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제고
1. 개요
지제고(知制誥)는 황제의 명령을 작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관직으로, 중국과 한국에서 모두 존재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기에 한림학사가 중서성의 기능을 분담하면서 시작되었고, 송나라 때 제(制)와 고(誥)를 작성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직책으로 정립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정4품 학사직으로 조서와 교서를 작성하는 역할을 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지제교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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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관직과 칭호 -
관찰사
관찰사는 중국, 한국, 일본에서 지방 행정 감찰관직으로, 당나라 채방처치사에서 시작되어 관찰처치사로 개칭되며 명칭이 유래되었고, 한국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정착하여 각 도에 파견된 종2품 문관직으로 지방 행정 전반에 걸쳐 권한을 행사했다. -
한국의 관직과 칭호 -
집사
집사는 대저택에서 고용주를 보좌하고 가사를 관리하는 직업으로, 역사적으로 집사관이라는 관직이나 하인 계급의 우두머리 역할에서 유래했으며, 현대에는 역할과 직무가 다양해지고 대중문화에도 묘사된다. -
토막글 틀에 과도한 변수를 사용한 문서 -
전향
전향은 종교적 개종이나 노선 변경을 의미하며, 근대 이후 정치적 이념 변화를 지칭하는 용어로 확장되어 개인의 신념 변화, 정치적 압력 등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하며, 사회주의·공산주의로부터의 전향, 전향 문학, 냉전 시대 이후의 전향 현상 등을 폭넓게 논의한다. -
토막글 틀에 과도한 변수를 사용한 문서 -
포토마스크
포토마스크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인쇄 회로 기판 제조 시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전사하는 마스크로, 기술 발전을 거듭하며 융용 실리카 기판과 금속 흡수막을 사용하고 위상 천이 마스크, EUV 마스크 등의 고급 기술이 개발되어 반도체 미세화에 기여하고 있지만, 높은 제작 비용과 기술적 어려움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
토론 이름공간 토막글 -
전향
전향은 종교적 개종이나 노선 변경을 의미하며, 근대 이후 정치적 이념 변화를 지칭하는 용어로 확장되어 개인의 신념 변화, 정치적 압력 등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하며, 사회주의·공산주의로부터의 전향, 전향 문학, 냉전 시대 이후의 전향 현상 등을 폭넓게 논의한다. -
토론 이름공간 토막글 -
포토마스크
포토마스크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인쇄 회로 기판 제조 시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전사하는 마스크로, 기술 발전을 거듭하며 융용 실리카 기판과 금속 흡수막을 사용하고 위상 천이 마스크, EUV 마스크 등의 고급 기술이 개발되어 반도체 미세화에 기여하고 있지만, 높은 제작 비용과 기술적 어려움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2. 기원
제(制)와 고(誥)는 모두 서경에 나오는 단어로, 천자의 말을 의미한다. 하, 은, 주 삼대에서 사용되었으나, 진 시황제가 "명(命)"을 "제(制)"로, "령(令)"을 "조(詔)"로 고친 이후 "고(誥)"는 문서에서 사라졌다. 당대에는 조(詔), 책(冊), 제(制), 칙(勅)이 황제의 명령을 의미했다.
한림원은 당대 초기에 학문과 예술에 뛰어난 인물을 모으기 위해 설치되었으나, 현종 시기 중서성의 업무가 과중되자 한림학사 직책을 두어 일부 기능을 분담시켰다. 한림학사는 재상 역할을 했지만 전임 관직은 아니었고 정원도 없었다. 송대에 조칙(詔勅) 제도는 당나라를 따라 "고(誥)"가 부활하여 "제(制)"와 함께 사용되었고, 이 둘을 작성하는 업무는 한림학사에서 분리되어 지제고(知制誥)가 설치되었다.
지제고는 원대에는 중요한 직책이 아니었고, 명대 초기에도 이 직책명이 존재했다.
2.1. 고대 문서 형식
제(制)와 고(誥)는 모두 서경에 나타나며, "천자의 말"을 뜻한다. 하, 은, 주에서 사용되었으나, 진 시황제가 "명(命)"을 "제(制)"로, "령(令)"을 "조(詔)"로 고친 후 "고(誥)"는 문서에서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당대까지 조(詔), 책(冊), 제(制), 칙(勅)이 황제의 명령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송대에 이르러 조칙(詔勅) 제도는 당나라를 따라 "고(誥)"가 부활하여 "제(制)"와 함께 사용되었다. 제(制)와 고(誥)를 작성하는 업무는 한림원에서 분리되어 지제고(知制誥)가 설치되었다.
지제고(知制誥)는 원대에는 중요한 직책이 아니었고, 명대 초기에도 이 직책명이 있었다.
2.2. 초기 발전
한림원은 당대 초기에 설치되어 학문과 예술에 뛰어난 인물을 모았으나, 현종 시기에 중서성의 사무가 번잡해지고 문서가 정체되자 한림학사라는 직책을 두어 중서성의 일부 기능을 분담시켰다. 이 한림학사는 중용되어 재상의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지만, 전임 관직은 아니었고 정원도 없었다. 송대에 이르러 조칙(詔勅) 제도는 당나라를 따라 "고(誥)"가 부활되어 "제(制)"와 함께 사용되게 된다. 제(制)와 고(誥)를 작성하는 업무는 한림학사에서 분리되어, 지제고(知制誥)가 설치되었다.
3. 중국
송나라대에 이르러 조칙(詔勅) 제도는 당나라를 따라 "고(誥)"가 부활되어 "제(制)"와 함께 사용되게 된다. 제(制)와 고(誥)를 작성하는 업무는 한림학사에서 분리되어, 지제고(知制誥)가 설치되었다. 원대에는 지제고가 중요한 직책이 아니게 되었고, 명나라 초기에도 이 직책명이 존재했다.
3.1. 당나라
제(制)와 고(誥)는 모두 서경에 나오는 천자의 말을 의미한다. 하·은·주 삼대에서 사용되었으나, 진 시황제가 "명(命)"을 "제(制)"로, "령(令)"을 "조(詔)"로 고친 이후 "고(誥)"는 문서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당대까지 조(詔), 책(冊), 제(制), 칙(勅)이 황제의 명령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한림원은 당대 초기에 설치되어 학문과 예술에 뛰어난 인물을 모았을 뿐이었으나, 현종 시기에 중서성의 사무가 번잡해지고 문서가 정체되자 한림학사라는 직책을 두고 중서성의 일부 기능을 분담시켰다. 이 한림학사는 중용되어 재상의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지만, 전임 관직이 아니었고 정원도 없었다.
3.2. 송나라
한림원은 당대 초기에 설치되어 학문과 예술에 뛰어난 인물을 모았을 뿐이었으나, 현종 시기에 중서성의 사무가 번잡해지고 문서가 정체되자 한림학사라는 직책을 두고 중서성의 일부 기능을 분담시켰다. 이 한림학사는 중용되어 재상의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지만, 전임 관직이 아니었고 정원도 없었다. 송대에 이르러 조칙(詔勅) 제도는 당나라를 따라 "고(誥)"가 부활되어 "제(制)"와 함께 사용되게 된다. 제(制)와 고(誥)를 작성하는 업무는 한림학사에서 분리되어, 지제고(知制誥)가 설치되었다.
3.3. 원나라와 명나라
제(制)와 고(誥)는 모두 서경에 보이며, "천자의 말"을 의미한다. 진 시황제가 "명(命)"을 "제(制)"로, "령(令)"을 "조(詔)"로 고친 이후 "고(誥)"는 문서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게 된다.
원대에는 지제고(知制誥)가 중요한 직책이 아니게 되었고, 명대 초기에도 이 직책명이 존재했다.
4. 한국
고려 시대에는 정4품 학사직을 맡은 인물이 조서, 교서 등을 작성하는 업무를 맡았으며, 내지제고, 외지제고라고도 불렸다. 조선 시대에 들어 지제교(知製敎)로 개칭되었다.
4.1. 고려 시대
고려에서 정4품 학사직(學士職)을 맡은 인물이 지냈으며 조서(詔書), 교서(敎書) 등을 작성하는 업무를 맡았다. 내지제고(內知制誥), 외지제고(外知制誥)라고도 불렸다.
4.2. 조선 시대
고려에서 정4품 학사직(學士職)을 맡은 인물이 지냈으며 조서(詔書), 교서(敎書) 등을 작성하는 업무를 맡았다. 경우에 따라 내지제고(內知制誥), 외지제고(外知制誥)라고도 불렸으며 조선 시대에는 지제교(知製敎)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