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링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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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링겐주는 독일 중부에 위치한 주로, 3세기 투링기족에서 유래된 지명을 가지고 있다. 1920년 여러 소국이 통합되어 튀링겐 주가 탄생했으며, 동독 시기를 거쳐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현재의 튀링겐 주로 재건되었다. 튀링겐은 17개의 군과 6개의 군급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에르푸르트가 주도이다. 지형은 튀링겐 숲, 튀링겐 분지 등 다양하며, 기후는 온대 기후로 북동부로 갈수록 대륙성 기후의 특징이 나타난다. 튀링겐은 독일의 녹색 심장으로 불리며, 관광, 산업, 농업이 경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한다. 튀링겐 주는 교육 시스템이 우수하며, 예나 대학교, 일메나우 공과대학교 등 다양한 대학교가 위치해 있다. 튀링겐의 상징은 사자를 묘사한 문장과 흰색, 빨간색 줄무늬의 깃발이며, 브라트부어스트와 숲 역시 튀링겐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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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링겐주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튀링겐 자유주 |
고유 명칭 | |
위치 | 독일 |
수도 | 에르푸르트 |
정부 형태 | 주 |
면적 | 16,171 제곱킬로미터 |
인구 | 2,120,237 명 (2020년 12월 31일 기준)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인구 통계 | 튀링겐 사람 |
시간대 | CET (+1) |
서머타임 | CEST (+2) |
ISO 코드 | DE-TH |
NUTS 지역 | DEG |
HDI (2018) | 0.928, 12위/16위, |
공식 웹사이트 | thueringen.de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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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
정부 기관 | 튀링겐 주의회 |
주지사 | 마리오 보이그트 |
집권 정당 | |
연방 상원 의석 | 4석 (총 69석 중) |
연방 하원 의석 | 19석 (총 736석 중) |
경제 | |
총 GDP (2022년) | 714억 3천만 유로 |
1인당 GDP (2022년) | 33,656 유로 |
기타 | |
별칭 | 독일의 녹색 심장 |
2. 역사
3세기 경 투링기족이 튀링겐 지역을 차지하면서 튀링겐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튀링겐이라는 지명은 이들에게서 유래했다. 6세기 경에는 프랑크족이 이 지역을 차지했다. 튀링겐 왕국은 531년 이후까지 존속했다.
1130년 방백령이 된 튀링겐은 1247년 루도빙거 백작 가문이 단절되고 튀링겐 계승 전쟁(1247–1264)이 일어나면서 변화를 맞았다. 서쪽 절반은 헤센으로 독립했고, 나머지는 마이센 변경백국의 베틴 왕조가 차지하여 선제후령과 작센 왕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1485년 베틴 가문 분열 후 튀링겐은 에르네스틴 분파에 속했고, 이후 여러 작센 공국들로 나뉘었다.[1]
16세기 튀링겐은 종교 개혁의 중심지였다. 마르틴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고, 1524년 독일 농민 전쟁의 프랑켄하우젠 전투가 벌어졌다. 슈말칼덴 동맹의 요한 프리드리히가 튀링겐을 통치하며 반(反) 황제, 친(親) 프로테스탄트 거점 역할을 했으나, 뮐베르크 전투(1547년) 패배 후 정치적 영향력은 약화되었다.[2]
1806년 나폴레옹 1세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자 튀링겐의 여러 제후들은 라인 동맹에 가입했다. 1815년 빈 회의에서 이들은 독일 연방에 가입했지만, 튀링겐 지역은 12개 국가로 나뉘어 있었다. 프로이센 왕국과 헤센 선제후령도 외딴 영토를 보유했다.
1871년 독일 제국 성립 당시 튀링겐 지역에는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작센-마이닝겐 공국, 작센-알텐부르크 공국,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슈바르츠부르크-존더스하우젠 후국,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장자 계 로이스 후국, 차자 계 로이스 후국이 있었다.
독일 혁명(1918년)으로 군주제가 무너진 후, 1920년 튀링겐의 여러 국가들은 코부르크 자유주를 제외하고 합병하여 튀링겐 주가 되었다. 주도는 바이마르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미군 점령 후, 1945년 7월부터 소련군 점령하에 놓였다. 1949년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 건국 후, 프로이센 왕국 시대 작센주였던 에어푸르트, 뮐하우젠, 노르트하우젠 등이 튀링겐 주에 편입되었고, 중심 기능은 에어푸르트로 이전되었다.
1952년 동독은 튀링겐 주를 에어푸르트 주, 게라 주, 수르 주로 분할했다.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튀링겐 주는 이전 경계와 일부 다르게 통합되었고, 에어푸르트가 다시 주도가 되었다.
2. 1. 고대와 중세
3세기 경 투링기족이 튀링겐 지역을 차지하면서 튀링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튀링겐이라는 지명은 투링기족에서 유래되었다. 6세기 경에는 프랑크족이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튀링겐은 1130년에 방백령이 되었다. 1247년 루도빙거 백작 가문이 멸망하고 튀링겐 계승 전쟁(1247–1264)이 발발했다. 전쟁 이후, 튀링겐의 서쪽 절반은 "헤센"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하여 다시는 튀링겐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 나머지 튀링겐 지역 대부분은 마이센 변경백국의 베틴 왕조가 차지했는데, 이는 훗날 선제후령과 작센 왕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1485년 베틴 가문이 분열되면서 튀링겐은 가문의 장자인 에르네스틴 분파에게 돌아갔고, 이후 작센의 남계 상속 분할 전통에 따라 여러 작은 국가들로 나뉘었다. 이 국가들은 "작센 공국"으로 불렸으며, 작센-바이마르, 작센-아이제나흐, 작센-예나, 작센-마이닝겐, 작센-알텐부르크, 작센-코부르크, 작센-고타 등이 이에 속했다.[1]
16세기, 튀링겐은 마르틴 루터가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등 종교 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524년에는 독일 농민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프랑켄하우젠 전투가 튀링겐에서 벌어졌다. 또한 슈말칼덴 동맹의 주도자 중 한 명인 작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가 튀링겐을 다스렸고, 이 지역은 반(反) 황제, 친(親) 프로테스탄트 세력의 거점이었다. 그러나 요한 프리드리히가 뮐베르크 전투(1547년)에서 카를 5세에게 패배하여 선제후 지위를 빼앗긴 후, 에른스트 계 베틴가(에른스틴가)에서는 분할 상속이 반복되면서(작센 여러 공국) 정치적 영향력은 약화되었고, "튀링겐"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지역 명칭으로 남게 되었다.[2]
2. 2. 근세

16세기, 종교 개혁에서 튀링겐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마르틴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성경의 독일어 번역을 수행했고, 1524년 독일 농민 전쟁에서는 마지막 전투가 된 프랑켄하우젠 전투의 무대가 되었다. 슈말칼덴 동맹의 주도자 중 한 명인 작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는 튀링겐을 영유하고 있었고, 이 지역은 반황제·친 프로테스탄트의 거점이었다. 요한 프리드리히가 뮐베르크 전투(1547년)에서 카를 5세에게 패하여 선제후 지위를 박탈당한 후, 에른스트 계 벳틴가에서는 분할 상속이 반복되었다. 따라서 정치적 영향력은 저하되었고, "튀링겐"이라는 지명은 단순한 지역 명칭이 되었다.
1806년, 나폴레옹 1세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자 튀링겐의 여러 제후는 라인 동맹에 가입했다. 1815년 빈 회의에 의해 각각 독립국으로서 독일 연방에 가입했지만, 튀링겐에 있던 국가는 12개로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압도적으로 많았다. 프로이센 왕국과 헤센 선제후령도 외딴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2. 3. 근대
현대 독일의 흑적금 삼색기가 오늘날 독일을 구성하는 지역 내 독일계 주권 국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778년, 현대 독일 영토 내에 있던 폐지된 작은 공국인 라이스-그라이츠 공국의 국기로서였다.(라이스-그라이츠 공국)1795년부터 1814년까지의 독일 매디아티자이션 기간 동안 투링겐 주들의 재편이 일부 발생했고, 이 지역은 1806년에 조직된 나폴레옹의 라인 동맹에 포함되었다. 1815년 빈 회의는 이러한 변화와 투링겐 주들의 독일 연방 편입을 확인했으며, 프로이센 왕국 또한 투링겐 영토 일부를 획득하여 작센 주 내에서 통치했다. 1871년 프로이센 주도의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독일 제국의 일부가 된 투링겐 공국들은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작센-마이닝겐, 작센-알텐부르크, 작센-코부르크-고타, 슈바르츠부르크-존더스하우젠,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그리고 라이스 장자 계통과 라이스 단자 계통의 두 공국이었다.
1920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들 소규모 국가들은 하나의 주로 합병되어 자유 주 튀링겐(독일어: ''Freistaat Thüringen'')이 되었으며, 삭스코부르크(Saxe-Coburg)만이 바이에른에 합류하는 것을 찬성했다. 바이마르가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이 새로운 주의 주 문장은 이전 주들의 문장보다 간소했다. 새로 설립된 주의 ''란트타크''는 1920년 바이마르에서 처음 소집되었다. 그 의원들은 21세 이상의 최소 투표 연령으로 비례 대표제에 따라 3년 동안 선출되었다. 1920년과 1932년 사이에 바이마르 공화국 하에서 여섯 차례의 ''란트타크'' 선거가 실시되었다.
튀링겐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나치당이 처음으로 실질적인 정치적 권력을 얻은 주 중 하나였다. 1929년 12월 선거에서 나치당이 튀링겐 ''란트타크''에 6명의 의원을 배출한 후, 빌헬름 프릭이 주 연립 정부의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 직책에서 공화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튀링겐 경찰에서 제거하고 나치에 호의적인 사람들로 대체했다. 그는 또한 튀링겐 내에서 중요한 직책이 생길 때마다 나치당원이 그 직책을 맡도록 보장했다. 베를린에서 나치의 권력 장악이 이루어진 후, 1934년 1월 30일의 "라이히 재건법"에 따라 독일의 연방제를 단일 국가로 대체하면서 ''란트타크''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튀링겐은 여러 개의 하위 수용소를 가진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가 있던 곳이었다.[7]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이 잠시 통제한 후, 1945년 7월부터 튀링겐 주는 소련 점령 지역에 속하게 되었고, 에르푸르트, 뮐하우젠, 노르트하우젠 주변 지역과 같은 프로이센 작센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도록 확장되었다. 에르푸르트가 튀링겐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아이제나흐 ''란트크라이스''의 외딴 지역인 오스트하임(Ostheim)은 바이에른에 할양되었다.
1952년, 독일 민주 공화국은 주들을 해산하고 대신 구(독일어: Bezirke)를 설치했다. 이전 튀링겐 영토를 공유한 세 개의 구는 에르푸르트, 게라, 줄이었다. 알텐부르크 크라이스는 라이프치히 베치르크의 일부였다.
현재 튀링겐 주는 1990년 독일 재통일 당시 약간 변경된 경계로 재건되었다.
2. 4. 현대
1920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튀링겐 지역의 소규모 국가들은 하나의 주로 합병되어 튀링겐 자유주(Freistaat Thüringende)가 되었다. 삭스코부르크(Saxe-Coburg)는 바이에른(Bavaria)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바이마르가 새로운 수도가 되었고, 새 주의 주 문장은 이전 주들의 문장보다 간소화되었다. 새로 설립된 주의 란트타크는 1920년 바이마르에서 처음 소집되었으며, 의원들은 21세 이상의 최소 투표 연령으로 비례 대표제에 따라 3년 임기로 선출되었다. 1920년과 1932년 사이 여섯 차례의 란트타크 선거가 실시되었다.튀링겐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나치당이 처음으로 실질적인 정치적 권력을 얻은 주 중 하나였다. 1929년 12월 선거에서 나치당이 튀링겐 란트타크에 6명의 의원을 배출한 후, 빌헬름 프릭이 주 연립 정부의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 직책을 이용해 공화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튀링겐 경찰에서 제거하고 나치에 호의적인 사람들로 대체했으며, 튀링겐 내에서 중요한 직책이 생길 때마다 나치당원이 그 직책을 맡도록 보장했다. 1934년 1월 30일 나치의 권력 장악이후, "라이히 재건법"에 따라 독일의 연방제를 단일 국가로 대체하면서 란트타크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튀링겐에는 여러 개의 하위 수용소를 가진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가 있었다.[7]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이 잠시 통제하다가 1945년 7월부터 튀링겐 주는 소련 점령 지역에 속하게 되었고, 에르푸르트(Erfurt), 뮐하우젠(Mühlhausen), 노르트하우젠 주변 지역과 같은 프로이센 작센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도록 확장되었다. 에르푸르트가 튀링겐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아이제나흐(Eisenach) ''란트크라이스''의 외딴 지역인 오스트하임(Ostheim)은 바이에른에 할양되었다.
1952년, 독일 민주 공화국은 주들을 해산하고 대신 구(Bezirke)를 설치했다. 이전 튀링겐 영토를 공유한 세 개의 구는 에르푸르트, 게라(Gera), 슐(Suhl)이었다. 알텐부르크(Altenburg) 크라이스는 라이프치히(Leipzig) 베치르크의 일부였다.
현재 튀링겐 주는 1990년 독일 재통일 당시 약간 변경된 경계로 재건되었다.
3. 정치
튀링겐주는 독일을 위한 대안 (Alternative for Germany)이 2021년 총선에서 24.0%의 득표율로 가장 큰 정당으로 부상한 핵심 지역이다.[15]
튀링겐주는 1989년까지 동독을 지배했던 공산당인 좌파당(Die Linke)과 대안당 (AfD)이 주 선거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독일 유일의 주이다. 좌파당은 2019년, 대안당은 2024년 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다.
3. 1. 주 의회
2019년 10월 27일에 실시된 튀링겐 주의회 선거 결과, 총 90석의 의석은 다음과 같이 배분되었다.정당 | 의석 수 |
---|---|
좌파당 (Linke) | 29석 |
독일을 위한 대안 (AfD) | 22석 |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CDU) | 21석 |
독일 사회민주당 (SPD) | 8석 |
연방 녹색당 (Grüne) | 5석 |
자유민주당 (FDP) | 5석 |
기민당(CDU)은 침체 추세를 막지 못하고 제3당으로 후퇴했다. 반면, 반유로·반이민을 내세운 우파·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23.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작센주, 브란덴부르크주에 이어 튀링겐 주 의회에서도 제2당으로 약진했다.
2020년 2월 5일 주총리 선출 선거에서 AfD는 자유민주당(FDP)의 토마스 케머리히 후보에게 투표했고, 기민당(CDU)도 지지하여 신정부가 출범했다.[27] 그러나 극우 정당 AfD의 지지를 받은 케머리히 주총리 취임에 대한 비판이 집중되었고, 지지했던 기민당(CDU)·자민당(FDP)도 태도를 바꾸면서 취임 후 단 하루 만에 사임을 표명했다.[28] 2020년 3월 4일에 다시 주총리 선출 선거가 실시되어 좌파당의 보도 라멜로우 전 주총리가 재선되었다.[29]
3. 2. 역대 주총리
재임 기간 | 이름 | 정당 |
---|---|---|
1920년-1921년 | 아르놀트 루돌프 파울센 | DDP |
1921년-1924년 | 아우구스트 프뢰리히 | SPD |
1924년-1928년 | 리히하르트 로이트회저 | DVP |
1928년-1930년 | 아르놀트 루돌프 파울센 (재임) | DDP |
1930년-1932년 | 에르빈 바움 | ThLB |
1932년-1933년 | 프리츠 자우켈 | NSDAP |
1933년-1945년 | 빌리 마르슐러 | NSDAP |
1945년 | 헤르만 브릴 | SPD |
1945년-1947년 | 루돌프 파울 | SPD→SED |
1947년-1952년 | 베르너 에거라트 | SED |
1952년-1990년 | 동독 시대 주 폐지 | |
1990년-1992년 | 요제프 두하치 | CDU |
1992년-2003년 | 베른하르트 포겔 | CDU |
2003년-2009년 | 디터 알트하우스 | CDU |
2009년-2014년 | 크리스티네 리버크네히트 | CDU |
2014년-2020년 2월 5일 | 보도 라멜로 | 좌파당 |
2020년 2월 5일-2020년 3월 4일 | Thomas Kemmerich|토마스 케메리히영어 | FDP |
2020년 3월 4일- | 보도 라멜로 (재임) | 좌파당 |
4. 행정 구역
튀링겐주는 17개의 군(Landkreis)과 6개의 군급시(Kreisfreie Stadt)로 구성된다.[1]
군 (Landkreise) | |
---|---|
알텐부르거 란트 군 | 아이히스펠트군 |
고타군 | 그라이츠군 |
힐트부르크하우젠군 | 일름군 |
키프호이저군 | 노르트하우젠군 |
잘레홀츨란트군 | 잘레오를라군 |
잘펠트루돌슈타트군 | 슈말칼덴마이닝겐군 |
죄메르다군 | 조네베르크군 |
운슈트루트하이니히군 | 바르트부르크군 |
바이마르 란트 군 | |
군급시 (Kreisfreie Städte) | |
아이제나흐 | 에르푸르트 |
게라 | 예나 |
줄 | 바이마르 |
4. 1. 개요
1970년대와 1980년대 튀링겐 주의 출산율은 여성 1명당 약 1.8명이었으나, 통일 이후 경제 위기였던 1994년에는 0.8명으로 감소했다가 2010년에는 1.4명 이상으로 다시 증가하여 서독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간 출생아 수는 17,000명인 반면 사망자 수는 27,000명으로, 튀링겐 주 인구의 연간 자연 변동률은 약 -0.45%이다. 2015년에는 17,934명의 출생아가 태어나 199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1]이주는 튀링겐 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내 이동은 농촌 지역에서 대도시로의 강한 경향을 보인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튀링겐 주에서 에르푸르트로 +6,700명(인구 1,000명당 33명), 게라로 +1,800명(인구 1,000명당 19명), 예나로 +1,400명(인구 1,000명당 14명), 아이제나흐로 +1,400명(인구 1,000명당 33명), 바이마르로 +1,300명(인구 1,000명당 21명)이 순이동했다. 튀링겐 주와 다른 독일 주들 간에는 균형이 부정적이다. 2012년 튀링겐 주는 다른 연방 주로 6,500명을 잃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수가 바이에른주, 작센주, 헤센주,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작센-안할트주와 브란덴부르크주와의 균형만이 긍정적이다. 국제 이주는 큰 변동을 보여, 2009년에는 +700명, 2010년에는 +1,800명, 2011년에는 +2,700명, 2012년에는 +4,800명이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튀링겐 주 이주민들의 가장 중요한 출신 국가는 폴란드(+1,700명), 루마니아(+1,200명), 아프가니스탄(+1,100명), 세르비아/몬테네그로/코소보(+1,000명)였으며, 스위스(-2,800명)와 오스트리아(-900명)와는 균형이 부정적이었다.[1]
튀링겐주는 17개의 군(Landkreis)과 군에 속하지 않는 6개의 시(Kreisfreie Stadt)로 구성된다. 17개의 군에는 121개의 시(Stadt)와 865개의 자치구(Gemeinde)가 포함된다. 독립시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시정촌(Gemeinde)의 총수는 992개이다. 그 중 약 8할의 시정촌은 인근 시정촌과 함께 "행정 공동체"(Verwaltungsgemeinschaft)를 형성하여 행정 서비스를 합리화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시정촌 연합은 89개 있다.[1]
4. 2. 군 (Landkreise)
튀링겐주는 17개의 군(Landkreis)과 6개의 군에 속하지 않는 시(Kreisfreie Stadt)로 구성된다. 17개의 군에는 121개의 시(Stadt)와 865개의 자치구(Gemeinde)가 포함되어 있다. 독립시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시정촌(Gemeinde) 총수는 992개이며, 이 중 약 80%는 인근 시정촌과 함께 "행정 공동체"(Verwaltungsgemeinschaft)를 형성하여 행정 서비스를 합리화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시정촌 연합은 89개가 있다.
튀링겐주의 군은 다음과 같다.
- 알텐부르거 란트 군 (Landkreis Altenburger Land)
- 아이히스펠트군 (Landkreis Eichsfeld)
- 고타군 (Landkreis Gotha)
- 그라이츠군 (Landkreis Greiz)
- 힐트부르크하우젠군 (Landkreis Hildburghausen)
- 일름군 (Ilm-Kreis)
- 키프호이저군 (Kyffhäuserkreis)
- 노르트하우젠군 (Landkreis Nordhausen)
- 잘레홀츨란트군 (Saale-Holzland-Kreis)
- 잘레오를라군 (Saale-Orla-Kreis)
- 잘펠트루돌슈타트군 (Landkreis Saalfeld-Rudolstadt)
- 슈말칼덴마이닝겐군 (Landkreis Schmalkalden-Meiningen)
- 죄메르다군 (Landkreis Sömmerda)
- 조네베르크군 (Landkreis Sonneberg)
- 운슈트루트하이니히군 (Unstrut-Hainich-Kreis)
- 바르트부르크군 (Wartburgkreis)
- 바이마르 란트 군 (Landkreis Weimarer Land)
4. 3. 독립시 (Kreisfreie Stadt)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튀링겐 주에서 에르푸르트로 순이동한 인구는 +6,700명(인구 1,000명당 33명), 게라로 +1,800명(인구 1,000명당 19명), 예나로 +1,400명(인구 1,000명당 14명), 아이제나흐로 +1,400명(인구 1,000명당 33명), 바이마르로 +1,300명(인구 1,000명당 21명)이었다.
약자 | 명칭 | 비고 |
---|---|---|
EF | 에르푸르트 (Erfurtde) | 주도 |
EA | 아이제나흐 (Eisenachde) | |
G | 게라 (Gerade) | |
J | 예나 (Jenade) | |
SHL | 줄 (Suhlde) | |
WE | 바이마르 (Weimarde) |
5. 지리
튀링겐주는 니더작센주, 작센-안할트주, 작센주, 바이에른주, 헤센주와 접하고 있다. 독일의 지리적 중심은 포크타이 시정촌(뮐하우젠 근처)에 있으며, 튀링겐주의 중심은 주도인 에르푸르트에서 남쪽으로 8km 떨어진 록하우젠 시정촌에 있다.
독일 중부에 위치한 튀링겐주는 녹지가 풍부하여 “독일의 녹색 심장(das Grüne Herz Deutschlands)”이라고도 불린다.[25] 2021년 주 중서부의 인젤스베르크 산과 드라이 그라이헨 일대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26]
5. 1. 지형
튀링겐주의 지형은 매우 다양하다. 북쪽은 하르츠 산맥이 차지하고 있으며, 그 뒤를 이어 노르트하우젠 주변의 비옥한 충적평야인 골데네 아우에가 있고, 헬메 강이 흐른다. 북서쪽에는 구릉지대이며 숲이 우거진 아이히스펠트가 있는데, 이곳에서 라인 강이 발원한다. 튀링겐 중부와 북부는 면적 약 3000km2의 튀링겐 분지로 특징지어지는데, 이곳은 운슈트르트 강 주변의 매우 비옥하고 평평한 지역이며 다음과 같은 구릉 지대에 둘러싸여 있다. (북서쪽에서 시계 방향): 뒤네, 하인라이테, 빈들라이테, 키프하우저, 호에 슈레케, 슈뮈케, 피네, 에터스베르크, 슈타이거발트, 튀링겐 숲, 허르젤베르게, 하이니히. 분지 내에는 파흐너 회에와 하일린거 회엔이라는 더 작은 구릉 지대가 있다. 튀링겐 분지의 남쪽에는 주에서 가장 큰 산맥이 있는데, 북서쪽에는 튀링겐 숲, 중앙에는 튀링겐 고지대, 남동쪽에는 프랑켄 숲이 있다. 이 산맥의 대부분은 숲으로 덮여 있으며, 그로서 베어베르크(983m)는 튀링겐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남서쪽으로는 베라 강 계곡이 이어지며, 서쪽의 뢰른 산맥과 남쪽의 그랍펠트 평원과 경계를 이룬다. 일반적으로 잘레 강과 로퀴츠 계곡 동쪽 지역으로 설명되는 튀링겐 동부는 구릉 지대가 특징이며, 북쪽의 평평한 지대에서 남쪽의 산악 지대로 서서히 높아진다. 서쪽의 잘레 강과 동쪽의 흰 엘스터 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두 개의 큰 강이며, 이 지역에 인구가 밀집한 계곡을 형성한다. 그 사이에는 북쪽의 평평하고 숲이 우거진 홀츠란트, 중앙의 평평하고 비옥한 오를라센케, 그리고 남쪽의 구릉 지대이지만 대부분 숲이 없는 포크트란트가 있다. 극동 지역(흰 엘스터 강 동쪽)은 플라이세 강을 따라 있는 오스터란트 또는 알텐부르크 란트로, 평평하고 비옥하며 인구가 밀집한 농업 지역이다.[25]튀링겐에는 두 개의 큰 강이 있다. 엘베 강의 지류인 잘레 강은 그 지류인 운슈트르트 강, 일름 강, 그리고 흰 엘스터 강과 함께 튀링겐 대부분을 배수한다. 베저 강의 발원지인 베라 강은 주의 남서쪽과 서쪽을 배수한다. 또한 남쪽 국경의 일부 지역은 마인 강(라인 강의 지류)의 지류에 의해 배수된다. 튀링겐에는 큰 자연 호수가 없지만, 잘레 강에 있는 블라이로흐 댐과 호엔바르테 댐, 그리고 튀링겐 고지대에 있는 라이비스-리히테 댐과 골디스탈 양수발전소를 포함하여 독일에서 가장 큰 댐 중 일부가 있다. 튀링겐은 독일에서 유일하게 수로와 연결되지 않은 주이다.[25]
5. 2. 수자원
엘베 강의 지류인 잘레 강은 운슈트르트 강, 일름 강, 흰 엘스터 강과 함께 튀링겐 대부분 지역의 물을 공급한다. 베저 강의 발원지인 베라 강은 주의 남서쪽과 서쪽 지역의 물을 공급한다. 남쪽 국경 일부 지역은 마인 강(라인 강의 지류)의 지류를 통해 물이 공급된다. 튀링겐에는 큰 자연 호수는 없지만, 블라이로흐 댐, 호엔바르테 댐(이상 잘레 강), 라이비스-리히테 댐, 골디스탈 양수발전소(이상 튀링겐 고지대) 등 독일에서 가장 큰 댐들이 있다. 튀링겐은 독일에서 유일하게 수로와 연결되지 않은 주이다.[25]5. 3. 기후
튀링겐의 기후는 습윤한 서풍이 우세한 온대 기후이며,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갈수록 대륙성 기후의 특징이 점점 더 두드러진다. 겨울은 장기간 추울 수 있으며 여름은 따뜻해질 수 있다. 특히 튀링겐 분지(Thuringian Basin)와 같이 사방의 산맥 바람받이 지역에서는 건조한 시기가 자주 관측된다. 연 강수량이 400~500mm에 불과하여 독일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이다.[31]북동부의 아르텐(Artern)은 연평균 기온이 8.5°C이고 연평균 강수량이 450mm로 따뜻하고 건조한 반면, 튀링겐 숲(Thuringian Forest)의 오버호프는 연평균 기온이 4.4°C에 불과하고 연평균 강수량이 1300mm에 달하는 습하고 서늘한 지역이다.
다음은 에르푸르트 (1971–2000)의 기후 자료이다.[31]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연간 |
---|---|---|---|---|---|---|---|---|---|---|---|---|---|
평균 최고 기온 (°C) | 2.2°C | 3.2°C | 7.8°C | 12.2°C | 17.5°C | 20.1°C | 22.5°C | 22.7°C | 18.3°C | 12.7°C | 6.4°C | 3.4°C | 12.4°C |
평균 최저 기온 (°C) | -3.1°C | -2.9°C | 0.3°C | 2.8°C | 7.1°C | 10.2°C | 12.1°C | 12°C | 9.1°C | 5.1°C | 0.9°C | -1.5°C | 4.3°C |
강수량 (mm) | 24.7mm | 23.8mm | 35.5mm | 40.3mm | 54.8mm | 60.8mm | 62.5mm | 52.8mm | 40.5mm | 36.8mm | 37.5mm | 31.5mm | 501.5mm |
강수 일수 (≥ 1mm) | 7.0 | 6.7 | 8.3 | 7.9 | 8.5 | 10.0 | 8.7 | 8.3 | 7.4 | 6.9 | 7.8 | 7.6 | 95.1 |
6. 인구
튀링겐의 인구는 1834년 117만 2,375명에서 1910년 216만 692명으로 증가했다. 1950년 293만 2,242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감소하기 시작하여, 2020년 12월 31일 기준 212만 237명이다. 1981년 인구 조사에서는 2011년까지 222만 1,222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2011년 실제 인구는 218만 1,603명으로 약 1.78% 감소했다.
튀링겐주의 연간 인구 감소율은 약 0.5%이며, 지역에 따라 차이가 크다. 2012년 기준으로 90만 5천 명이 2만 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는 자치구에 거주하며, 이는 도시화율 42%에 해당하며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13년 7월 기준, 튀링겐에는 4만 1천 명의 독일 국적이 아닌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인구의 1.9%로 독일 주들 중 가장 낮은 비율 중 하나이다. 이 수치는 2011년 7월 3만 3천 명에서 2년 만에 24% 증가한 것이다. 전체 인구의 약 4%는 이민자(독일 시민권 취득자 포함)이다. 외국인 수는 지역에 따라 다르며, 에르푸르트, 예나, 바이마르, 일메나우와 같은 대학 도시의 비율이 가장 높다.
튀링겐 주 인구는 특히 시골 지역에서 젊은 여성의 이주로 인해 성비 불균형이 나타난다. 25~40세 여성 100명당 남성 115~120명으로, 이는 출산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인구 고령화가 심화되어 일부 시골 지역에서는 65세 이상 인구가 30%를 넘는다.
국적 | 2022년 12월 31일 인구 | 2023년 12월 31일 인구 |
---|---|---|
32,150 | 34,180 | |
16,435 | 22,055 | |
14,255 | 14,780 | |
13,475 | 14,195 | |
6,250 | 10,950 | |
4,340 | 5,305 | |
4,130 | 5,260 | |
5,320 | 5,240 | |
- | 4,715 | |
7,385 | 4,040 |
연도 | 인구 |
---|---|
1834 | 1,172,375 |
1864 | 1,435,115 |
1890 | 1,737,544 |
1910 | 2,160,692 |
1950 | 2,932,242 |
1960 | 2,737,865 |
1970 | 2,759,084 |
1980 | 2,730,368 |
1988 | 2,723,268 |
2001 | 2,411,387 |
2011 | 2,188,589 |
2022 | 2,110,396 |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 이후 튀링겐에서 가장 두드러진 기독교 종파는 루터교였다. 동독 시대에는 교회 회원 자격이 억제되었고, 1990년 통일 이후에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인구의 20.8%가 독일 복음교회 신자이며, 7.6%가 가톨릭교회 신자이다. 튀링겐 주민의 71.6%는 무종교이거나 다른 종교를 믿고 있다.[14]
6. 1. 주요 도시
- 지난 3년(2009년 12월 13일~2012년 12월 31일) 동안 연평균 변화율(%). 합병 및 2011년 인구 조사 결과를 조정한 값이다.
튀링겐주에는 약 850개의 자치체가 있으며, 이 중 126개는 도시(구 내) 또는 시(자체 도시구역 형성)로 분류된다. 대부분의 도시는 인구가 1만 명 미만인 소규모 도시이며, 인구가 3만 명을 초과하는 도시는 10개뿐이다. 최초의 도시는 12세기에 등장했으며, 가장 최근의 도시는 20세기에 도시 지위를 얻었다. 오늘날 구 내의 모든 자치체는 도시이든 마을이든 법적으로 동등하다. 독립시(즉, 도시구역)는 구 내 도시보다 더 큰 권한(구와 동일)을 가진다.
7. 경제
튀링겐의 경제는 독일 재통일 이후 경제 전환을 겪으면서 주 내 대부분의 공장이 문을 닫는 등 변화를 겪었다. 실업률은 2005년에 최고조에 달했으나, 이후 경제는 전반적으로 개선되었다.
농업과 임업은 중요성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일의 다른 지역보다 중요하다. 튀링겐 주 영토의 54%가 농업용으로 사용되며, 비옥한 분지를 중심으로 곡물, 채소, 과일, 에너지 작물 재배가 활발하다. 주요 농산물은 사과, 딸기, 체리, 자두, 양배추, 감자, 콜리플라워, 토마토(온실 재배), 양파, 오이, 아스파라거스, 옥수수, 유채, 밀, 보리, 사탕무 등이다. 육류 생산 및 가공도 중요하며, 돼지, 소, 닭, 칠면조가 중심이다. 우유 및 치즈 생산업체와 산란계도 많다. 송어와 잉어는 전통적으로 양식된다. 대부분의 농업 기업은 동독 시대에 농업 생산 협동조합으로 설립된 대규모 협동조합이며, 육류 생산업체는 다국적 기업의 일부이다. 전통적인 개인 소농과 유기농업은 드물다. 튀링겐 주의 유일한 포도 재배 지역은 바트 zulza 주변의 일름 강과 잘레 강 계곡이며, 잘레-운슈트루트 와인을 생산한다. 튀링겐 주 영토의 32%가 삼림으로 덮여 있어 임업도 중요하다. 가문비나무, 소나무, 너도밤나무가 가장 흔하며, 산림 지역 근처에는 많은 목재 및 펄프 제지 공장이 있다.
19세기 중반 산업화 이후, 튀링겐주는 중요한 산업 부문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경제 전환으로 대부분의 대규모 공장과 기업이 문을 닫았지만, 중소기업이 제조업 부문을 장악하게 되었다. 주요 산업 중심지는 예나(칼 자이스, 쇼트, 예노프틱 등 광학 기기 중심지)와 아이제나흐 (BMW는 1920년대에 아이제나흐에서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고, 현재 오펠 공장이 있다.)이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산업 분야는 기계 및 금속 가공, 자동차 생산, 식품 산업이다. 특히 튀링겐주 중부와 남서부의 중소 도시(예: 아른슈타트, 슈말칼덴, 오어드루프)는 고도로 산업화되어 있지만, 주의 북부와 동부 지역에는 산업 기업이 적다. 유리, 도자기, 장난감 생산과 같은 전통 산업은 1930년부터 1990년 사이의 경제 위기 동안 붕괴되었다.
중세 후기부터 광업이 중요했으며, 특히 튀링겐 숲의 슈말칼덴, 즈울, 일메나우와 같은 광산 도시에서 그러했다. 산업혁명 이후 오래된 철, 구리, 은 광산은 쇠퇴했지만, 19세기 후반에는 새로운 유형의 광산이 튀링겐주에 들어섰다. 주 동부 알텐부르크 근처 마우젤비츠 주변의 갈탄 표면 광업은 1870년대에 시작되었고, 1900년경 두 개의 칼륨염 광산 지구가 설립되었다. 이들은 서쪽의 비쇼퍼로데와 동쪽의 로슬레벤 사이, 중앙에 존더스하우젠이 있는 주 북부의 "쥐트하르츠레비어(Südharzrevier)"와 헤세주 국경에 있는 서쪽의 바하와 바트잘츠웅겐 주변의 "베라레비어(Werrarevier)"이다. 이들은 20세기 중반 세계 칼륨 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재통일 이후 "쥐트하르츠레비어(Südharzrevier)"는 폐기되었지만, K+S가 "베라레비어(Werrarevier)"의 광산을 인수했다. 1950년부터 1990년 사이에는 소련의 금속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우라늄 광업도 중요했다. 중심지는 동부 튀링겐주의 게라 근처 로네부르크였으며, 운영 회사인 비스무트는 직접 소련의 통제를 받았다.
튀링겐의 GDP는 독일 평균보다 낮지만, 2005년 이후 경제 성장으로 EU 평균에 근접하고 있다. 1990년 이후 연방 정부와 EU로부터 지급된 경제 보조금은 2020년경 종료될 예정이다.
실업률은 2005년 17.1%에서 2019년 5.3%로 감소했지만, 여전히 독일 전국 평균보다 높다. 튀링겐의 임금은 헤센과 바이에른과 같은 부유한 지역에 비해 낮아, 많은 튀링겐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통근한다. 튀링겐의 인구 변화는 일부 분야에서 인력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정부는 외부 이민을 장려하고 있다.
A4 고속도로를 따라 위치한 에르푸르트, 예나, 아이제나흐와 같은 대도시와 그 주변 지역은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북부와 동부의 농촌 지역은 경제적 활력과 고용이 부족하다.
2023년 실업률은 5.9%로 독일 평균보다 높았다.[21][22]
연도[23][21]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
실업률 (%) | 15.4 | 15.3 | 15.9 | 16.7 | 16.7 | 17.1 | 15.6 | 13.1 | 11.2 | 11.4 | 9.8 | 8.8 | 8.5 | 8.2 | 7.8 | 7.4 | 6.7 | 6.1 | 5.5 | 5.3 | 6.0 | 5.6 | 5.3 | 5.9 |
튀링겐의 전통적인 에너지 공급원은 갈탄이었지만, 2000년 이후 재생에너지(풍력 에너지, 바이오매스, 태양 에너지, 수력 발전)와 가스 연소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튀링겐에는 골디스탈 양수발전소와 호엔바르테 댐이 있다.
물 공급은 튀링겐 숲과 튀링겐 고지 내의 대형 댐에 의해 이루어지며, 튀링겐은 식수 수출국이다.
7. 1. 개요
튀링겐주는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경제 전환을 겪으면서 주 내 대부분의 공장이 문을 닫았다. 실업률은 2005년에 최고조에 달했으나 이후 경제가 개선되면서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나아졌다.농업과 임업은 튀링겐주에서 여전히 중요한 산업이다. 튀링겐주 영토의 54%가 농업에 사용되며, 비옥한 분지 지역을 중심으로 곡물, 채소, 과일, 에너지 작물 등이 재배된다. 주요 농산물로는 사과, 딸기, 체리, 양배추, 감자, 토마토, 옥수수, 유채, 밀, 보리 등이 있다. 육류 생산 및 가공도 활발하며, 돼지, 소, 닭 등이 중심이다. 튀링겐주의 유일한 포도 재배 지역은 바트줄차 주변의 일름강과 잘레강 계곡이며, 잘레-운슈트루트 와인이 생산된다. 튀링겐주 영토의 32%는 삼림으로 덮여 있어 임업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세기 중반 산업화 이후 튀링겐주는 중요한 산업 부문을 보유하고 있었다.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경제 전환으로 대부분의 대규모 공장이 문을 닫았지만, 중소기업이 제조업 부문을 주도하고 있다. 예나는 광학 기기 산업의 중심지이며, 아이제나흐에는 BMW와 오펠 공장이 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산업 분야는 기계 및 금속 가공, 자동차 생산, 식품 산업이다.
튀링겐주에서는 중세 후기부터 광업이 중요했으며, 특히 튀링겐 숲의 광산 도시들이 유명했다. 19세기 후반에는 갈탄 표면 광업과 칼륨염 광산이 발달했다. 1950년부터 1990년 사이에는 우라늄 광업도 중요했다.
튀링겐의 GDP는 독일 평균보다 낮지만, 2005년 이후 경제 성장과 EU 지원으로 EU 평균에 근접하고 있다. 실업률은 2005년 17.1%에서 2019년 5.3%로 감소했으나, 여전히 독일 평균보다 높다. 튀링겐의 임금은 인접 지역에 비해 낮아 많은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통근하고 있다.
튀링겐 지역 간 경제 발전은 차이가 크다. A4 고속도로를 따라 위치한 대도시와 그 주변 지역은 발전하고 있지만, 북부와 동부의 농촌 지역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3년 실업률은 5.9%로 독일 평균보다 높았다.[21][22]
연도[23][21]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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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률 (%) | 15.4 | 15.3 | 15.9 | 16.7 | 16.7 | 17.1 | 15.6 | 13.1 | 11.2 | 11.4 | 9.8 | 8.8 | 8.5 | 8.2 | 7.8 | 7.4 | 6.7 | 6.1 | 5.5 | 5.3 | 6.0 | 5.6 | 5.3 | 5.9 |
관광은 튀링겐주의 중요한 산업이다. 바르트부르크성,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비롯하여 튀링겐 숲, 오버호프 등 다양한 관광지가 있다. 도시 관광도 성장하고 있으며, 2016년에는 약 920만 박의 숙박 예약이 이루어졌다.[24]
튀링겐의 전통적인 에너지 공급원은 갈탄이었으나, 2000년 이후 재생에너지와 가스 연소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재생에너지 형태는 풍력 에너지와 바이오매스이며, 태양 에너지와 수력 발전도 활용되고 있다. 튀링겐에는 골디스탈 양수발전소와 호엔바르테 댐 등 양수발전소도 있다.
라이비스-리히테 댐 등 대형 댐을 통해 물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튀링겐은 식수 수출국이다.
7. 2. 산업
튀링겐의 경제는 독일 재통일 이후 대부분의 공장이 문을 닫는 경제 전환을 겪었다. 2005년에 실업률이 정점에 달한 이후, 경제는 전반적으로 개선되었다.농업과 임업은 수십 년 동안 중요성이 감소했지만, 여전히 독일의 다른 지역보다 중요하다. 튀링겐 주 영토의 54%가 농업용으로 사용되며, 곡물, 채소, 과일, 에너지 작물 재배가 활발하다. 주요 농산물은 사과, 딸기, 체리, 자두, 양배추, 감자, 콜리플라워, 토마토, 양파, 오이, 아스파라거스, 옥수수, 유채, 밀, 보리, 사탕무 등이다. 육류 생산 및 가공도 중요하며, 돼지, 소, 닭, 칠면조가 중심이다. 우유 및 치즈 생산업체와 산란계도 많다. 송어와 잉어는 전통적으로 양식된다.
대부분의 농업 기업은 대규모 협동조합 형태이며, 육류 생산업체는 다국적 기업의 일부이다. 전통적인 개인 소농과 유기농업은 드물다. 튀링겐 주의 유일한 포도 재배 지역은 바트 zulza 주변의 일름 강과 잘레 강 계곡이며, 잘레-운슈트루트 와인을 생산한다.
튀링겐 주 영토의 32%가 삼림으로 덮여 있어 임업도 중요하다. 가문비나무, 소나무, 너도밤나무가 가장 흔하며, 산림 지역 근처에는 많은 목재 및 펄프 제지 공장이 있다.
19세기 중반 산업화 이후, 튀링겐주는 중요한 산업 부문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경제 전환으로 대부분의 대규모 공장과 기업이 문을 닫았지만, 중소기업이 제조업 부문을 장악하게 되었다. 주요 산업 중심지는 예나(칼 자이스, 쇼트, 예노프틱 등 광학 기기 중심지)와 아이제나흐(BMW, 오펠 공장)이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산업 분야는 기계 및 금속 가공, 자동차 생산, 식품 산업이다. 아른슈타트, 슈말칼덴, 오어드루프와 같은 중소 도시는 고도로 산업화되어 있지만, 북부와 동부 지역에는 산업 기업이 적다. 유리, 도자기, 장난감 생산과 같은 전통 산업은 1930년부터 1990년 사이의 경제 위기 동안 붕괴되었다.
중세 후기부터 광업이 중요했으며, 특히 튀링겐 숲의 광산 도시에서 그러했다. 산업혁명 이후 오래된 철, 구리, 은 광산은 쇠퇴했지만, 19세기 후반에는 갈탄, 칼륨염 광산이 들어섰다. 20세기 중반 세계 칼륨 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칼륨염 광산은 재통일 이후 일부 폐기되었지만, K+S가 일부 광산을 인수했다. 1950년부터 1990년 사이에는 우라늄 광업도 중요했으며, 중심지는 게라 근처 로네부르크였다.
튀링겐의 GDP는 독일 평균보다 낮지만, 2005년 이후 경제 성장으로 EU 평균에 근접하고 있다. 1990년 이후 연방 정부와 EU로부터 지급된 경제 보조금은 2020년경 종료될 예정이다.
실업률은 2005년 17.1%에서 2019년 5.3%로 감소했지만, 여전히 독일 전국 평균보다 높다. 튀링겐의 임금은 헤센과 바이에른과 같은 부유한 지역에 비해 낮아, 많은 튀링겐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통근한다. 튀링겐의 인구 변화는 일부 분야에서 인력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정부는 외부 이민을 장려하고 있다.
A4 고속도로를 따라 위치한 에르푸르트, 예나, 아이제나흐와 같은 대도시와 그 주변 지역은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북부와 동부의 농촌 지역은 경제적 활력과 고용이 부족하다.
2023년 실업률은 5.9%로 독일 평균보다 높았다.[21][22]
연도[23][21]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
실업률 (%) | 15.4 | 15.3 | 15.9 | 16.7 | 16.7 | 17.1 | 15.6 | 13.1 | 11.2 | 11.4 | 9.8 | 8.8 | 8.5 | 8.2 | 7.8 | 7.4 | 6.7 | 6.1 | 5.5 | 5.3 | 6.0 | 5.6 | 5.3 | 5.9 |
튀링겐의 전통적인 에너지 공급원은 갈탄이었지만, 2000년 이후 재생에너지(풍력 에너지, 바이오매스, 태양 에너지, 수력 발전)와 가스 연소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튀링겐에는 골디스탈 양수발전소와 호엔바르테 댐이 있다.
물 공급은 튀링겐 숲과 튀링겐 고지 내의 대형 댐에 의해 이루어지며, 튀링겐은 식수 수출국이다.
7. 3. 관광
튀링겐주에는 바르트부르크 성(유네스코 세계유산), 바이마르(유네스코 세계유산), 바이마르, 데사우, 베르나우의 바우하우스(유네스코 세계유산), 튀링겐 숲, 오버호프 또는 렌슈타이크(능선길)와 같이 잘 알려진 관광지들이 많다. 에르푸르트, 바이마르, 예나, 아이제나흐, 뮐하우젠 등 도시 중심지를 중심으로 한 도시 관광은 역동적인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24] 2016년에는 총 약 920만 박의 숙박 예약이 이루어졌는데, 10년 전인 830만 박에 비해 증가한 수치이다. 예약 중 약 6%는 외국인 관광객이 차지했다.[24]8. 문화
- 게오르크 뵈름 (1661–1733):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호엔키르헨 출생.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685–1750):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자 음악가, 아이제나흐 출생.
- 프란츠 리스트 (1811–1886): 헝가리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 교수, 바이마르 거주.
- 리하르트 바그너 (1813–1883): 작곡가, 연극 연출가, 논객, 지휘자, 바이마르와 아이제나흐 체류.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1864–1949): 후기 낭만주의와 초기 근대 시대의 작곡가, 바이마르 궁정 오케스트라(Hofkapellmeister) 지휘자 역임.

- 마르틴 루터 (1483–1546): 수도사, 가톨릭 사제, 신학 교수, 16세기 기독교 운동(후에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으로 알려짐)의 중심 인물, 아이제나흐에서 교육,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그리스어 신약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 작가이자 정치가, 바이마르 거주.
- 프리드리히 쉴러 (1759–1805): 시인, 철학자, 역사가, 극작가, 예나 대학교 역사 교수 재직 후 바이마르로 이주.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신학자, 철학자, 신비주의자, 고타 근처 출생.
- 루카스 크라나흐 (1472–1553):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목판화 및 조각판 제작가, 말년을 바이마르에서 보냄.
-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 (1744–1803): 철학자, 신학자, 시인, 문학 비평가, Zeitgeistde를 Kritische Wälderde (1769)에서 소개, 바이마르에서 총감독 역임.
- 크리스토프 빌헬름 후펠란트 (1762–1836): 의사, 당시 독일에서 가장 저명한 실용 의사, 랑겐잘차 출생.
- 나폴레옹 (1769–1821): 프랑스의 군사 및 정치 지도자,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 (1806년 10월 14일) 참전, 1808년 10월 2일 탈레이랑 주재하에 에르푸르트 총독궁에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만남.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1770–1831): 철학자, 정신현상학 저술, 예나 대학교 특별 교수.
- 칼 자이스 (1816–1888): 광학 기기 제작자, 칼 자이스 예나로 유명, 바이마르 출생.
- 칼 마르크스 (1818–1883):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 과학자, 사회학자, 역사가, 언론인, 혁명적 사회주의자, 예나 대학교 박사 학위 수여.
- 아우구스트 슐라이허 (1821–1868): 언어학자, 원인도유럽어 재구성 시도.
- 요하네스 브람스 (1833–1897):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마이닝겐에 자주 체류.
- 에른스트 헤켈 (1834–1919): 생물학자, 자연주의자, 철학자, 의사, 교수, 예술가, 수천 종의 새로운 종 발견, 기술, 명명, 모든 생명체 연결 계통수 작성, 인류 발생, 생태학, 문, 계통 발생, 줄기 세포를 포함한 생물학 용어 다수 생성, 예나 대학교 교수.
- 에른스트 아베 (1840–1905): 물리학자, 광학 과학자, 기업가, 사회 개혁가, 현대 광학 기초 마련, 칼 자이스 예나 공동 소유주, 아이제나흐 출생.
- 프리드리히 니체 (1844–1900): 언어학자, 철학자, 문화 비평가, 시인, 작곡가, 말년을 바이마르에서 보냄.
- 고틀로브 프레게 (1848–1925): 수학자, 논리학자, 철학자, 예나 대학교 교수.
- 오토 쇼트 (1851–1935): 화학자, 유리 기술자, 붕규산 유리 발명, 예나 글라스베르크 쇼트 & 게노센 설립자.
- 루돌프 슈타이너 (1861–1925): 오스트리아 철학자, 사회 개혁가, 건축가, 신비주의자, 발도르프 교육, 생물 역동적 농업, 인지학 의학 등 다양한 실용적 노력 수립, 바이마르 괴테 마테나다란 편집자 초빙.
- 앙리 반 더 벨데 (1863–1957): 벨기에 화가,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바이마르 작센 대공국 예술학교 (바우하우스 전신) 설립.
- 막스 베버 (1864–1920): 사회학자, 철학자, 정치 경제학자, 사회학 창시자 중 한 명, 에르푸르트 출생.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후기 낭만주의와 초기 근대 시대의 독일 주요 작곡가, 1889-94년 바이마르 궁정 오케스트라(Hofkapellmeister) 지휘자 역임.
- 바실리 칸딘스키 (1866–1944): 러시아 화가이자 미술 이론가, 최초 순수 추상 작품 제작, 바우하우스 교수 (바이마르).
- 리오넬 파이닝거 (1871–1956): 독일계 미국인 화가, 표현주의 선구자, 삽화가, 만화가, 바우하우스 교수 (바이마르).
- 레옹 블룸 (1872–1950): 프랑스 정치인, 세 번 프랑스 총리 역임, 부헨발트 수용소 수감.
- 파울 클레 (1879–1940): 스위스계 독일 화가, 표현주의, 입체파, 초현실주의 영향, 바우하우스 교수 (바이마르).
- 발터 그로피우스 (1883–1969): 건축가, 현대 건축 선구자, 바우하우스 설립자 (바이마르).
-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1886–1969): 독일계 미국인 건축가, 현대 건축 선구자, 바우하우스 합류 (바이마르).
- 장 아르프 (1886–1966): 독일-프랑스/알자스 출신 조각가, 화가, 시인, 추상 예술가, 바이마르 작센 대공국 예술학교 (바우하우스 전신) 수학.
- 오토 딕스 (1891–1969): 화가이자 판화가, 바이마르 사회와 전쟁 잔혹함 묘사, 운터마우스(현재 게라) 출생.
- 쿠노 호프마이스터 (1892–1968): 독일 천문학자, 변광성, 혜성, 소행성 관측 및 발견, 조네베르크 천문대 설립자.
- 베르너 브라우네 (1909–1951): 나치 친위대 장교, 전쟁 범죄로 사형 선고.
- 우지엘 갈 (1923–2002): 이스라엘 총기 설계자, 우지 기관단총 설계, 바이마르 출생.
- 호르헤 셈프룬 (1923–2011): 스페인 작가, 정치인, 부헨발트 수용소 추방, 1995년 여름 바이마르 italic=yes|Kunstfestde 예술 축제 위해 italic=no|"Mère blafarde, tendre sœur"프랑스어 완성.
- 허버트 크뢰머 (1928-2024): 독일계 미국 물리학자, 2000년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
- 마르첼 키텔 (아른슈타트 출생, 1988년): 프로 사이클 선수.
- 미하엘 로트 (1936–2019): 엔지니어.
9. 교육
독일 고등교육 시스템은 대학교와 전문대학 (Fachhochschulede)의 두 가지 형태의 교육 기관으로 구성된다. 튀링겐 주의 주요 대학교는 다음과 같다:
- 예나 대학교: 1558년에 설립되었으며, 튀링겐 주에서 가장 크고 거의 모든 학문 분야를 제공한다. 현재 2만 1천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1]
- 일메나우 공과대학교: 1894년에 설립되었으며, 7천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공학 및 수학 등 기술 분야에 특화되어 있다.[1]
- 에르푸르트 대학교: 1392년에 설립되었으며, 현재 5천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인문학과 교원 양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1]
-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대학교: 1860년에 설립되었으며, 4천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인 튀링겐 주에서 가장 작은 대학교이다. 건축 및 예술 등 창의적인 과목을 전문으로 하며, 전간기에는 독일의 대표적인 미술학교인 바우하우스로 명성을 얻었다.[1]
튀링겐 주의 전문대학은 에르푸르트(4,500명), 예나(5,000명), 노르트하우젠(2,500명), 슈말칼덴(3,000명)에 위치해 있다.[1] 이 외에도 고타 (500명), 바이마르(800명), 에르푸르트 (500명), 게라 (500명) 등의 고등교육기관이 있다.[1] 2016년 게라와 아이제나흐의 대학(Berufsakademie)이 통합되어 설립된 게라-아이제나흐 듀얼 대학교는 1,40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인 튀링겐 주에서 가장 최근에 설립된 고등교육 기관이다.[1]
튀링겐의 주요 연구 중심지는 예나(Jena)와 일메나우(Ilmenau)이다.[1] 예나는 생명 과학과 광학, 일메나우는 정보 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다.[1] 에르푸르트(Erfurt)는 독일 원예 연구의 중심지이며, 바이마르(Weimar)와 고타(Gotha)는 역사 및 문화 연구의 중심지이다.[1] 튀링겐의 연구는 대부분 공공 자금으로 지원되는 기초 연구이며, 예나의 광학 부문은 주목할 만한 예외이다.[1]
9. 1. 학교 시스템
독일에서는 교육 제도가 각 주(Länder)의 자치권에 속하므로, 각 주마다 자체적인 학교 및 대학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튀링겐 주의 교육 제도는 1990년 통일 이후 개발되었으며, 구 동독 교육 제도와 바이에른 주 교육 제도의 일부 요소를 결합했다. 대부분의 독일 학교 순위에 따르면 튀링겐 주는 독일에서 가장 성공적인 교육 시스템 중 하나이며, 양질의 교육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튀링겐 주에서는 조기 교육이 매우 일반적이다. 1950년대 이후 거의 모든 아동이 조기 교육 서비스를 이용해 왔는데, 서독에서는 조기 교육이 덜 발달했다. 조기 교육의 창시자 프리드리히 프뢰벨은 튀링겐 주에 살았으며 19세기에 세계 최초의 유치원을 설립했다. 튀링겐 주의 초등학교는 4년 과정이며,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종일학교로 운영되며 오후에는 선택 과목의 방과후 활동을 제공한다. 만 10세가 되면 학생들은 적성에 따라 김나지움 또는 레겔슐레로 진학한다. 전자는 8년 후 아비투어 시험으로 이어지며 고등 교육을 준비하는 반면, 후자는 직업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5년 또는 6년 후 시험으로 졸업하며, 독일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하웁트슐레와 레알슐레와 비슷하다.
튀링겐 주 바이마르 시에는 K-12 국제학교인 [https://www.this-weimar.com/about-us 튀링겐 국제학교](ThIS)가 있다. 이 학교는 2000년에 설립되었으며 국제학교협의회(Council of International Schools)의 인가를 받았고 국제 바칼로레아 PYP, MYP, DP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전 세계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9. 2. 대학교
독일 고등교육 시스템은 대학교와 전문대학(Fachhochschulede)의 두 가지 형태의 교육 기관으로 구성된다. 튀링겐 주의 대학교는 다음과 같다.
- 예나 대학교: 튀링겐 주에서 가장 크며 거의 모든 학문 분야를 제공한다. 1558년에 설립되었으며 현재 2만 1천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 일메나우 공과대학교: 1894년에 설립되었으며 7천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공학 및 수학과 같은 많은 기술 분야를 제공한다.
- 에르푸르트 대학교: 1392년에 설립되었으며 현재 5천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인문학과 교원 양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대학교: 튀링겐 주에서 가장 작으며 4천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건축 및 예술과 같은 창의적인 과목을 전문으로 한다. 1860년에 설립되었으며, 전간기에 독일의 대표적인 미술학교인 바우하우스로 명성을 얻었다.
튀링겐 주의 전문대학은 에르푸르트(4,500명의 학생), 예나(5,000명의 학생), 노르트하우젠(2,500명의 학생), 슈말칼덴(3,000명의 학생)에 위치해 있다.
그 외에도 고타에 50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인 공무원 양성 대학, 바이마르에 있는 프란츠 리스트 음악대학(800명의 학생), 에르푸르트의 사립대학인 아담 라이즈 전문대학교(500명의 학생)과 게라에 있는 SRH 간호 및 관련 의료 분야 대학 (''SRH 게라 건강 전문대학교'') (500명의 학생)이 있다.
튀링겐 주에서 가장 최근에 설립된 고등교육 기관은 2016년 게라와 아이제나흐의 대학(Berufsakademie)이 통합되어 설립된 협동주립대학인 게라-아이제나흐 듀얼 대학교(1,400명의 학생)이다.
10. 상징
튀링겐의 문장은 12세기 기원의 루도빙가(Ludowingian) 방백의 사자를 보여준다. 주위의 여덟 개의 별은 튀링겐을 형성한 여덟 개의 이전 국가를 나타낸다. 튀링겐의 깃발은 루도빙가 사자의 흰색과 빨간색 줄무늬에서 유래한 흰색과 빨간색의 이색 깃발이다. 헤세의 문장과 헤세의 깃발은 루도빙가 상징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튀링겐의 문장과 매우 유사하다.[1]
대중문화에서 튀링겐의 상징은 넓은 지역이 삼림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브라트부어스트와 숲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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