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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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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파도키아 교부는 4세기 기독교 신학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한 세 명의 형제, 즉 카이사리아의 바실리우스,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를 일컫는다. 이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옹호하고 아리우스주의에 대응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하나의 본질 안에 세 위격"이라는 공식을 통해 삼위일체 교리를 명확히 했다. 또한, 여성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보였으며, 마리아론과 초기 마리아 신심 발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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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교부
개요
영향권기독교
유형교부
활동 시기4세기
주요 인물가이사랴의 바실리오스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상세 정보
신학적 기여삼위일체론 확립
니케아 신조 옹호
아리우스주의 반박
특징헬레니즘 철학과의 조화 시도
수도원 운동 발전
사회 정의 실현 노력
주요 저서
가이사랴의 바실리오스성령론
수도 규칙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신학 강연
닛사의 그레고리오스인간의 창조에 관하여
모세의 생애
기타
중요성초기 기독교 신학 발전에 큰 영향
오늘날까지 기독교 사상에 중요한 역할

2. 생애와 배경

대 바실과 니사의 그레고리오는 형제 관계로, 이들의 누나인 마크리나는 가족의 영지를 수도 공동체로 개조했다. 대 바실은 형제들 중 맏이였으며, 둘째는 나우크라티우스[3], 막내는 세바스테의 베드로였다. 이들의 외조부는 순교자였으며, 부모인 바실과 카이사레아의 엠멜리아 역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2. 1. 가족 배경

대 바실과 니사의 그레고리오의 누나인 마크리나는 가족의 영지를 수도 공동체로 개조했다. 대 바실은 마크리나의 오빠들 중 맏이였으며, 둘째는 유명한 기독교 법학자인 나우크라티우스였다.[3] 또 다른 형제인 세바스테의 베드로 또한 주교가 되었다. 그들의 외조부는 순교자였으며, 그들의 부모인 바실과 카이사레아의 엠멜리아 역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3. 신학적 공헌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각자 고유한 강점을 보였다. 학자들은 바실리우스는 "행동가", 나지안의 그레고리우스는 "웅변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사상가"라고 평가한다.[8]

3. 1. 삼위일체 교리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학식 있는 지식인들과의 대화에서 기독교인들이 그들만의 입장을 견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이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반대하면서도, 인간 영혼의 치유와 하나님과의 연합을 중심에 둔 독특한 운동이며, 수도 생활이 이를 가장 잘 나타낸다는 것을 입증하려 했다. 그들은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최종적으로 확정된 삼위일체의 정의와 니케아 신경에 크게 기여했다.[2]

3. 1. 1. 아리우스주의 논쟁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삼위일체 교리와 아리우스주의아폴리나리우스주의에 대한 대응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2]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도 아리우스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니케아 공의회는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 본질(호모우시오스)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반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아들이 아버지와 유사한 본질(호모이우시오스)을 가진다고 가르쳤고,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아들이 아버지와 같지 않고 창조되었으므로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아들은 아버지와 '유사'하지만 아버지와 같은 본질은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카이사리아의 바실리우스 (11세기 키예프 성 소피아 대성당의 프레스코화.)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이러한 반 아리우스주의자들을 정통 신앙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의 저술에서 그들은 "하나의 본질(우시아) 안에 세 위격(휘포스타시스)"이라는 공식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2] 카이사리아의 바실리우스는 이 관계가 플라톤주의에서 유래된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 명의 인간은 각각 개별적인 위격이며 모두 공통적인 보편성, 즉 인류애를 공유한다.
이 공식은 아버지, 아들, 성령 간의 구별(니케아가 흐리게 만든다는 비난을 받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그들의 본질적인 통일성을 강조했다.

바실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 간단하게 말해서, 본질(우시아)은 위격(휘포스타시스)과 일반과 특수와 같은 관계에 있다. 우리 각자는 우시아에 참여하기 때문에 존재를 공유하며, 개별적인 특성 때문에 A 또는 B가 된다. 따라서, 문제의 경우, 우시아는 선함, 신성함, 또는 그러한 개념과 같은 일반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반면, 휘포스타시스는 아버지됨, 아들됨, 성화시키는 능력의 특별한 특성에서 관찰된다. 만약 그들이 위격 없이 위격을 이야기한다면, 그들은 가설에 근거하여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위격이 실제적 휘포스타시스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들이 인정하는 바와 같이, 호모우시온의 원리를 신성의 통일성 안에서 유지하고, 아버지, 아들, 성령을 각 명명된 위격의 완전하고 완벽한 휘포스타시스 안에서 존경스럽게 인정한다고 선언하게 하라. —서신 214.4.

따라서 바실리우스는 니케아의 교리적 정의를 제대로 다루려고 시도하는 동시에, 니케아의 입장을 양태론(사벨리우스주의)과 구별하려고 했다. 그 결과, 아리우스주의와 반 아리우스주의는 교회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3. 2. 여성과 마리아론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마리아 신학과 초기 마리아 신심 발전에 기여했다.[4] 이들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 교리를 옹호했으며,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마리아가 정결 서약을 했다고 가르쳤고, 불타는 떨기나무를 마리아와 유비적으로 연관시킨 최초의 신학자였을 것으로 보인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테오토코스 칭호를 네스토리우스 논쟁 이전에 옹호했다. 나지안의 그레고리우스는 마리아가 예수 잉태 이전에 영혼과 육신으로 미리 정화되었다고 가르쳤으며, 마리아에게 도움을 청하는 기도문을 증언했다.[6]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그레고리오스 경이로운 자와 연관된 마리아 발현에 대한 초기 기록을 제시한다.[7]

3. 2. 1. 여성에 대한 관점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보다 여성에 대해 더 높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4] 일부 학자들은 마크리나가 이들 그룹 내에서 동등한 위치에 있었으며, 따라서 "제4의 카파도키아 교부"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5] 그들은 마리아 신학과 초기 마리아 신심의 발전에 기여했다. 세 교부 모두 당시 일부에서 비판받던 마리아의 평생 동정 교리를 옹호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마리아가 정결 서약을 했다고 가르쳤고, 아마도 그의 저서 『모세의 생애』에서 불타는 떨기나무를 마리아와 유비적으로 연관시킨 최초의 신학자였을 것이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테오토코스라는 칭호를 네스토리우스 논쟁의 핵심이 되기 50년 이상 전에 옹호했다. 나지안의 그레고리우스는 "만약 누구든지 성모 마리아가 테오토코스라고 믿지 않는다면, 그는 신성을 갖지 못한 자이다."라고 주장했다. 두 그레고리우스는 모두 마리아를 "동정의 땅"으로 이해하고 "동정녀의 존엄한 자궁"을 하느님이 "두 본성을 하나로" 결합한 장소로 묵상하는 것에 대한 초기 증인이었다. 특히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에게서 풍부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표현은 에페소스 공의회와 프로클루스, 즉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였던 나지안의 그레고리우스의 후계자와 같은 마리아 신학자들을 예견했다. 또한 나지안의 그레고리우스는 마리아가 예수의 잉태 이전에 영혼과 육신으로 미리 정화되었다고 가르쳤다. 더욱이 그는 마리아에게 드리는 최초의 기도문으로 알려진 것을 증언하는데, 한 처녀가 마리아에게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내용으로,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고려할 때 초기 마리아 신심의 배경이 되었던 금욕적인 틀을 보여준다.[6] 따라서 마리아 호칭의 기원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던 나지안의 니케아 학파와 연관될 수 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또한 3세기 중반에 그레고리오스 경이로운 자와 연관된 마리아 발현에 대한 가장 초기의 기록을 제시한다.[7]

3. 2. 2. 마리아 신학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보다 여성에 대해 더 높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4] 이들은 마리아 신학과 초기 마리아 신심의 발전에 기여했다. 세 교부 모두 당시 일부에서 비판받던 마리아의 평생 동정 교리를 옹호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마리아가 정결 서약을 했다고 가르쳤고, 아마도 그의 저서 『모세의 생애』에서 불타는 떨기나무를 마리아와 유비적으로 연관시킨 최초의 신학자였을 것이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테오토코스라는 칭호를 네스토리우스 논쟁의 핵심이 되기 50년 이상 전에 옹호했다. 나지안의 그레고리우스는 "만약 누구든지 성모 마리아가 테오토코스라고 믿지 않는다면, 그는 신성을 갖지 못한 자이다."라고 주장했다. 두 그레고리우스는 모두 마리아를 "동정의 땅"으로 이해하고 "동정녀의 존엄한 자궁"을 하느님이 "두 본성을 하나로" 결합한 장소로 묵상하는 것에 대한 초기 증인이었다. 특히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에게서 풍부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표현은 에페소스 공의회와 프로클루스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였던 나지안의 그레고리우스의 후계자)와 같은 마리아 신학자들을 예견했다. 또한 나지안의 그레고리우스는 마리아가 예수의 잉태 이전에 영혼과 육신으로 미리 정화되었다고 가르쳤다. 그는 마리아에게 드리는 최초의 기도문으로 알려진 것을 증언하는데, 한 처녀가 마리아에게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내용으로,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고려할 때 초기 마리아 신심의 배경이 되었던 금욕적인 틀을 보여준다.[6] 따라서 마리아 호칭의 기원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던 나지안의 니케아 학파와 연관될 수 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또한 3세기 중반에 그레고리오스 경이로운 자와 연관된 마리아 발현에 대한 가장 초기의 기록을 제시한다.[7]

참조

[1] 웹사이트 Commentary on Song of Songs; Letter on the Soul; Letter on Ascesis and the Monastic Life http://www.wdl.org/e[...] World Digital Library 2013-03-06
[2] 서적 Historical Theology https://archive.org/[...] Blackwell Publishers
[3] 서적 Life of Macrina http://www.fordham.e[...] SPCK 1916
[4] 간행물 The Cappadocian Fathers, Women, and Ecclesiastical Politics Brill 1995-05
[5] 서적 Christianity and Classical Culture: The Metamorphosis of Natural Theology in the Christian Encounter with Hellenism Yale University Press 1993
[6] 서적 Theotokos : a theological encyclopedia of the Blessed Virgin Mary http://worldcat.org/[...] Wipf and Stock Publishers
[7] 서적 Life and Works (The Fathers of the Church, Volume 98) https://books.google[...] CUA Press 2010-04-15
[8] 서적 Patrology Spectrum Publishers
[9] 문서 The ROC severed full communion with the Ecumenical Patriarchate in 2018, and later severed full communion with the primates of the Church of Greece, the Patriarchate of Alexandria, and the Church of Cyprus in 2020.
[10] 문서 Autocephaly or autonomy is not universally recognized.
[11] 문서 Semi-autonomous part of the Russian Orthodox Church whose autonomy is not universally recognized.
[12] 문서 UOC-MP was moved to formally cut ties with the ROC as of May 27th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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