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종
1. 개요
이숙종은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와 광복 후 교육계 활동, 정치 참여 등 다양한 활동을 한 인물이다. 한성부에서 태어나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성신여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을 역임했다. 일제강점기 말 국민총력조선연맹 등 친일 단체에 가담하고 친일 잡지에 기고한 행적으로 인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되었다. 광복 후에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성신유치원, 성신초등학교, 성신여중, 성신여고, 성신여대를 설립했다. 저서로는 《구름따라 성을 돌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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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자대학교 -
국립의료원 간호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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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미술대학 동문 -
이루카 (가수)
1970년 슈리크스 멤버로 데뷔한 일본 싱어송라이터 이루카는 솔로 독립 후 서정적인 가사와 맑은 음색으로 〈나고리유키〉, 〈비의 이야기〉, 〈해안길〉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전성기를 맞았고, 그림책 작가, IUCN 친선 대사, 여자미술대학 객원 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2. 생애
2.1. 초기 생애 및 교육
한성부 출생이다. 숙명여자중학교와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했다. 미술을 전공하여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도쿄 제국대학 등에서 수학한 뒤 귀국했다. 서양화가로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차례 수상한 바도 있다.
2.2. 교육 활동
한성부 출생이다.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했다. 미술을 전공하여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 도쿄 제국대학 등에서 수학한 뒤 귀국했다. 경성여자상업학교,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중앙보육학교 교사를 거쳐 1936년 성신여대 전신인 성신여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을 맡았다. 서양화가로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차례 수상한 바도 있다.
2.3. 친일반민족행위
이숙종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국민총력조선연맹 등의 친일 단체에 가담하여 강연 및 좌담회 참석, 《매일신보》에 친일적 발언 기고 등으로 친일 활동을 했다. 《신시대》 등 친일 잡지에 여성들을 대상으로 전시경제 체제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는 기고문을 싣기도 했다. 이로 인해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교육/학술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가정여학교(지금의 성신여자대학교) 교장이던 이숙종은 일제가 제2차 세계 대전에 필요한 쌀을 공출함으로써 식량을 수탈하던 1943년에 《신시대》잡지에 “쌀이 부족해 죽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건강을 위해 죽을 마시고, 소화가 잘되게 하기 위해서 채소를 먹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더욱더 맑고 상쾌한 기분으로 능률있게 일하기 위해서 아침은 엽차만으로 때우는 것이라 생각하자”라는 일본어/日本일본어로 쓴 글을 실었다. 이는 같은 한민족인 한국 민중들에게 일제의 식량수탈에 따른 빈곤이라는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저항하기보다는, 일제의 식량수탈에 순응할 것을 주장한 것이었다.
2.4. 광복 이후
광복 후 이숙종은 교육계의 원로로서 교육 정책 심의 등에 중용되었으며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1963년에는 현 성신여자대학교의 전신인 성신여자실업초급대학을 설립했다. 1973년에는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자전적 수필집인 《구름따라 성을 돌며》(1971), 《길을 따라 걸었는데》(1973) 등이 있다.
이숙종은 성신유치원, 성신초등학교, 성신여중, 성신여고, 성신여대를 창립했다. 1985년 이숙종이 사망하고 후손이 없자 조카인 심용현이 이사장직을 이었다. 심용현의 딸 심화진은 성신여대 이사장을 거쳐 총장을 맡았으나 교비 횡령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3. 저서
4. 성신학원
5.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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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비판 및 논란
6.1. 친일 행적 논란
이숙종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국민총력조선연맹 등의 친일 단체에 가담하여 강연 및 좌담회 참석, 《매일신보》에 친일적 발언을 기고하는 등 친일 활동을 했다. 《신시대》 등 친일 잡지에 여성들을 대상으로 전시경제 체제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는 기고문을 싣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교육/학술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가정여학교(지금의 성신여자대학교) 교장이던 이숙종은 일제가 제2차 세계 대전에 필요한 쌀을 공출하여 식량을 수탈하던 1943년에 《신시대》잡지에 쌀이 부족해 죽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건강을 위해 죽을 마시고, 소화가 잘되게 하기 위해서 채소를 먹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더욱더 맑고 상쾌한 기분으로 능률있게 일하기 위해서 아침은 엽차만으로 때우는 것이라 생각하자일본어라는 글을 기고하여, 일제의 식량 수탈에 순응할 것을 주장했다. 역사학 연구소는 저서 《교실밖 국사여행》에서 이 사례를 들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정직한 역사교육으로써 청산되어야 할 이유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