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 (1584년)
1. 개요
이성구는 1584년에 태어나 17세기 조선 시대의 문신이다. 1603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08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에 들어가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광해군 시대에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이항복을 옹호하다 파직되기도 했으며, 인조반정 이후 사간, 강화부윤 등을 역임하고 전라감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영사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병자호란 때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한 뒤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641년 영의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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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년 사망 -
숭정제
숭정제는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내우외환 속에서 명나라 멸망의 책임을 지고 자결했으며, 그의 죽음은 명나라 멸망을 상징하고 청나라의 중국 지배의 계기가 되었다. -
1644년 사망 -
도이 도시카쓰
도이 도시카쓰는 에도 막부 초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타다, 이에미쓰 3대 쇼군을 섬기며 막부의 정치, 행정, 재정 등 여러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막번 체제 확립과 외교, 통화 제도 개혁에 기여했으나, 후반에는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된 인물이다. -
1584년 출생 -
원숭환
원숭환은 명나라 말기에 활약한 장군으로, 닝위안 전투에서 후금 군대를 격퇴하고 요동 방어에 기여했으나 모반 혐의로 처형된 인물이다. -
1584년 출생 -
인목왕후
인목왕후는 선조의 계비로 책봉되어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았지만, 광해군 즉위 후 폐위되어 서궁에 유폐되는 비극을 겪었으며, 인조반정으로 복권되었으나 붕어하여 목릉에 합장된 조선 중기의 왕비이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1603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08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에 들어가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광해군 초기에 전적, 감찰, 예조, 형조, 병조, 호조의 좌랑, 부교리, 헌납, 병조정랑, 교리, 지평, 장령, 집의, 정언, 수찬, 교리 등을 역임했으나, 1614년 이항복을 옹호하다 파직되었다. 이천현감으로 기용되었으나, 1618년 이항복의 송덕비를 세운 일로 다시 파직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사간으로 복귀하여 강화부윤, 부승지, 예조참의, 대사간, 병조참지, 이조참의를 역임했다. 전주로 왕세자를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로 승진, 전라감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대사간, 좌승지, 도승지, 병조참판, 1628년 유효립의 난 진압을 도운 공로로 영사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성균관 대사성, 대사헌, 형조참판, 경기감사, 1636년 형조판서, 이조판서, 병조판서, 체찰부사를 겸임했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했으며,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640년 영돈녕부사, 1641년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2.2. 광해군 시대의 관직 생활과 시련
광해군 초기에 전적, 감찰을 거쳐 예조, 형조, 병조, 호조의 좌랑, 부교리, 헌납, 병조정랑, 교리를 역임하고 지평, 장령, 집의, 정언을 거쳐 수찬과 교리를 역임 중 1614년(광해군 6) 이항복을 옹호하다 파직되었다. 1614년 이천현감으로 기용되고 1616년(광해군 8) 영평판관, 포천현감을 겸임했으나 1618년 이항복이 북청의 유배지에서 죽은 후 송덕비를 세운 것에 대해 또 다시 파직되었다.
2.3. 인조반정 이후의 활동과 영의정 임명
1623년 (인조 1) 인조반정 이후 사간으로 기용되어 강화부윤, 부승지, 예조참의, 대사간, 병조참지, 이조참의를 역임했다. 왕세자를 전주로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로 승진, 전라감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대사간, 좌승지, 도승지, 병조참판을 역임했다. 1628년(인조 6) 유효립의 난 진압을 도운 공로로 영사원종공신 1등(寧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성균관 대사성, 대사헌, 형조참판, 경기감사를 거쳐 1636년 형조판서, 이조판서, 병조판서, 체찰부사를 겸임했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했으며,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640년 영돈녕부사, 1641년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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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조부 | 이희검(李希儉) | 1516 ~ 1579 |
| 조모 | 문화 류씨 | 류오(柳塢)의 딸 |
| 부친 | 이수광 | 1563 ~ 1629 |
| 모친 | 안동 김씨 | 김대섭(金大渉)의 딸 |
| 남동생 | 이민구(李敏求) | 1589 ~ 1670 |
| 초취 | 파평 윤씨 | 윤열(尹悅)의 딸, 자녀 없음 |
| 재취 | 안동 권씨 | 권흔(權昕)의 딸 |
| 장녀 | 전주 이씨 | 1612 ~ ?, 연안 이씨 이일상(李一相)의 처 |
| 장남 | 이상규(李尙揆) | 1619 ~ ?, 능성 구씨 구봉서(具鳯瑞)의 딸과 혼인 |
| 차남 | 이동규(李同揆) | 1623 ~ ?, 안동 권씨 권?(權?)의 딸과 혼인, 슬하에 3남 3녀를 둠. 장녀: 연안 이씨 이옥(李沃)의 처(1641 ~ ?), 차녀: 해평 윤씨 윤세희(尹世喜)의 처(1643 ~ ?), 3녀: 남양 홍씨 홍천령(洪天齡)의 처(1656 ~ ?), 장남: 이현기(李玄紀, 1647 ~ 1714), 차남: 이현수(李玄綏, 1649 ~ 1705), 3남: 이현위(李玄緯, 1651 ~ 1687), 4남: 이현소(李玄紹, 1653 ~ 1677), 5남: 이현주(李玄綢, 1659 ~ 1723) |
| 3남 | 이당규(李堂揆) | 1625 ~ 1684, 진주 강씨 강대수(姜大遂)의 딸과 혼인, 슬하에 2남 2녀를 둠. 장녀: 안동 김씨 김대번(金大蕃)의 처(1642 ~ ?), 차녀: 한양 조씨 조십붕(趙十朋)의 처(1655 ~ ?), 3녀: 안동 김씨 김남식(金南拭)의 처(1662 ~ ?), 장남: 이현석(李玄錫, 1647 ~ 1763), 차남: 이현령(李玄齡, 1652 ~ ?) |
| 4남 | 이석규(李碩揆) | 1627 ~ 1666, 여흥 민씨 민성복(閔聖復)의 딸과 혼인, 슬하에 1남 4녀를 둠. 장녀: 광주 이씨 이담령(李聃命)의 처(1650 ~ ?), 차녀: 박정(朴涏)의 처(1652 ~ ?), 3녀: 성준(成儁)의 처(1656 ~ ?), 4녀: 여산 송씨 송연규(宋廷奎)의 처(1657 ~ ?), 5녀: 남원 윤씨 윤경제(尹景濟)의 처(1661 ~ ?), 장남: 이현조(李玄祚, 1654 ~ 1710) |
| 5남 | 이태규(李台揆) | 1631 ~ 1686, 안동 권씨 권일(權佾)의 딸과 혼인, 슬하에 2남을 둠. 장남: 이현량(李玄亮, 1649 ~ 1715), 차남: 이현도(李玄度, 1659 ~ 1712) |
| 측실 | 이름 미상 | 파평 윤씨 윤두종(尹斗宗)의 처(1642 ~ ?) |
| 측실 | 동래 정씨 | 정협(鄭協)의 서녀, 슬하에 1남 2녀를 둠. 장녀: 전주 이씨(1663 ~ ?), 차녀: 전주 이씨(1665 ~ ?), 장남: 이선규(李善揆, 1644 ~ ?), 용인 이씨 이후천(李後天)의 딸과 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