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 고지
1. 개요
오미 고지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관료로, 1932년 12월 14일에 태어나 2022년 4월 14일에 사망했다. 통상산업성에서 경력을 시작하여, 외무성 영사, 중소기업청 지도부장 등을 역임했다. 1983년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한 후,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하며 경제기획청 장관,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대신, 과학기술 정책 담당 대신, 재무대신 등을 역임했다. 과학기술 정책에 깊이 관여하여 과학기술기본법 제정을 주도하고,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정계 은퇴 후에는 STS 포럼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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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자 표기 | Ōmi Kōji |
|---|---|
| 출생일 | 1932년 12월 14일 |
| 출생지 | 군마현 누마타시 |
| 사망일 | 2022년 4월 14일 |
| 사망지 | 도쿄도 |
| 정당 | 자유민주당 |
| 학력 | 히토쓰바시대학교 졸업 |
| 직위 | 중의원 의원 |
|---|---|
| 선거구 | 군마 1구(1996–2000; 2003–2005) 기타칸토 비례대표(2000–2003; 2005–2009) |
| 임기 시작 | 1983년 12월 19일 |
| 임기 종료 | 2009년 7월 21일 |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
| 이전 직업 | 통상산업성 공무원 |
| 직위 | 재무대신 |
|---|---|
| 총리 | 아베 신조 |
| 임기 시작 | 2006년 9월 26일 |
| 임기 종료 | 2007년 8월 27일 |
| 이전 | 다니가키 사다카즈 |
| 이후 | 누카가 후쿠시로 |
| 직위 | 경제기획청 장관 |
| 총리 | 하시모토 류타로 |
| 임기 시작 | 1997년 9월 11일 |
| 임기 종료 | 1998년 7월 30일 |
| 이전 | 아소 다로 |
| 이후 | 사카이야 다이치 |
| 직위 |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대신 과학기술 정책 담당 대신 |
| 내각 |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
| 임기 시작 | 2001년 4월 26일 |
| 임기 종료 | 2002년 9월 30일 |
| 수상 | 욱일대수장 |
|---|---|
| 가족 | 딸: 오미 아사코(중의원 의원) 손자: 오미 사토시(코미디언) |
| 웹사이트 | 오미 코지 액션 웨이브 (2008년 5월 24일 보관) |
-
1932년 출생 -
피터 아이젠먼
피터 아이젠먼은 탈구조주의 건축과 CAD의 선구적인 미국 건축가이자 이론가이며, 뉴욕 5인조의 일원으로서 활동했고, 유럽 유대인 학살 기념관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미국 디자인 어워드와 울프상을 수상했다. -
1932년 출생 -
박봉식 (정치학자)
박봉식은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자 교육자로, 서울대학교 교수 및 총장, 부산외국어대학교와 금강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며 국가보위입법회의 위원 활동, 총선 무소속 출마, 토지매입 알선 사기 사건 연루, 서울대학교 본부 점거 사태 관련 발언 등으로 논란이 있었다. -
히토쓰바시 대학 동문 -
오히라 마사요시
오히라 마사요시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제68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외무대신 시절 한일 및 중일 국교 정상화에 기여했으며, 총리 재임 중 환태평양 연대 구상을 제시하는 등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으나 총선 직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
히토쓰바시 대학 동문 -
백두진
백두진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정치인, 금융인으로, 조선은행 이사장, 한국은행 이사장, 재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국회의장, 유신정우회 의장 등을 지냈다. -
군마현 출신 -
나카소네 야스히로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1918년 군마현 출생으로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제국 해군에서 복무했으며,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행정 개혁, 국철 민영화 등을 추진하다가 2019년 사망했다. -
군마현 출신 -
우치다 아야
우치다 아야는 2008년 데뷔하여 《키디 걸랜드》 주연, 《러브라이브!》 μ's 활동으로 인기를 얻은 일본의 여성 성우이자 가수로, 2014년 솔로 데뷔 후 음반 발매와 라이브 투어, 애니메이션 및 게임 캐릭터 연기, 내레이션, 라디오 진행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약력
오미 고지는 1932년 12월 14일 군마현 누마타시에서 태어났다. 1956년 히토쓰바시 대학 상학부를 졸업하고 통상산업성에 입성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소년 시절에는 아버지의 사업을 도왔으며, 군마현립 누마타 고등학교 재학 중에도 가업에 종사하며 부기 등을 배웠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진학 과정으로 변경하여 히토쓰바시대학 상학부에 입학,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대학을 졸업했다.
과학기술청원자력국 정책과 과장 보좌를 거쳐, 1970년 외무성주 뉴욕 일본 총영사관영사가 되었다. 1974년 통상산업성 통상정책국 남아시아 동유럽 과장, 1976년 오사카 통상산업국 총무부장, 1978년 중소기업청 소규모 기업 정책과장, 1979년 과학기술청 장관 관방 총무과장을 역임했다. 1981년 중소기업청 지도부장을 역임하고,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1982년 퇴관했다.
1983년 제3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이후 자민당에 입당하여 후쿠다파에 소속되었다. 당선 동기로는 다나카 나오키, 쿠마가이 히로시, 니카이 토시히로, 누카가 후쿠시로, 나카가와 쇼이치, 스즈키 무네오 등이 있다. 1990년 대장성 정무 차관, 1992년 자유민주당 상공부 회장을 역임했다. 1995년 중의원 대장성 위원장을 지냈으며, 제2차 하시모토 내각 개조내각에서 경제기획청 장관으로 첫 입각하였다. 1998년 자유민주당 선거 대책 위원장의 전신인 총무국 국장에 취임했다. 2000년 총재 모리 요시로 아래에서 자민당 간사장 대리에 취임했다.
2001년 제1차 고이즈미 내각에서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대신 겸 과학기술 정책 담당 대신을 역임했다. 2006년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 재무대신에 취임하여, 2007년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내각까지 연이어 재무대신직을 수행했다.
2009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공명당의 추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같은 해 9월 정계 은퇴를 표명했다. 2010년 욱일대수장을 수훈했다. 2022년 4월 14일,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생애
오미 고지는 1932년 12월 14일 군마현 누마타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히토츠바시 대학에서 상학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그는 2022년 4월 14일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정치 입문 전 ===
오미 고지는 1932년 군마현 누마타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소년 시절에는 아버지의 사업을 도왔으며, 종종 행상도 나섰다. 군마현립 누마타 고등학교 재학 중에도 가업에 종사하며, 취업 과정에서 부기 등을 배웠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진학 과정으로 변경하여, 1952년 히토쓰바시 대학 상학부에 입학,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1956년 졸업하고 통상산업성에 들어갔다. 동기로는 스기야마 히로시 (통산사무차관), 노노우치 타카시 (자원에너지청 장관), 카와사키 히로시 (경제기획심의관, 도쿄전력 부사장), 모리야 카즈히코 (일본 화학섬유협회 이사장) 등이 있다.
과학기술청원자력국 정책과 과장 보좌를 2년간 역임한 후, 1970년 외무성주 뉴욕 일본 총영사관영사가 되었다. 1974년 통상산업성 통상정책국 남아시아 동유럽 과장, 1976년 오사카 통상산업국 총무부장, 1978년 중소기업청 소규모 기업 정책과장, 1979년 과학기술청 장관 관방 총무과장을 거쳐 1981년 중소기업청 지도부장을 역임했다.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1982년 퇴직했다.
=== 정치 활동 ===
오미 고지는 1983년 제3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당선 후 자민당에 입당하여 후쿠다파(세이와 정책 연구회)에 소속되었다. 1990년 대장성 정무 차관, 1992년 자민당 상공부 회장을 역임했다. 당시 과학기술청 출신으로 유일한 국회의원으로서 과학기술 정책에 정통하여, 1993년에는 자민당 과학기술부 회장에 취임했다. 1995년에는 과학기술 기본법 제정에 힘썼으며, 같은 해 중의원 대장성 위원장을 지냈다.
1997년 제2차 하시모토 내각 개조내각에서 경제기획청 장관으로 첫 입각하였다. 2001년 제1차 고이즈미 내각에서는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대신 겸 과학기술 정책 담당 대신을 역임했다. 2006년 제1차 아베 신조 내각과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내각에서는 재무대신을 역임했다.
2009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한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 과학기술 정책 ===
오미 고지는 과학기술청 출신으로, 과학기술 정책에 깊이 관여했다. 1990년대 초 자민당 과학기술부 회장을 맡아 과학기술기본법 제정을 주도했다. 2001년 고이즈미 내각에서는 과학기술 정책 담당 대신으로서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논의하는 STS 포럼(Science and Technology in Society Forum)을 창립하고 의장을 맡는 등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국제 협력에도 힘썼다.
=== 정계 은퇴 이후 ===
오미 고지는 정계 은퇴 후에도 자신이 설립에 관여한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원대학교 학원 이사, STS 포럼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2022년 4월 14일, 폐렴으로 인해 향년 89세로 사망했다.
3.1. 정치 입문 전
오미 고지는 1932년 군마현 누마타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소년 시절에는 아버지의 사업을 도왔으며, 종종 행상도 나섰다. 군마현립 누마타 고등학교 재학 중에도 가업에 종사하며, 취업 과정에서 부기 등을 배웠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진학 과정으로 변경하여, 1952년 히토쓰바시 대학 상학부에 입학,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1956년 졸업하고 통상산업성에 들어갔다. 동기로는 스기야마 히로시 (통산사무차관), 노노우치 타카시 (자원에너지청 장관), 카와사키 히로시 (경제기획심의관, 도쿄전력 부사장), 모리야 카즈히코 (일본 화학섬유협회 이사장) 등이 있다.
과학기술청원자력국 정책과 과장 보좌를 2년간 역임한 후, 1970년 외무성주 뉴욕 일본 총영사관영사가 되었다. 1974년 통상산업성 통상정책국 남아시아 동유럽 과장, 1976년 오사카 통상산업국 총무부장, 1978년 중소기업청 소규모 기업 정책과장, 1979년 과학기술청 장관 관방 총무과장을 거쳐 1981년 중소기업청 지도부장을 역임했다.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1982년 퇴직했다.
3.2. 정치 활동
오미 고지는 1983년 제3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당선 후 자민당에 입당하여 후쿠다파(세이와 정책 연구회)에 소속되었다. 1990년 대장성 정무 차관, 1992년 자민당 상공부 회장을 역임했다. 당시 과학기술청 출신으로 유일한 국회의원으로서 과학기술 정책에 정통하여, 1993년에는 자민당 과학기술부 회장에 취임했다. 1995년에는 과학기술 기본법 제정에 힘썼으며, 같은 해 중의원 대장성 위원장을 지냈다.
1997년 제2차 하시모토 내각 개조내각에서 경제기획청 장관으로 첫 입각하였다. 2001년 제1차 고이즈미 내각에서는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대신 겸 과학기술 정책 담당 대신을 역임했다. 2006년 제1차 아베 신조 내각과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내각에서는 재무대신을 역임했다.
2009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한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3.3. 과학기술 정책
오미 고지는 과학기술청 출신으로, 과학기술 정책에 깊이 관여했다. 1990년대 초 자민당 과학기술부 회장을 맡아 과학기술기본법 제정을 주도했다. 2001년 고이즈미 내각에서는 과학기술 정책 담당 대신으로서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논의하는 STS 포럼(Science and Technology in Society Forum)을 창립하고 의장을 맡는 등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국제 협력에도 힘썼다.
3.4. 정계 은퇴 이후
오미 고지는 정계 은퇴 후에도 자신이 설립에 관여한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원대학교 학원 이사, STS 포럼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2022년 4월 14일, 폐렴으로 인해 향년 89세로 사망했다.
4. 정책 및 사상
오미 고지는 통상산업성에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경제 성장과 과학기술 발전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노선을 추구했다. 오키나와 과학 기술 대학원 대학, J-STAGE, 산학관 연계 추진 회의, 과학 기술 기본법 창설 등에 기여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과학기술 정책 담당 국무대신과 오키나와현 및 북방 영토 문제 담당 국무대신을 역임했으며, 아베 신조 내각에서는 재무상을 역임했다. 국가 소비세 인상을 지지했으나, 아베 신조는 지출 삭감을 통해 예산 균형을 이루려 했다.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5. 논란
5.1. 정치자금 문제
오미 고지는 제1차 아베 내각의 재무대신 임기 중에 대규모 정치자금 파티를 개최하여 약 5340만 엔의 수입을 올린 것이 산케이 신문에 보도되어 논란이 되었다. 대신 규범에서는 대규모 정치자금 파티를 자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8년 6월 5일, 오미가 대표를 맡고 있던 자민당 군마현 중의원 비례구 제2지부가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공시 다음날인 2003년 10월 29일에 국가(법무성)와 도급 계약을 맺고 있던 설비 공사 회사(군마현 다카사키시)로부터 100만 엔의 기부를 받은 사실이 보도되었다. 공직선거법은 국가와 도급 계약을 맺은 기업이 국정 선거에 관해 기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6. 소속 정당 및 단체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세이와 정책 연구회(마치무라파)에 속해 있다. 또한 한일의원연맹,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등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