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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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의는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한 인물로, 요동 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조선 개국 후 벼슬을 받았으나,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벼슬을 거부하고 소백산 아래 순흥으로 은거했다. 태조는 그에게 토지와 벼슬을 내렸지만 이의는 이를 받지 않았고, 이로 인해 영주 구두들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사후 불천지위를 받았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다.

이의 (군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이의 (李嶷 또는 李薿)
생애? ~ ?년 2월 12일
별명자(字)는 신지(信之) 또는 원군(原君), 호는 퇴은(退隱)
군사 경력
복무고려
복무 기간1388년 ~ 1392년
최종 계급강계원수, 밀직부사
주요 참전 전투/전쟁제1차 요동 정벌, 제2차 요동 정벌
기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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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이의는 생년월일이 미상이며, 이사성(李思誠)과 남군보(南君甫)의 4대손으로, 상호군 요동지휘도통사를 지낸 남성로(南星老)의 딸 영양 남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이백경(李伯卿)은 영동정이었고, 증조부 이구(李球)는 원나라 제과에 합격하고 귀국하여 예빈시승동정, 예빈시경 등을 역임했다. 자는 신지(愼之), 호는 퇴은(退隱)이며, 국자감대사성 이순우(李純祐 또는 李純佑)의 6대손이다. 19세기 초 호구입안을 통해 종조부 이천승(李天升)과 당숙 이사순(李思順)의 존재가 알려졌다. 부인은 순흥 안씨로 안축의 종손녀이다.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 1388년 음력 5월 11일 이철성원수 홍인계와 함께 요동에 들어가 적군을 죽이고 돌아와 우왕에게 금정아와 비단을 하사받았다. 1392년(공양왕 4년) 음력 6월 밀직사 부사에 임명됐다. 위화도 회군 이후 조선이 건국되자, 가정대부 중추원부사 겸 도평의사사사 의흥친군위동절제사에 제수되었으나,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不事二君)'라는 절의를 지키기 위해 벼슬을 버리고 소백산 아래 순흥으로 퇴거하였다. 태조는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이에 응하지 않자, 개국원종공신으로 포상하였다.

태조는 이의에게 토지와 전답을 내렸으나, 받지 않고 쌓아두어 영주의 '구두들'이라는 지명의 어원이 되었다. 태조는 특별 교지를 내려 개국 원종공신 일등에 녹하고 전장과 노비를 내린다고 하였으나, 이의는 고려의 신하로서 받을 수 없다며 손을 대지 않았다. 매년 초하루와 보름이면 소백산 정상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고려 왕을 추모하는 4배를 올렸다고 하며, 이때부터 소백산의 한 산봉우리는 국망봉(國望峰)이라 불리게 되었다.

불천지위를 하사받았다. 사망년도는 미상이며 기일은 2월 12일이다. 묘소는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구구리(九邱里) 산 65-3 이목고자동(梨木高子洞) 갑좌(甲坐)에 있으며, 묘비문이 있다.

2.1. 어린 시절

이의는 생년월일이 미상이며, 중추원부사 이사성(李思誠)과 남군보(南君甫)의 4대손으로, 상호군 요동지휘도통사를 지낸 남성로(南星老)의 딸 영양 남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이백경(李伯卿)은 영동정이었고, 증조부 이구(李球)는 18세에 원나라로 건너가 세조가 직접 주관하는 제과에 합격하고 귀국하여 예빈시승동정, 예빈시경 등을 역임했다. 자는 신지(愼之), 호는 퇴은(退隱)이다. 국자감대사성 이순우(李純祐 또는 李純佑)의 6대손이다.

형제자매나 가까운 친척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나, 19세기 초 1415년 울진 장씨 장인숙(張仁淑)이 울진군에 자신과 처의 '팔조호구(八祖戶口)'를 요청하여 발급받은 《1415년 장인숙(張仁淑) 호구입안(戶口立案)》을 통해 종조부 이천승(李天升)과 당숙 이사순(李思順)의 존재가 알려졌다.

유년 시절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부인은 순흥 안씨로 삼사사 좌윤을 지낸 안영부(安永孚)의 딸이며, 학자 안축(安軸)의 종손녀이다. 장모는 예안군부인 예안 이씨(禮安郡夫人禮安李氏)로 정랑 이인수(李仁壽)의 딸이다. 아들 이만은 고려에서 태어나 문과(文科)에 급제, 홍로부사와 인진사, 사재감 등을 역임했다.

2.2. 고려 관료 생활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 유장으로 강계원수로 있을 때 1388년(우왕 4년) 음력 5월 11일 이철성원수 홍인계와 함께 먼저 요동에 들어가서 적군들을 죽이고 돌아왔다. 우왕은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고 금정아와 무늬 있는 비단을 하사받았다.

1392년(공양왕 4년) 음력 6월 김용초, 김을귀, 김균 등과 함께 밀직사 부사에 임명됐다. 그 후 재차 원정하여 요동을 정벌할 때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조선을 개국하였다. 이때 가정대부 중추원부사 겸 도평의사사사 의흥친군위동절제사를 제수하였으나,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不事二君)'라는 절의를 지키기 위해 벼슬을 버리고 소백산 아래 순흥으로 퇴거하였다. 태조는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이에 응하지 않자, 교지를 내려 전토와 노비를 하사하였으며 개국원종공신으로 포상하였다.

2.3. 조선 건국과 은거

태조는 이의에게 토지와 전답을 내렸으나, 이의는 이를 받지 않고 쌓아두었다. 이는 영주의 '구두들'이라는 지명의 어원이 되었다. 태조는 이의를 여러 번 불렀으나, 이의는 나아가지 않았다. 태조는 특별 교지(敎旨)를 내려 "내 막하에서 어렵고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나의 오늘이 있게 한 것은 너의 공이니, 개국 원종공신 일등에 녹(錄)하게 하고 전장과 노비를 내린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의는 고려의 신하로서 태조가 하사(下賜)한 공물(貢物)을 받을 수 없다며, 생전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일대에는 각 고을에서 보내온 곡물이 해마다 쌓여 큰 노적가리가 여기저기 아홉 무더기나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아홉 무더기가 쌓인 곳을 '구두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의는 매년 초하루와 보름이면 소백산 정상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고려 왕을 추모하는 4배를 올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소백산의 한 산봉우리는 국망봉(國望峰)이라 불리게 되었다.

2.4. 사후

불천지위를 하사받았다. 사망년도는 미상이며 기일은 2월 12일이다. 묘소는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병산1리 화석 법곡 자좌(子坐)였다가, 뒤에 영주시 단산면 구구리(九邱里) 산 65-3 이목고자동(梨木高子洞) 갑좌(甲坐)로 이장되었으며, 묘비문이 있다.

첫 묘비문은 1500년대 중반에 이미 훼손된 상태여서, 그의 7대손 이감이 경상도관찰사병마수군절도사로 재직할 때 다시 지었고, 1981년 5월 후손들이 다시 오석으로 새로운 비석을 세웠다.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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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이름비고
할아버지이백경(李伯卿)1290년 ~ ?
아버지이사성(李思誠)
어머니영양남씨(英陽南氏)남군보의 4대손, 남성로의 딸
부인순흥안씨(順興安氏)? ~ ?년 7월 15일, 안영부(安永孚)의 딸, 안축의 종손녀
아들이만(李蔓)고려 중추원부사, 조선 호분위 경력
자부경주정씨(慶州鄭氏)정희계의 딸, 염제신의 외손녀
손자이인숙(李仁淑)지덕천군사 역임
손녀우계이씨(羽溪李氏)
손녀사위민무휼(閔無恤)
아들이원길(李原吉)직장
손자이효강(李孝綱)
외할아버지남성로(南星老)? ~ ?, 남군보의 4대손
사돈정희계(鄭熙啓)조선 개국공신, 계림부원군, 시호 양경(良景), 1348년 3월 18일 ~ 1396년 7월 12일, 이만의 장인
사돈곡성군부인 파주염씨1350년 4월 8일 ~ 1376년 4월 25일
사돈염제신(廉悌臣)파주 염씨, 문하시중 곡성부원군, 시호 충경, 1304년 10월 30일 ~ 1382년 3월 18일, 이만의 처외조부
사돈염흥방(廉興邦)? ~ 1388년 1월
사돈오부(吳傅)해주 오씨, 호 덕암산인(德岩山人), 지인천군사, 증 정헌대부 이조판서겸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 이인숙의 장인
사돈이성중(李誠中)경주 이씨, 시호 정순(靖順), 1331년 ~ 1410년, 이인숙의 처외조부

4. 기타

그의 아들 이만(李蔓)은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여 홍로부사, 인진사, 사재감 등을 거쳐 중추원부사를 지냈는데, 민무휼, 심준 등과 혼인 관계였다. 그는 조선 건국 이후 봉렬대부 호분위경력, 검찰부사로 내려갔다. 이만이 어떤 이유로 강등되었는지는 자료가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