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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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는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건물로, 1910년에 제조 업체에 의해 건축되었다. 1926년 독일 공산당이 매입하여 중앙위원회, 당 기관지, 청년동맹 등의 사무실로 사용했으며, 예술가들의 작업장이기도 했다. 나치 시대에는 호르스트 베셀 하우스로 개칭되어 강제 수용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독 시기에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독일 통일 이후에는 좌파 정당의 건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독일 좌파당 연방 중앙당과 여러 단체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건물에는 공산주의 관련 기념패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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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 동맹은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카를 리프크네히트 주도로 스파르타쿠스단을 재건하여 독일에서 결성된 혁명적 좌익 정치 조직으로, 군부로부터 권력을 장악하고 소비에트 공화국 건설을 목표로 독일 공산당 창당 후 스파르타쿠스 봉기 진압 과정에서 해체되었으며 독일 혁명과 좌익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 | |
---|---|
기본 정보 | |
![]() | |
위치 | 베를린 |
주소 | Kleine Alexanderstraße 28, 10178 Berlin |
좌표 | 52°31′17″N 13°24′52″E |
개관 | 1926년 |
소유 및 사용 | |
소유주 | SED (1946-1990) |
사용자 | 좌파당 (1990-) |
역사 | |
이전 이름 | 아돌프 좀머펠트 하우스 (Adolph-Sommerfeld-Haus) |
건설 시작 | 1912년 |
완공 | 1916년 |
재건축 | 1926년 |
건축가 | 막스 틴틀 (Max Tintel) 카를 프랑케 (Karl Francke) |
스타일 | 신바로크 |
기타 정보 | |
문화재 지정 여부 | 기념물 |
2. 역사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는 1910년 베를린 쇼이넨피어텔(Scheunenviertel) 지역에 처음 지어졌다. 이후 1926년 독일 공산당(KPD)이 매입하여 중앙 당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건물은 1919년 11월 혁명 중 살해된 공산당 공동 창립자 카를 리프크네히트의 이름을 따서 불리게 되었으나, 정확한 명명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다.[1]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편집국, 청년 동맹 등 주요 조직이 입주하며 당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에른스트 텔만, 빌헬름 피크, 발터 울브리히트 등 주요 지도자들이 이곳에서 활동했다.
1933년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건물은 돌격대(SA)에 의해 점거되었고, '호르스트 베셀 하우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나치 정권 하에서는 초기 강제 수용소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이후 게슈타포의 수색을 통해 숨겨진 문서와 무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1937년부터는 돌격대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지부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베를린 공방전으로 일부 파괴되었으나 골조는 유지되었다. 전후 소련 점령군은 건물을 독일 공산당이 설립한 회사에 넘겼고, 1949년 동독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 지도부 결정에 따라 증축되었다. 이후 사회주의통일당 중앙당 사무소,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 등으로 사용되었다.
독일 통일 이후, 건물 소유권을 둘러싸고 사회주의통일당의 법적 후계자인 민주사회당(PDS)과 독일 신탁청 간의 분쟁이 있었다. 협상 끝에 민주사회당은 대부분의 당 재산을 포기하는 대신,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의 소유권을 유지하게 되었다. 1990년부터 민주사회당 중앙당사로 사용되었고, 2007년 WASG와의 합당으로 창설된 독일 좌파당의 연방 중앙당사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좌파당 관련 청년 및 학생 조직, 자유독일청년단 등 여러 단체의 사무실과 서점 등이 입주해 있다.
2. 1. 건립 초기 (1910년 ~ 1926년)
이 건물은 제조 업체였던 Rudolph Werth의 의뢰로 1910년 베를린 쇼이넨피어텔(Scheunenviertel)에 지어졌다. 이후 1926년 7월 26일 독일 공산당(KPD)이 Berliner Likörfabrik AG in Liquidation의 청산 과정에서 매입하였다. 매입가는 (현재 가치로 약 180만유로)이었으며, 자금 마련을 위해 기존 로젠탈러 슈트라세의 공산당 중앙위원회(ZK) 건물을 매각하고 프로이센 국가은행(Preußische Staatsbank)으로부터 를 저당권 설정으로 확보했다. 이 거래를 통해 공산당은 감가상각 후 의 순이익을 얻었다.[1]2. 2. 독일 공산당 (KPD) 시대 (1926년 ~ 1933년)
1926년 7월 26일, 독일 공산당(KPD)은 Berliner Likörfabrik AG in Liquidation의 청산 과정에서 이 건물을 매입했다. 이 건물은 원래 1910년 제조 업체 Rudolph Werth의 의뢰로 베를린 쇼이넨피어텔(Scheunenviertel)에 지어진 것이었다. 공산당은 매입가인 를 마련하기 위해, 기존에 로젠탈러 슈트라세에 있던 공산당 중앙위원회(ZK) 건물을 매각했다. 또한 프로이센 국가은행(Preußische Staatsbank)에 의 저당권을 설정했다. 이러한 부동산 거래를 통한 감가상각으로 당 자산은 의 순이익을 얻었다.
1926년부터 1928년까지 보수 공사를 진행하면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당 기관들을 이곳으로 이전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927년 늦여름에 입주를 완료했다. 이 건물이 언제부터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1] 카를 리프크네히트는 독일 공산당의 공동 설립자로, 1919년 1월 11월 혁명 중에 살해된 인물이다.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에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외에도 여러 주요 기관이 자리를 잡았다.
-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라우지츠 그렌츠마르크 지역위원회
- 공산당 기관지 붉은기(Die Rote Fahne) 편집위원회
- 독일 공산주의 청년동맹 중앙위원회
- 적색전선전사동맹 제복 판매소
- 인쇄소
에른스트 텔만이 이끄는 당 지도부의 사무실로도 사용되었으며, 당시 지도부에는 빌헬름 피크, 발터 울브리히트, 헤르베르트 베너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나 막스 게브하르트(Max Gebhard)와 같은 예술가들도 이곳에 작업장을 마련했다.
1931년 8월 9일에는 건물 근처에서 공산당원이 경찰관 두 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경찰은 며칠 동안 당 중앙을 점거하고 압수 수색을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후 1933년 2월, 정치경찰이 다시 한번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를 수색했고, 이 수색은 2월 26일에 종료되었다. 이는 나치 정권 수립 직전 공산당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던 시기의 상황을 보여준다.
2. 3. 나치 시대 (1933년 ~ 1945년)
1933년 2월 정치경찰은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를 다시 수색했고, 이 수색은 2월 26일에 종료되었다. 1933년 3월 8일에는 나치당의 돌격대(SA)가 이 건물을 강제로 점거하고, 나치 당원이었던 호르스트 베셀의 이름을 따 '호르스트 베셀 하우스'(Horst-Wessel-Haus)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1933년 여름까지 이곳은 나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두는 강제 수용소로 악용되었다.같은 해 11월 15일,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수색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찾아내지 못했던 비밀 공간 두 곳을 발견했다. 이 비밀 공간에서는 기관총 2정, 기타 총기류 16정, 탄약과 함께 독일 공산당 지도부 및 당직자의 개인 정보(이력, 주소, 직책 등)가 담긴 다량의 서류가 나왔다. 이 은신처가 발각된 것은 독일 공산당 지도자 에른스트 텔만과 가까웠던 알프레트 카트너(Alfred Kattner)가 체포된 후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935년에는 건물이 프로이센 재무부의 지적 사무소로 넘겨졌고, 이후 보수 공사를 거쳤다. 이때 새로 만들어진 출입구 홀은 호르스트 베셀을 기리는 추모 공간으로 꾸며졌다. 1937년 1월부터는 돌격대(SA)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지부의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2. 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5년 ~ 1990년)
1945년 베를린 공방전 당시 건물의 일부가 파괴되었으나, 골조는 대부분 유지되었다. 1947년 12월, 소련 점령군은 압류했던 이 건물을 1946년 독일 공산당이 설립한 Fundament-Gesellschaft에 넘겼다. 1949년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 지도부는 건물의 외관 일부를 변경하고 한 층을 더 증축하기로 결정했다. 증축 공사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71세 생일인 1950년 12월에 맞춰 완료되었다. 초기에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중앙당 사무소가 입주했으나, 이후에는 사회주의통일당 중앙위원회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 사무실과 접대용 건물로 사용되었다.2. 5. 독일 통일 이후 (1990년 ~ 현재)
동서독 통일 이후 동독의 정당 및 협회 자산의 합법적 취득 여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의 법적 후계자인 민주사회당(PDS)은 독일 신탁청과 당 재산에 대한 협상을 진행했으며, 이 협상에는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도 포함되었다. 협상 과정에서 민주사회당 당직자의 단식 투쟁과 경찰의 여러 차례 수색 등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합의 결과, 민주사회당은 대부분의 부동산 소유권을 포기하는 대신, 독일 공산당과 독일 사회민주당이 강제로 합당되기 이전인 1946년 이전부터 독일 공산당이 소유하고 있던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와 튀링겐주 엘거스부르크(Elgersburg)에 위치한 호텔 암 발트(Hotel am Wald)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1990년부터 2007년까지 민주사회당 중앙당과 베를린 지부가 사용했으며, WASG와의 합당 이후에는 독일 좌파당 연방 중앙당과 베를린 지부가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건물에는 다음과 같은 단체 및 시설이 입주해 있다.
구분 | 명칭 |
---|---|
정당 연계 조직 | 독일 좌파당 청소년 협회 링크스유겐트 솔리트(Linksjugent Solid) 연방 중앙부 |
독일 좌파당 학생 협회 디 링케.SDS(Die Linke.SDS) 연방 중앙부 | |
기타 단체 | 자유독일청년단 등 다양한 조직 및 협회 사무실 |
시설 | 서점, 사무실 (Weydingerstraße 건물 일부) |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 정문 벽면 근처에는 세 개의 기념패가 설치되어 있다. 이 중 두 개는 동독 시기에 설치된 것으로, 건물의 공산주의적 과거를 상징한다. 하나는 과거 독일 공산당 대표였던 에른스트 텔만을 기리는 내용이며, 다른 하나는 1926년부터 1933년까지 이곳이 독일 공산당 중앙위원회 사무소였음을 알리는 내용이다.
3. 기념패 및 기념물
2013년 12월 17일에는 스탈린주의에 의해 희생된 좌익 인사들을 추모하는 세 번째 기념패가 공개되었다. 이는 2013년 10월 독일 좌파당 당 대표회의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또한, 이 건물의 대표 회의실에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름을 따 '로자 룩셈부르크 홀'(Rosa-Luxemburg-Saalde)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3. 1. 에른스트 텔만 기념패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 정문 벽면 근처에는 세 개의 기념패가 있다. 이 중 두 개는 동독 시기에 설치된 것으로, 건물의 공산주의적 역사를 상징한다. 하나는 과거 독일 공산당 대표였던 에른스트 텔만을 기리는 내용이며, 다른 하나는 1926년부터 1933년까지 이곳이 독일 공산당 중앙위원회 사무소였음을 알리는 내용이다. 후자의 기념패에는 Karl-Liebknecht-Haus // In diesem Gebäude arbeitete in den Jahren 1926 bis 1933 das Zentralkomitee der Kommunistischen Partei Deutschlands|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 // 1926년부터 1933년까지 이 건물에서 독일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활동했다de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2013년 12월 17일에는 스탈린주의 희생자를 기리는 세 번째 기념패가 추가로 공개되었다.
3. 2. 독일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념패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 정문 벽면 근처에는 기념패가 세 개 있다. 이 중 두 개는 동독 시기에 설치되었으며 이 건물의 공산주의적 과거를 상징한다. 기념패는 과거 독일 공산당 대표였던 에른스트 텔만과 독일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사무소를 기리는 내용이다. 중앙위원회 기념패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Karl-Liebknecht-Haus // In diesem Gebäude arbeitete in den Jahren 1926 bis 1933 das Zentralkomitee der Kommunistischen Partei Deutschlandsde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 // 이 건물에서는 1926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활동했다)
2013년 12월 17일에는 스탈린주의에 의해 희생당한 좌익 희생자를 기리는 세 번째 기념패가 공개되었다. 이는 2013년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열렸던 당 대표회의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기념패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Ehrendes Gedenken an Tausende deutsche Kommunistinnen und Kommunisten, Antifaschistinnen und Antifaschisten, die in der Sowjetunion zwischen den 1930er und 1950er Jahren willkürlich verfolgt, entrechtet, in Straflager deportiert, auf Jahrzehnte verbannt und ermordet wurdende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 소련에서 자의적으로 박해받고, 권리를 박탈당하고, 강제 수용소로 추방되고, 수십 년간 유배되거나 살해된 수천 명의 독일 공산주의자들과 반파시스트들을 기리며)
3. 3. 스탈린주의 희생자 추모 기념패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 정문 벽면 근처에는 기념패 세 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 중 두 개는 동독 시기에 설치된 것으로, 하나는 과거 독일 공산당 대표였던 에른스트 텔만을, 다른 하나는 독일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사무소를 기념한다. 후자의 기념패 전문은 다음과 같다: "Karl-Liebknecht-Haus // In diesem Gebäude arbeitete in den Jahren 1926 bis 1933 das Zentralkomitee der Kommunistischen Partei Deutschlands|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 // 이 건물에서는 1926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활동했다de"
2013년 12월 17일에는 스탈린주의에 의해 희생된 좌익 희생자들을 기리는 세 번째 기념패가 공개되었다. 이는 2013년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열렸던 독일 좌파당 당 대표회의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기념패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Ehrendes Gedenken an Tausende deutsche Kommunistinnen und Kommunisten, Antifaschistinnen und Antifaschisten, die in der Sowjetunion zwischen den 1930er und 1950er Jahren willkürlich verfolgt, entrechtet, in Straflager deportiert, auf Jahrzehnte verbannt und ermordet wurden|존경하는 마음으로 기억합니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 소련에서 자의적으로 박해받고, 권리를 빼앗기고, 강제 수용소로 추방되고, 수십 년간 유배되거나 살해된 수천 명의 독일 공산주의자들과 반파시스트들을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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