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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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인섭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에 걸쳐 활동한 시인, 영문학자, 평론가이다. 울산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색동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문예운동을 시작했다. 해외문학연구회를 조직하고 평론 활동을 시작했으며, 극예술연구회, 조선민속학회, 조선어학회 등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친일 행적을 보였으며, 광복 후 서울대학교 대우교수, 중앙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하며 시의 영문 번역에 힘썼다. 친일 행적으로 인해 친일 문학인 명단,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색동회는 그의 호를 딴 눈솔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정인섭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정인섭
출생일1905년 3월 31일
출생지대한제국 경상남도 울주군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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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일1983년 9월 16일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직업작가, 평론가, 교육인
국적일제 강점기 조선
대한민국
장르시, 문학평론
참고 자료
참고 자료영문학자 鄭寅燮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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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정인섭은 경상남도 울주군 출신으로, 일본 유학 후 1929년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색동회 발기인으로 참가했고, 잡지 《어린이》에 동시와 동화를 발표하며 문예운동을 시작했다. 1926년 해외문학연구회를 조직하여 해외문학파를 형성하고, 기관지 《해외문학》에 평론을 발표하며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대 중반까지 해외문학파 평론가로 활동하며 카프 계열의 계급주의 문학, 우파 민족주의 문학과 함께 문단을 삼분하는 문학적 유파를 자처했다.

귀국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1931년 유치진 등과 극예술연구회를 창립, 신극 운동에 참여했다. 1932년 송석하, 손진태와 조선민속학회를 창립했고, 조선어학회와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에도 참여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조선문인협회 간사 등을 맡으며 친일 행적을 보였다. 1940년매일신보》에 〈애국문학의 제창〉을 시작으로 태평양 전쟁 지원을 위한 순회강연에 참가하는 등 친일 활동을 했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영문학 연구와 한국 시 번역에 힘썼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위원장을 역임하고, 《영역 한국시선》으로 번역문학상을 받았다.

2.1. 초기 생애와 교육

경상남도 울주군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1929년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색동회 발기인으로 참가했고, 잡지 《어린이》에 동시와 동화를 발표하며 창작 활동과 문예운동을 시작했다.

2.2. 문단 활동과 해외문학파

1922년 색동회에 발기인으로 참가하고 잡지 《어린이》에 동시와 동화를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과 문예운동에 뛰어들었다.

1926년 이하윤, 김진섭 등과 함께 해외문학연구회를 조직하여 해외문학파를 형성하였다. 해외문학연구회의 기관지 《해외문학》에 에드거 앨런 포조지 버나드 쇼를 논하는 평론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평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0년대 중반까지 활발한 평론 발표로 대표적인 해외문학파 평론가로 활동하였으며, 특히 외국 이론의 단순 소개를 넘어 카프 계열의 계급주의 문학과 우파 민족주의 문학과 함께 문단을 삼분하는 것으로 자평하며 하나의 문학적 유파를 자처하였다. 〈조선 현 문단에 소(訴)함〉(1931)이라는 평론에는 이러한 해외문학파의 관점이 잘 드러나 있으며, 한국의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이 일본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면서 한국적 특수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2.3. 연극, 민속학, 한글 연구

1931년 유치진 등과 함께 극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신극 운동에 관심을 보였다. 1932년에는 송석하, 손진태와 함께 조선민속학회를 창립하였고, 조선어학회와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에도 참여했다.

2.4. 일제 강점기 말기의 친일 행적

조선문인협회 간사, 상무간사 등을 지내며 친일 평론을 발표했다. 1938년부터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는 1941년 일제의 미국 침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과 그 이듬해 싱가포르 함락 즈음에 절정에 달했다. 이 시기 그의 친일 활동 유형은 다음과 같다.
* 문필을 통한 친일 활동
* 강연과 좌담회를 통한 친일 활동
* 일본군 위문‧학병 지원과 신사 근로 봉사 활동
* 친일 단체 활동

이러한 활동은 다시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 미화‧선전
* 침략 전쟁 협조
* 민족정신 말살

1940년매일신보》에 실은 〈애국문학의 제창〉을 시작으로 태평양 전쟁 지원을 위한 순회강연에 참가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등 다수의 친일 글이 남아 있다.

2.5. 해방 이후의 활동

광복 후 서울대학교 대우교수와 중앙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하며 시인이자 영문학자로 활동했고, 한국 시의 영어 번역에 주력했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위원장을 지냈으며, 《영역 한국시선》으로 제4회 번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3. 사후 평가

정인섭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 행적으로 인해 여러 단체에서 비판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색동회는 그의 어린이 문화 운동 공로를 인정하여 그의 호를 딴 눈솔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3.1. 친일 행적 관련 목록 등재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연세대학교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연세대학교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가 2005년 공개한 '연세대학교 친일파 명단'과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도 선정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3.2. 상반된 평가

정인섭은 2002년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연세대학교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가 2005년 공개한 '연세대학교 친일파 명단'과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도 선정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한편, 색동회는 어린이 문화 운동에 공이 큰 사람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정인섭의 호를 딴 눈솔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