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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심 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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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심 칸국은 1452년 모스크바 대공국의 봉신으로 설립된 타타르계 칸국이다. 오카 강 유역에 위치한 카시모프는 핀족의 땅이었던 메쇼라에 건설된 도시로, 몽골의 지배를 받다가 모스크바 대공국과 카잔 칸국 사이의 완충 지대가 되었다. 카심 칸국은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전반까지 모스크바 대공국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카잔 칸국 멸망 이후 자치권을 잃고 러시아에 병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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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심 칸국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지도
카심 칸국의 지도
카심 칸국의 위치
기본 정보
공식 명칭카심 칸국
다른 이름카심 칸국 (Qasim Khanate)
카시모프 칸국 (Касимовское ханство)
카시모프 차르국 (Касимовское царство)
현지 이름 (타타르어)Qasím xanlığı/Qasím patşalığı (카심 하늘르그/카심 파트샬르그)
Касыйм ханлыгы/Касыйм патшалыгы
현지 이름 (러시아어)Касимовское ханство (카시모프스코에 한스트보)
Касимовское царство (카시모프스코에 차르스트보)
존속 기간1452년 – 1681년
위치유럽 러시아
상태모스크바 대공국/러시아 차르국의 봉신국
정치 체제군주국
수도카시모프
공용어타타르어
기타 언어킵차크어군 언어
역사
건국1452년
멸망1681년, 러시아에 합병
이전모스크바 대공국
이후러시아 차르국
정치
통치자 칭호
초대 통치자카심 칸 (1452년–1469년)
마지막 통치자파티마 술타나 (1679년–1681년)
언어
공식 언어차카타이어 (링구아 프랑카, 문학)
볼가 튀르크어/고대 타타르어
기타 공통 언어킵차크어군

2. 초기 역사

이 지역의 초기 주민은 핀계 그룹인 메쇼라인과 무로마인, 모르도바인이었다. 이 지역은 키예프 루스와 볼가 불가리아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현지 부족들은 루스 공작들에게 조공을 바쳤다. 이후 이 지역은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에 편입되었다. 1152년 블라디미르의 유리 돌고루키 대공은 이곳에 고로데츠메쇼르스키를 건설했다. 몽골의 루스 침공 이후, 이 지역은 킵차크 한국(골든 호드)의 영토가 되었다. 이 시기에 튀르크계 정착민들이 나타났고, 그들 대부분은 볼가 불가르의 영향으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반독립적인 공국인 미샤르 유르트는 골든 호드의 무함마드 시린 베그에 의해 세워졌다. 1393년부터 이 지역은 모스크바 대공국의 일부가 되었다.

1445년 수즈달 전투에서 카잔 칸국을 세운 울루그 무하마드가 모스크바 대공 바실리 2세에게 승리하면서, 울루그 무하마드는 이 땅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이후 울루그 무하마드의 아들 카심[1]이 그의 형 마흐무데크와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하여 모스크바로 망명하자, 바실리 2세는 카심에게 메쇼라 지역의 땅을 하사했다. 카심이 거점으로 삼은 도시 노비 니조보이는 그의 이름을 따 카시모프(카심의 도시)로 불리게 되었다[2]. 1452년, 카심은 모스크바의 지원 아래 으로 즉위하여 카심 칸국이 성립되었다[3]. 다른 설에 따르면, 바실리 2세가 울루그 무하마드의 요구를 받아들여 카심을 통치자로 임명했다고도 한다. 어떤 경우든 카심 칸국은 처음부터 모스크바의 봉신 국가였으며, 칸은 내부 통치권을 가졌지만 대외 정책은 모스크바(이후 러시아)의 통제를 받았다.

카심 칸국의 초기 주민은 주로 모르도바인이었으며, 메쉬초라와 무로마 같은 다른 볼가 핀족 일부는 타타르족에게 동화되어 미샤르 타타르족을 형성했다. 이후 러시아인들도 이 지역에 정착했다. 카잔 칸국 등지에서 이주해 온 일부 타타르족은 '카심 타타르족'으로 불렸으며, 주로 칸의 궁정이나 군대에서 복무했다. 이들은 점차 미샤르 타타르족에 동화되었으나, 소수의 카심 타타르족은 오늘날까지 카시모프 시에 거주하고 있다.

카심의 혈통이 2대 만에 단절된 후[3], 칸의 자리는 조치 울루스의 여러 칸국(카잔, 크림 칸국, 사라이, 시비르 칸국)에서 모스크바로 망명해 온 조치 가문의 왕족 중에서 모스크바 대공에 의해 임명되었다[4]. 칸국의 귀족 계층은 망기트(Manğıt), 아르긴, 잘라이르(Cälair), 킵차크, 망기트 등 유력 부족의 족장(카라치 베그)들로 구성되었으며[5], 이들은 수니파 이슬람 신앙과 타타르의 부족적 유대를 유지했다. 칸국의 타타르인에게 이슬람 신앙 유지는 필수 조건이었으며, 기독교로 개종할 경우 칸이라도 지위를 잃어야 했다.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전반까지 카심 칸국은 모스크바 대공국에게 카잔 칸국과의 완충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카심 칸국의 군주들은 모스크바의 카잔 공격에 여러 차례 동원되었다[6]. 1518년 카잔 칸국에서 울루그 무하마드의 직계 혈통이 끊어지자, 모스크바는 카심 칸국의 군주였던 샤알리와 잔알리를 카잔 칸국의 칸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1552년 카잔 칸국이 모스크바 대공국에 의해 병합되면서 카심 칸국의 전략적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칸국의 자치권은 점차 축소되었고, 카시모프에는 러시아인 주지사가 파견되었다. 그럼에도 칭기스 칸의 후손이라는 카심 칸의 혈통적 권위는 한동안 유지되어, 1573년 기독교로 개종하여 퇴위한 사인 불라트(러시아명: 시메온 베크불라토비치)는 1574년부터 1576년까지 잠시 이반 4세로부터 전 루스 대공의 지위를 받기도 했다.

17세기에 들어 사이이드 부르한(러시아명: 바실리 아르슬라노비치)이 50년 이상 칸으로 재위하는 동안 카심 타타르인에 대한 기독교화 및 러시아화 정책이 강화되었다. 1681년, 사이이드 부르한의 어머니이자 실권자였던 파티마 술타나가 사망하자 카심 칸국은 최종적으로 러시아 차르국에 병합되었다.

3. 카심 칸국의 성립과 발전

카심 칸국 지역의 원래 거주민은 볼가 핀족의 메쉬초라와 무로마 부족, 그리고 모르도바인이었다. 이 지역은 키예프 루스와 볼가 불가리아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현지 부족들은 루스 공작들에게 조공을 바쳤다. 이후 이 지역은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에 편입되었고, 1152년 블라디미르 공작 유리 돌고루키고로데츠-메쉬초르스키를 건설했다. 몽골의 루스 침공 이후에는 골든 호드(조치 울루스)의 영토가 되었다. 이 시기 튀르크계 정착민들이 나타났고, 볼가 불가르의 영향으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골든 호드의 무함마드 시린 베그에 의해 반독립적인 공국 미샤르 유르트가 세워지기도 했으나, 1393년부터 이 지역은 모스크바 대공국의 일부가 되었다.

1445년 수즈달 전투에서 카잔 칸국을 세운 울루그 무함마드가 모스크바 대공 바실리 2세에게 승리하면서, 이 땅의 영유권을 타타르족에게 돌려줄 것을 주장했다. 카심 칸국의 성립 과정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바실리 2세가 울루그 무함마드의 아들 카심 칸에게 메쉬초라 땅을 주고 통치자로 임명했다는 설이다[1]. 다른 하나는 카심이 그의 형 마흐무드와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하여 모스크바로 망명하자, 바실리 2세가 그에게 모스크바와 카잔 칸국 사이의 완충 국가를 만들기 위해 메쇼라 땅을 하사했다는 설이다[2]. 어느 설이 맞든 1452년, 카심은 모스크바의 비호 아래 으로 즉위하여 카심 칸국이 성립되었고[3], 거점 도시는 그의 이름을 따 카시모프로 불리게 되었다. 카심 칸국은 처음부터 모스크바의 봉신 국가였으며, 칸이 내부 영토를 통치했지만 대외 정책은 모스크바(후의 러시아)가 통제했다.

카심의 혈통은 2대 만에 단절되었고[3], 이후 칸들은 모스크바 대공에 의해 카잔 칸국, 크림 칸국, 시비르 칸국 등 다른 타타르 칸국의 지배 가문 출신 망명자 중에서 선출되었다[4]. 칸국의 주요 주민은 모르도바인이었고, 일부 메쉬초라와 무로마 같은 볼가 핀족은 타타르족에 동화되어 미샤르 타타르족을 형성했다. 이후 러시아인들이 정착했으며, 카잔 타타르족 일부도 이주하여 "카심 타타르족"을 이루었다. 카심 타타르족 대부분은 칸의 궁정이나 군대에서 복무하며 점차 미샤르 타타르족에 동화되었지만, 소수는 현재도 카시모프 시에 거주하고 있다. 귀족 가문으로는 망기트(Manğıt), 아르긴(Arğın), 잘라르(Cälair), 킵차크(Qıpçaq), 시린(Şirin), 바르힌(Barın) 등이 있었으며[5], 이들은 부족민을 이끌었다. 카심 칸국의 타타르인들은 수니파 이슬람교 신앙을 유지했으며, 기독교로 개종하면 군주라도 지위를 잃었다.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전반까지 카심 칸국은 모스크바에게 카잔 칸국과의 완충지대로서 중요하게 여겨졌다. 카심 칸들은 근위병과 함께 모스크바의 카잔 침략(1467–1469, 1487, 1552)에 모두 참여했다[6]. 특히 카심 칸 샤 갈리(재위 1515–1567)는 모스크바의 지원으로 세 번이나 카잔 칸으로 즉위했으며, 잔 알리 역시 모스크바에 의해 카잔의 군주로 보내졌다.

그러나 1552년 카잔 칸국이 모스크바에 병합되면서 카심 칸국의 전략적 가치는 하락했다. 칸국의 자치권은 폐지되었고, 카시모프에는 러시아인 총독이 파견되었다. 그럼에도 칭기스 칸의 후예로서 칸의 권위는 유지되어, 1573년 기독교로 개종하여 퇴위한 사인 불라트(시메온 베크불라토비치)는 이반 4세에 의해 1574년부터 1576년까지 일시적으로 명목상의 모스크바 대공 지위를 받기도 했다.

17세기에 들어 Sayed Borhan (재위 1627–1679, 러시아어명: 바실리 아르슬라노비치) 칸의 통치 시기에 러시아는 카심 타타르인에 대한 기독교화러시아화 정책을 강화했다. 베그는 러시아 보야르와, 근무 타타르인은 드보랴닌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는 방식으로 편입이 시도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1656년 타타르 반란을 유발하기도 했다. 결국 1681년, 세예드 보르한의 어머니이자 마지막 통치자였던 칸비카(여왕) Fatima Soltan이 사망하자 카심 칸국은 완전히 폐지되어 러시아 차르국에 병합되었다.

4.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와 칸국의 멸망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전반에 걸쳐 카심 칸국은 모스크바 대공국에게 카잔 칸국과의 완충국으로서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카시모프의 군주들은 모스크바의 카잔 공격(1467–1469, 1487, 1552년)에 여러 차례 참가했다.[6] 특히 카심 칸 샤 알리는 모스크바의 지원을 받아 세 차례나 카잔 칸으로 즉위하기도 했다.

그러나 1552년 카잔 칸국이 모스크바 대공국에 병합되면서 카심 칸국의 전략적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이후 칸국의 자치권은 점차 축소되었고, 러시아인 총독이 파견되어 실질적인 통치를 행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의 지위는 명목상 유지되었다. 칸 중 한 명인 사인 불라트는 기독교로 개종한 후 1573년 퇴위했는데, 그는 1574년부터 1576년까지 러시아 차르 이반 4세에 의해 잠시 전 루스대공으로 옹립되기도 했으나 실권은 없었다. 이는 칭기스 칸의 후손이라는 혈통적 권위를 이용하려는 목적이었다.

17세기에 들어 세예드 보르한 칸(재위 1627–1679) 시대에는 카시모프 타타르인에 대한 기독교화러시아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타타르 귀족인 베그는 러시아 귀족인 보야르와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았고, 타타르인들은 드보랴닌과 동등한 근무 타타르인으로 편입되었다. 이러한 강압적인 정책은 타타르인들의 반발을 사 1656년에는 타타르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1681년, 마지막 통치자였던 칸비카(여왕) 파티마 술타나(세예드 보르한의 어머니)가 사망하자, 카심 칸국은 러시아 차르국에 완전히 병합되어 소멸하였다.

4. 1. 역대 칸 목록



'''카심 칸국의 역대 칸'''
계파칸 이름재위 기간비고
카잔 계카심1452년 - 1469년카잔 칸국의 마흐무드의 동생
다니야르1469년 - 1486년카심의 아들
크림 계누르 다울라트1486년 - 1491년크림 칸국의 하지 1세의 아들, 멩글리 1세의 형
사틸간1491년 - 1506년누르 다울라트의 아들
자나이1508년 - 1512년사틸간의 동생
대 오르다 계샤이흐 아울리야르1512년 - 1516년?바흐티야르 술탄 (대 오르다의 아흐마드 칸의 동생)의 아들
샤 알리1516년 - 1519년샤이흐 아울리야르의 아들
쟌 알리1519년 - 1532년샤 알리의 동생
샤 알리1535년 - 1567년복위
사인 불라트1567년 - 1573년베크 불라트 (아흐마드 칸의 손자)의 아들. 세례 후 시메온 베크불라토비치로 개명.
무스타파 알리1584년 - 1590년압둘라 (아흐마드 칸의 증손)의 아들
카자흐 계우라즈 무하마드1600년 - 1610년온단 (카자흐 칸국의 시가이의 아들)의 아들
시비르 계알프 아르슬란1614년 - 1627년알리 (시비르 칸국의 쿠춤의 아들)의 아들
사이이드 불한1627년 - 1679년알프 아르슬란의 아들
파티마 술타나1679년 - 1681년알프 아르슬란의 왕비이자 사이이드 불한의 어머니


참조

[1] 서적
[2] 서적
[3] 서적
[4] 서적
[5] 서적
[6]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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