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중락
1. 개요
차중락은 1942년 경성부 출생으로, 1960년대 활동한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65년 키 보이스에 합류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며, 1966년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발표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1968년 뇌막염으로 사망했으며, 대표곡으로는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별처럼 달처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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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장충초등학교 동문 -
정몽준
정몽준은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7선 국회의원, 대한축구협회 회장, FIFA 부회장을 역임하고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에 기여했으며,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하여 사회 공헌 활동을 한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치인, 축구 행정가이다. -
서울장충초등학교 동문 -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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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복중학교 동문 -
맹형규
맹형규는 1946년 서울 출생으로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언론인, 국회의원,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 행정안전부 장관을 역임했다. -
서울경복중학교 동문 -
김동진 (1938년)
김동진은 대한민국 육군 대장 출신으로 제33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베트남 전쟁 참전, 육군참모총장과 합동참모의장 역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등의 경력을 거쳐 한국군 현대화에 기여하고 한경대학교 초빙교수와 자유민주연합 특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
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성시경
성시경은 2000년 데뷔한 대한민국의 가수로, 7장의 정규 앨범 발매와 방송 활동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며 여러 시상식에서 수상했다. -
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함중아
함중아는 1971년 데뷔하여 《내게도 사랑이》, 《풍문으로 들었소》 등의 히트곡을 남긴 대한민국의 록 음악 가수로, 2019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2. 생애
차중락은 1942년 3월 2일 경성부에서 아버지 차준달과 어머니 안소순 사이에서 8남 3녀 중 셋째 아들(3남)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선총독부 경성부 공무과장직을 맡았던 마라톤 선수 출신의 공무원이었고, 해방 후에는 개인 사업가로 변신하여 집안은 매우 부유하였다. 유년 시절에는 화종(華鐘)이라 불렸으나, 6.25 전쟁이 끝난 1953년 말에 중락(重樂)으로 개명하였다.
서울경복중학교와 경복고등학교 시절부터 예능과 체육에 재능을 보였으며, 1961년에는 미스터 코리아 전국 대회에서 2등(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1955년 서울장충초등학교, 1958년 서울경복중학교, 1961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한양공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1학년 시절이던 1961년에는 보디빌딩을 하여 미스터코리아 2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1962년 11월 3일 서울로 돌아온 그는, 3년 후 사촌형 차도균의 권유로 1965년 키보이스에 합류했다. 1964년 8월 1일 미8군 무대에 오른 첫날부터 큰 인기를 얻었으며, '한국의 엘비스'로 불리게 되었다.
1966년 11월 10일, 엘비스 프레슬리의 《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번안 및 편곡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 크게 히트하였다. 1967년 8월, 제2회 MBC 10대 가수상 신인 부문에서 정훈희와 함께 수상했으며, 같은 해 12월 동양방송(TBC) 신인가수상에서는 이봉조 작곡의 <사랑의 종말>이 히트했다.
1968년 11월 10일, 서울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 뇌막염으로 쓰러져 사망하였다. 그의 묘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공원묘지에 있다. 묘비에 새겨진 글인 <낙엽의 뜻>은 조병화 시인이 짓고, 그의 맏형 차중경이 썼다. 묘비 아랫부분에는 배호 등 유명 가수들과 허장강 등 유명 배우들의 이름이 있으며, 그다음 해부터 가수 차중락을 기리는 낙엽상이 제정되었다.
2.1. 성장 과정
차중락은 1942년 3월 2일 경성부에서 아버지 차준달과 어머니 안소순 사이에서 8남 3녀 중 셋째 아들(3남)로 태어났다. 서울시 중구 신당동 304번지 603호에서 출생하였고, 그의 아버지는 해방 이전에 서울시청(경성시청)의 전신인 조선총독부 경성부 공무과장직을 맡았던 경성 보성전문학교 마라톤 선수 출신의 공무원이었다. 해방 후에는 개인 사업가로 변신하여 (주)신흥인쇄소를 경영하였는데, 집안은 매우 부유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경성여자고등상업학교 시절 단거리 선수였으며, 차중락의 큰이모의 아들이 김수영이었으니, 차중락과는 이종사촌 간이었다.
차중락은 유년 시절에 화종(華鐘)이라 불렸고, 동생 차중광은 명종(明鐘)으로 불리다가, 6.25 전쟁이 끝난 1953년 말에 각각 중락(重樂)과 중광(重光)으로 개명하였다.
차중락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예능과 체육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으며, 특히 그림과 유화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그의 큰 형은 역도 선수 출신이었고, 둘째 형은 연세대학교 야구부 주장이었던 형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성장하였다. 1961년에는 미스터 코리아 전국 대회에 출전하여 2등(준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신체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차중락은 1955년 서울장충국민학교, 1958년 서울경복중학교, 1961년 서울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학창 시절 육상 선수로도 활약하였고, 한양공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1학년 시절이던 1961년에는 보디빌딩을 하여 미스터코리아 2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2.2. 음악 활동
1962년 11월 3일 서울로 돌아온 그는, 3년 후 사촌형 차도균(키 보이스 구성원)의 권유로 1965년 키 보이스(록 음악 밴드)에 합류했다. 1964년 8월 1일 미8군 무대에 오른 첫날부터 큰 인기를 얻었으며, 시민회관 공연 때는 검은 고무장화 한 켤레를 신고 나가 '한국의 엘비스'로 불리게 되었다.
차중락의 애인 옥주(玉珠)는 에바 가드너와 견줄 만한 미인이었으며, 1964년 당시 대한항공(KAL) 스튜어디스로 취업한 후 미국으로 떠났다. 윤항기는 회고록 성향의 수필집에서 그녀를 이화여자대학교 메이퀸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1966년 가을, 옥주는 대한항공에서 사직하고 미국으로 떠나면서 그들의 사랑은 끝이 났다.
1966년 11월 10일, 엘비스 프레슬리의 《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번안 및 편곡한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 크게 히트하였다. 1967년 8월, 제2회 MBC 10대 가수상 신인 부문에서 정훈희와 함께 수상했으며, 같은 해 12월 동양방송(TBC) 신인가수상에서는 이봉조 작곡의 <사랑의 종말>이 히트했다. 차중락이 가장 좋아했던 곡은 방송금지곡이었던 <마음은 울면서>와 <철없은 아내>였다.
2.3. 요절
1968년 11월 10일, 차중락은 서울 청량리로터리 부근 舊동일극장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 뇌막염으로 쓰러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3주간 입원했으나, 혼수상태 및 전신마비로 사망하였다. 그의 묘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공원묘지에 있다.
묘비에 새겨진 글인 <낙엽의 뜻>은 조병화 시인이 짓고, 그의 맏형 차중경이 썼다. 시인 조병화(인하대학교 명예교수 역임)는 배우 이순재의 서울고 시절 은사이기도 하다.
묘비 아랫부분에는 배호 등 당시 유명 가수들과 허장강 등 유명 배우들의 이름이 있으며, 그다음 해부터 가수 차중락을 기리는 낙엽상이 제정되어 그해 가장 뛰어난 신인들에게 이 상을 주었다. 낙엽상 제정 첫해 수상자는 나훈아와 이영숙이었고, 1972년 제4회 때는 김세환, 이수미가 수상했다.
3. 가족 및 친척 관계
차중락은 1942년 3월 2일 경성부에서 아버지 차준달과 어머니 안소순 사이에서 8남 3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해방 전 서울시청의 전신인 조선총독부 경성부 공무과장직을 역임했고, 경성 보성전문학교 마라톤 선수 출신의 공무원이었다. 해방 후에는 개인 사업가로 변신하여 (주)신흥인쇄소를 경영하며 부유한 집안을 이끌었다. 어머니는 경성여자고등상업학교 시절 단거리 선수였으며, 시인 김수영은 차중락의 큰이모의 아들로, 그와는 이종사촌 간이었다.
| 관계 | 이름 | 직업 및 특이사항 |
|---|---|---|
| 아버지 | 차준달 | 前 조선총독부 경성부 공무과장, (주)신흥인쇄소 경영 |
| 어머니 | 안소순 | 前 단거리 선수, 민주공화당 성동지부 여성위원장 및 어머니회장 역임 |
| 큰형 | 차중경 | 역도선수, 파독 광부, 재미동포 |
| 둘째 형 | 차중덕 | 연세대학교 야구선수, 한양대학교 야구부 감독, 사업가 (재미동포) |
| 넷째 | 차중광 | (1945년 12월 16일 ~ 2020년 8월 27일) |
| 다섯째 | 차중용 | 대한화재보험 상무이사, 마케팅 회사 사장 |
| 여섯째 | 차중성 | 인하대학교 조선공학과 학사·석사 (조선업 설계사) |
| 일곱째 | 차중화 | 서라벌고등학교 졸업 |
| 막내 | 차중배 | 홍익대학교 졸업, < A to Z> 그룹사운드 보컬 활동 (명동, 종로 나이트클럽) |
| 장녀 | 차선희 | 재미교포 |
| 차녀 | 차순영 | 유튜버 |
| 막내딸 | 차선미 | |
| 조카 | 차승우 | (1978년 7월 27일 ~ ) |
| 사촌 형 | 차도균 | (1940년 6월 17일 ~ ) |
| 이종사촌 형 | 김수영 | (1921년 11월 27일 ~ 1968년 6월 16일), 시인 |
| 외사촌 누이 | 안광순 | 차중광과 장충초등학교 동기동창 |
| 5촌 조카 | 신혁재 박사 | 명지병원 진료부원장, 유방암 갑상선 센터장 (안광순의 장남) |
| 외가 숙모 | 최승희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훈예술인, 세계적 무희 |
| 5촌 숙부 | 홍순문 | (주)동부고속 화물영업본부 전무이사, 대표이사 역임 |
| 외가 6촌 형 | 안성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테너-성악가, 작곡가, 공훈예술인, "엄마야 누나야", "부용산" 작곡, 북조선 양강도 국립교향악단 지휘자 |
| 외가 조부 | 안국선 | 경북 청도군수, 탁지부 고등판무관 (친일인명사전에 군수직 2년 기록으로 등재) |
| 외가 6촌 형 | 홍두표 | 前 KBS 사장, 現 TV조선 회장 (외조모(홍성례) 친정동생 홍순칠의 아들) |
5. 영화인 지망기
차중락은 영화감독이 꿈이었으며, 회화적인 감성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가 그린 포스터 그림은 거리마다 붙어 있을 정도로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그래서 한양공대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했다.
5.1. 대학생 시절
차중락은 원래 장래 희망이 영화감독이었으며 회화적 감성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특히 국교 시절 포스터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이 거리마다 붙어 있을 정도로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한양공대 연극영화학과 재학 당시, 어머니 친구의 아들 프랭키 손이 일본에서 활약하다 귀국하여 차중락이 부르는 노래를 우연히 듣고 "너는 일본에 가면, 필경 대성공을 거둘 것이다."라고 말하여 일본행을 결심했다. 21세 때 대학교를 중퇴하고 밀항선도 탔지만, 경상남도 부산에서 밀항 사기에 걸려들었다.
6. 그의 히트곡
*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 〈별처럼 달처럼〉
* 〈밤하늘의 연가〉
* 〈그대는 가고〉
* 〈나는 혼자다〉
* 〈철없는 아내〉
* 〈사랑의 종말〉
* 〈별장지대〉
* 〈사랑아 돌아오라〉
* 〈환상〉
* 〈고향은 다르지만〉
* 〈마음은 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