팀 편성과 홍보 등 구단 운영 전반에 걸쳐 전권을 위임받아 실질적인 단장(GM) 역할까지 겸임했다.[66]2010년에는 교류전 우승을 이끌었지만, T-오카다와 가네코 지히로 등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후반기에 전력 약화로 5위에 그쳤다. 6월 8일에는 호시노 노부유키 투수 코치가 건강상의 이유로 휴양하면서, 고바야시 히로시가 후임으로 발탁되었으나, 경험 부족으로 인해 투수 기용은 오카다가 직접 결정하며 투수 코치를 겸임했다.[218] 3월 31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 승리하여 한신 감독 시절을 포함한 통산 400승을 달성했다.[67]
2011년 초반에는 팀 타율이 2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심한 타격 부진으로 최하위권에 머물렀으나, 교류전에서 15승 2무 7패로 2위를 기록하며 반등했다. 하지만 이후 연승과 연패를 반복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7월에는 3경기 연속 끝내기 승리를 기록하며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두 번이나 3경기 연속 끝내기 승리를 달성한 감독이 되었다. 8월 7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감독 통산 500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이 걸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최종전에서 패배하며 1모 차이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게 3위 자리를 내주고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 해 고토 미쓰타카, 아롬 발디리스, T-오카다 등 주력 선수들을 2군으로 강등시키는 등 선수 교체를 빈번하게 단행했다.[68]
2012년에는 대규모 보강을 통해 우승을 목표로 했으나,[220] 주력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개막 이후 최하위로 추락했다. 9월 22일, 3년 계약 만료와 함께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시즌 종료 후 감독직에서 물러날 것을 발표했다.[221] 구단은 시즌 종료까지 지휘를 맡길 방침이었지만, 최하위가 확정된 다음 날인 9월 25일 경질 통보를 받고 다카시로 노부히로 수석 코치와 함께 사실상 해임되었다.[222]
연도 | 소속 | 순위 | 경기 | 승리 | 패전 | 무승부 | 승률 | 승차 | 팀 홈런 | 팀 타율 | 팀 평균자책점 | 연령 |
---|---|---|---|---|---|---|---|---|---|---|---|---|
2010년 | 오릭스 | 5위 | 144 | 69 | 71 | 4 | .493 | 7.5 | 146 | .271 | 3.97 | 53세 |
2011년 | 4위 | 144 | 69 | 68 | 7 | .504 | 20.5 | 76 | .248 | 3.33 | 54세 | |
2012년 | 6위 | 144 | 57 | 77 | 10 | .425 | 17.5 | 73 | .241 | 3.34 | 55세 |
# 2012년 시즌에는 9월 25일부터 팀 성적 부진으로 휴양에 들어갔으며, 감독 대행은 모리와키 히로시가 맡았다.
# 2012년 시즌에 결장한 9경기(7승 2패)는 감독 성적에 포함되지 않는다.
3. 4. 제2기 한신 타이거스 감독 시절 (2023년 ~ 2024년)
2022년 10월 15일, 야노 아키히로의 후임으로 한신 타이거스 감독으로 복귀했다.[227] 등번호는 제1기 감독 시절 및 오릭스 버펄로스 감독 시절과 같은 '''80'''번을 사용했다.[227]2023년, 오야마 유스케를 4번 타자 겸 1루수로, 사토 테루아키를 5번 타자 겸 3루수로 고정 기용하고, 나카노 타쿠무를 2루수로, 키나미 세이야를 유격수로 기용하는 등 선수 기용과 작전에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78] 투수진에서는 무라카미 쇼키와 오타케 코타로를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시키고, 이와사키 스구루를 마무리 투수로 기용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팀은 9월 14일, 18년 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78] 이는 65세 9개월로 센트럴 리그 최연장 우승 감독 기록이었다.[78] 또한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꺾고[79], 일본 시리즈에서 오릭스 버펄로스를 상대로 4승 3패를 기록하며 38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80] 오카다는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한신 타이거스 인물이 되었다.
2024년, 한신 감독 통산 515승을 달성하여 구단 감독 최다 승리 기록을 경신했다.[83] 10월 3일,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퇴임할 것을 발표했고,[84] 10월 6일에 공식적으로 퇴임을 표명했다.[85]
4. 감독 스타일 및 평가
오카다 아키노부는 감독으로서 견실함을 중시하며, 항상 최악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경기를 운영하는 마이너스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228] 후지타 다이라는 이러한 오카다의 팀 운영 능력과 자질을 높이 평가했다.[229]
오카다는 메이저 리그의 확률론에 기반한 세이버메트릭스에 가까운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팀을 구성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세이버메트릭스 관련 서적을 읽은 적이 없으며, 관련 이론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나중의 일이라고 밝혔다. 자신이 실천한 야구가 세이버메트릭스를 활용한 야구와 유사점이 있었다고 언급하며, 세이버메트릭스 전략을 이용한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230]
한신 감독 부임 초기에는 번트가 적었으나 2008년에는 리그 1위를 기록했다. 오카다는 이에 대해 팀 구성원의 변화에 따라 팀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확률을 추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231] 번트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만, 상황에 따른 필요성은 인정한다. 다만 스퀴즈 플레이에 대해서는 타자에게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사인을 내지 않는다고 밝혔다.[232] 2011년 8월 12일 세이부전에서 처음으로 스퀴즈를 성공시켰는데, 이는 한신 감독 시절을 포함해 953경기 만의 일이었다.[233]
오카다는 선수의 컨디션과 상대 팀과의 궁합을 고려하여 타순이나 선발 로테이션을 변경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으며, 벤치 워크가 필요 없는 스타일이 확립된 팀을 최강으로 여긴다. 그는 벤치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1대 0으로 이기는 경기가 가능한 팀의 감독이 이상적이라고 말했다.[234] 2004년 가네모토 도모아키를 4번 타자로 기용한 이후 5년 동안 그의 타순을 변경하지 않았는데,[235] 이는 가네모토가 오카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4번 타자의 모습에 부합했기 때문이다.[236] 투수 분업인 JFK의 확립 또한 오카다의 승리 공식을 중시하는 철학이 반영된 결과이다.
투수가 위기에 몰렸을 때, 다른 감독들과 달리 오카다는 직접 마운드에 올라가는 경우가 드물다. 그는 마운드에 가서 투수나 배터리에게 조언하는 것은 피칭 코치의 역할이며, 감독과 코치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237]
2군 선수 육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 경기가 없는 날에도 2군 구장인 한신 나루오하마 구장을 찾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238] 그는 2군에서 젊은 선수들을 키우고, 팀의 결과를 쌓아가는 감독의 역할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238] 현역 시절 수위 타자를 놓친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 기용에 있어서는 개인 기록을 중시하면서도, 팀 승리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239]
2008년 시즌 막바지에 JFK를 혹사시켰다는 비판에 대해, 오카다는 그들의 피로도를 항상 고려하며 기용했고, 투수들에게는 한 구, 한 이닝이 자신의 연봉과 평가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라고 반박했다.[240][241]
일본 시리즈나 클라이맥스 시리즈와 같은 단기전에서는 시즌 초부터의 팀 이상형을 고집하는 스타일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오카다는 '우승'을 목표로 팀을 구성하지만, 시즌 중에는 '우승'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는 것을 피했다. 2010년 오릭스 감독 재임 당시, 팀이 교류전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우승' 대신 '''그것'''(アレ일본어)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242] 결국 팀은 교류전 우승을 달성했고, '그거 해버렸다'(アレしてもうた일본어)라는 문구가 들어간 기념 상품이 판매되기도 했다.[243] 2022년 한신 감독으로 복귀한 후 가진 취임 기자회견에서도 '우승' 대신 '그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시즌이 끝날 때쯤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244] 그 결과, 2023년 팀 슬로건은 'A.R.E.'(Aim, Respect, Empower)가 되었다.[246]
2010년 센트럴·퍼시픽 교류전에서는 지명 타자 제도를 활용할 수 없는 원정 12경기 중 11경기에서 투수를 8번 타자로 기용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드래프트 회의에서는 지명 중복 시 추첨에서 운이 좋지 않은 편이다. 한신 감독 시절에는 다카하마 다쿠야를 확보한 것을 제외하면 통산 1승 3패를 기록했고,[247] 오릭스 감독 시절인 2010년에는 1순위 지명 추첨에서 3연패를 기록하기도 했다.[248][249] 2022년 한신 감독 복귀 후에도 추첨에서 아사노 쇼고를 놓치는 등 좋지 않은 결과를 보였다.[251]
오릭스 감독 시절에는 주전 포수였던 히다카 다케시의 리드에 대해 여러 차례 비판했다. 2010년에는 히다카의 포수 리드에 의문을 제기하며[252] 세 차례나 2군으로 강등시키기도 했다.
2005년 일본 시리즈에서 한신과 맞붙었던 지바 롯데 마린스의 바비 밸런타인 감독은 오카다를 "10년 전의 나를 보는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노무라 가쓰야는 2006년 시즌 전 오카다의 지휘 방식에 대해 "상당히 별난 지휘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2008년에는 오카다가 선수들에게 사인을 주지 않고 맡긴다는 점을 비판하며 "감독이 할 일을 내팽개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JFK 중간 계투진 구축에 대해서는 "새로운 방정식을 만들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향후 한신의 성적에 따라 오카다가 명감독이 될 그릇인지 판가름 날 것이라고 언급했다.[253] 이에 대해 오카다는 자신의 저서에서 노무라의 평가에 대해 "나름대로 야구에 대한 생각이 있다"라고 반박하며, 노무라와 자신의 생각이 정반대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254]
5. 기타
오카다 아키노부는 '돈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257] 이는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아지노모도의 '혼다시 우동 오뎅 육수' 광고에 출연한 것에서 유래했다.[257] 또 다른 별명은 ‘'''오카'''’이다.[255][256]
좌우명은 '도일관(道一筋)'으로, 주변의 반대에도 자신이 믿는 길을 굳게 밀고 나간다는 의미이다. 이는 오카다의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무라야마 미노루에게서 받은 족자의 영향으로 보인다.[258]
입버릇은 "그야 그렇지"(そらそうよ일본어)이며, 이와 관련된 소주가 발매되기도 했고, 자신의 저서 제목으로도 사용되었다.[259] 또한, 의미를 알기 어려운 '저거'(アレ일본어)를 자주 사용해 아카호시 노리히로가 이를 '번역'하기도 했다.[259]
일본 프로 야구 선수회 회장 시절,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의 의견 불일치, 독립 리그의 장래성 부재 등을 이유로 '1리그 8구단제'를 제안했다.[262] 또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대해서는 144경기라는 긴 시즌의 노력과 가치를 부정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263]
스트레스 해소법으로는 음주, 가라오케, 마술, 닌텐도 DS의 두뇌 트레이닝을 꼽았다.[265] 요시모토 흥업 계열의 개그 프로그램도 즐겨 보았다.[266]
쇼기를 취미로 하며, 일본 쇼기 연맹으로부터 3단 자격증을 취득했다.[267] 랜디 바스와 가와토 고조가 쇼기 상대를 맡았다.
전 축구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 오카다 다케시와는 오사카시 출신, 동성, 와세다 대학 동창, 프로 스포츠 감독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둘 다 한신 팬이다. Sports Graphic Number[268]를 통해 교우 관계를 맺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하세가와 하루히사와도 친분이 있다.[269][270][271]
하라 다쓰노리와는 대학 시절부터 가까운 사이였으며, 서로 휴대폰이나 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272] 오카다가 한신 감독직에서 사임했을 때 하라로부터 격려 메일을 받았고,[272] 오카다 또한 하라가 감독을 사임할 때 조언을 했다.[273]
참조
[1]
웹사이트
Akinobu Okada Named New Manager
https://www.thehansh[...]
2022-10-17
[2]
웹사이트
x.com
https://x.com/npb_re[...]
[3]
서적
阪神タイガース リーグ優勝!プロ野球2023シーズン総括BOOK
コスミック出版
2023-11-12
[4]
웹사이트
【阪神】岡田新監督に広告業界も熱視線 〝アレ〟達成なら「どんでん様」高額ギャラで復活も
https://www.tokyo-sp[...]
2022-11-02
[5]
웹사이트
お笑い芸人と撮った緊張のCM 岡田監督の愛称「どんでん」の謎
https://www.asahi.co[...]
2023-09-13
[6]
웹사이트
便利な「アレ」の正しい使い方 2010年には実際に「アレしてもうた」
https://www.tokyo-np[...]
2022-11-02
[7]
웹사이트
猛虎人国記(39)~大阪府(一) 大阪人唯一の阪神監督 岡田彰布
https://www.sponichi[...]
2012-03-27
[8]
웹사이트
背番号は選手にとっては顔。初めて背負った番号をいかに価値のあるものにするか【岡田彰布のそらそうよ】
https://column.sp.ba[...]
2020-02-01
[9]
웹사이트
岡田監督、1962年もパレード参加していた「幼稚園やなあ。白いブーツで乗った」
https://www.nikkansp[...]
2023-11-24
[10]
문서
幼稚園・小学校時代については、BASEBALL GATE スポーツニッポン、2018年12月16日.【ミナミ語り場】阪神タイガース元監督・岡田彰布さん 旧大阪球場こそ「野球の原点」 小学4年で初めてプレーしたプロの球場
[11]
서적
別冊宝島 プロ野球名選手読本
宝島社
1998
[12]
문서
『阪神タイガース 暗黒ダメ虎史 あのとき虎は弱かった』p.104
[13]
서적
「全国高等学校野球選手権大会70年史」
朝日新聞社編
1989
[14]
간행물
週刊ベースボール 2020年4月27日号 連載「岡田彰布の『そらそうよ』」P.44 - 45
週刊ベースボール
2020-04-27
[15]
웹사이트
“二刀流”を先取りしていた阪神・岡田監督~島田洋七『お笑い“がばい”交遊録』
https://weekly-jitsu[...]
日本ジャーナル出版
2024-02-21
[16]
문서
『オリの中の虎』P159
[17]
웹사이트
【阪神よもやま話 元虎番の独り言】44年前の神宮で見た「3番・原、4番・岡田」の記憶 黄金対決が再び始まった(2/2ページ)
https://www.sanspo.c[...]
2023-04-12
[18]
간행물
週刊サンケイ 1979・12・20号
週刊サンケイ
1979-12-20
[19]
뉴스
朝日新聞1979年10月30日付
朝日新聞
1979-10-30
[20]
뉴스
スポーツニッポン1979年10月30日付。その発言を受けた当日の同紙の一面見出しは「『巨人もOK』岡田」であった。
スポーツニッポン
1979-10-30
[21]
문서
2009年『阪神タイガースオリジナルDVDブック 猛虎列伝』Vol.11
2009
[22]
문서
『阪神タイガース 暗黒ダメ虎史 あのとき虎は弱かった』p.105
[23]
웹사이트
【ドラフト会議物語17】岡田彰布が6球団競合で阪神。2年連続1位の木田勇は日本ハムへ【79年】
https://column.sp.ba[...]
[24]
웹사이트
【虎番疾風録第2章】(50)強運「岡田くじ」的中
https://www.sankei.c[...]
[25]
웹사이트
選手に金儲けさせてやるのも監督の責任
https://column.sp.ba[...]
2016-01-21
[26]
웹사이트
【田所龍一 虎番疾風録 Vol.70】岡田「ヒルトンと勝負してダメというのなら分かるけど…」 (1/2ページ) - zakzak:夕刊フジ公式サイト
https://www.zakzak.c[...]
[27]
서적
『頑固力』
角川SSC新書
2008
[28]
문서
『頑固力』p. 90
[29]
웹사이트
スペシャルインタビュー岡田彰布
https://ykt.sega-onl[...]
[30]
웹사이트
岡田彰布コラム「阪神が2位を死守した場合CSを戦う上で先発の枚数が足りないわな。ベンチの判断に注目や」 - 野球:週刊ベースボールONLINE
https://column.sp.ba[...]
[31]
웹사이트
阪神は巨人に敗れ3連敗 ドラ1森下がOP戦3号も先発西純が5回5失点
https://www.daily.co[...]
株式会社デイリースポーツ
2023-03-22
[32]
웹사이트
阪神・ドラ1森下 岡田超え!OP戦球団新人右打者最多タイ3号 宿敵G撃ち 侍刺激「日本を代表する選手に」
https://www.daily.co[...]
株式会社デイリースポーツ
2023-03-23
[33]
웹사이트
【田所龍一 虎番疾風録 Vol.67】ブレイザー監督と報道陣“対立”のきっかけ 岡田彰布の起用めぐり「お前たちが監督をしてみろ」 (1/2ページ) - zakzak:夕刊フジ公式サイト
https://www.zakzak.c[...]
[34]
간행물
週刊ベースボール1980年6月2日号
週刊ベースボール
1980-06-02
[35]
웹사이트
【1980年】新人・岡田彰布の起用をめぐり大混乱。阪神・ブレイザー監督、途中退団/プロ野球回顧録
https://column.sp.ba[...]
2020-08-20
[36]
뉴스
【虎番疾風録第3章】(33)カミソリ、ゴキブリ、ネズミの死骸…
https://www.sankei.c[...]
[37]
서적
頑固力
[38]
웹사이트
1980年度オールスター・ゲーム 試合結果
https://npb.jp/bis/s[...]
2021-05-29
[39]
뉴스
西武森、予告初球弾 清原以来10代球宴2人目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5-07-19
[40]
웹사이트
阪神ゴールデンルーキー・岡田彰布の2万号は「そらそうよ」だったのか?【1980年8月19日】
https://column.sp.ba[...]
[41]
웹사이트
岡田彰布【後編】初の日本一へ打ち鳴らした号砲/プロ野球1980年代の名選手
https://column.sp.ba[...]
[42]
웹사이트
佐藤輝が阪神では岡田以来41年ぶりの快挙 新人から2年連続2桁本塁打
https://www.daily.co[...]
2022-05-18
[43]
웹사이트
阪神・佐藤輝 田淵&岡田に並んだ 新人から3年連続2桁弾 後半戦復活の兆し「打てるように頑張ります」
https://www.sponichi[...]
2023-07-18
[44]
뉴스
<第18回>吉田さんはイメージと違う腹の据わった監督だった
https://www.nikkan-g[...]
日刊ゲンダイDIGITAL
[45]
Youtube
【阪神祭り開催】阪神OBを回る旅第1弾!岡田彰布さん登場「ぶっちゃけ阪神の監督の話来てるだろ?」慶彦さんいきなりぶっこみます!【プロ野球OB】【阪神タイガース】【広島カープ】 - YouTube
https://www.youtube.[...]
[46]
웹사이트
堅守支えた名参謀 阪神タイガース、天地を行く(2)
https://www.nikkei.c[...]
[47]
웹사이트
【魚拓】【復刻】サード岡田 早くも特訓 1988秋季―岡田彰布監督で振り返る阪神安芸キャンプ(3) | 高知新聞
https://megalodon.jp[...]
[48]
웹사이트
岡田彰布をなぜブレイザー監督が使わなかったか…阪神入団60年・安藤統男の球界見聞録<7>
https://hochi.news/a[...]
2021-04-01
[49]
웹사이트
30年前の熱気よ、もう一度 阪神タイガース、天地を行く(1)
https://www.nikkei.c[...]
[50]
웹사이트
阪神 岡田彰布氏の監督就任を正式発表 2008年以来の復帰
https://www.daily.co[...]
2022-10-15
[51]
웹사이트
「オヤジ、打ったぞ!」岡田、父に捧げる涙の追悼弾(水本義政)
https://www.sankei.c[...]
[52]
웹사이트
【復刻】サード岡田 早くも特訓 1988秋季―岡田彰布監督で振り返る阪神安芸キャンプ(3) | 高知新聞
https://archive.is/A[...]
[53]
서적
阪神タイガース 暗黒ダメ虎史 あのとき虎は弱かった
[54]
서적
頑固力
[55]
뉴스
スポーツニッポン
1992-10-12
[56]
뉴스
スポーツニッポン
1992-10-15
[57]
웹사이트
【10月18日】1993年(平5) 自分で作ってFA第1号?岡田彰布 さらば阪神タイガース
https://www.sponichi[...]
[58]
뉴스
野球 日めくりプロ野球10年1月
https://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スポニチアネックス
[59]
Youtube
【岡田彰布引退試合】プレイバックORIX~1996.3.26 オリックスvs.阪神~
https://www.youtube.[...]
YouTube
2020-08-16
[60]
Youtube
【ドラフト裏話】6球団から指名された岡田さん「一番厄介だった球団は〇〇でした…」【プロ野球OB】【阪神タイガース】【広島カープ】 - YouTube
https://www.youtube.[...]
[61]
웹사이트
岡田監督、「星野流」と決別…異質の激しさ示した
https://www.sanspo.c[...]
[62]
웹사이트
1・3塁のベースコーチを入れ替えるドラゴンズの狙い…OBの大西崇之さんが語った「3塁コーチの極意」
https://www.fnn.jp/a[...]
FUNプライムオンライン
2021-02-15
[63]
웹사이트
岡田次期監督なら鉄壁の虎 第2のJFK&強固なセンターライン確立か 番記者が占う心の内
https://www.daily.co[...]
2022-10-05
[64]
뉴스
「過去いないセ日本人監督シーズン二度」
http://osaka.nikkans[...]
日刊スポーツ
[65]
서적
Ori no naka no tora : aisuru taigāsu e saigo ni hoeru
Bēsubōrumagajinsha
2009
[66]
뉴스
オリ監督内定岡田氏、モノ言う監督になる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09-10-02
[67]
뉴스
非常事態に岡田監督“兼任”投手コーチ
https://www.nikkansp[...]
[68]
뉴스
岡田監督「サッカー関係者が怒りよるよ」
https://www.nikkansp[...]
[69]
웹사이트
岡田監督「絶対はないけど絶対優勝する」
http://www.daily.co.[...]
デイリースポーツ
2011-12-16
[70]
웹사이트
岡田彰布監督任期満了のお知らせ
https://www.buffaloe[...]
オリックス・バファローズ
2012-09-22
[71]
뉴스
独占告白 敗軍の将おおいにボヤく 岡田彰布反省------選手は「監督が怖い」といって離れていった
https://gendai.media[...]
[72]
웹사이트
岡田監督、高代ヘッドコーチ休養のお知らせ
https://www.buffaloe[...]
2012-09-25
[73]
웹사이트
岡田彰布氏 阪神は最初の2カードをどう取っていけるかがポイント
https://www.daily.co[...]
2021-08-13
[74]
웹사이트
阪神次期監督・岡田彰布氏で“すんなり決定”にはならない「特殊球団」と在阪メディアの事情
https://www.nikkan-g[...]
2022-06-30
[75]
웹사이트
「次期監督を報じたら取材拒否」 阪神の“メディア圧力通達”を入手
https://bunshun.jp/a[...]
2022-09-20
[76]
웹사이트
草茂みベースボールの道白し〈阪神・岡田新監督有力〉ポスト矢野が残り3試合になるまで全く報道されなかった理由は コロナ禍のメディア統制が示す野球界の未来
https://number.bunsh[...]
2022-09-27
[77]
웹사이트
阪神、岡田彰布氏の監督就任発表 15年ぶり復帰
https://www.nikkei.c[...]
2022-10-15
[78]
웹사이트
【阪神】65歳岡田監督、セ最年長監督V 同一球団監督では最長ブランク/歴代年度別成績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新聞社
2023-09-14
[79]
웹사이트
岡田阪神、3連倒で決めた!9年ぶり日本S 次は38年ぶり日本一や「もうひとつ上のステージで勝ち上がれるよう、がんばる」
https://www.sanspo.c[...]
2023-10-21
[80]
웹사이트
阪神、38年ぶり2度目の日本一 ノイジー2試合連続アーチで決めた
https://www.asahi.co[...]
2023-11-05
[81]
웹사이트
【阪神】平田勝男ヘッド、64歳!ビールかけ「宴も竹中直人」「おつかれ生です」親父ギャグで中締め
https://hochi.news/a[...]
2023-11-06
[82]
웹사이트
【阪神】森下翔太が岡田監督「再教育」に応えた 日本S初打点の右前2点適時打「絶対つなごう」
https://www.nikkansp[...]
2023-11-01
[83]
웹사이트
阪神、佐藤輝のタイムリーで逆転勝ち、岡田監督は阪神歴代1位の515勝目
https://www.sanspo.c[...]
2024-07-06
[84]
웹사이트
【阪神】岡田彰布監督が今季限りで退任 球団は功績評価し何らかのポスト用意へ 後任有力候補は藤川球児氏
https://hochi.news/a[...]
2024-10-02
[85]
뉴스
【阪神】岡田彰布監督が退任を表明 甲子園での練習前にナイン、スタッフ集めて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24-10-06
[86]
뉴스
【阪神】岡田監督が全体練習欠席 風邪で前日に病院受診、自宅で療養も電話では元気な声
https://www.nikkansp[...]
2024-10-09
[87]
뉴스
【阪神】岡田彰布監督が体調不良で全体練習欠席、自宅静養 球団関係者「普通に風邪。電話で声は元気」
https://hochi.news/a[...]
2024-10-09
[88]
뉴스
なぜ、阪神・岡田監督のファンへの『最後のあいさつ』はなかったのか!?…“体調不良”は実際、少し違っていたようで
https://www.chunichi[...]
2024-10-16
[89]
웹사이트
【阪神】岡田監督、体調不良でファンへのあいさつなし 体調考慮しオーナー報告も実施せず
https://www.nikkansp[...]
2024-10-13
[90]
웹사이트
阪神終戦 岡田彰布監督ありがとう 最後まで苦言、苦言… 近く正式発表の藤川球児新監督へ〝宿題〟託す
https://www.sanspo.c[...]
2024-10-14
[91]
뉴스
【阪神】岡田彰布さん元気だった!退任後初めて報道陣の前に 藤川球児監督ともバッタリ、笑顔
https://www.nikkansp[...]
2024-10-28
[92]
뉴스
阪神・岡田彰布前監督、甲子園に来た 藤川新監督と笑顔であいさつ 退任後初めて元気な姿を披露
https://www.sanspo.c[...]
2024-10-29
[93]
웹사이트
阪神・岡田前監督が「オーナー付顧問」として3年契約、近く秋季安芸キャンプ視察も - スポニチ Sponichi Annex 野球
https://www.sponichi[...]
2024-11-06
[94]
Youtube
【伝説のバックスクリーン3連発‼】岡田彰布が語る至極の打撃理論【マサNOTE】
https://www.youtube.[...]
YouTube
2023-04-26
[95]
웹사이트
【内田雅也の追球】得点増への阪神・岡田監督の「考え方」 狙い球を絞り四球を増やす
https://www.sponichi[...]
2022-10-29
[96]
웹사이트
猛虎打線の一人【岡田彰布】は人望も厚く、関西に期待された人物だった。
https://middle-edge.[...]
2016-11-25
[97]
웹사이트
阪神・岡田彰布監督が佐藤輝明へ贈る 打撃の神様・川上哲治氏の格言「ヒット1本、フォアボール1個で首位打者やで」 ノッてる5月、さらに加速させる!
https://www.sanspo.c[...]
[98]
서적
頑固力
[99]
웹사이트
【藤田平氏の眼】阪神・岡田監督の優れた「先を読む力」と選手へ配慮する「柔軟性」
https://www.daily.co[...]
2022-10-25
[100]
서적
頑固力
[101]
서적
頑固力
[102]
서적
頑固力
[103]
웹사이트
オリ・岡田監督、監督生活初の『スクイズ成功』
http://www.iza.ne.jp[...]
2011-08-12
[104]
서적
頑固力
[105]
웹사이트
金本知憲 またまた吠えた!アニキ「爆弾講演会」をレポート(3)岡田監督は魅力的だった?
https://www.asagei.c[...]
[106]
서적
頑固力
[107]
서적
頑固力
[108]
서적
頑固力
[109]
서적
頑固力
[110]
서적
頑固力
[111]
웹사이트
【阪神】岡田監督「最初から打っていいて言ってた」早めの好球必打で新井カープ撃破
https://www.nikkansp[...]
2023-10-18
[112]
웹사이트
不動の阪神、「一番大事なところで出た」 3連勝で9年ぶり日本Sへ
https://www.asahi.co[...]
2023-10-21
[113]
웹사이트
「待球をする、ボール球を振らない」CSでも炸裂した“岡田野球”に解説陣も脱帽
https://baseballking[...]
2023-10-21
[114]
웹사이트
《発掘秘話》阪神・岡田彰布監督が「優勝」ではなく「アレ」と言い続けた“納得の理由”
https://bunshun.jp/a[...]
2023-09-14
[115]
뉴스
中日スポーツ
2010-06-13
[116]
웹사이트
【オリックス】アレTシャツ発売へ
https://www.nikkansp[...]
2010-06-18
[117]
웹사이트
【阪神】岡田彰布新監督いきなり出た「アレ」発言「はっきり『優勝します』とかよう言わない」
https://www.nikkansp[...]
2022-10-16
[118]
웹사이트
岡田阪神“アレ”はや浸透 テルが岩崎が呼応、ファン「流行語が決まった」「アカン阪神アレしてまう」
https://www.daily.co[...]
2022-10-24
[119]
웹사이트
阪神新スローガン、そらAREよ “岡田の考え”反映「まあアレアレって言ってるから(笑)」
https://www.daily.co[...]
2022-12-18
[120]
웹사이트
優勝目前の阪神、飛び交う言葉は「アレ」ばかり……いったいなぜ?
https://www.asahi.co[...]
2023-09-13
[121]
웹사이트
阪神の「アレ」、テレビも知事も 苦い歴史「優勝」は禁句
https://www.nikkei.c[...]
2023-09-14
[122]
웹사이트
新語・流行語大賞「アレ(A.R.E.)」英語各文字には意味が…阪神・岡田監督「嫁さんが考えた。すごいなと」
https://hochi.news/a[...]
2023-12-01
[123]
뉴스
岡田監督、運悪い?ドラフトくじ引き役“白紙”…オリックス
スポーツ報知
2010-10-16
[124]
뉴스
岡田監督、まさかの3連敗=オリックス-プロ野球ドラフト
時事ドットコム
2010-10-28
[125]
웹사이트
岡田監督史上初の3連敗…「大失敗よ」
https://web.archive.[...]
2010-10-29
[126]
웹사이트
オリ岡田監督、くじ4連敗…/ドラフト
https://www.nikkansp[...]
2011-10-28
[127]
웹사이트
【ドラフト】阪神・岡田彰布監督の「右」は不発 くじ6連敗で高松商・浅野翔吾の交渉権逃す
https://hochi.news/a[...]
2022-10-20
[128]
서적
あぁ、阪神タイガース
[129]
서적
頑固力
[130]
Youtube
【阪神昔ばなし特別編 その32】ゲスト岡田彰布さん!!
https://www.youtube.[...]
[131]
Youtube
【阪神優勝】1985年開幕投手に選ばれた親さんを襲った悲劇とは?【広島カープ達川光男さん】【慶彦ごめんなさいシリーズ】【高橋慶彦】【池田親興】
https://www.youtube.[...]
[132]
웹사이트
「期待してもらって結構です」阪神・次期監督岡田彰布氏の“どんでん語録”がチャーミングすぎる! 優勝のカギは“通訳者”の有無か
https://www.jprime.j[...]
2022-10-07
[133]
웹사이트
味の素、厳選原料で「ほんだし関西名物うどんおでんだし」など8月21日から発売
https://news.nissyok[...]
1996-07-19
[134]
웹사이트
「アレ」で流行語大賞の阪神・岡田監督 1月1日から座右の銘を変更 「道一筋」から「球道一筋」に「憧れの村山さんにあやかって」
https://www.daily.co[...]
2023-12-01
[135]
뉴스
デイリースポーツ
2005-11-18
[136]
웹사이트
元阪神・赤星氏“岡田語”に冷や汗だった…「何言ってるか分からないことも」
https://news.livedoo[...]
デイリースポーツ
2013-08-06
[137]
뉴스
デイリースポーツ
2005-10-01
[138]
뉴스
日刊スポーツ
2010-06-13
[139]
웹사이트
「阪神のARE=アレ」と「おーん、そらそうよ」寛大な関西人・岡田彰布監督は「審判への抗議」も公益のため…一流の野球人なワケ (2/4ページ)
https://number.bunsh[...]
2023-09-15
[140]
웹사이트
「阪神のARE=アレ」と「おーん、そらそうよ」寛大な関西人・岡田彰布監督は「審判への抗議」も公益のため…一流の野球人なワケ (3/4ページ)
https://number.bunsh[...]
2023-09-15
[141]
웹사이트
阪神 岡田彰布監督の「おーん」が相手を魅了 英語教育学者が読む
https://www.asahi.co[...]
2023-09-23
[142]
서적
オリの中の虎 愛するタイガースへ最後に吠える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2009
[143]
문서
『頑固力』pp. 151 - 152
[144]
문서
『頑固力』pp. 153 - 154. もっとも同書の別の箇所では阪神が今後「他球団でそこそこの数字を残し、日本の野球に対応できる可能性を秘めた外国人を、獲得していくのが賢明」(p. 169)と記しており、長期的な球界改革案とは違う考えを示している。
[145]
문서
『頑固力』pp. 159 - 161
[146]
웹사이트
【阪神】開幕惨敗…岡田監督を襲った東京ドームの〝変化〟「ええ!使えないってどういうことや!」
https://www.tokyo-sp[...]
2024-03-30
[147]
문서
『頑固力』pp. 156 - 157
[148]
웹사이트
【内田雅也の追球】阪神・岡田監督にとって3月3日は“考える”原点を思い返す日
https://www.sponichi[...]
2023-03-04
[149]
간행물
雑誌「週刊ベースボール」(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刊)2008年6月30日号20-23ページ「5年目岡田野球の変貌」
[150]
문서
『頑固力』p. 95
[151]
뉴스
【『アレ』頼んまっせ】月亭八光、阪神・岡田監督にお願い 熱狂的虎党である親父・八方の「3回目の涙」頼んます
https://www.sanspo.c[...]
サンケイスポーツ
2022-11-22
[152]
뉴스
前田日明のケンカ武勇伝「電車でヤンキーの顔に蹴り」「猪木に初対面で目突き」
https://smart-flash.[...]
SmartFLASH
2021-05-03
[153]
뉴스
『デイリースポーツ』2007年3月9日付「ブッチャー 旧友岡田監督に毒針エール」
[154]
웹사이트
吉田拓郎は今の阪神・岡田監督を見てどう思っているのだろう【24】
https://www.daily.co[...]
株式会社デイリースポーツ
2023-09-11
[155]
간행물
2009年6月4日号、通巻729号。
[156]
뉴스
阪神の前監督・岡田氏“同級生”岡田監督を応援
https://web.archive.[...]
スポーツニッポン
2009-05-28
[157]
뉴스
[[中日スポーツ]]2010年6月16日
[158]
웹사이트
“素の岡田彰布”でやってくれ 早大野球部同級生・宇佐美秀文氏「僕、岡田に強いんです」
https://www.daily.co[...]
株式会社デイリースポーツ
2022-12-11
[159]
웹사이트
【阪神】岡田彰布監督が地元・西宮で爆笑トーク「期日前投票に来ました」「マイナンバーも取りに来た」報告会に出席
https://hochi.news/a[...]
2023-11-27
[160]
웹사이트
阪神・岡田彰布監督の「アレ」とは…「パインアメ」とは
https://www.sanspo.c[...]
株式会社サンケイスポーツ
2023-09-14
[161]
웹사이트
阪神タイガース×パインアメ コラボの『パインアレ』販売について
https://hanshintiger[...]
2023-10-10
[162]
웹사이트
オリックス岡田監督が通算400勝
https://www.sponichi[...]
2010-03-31
[163]
웹사이트
岡田監督500勝 長男の前で史上28人目
https://www.nikkansp[...]
2011-08-08
[164]
웹사이트
【阪神】DeNAに並んだ!逆転勝ちで21日ぶり首位 岡田彰布監督通算600勝
https://www.nikkansp[...]
2023-05-13
[165]
웹사이트
【阪神】岡田彰布監督が史上20人目の監督通算700勝 近本光司外す大ナタに打線応えて8点大勝
https://hochi.news/a[...]
2024-06-28
[166]
웹사이트
【阪神】岡田監督が虎監督通算500勝!才木浩人に“伝言”送りV押し出し四球 藤本定義氏まで14勝
https://www.nikkansp[...]
2024-05-19
[167]
웹사이트
阪神に反発力あり!! 先制された試合で15試合ぶり逆転勝ち 岡田監督は球団単独最多515勝到達
https://www.sponichi[...]
2024-07-06
[168]
웹사이트
大谷翔平、「Yahoo!検索大賞2023」でW受賞 俳優部門1位は山田裕貴
https://news.mynavi.[...]
マイナビ
2023-12-05
[169]
웹사이트
頑固力 〜ブレないリーダー哲学
https://www.kadokawa[...]
null
[170]
웹사이트
動くが負け 〜0勝144敗から考える監督論
https://www.gentosha[...]
null
[171]
웹사이트
なぜ阪神はV字回復したのか?
https://www.kadokawa[...]
null
[172]
웹사이트
そら、そうよ 勝つ理由、負ける理由
https://tkj.jp/book/[...]
null
[173]
웹사이트
プロ野球構造改革論
https://tkj.jp/book/[...]
null
[174]
웹사이트
金本・阪神 猛虎復活の処方箋論
https://tkj.jp/book/[...]
null
[175]
웹사이트
なぜ阪神は勝てないのか? 〜タイガース再建への提言
https://www.kadokawa[...]
null
[176]
웹사이트
プロ野球史上最高の選手は誰だ? レジェンドOBが選ぶ「実力ナンバーワン」決定戦
https://tkj.jp/book/[...]
null
[177]
웹인용
猛虎人国記(39)~大阪府(一) 大阪人唯一の阪神監督 岡田彰布
http://www.sponichi.[...]
2012-03-27
[178]
웹인용
背番号は選手にとっては顔。初めて背負った番号をいかに価値のあるものにするか【岡田彰布のそらそうよ】
https://column.sp.ba[...]
슈칸 베이스볼 ONLINE
2020-02-01
[179]
문서
유치원·초등학교 시절에 대해서는 Baseball Gate 内田雅也が行く 猛虎の地<13>玉造公園 ◇岡田少年を育てたブランコと塀
https://baseballgate[...]
20200203214750
[180]
서적
《오릭스 안의 호랑이》
[181]
서적
《별책 다카라지마 - 프로 야구 명선수 독본》
다카라지마샤
1998
[182]
서적
『阪神タイガース 暗黒ダメ虎史 あのとき虎は弱かった』
[183]
서적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70년사》
아사히 신문사
1989
[184]
간행물
岡田彰布の『そらそうよ』
슈칸 베이스볼
2020-04-27
[185]
서적
《오릭스 안의 호랑이》
[186]
뉴스
아사히 신문
아사히 신문
1979-10-30
[187]
뉴스
스포츠 닛폰 1979년 10월 30일자 내용이다. 그 발언을 취재한 같은 날 스포츠 닛폰의 1면 머릿기사 제목은 ‘“요미우리도 OK” 오카다’였다.
스포츠 닛폰
1979-10-30
[188]
기타
2009년 ‘한신 타이거스 오리지널 DVD북 맹호 열전’ Vol.11
2009
[189]
웹사이트
【ドラフト会議物語17】岡田彰布が6球団競合で阪神。2年連続1位の木田勇は日本ハムへ【79年】
http://column.sp.bas[...]
슈칸 베이스볼 온라인
2017-09-16
[190]
뉴스
【虎番疾風録第2章】(50)強運「岡田くじ」的中
https://www.sankei.c[...]
산케이 신문
2019-03-19
[191]
서적
《완고력》
가도카와 SSC 신서
2008
[192]
서적
《완고력》
[193]
웹사이트
岡田彰布コラム「阪神が2位を死守した場合CSを戦う上で先発の枚数が足りないわな。ベンチの判断に注目や」
https://column.sp.ba[...]
슈칸 베이스볼 ONLINE
2017-09-29
[194]
간행물
《슈칸 베이스볼》
1980-06-02
[195]
웹사이트
昭和55年5月15日 阪神 ブレイザー監督を解任
http://showa.mainich[...]
‘쇼와 마이니치’, 마이니치 신문
[196]
웹인용
【1980年】新人・岡田彰布の起用をめぐり大混乱。阪神・ブレイザー監督、途中退団/プロ野球回顧録
https://column.sp.ba[...]
슈칸 베이스볼 ONLINE
2020-08-20
[197]
뉴스
【虎番疾風録第3章】(33)カミソリ、ゴキブリ、ネズミの死骸…
https://www.sankei.c[...]
산케이 신문
2019-08-06
[198]
서적
《완고력》
[199]
웹인용
1980年度オールスター・ゲーム 試合結果
https://npb.jp/bis/s[...]
일본 야구 기구
null
[200]
웹사이트
西武森、予告初球弾 清原以来10代球宴2人目
http://www.nikkanspo[...]
닛칸 스포츠
2015-07-19
[201]
웹사이트
岡田彰布【後編】初の日本一へ打ち鳴らした号砲/プロ野球1980年代の名選手
http://column.sp.bas[...]
슈칸 베이스볼 온라인
2018-10-26
[202]
웹사이트
<第18回>吉田さんはイメージと違う腹の据わった監督だった
https://www.nikkan-g[...]
[203]
Youtube
【阪神祭り開催】阪神OBを回る旅第1弾!岡田彰布さん登場「ぶっちゃけ阪神の監督の話来てるだろ?」慶彦さんいきなりぶっこみます!【プロ野球OB】【阪神タイガース】【広島カープ】
https://www.youtube.[...]
[204]
뉴스
堅守支えた名参謀 阪神タイガース、天地を行く(2)
https://www.nikkei.c[...]
니혼케이자이 신문
2015-02-18
[205]
웹인용
岡田彰布をなぜブレイザー監督が使わなかったか…阪神入団60年・安藤統男の球界見聞録<7>
https://hochi.news/a[...]
스포츠 호치
2021-04-01
[206]
뉴스
30年前の熱気よ、もう一度 阪神タイガース、天地を行く(1)
https://www.nikkei.c[...]
니혼케이자이 신문
2015-02-17
[207]
웹인용
阪神 岡田彰布氏の監督就任を正式発表 2008年以来の復帰
https://www.daily.co[...]
데일리 스포츠 online
2022-10-15
[208]
뉴스
「オヤジ、打ったぞ!」岡田、父に捧げる涙の追悼弾(水本義政)
https://www.sankei.c[...]
산케이 신문
2013-03-27
[209]
서적
『阪神タイガース 暗黒ダメ虎史 あのとき虎は弱かった』
[210]
서적
《완고력》
[211]
뉴스
【10月18日】1993年(平5) 自分で作ってFA第1号?岡田彰布 さらば阪神タイガース
https://www.sponichi[...]
스포니치
2010-10-01
[212]
뉴스
【1月28日】1994年(平6) キャンプイン4日前 岡田彰布“復帰”決定
https://www.sponichi[...]
스포츠 닛폰
2010-01-01
[213]
Youtube
【岡田彰布引退試合】プレイバックORIX~1996.3.26 オリックスvs.阪神~
https://www.youtube.[...]
2021-09-25
[214]
뉴스
岡田監督、「星野流」と決別…異質の激しさ示した
https://www.sanspo.c[...]
산케이 스포츠
2016-06-22
[215]
웹인용
岡田次期監督なら鉄壁の虎 第2のJFK&強固なセンターライン確立か 番記者が占う心の内
https://www.daily.co[...]
데일리 스포츠
2022-10-05
[216]
뉴스
オリ監督内定岡田氏、モノ言う監督になる
http://www.nikkanspo[...]
닛칸 스포츠
2009-10-02
[217]
뉴스
석간 후지
2010-03-05
[218]
뉴스
非常事態に岡田監督“兼任”投手コーチ
http://www.nikkanspo[...]
닛칸 스포츠
2010-06-09
[219]
뉴스
岡田監督「サッカー関係者が怒りよるよ」
http://www.nikkanspo[...]
닛칸 스포츠
2011-11-12
[220]
뉴스
岡田監督「絶対はないけど絶対優勝する」
데일리 스포츠
2011-12-16
[221]
웹사이트
岡田彰布監督任期満了のお知らせ
http://www.buffaloes[...]
2012-09-22
[222]
웹사이트
岡田監督、高代ヘッドコーチ休養のお知らせ
http://www.buffaloes[...]
2012-09-25
[223]
웹인용
岡田彰布氏 阪神は最初の2カードをどう取っていけるかがポイント
https://www.daily.co[...]
데일리 스포츠
2021-08-13
[224]
뉴스
阪神次期監督・岡田彰布氏で“すんなり決定”にはならない「特殊球団」と在阪メディアの事情
https://www.nikkan-g[...]
2022-06-30
[225]
뉴스
「次期監督を報じたら取材拒否」 阪神の“メディア圧力通達”を入手
https://bunshun.jp/a[...]
2022-09-20
[226]
뉴스
草茂みベースボールの道白し〈阪神・岡田新監督有力〉ポスト矢野が残り3試合になるまで全く報道されなかった理由は コロナ禍のメディア統制が示す野球界の未来
https://number.bunsh[...]
2022-09-27
[227]
뉴스
阪神、岡田彰布氏の監督就任発表 15年ぶり復帰
https://www.nikkei.c[...]
2022-10-15
[228]
서적
완고력
[229]
웹인용
【藤田平氏の眼】阪神・岡田監督の優れた「先を読む力」と選手へ配慮する「柔軟性」
https://www.daily.co[...]
데일리 스포츠 online
2022-10-25
[230]
서적
완고력
[231]
서적
완고력
[232]
서적
완고력
[233]
뉴스
オリ・岡田監督、監督生活初の『スクイズ成功』
iza
2011-08-12
[234]
서적
완고력
[235]
뉴스
金本知憲 またまた吠えた!アニキ「爆弾講演会」をレポート(3)岡田監督は魅力的だった?
https://www.asagei.c[...]
아사게이 플러스
2014-04-10
[236]
서적
완고력
[237]
서적
완고력
[238]
서적
완고력
[239]
서적
완고력
[240]
서적
완고력
[241]
서적
완고력
[242]
뉴스
주니치 스포츠
2010-06-13
[243]
뉴스
【オリックス】アレTシャツ発売へ
http://www.nikkanspo[...]
닛칸 스포츠
2010-06-18
[244]
뉴스
【阪神】岡田彰布新監督いきなり出た「アレ」発言「はっきり『優勝します』とかよう言わない」
https://www.nikkansp[...]
2022-10-16
[245]
뉴스
岡田阪神“アレ”はや浸透 テルが岩崎が呼応、ファン「流行語が決まった」「アカン阪神アレしてまう」
https://www.daily.co[...]
2022-10-24
[246]
웹인용
阪神新スローガン、そらAREよ “岡田の考え”反映「まあアレアレって言ってるから(笑)」
https://news.yahoo.c[...]
2022-12-18
[247]
뉴스
岡田監督、運悪い?ドラフトくじ引き役“白紙”…オリックス
스포츠 호치
2010-10-16
[248]
뉴스
岡田監督、まさかの3連敗=オリックス-プロ野球ドラフト
지지 통신
2010-10-28
[249]
뉴스
‘岡田監督史上初の3連敗…「大失敗よ」’
스포츠 닛폰
2010-10-29
[250]
뉴스
オリ岡田監督、くじ4連敗…/ドラフト
https://www.nikkansp[...]
2011-10-28
[251]
뉴스
【ドラフト】阪神・岡田彰布監督の「右」は不発 くじ6連敗で高松商・浅野翔吾の交渉権逃す
https://hochi.news/a[...]
2022-10-20
[252]
뉴스
独占告白 敗軍の将おおいにボヤく 岡田彰布反省------選手は「監督が怖い」といって離れていった
http://gendai.ismedi[...]
슈칸 겐다이
2012-11-09
[253]
문서
노무라는 이와 같은 선수 주도 방식을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부르면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의 영향일 가능성도 있다고 기술했다(《아아, 한신 타이거스: 패한 이유, 이긴 이유》 p.178-184).
[254]
문서
《완고력》 p.132, 용병술면에서는 견해를 달리한 두 사람이지만 오카다가 “한신은 요미우리한테만 이기면 된다”는 식의 생각에 위화감을 느꼈다(《완고력》 p.72-73)라고 기술했듯이 노무라도 《아아, 한신 타이거스》에서 같은 의견을 드러냈다.
[255]
Youtube
【阪神昔ばなし特別編 その32】ゲスト岡田彰布さん!!
https://www.youtube.[...]
[256]
Youtube
【阪神優勝】1985年開幕投手に選ばれた親さんを襲った悲劇とは?【広島カープ達川光男さん】【慶彦ごめんなさいシリーズ】【高橋慶彦】【池田親興】
https://www.youtube.[...]
[257]
웹인용
「期待してもらって結構です」阪神・次期監督岡田彰布氏の“どんでん語録”がチャーミングすぎる! 優勝のカギは“通訳者”の有無か
https://www.jprime.j[...]
2022-11-08
[258]
뉴스
데일리 스포츠
2005-11-18
[259]
뉴스
元阪神・赤星氏“岡田語”に冷や汗だった…「何言ってるか分からないことも」
http://news.livedoor[...]
데일리 스포츠
2013-08-06
[260]
뉴스
데일리 스포츠
2005-10-01
[261]
뉴스
닛칸 스포츠
2010-06-13
[262]
서적
オリの中の虎 愛するタイガースへ最後に吠える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2009
[263]
문서
《완고력》 p.151-152
[264]
문서
《완고력》 p.153-154, 그러나 같은 저서의 다른 대목에서는 한신은 추후 “타 구단에서 뚜렷할 만한 기록을 남겼고 일본 야구에 대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된 외국인 선수를 확보해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p.169)라고 기술하는 등 장기적인 야구계 개혁안과는 다른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265]
문서
《완고력》 p.159-161
[266]
문서
《완고력》 p.156-157
[267]
간행물
잡지 《슈칸 베이스볼》(베이스볼 매거진사), 2008년 6월 30일자, p.20 ~ 23, ‘5년째 오카다 야구의 변모’
[268]
간행물
《Sports Graphic Number》 2009년 6월 4일자, 통권 729호
[269]
문서
2009년 5월 27일 일본 -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칠레]]전에서는 아키노부가 경기가 열리는 장소인 [[나가이 육상 경기장]]을 방문하여 하세가와와 함께 다케시가 지휘를 맡은 일본 대표팀을 응원했다.
[270]
뉴스
阪神の前監督・岡田氏“同級生”岡田監督を応援
http://www.sponichi.[...]
스포츠 닛폰
2009-05-28
[271]
뉴스
주니치 스포츠
2010-06-16
[272]
간행물
2008년 11월 16일 방송 《SUPER 우루구스》 - ‘독점고백 한신 오카다 전 감독 사임의 진상’
[273]
문서
《완고력》 p.73
[274]
웹인용
オリックス岡田監督が通算400勝
https://www.sponichi[...]
2010-03-31
[275]
웹인용
岡田監督500勝 長男の前で史上28人目
https://www.nikkansp[...]
2011-08-08
[276]
웹인용
【阪神】DeNAに並んだ!逆転勝ちで21日ぶり首位 岡田彰布監督通算600勝
https://www.nikkansp[...]
2023-05-13
[277]
웹인용
【阪神】岡田彰布監督が史上20人目の監督通算700勝 近本光司外す大ナタに打線応えて8点大勝
https://hochi.news/a[...]
2024-06-28
[278]
웹인용
【阪神】岡田監督が虎監督通算500勝!才木浩人に“伝言”送りV押し出し四球 藤本定義氏まで14勝
https://www.nikkansp[...]
2024-05-19
[279]
웹인용
阪神に反発力あり!! 先制された試合で15試合ぶり逆転勝ち 岡田監督は球団単独最多515勝到達
https://www.sponichi[...]
2024-07-0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