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나쓰 유타카
1. 개요
에나쓰 유타카는 1948년 나라현에서 태어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다. 한신 타이거스, 난카이 호크스, 히로시마 도요 카프, 닛폰햄 파이터스,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1968년 최우수 선수, 1979년과 1981년에 MVP를 수상했다. 1973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연장전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고, 1971년 올스타전에서는 9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했다. 통산 200승을 기록했으며, 메이저 리그에도 도전했으나 마이너 계약을 거절하고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가, 평론가, 배우 등으로 활동했으나, 각성제 소지 혐의로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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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에나쓰 유타카 |
|---|---|
| 원어 이름 | 江夏 豊 |
| 로마자 표기 | Enatsu Yutaka |
| 출생일 | 1948년 5월 15일 |
| 출생지 | 나라현 |
| 신장 | 179cm |
| 체중 | 90kg |
| 포지션 | 투수 |
| 투구 | 좌투 |
| 타석 | 좌타 |
| 고등학교 | 오사카가쿠인대학 고등학교 |
|---|---|
| 프로 입단 | 1966년 |
| 드래프트 순위 | 1차 드래프트 1위 |
| 소속 구단 | 한신 타이거스 (1967년 ~ 1975년) 난카이 호크스 (1976년 ~ 1977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78년 ~ 1980년) 닛폰햄 파이터스 (1981년 ~ 1983년) 세이부 라이온스 (1984년) |
| 첫 출장 | 1967년 4월 13일 |
| 마지막 출장 | 1984년 7월 12일 |
| 수상 | 1979년 센트럴 리그 MVP 1981년 퍼시픽 리그 MVP |
|---|
| 리그 | 일본 프로 야구 |
|---|---|
| 승-패 기록 | 206승 158패 |
| 세이브 | 193 |
| 평균 자책점 | 2.49 |
| 탈삼진 | 2,987 |
-
난카이 호크스 선수 -
후쿠시 히로아키
후쿠시 히로아키는 일본 프로 야구와 KBO 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하며 1980년 일본 최고 승률, 1983년 KBO 리그 30승 및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으나, 은퇴 후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되는 불운을 겪은 일본 돗토리현 출신 야구 선수이자 코치이다. -
난카이 호크스 선수 -
고바 다케시
고바 다케시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 출신 감독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 시절 팀을 리그 우승 4회, 일본 시리즈 우승 3회로 이끌었으며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명장이다. -
나라현 출신 야구 선수 -
마이클 나카무라
마이클 나카무라는 호주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메이저 리그와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으며, 2006년 퍼시픽 리그 최다 세이브 투수를 기록하고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으며, 이후 호주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했다. -
나라현 출신 야구 선수 -
미우라 다이스케
미우라 다이스케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에서 투수로 활약하며 172승을 기록했고, 감독으로서 팀을 일본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
닛폰햄 파이터스 선수 -
장훈
장훈은 일본 히로시마 출신의 재일 한국인 야구 선수이자 해설가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최다 안타 기록과 3,000안타-500홈런-300도루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보유했으며, 은퇴 후에는 해설가로 활동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
닛폰햄 파이터스 선수 -
기무라 다쿠야 (야구인)
기무라 다쿠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포지션을 가리지 않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였으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나, 2009년 은퇴 후 코치로 활동하다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했다.
2. 경력
에나쓰는 1966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한신 타이거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도에이 플라이어스, 한큐 브레이브스 등 4개 구단에서 1순위 지명을 받았다. 경합 추첨 결과 한신에 입단했으며, 입단 초기에는 등번호 71번을 착용했지만, 이후 28번으로 변경했다.
에나쓰는 프로 선수 시절 여러 팀을 거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 [[한신 타이거스]] (1967-1975): 1967년 신인으로 빠른 공을 주무기로 삼아 시즌 225개의 최다 탈삼진을 기록했다. 1968년에는 투수 코치 하야시 기이치의 도움으로 투구 폼을 교정받고 변화구를 익혀 컨트롤과 구종을 넓혔다. 그해 9월 17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이나오 가즈히사의 일본 기록(354개)을 경신하고, 시즌 최종 401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1971년 올스타전에서 9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했고, 1973년 8월 30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초유의 연장전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다승왕(1968년, 1973년), 최우수 평균 자책점(1969년), 최우수 투수(1968년), 사와무라 에이지상(1968년) 등 투수 부문 타이틀을 차지했다. 1973년 시즌 후 가네다 마사야스 감독과의 불화로 팀을 떠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난카이 호크스]] (1976-1977): 1976년 1월 28일, 에모토 다케노리 등과의 맞트레이드로 난카이에 이적했다. 선수 겸 감독 노무라 가쓰야에게 야구를 배웠다. 1976년에는 혈행장애와 심장질환으로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1977년 6월 노무라 가쓰야 감독의 설득으로 구원 투수로 전향, 19세이브를 기록하며 최우수 구원 투수에 등극했다.
*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78-1980): 1977년 12월 22일, 현금 트레이드로 히로시마에 이적했다. 뛰어난 투구 기술과 수싸움 능력을 바탕으로 팀의 2년 연속 일본 시리즈 제패(1979년, 1980년)에 기여했고, 1979년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었다. 1979년 일본 시리즈 7차전에서 보여준 '에나쓰의 21구'는 일본 프로 야구 명장면으로 꼽힌다.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닛폰햄 파이터스]] (1981-1983): 1980년 시즌 후, 다카하시 나오키와의 맞트레이드로 닛폰햄으로 이적했다. 1981년, 구원 투수진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닛폰햄의 19년 만의 퍼시픽 리그 우승에 공헌했고, 퍼시픽 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1982년에는 개인 통산 200승을 달성하여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에 가입했다.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세이부 라이온스]] (1984): 1983년 시즌 후 시바타 야스미쓰 등과의 맞트레이드로 세이부에 이적했다. 1984년 시즌 도중 컨디션 저하와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과의 갈등으로 2군으로 강등되었고,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1985년, 밀워키 브루어스 스프링 캠프에 초청 선수로 참가했지만, 마이너 리그 계약을 제안받고 거절, 은퇴를 결심했다.
2.1. 어린 시절
1948년 5월 15일, 나라현 요시노군에서 태어났다. 가고시마현 출신인 어머니는 오사카 대공습을 피해 나라현으로 피난을 갔고, 그곳에서 에나쓰의 아버지를 만나 에나쓰를 낳았다. 에나쓰의 아버지는 에나쓰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종되었기 때문에, '에나쓰'라는 성은 어머니 쪽 성이었다.
생후 반년 만에 어머니의 고향인 가고시마현 히오키군 이치키정(현: 이치키쿠시키노시)으로 이사하여 5년간 살았다. 이후 어머니와 두 형과 함께 효고현 아마가사키시로 이사하여 아마가사키 시립 소노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아마가사키시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에는 근처 아이들과 야구를 즐겼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형에게서 왼손잡이용 글러브를 받아 오른손잡이였음에도 왼손 투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야구부에 입부했지만 2개월 만에 퇴부하고, 육상부에서 포환던지기 선수로 활약했다.
2.2. 아마추어 선수 시절
오사카가쿠인 대학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고교 시절 제구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뛰어난 직구와 임기응변, 심리전으로 활약했다. 3학년 때(1966년)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오사카 대회에서 팀을 4강에 진출시켰다. 고등학교 시절 스즈키 게이시와의 맞대결에서 큰 충격을 받고 커브를 습득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고 한다.
2.3. 프로 선수 시절
1968년 캠프에서 에나쓰는 투수 코치 하야시 기이치로부터 포환 던지기의 영향으로 생긴 "짊어 던지기" 버릇을 교정받고 변화구도 철저하게 지도받았다. 이를 통해 제구력이 향상되고 구종을 늘려 개막부터 전년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며 승수와 탈삼진을 늘려갔다. 이 해를 기점으로 에나쓰는 무라야마 미노루를 대신하여 팀의 에이스가 되었고, 야구계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했다. 에나쓰는 하야시 코치를 "스승님"이라고 부르며 존경했다. 무라야마에게도 야구에 대한 열정에 감명을 받아 제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연습부터 락커룸에 이르기까지 무라야마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하지만 에나쓰가 좋은 성적을 거두자 무라야마는 에나쓰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에나쓰는 에이스 자리를 빼앗길 뻔한 무라야마의 행동에 분개했지만, 후에 자신을 훌륭한 투수로 인정해 준 "제자 졸업"이라는 의사 표시라고 깨닫고, "그것이 진짜 프로. 승부사의 자세라고 배웠다"라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2.3.1. 한신 타이거스 시절
1966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한신 타이거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도에이 플라이어스, 한큐 브레이브스 등 4개 구단에서 1순위 지명을 받아 경합 추첨 결과, 한신에 입단했다. 입단 초기에는 등번호 71번을 착용했지만, 이후 28번으로 변경했다.
1967년 춘계 스프링 캠프에서는 변화구를 습득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완전히 습득하지 못한 채 정규 시즌에 돌입했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공을 주무기로 삼아 시즌 225개의 최다 탈삼진을 기록했다.
1968년 스프링 캠프에서는 투수 코치였던 하야시 기이치 코치의 도움으로 투구 폼을 교정받고 변화구를 철저하게 배우면서 컨트롤과 구종의 폭을 넓혔다. 그 해 9월 17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이나오 가즈히사의 일본 기록을 뛰어넘는 시즌 35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에나쓰는 연장 12회에 스스로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1968년 시즌에 최종적으로 탈삼진 기록을 401개까지 늘렸다.
1971년 올스타전에서 사상 첫 9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했다. 1973년 8월 30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초유의 연장전 노히트 노런)
다승왕(1968년, 1973년), 최우수 평균 자책점(1969년), 최우수 투수(1968년), 사와무라 에이지상(1968년) 등 투수 부문 타이틀을 차지했다.
1973년 시즌 종료 후 가네다 마사야스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팀 내분이 발생했고, 에나쓰는 팀을 떠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976년 1월 28일, 에모토 다케노리, 시마노 이쿠오, 하세가와 쓰토무, 이케우치 유타카와의 맞트레이드로 난카이 호크스로 이적했다.
2.3.2. 난카이 호크스 시절
江夏일본어는 난카이 호크스로 이적한 후, 선수 겸 감독이었던 노무라 가쓰야의 야구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노무라 가쓰야의 지도를 받으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976년에는 선발로 등록됐지만, 혈행장애와 심장질환 등으로 인해 뚜렷한 성적을 낼 수 없었다. 1977년 6월 경, 노무라 가쓰야 감독의 설득으로 구원 투수로 전향했다. 구원 투수로 전향한 후, 19세이브를 기록하며 최우수 구원 투수에 등극했다.
2.3.3.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
江夏 豊일본어는 1977년 시즌 종료 후, 노무라 가쓰야 감독이 해임되자 "노무라 감독이 그만두는 이상 자신도 내보내달라"고 말하며 팀을 떠날 것을 결심했다. 1977년 12월 22일, 현금 트레이드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이적했다.
히로시마 이적 후 뛰어난 투구 기술과 타자와의 수싸움 능력을 바탕으로 팀의 2년 연속 일본 시리즈 제패(1979년, 1980년)에 크게 기여했다. 1979년에는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었다. 1979년 일본 시리즈 최종 7차전에서 보여준 '에나쓰의 21구'는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팀 동료였던 기누가사 사치오와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후지모토 사다요시는 江夏 豊일본어가 한신에서 난카이 호크스로 이적될 당시 그 충격으로 인해 소리내어 울면서 몸 상태가 안 좋아졌다. 또 히로시마 시절 첫 우승을 거두었을 때에는 이미 고령으로 보행도 제대로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벤치 뒤까지 찾아가 “에나쓰, 정말 잘 됐구나. 축하한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직접 축하해주었다.
2.3.4. 닛폰햄 파이터스 시절
江夏 豊일본어는 1980년 시즌 종료 후, 다카하시 나오키와의 맞트레이드로 닛폰햄 파이터스로 이적했다. 1981년, 구원 투수진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닛폰햄의 19년 만의 퍼시픽 리그 우승에 공헌했고, 퍼시픽 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1982년에는 개인 통산 200승을 달성하여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에 가입했다.
2.3.5.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
江夏 豊일본어는 1983년 시즌 종료 후 우에무라 요시노부 감독 체제에서 전력 외 통보를 받고 시바타 야스미쓰, 기무라 히로시와의 맞트레이드로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했다. 1984년 시즌 도중 컨디션 저하를 호소했고,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과의 갈등으로 인해 2군으로 강등되었다. 1984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4. 메이저 리그 도전
1985년, 밀워키 브루어스의 초청 선수 자격으로 스프링 캠프에 참가했다. 시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마이너 리그 계약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하고 현역 은퇴를 결심했다.
2.5. 은퇴 이후
1984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후 1985년부터 1993년까지 닛폰 TV, 라디오닛폰 야구 해설자, 도쿄 주니치 스포츠 야구 평론가로 활동했다. 이와 더불어 탤런트 겸 배우로서 영화, TV 드라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1993년 3월 2일, 각성제를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돼 각성제 단속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 사건으로 징역 2년 4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시즈오카 형무소에 수감됐다. 1995년 4월에 가석방된 후 분카 방송 라디오에 출연하여 야구 관련 논평을 했고, 데일리 스포츠 전속 야구 평론가가 되는 등 야구계에 복귀했다.
3. 에피소드
江夏일본어는 선수 생활 동안 다양한 에피소드를 남겼다.
1977년 시즌 후, 노무라 가쓰야 감독이 해임되자 에나쓰는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이적했다. 히로시마에서 직구 구위를 회복하며 부활, 1979년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하며 헹가래 투수가 되었다. 그해 일본 시리즈 7차전 9회말 무사 만루 위기를 막아낸 투구는 야마기와 준지의 「에나쓰의 21구」로 널리 알려졌다. 같은 해 센트럴 리그 MVP를 수상했고, '나의 시(俺の詩)'라는 레코드를 발매하여 7만 장을 판매했다.
1980년 7월 22일 올스타 게임 3차전에서는 9회말 무사 만루 위기에서 노무라 오사무를 구원 등판, 3타자 연속 삼진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며 MVP를 차지했다. 이후 다카하시 나오키와의 트레이드로 닛폰햄 파이터스로 이적했다.
3.1. 개인
가고시마현 출신 어머니가 오사카 대공습으로 피난했던 나라현 요시노군에서 아버지와 알게 되어 그곳에서 태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가 이혼하면서 아버지도 실종됐기 때문에 생후 반 년 만에 가고시마현 히오키군 이치키정(현: 이치키쿠시키노시)에 있는 어머니의 외가로 이사와 5년을 보낸 후, 어머니와 두 명의 형과 함께 효고현 아마가사키시로 이사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형제·자매가 모두 아버지가 다른 복잡한 가정이었으며, ‘에나쓰’(江夏)라는 성도 외가 쪽의 성이었다. 미나미큐슈에 흔한 성씨로, 본래는 ‘고-카’(こうか일본어)라고 읽는다. 어머니는 “선조를 따라 올라가보면 사쓰마번의 우두머리에 도달한다”라고 말했었다. 기리시마 주조를 창업한 사람은 에나쓰 유타카의 조부라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근처의 아이들과 변변찮은 도구를 이용하여 야구를 즐겼다. 형이 오른손잡이였던 에나쓰에게 왼손잡이용 글러브를 건네주며 왼손으로 던지도록 강제하여 왼손잡이로 교정되었다.
중학생 시절 야구부에 들어갔지만 2개월 동안 공 줍기 정도의 훈련밖에 받지 못했다. 이에 불만을 품고 상급생에게 호소했다가 난투극으로 번져 야구부에서 쫓겨났다. 이때 야구부 감독이었던 교사는 “야구는 여러 스포츠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여러 스포츠를 체험해라”라고 설득하여 배구, 럭비, 스모 등을 경험하게 했고, 최종적으로는 육상부에서 투포환 선수로 활약하며 현 대회에서 준우승하기도 했다.
술은 마시지 않는다. 체질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한신 시절 주치의로부터 건강을 위해 술을 끊으라는 조언을 들은 후 현재까지 금주하고 있다. 단, 담배는 끊을 수 없다고 한다.
1980년에는 가수로서 '나의 시'라는 앨범을 발표하여 7만 장 이상 판매된 적도 있다.
시바 료타로의 작품을 즐겨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작품으로 《타올라라 검》을 꼽았다.
3.2. 야구관
에나쓰는 고등학교 시절 뛰어난 직구와 심리전을 활용하여 활약했다. 특히 스즈키 게이시와의 경기에서 자극을 받아 커브를 익히게 되었다고 한다. 프로에 입단한 후에는 빠른 공과 정확한 제구력을 바탕으로 올스타전에서 9타자 연속 탈삼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73년에는 주니치 드래건스를 상대로 연장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는데, 이는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유일한 기록이다.
에나쓰는 선수 시절 뛰어난 활약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기록들을 세웠다.
* 올스타전 9타자 연속 탈삼진
* 연장전 노히트 노런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유일)
이러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에나쓰는 선발과 구원 양쪽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투수로 평가받는다. 특히 노무라 가쓰야 감독의 요청으로 구원 투수로 전향한 후에는 뛰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열었다. 세이부 시절 그의 투구를 본 이토 쓰토무는 에나쓰의 뛰어난 제구력과 판단력에 감탄했다고 한다.
3.3. 친분
* 스즈키 게이시와는 고등학교 시절 연습 경기에서 맞붙은 이후 두터운 친분을 맺어 왔다. 스즈키와 자기 고집이 확실했던 노모 히데오는 에나쓰를 스승으로 존경했다.
* 한신의 열혈 팬인 작가 오가와 요코의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는 에나쓰의 한신 시절 등번호(28, 완전수)가 가지는 의미를 소재로 사용하는 등, 오가와 요코는 에나쓰에게 많은 존경을 표했다. 에나쓰도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을 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4. 상세 정보
1985년부터 에나쓰 유타카는 니혼 TV, 라디오 일본 야구 해설가, 도쿄 츄니치 스포츠 야구 평론가로 활동했다. 영화, TV 드라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탤런트, 배우로도 활동했다.
1993년 3월 2일, 각성제 단속법 위반(소지·사용) 혐의로 현행범 체포되었다. 체포 며칠 전까지 닛폰햄 파이터즈의 임시 투수 코치를 맡고 있었기에 세상에 큰 충격을 주었다. 기소 내용은 각성제 수용액 약 0.25ml를 왼팔에 주사하고, 각성제 총 52.117g 및 각성제 수용액 약 0.5ml를 소지했다는 것이다. 재판에서는 노무라 가쓰야, 에모토 다케노리가 정황 증인으로 출석했고, 기누가사 사치오는 에나쓰의 친구로서 증언대에 서서 관대한 처분을 호소했다.
요코하마 지방 재판소는 1심 판결에서 "대량의 각성제(약 100g)를 입수해 수년간 계속 사용했고, 동거 여성에게도 권유해 함께 사용했다"고 지적하며 징역 2년 4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에나쓰는 항소했지만, 도쿄 고등 재판소는 항소를 기각했다. 에나쓰는 상고하지 않고 형이 확정되어 시즈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고, 1995년 4월 가석방되었다.
가석방 1개월 후, 분카 방송 라디오에 출연하여 야구 논평을 했다. 1996년부터 2010년까지 데일리 스포츠 야구 평론가, TV 오사카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며, 명석한 기술론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선수들을 '~군'으로 부르는 야구 해설가의 시초이기도 하다. 주간 플레이보이(슈에이샤)에서 『에나쓰 유타카의 아웃로 야구론』을 연재했고, 2007년까지 『주간 베이스볼(베이스볼 매거진사)에서 『에나쓰 유타카의 구계 인간 교우전 "구인장"』을 연재했다.
마스터스 리그의 도쿄 드림스나 몰츠 구단에 소속되었으며, 한신 타이거스에서는 2015년 1군, 2016년 2군 스프링 캠프에서 임시 코치를 맡았다.
2024년 7월 15일, 도쿄 돔에서 개최된 요미우리 자이언츠-한신 OB전에 휠체어를 타고 방문했다. 산케이 스포츠의 이나미 마코토는 에나쓰가 산소통을 사용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4.1. 출신 학교
오사카가쿠인대학 고등학교
4.2. 선수 경력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에 걸쳐 선발과 구원 양쪽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좌완 투수이다. 한신 시절에는 선발로서 탈삼진 기록 등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강속구 투수이면서도 제구력도 뛰어나 실적으로 이어졌다. 노무라 가쓰야의 제안으로 구원으로 전향한 난카이 시절부터는 높은 제구력을 바탕으로 구원 투수로서 활약했다. 1967년부터 1973년에 걸쳐 총 37세이브를 올렸다.
난카이에서는 혈행 장애나 심장 질환 등으로 긴 이닝을 던질 수 없게 되었지만, 50구 정도의 짧은 이닝이라면 전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노무라는 에나쓰에게 구원 투수로의 전향을 제안했다. "야구계에 혁명을 일으키자"는 노무라의 설득으로 1977년 6월에 구원 투수로 전향을 결의했다. 당시 일본에는 구원 전문 투수의 조정법이 확립되지 않아, 벤치에 계속 앉아 대기하는 것이 허리 통증이 있던 에나쓰에게는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메이저 리그에서의 구원 투수의 조정법 등을 듣고, 자기 나름의 조정을 시작했다. 경기가 시작되어도 5회까지 벤치에 들어가지 않고, 라커룸에서 마사지를 받거나 수면을 취하는 조정법은, 당시 팀 내나 야구계에서 비난을 받았지만, 현재는 전 경기 대기를 의무화하는 구원 투수의 컨디션 유지 방법으로 정착되었다.
현역 시절 말기 세이부에서 포수로서 에나쓰의 투구를 받은 이토 츠토무는 에나쓰의 높은 제구력과 투구 순간에 손가락 끝의 조작만으로 순간적으로 코스를 바꾸어 포수가 포구하기 쉬운 곳으로 투구하는 뛰어난 기술, 번트를 간파하는 정확한 판단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 이 때문에 에나쓰는 현재도 "20세기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으며, 히로시마, 닛폰햄 시절에 맹활약으로 우승에 공헌하여 "우승 청부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Yahoo! JAPAN이 기획한 "20세기 일본 프로 야구 베스트 나인"의 투수 부문에서는 사와무라 에이지, 가네다 마사이치, 이나오 카즈히사 등 옛 명투수를 제치고 1위에 선정되었다.
구종에 망설여질 때 결론으로 던지는 것은 "바깥쪽 코스의 직구"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 연도 | 소속팀 | | 선발 || 완투 || 완봉 || 무4구 || 승리 || 패배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
| 1967년 | 한신 | 42 | 29 | 8 | 2 | 0 | 12 | 13 | -- | -- | .480 | 923 | 230.1 | 167 | 27 | 88 | 1 | 3 | 225 | 3 | 1 | 81 | 70 | 2.74 | 1.11 |
| 1968년 | 49 | 37 | 26 | 8 | 3 | 25 | 12 | -- | -- | .676 | 1259 | 329.0 | 200 | 29 | 97 | 2 | 4 | 401 | 2 | 0 | 83 | 78 | 2.13 | 0.90 | |
| 1969년 | 44 | 23 | 17 | 7 | 3 | 15 | 10 | -- | -- | .600 | 1000 | 258.1 | 172 | 17 | 78 | 1 | 3 | 262 | 3 | 0 | 56 | 52 | 1.81 | 0.97 | |
| 1970년 | 52 | 37 | 25 | 8 | 3 | 21 | 17 | -- | -- | .553 | 1295 | 337.2 | 232 | 29 | 73 | 5 | 3 | 340 | 5 | 1 | 87 | 80 | 2.13 | 0.90 | |
| 1971년 | 45 | 30 | 16 | 6 | 4 | 15 | 14 | -- | -- | .517 | 1006 | 263.2 | 182 | 25 | 66 | 3 | 2 | 267 | 5 | 2 | 77 | 70 | 2.39 | 0.94 | |
| 1972년 | 49 | 31 | 16 | 3 | 3 | 23 | 8 | -- | -- | .742 | 1059 | 269.2 | 195 | 30 | 60 | 3 | 4 | 233 | 0 | 1 | 86 | 76 | 2.53 | 0.95 | |
| 1973년 | 53 | 39 | 18 | 7 | 2 | 24 | 13 | -- | -- | .649 | 1228 | 307.0 | 258 | 23 | 82 | 6 | 4 | 215 | 4 | 0 | 95 | 88 | 2.58 | 1.11 | |
| 1974년 | 41 | 23 | 12 | 2 | 1 | 12 | 14 | 8 | -- | .462 | 772 | 197.2 | 153 | 24 | 50 | 3 | 2 | 149 | 3 | 0 | 65 | 60 | 2.73 | 1.03 | |
| 1975년 | 49 | 27 | 9 | 1 | 1 | 12 | 12 | 6 | -- | .500 | 852 | 208.1 | 169 | 24 | 72 | 7 | 2 | 132 | 2 | 0 | 92 | 71 | 3.07 | 1.16 | |
| 1976년 | 난카이 | 36 | 20 | 6 | 1 | 1 | 6 | 12 | 9 | -- | .333 | 612 | 148.1 | 115 | 12 | 61 | 0 | 4 | 109 | 4 | 0 | 58 | 49 | 2.98 | 1.19 |
| 1977년 | 41 | 3 | 1 | 0 | 0 | 4 | 2 | 19 | -- | .667 | 346 | 84.0 | 72 | 5 | 21 | 0 | 5 | 60 | 2 | 0 | 28 | 26 | 2.79 | 1.11 | |
| 1978년 | 히로시마 | 49 | 0 | 0 | 0 | 0 | 5 | 4 | 12 | -- | .556 | 395 | 95.1 | 77 | 7 | 38 | 3 | 2 | 99 | 1 | 1 | 32 | 32 | 3.03 | 1.21 |
| 1979년 | 55 | 0 | 0 | 0 | 0 | 9 | 5 | 22 | -- | .643 | 420 | 104.2 | 77 | 10 | 36 | 2 | 1 | 117 | 3 | 0 | 31 | 31 | 2.66 | 1.08 | |
| 1980년 | 53 | 0 | 0 | 0 | 0 | 9 | 6 | 21 | -- | .600 | 334 | 86.0 | 61 | 12 | 20 | 4 | 1 | 86 | 1 | 0 | 27 | 25 | 2.62 | 0.94 | |
| 1981년 | 닛폰햄 | 45 | 0 | 0 | 0 | 0 | 3 | 6 | 25 | -- | .333 | 339 | 83.0 | 69 | 10 | 24 | 0 | 1 | 75 | 1 | 0 | 30 | 26 | 2.82 | 1.12 |
| 1982년 | 55 | 0 | 0 | 0 | 0 | 8 | 4 | 29 | -- | .667 | 354 | 91.0 | 56 | 8 | 31 | 1 | 2 | 107 | 0 | 0 | 22 | 20 | 1.98 | 0.96 | |
| 1983년 | 51 | 0 | 0 | 0 | 0 | 2 | 4 | 34 | -- | .333 | 318 | 77.1 | 63 | 6 | 27 | 1 | 3 | 82 | 2 | 0 | 24 | 20 | 2.33 | 1.16 | |
| 1984년 | 세이부 | 20 | 0 | 0 | 0 | 0 | 1 | 2 | 8 | -- | .333 | 106 | 24.2 | 22 | 1 | 12 | 1 | 0 | 28 | 2 | 0 | 11 | 10 | 3.65 | 1.38 |
| 통산:18년 || 829 || 299 || 154 || 45 || 21 || 206 || 158 || 193 || -- || .566 || 12618 || 3196.0 || 2340 || 299 || 936 || 43 || 46 || 2987 || 43 || 6 || 985 || 884 || 2.49 || 1.03 |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적색 굵은 글씨는 일본 프로 야구 역대 최고
4.3. 수상·타이틀 경력
에나쓰는 1968년 9월 17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이나오 가즈히사의 일본 기록을 뛰어넘는 시즌 35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에나쓰는 오 사다하루에게서 354개째의 삼진을 빼앗았다. 그해 에나쓰는 최종적으로 탈삼진 기록을 401개까지 늘렸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일본 프로 야구 기록이며, 메이저 리그 기록(놀런 라이언의 383개)도 웃도는 수치이다.
에나쓰는 18년 동안 현역 선수로 활동하면서 탈삼진수가 투구 이닝을 넘어선 것이 9차례였으며, 그 중 4차례는 한신 타이거스에서 선발 투수로 뛰던 시절에 기록했다. 선발 투수가 시즌 탈삼진수가 투구 이닝을 넘는 것은 드문 일로, 에나쓰의 라이벌이었던 호리우치 쓰네오는 한 번도 기록하지 못했다.
에나쓰는 한신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오 사다하루로부터 삼진을 빼앗는 것에 특히 집착했다. 신인 시절 무라야마가 "네 상대는 저쪽(오), 나는 이쪽(나가시마)이다"라고 에나쓰에게 말하며, 좌타자인 오를 라이벌로 삼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이후 에나쓰는 오와의 승부에 집착하여 통산 57개의 삼진을 빼앗았지만, 직구로 승부했기 때문에 20개의 홈런을 허용했다. 오로부터 가장 많은 삼진을 빼앗은 투수는 에나쓰지만, 에나쓰로부터 가장 많은 홈런을 날린 타자도 오이다.
4.3.1. 타이틀
에나쓰 유타카는 다음과 같은 타이틀을 획득했다.
| 타이틀 | 횟수 | 연도 |
|---|---|---|
| 다승왕 | 2회 | 1968년, 1973년 |
| 최다 선발승 | 1회 | 1968년(22선발승) |
| 최우수 평균 자책점 | 1회 | 1969년 |
| 최다 탈삼진 | 6회 | 1967년 ~ 1972년 |
| 최우수 구원 투수 | 5회 | 1977년, 1979년 ~ 1982년 |
| 최다 세이브 | 6회 | 1977년, 1979년 ~ 1983년 |
* 최다 탈삼진은 당시 타이틀이 아니었지만, 6년 연속(1967~1972년) 수상은 스즈키 게이시와 함께 최장 타이 기록이며, 통산 6회 수상은 가네다 마사이치에 이은 센트럴 리그 2위이다. 센트럴 리그에서는 1991년부터 타이틀로 제정되었다.
* 최우수 구원 투수는 아카호리 모토유키, 사사키 가즈히로, 이와세 히토키와 함께 최다 타이 기록(5회)이며, 4년 연속(1979~1982년) 수상은 사사키 가즈히로와 함께 최장 타이 기록이다.
* 최다 세이브는 통산 6회(1977년, 1979~1983년)로 역대 최다이며, 5년 연속(1979~1983년) 역시 역대 최장 기록이다. 세이브수에 의한 수상은 2005년부터 재개되었다.
1968년에는 이나오 가즈히사의 일본 기록을 뛰어넘는 시즌 35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고, 최종적으로 탈삼진 기록을 401개까지 늘렸다. 이는 현재까지도 일본 프로 야구 기록이며, 메이저 리그 기록(놀런 라이언의 383개)도 웃도는 기록이다. 18년의 현역 기간 중 탈삼진수가 투구 이닝을 넘어선 것이 9차례였으며, 이 가운데 4차례는 선발 투수였던 한신 시절에 기록했다.
4.3.2. 수상
4.4. 개인 기록
1968년 9월 17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이나오 가즈히사의 일본 기록을 뛰어넘는 시즌 354탈삼진을 기록했다. 에나쓰는 오 사다하루에게서 354개째의 삼진을 빼앗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 이를 달성했다. 이 경기에서 에나쓰는 연장 12회에 스스로 끝내기 안타를 쳐 팀 승리에 기여했다.
에나쓰는 나가시마 시게오에게서 삼진을 빼앗던 무라야마 미노루를 흉내 내어 사다하루에게서 삼진을 빼앗는 것에 집착했다. 통산 57개의 삼진을 빼앗았지만, 직구 승부로 인해 20개의 홈런도 허용했다. 노무라 가쓰야는 에나쓰가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 기록은 ON으로부터 잡아내고 싶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사다하루가 "에나쓰의 그 발언은 미심쩍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1968년 시즌에 에나쓰는 최종적으로 탈삼진 기록을 401개까지 늘렸다. 이는 현재까지도 일본 프로 야구 기록이며, 메이저 리그 기록(놀런 라이언의 383개)을 넘는 수치이다. 에나쓰는 18년 현역 기간 중 9차례나 탈삼진 수가 투구 이닝을 넘어섰다.
에나쓰는 타자로서 노히트 노런 달성 경기와 올스타 9타자 연속 탈삼진 달성 경기에서 모두 홈런을 쳤으며, 노히트 노런은 자신의 사요나라(끝내기) 홈런으로 달성했다. 공식 경기 통산 852타수 128안타, 타율 0.150, 7홈런을 기록했다.
| 연도 | 소속팀 | 경기 | 선발 | 완투 | 완봉 | 무4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사사구 | 고의4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 1967 | 한신 | 42 | 29 | 8 | 2 | 0 | 12 | 13 | -- | -- | .480 | 923 | 230.1 | 167 | 27 | 88 | 1 | 3 | 225 | 3 | 1 | 81 | 70 | 2.74 | 1.11 |
| 1968 | 49 | 37 | 26 | 8 | 3 | 25 | 12 | -- | -- | .676 | 1259 | 329.0 | 200 | 29 | 97 | 2 | 4 | 401 | 2 | 0 | 83 | 78 | 2.13 | 0.90 | |
| 1969 | 44 | 23 | 17 | 7 | 3 | 15 | 10 | -- | -- | .600 | 1000 | 258.1 | 172 | 17 | 78 | 1 | 3 | 262 | 3 | 0 | 56 | 52 | 1.81 | 0.97 | |
| 1970 | 52 | 37 | 25 | 8 | 3 | 21 | 17 | -- | -- | .553 | 1295 | 337.2 | 232 | 29 | 73 | 5 | 3 | 340 | 5 | 1 | 87 | 80 | 2.13 | 0.90 | |
| 1971 | 45 | 30 | 16 | 6 | 4 | 15 | 14 | -- | -- | .517 | 1006 | 263.2 | 182 | 25 | 66 | 3 | 2 | 267 | 5 | 2 | 77 | 70 | 2.39 | 0.94 | |
| 1972 | 49 | 31 | 16 | 3 | 3 | 23 | 8 | -- | -- | .742 | 1059 | 269.2 | 195 | 30 | 60 | 3 | 4 | 233 | 0 | 1 | 86 | 76 | 2.53 | 0.95 | |
| 1973 | 53 | 39 | 18 | 7 | 2 | 24 | 13 | -- | -- | .649 | 1228 | 307.0 | 258 | 23 | 82 | 6 | 4 | 215 | 4 | 0 | 95 | 88 | 2.58 | 1.11 | |
| 1974 | 41 | 23 | 12 | 2 | 1 | 12 | 14 | 8 | -- | .462 | 772 | 197.2 | 153 | 24 | 50 | 3 | 2 | 149 | 3 | 0 | 65 | 60 | 2.73 | 1.03 | |
| 1975 | 49 | 27 | 9 | 1 | 1 | 12 | 12 | 6 | -- | .500 | 852 | 208.1 | 169 | 24 | 72 | 7 | 2 | 132 | 2 | 0 | 92 | 71 | 3.07 | 1.16 | |
| 1976 | 난카이 | 36 | 20 | 6 | 1 | 1 | 6 | 12 | 9 | -- | .333 | 612 | 148.1 | 115 | 12 | 61 | 0 | 4 | 109 | 4 | 0 | 58 | 49 | 2.98 | 1.19 |
| 1977 | 41 | 3 | 1 | 0 | 0 | 4 | 2 | 19 | -- | .667 | 346 | 84.0 | 72 | 5 | 21 | 0 | 5 | 60 | 2 | 0 | 28 | 26 | 2.79 | 1.11 | |
| 1978 | 히로시마 | 49 | 0 | 0 | 0 | 0 | 5 | 4 | 12 | -- | .556 | 395 | 95.1 | 77 | 7 | 38 | 3 | 2 | 99 | 1 | 1 | 32 | 32 | 3.03 | 1.21 |
| 1979 | 55 | 0 | 0 | 0 | 0 | 9 | 5 | 22 | -- | .643 | 420 | 104.2 | 77 | 10 | 36 | 2 | 1 | 117 | 3 | 0 | 31 | 31 | 2.66 | 1.08 | |
| 1980 | 53 | 0 | 0 | 0 | 0 | 9 | 6 | 21 | -- | .600 | 334 | 86.0 | 61 | 12 | 20 | 4 | 1 | 86 | 1 | 0 | 27 | 25 | 2.62 | 0.94 | |
| 1981 | 닛폰햄 | 45 | 0 | 0 | 0 | 0 | 3 | 6 | 25 | -- | .333 | 339 | 83.0 | 69 | 10 | 24 | 0 | 1 | 75 | 1 | 0 | 30 | 26 | 2.82 | 1.12 |
| 1982 | 55 | 0 | 0 | 0 | 0 | 8 | 4 | 29 | -- | .667 | 354 | 91.0 | 56 | 8 | 31 | 1 | 2 | 107 | 0 | 0 | 22 | 20 | 1.98 | 0.96 | |
| 1983 | 51 | 0 | 0 | 0 | 0 | 2 | 4 | 34 | -- | .333 | 318 | 77.1 | 63 | 6 | 27 | 1 | 3 | 82 | 2 | 0 | 24 | 20 | 2.33 | 1.16 | |
| 1984 | 세이부 | 20 | 0 | 0 | 0 | 0 | 1 | 2 | 8 | -- | .333 | 106 | 24.2 | 22 | 1 | 12 | 1 | 0 | 28 | 2 | 0 | 11 | 10 | 3.65 | 1.38 |
| 통산:18년 || 829 || 299 || 154 || 45 || 21 || 206 || 158 || 193 || -- || .566 || 12618 || 3196.0 || 2340 || 299 || 936 || 43 || 46 || 2987 || 43 || 6 || 985 || 884 || 2.49 || 1.03 |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빨간색 굵은 글씨는 NPB 역대 최고
4.4.1. 첫 기록
* 첫 등판: 1967년 4월 13일, 대 다이요 웨일스 2차전(가와사키 구장), 2회말에 2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 4이닝 무실점
* 첫 탈삼진: 상동, 2회말에 이토 이사오로부터
* 첫 선발: 1967년 4월 19일, 대 다이요 웨일스 3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2이닝 4실점(3자책점)에서 패전 투수
* 첫 승리·첫 완투 승리: 1967년 4월 29일, 대 히로시마 카프 1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9이닝 1실점
* 첫 완봉 승리: 1967년 5월 28일, 대 다이요 웨일스 6차전(가와사키 구장)
* 첫 세이브: 1974년 4월 10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7회말에 2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마무리, 3이닝 무실점
4.4.2. 기록 달성 경력
1968년 9월 17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이나오 가즈히사의 일본 기록을 뛰어넘는 시즌 354탈삼진을 기록했다. 에나쓰는 오 사다하루에게서 354개째의 삼진을 빼앗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 이를 달성했다. 이 경기에서 에나쓰는 연장 12회에 스스로 끝내기 안타를 쳐 팀 승리에 기여했다.
에나쓰는 나가시마 시게오에게서 삼진을 빼앗던 무라야마 미노루를 흉내 내어 사다하루에게서 삼진을 빼앗는 것에 집착했다. 통산 57개의 삼진을 빼앗았지만, 직구 승부로 인해 20개의 홈런도 허용했다. 1968년 시즌에 에나쓰는 최종적으로 탈삼진 기록을 401개까지 늘렸다. 이는 현재까지도 일본 프로 야구 기록이며, 18년 현역 기간 중 탈삼진 수가 투구 이닝을 넘어선 것이 9차례나 된다.
; 통산 기록
| | 달성일 || 상대팀 || 구장 || 비고 | ||||
|---|---|---|---|---|
| 1000탈삼진 | 1970년 7월 2일 | 다이요 웨일스 | 가와사키 구장 | 역대 38번째 |
| 1500탈삼진 | 1972년 4월 12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한신 고시엔 구장 | 역대 18번째 |
| 100승 | 1972년 6월 21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한신 고시엔 구장 | 역대 58번째 |
| 100선발승 | 1973년 5월 24일 | 야쿠르트 아톰즈 | 메이지 진구 구장 | |
| 2000탈삼진 | 1974년 6월 13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한신 고시엔 구장 | 역대 8번째 |
| 150승 | 1975년 4월 20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고라쿠엔 구장 | 역대 27번째 |
| 500경기 등판 | 1977년 9월 25일 | 닛폰햄 파이터스 | 고라쿠엔 구장 | |
| 2500탈삼진 | 1979년 5월 11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역대 7번째 |
| 600경기 등판 | 1979년 9월 19일 | 한신 타이거스 | 한신 고시엔 구장 | 역대 18번째 |
| 100세이브 | 1981년 5월 6일 | 한큐 브레이브스 | 고라쿠엔 구장 | 사상 최초 |
| 700경기 등판 | 1981년 9월 12일 | 한큐 브레이브스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역대 9번째 |
| 200승 | 1982년 7월 2일 | 긴테쓰 버펄로스 | 고라쿠엔 구장 | 역대 18번째 |
| 800경기 등판 | 1983년 8월 30일 | 세이부 라이온스 | 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 역대 5번째 |
; 첫 기록
| | 달성일 || 상대팀 || 구장 || 비고 | |||
|---|---|---|---|
| 첫 등판 | 1967년 4월 13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가와사키 구장 |
| 첫 탈삼진 | 1967년 4월 13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가와사키 구장 |
| 첫 선발 | 1967년 4월 19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한신 고시엔 구장 |
| 첫 승리·첫 완투 승리 | 1967년 4월 29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한신 고시엔 구장 |
| 첫 완봉 승리 | 1967년 5월 28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가와사키 구장 |
| 첫 세이브 | 1974년 4월 10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 기타 기록
* 노히트 노런: 1973년 8월 30일, 주니치 드래건스 20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역대 48번째(연장전에서 달성은 역대 유일, 자신의 끝내기 홈런으로 결정)
* 시즌 225탈삼진: 1967년 ※고졸 신인의 센트럴 리그 기록
* 시즌 401탈삼진: 1968년 ※20세기 이후의 세계 기록(단, MLB 이외의 기록은 세계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음)
* 1경기 16탈삼진: 1968년 8월 8일, 주니치 드래건스 17차전(주니치 스타디움) ※센트럴 리그 기록
* 23이닝 연속 탈삼진: 1968년 8월 8일 - 8월 21일
* 41이닝 연속 무실점: 1969년 4월 12일 - 5월 15일
* 1경기 34타자 연속 범타: 1970년 9월 26일, 주니치 드래건스 22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2회초 3아웃 ~ 13회초 3아웃
* 시즌 11무: 1978년, 1980년(2회) 우시지마 가즈히코, 후지카와 규지와 함께 센트럴 리그 타이기록
* 100승 100세이브 ※역대 최초(이후 야마모토 가즈유키, 사이토 아키오, 오노 유타카, 궈위안즈, 사사오카 신지가 달성, 선발 100승 100세이브는 에나쓰와 사사오카 2명 뿐)
* 전 구단으로부터 세이브: 1984년 5월 3일, 닛폰햄 파이터스 6차전(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역대 최초, 교류전 도입 전의 달성자는 에나쓰 뿐
* 전 구단으로부터 패전 ※역대 최초(달성자는 에나쓰와 스기우치 도시야 뿐)
* 올스타전 출장: 16회
* 올스타전 15연속 탈삼진(1970년 - 1971년) ※올스타 기록
4.4.3. 기타
에나쓰는 오 사다하루(왕정치)로부터 삼진을 빼앗는 것에 집착했다. 이는 무라야마 미노루가 나가시마 시게오에게서 삼진을 빼앗던 것을 흉내낸 것이다. 신인 시절 무라야마에게 사다하루를 라이벌로 삼으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통산 57개의 삼진을 빼앗았지만, 직구 승부로 인해 20개의 홈런도 허용했다. 사다하루에게 가장 많은 삼진을 빼앗은 투수는 에나쓰이지만, 에나쓰에게 가장 많은 홈런을 친 타자 또한 사다하루였다. 노무라 가쓰야는 에나쓰가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 기록은 ON으로부터 잡아내고 싶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사다하루가 "에나쓰의 그 발언은 미심쩍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1968년, 에나쓰는 시즌 탈삼진을 401개까지 늘렸다. 이는 현재까지도 일본 프로 야구 기록이며, 메이저 리그 기록(놀런 라이언의 383개)을 넘는 수치이다. 에나쓰는 18년 현역 기간 중 9차례나 탈삼진 수가 투구 이닝을 넘어섰다.
주요 기록
| 기록 종류 | 내용 | 비고 |
|---|---|---|
| 노히트 노런 | 1973년 8월 30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20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 역대 48번째, 연장전 달성은 유일, 자신의 끝내기 홈런으로 결정 |
| 시즌 탈삼진 | 329.2이닝, 225탈삼진 (1967년) | 고졸 신인 센트럴 리그 기록 |
| 시즌 탈삼진 | 401탈삼진 (1968년) | 20세기 이후 세계 기록 (MLB 이외 기록은 인정되지 않음) |
| 1경기 최다 탈삼진 | 16탈삼진 (1968년 8월 8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17차전, 주니치 스타디움) | 센트럴 리그 기록 |
| 연속 이닝 탈삼진 | 23이닝 연속 탈삼진 (1968년 8월 8일 ~ 8월 21일) | |
| 연속 이닝 무실점 | 41이닝 연속 무실점 (1969년 4월 12일 ~ 5월 15일) | |
| 1경기 연속 타자 범퇴 | 34명 타자 연속 범퇴 (1970년 9월 26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22차전, 한신 고시엔 구장) | |
| 100승-100세이브 | 100승-100세이브 달성 | 사상 최초 (이후 5명 달성, 선발 100승-100세이브는 에나쓰와 사사오카 신지 2명뿐) |
| 전 구단 상대 세이브 | 1984년 5월 3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6차전 (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 사상 최초, 교류전 도입 전 유일한 달성자 |
| 전 구단 상대 패전 | 전 구단 상대 패전 기록 | 사상 최초 (에나쓰와 스기우치 도시야 2명뿐) |
| 올스타전 출장 | 16회 출장 (1967년 ~ 1976년, 1978년 ~ 1983년) | |
| 올스타전 연속 탈삼진 | 15연속 탈삼진 (1970년 ~ 1971년) | 올스타전 기록 |
| 시즌 무승부 | 시즌 11무 (1978년, 1980년) | 센트럴 리그 타이 기록 |
신인 시절 에나쓰는 후지모토 사다요시 감독의 귀여움을 받았다. 후지모토는 에나쓰에게 야구계 옛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에나쓰는 후지모토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후지모토는 1967년 올스타전에서 에나쓰를 3연투시킨 가와카미 데쓰하루 감독에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 후지모토와 에나쓰의 관계는 후지모토 퇴단 후에도 이어졌다. 에나쓰가 난카이 호크스로 트레이드되자 후지모토는 통곡하며 몸 상태가 나빠졌다. 에나쓰가 히로시마 시절 첫 우승을 했을 때, 후지모토는 직접 축하해주었다.
4.5. 등번호
| | 등번호 | |
|---|---|
| 1967년 | 71(입단 당시) |
| 1967년 ~ 1975년 | 28 |
| 1976년 ~ 1977년 | 17 |
| 1978년 ~ 1983년 | 26 |
| 1984년 |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