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오 시게노스케
1. 개요
우시오 시게노스케는 1881년 시마네현 출생으로,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내무성에 들어가 행정법 전문가로 활동했다. 내무 차관, 귀족원 칙선 의원을 거쳐 1936년 히로타 내각에서 내무대신 겸 문부대신을 역임했다. 추밀원 고문관, 부의장을 지냈으며, 일본국 헌법 시행과 함께 공직에서 은퇴했다. 1955년 사망했으며, 묘소는 젠푸쿠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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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우시오 시게노스케 |
|---|---|
| 출생일 | 1881년 8월 11일 |
| 출생지 | 시마네현 미노군 요코타 마을 (현재의 마스다시) |
| 사망일 | 1955년 9월 1일 |
| 사망 원인 | 알 수 없음 |
| 안장 장소 | 알 수 없음 |
| 국적 | 일본 |
| 직업 | 관료, 각료 |
| 출신 학교 |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 졸업 (현재의 도쿄 대학 법학부) |
|---|
| 소속 정당 | 연구회 |
|---|---|
| 전 직책 | 내무차관 |
| 작위 및 훈장 | 정2위, 훈1등 |
| 배우자 | 우시오 미네 |
| 친족 (정치인) | 의붓 형부: 데라지마 도시미쓰(귀족원 의원) |
| 귀족원 의원 임명일 | 1931년 8월 7일 |
| 귀족원 의원 퇴임일 | 1938년 12월 9일 |
| 귀족원 의원 재임명일 | 1938년 12월 6일 |
| 귀족원 의원 퇴임일 | 1946년 6월 13일 |
| 히로타 내각 문부대신 임명일 | 1936년 3월 9일 |
| 히로타 내각 문부대신 퇴임일 | 1936년 3월 25일 |
| 히로타 내각 내무대신 임명일 | 1936년 3월 9일 |
| 히로타 내각 내무대신 퇴임일 | 1937년 2월 2일 |
| 추밀원 부의장 임명일 | 1946년 6월 13일 |
| 추밀원 부의장 퇴임일 | 1947년 5월 2일 |
| 추밀원 고문관 임명일 | 1936년 3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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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6등 서보장 수훈자 -
사이토 마코토
사이토 마코토는 일본 제국의 해군 군인이자 정치가로, 해군대신,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 등을 역임하며 해군력 확장, 문화 통치 추진, 만주국 승인, 국제연맹 탈퇴 등의 행적을 남겼으나 2·26 사건으로 암살당했다. -
훈6등 서보장 수훈자 -
가노 지고로
가노 지고로는 일본의 교육자이자 문부관료이며 유도의 창시자로서, 유도를 세계적으로 보급하고 국제 스포츠계 및 일본 교육계에 큰 공헌을 했다. -
도쿄 대학 동문 -
미시마 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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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대학 동문 -
김상협
김상협은 삼양그룹 창업주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의 조카로,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 교수와 총장,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며,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
훈1등 욱일대수장 수훈자 -
혼마 마사하루
혼마 마사하루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 필리핀 공략전을 지휘했으나 바탄 죽음의 행진에 대한 책임으로 전범으로 처형되었고, 그의 재판은 지휘자 책임 적용 및 맥아더의 복수심 작용 등의 논란이 있다. -
훈1등 욱일대수장 수훈자 -
도고 시게노리
도고 시게노리는 조선인 도공 후손으로 도쿄 제국대학 졸업 후 외무성에 들어가 만주, 스위스, 독일, 소련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소일 중립 조약 체결에 기여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외무대신으로서 미일 관계 개선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전범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며, 종전 과정에서 포츠담 선언 수용을 주장하여 일본 항복에 기여한 외교관이자 정치인이다.
2. 생애
우시오 시게노스케는 1881년 시마네현에서 태어나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내무성 관료로 경력을 시작했다. 내무성에서 보건복지국장, 지방국장을 거쳐 1928년 차관을 역임했다. 1931년 귀족원 의원으로 임명되었다가 1932년 내무성 차관으로 복귀하여 선거 부패 감소와 공무원 임명 개혁을 이끌었다.
1935년 히로타 고키 내각에서 내무대신과 임시 문부대신을 겸임했다. 그는 군부에 반대하고 정당과 관계가 없으며 관료적 혁신과 개혁에 대한 강점으로 인해 발탁되었지만, 이로 인해 많은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1938년 추밀원 의원이 되었고, 1946년 미국 점령 당국에 의해 추밀원이 해산되기 전까지 부의장을 지냈다. 그는 전후 일본국 헌법을 검토하고 논평하기 위한 13인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2.1. 초기 생애 및 내무 관료 경력
시마네현 미노 군 요코타 촌(현재의 마스다시 요코타초)에서 면직업자 潮房太郎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쿠분칸 중학교,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07년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을 헌법 전공으로 졸업하고 내무성에 들어갔다. 행정법 전문가로서 위생국 국장·지방국장 등을 역임했다. 1928년 다나카 기이치 내각의 내무 차관이 되어, 하마구치 내각·제2차 와카쓰키 내각에서 차관을 지낸 후 1931년에 귀족원 칙선 의원이 되었다(연구회 소속). 1932년, 사이토 내각에서 다시 내무 차관을 역임하며 문관 임용령 개정, 선거 숙정 운동 등에 관여했다.
2.2. 히로타 내각 내무대신
1936년 히로타 고키의 내각에 내무대신 겸 문부대신으로 입각했다. 군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당파색이 옅다는 이유로 기용되었지만, 내무성 내 혁신 관료들의 내상 임명 반대 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가라사와 토시키, 아베 모토키, 아이카와 가쓰로쿠 등 유력 혁신 관료들을 휴직 처분하거나 좌천시켰다. 그러나 당파색 배제를 내세우며 내무 정무 차관에 나베시마 나오쓰네, 참여관에 키모츠키 카네히데 등 자신과 같은 귀족원 의원을 기용하고, 내무 내무 차관에는 유자와 미치오를 임명했기 때문에 정당과 군부에서도 반발을 샀다.
2.3. 추밀원 고문관 및 광복 이후
1938년 추밀원 고문관이 되었다. 1946년 시미즈 스미가 추밀원 의장으로 승진하면서 후임 부의장이 되었다. 일본국 헌법 시행과 동시에 추밀원이 폐지되면서 공직 추방을 당해 은퇴했다.
1955년 1월 9일 사망했다. 묘소는 도쿄도 미나토구 아자부주반의 젠푸쿠지이다.
3.1. 위계
3.2. 훈장 등
| 수여 날짜 | 훈장 등 |
|---|---|
| 1915년 (다이쇼 4년) 11월 10일 | 대례 기념장 (다이쇼) |
| 1916년 (다이쇼 5년) 1월 19일 | 훈6등 즈이호장 |
| 1916년 (다이쇼 5년) 4월 1일 | 단광 욱일장 |
| 1919년 (다이쇼 8년) 7월 29일 | 훈5등 즈이호장 |
| 1920년 (다이쇼 9년) 1월 30일 | 훈4등 즈이호장 |
| 1920년 (다이쇼 9년) 11월 1일 | 욱일소수장 |
| 1921년 (다이쇼 10년) 7월 1일 | 제1회 국세 조사 기념장 |
| 1922년 (다이쇼 11년) 8월 29일 | 훈3등 즈이호장 |
| 1926년 (다이쇼 15년) 7월 12일 | 훈2등 욱일중광장 |
| 1928년 (쇼와 3년) 12월 28일 | 금배 1조 |
| 1930년 (쇼와 5년) 12월 5일 | 제도 부흥 기념장 |
| 1934년 (쇼와 9년) 4월 29일 | 금배 1개 |
| 1934년 (쇼와 9년) 6월 21일 | 훈1등 즈이호장 |
| 1937년 (쇼와 12년) 11월 22일 | 독일 독일 독수리 대십자 훈장 |
| 1938년 (쇼와 13년) 11월 2일 | 은배 1조 |
| 1940년 (쇼와 15년) 8월 15일 | 기원 2600년 축전 기념장 |
| 1943년 (쇼와 18년) 12월 20일 | 욱일대수장 |
4.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아내 | 우시오 미네 | 마스다 세이쇼의 둘째 딸 |
| 형 | 우시오 겐타로 | 사법관 |
| 친척 | 우시오 마사토 | 평론가 (에노스케는 우시오 마사토의 증조부의 동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