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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전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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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육군 전우 협회(ACA)는 1932년 아일랜드 국방군 사령관 네드 크로닌에 의해 창설된 단체로, 아일랜드 자유국 군대 참전 용사들을 위한 조직이었다. 이후 에오인 오더피가 지도자가 되면서 국민 경비대로 개칭, 파시즘적 요소를 차용하여 조직을 개편하고, 더블린 행진을 계획했으나 정부의 금지 조치로 무산되었다. 오더피는 이후 파인 게일 창당에 참여했으나 당내 갈등으로 탈당, 국민 기업 당을 창당했다. 파란 셔츠단은 파시즘 논쟁의 중심에 있으며, 아일랜드 사회에서 파시스트로 묘사되는 것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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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전우협회
기본 정보
블루셔츠 로고
블루셔츠 로고
다른 이름육군전우협회 (Army Comrades Association; ACA)
국가 방위대 (National Guard)
청년 아일랜드 (Young Ireland)
청년 연맹 (League of Youth)
게일어: Na Léinte Gorma (너 렌터 고르마)
상세 정보
지도자네드 크로닌
에오인 오더피
토머스 F. 오히긴스
어니스트 블라이스
창립일1932년 2월 9일
해산일1935년
합병 대상피네 게일 (친 크로닌 파벌)
계승 조직국가 기업당 (친 오더피 파벌)
국가[[파일:Flag of Ireland.svg|23px|border]] 아일랜드 자유국
신문국가 (The Nation)
이념반공주의
아일랜드 민족주의
통합 민족주의
조합 국가주의
국가 가톨릭주의
정치 성향극우 정치
규모1932년 10월: 8,337명
1934년 3월: 38,000명
1934년 8월 (최대): 48,000명
1935년 9월: 4,000명
블루셔츠 깃발
블루셔츠 깃발

2. 역사

육군 전우 협회(en, ACA)는 1932년 피아나 페일 정부 출범 이후 증가하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활동에 대응하기 위해 아일랜드 국방군 전 사령관 네드 크로닌 주도로 창설되었다.[6] 초기에는 쿠만 나 게일 관련 정치 집회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으며, 토머스 F. 오'히긴스가 지도자를 맡았다.[15]

1933년, 에이먼 데 발레라 정부에 의해 경찰청장에서 해임된 에오인 오더피가 새로운 지도자가 되면서 조직은 '국민 경비대'(en)로 개편되었고, 파란색 셔츠 유니폼과 로마식 경례 등 유럽 파시즘의 영향을 받은 요소들을 도입했다. 이들은 '블루셔츠'(en)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같은 해 8월, 국민 경비대는 더블린에서 대규모 행진을 계획했으나, 피아나 페일 정부는 쿠데타 가능성을 우려하여 이를 금지하고 단체를 불법화했다.[15] 이에 대응하여 쿠만 나 게일, 국민중앙당, 그리고 국민 경비대(이후 '영 아일랜드 협회'로 개칭)는 합당하여 1933년 9월 파인 게일을 창당했으며, 에오인 오더피가 초대 총재로 선출되었다.[15]

그러나 오더피의 극단적인 성향과 지방 선거에서의 부진한 성과는 당내 갈등을 유발했고, 결국 1934년 9월 오더피는 파인 게일을 떠났다. 그의 탈당 이후 블루셔츠 조직은 분열되었으며, 다수는 네드 크로닌의 지도 아래 파인 게일에 남았다.[19] 오더피가 떠난 파인 게일은 W. T. 코스그레이브가 다시 지도력을 잡고 점차 자유 민주주의 노선을 강화했다. 오늘날 파인 게일은 블루셔츠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강조하지 않지만, '블루셔츠'는 여전히 파인 게일을 지칭하는 비판적인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24][25][15]

2. 1. 기원과 초기 역사 (1932-1933)

1932년 2월, 피아나 페일 당이 아일랜드 자유국 정부를 이끌게 되었다. 새 정부는 1932년 3월 18일 공공 안전 법의 효력을 중단시키면서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을 포함한 여러 조직에 대한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이 시기에 일부 IRA 정치범들도 석방되었다. IRA와 석방된 수감자 다수는 이전 쿠만 나 게일 정부와 관련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끊임없는 적대 행위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시 아일랜드의 저명한 사회주의자 중 한 명이자 공화주의 의회와 IRA에서 활동했던 프랭크 라이언은 "우리가 주먹과 부츠를 가진 한, 반역자에게는 자유로운 발언이 없을 것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36] 이후 몇 달간 협박, 인신 공격, 쿠만 나 게일 정치 집회 방해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러한 IRA의 활동 증대에 대응하여, 아일랜드 국방군 사령관이었던 네드 크로닌은 1932년 8월 11일 더블린에서 육군 전우 협회(Army Comrades Association, ACA)를 창설했다.[6]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단체는 아일랜드 군 참전 용사, 즉 자유국 군대의 전 구성원을 위한 협회였다. ACA는 언론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고 판단하여 쿠만 나 게일의 행사에서 보안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IRA와 ACA 사이에 여러 차례 심각한 충돌이 벌어졌다.

1932년 8월, 토머스 F. 오'히긴스가 ACA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다. 쿠만 나 게일 소속 TD였던 어니스트 블라이스, 패트릭 맥길리건, 데스몬드 피츠제럴드 등도 이 조직에 합류했다.[15] 오'히긴스가 지도자로 선택된 배경에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는데, 그의 형인 케빈 오'히긴스가 쿠만 나 게일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1927년에 IRA에 의해 암살당했기 때문이다.[8][9][6]

ACA는 1932년 9월까지 회원 수가 30,000명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10] 그러나 역사가 마이크 크로닌은 ACA가 정기적으로 회원 수를 과장했으며, 당시 실제 회원 수는 8,000명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한다.[11] 여성 회원은 "블루 블라우스"라고 불렸다.[12]

2. 2. 에오인 오더피의 지도 체제 (1933-1934)

오더피와 블루셔츠(여성 회원은 "블루 블라우스"로 불렸다).


1933년 1월, 피아나 페일 정부는 예상치 못한 선거를 실시했고, 정부는 무난히 승리했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IRA와 육군전우협회(ACA) 지지자 간의 폭력 사태가 심각해졌다. 1933년 4월, ACA는 독특한 파란색 셔츠 유니폼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에오인 오더피는 아일랜드 독립 전쟁 시기 IRA의 게릴라 지도자였으며, 아일랜드 내전에서는 국가군의 장군이었다. 또한 1922년부터 1933년까지 아일랜드 자유국의 경찰청장을 지냈다. 1933년 2월 피아나 페일이 재선에 성공하자, 행정부 수반 에이먼 데 발레라는 오더피가 자신을 권력에서 몰아내기 위한 쿠데타를 고려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경찰청장직에서 해임했다.[13]

같은 해 7월, 오더피는 ACA의 지도자직 제안을 수락하고 단체 이름을 국민 경비대(National Guard)로 변경했다. 그는 팔을 뻗는 경례, 유니폼 착용, 대규모 집회 등 유럽 파시즘의 요소를 받아들여 조직을 개편했다. 새로운 조직의 회원은 아일랜드인이거나 부모가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으로 제한되었다. 오더피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존경했으며, 국민 경비대는 조합주의를 주요 정치적 목표로 채택했다. 그가 채택한 헌장에 따르면, 이 조직은 다음과 같은 목표를 가져야 했다.[14]

분야목표
국가 통일아일랜드의 재통일 촉진
이념/종교공산주의와 외국의 통제 및 국가 문제에 대한 영향력에 반대하고 공공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 원칙을 옹호
사회 질서사회 질서를 증진하고 유지
시민 참여조직적이고 규율 있는 자원 봉사 공공 봉사를 정치 생활의 영구적이고 인정된 특징으로 만들고, 건설적인 국가 행동 운동에서 아일랜드 청년을 이끌어감
노사 관계사용자와 고용인의 협력적인 국가 조직을 형성하여 사법 재판소의 도움으로 파업과 직장 폐쇄를 효과적으로 방지하고 산업 영향력을 조화롭게 해결
경제/고용민간 기업이 흡수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경제적인 공공 고용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긴급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의 공식 기관과 협력
농업농업 이익을 보호하기에 충분한 권리와 지위를 가진 농민의 대표적인 국가 법정 조직을 만들고 농업 및 정치 정책의 모든 개정에서 확보
행정국가 및 지방 행정에서 부패와 희생을 폭로하고 예방
국민 정신국가가 경제 및 사회 분야에서 국민에게 효율적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국가 전체에 결합, 규율, 열정 및 애국심적 현실주의 정신을 일깨움


2. 3. 더블린 행진 계획과 좌절 (1933)

1933년 8월, 육군 전우 협회는 더블린에서 글래스네빈 묘지까지 이어지는 퍼레이드를 계획했다. 이 행진은 아일랜드 의회 앞 레인스터 잔디밭에서 잠시 멈춰 연설을 진행하며, 아일랜드의 주요 지도자였던 아서 그리피스, 마이클 콜린스, 케빈 오히긴스를 기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아일랜드 공화군과 여러 사회주의 성향 단체들은 육군전우협회의 더블린 행진 계획에 강하게 반발하며, 행진이 강행될 경우 이를 저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33년 8월 22일 피아나 페일 정부는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과 같은 사태를 우려하고 쿠데타 발생 가능성을 경계하여, 헌법 제2A조를 발동해 퍼레이드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다.[15] 훗날 드 발레라는 당시 아일랜드 육군이 정부의 명령을 따를지, 아니면 다수의 전직 군인들이 속한 육군전우협회를 지지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육군전우협회의 지도자 오더피는 정부의 금지 결정을 수용하며 법을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더블린에서의 중앙 행진 대신, 그리피스, 오히긴스, 콜린스를 추모하는 퍼레이드가 여러 지방에서 개별적으로 열렸다. 드 발레라 정부는 이러한 지방 퍼레이드를 정부의 금지령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고, 결국 육군전우협회를 불법 단체로 선포하기에 이르렀다.[15]

2. 4. 파인 게일 창당과 오더피의 몰락 (1933-1934)

1934년 집회에서 연설하는 에오인 오더피.


네드 크로닌은 오더피 합류 전부터 블루셔츠와 함께했다. 오더피가 파인 게일 통제를 시도하다 실패하자 블루셔츠는 친오더피와 친크로닌 파벌로 나뉘었고, 크로닌 파벌은 파인 게일에 남았다.


아일랜드 정부가 국가 경비대를 금지하자, 이에 대응하여 쿠만 나 가엘과 국민중앙당은 1933년 9월 3일 합당하여 새로운 정당인 파인 게일을 창당했다. 에오인 오더피가 초대 총재로 선출되었고, W. T. 코스그레이브와 제임스 딜런이 부총재를 맡았다. 오더피가 기존 정당 지도자들 대신 총재가 된 것은 파인 게일이 단순히 쿠만 나 가엘의 연장선이라는 인식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15] 국가 경비대는 '영 아일랜드 협회'로 이름을 바꾸고 파인 게일의 청년 조직이 되었다. 파인 게일은 영국 연방 내에서의 통일 아일랜드 건설을 목표로 내세웠으나, 강령에서 조합주의 국가 건설에 대한 언급은 빠졌다.[16] 실제로 파인 게일이라는 당명이 정해지기 전에는 '통일 아일랜드 당'이라는 이름이 고려되기도 했다.[15] 이러한 합당에 대해 노동당 지도자 윌리엄 노턴은 "낡은 술을 새 병에 담으려는 시도"라며 평가절하했고,[15] 피아나 페일의 숀 레머스는 이 삼자 연합을 "절름발이 동맹"이라고 비판했다.[17]

1934년 3월, 피아나 페일 정부의 법무부 장관 P. J. 러틀리지는 아일랜드 공공 생활에서 정치적 유니폼 착용을 금지하는 '유니폼 착용 (제한) 법안'을 하원(달 에런)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공공질서를 해친다고 간주되는 배지, 현수막, 군사 계급 사용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러틀리지는 법안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블루셔츠 활동을 막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모든 정치 세력에게 적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법안은 하원에서 격렬한 논쟁 끝에 통과되었으나, 상원(샤너드 에런)에서 30 대 18로 부결되었다.[15]

1934년 6월에 치러진 지방 선거는 신생 정당 파인 게일과 집권당 피아나 페일 간의 첫 대결이었다. 파인 게일이 23개 지방 선거구 중 6곳에서만 승리하는 부진한 성적을 거두면서, 오더피의 당내 권위와 명성은 크게 흔들렸다.[15] 블루셔츠 운동은 1934년 중반에 정점을 찍은 후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10] 1934년 동안 토지 연금 지불 거부 운동을 포함한 여러 반정부 시위가 블루셔츠의 소행으로 지목되었다.[18] 당시 아일랜드 농민들은 경제 전쟁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나, 블루셔츠는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며 지지 기반을 잃어갔다.[15] 상황이 악화되자 오더피는 점점 더 극단적인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는 오히려 어니스트 블라이스, 마이클 티어니, 데스몬드 피츠제럴드 등 파인 게일 내 온건파 인사들이 오더피를 지도부에서 몰아내려는 움직임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오더피는 파인 게일 동료들과의 계속된 불화 끝에 1934년 9월 당을 떠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블루셔츠 조직원들은 파인 게일에 남았다. 오더피가 파인 게일 총재가 된 후 블루셔츠의 실질적인 운영은 창립자 중 한 명인 네드 크로닌에게 맡겨졌었다. 오더피는 탈당 후 다시 블루셔츠의 통제권을 잡으려 했지만 크로닌이 이에 반대하면서, 블루셔츠는 오더피를 따르는 파벌과 크로닌을 지지하는 파벌로 분열되었다. 크로닌 파벌은 파인 게일 잔류를 원했고, 오더피 파벌은 당을 완전히 떠났다. 당시 다수는 크로닌 파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19]

파인 게일을 떠난 오더피는 1934년 12월 몽트뢰 파시스트 회의에 참석하는 등 파시즘 진영과의 연계를 강화했다. 이후 그는 국민 기업 당이라는 새로운 정당을 창당했으며,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지지하는 아일랜드 여단을 조직하여 참전했지만 큰 성과 없이 끝났다.[20] 한편, 오더피가 떠난 파인 게일은 과거 쿠만 나 가엘을 이끌었던 W. T. 코스그레이브가 다시 당권을 잡았다. 부지도자로는 구 국민중앙당 출신의 제임스 딜런이 선출되었는데, 그는 당의 자유 민주주의적 성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딜런은 확고한 자유 민주주의 신봉자였으며,[21] 훗날 나치즘을 ''"20세기 효율성을 갖춘 악마 그 자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22]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아일랜드의 중립 정책에 반대하고 연합국에 가담하여 히틀러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1942년 파인 게일을 잠시 탈당하기도 했다.[23] 그는 나중에 당에 복귀하여 리처드 멀카히의 뒤를 이어 당 대표가 되었다.

2. 5. 오더피 이후와 유산

일반적으로, 현대의 피네 게일 정당은 블루셔츠가 창당의 일부였다는 언급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대신 커먼 나 가엘과 국민중심당으로부터 이어지는 계보를 인정하며, 마이클 콜린스까지 그 뿌리를 둔다고 여긴다.[15] 특히 에오인 오더피는 피네 게일의 초대 지도자로 인정받지 못하며, W. T. 코스그레이브를 초대 지도자로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블루셔츠"라는 용어는 피네 게일 당원들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24][25][15]

3. 파시즘 논쟁

파란 셔츠 복장을 한 네드 크로닌(왼쪽)과 에오인 오더피(가운데)가 1934년 경 사진에서 오른쪽의 어니스트 블라이드와 함께 서 있다.


수십 년 동안 아일랜드 사회에서는 파란 셔츠단(육군전우협회의 별칭)을 파시스트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상당한 논쟁이 이어져 왔다.[15][26]

역사가 스탠리 G. 페인은 파란 셔츠단이 "실제로 파시즘 단체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27] 모리스 매닝 역시 이들을 파시스트로 보지 않았으며, 그들의 애국적 보수주의, 민병대 활동, 조합주의(코포라티즘)의 혼합은 "일종의 켈트 크루아 드 푀(프랑스의 우익 단체)에 지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28] 그는 궁극적으로 파란 셔츠단이 "파시즘의 외형은 갖추었지만 내용은 충분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29] 파란 셔츠단이 당시 베니토 무솔리니와 그의 추종자들에게서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30][31] 파란 셔츠단 일부는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스페인 내전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 측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들은 유색 셔츠 유니폼, 로마식 경례, 로마 진군 모방 등 무솔리니 운동의 일부 외형적 요소를 차용했다. 그러나 역사가 R. M. 더글러스는 이들을 "파시즘의 아일랜드적 발현"으로 묘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32]

아일랜드 정치 및 문화사 학자인 마이크 크로닌 역시 파란 셔츠단이 "의심할 여지 없이 특정한 파시스트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지만, 독일이나 이탈리아식 파시스트는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크로닌은 "준-파시스트"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며, 이는 그들이 파시즘의 외적인 면모는 취했지만, 그 이념의 더 급진적인 요소에는 전념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파란 셔츠단 내 일부 구성원들이 파시스트적 견해를 가졌을 수 있지만, 특히 피네 게일로 합병된 이후 다수를 차지한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그 영향력이 희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크로닌은 파란 셔츠단이 노골적인 파시즘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33]

퀸스 대학교 벨파스트의 피어걸 맥게리는 지도자였던 에오인 오더피는 진정한 파시스트로 볼 수 있지만, 그가 파란 셔츠단 전체 구성원을 대표하지는 않았다고 보았다. 그는 파란 셔츠단을 파시스트로 간주해야 하는 정도는 전간기에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반파시스트적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과장한 측면이 있다고 제안했다. 맥게리는 파란 셔츠단의 실제 위험성은 아일랜드를 파시스트 이탈리아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시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치하의 포르투갈 독재정권(이스타두 노부)과 유사한 체제를 만들려 했던 점에 있다고 분석했다.[34]

폴 뷰 또한 파란 셔츠단에 "파시스트"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에 반대하며, 그들을 인기주의에 편승한 "분노한 시골 보수주의자"로 규정했다. 그는 일반 구성원들의 견해가 이탈리아 파시즘보다는 아일랜드 의회당이나 아일랜드 토지 연맹에 더 가까웠다고 보았다.[35][36] 비슷한 맥락에서 역사가 앨빈 잭슨은 쿠만 나 응게일(피네 게일의 전신 정당) 지도부 일부가 "군사주의와 파시즘의 외형과 희롱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오더피가 지나치게 과장된 수사법과 정교한 유니폼을 좋아한 것은 히틀러적이기보다는 다니엘 오코넬적이었다"고 평가했다.[37][38] 역사가 J. J. 리는 "파시즘은 파란 셔츠단의 대다수에게는 너무 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39]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존 뉴스징어는 일반 구성원들이 이념적으로 파시스트가 아니었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지도부가 파시스트적 성향을 보인 이상 만약 파란 셔츠단이 권력을 잡았다면 그 결과는 일당 독재 국가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38]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으며 수십 년간 아일랜드 공산당을 이끌었던 아일랜드 반파시스트 마이클 오리어던은 훗날 스페인에서 싸우기 위해 자원했던 전 파란 셔츠단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그들을 파시스트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스페인에서 '무신론적 공산주의'에 맞서는 기독교 성전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그들은 속은 셈이었다."[36]

오더피가 피네 게일에서 떠난 후, 당의 대부분은 W. T. 코즈그레이브와 제임스 딜런의 지도 아래 전통적인 보수주의 노선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모든 구성원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파란 셔츠단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조합주의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쿠만 나 응게일 출신 장관 어니스트 블라이드는 파란 셔츠단이 해체된 후에도 수년간 아일랜드에서 파시스트적 대의를 계속 지지했다. 블라이드는 상원이 폐지된 1936년에 공직에서 은퇴했지만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1940년대에는 노골적인 파시스트 단체인 Ailtirí na hAiséirghe를 지지하고 도왔다.[40] 블라이드는 Ailtirí na hAiséirghe의 지도자 게라오이드 오 쿠네가인에게 당의 헌법 초안 작성에 대해 조언했으며, 저널 ''The Leader''를 통해 이들을 지지하고 재정적으로도 기여했다.[41] 1940년대 블라이드의 이러한 활동은 아일랜드 비밀 정보 기관인 G2의 우려를 샀으며, 정보 파일에는 그가 잠재적인 "아일랜드 크비슬링"(나치 부역자를 상징하는 인물)이자 "100% 나치"로 언급되기도 했다.[42]

일부 평론가들은 파란 셔츠단과 IRA 간의 갈등을 파시즘 대 반파시즘의 대립 구도로 보기보다는, 피아나 페일이 처음으로 집권하는 정치적 격변기를 배경으로 벌어진 아일랜드 내전의 정치적 연장선으로 해석하기도 한다.[43]

4. 한국의 시각에서 본 블루셔츠

(내용 없음)

참조

[1] 서적 Ireland: The Politics of Independence, 1922-49 https://books.google[...] Palgrave Macmillan UK 2000
[2] 서적 Eoin O'Duffy: A Self-Made Hero. OUP Oxford 2005
[3] 서적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Political Science https://books.google[...] SAGE Publications 2011-09-07
[4] 서적 Spanish Catholicism: An Historical Overview https://books.google[...] Univ of Wisconsin Press
[5] 서적 Sean Keating in Context: Responses to Culture and Politics in Post-civil War Ireland Carysfort Press 2009
[6] 뉴스 New Irish Army Arises New York Times 1932-08-12
[7] 서적 "Architects of the Resurrection: Ailtirí na hAiséirghe and the Fascist 'New Order' in Ireland" Manchester University Press
[8] 웹사이트 "O'Higgins, Thomas Francis ('T. F.')" https://dib.cambridg[...] Dictionary of Irish Biography 2021-01-08
[9] 웹사이트 O'Higgins, Kevin Christopher https://dib.cambridg[...] Dictionary of Irish Biography 2021-01-08
[10] 문서 Modern Ireland Gill & Macmillan 1972
[11] 간행물 The Socio-Economic Background and Membership of the Blueshirt Movement, 1932-5 https://www.jstor.or[...] 2021-01-06
[12] 웹사이트 You've heard of the Blueshirts but who were Ireland's Blue Blouses? https://www.rte.ie/b[...] RTÉ 2023-12-15
[13] 웹사이트 Meet the Fascist Who Wanted to Become Ireland's Mussolini https://allthatsinte[...] 2021-05-22
[14] 문서 The Blueshirts Dublin 1970
[15] 웹사이트 Without the Blueshirts, there would have been no Fine Gael https://www.irishtim[...] Irish Times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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