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콘 도쿠타로
1. 개요
우콘 도쿠타로는 일본의 축구 선수로, 1936년 하계 올림픽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골을 넣으며 일본의 승리를 이끌어 '베를린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게이오기주쿠 대학 재학 중 1932년 천황배에서 우승했으며, 1934년 극동 선수권 대회, 1936년 베를린 올림픽, 1940년 동아 경기 대회에 일본 대표로 참가했다. 1940년까지 일본 대표팀에서 5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1944년 파푸아뉴기니에서 전사했다.
| 이름 | 우콘 도쿠타로 |
|---|---|
| 출생일 | 1913년 9월 23일 |
| 출생지 | 일본 제국 효고현 고베시 |
| 사망일 | 1944년 3월 (30세) |
| 사망지 | 뉴기니 부건빌섬 |
| 신장 | 173cm |
| 포지션 |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
| 유소년 클럽 | 고베 다이이치 고등학교 |
|---|---|
| 유소년 클럽 연도 | '' 1931–1937 |
| 유소년 클럽 | 게이오기주쿠 대학 |
| 클럽 | 고베 클럽 |
| 국가대표팀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국가대표팀 연도 | 1934–1940 |
| 국가대표팀 출장 | 5 |
| 국가대표팀 득점 | 1 |
| 팀 | 게이오 BRB |
|---|---|
| 대회 | 천황배 |
| 우승 연도 | 1932년 |
| 별칭 | '' |
|---|---|
| 가타카나 표기 | 우콘 도쿠타로우 |
| 로마자 표기 | Ukon Tokutar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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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사망자 -
나구모 주이치
나구모 주이치는 1887년 출생하여 해군병학교를 졸업하고 진주만 공격을 지휘한 일본 제국 해군의 군인이며, 미드웨이 해전 패배 후 사이판 전투에서 자결하고 해군 대장으로 추서되었다. -
일본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사망자 -
고토 아리토모
고토 아리토모는 일본 제국 해군의 수뢰전술 전문가로 함장 및 함대 사령관을 역임하며 제1차 세계 대전과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으나, 사보섬 해전에서 아군 오인으로 전사 후 해군 중장으로 추서되었고, 군사적 능력과 아군 오인 공격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공존한다. -
1936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다케우치 데이조
다케우치 데이조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하며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 우승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일본 첫 승리를 이끌었고, 사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다케우치 데이조상'이 제정되었다. -
1936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김용식 (축구인)
김용식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대한민국 축구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하며 일본 국가대표로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고,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 겸 감독으로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1954년 FIFA 월드컵에서는 감독으로서 대한민국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은퇴 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2. 선수 시절
1913년 9월 23일, 일본 효고현 고베시 스미요시촌에서 실업가이자 자산가인 우콘 후쿠지로와 토키(결혼 전 성 고데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효고현립 제1 고베 중학교 4학년이던 1930년에는 제12회 전국 중등 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1931년 게이오기주쿠 대학에 입학하여 소커부에서 예과 1학년 때부터 주전 선수로 활약했으며, 팀은 그의 재학 기간 동안 간토 대학 리그 등에서 여러 차례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당시 소커부 감독이었던 마츠마루 테이이치는 그를 "천재"라고 평가했다고 전해진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34년 5월, 제10회 극동 선수권 경기 대회에 참가할 축구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5월 15일 필리핀 대표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국가대표 경기에 출전했다. 1936년에는 베를린 올림픽에 축구 일본 대표로 참가하여, 1회전 스웨덴 대표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하며 팀의 3-2 역전승에 기여했다. 이 경기는 훗날 '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리게 된다.
1937년 게이오기주쿠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메이지 광업에 입사했다. 선수로서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는 1940년 6월 16일 고시엔 미나미 운동장에서 열린 기원 2600년 봉축 동아 경기 대회의 필리핀 대표전이었다.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징집되어 육군에 복무했으며, 1944년 부겐빌 섬 전투 중 전사했다.
2.1. 클럽 경력
게이오 대학 학생 시절, 마쓰마루 데이이치 등과 함께 게이오 BRB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1932년 천황배 우승에 기여했다. 게이오 BRB는 게이오 대학의 현역 선수들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또한 지역 클럽인 고베 클럽에서도 활약했다. 그는 선수 시절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1934년 5월, 게이오기주쿠 대학 재학 중 마닐라에서 열린 1934년 극동 선수권 대회 축구에 참가할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선발되었다. 이 대회에서 5월 15일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를 했다.
1936년에는 베를린에서 개최된 1936년 하계 올림픽 축구에 일본 대표로 참가했다. 이 대회 1라운드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후반 17분에 동점골을 기록하며 팀의 3-2 역전승과 8강 진출에 기여했다. 당시 스웨덴은 1924년 하계 올림픽 축구 동메달을 획득한 강팀이었기에, 이 승리는 일본에서 '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리며 역사적인 승리로 평가받는다. 2016년, 당시 올림픽 대표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우콘은 1940년까지 일본 대표팀 소속으로 A매치 5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주요 참가 대회
* 제10회 극동 선수권 대회 축구 (1934년)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축구 (1936년)
* 기원 2600년 봉축 동아 경기 대회 (1940년)
4. 개인 기록
(내용 없음)
4.1. 국가대표팀 기록
1934년 5월, 게이오기주쿠 대학 재학 중 마닐라에서 열린 1934년 극동 선수권 대회 축구에 참가하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5월 15일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1936년에는 베를린에서 열린 1936년 하계 올림픽 축구에 일본 대표로 참가했다. 당시 일본은 1라운드에서 1924년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강호 스웨덴을 만났다. 우콘은 이 경기에서 후반 17분에 동점골을 기록하며 팀의 3-2 역전승에 기여했다. 올림픽 본선에서 일본 축구가 거둔 첫 승리이자 역사적인 승리로 평가받는 이 경기는 일본 내에서 "베를린의 기적"(ベルリンの奇跡일본어)으로 불린다. 2016년, 이 당시의 일본 대표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우콘은 1934년부터 1940년까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5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 일본 | ||
|---|---|---|
| 연도 | 출장 | 득점 |
| 1934 | 2 | 0 |
| 1935 | 0 | 0 |
| 1936 | 2 | 1 |
| 1937 | 0 | 0 |
| 1938 | 0 | 0 |
| 1939 | 0 | 0 |
| 1940 | 1 | 0 |
| |5||1 |
4.2. 국가대표팀 출전
게이오기주쿠 대학 재학 중이던 1934년 5월, 마닐라에서 열린 1934년 극동 선수권 대회 축구에 참가할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었다. 5월 15일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1936년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1936년 하계 올림픽 축구에 일본 대표로 참가했다. 8월 4일에 열린 스웨덴과의 1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17분 동점골을 기록하며 팀의 3-2 역전승과 8강 진출에 기여했다. 당시 스웨덴은 1924년 하계 올림픽 축구 동메달을 획득한 강팀이었기에, 이 승리는 일본에서 "베를린의 기적"(ベル린노 키세키)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일본 대표팀은 2016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우콘은 이후 8월 7일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도 출전했으나 팀은 0-8로 패배했다.
1940년 6월 16일, 일본 효고현 고시엔 미나미 운동장에서 열린 봉축 동아 경기 대회 필리핀과의 경기에 출전하여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다. 이 경기는 그의 마지막 A매치가 되었다.
우콘 도쿠타로는 1934년부터 1940년까지 총 5번의 A매치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 일본 | ||
|---|---|---|
| 연도 | 출전 | 골 |
| 1934 | 2 | 0 |
| 1935 | 0 | 0 |
| 1936 | 2 | 1 |
| 1937 | 0 | 0 |
| 1938 | 0 | 0 |
| 1939 | 0 | 0 |
| 1940 | 1 | 0 |
| | 5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