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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루이 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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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루이 토랑은 프랑스 출신의 로마 가톨릭 추기경으로, 교황청 외교관, 고위 성직자, 그리고 종교 간 대화와 국제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바티칸 외교부에서 경력을 시작하여 도미니카 공화국과 레바논의 교황대사를 역임했다. 이후 교황청 국무성성 외무부장, 바티칸 비밀문서고 및 도서관 사서,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 그리고 교황청 재무원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토랑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종교 간 대화와 평화를 증진하는 데 힘썼다. 그는 파킨슨병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2018년 7월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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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루이 토랑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장루이 토랑
존칭 접두사추기경
이름장루이 토랑
로마자 표기Jean-Louis Pierre Tauran
출생일1943년 4월 5일
출생지보르도, 프랑스
사망일2018년 7월 5일
사망지하트퍼드, 코네티컷주, 미국
국적프랑스
종교가톨릭 (로마 전례)
모토Veritate et Caritate
모토 (번역)진실과 사랑으로
직책
직함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
임명일 (의장)2007년 6월 25일
직함교황청 궁무처장
임명일 (궁무처장)2014년 12월 20일
착좌일 (궁무처장)2015년 3월 9일
임기 종료2018년 7월 5일
전임 (의장)폴 푸파르
전임 (궁무처장)타르치시오 베르토네
후임 (의장)미겔 앙헬 아유소 기쇼
후임 (궁무처장)케빈 조셉 패럴
기타 직책산 아폴리나레 알레 테르메 네로니아네-알레산드리네 성당 사제급 추기경 "pro hac vice" (2003-2018)
이전 직책교황청 외무장관 (1990-2003)
교황청 도서관장 (2003-2007)
텔레프테 명의 대주교 (1990-2003)
교황청 기록보관소장 (2003-2007)
추기경단 수석 부제 (2011-2014)
서품 및 임명
사제 서품일1969년 9월 20일
사제 서품자마리우스-펠릭스-앙투안 마지어 주교
주교 서품일1991년 1월 6일
주교 서품자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추기경 서임일2003년 10월 21일
추기경 서임자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추기경 계급부제급 추기경 (2003–2014)
사제급 추기경 (2014–2018)
학력
모교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
교황청립 교회학 아카데미
툴루즈 가톨릭 대학교

2. 약력

장루이 토랑은 보르도 태생으로,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철학신학을 공부하여 1973년 교회법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교황청립 교회 아카데미와 툴루즈 가톨릭 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1969년 9월 20일 사제 수품을 받았고, 1975년 바티칸 외교부서로 옮기기 전까지 보르도 대교구 보좌신부로 근무하였다.

도미니카 공화국(1975-1978)과 레바논(1979-1983) 교황대사로 파견되었으며, 유럽안보협력회의, 스톨홀름 군축회의, 부다페스트 문화포럼, 문화포럼의 바티칸 대표를 지냈다.

2. 1. 출생 및 교육

장루이 토랑은 보르도 태생으로,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철학신학을 공부하여 1973년 교회법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교황청립 교회 아카데미와 툴루즈 가톨릭 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1969년 9월 20일 사제 수품을 받았으며, 1975년 바티칸의 외교 부서로 옮기기 전까지 보르도 대교구의 보좌신부로 근무하였다. 그는 도미니카 공화국(1975-1978)과 레바논(1979-1983)의 교황대사로 파견되었다. 또한 유럽안보협력회의와 스톨홀름 군축회의, 부다페스트 문화포럼, 문화포럼의 바티칸 대표를 지내기도 하였다.

2. 2. 사제 서품 및 초기 활동

장루이 토랑은 프랑스보르도 태생으로,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철학신학을 공부하여 1973년 교회법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교황청립 교회 아카데미와 툴루즈 가톨릭 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1969년 9월 20일 마리우스 마지에르 대주교에 의해 사제 수품을 받았으며, 1975년 바티칸의 외교부서로 옮기기 전까지 보르도 대교구의 보좌 신부로 근무하였다. 장루이 토랑은 도미니카 공화국(1975-1978)과 레바논(1979-1983) 주재 교황 대사관의 서기를 지냈다. 또한 유럽안보협력회의와 스톨홀름 군축회의, 부다페스트 문화포럼, 문화포럼의 바티칸 대표를 지내기도 하였다. 1983년 교회 공공 문제 평의회에서 공무원이 되었고, 이후 아이티(1984), 베이루트다마스쿠스(1986)에서 특사로 활동했다.

2. 3. 바티칸 외교관 활동

장루이 토랑은 1975년 바티칸의 외교부서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도미니카 공화국(1975-1978)과 레바논(1979-1983)에서 교황대사로 파견되었다. 유럽안보협력회의, 스톨홀름 군축회의, 부다페스트 문화포럼, 문화포럼에서 바티칸 대표를 지냈다. 1983년 교회 공공 문제 평의회에서 공무원이 되었고, 이후 아이티(1984), 베이루트, 다마스쿠스(1986)에서 특사로 활동했다.[1]

1990년 12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장루이 토랑을 교황청 국무성성 외무부장과 텔레프테의 명의대주교에 임명하였다. 1991년 1월 6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 아래 장루이 토랑의 주교 서품식이 거행되었으며, 조반니 바티스타 레 대주교와 저스틴 프랜시스 리갈리 대주교가 공동으로 서품하였다.[1] 토랑은 장관으로서 바티칸의 외무부 장관 역할을 했다.[1]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당시(이라크 전쟁), 장루이 토랑은 "일방적인 공격에 의한 전쟁은 평화에 대한 범죄이며 제네바 협약에 위반된다"라고 말하며 국가 간의 대화와 국제연합(유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1]

2. 4. 교황청 국무성성 외무부장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년 12월 1일 장루이 토랑을 교황청 국무성성 외무부장과 텔레프테의 명의대주교에 임명하였다. 장루이 토랑의 주교 서품식은 1991년 1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 아래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되었다.[1]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당시(이라크 전쟁), 장루이 토랑은 “일방적인 공격에 의한 전쟁은 평화에 대한 범죄이며 제네바 협약에 위반된다.”라면서 국가 간의 대화와 국제연합(유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1]

2. 5. 거룩한 로마 교회 문서보관인과 도서관사서

2003년 10월 2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장루이 토랑을 부제급 추기경에 임명하였다. 같은 해 11월 24일, 장루이 토랑은 바티칸 비밀문서고바티칸 도서관을 관리 감독하는 ‘거룩한 로마 교회 문서보관인과 도서관사서’에 임명되었다.[2] 2014년 6월, 교황 프란치스코는 토랑을 사제급 추기경으로 승격시켰다.[6]

2. 6.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 루이 토랑은 2007년 6월 25일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에 임명되었다.[7] 종교간대화평의회는 그리스도교인들과 타 종교인들 사이의 상호 이해를 위해 세워진 교황청의 기구이다. 그는 이 직책을 맡으면서 국무원(제2부), 신앙교리성, 동방교회성, 주교성, 그리스도교 일치 촉진 평의회, 문화 평의회, 사도 서명원, 사도좌 재산 관리청, 바티칸 시국 교황 위원회, 종교 사업 연구소 (IOR) 감독을 위한 추기경 위원회 위원을 겸임했다.

토랑은 성공회 존 앤드루와 친구였는데, 앤드루는 뉴욕시 세인트 토마스 교회의 전 교구 사제였다. 토랑은 2007년 6월 말 앤드루의 서품 50주년 기념식에 특별 설교자로 참여했다.[2] 그는 잉글랜드 치체스터 대성당의 전 선창자인 성공회 사제 로저 그린에이커와도 친구였다. 2005년 미카엘 축일 (천사 성 미카엘)에 있었던 그린에이커의 서품 50주년 기념을 위해 치체스터를 방문하여 특별 설교를 했으며,[8] 2011년 9월 23일 치체스터 대성당에서 열린 그린에이커의 추모 미사에도 참석했다.[9]

2012년 4월, 부처의 생애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기념하는 축제인 베삭의 다가오는 불교 축제를 기념하는 메시지에서, 토랑은 "젊은이들은 모든 사회의 자산"이라고 말했으며, 젊은이들이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서 함께 발전하고 분쟁을 해결하며 우정, 정의, 평화, 진정한 인간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손을 잡을 준비가 되도록" 다양한 종교적 실천에 대한 교육을 촉구했다.[10]

토랑은 종교간 대화 평의회 의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13년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토랑을 종교 사업 연구소를 조사하는 5인으로 구성된 교황 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했다.[11]

2. 7. 교황 궁무처장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12월 20일,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을 대신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청 재무원장으로 토랑을 임명했다.[12] 토랑은 2015년 3월 9일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교황청 재무원장으로서 선서를 했다.[13]

2. 8. 사망

토랑 추기경은 2003년 이른 시기부터 파킨슨병 증세를 보였지만, 2007년까지 상태가 충분히 안정되어 교황청 평의회 의장직을 맡을 수 있었다.[14] 2018년 7월 5일, 파킨슨병 치료를 위해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에 입원해 있던 중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5] 그의 유해는 로마로 옮겨져 로마 교황청 추기경의 관례적인 장례 의식을 치렀다.[16]

3. 주요 활동 및 업적

장루이 토랑은 1990년 교황청 국무성성 외무부장에 임명되어 바티칸의 외무부 장관 역할을 수행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국가 간 대화와 국제연합(유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17]

2007년에는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에 임명되어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여러 종교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데 힘썼다. 그는 종교 간 대화가 신자들 간의 대화이며, 서로의 신앙을 이해하고 공동선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5] 성공회 성직자들과도 교류하며 종교 간 화합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2][8][9]

2003년 11월, 토랑은 바티칸 비밀문서고바티칸 도서관을 관리 감독하는 직책을 맡아 문화유산 보존 및 관리에도 기여했다.[2]

3. 1. 국제 외교 및 평화 증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년 12월 1일 장루이 토랑을 교황청 국무성성 외무부장과 텔레프테의 명의대주교에 임명하였다. 장루이 토랑의 주교 서품식은 1991년 1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 아래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되었다. 장루이 토랑은 외무부장으로서 바티칸의 외무부 장관 역할을 했다.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당시(이라크 전쟁), 장루이 토랑은 “일방적인 공격에 의한 전쟁은 평화에 대한 범죄이며 제네바 협약에 위반된다.”라면서 국가 간의 대화와 국제연합(유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17] 2007년 8월 그는 이라크의 현실이 스스로를 대변하며, 기독교인들은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더 잘 보호받았다고 말했다.[18]

3. 2. 종교 간 대화 및 화합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장 루이 토랑은 2007년 6월 25일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에 임명되었다.[7] 종교간대화평의회는 그리스도교인들과 타 종교인들 사이의 상호 이해를 위해 세워진 교황청의 기구이다. 그는 종교간 대화 평의회 의장 직무 외에도 국무원, 신앙교리성, 동방교회성, 주교성, 그리스도교 일치 촉진 평의회, 문화 평의회, 사도 서명원, 사도좌 재산 관리청, 바티칸 시국 교황 위원회, 종교 사업 연구소 감독을 위한 추기경 위원회 위원이었다.

토랑은 성공회 존 앤드루와 친구였는데, 앤드루는 뉴욕 세인트 토마스 교회의 전 교구 사제였다. 2007년 6월 앤드루의 서품 50주년 기념식에 토랑이 특별 설교자로 참여했다.[2] 그는 잉글랜드 치체스터 대성당의 전 선창자인 성공회 사제 로저 그린에이커와도 친구였다. 2005년 미카엘 축일에 있었던 그린에이커의 서품 50주년 기념식에 토랑은 치체스터를 방문하여 특별 설교를 했다.[8] 그는 2011년 9월 23일 치체스터 대성당에서 열린 그린에이커의 추모 미사에도 참석했다.[9]

2012년 4월, 부처의 생애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기념하는 축제인 베삭의 다가오는 불교 축제를 기념하는 메시지에서, 토랑은 "젊은이들은 모든 사회의 자산"이라고 말하며, 젊은이들이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서 함께 발전하고 분쟁을 해결하며 우정, 정의, 평화, 진정한 인간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손을 잡을 준비가 되도록" 다양한 종교적 실천에 대한 교육을 촉구했다.[10]

토랑은 종교간 대화 평의회 의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Y] 여러분은 종교 간 대화는 종교 간의 대화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신자들 간의 대화입니다. 그것은 신학적, 철학적 연습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는 다원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문화, 종교, 교육, 과학 연구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종교적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자들 사이에서는 우선 서로를 알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신앙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호함 위에 그 대화를 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해되면, 우리를 분리하는 것과 우리를 통합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 공통점을 사회에 봉사해야 합니다. 대화는 공동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영적인 차원들이 있습니다. 신자들은 공적인 대화에서 특별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5]

매년, 교황청 종교간 대화 평의회는 10월에 열리는 디왈리 축제를 맞아 힌두교 신자들에게 평의회 의장의 서명이 담긴 메시지를 보낸다. 2017년 메시지에서 토랑은 통합 개발 촉진, 인간 생명 보호, 개인의 존엄성과 기본권 존중을 촉구했다.[19] 평의회는 또한 이드 알피트르 (이슬람교)와 베삭 (불교) 축제 때에도 비슷한 메시지를 보낸다.

3. 3. 문화유산 보존 및 관리

2003년 11월 24일, 장루이 토랑은 바티칸 비밀문서고바티칸 도서관을 관리 감독하는 ‘거룩한 로마 교회 문서보관인과 도서관사서’에 임명되었다.[2]

4. 사상 및 신념

토랑은 종교 간 대화와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종교 간 대화가 신자들 간의 대화이며, 서로의 신앙을 이해하고 공동선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평화에 대한 죄"이자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18] 또한, 이라크 내 기독교인들이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더 잘 보호받았다고 언급했다.[18]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6월 25일에 종교간 대화 평의회 의장으로 임명되었다.[7] 그는 종교 간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서로의 신앙을 선포하고 이해하며,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5]

토랑은 젊은이들이 종교 간 화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으며, 베삭 축제 메시지에서 젊은이들이 다양한 종교적 실천에 대한 교육을 받고, 우정, 정의, 평화, 진정한 인간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0]

교황청 종교간 대화 평의회는 매년 디왈리 축제 때 힌두교 신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2017년 메시지에서 토랑은 통합 개발 촉진, 인간 생명 보호, 개인의 존엄성과 기본권 존중을 촉구했다.[19]

2008년에는 로완 윌리엄스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가 영국 내 샤리아의 일부 측면이 불가피하다고 제안한 것에 대해 "잘못되었고 순진했다"라고 비판했다.[20]

4. 1. 전쟁과 평화에 대한 관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년 12월 1일 장루이 토랑을 교황청 국무성성 외무부장과 텔레프테의 명의대주교에 임명하였다. 장루이 토랑의 주교 서품식은 1991년 1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 아래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되었다.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당시(이라크 전쟁), 장루이 토랑은 “일방적인 공격에 의한 전쟁은 평화에 대한 범죄이며 제네바 협약에 위반된다.”라면서 국가 간의 대화와 국제연합(유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17]

토랑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평화에 대한 죄"이자 국제법 위반이라고 맹렬히 비판하였다. 2007년 8월 그는 이라크의 현실이 스스로를 대변하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은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더 잘 보호받았다고 말했다.[18]

4. 2. 종교 간 대화에 대한 신념

그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2007년 6월 25일에 종교간 대화 평의회 의장으로 임명되었다.[7] 토랑은 종교간 대화 평의회 의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Y] 여러분은 종교 간 대화는 종교 간의 대화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신자들 간의 대화입니다. 그것은 신학적, 철학적 연습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는 다원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문화, 종교, 교육, 과학 연구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종교적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자들 사이에서는 우선 서로를 알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신앙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호함 위에 그 대화를 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해되면, 우리를 분리하는 것과 우리를 통합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 공통점을 사회에 봉사해야 합니다. 대화는 공동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영적인 차원들이 있습니다. 신자들은 공적인 대화에서 특별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영어[5]

2012년 4월, 부처의 생애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기념하는 축제인 베삭의 다가오는 불교 축제를 기념하는 메시지에서, 토랑은 "젊은이들은 모든 사회의 자산"이라고 말했으며, 젊은이들이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서 함께 발전하고 분쟁을 해결하고 우정, 정의, 평화, 진정한 인간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손을 잡을 준비가 되도록" 다양한 종교적 실천에 대한 교육을 촉구했다.[10]

매년, 교황청 종교간 대화 평의회는 10월에 열리는 디왈리 축제를 맞아 힌두교 신자들에게 평의회 의장의 서명이 담긴 메시지를 보낸다. 2017년 메시지에서 토랑은 통합 개발 촉진, 인간 생명 보호, 개인의 존엄성과 기본권 존중을 촉구했다.[19] 평의회는 또한 이드 알피트르 (이슬람교)와 베삭 (불교) 축제 때에도 비슷한 메시지를 보낸다.

4. 3. 샤리아에 대한 입장

2008년 3월 기자들과의 조찬 회동에서 토랑은 로완 윌리엄스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가 영국 내 샤리아의 일부 측면이 불가피하다고 제안한 것에 대해 "잘못되었고 순진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슬람과의 관계가 종교 간 대화를 너무 지배하고, 모든 종교가 동등한 조건으로 다루어져야 하며 어떤 종교도 차별받는 지위가 부여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20]

5. 한국과의 관계

(이전 출력이 비어있으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 원본 소스와 요약 정보가 제공되면 해당 내용을 바탕으로 '장루이 토랑' 문서의 '한국과의 관계' 섹션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참조

[1] 웹사이트 30Giorni | A war of aggression would be a crime against peace (By monsignor Jean-Louis Tauran) http://www.30giorni.[...]
[2] 블로그 Tauran Around the City http://whispersinthe[...] 2007-06-25
[3] 간행물 Fighting the Tide https://web.archive.[...] TIME Magazine 2003-03-02
[4] 웹사이트 Papabile of the Day: The Men Who Could Be Pope – Cardinal Jean-Louis Tauran http://ncronline.org[...] National Catholic Reporter 2013-12-25
[5] 인터뷰 French Cardinal Jean-Louis Tauran sees great value in interreligious dialogue https://www.chicagot[...] 2013-04-07
[6] 보도자료 Assegnazione del titolo presbiterale ad alcuni cardinali diaconi creati nel consistoro del 21 ottobre 2003 https://www.vatican.[...] Holy See Press Office 2014-06-14
[7] 보도자료 Rinunce e Nomine, 25.06.2007 http://press.vatican[...] Holy See Press Office 2007-06-25
[8] 웹사이트 Tauran at Greenacre's 50th anniversary service http://www.esbvm.org[...]
[9] 블로그 Tauran at Greenacre's Requiem http://eurobishop.bl[...]
[10] 뉴스 Youths' hopes spur dialogue among adults, cardinal tells Buddhists http://www.catholicn[...] 2013-03-10
[11] 뉴스 Pope sets up Pontifical Commission to study IOR reform http://en.radiovatic[...] Vatican Radio 2014-12-20
[12] 뉴스 Francis names new Camerlengo, interim leader of Vatican at pope's death http://ncronline.org[...] 201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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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웹사이트 Le cardinal français Jean-Louis Tauran est mort https://www.liberati[...] Le Point 2018-07-06
[16] 뉴스 Funerali di Tauran, Sodano: "Servì la Chiesa con coraggio nonostante la malattia" https://www.lastampa[...] 2018-07-12
[17] 뉴스 Unilateral War Would Be a "Crime Against Peace," Says Archbishop https://zenit.org/ar[...] 2003-02-24
[18] 뉴스 Christians safer under Saddam, Vatican official says http://cathnews.com/[...] 2007-08-06
[19] 뉴스 In Diwali message to Hindus, Vatican officials call for mutual respect https://www.catholic[...] 2017-10-16
[20] 뉴스 Ex-diplomat Cardinal Tauran pulls no punches now http://blogs.reuters[...]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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