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배
1. 개요
정의배는 1795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난 한국 천주교의 성인이다. 그는 천주교를 접하기 전 과거 시험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아내를 잃고 홀로 지내다 1839년 순교 장면을 목격한 후 개종했다. 이후 교리 교사로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순교했다. 1968년 복자,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이름: 정의배 마르코 | |
| 출생일 | 1795년 |
|---|---|
| 사망일 | 1866년 3월 11일 |
| 축일 | 9월 20일 |
| 교파 | 로마 가톨릭교회 |
| 출생지 | 경기도 용인 |
| 사망지 | 서울 새남터 |
| 직업 | 순교자 |
| 시복일 | 1968년 10월 6일 |
| 시복인 | 교황 바오로 6세 |
| 시성일 | 1984년 5월 6일 |
| 시성인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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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출생 -
토머스 칼라일
토머스 칼라일은 19세기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이자 사상가로, 《프랑스 혁명사》, 《영웅 숭배론》 등의 저서를 통해 빅토리아 시대 문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영웅 숭배론, 민주주의 비판 등의 사상을 펼쳤다. -
1795년 출생 -
존 키츠
존 키츠는 1795년 런던에서 태어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으로, 가난한 환경 속에서 외과의사 견습생으로 일하다 시 창작에 몰두하여 "그리스의 옛 항아리에 대한 송가" 등의 명작을 남겼으나 25세에 결핵으로 요절했고 사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영국 문학의 거장이 되었다. -
용인시 출신 -
이용구 (1964년)
이용구는 1964년 출생한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변호사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 법무실장, 차관, 장관 직무대리를 역임했다. -
용인시 출신 -
송영근 (1947년)
대한민국 육군 중장 출신인 송영근(1947년)은 국군기무사령관을 지냈으며,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후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
19세기 가톨릭 순교자 -
주문모
청나라 출신 가톨릭 신부 주문모는 1794년 조선에 잠입하여 선교 활동을 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으며, 초기 조선 천주교회 성장에 기여하여 2014년 시복되었다. -
19세기 가톨릭 순교자 -
김효주 (종교인)
김효주 아녜스는 1816년 밤섬에서 태어나 언니 김효임 콜룸바와 함께 신앙 생활을 하다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순교자이며,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2. 생애
1845년 조선에 입국한 페레올 주교는 정의배를 교리 교사(회장)으로 임명했다. 정의배는 죽을 때까지 그의 의무를 매우 충실히 수행하였으므로, 다블뤼 주교는 그가 성인의 삶을 살았다고 공언하였으며, 베르뇌 주교는 천국에서 정의배 회장과 함께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교우들과 예비 신자들에게 모범이 되었으며, 병자들과 고아들을 돌보았다. 피 카타리나를 후처로 맞았고, 일부러 가난한 삶을 살았다.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조카 피 바오로를 입양하였고, 피 바오로는 브르트니에르 신부에게 조선말을 가르쳤다.
정의배는 강한 의지력의 소유자로서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살았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순교자로 죽기를 원했다. 브르트니에르 신부는 미사 때마다 교우들에게 그의 경건한 태도를 칭찬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정의배는 다른 사람들을 피신시켰지만, 자신은 피신하지 않았다. 1866년 2월 25일 체포되었는데, 이를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 당시 72세였다. 감옥에서 며칠 동안 네 명의 프랑스인 선교사들과 함께 보냈으며, 극심한 고문 끝에 1866년 3월 11일 새남터에서 참수되었다.
2.1. 개종 전
정의배는 1795년 경기도 용인의 천주교를 경멸하는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과거 시험 공부를 마치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결혼했지만, 얼마 못가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자식 없이 여러 해를 홀아비로 보냈다. 1839년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가 순교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정의배는 천주교를 이교라고 생각하였지만, 커다란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선교사들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천주교 서적들을 읽고 천주교가 그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한양으로 올라와서 세례를 받았다.
2.2. 천주교 귀의와 활동
정의배는 1795년에 경기도 용인에서 천주교를 경멸하는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과거 시험 공부를 마치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결혼했지만, 얼마 못가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자식 없이 여러 해를 홀아비로 보냈다. 1839년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가 순교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정의배는 천주교를 이교라고 생각하였지만, 커다란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선교사들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천주교 서적들을 읽었으며, 천주교가 그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한양으로 올라와서 세례를 받았다. 1845년 조선에 입국한 페레올 주교는 그를 교리 교사(회장)으로 임명했다. 교리교사 정의배는 죽을 때까지 그의 의무를 매우 충실히 수행하였으므로, 다블뤼 주교는 그가 성인의 삶을 살았다고 공언하였으며, 베르뇌 주교는 천국에서 정의배 회장과 함께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교우들과 예비 신자들에게 모범이 되었으며, 병자들과 고아들을 돌보았다. 교우 피 카타리나를 후처로 맞았고, 일부러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들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조카 피 바오로를 입양하였다. 피 바오로는 그들의 집에 살며 브르트니에르 신부에게 조선말을 가르쳤다.
정의배 회장은 매우 강한 의지력의 소유자로서 언제나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살았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언제나 순교자로 죽기를 원했다. 브르트니에르 신부는 미사 때마다 교우들에게 그의 경건한 태도를 칭찬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