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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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인택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이후 활동한 소설가이다. 친일 언론인 정운복의 아들로, 《매일신보》와 《문장》의 기자로 활동하며 사소설과 심리소설을 주로 발표했다. 1936년 〈촉루〉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촉루〉, 〈미로〉, 〈여수〉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조선문인보국회에 참여하는 등 친일 행적을 보였으며, 친일 문학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한국 전쟁 중 월북했으며, 월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정인택 (소설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 정인택
원어 이름鄭人澤
출생일1909년 9월 12일
출생지대한제국 한성부
사망일1952년 8월 4일
직업소설가
국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장르소설
번역
언어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학력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중퇴
활동 기간1930년 ~ 1952년
소속조선문인보국회 문예과 과장
부모정운복(부)
배우자권영희
자녀정태은(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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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의친왕 망명을 꾀한 대동단 사건에 연루되었던 언론인 정운복의 아들로, 한성부에서 태어났으며, 평안북도 의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다. 일제강점기에 《매일신보》, 《문장》 기자를 지내면서 사소설, 심리소설 위주로 약 4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1936년 발표한 〈촉루〉가 문단 데뷔작이다. 작가의 자의식이 반영된 지식인 청년이 주인공인 〈촉루〉는 〈미로〉(1939), 〈여수〉(1941)로 이어지는 연작으로 정인택의 대표작이 되었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 조선문인보국회에 참가하는 등 친일 행적이 있으며, 만주 이주를 배경으로 쓴 〈검은 흙과 흰 얼굴〉(1942)은 전형적인 친일 작품으로 꼽힌다. 2002년 공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친일 작품은 소설 6편과 창작집 1권을 포함해 총 13편이 밝혀져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이상의 연인으로 알려진 권영희와 결혼했고, 한국 전쟁 중 가족과 함께 월북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이념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을 썼고 광복 후에는 보도연맹 가입 기록이 있을 뿐 문단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가게 된 정확한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월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인택은 병사하였다. 권영희는 몇 년 후 정인택의 또다른 친구인 월북 작가 박태원과 재혼했으며, 박태원 슬하에서 자란 정인택의 차녀 정태은이 북조선의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정인택의 월북 이후 행적 및 사망년도는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6년 이산가족 상봉으로 북조선에 거주하는 누나를 만난 박태원의 차남 박재영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전해 들은 소식을 밝히면서 공개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활동

의친왕 망명을 꾀한 대동단 사건에 연루되었던 언론인 정운복의 아들로,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평안북도 의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매일신보》, 《문장》 기자를 지내면서 사소설, 심리소설 위주로 약 4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1936년 발표한 〈촉루〉가 문단 데뷔작이다. 작가의 자의식이 반영된 지식인 청년이 주인공인 〈촉루〉는 〈미로〉(1939), 〈여수〉(1941)로 이어지는 연작으로 정인택의 대표작이 되었다.

2.2. 친일 행적

일제강점기조선문인보국회에 참가하는 등 친일 행적이 있다. 이 무렵 만주 이주를 배경으로 쓴 〈검은 흙과 흰 얼굴〉(1942)은 전형적인 친일 작품으로 꼽힌다. 2002년 공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친일 작품은 소설 6편과 창작집 1권을 포함해 총 13편이 밝혀져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2.3. 해방 이후 및 월북

정인택은 절친한 친구였던 이상의 연인으로 알려진 권영희와 결혼했고, 한국 전쟁 중 가족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다. 일제 강점기부터 이념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을 썼고 광복 후에는 보도연맹 가입 기록이 있을 뿐 문단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월북 경위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월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인택은 병사하였다. 권영희는 몇 년 후 정인택의 또 다른 친구인 월북 작가 박태원과 재혼했으며, 박태원 슬하에서 자란 정인택의 차녀 정태은이 북조선의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정인택의 월북 이후 행적 및 사망년도는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6년 이산가족 상봉으로 북조선에 거주하는 누나를 만난 박태원의 차남 박재영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전해 들은 소식을 밝히면서 공개되었다.

2.4. 월북 이후

이상의 연인으로 알려졌던 권영희와 결혼했고, 한국 전쟁 중 가족과 함께 월북하였다. 정인택은 일제 강점기부터 이념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을 썼고 광복 후에는 보도연맹 가입 기록이 있을 뿐 문단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가게 된 정확한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월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인택은 병사하였다. 권영희는 몇 년 후 정인택의 또 다른 친구인 월북 작가 박태원과 재혼했으며, 박태원 슬하에서 자란 정인택의 차녀 정태은이 북조선의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정인택의 월북 이후 행적 및 사망년도는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6년 이산가족 상봉으로 북조선에 거주하는 누나를 만난 박태원의 차남 박재영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전해 들은 소식을 밝히면서 공개되었다.

3. 주요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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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직책
1943년 3월 ~ 1943년 6월조선공산당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
1943년 6월 ~ 1945년 8월조선문인보국회 문예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