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건빌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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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건빌 섬은 파푸아뉴기니에 속한 섬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격전지였으며,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자치를 요구하며 내전을 겪었다. 2019년 독립 국민 투표에서 98% 이상의 찬성으로 독립이 결정되었으며, 2027년 독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1768년 프랑스 탐험가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이 섬을 발견하면서 이름을 얻었으며, 1885년 독일 식민지가 되었다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호주 위임 통치령이 되었다. 이후 파푸아뉴기니의 일부가 되었고, 1988년부터 1998년까지 내전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부건빌 섬은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며, 구리 광산 개발로 경제적 중요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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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카섬은 파푸아뉴기니 부건빌 자치구에 속하며 약 3만 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한 섬으로, 한때 독일 제국의 지배와 일본군 점령을 겪었으며, 주민들은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언어를 사용하고 전통적인 멜라네시아 사회 구조를 유지하며 기독교를 믿고, 과거 사회 운동과 화물 숭배 현상이 있었고, 부건빌 자치구의 수도인 부카가 주요 도시이다. - 부건빌 자치주 - 부건빌 내전
부건빌 내전은 팡구나 광산 개발 불만으로 촉발된 부건빌 혁명군의 분리 독립 운동이 파푸아뉴기니 정부군의 강경 진압과 BRA 내부 분열로 장기화되다가 2001년 평화 협정 체결 후 2019년 독립 주민투표를 거쳐 2027년 독립을 목표로 하는 분쟁이다. - 파푸아뉴기니의 섬 - 뉴브리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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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건빌섬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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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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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위치 | 멜라네시아 |
좌표 | 남위 6도 14분 40초, 동경 155도 23분 2초 |
군도 | 솔로몬 제도 (군도) |
총 섬 수 | 알려진 바 없음 |
면적 | 9,318 km2 |
최고봉 | 발비 산 |
해발고도 | 2,715 m |
인구 밀도 | 32.19명/km2 |
행정 구역 | |
국가 | 파푸아뉴기니 |
행정 구역 단위 | 부건빌 자치구 |
가장 큰 도시 | 알려진 바 없음 |
가장 큰 도시 인구 | 알려진 바 없음 |
기타 정보 | |
시간대 | UTC+11 |
추가 정보 | 알려진 바 없음 |
2. 역사
1768년, 세계 주항 탐험을 하던 프랑스 탐험가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이 이 섬의 연안을 항해했고, 이후 그의 이름이 섬에 붙여졌다.[4]
1885년에 독일 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독일령 뉴기니의 일부가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 1914년에 오스트레일리아가 점령했지만, 1918년부터 국제 연맹에 의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위임 통치령이 되었다.[7]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등에 의해 점령되었다. 부건빌 섬은 미국 육군 항공군(USAAF), 오스트레일리아 공군(RAAF), Royal New Zealand Air Force|뉴질랜드 공군영어(RNZAF) 각 군에게 중요한 항공 기지가 되었다.
1943년 4월 18일,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전선 시찰을 목적으로 탑승했던 일식 육상 공격기가 이 섬 상공에서 미국 육군 항공대 P-38 전투기에 격추되어 야마모토가 전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해군 갑 사건).[11] 같은 해 11월 2일에는 미국군이 상륙했고, 이후 종전까지 전투가 계속되었다 (부건빌 섬 전투). 일본에서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여 부건빌 섬을 '''묘지 섬'''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75년, 국제 연합의 노력으로 파푸아뉴기니의 일부로 독립하였다. 부카 섬을 포함한 부건빌 자치주에서는 현재도 독립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2. 1. 초기 역사
최후 빙하기 동안, 현재의 부건빌 섬은 "대(大) 부건빌"로 알려진 단일 육지의 일부였으며, 이는 부카 섬 북쪽 끝에서 응겔라 제도까지 뻗어 있었다. 인류 정착의 가장 초기의 증거는 부카 섬의 킬루 동굴에서 발견되었으며, 가장 오래된 유물은 기원전 26,700년에서 18,100년 사이의 것이다. 최초의 정착민은 현대 파푸아인 및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멜라네시아인이었다. 기원전 2천년기에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사람들이 도착하여 돼지, 닭, 개, 그리고 흑요석 도구를 가져왔다. 1768년, 세계 주항 탐험을 하던 프랑스 탐험가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이 이 섬의 연안을 항해했고, 이후 그의 이름을 따서 섬의 이름이 명명되었다.[4]19세기에 영국과 미국의 포경선들이 식량, 물, 나무를 얻기 위해 이 섬을 방문했다. 기록상 최초는 1822년의 ''로스코''였고, 마지막은 1881년의 ''팜메토''였다.[5] 이후, 독일 제국은 1899년 부건빌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독일령 뉴기니에 편입시켰다. 기독교 선교사들이 1902년 섬에 도착했다.[6]
1885년에 독일 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독일령 뉴기니의 일부가 되었다. 그 후 제1차 세계 대전에 따라 1914년에 오스트레일리아가 점령했지만, 1918년부터 국제 연맹에 의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위임 통치령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호주는 부건빌을 포함한 독일령 뉴기니를 점령했다. 이는 1920년 국제 연맹 위임 통치 하의 호주 뉴기니 영토의 일부가 되었다.[7]
2. 2. 독일 식민지 시대와 제1차 세계 대전
1885년 독일 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독일령 뉴기니의 일부가 되었다.[5]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 1914년 오스트레일리아가 점령했지만, 1918년부터 국제 연맹에 의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위임 통치령이 되었다.[7]2. 3.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은 1942년에 부건빌 섬을 침략했다. 그러나 연합군은 1943년 섬의 통제권을 되찾기 위해 부건빌 전역을 시작했다.[8][9] 격렬한 전투에도 불구하고, 일본 수비대는 1945년까지 섬에 주둔했다.

1943년 4월 18일, 태평양 전쟁 중 부건빌 섬에서 연합 함대 사령관이었던 일본 해군 제독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탑승한 비행기가 미국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정글에 추락하면서 사망했다. 부건빌 섬은 미국 육군 항공군(USAAF), 오스트레일리아 공군(RAAF), Royal New Zealand Air Force|뉴질랜드 공군영어(RNZAF)에게 중요한 항공 기지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여 부건빌 섬을 '''묘지 섬'''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2. 4. 독립 운동과 부건빌 내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부건빌섬은 일본군과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연합군 간의 격전지였다. 1943년 4월 18일,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전선 시찰 중 이 섬 상공에서 미국 육군 항공대 P-38 전투기에 격추되어 전사했다. (해군 갑 사건)[11]1975년 파푸아뉴기니의 일부로 독립한 후에도 부카 섬을 포함한 부건빌 자치주에서는 독립 운동이 계속되었다. 1988년부터 1998년까지 부건빌 내전으로 15,000명 이상이 사망했다.[12] 1997년부터 뉴질랜드 중재로 평화 회담이 시작되어 자치권을 얻었고, 2001년에는 독립 국민투표 약속을 포함한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다.[12]
2019년 11월 23일부터 12월 7일까지 진행된 독립 국민투표에서 유효 투표의 98.31%가 완전 독립에 찬성했다.[2][13] 그러나 이 투표는 구속력이 없으며, 부건빌의 지위에 대한 최종 결정은 파푸아 뉴기니 정부가 갖는다.[2][13]
2. 5. 독립을 향한 길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과 연합군 간의 격전지였다.[12]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자치를 주장하며 약 2만 명의 사상자를 낸 결과 자치를 얻었다.[12] 하지만 부건빌 주민들은 분리독립을 원했고, 2016년에서 2019년에 실시된 국민 투표에서 98.31%가 완전한 독립에 찬성하여 2027년에 독립할 예정이다.[2][13] 남수단처럼 부건빌이 독립하여 유엔에 가입하면 194번째 회원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1949년, 부건빌을 포함한 뉴기니 영토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파푸아 영토와 합병되어 오스트레일리아 행정 하의 국제 연합 신탁 통치령인 파푸아 뉴기니 영토가 되었다.[10] 1975년 9월 9일, 오스트레일리아 의회는 파푸아 뉴기니 독립법 1975를 통과시켰다.[11] 1975년 9월 11일, 부건빌은 북 솔로몬 공화국을 선포했지만, 이후 파푸아 뉴기니에 정치적으로 흡수되었다.[11]
1988년부터 1998년까지 부건빌 내전으로 15,000명 이상이 사망했다.[12] 뉴질랜드가 중재한 평화 회담은 1997년에 시작되어 자치로 이어졌다.[12] 오스트레일리아 주도 하의 다국적 평화 감시단 (PMG)이 배치되었다.[12] 2001년, 독립 국민투표 약속을 포함한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다.[12] 이 국민투표는 2019년 11월 23일부터 12월 7일까지 진행되었으며, 12월 11일에 결과가 발표되었다.[12] 투표는 파푸아 뉴기니 내에서 더 큰 자치를 누릴 것인지, 아니면 완전한 독립을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었는데, 유효 투표 중 98.31%가 완전한 독립에 찬성했다.[2][13] 이 투표는 구속력이 없으며, 부건빌의 지위에 대한 최종 결정은 파푸아 뉴기니 정부가 갖는다.[2][13]
3. 지리
부건빌섬은 솔로몬 제도 군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이 섬은 솔로몬 제도 우림 생태 지역의 일부이다. 부건빌섬과 인접한 부카섬은 깊이 300m의 해협으로 분리된 하나의 육괴를 이룬다. 이 섬의 면적은 9000sqkm이며, 2400m까지 솟아오르는 활화산, 휴화산 또는 사화산이 여러 개 있다. 부건빌섬 북중부에 위치한 바가나는 눈에 띄게 활동적이며,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보이는 가스를 분출한다.[14] 2013년에는 부건빌섬에서 규모 6.4의 지진이 감지되었으며, 진앙은 부건빌섬의 마을인 팡구나에서 남쪽으로 57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15]
뉴기니섬 동쪽에 위치하며, 국가가 아닌 지리 구분으로서의 솔로몬 제도에서 가장 넓은 면적(10,049제곱킬로미터)을 자랑한다. 화산섬으로, 최고 지점은 2715m의 발비산이다.
주요 도시는 아라와, 부인이다.
4. 기후
부건빌섬은 쾨펜 분류로 열대 우림 기후(Af)를 보인다. 가장 건조한 달은 2월이다.[30]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연간 |
---|---|---|---|---|---|---|---|---|---|---|---|---|---|
최고 기온 (°C) | 32°C | 32°C | 31°C | 31°C | 31°C | 31°C | 30°C | 31°C | 31°C | 30°C | 31°C | 31°C | 31°C |
최저 기온 (°C) | 22°C | 22°C | 23°C | 22°C | 22°C | 22°C | 22°C | 22°C | 22°C | 22°C | 22°C | 23°C | 22°C |
강수량 (mm) | 564mm | 191mm | 373mm | 290mm | 282mm | 241mm | 505mm | 323mm | 353mm | 582mm | 417mm | 488mm | 4608mm |
5. 생태
부건빌섬은 주로 숲으로 덮여 있다. 리오 틴토 소유의 팡구나 광산에서 이루어진 구리 채굴은 중금속으로 인한 환경적 영향으로 알려져 있었다.[16] 최근에는 인구 증가를 충족시키기 위한 산림 벌채가 섬의 많은 강들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17] 유엔 환경 계획은 팡구나 광산의 정화 작업을 지원하고 더욱 엄격한 환경 기준을 적용하여 재개장을 모색할 의사를 밝혔다.[18]
6. 교통
오랜 내전의 영향으로 부건빌섬에는 포장 도로가 없으며, 아라와, 불린 등 대도시를 연결하는 해안도로가 주요 교통로이나 이마저도 섬의 남서쪽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7. 경제
부건빌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 매장량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으며, 1972년부터 개발이 진행되어 왔다. 파구나 광산은 10억 톤의 구리 광석과 1,200만 온스의 금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20] 이후 이 광산은 호주가 운영하는 광산에 대한 반란으로 폐쇄되었다.[21]
장기간의 내전으로 인해 기반 시설이 쇠퇴하여 정치 경제의 중심이 섬 북쪽에 있는 부카 섬으로 옮겨졌다. 본섬에서는 코프라와 커피 생산이 중심이지만, 구리 광산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8. 인구 통계
빨강: 북부 부건빌어족, 파랑: 남부 부건빌어족, 녹색: 중앙 솔로몬어족, 회색: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오스트로네시아어 계통의 멜라네시아인이 중심이다. 부건빌 분쟁을 계기로 부건빌인 외에는 살 수 없게 되었다. 과거에는 주로 BCL(부건빌 구리 광산), 그 관련 직업이나 주 정부 등에서 일하던 사람들(파푸아뉴기니 내에서도 부건빌 외 출신자)이 있었지만, 거의 사라졌다.
이 섬에서는 영어, 톡 피신 외에도 할리아어, Teop language|테오프어영어, Bannoni language|바노니어영어, 로토카스어, Rapoisi language|쿠누아어영어, Terei language|부인어영어, Siwai language|모투나어영어, Naasioi language|나시오이어영어 등이 사용된다.[23][24]
8. 1. 주민
부건빌섬의 대다수 주민은 기독교인이며,[22] 추정상 70%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고, 상당수가 1968년부터 파푸아뉴기니 및 솔로몬 제도 연합 교회 신자이다.오스트로네시아어 계통의 멜라네시아인이 중심이다. 부건빌 분쟁을 계기로 부건빌인 외에는 살 수 없게 되었다. 과거에는 주로 BCL(부건빌 구리 광산), 그 관련 직업이나 주 정부 등에서 일하던 사람들(파푸아뉴기니 내에서도 부건빌 외 출신자)이 있었지만, 거의 사라졌다.
8. 2. 언어
부건빌 주에는 3개의 어족에 속하는 많은 토착 언어가 있다. 섬 북쪽 끝과 해안을 따라 흩어져 있는 언어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한다. 부건빌 섬의 북중앙 및 남부 엽의 언어는 북부 및 남부 부건빌어족에 속한다.가장 널리 사용되는 오스트로네시아어는 할리아어와 그 방언으로, 부카 섬과 북부 부건빌의 셀라우 반도에서 사용된다. 나시이어, 코로코로 모투나, 테레이어, 할리아어와 같은 더 큰 언어는 서로 이해되지 않는 방언으로 나뉜다. 일반적인 의사 소통을 위해 대부분의 부건빌 사람들은 톡 피신을 공용어로 사용한다. 영어와 톡 피신은 공식 업무 및 정부의 언어이다.[23]
다른 오스트로네시아어로는 부건빌, 부카, 주변 섬 북부에서 사용되는 네한어, 페타츠어, 솔로스어, 사포사어(타이오프), 하혼어 및 틴푸츠어가 있다. 이 언어들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노니어와 토라우어는 이전 언어와 밀접한 관련이 없는 오스트로네시아어이며, 부건빌 중부 및 남부의 해안 지역에서 사용된다. 인근 타쿠 환초에서는 폴리네시아어인 타쿠어가 사용된다.[24] 파푸아어는 부건빌 본섬에 국한되어 있다. 여기에는 음소 수가 매우 적은 언어인 로토카스어, 에이보어, 테레이어, 케리아카어, 나시이어(키에타), 나고비시어, 시와이어(모투나), 바잇시 (때로는 시와이어의 방언으로 간주됨), 우사이어 등이 있다.
9. 인권 문제
부건빌 섬은 내전 기간 동안 여러 해 동안 파푸아뉴기니의 봉쇄로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섬 주민들은 의료 자원 부족으로 많은 사망자를 냈다.[25]
2013년 유엔 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남성 843명 중 62%(530명)가 여성 또는 소녀를 최소 한 번 이상 강간했으며, 26%(217명)는 파트너가 아닌 여성을 강간했고, 9%(74명)는 집단 강간을 저질렀다고 응답했다. 또한, 8%(67명)는 다른 남성이나 소년을 강간한 것으로 나타났다.[26]
같은 해 유엔 개발 계획, 유엔 인구 기금, 유엔 여성 기구, 유엔 자원봉사 계획 등 4개의 유엔 기구가 시행한 조사에서는 부건빌 섬 남성의 40.7%가 여성을 강간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자신의 파트너를 포함할 경우 그 비율은 62.4%에 달했다. 또한 남성의 23%는 14세 이하에 처음 강간을 했다고 답했으며, 70% 이상이 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9]
10. 대중 문화
1999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코코넛 혁명은 환경 파괴로부터 섬을 구하고 독립을 쟁취하려는 원주민들의 투쟁을 다루고 있다.[27]
호주 다큐멘터리 제작자 아만다 킹과 프론트야드 필름의 파비오 카바디니가 제작한 영화 영원한 섬(2000)은 부건빌 사람들이 파푸아뉴기니 군의 봉쇄로 인해 외부와의 교역이나 접촉 없이 거의 10년(1989~1997) 동안 살아남은 기지를 보여준다.[28]
앤드루 애덤슨 뉴질랜드 감독의 영화 미스터 핍(2012)는 뉴질랜드 작가 로이드 존스의 소설 미스터 핍을 원작으로 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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