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탱 트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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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쥐스탱 트뤼도는 캐나다의 정치인으로, 2015년부터 현재까지 캐나다의 제23대 총리로 재임하고 있다. 그는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의 아들로, 2000년 아버지의 국장에서 추도 연설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맥길 대학교와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교사로 활동하다가 2008년 연방 하원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013년 자유당 당수로 선출되었으며,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총리가 되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경제, 사회, 외교 정책에서 다양한 변화를 추진했으며, 2019년과 2021년 총선에서 소수 정부를 구성했다. 그는 여러 윤리 문제로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2023년에는 배우자와 별거를 발표했다.

쥐스탱 트뤼도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트뤼도 (2023년)
이름저스틴 피에르 제임스 트뤼도
프랑스어 표기Justin Trudeau
로마자 표기Jusitein Teuryudo
출생일1971년 12월 25일
출생지온타리오주 오타와, 캐나다
정당캐나다 자유당
배우자소피 그레고와르 (2005년 5월 28일 결혼, 2023년 8월 2일 별거)
자녀3명
아버지피에르 트뤼도
어머니마거릿 트뤼도
친척트뤼도 가문
거주지리도 코티지 (주 거주지)
해링턴 호수 (계절별 거주지)
학력맥길 대학교 (문학 학사)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교육학 학사)
에콜 폴리테크니크 드 몬트리올 (학위 없음)
직업정치인
교사
급여406,200 캐나다 달러 (2024년)
웹사이트정부 웹사이트
정당 웹사이트
서명Signature Justin Trudeau.svg
서명 설명저스틴 트뤼도의 벡터화된 서명
{"caption":"저스틴 트뤼도의 음성 (캐나다의 날 축하 연설, 2018년 7월 1일 녹음)","sound_file":"Justin_Trudeau_voice.ogg"}
직위
작위각하
캐나다 총리
순서제23대
임기 시작2015년 11월 4일
군주엘리자베스 2세
찰스 3세
총독데이비드 존스턴
줄리 파예트
메리 사이먼
부총리크리스티아 프리랜드 (2019년–2024년)
이전 총리스티븐 하퍼
정부간 업무 및 청소년부 장관
임기 시작2015년 11월 4일
임기 종료2018년 7월 18일
총리본인
이전 장관데니스 르벨
이후 장관도미닉 르블랑
자유당 대표
임기 시작2013년 4월 14일
부대표랄프 구데일 (2013년–2015년)
이전 대표밥 레이 (임시)
의회
소속 국가캐나다
선거구파피노 선거구
임기 시작2008년 10월 14일
이전 의원비비안 바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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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린 시절과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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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길 대학교에서 문학 학사 학위를,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육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밴쿠버에서 킬러니 고등학교 등 지역 학교에서 대체 교사로 일했고, 사립 웨스트포인트 그레이 아카데미에서 프랑스어와 수학 정규 교사로 근무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몬트리올 폴리테크닉에서 공학을 공부했지만 졸업하지 않았고, 맥길 대학교에서 환경 지리학 석사 과정을 시작했지만 공직에 진출하기 위해 중퇴했다.

2000년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의 국장에서 28세의 나이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추도 연설을 했다. 1998년 동생 미셸이 스키 여행 중 눈사태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동계 안전과 관련된 사회 운동을 시작했다. 2000년 전후에는 웨스트포인트 그레이 아카데미에서 교사로 일하던 중, 학교에서 열린 『천일야화』를 모티브로 한 가면 파티에서 얼굴을 갈색으로 칠하는 분장(블랙페이스)을 한 모습이 2019년 『타임』지에 보도되자, "인종차별주의자가 하는 짓이었다"며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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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17일, 다르푸르 위기 대책에 대한 캐나다의 참여를 촉구하기 위해 토론토에서 열린 집회를 주최했다. 같은 해 10월 25일, CTV의 뉴스 프로그램 『캐나다 AM』에서 국가로서의 인정을 요구하는 퀘벡인들에 대한 질문에 "국수주의는 사고의 범위가 좁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2005년 5월 28일, 모델 겸 텔레비전 탤런트인 소피 그레고와르와 결혼했다. 캐나다 언론계에서 활동했던 전 캐나다 총리 자녀들 중 한 명이며, 벤 멀루니, 캐서린 클라크, 트뤼도의 남동생 알렉상드르가 있다.

2.1. 가계 및 출생

Justin Pierre James Trudeau프랑스어는 1971년 12월 25일 오타와 시빅 병원에서 당시 총리였던 피에르 트뤼도마거릿 트뤼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재임 중인 총리의 자녀로 태어난 것은 캐나다 역사상 두 번째 사례로, 첫 번째는 존 A. 맥도널드의 딸 마가렛 메리 테오도라 맥도널드였다. 트뤼도의 남동생인 알렉상드르(1973년 12월 25일 출생)와 미셸(1975년 10월 2일~1998년 11월 13일)은 세 번째와 네 번째였다.

트뤼도는 주로 스코틀랜드계프랑스계 캐나다인 혈통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사업가였던 샤를-에밀 트뤼도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제임스 싱클레어였는데, 후자는 루이 생 로랑 총리 내각에서 어업 장관으로 활동했다. 트뤼도는 또한 먼 말레이계와 니아스족 혈통을 가지고 있다. 트뤼도의 외할아버지인 토마스 버나드는 인도네시아 마카사르에서 태어나 1906년 15세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펜티크턴으로 이민왔다. 버나드 가족을 통해 밴던 백작의 친척들과 관계가 있는 트뤼도는 근대 싱가포르 건설의 지도자였던 윌리엄 퍼쿼 중장의 5대 증손자이다.

1972년 오타와 리도 홀에서 패트 닉슨이 저스틴을 안고 있는 마가렛 트뤼도
1972년 오타와 리도 홀에서 패트 닉슨이 저스틴을 안고 있는 마가렛 트뤼도


1972년 4월 14일, 트뤼도의 부모는 국립 예술 센터에서 공식 만찬을 열었고, 방문 중이던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저는 캐나다의 미래 총리, 저스틴 피에르 트뤼도에게 건배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고, 피에르 트뤼도는 아들이 그 역할을 맡게 된다면 "대통령의 기품과 기술을 갖추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2.2. 유년 시절

오타와에서 태어난 쥐스탱 트뤼도는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와 마거릿 싱클레어 여사의 맏아들이다. 1971년 6월 23일, 총리실은 피에르 트뤼도의 아내이자 결혼 4개월 차였던 마가렛 트뤼도(결혼 전 성씨: 싱클레어)가 임신했으며 12월에 출산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1971년 12월 25일 오후 9시 27분 EST 오타와 시민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는 재임 중인 총리에게서 태어난 캐나다 역사상 두 번째 아이이다. 첫 번째는 존 A. 맥도널드의 딸 마거릿 메리 테오도라 맥도널드(1869년 2월 8일~1933년 1월 28일)였다. 트뤼도의 남동생인 알렉상드르(사샤)(1973년 12월 25일 출생)와 미셸(1975년 10월 2일~1998년 11월 13일)은 세 번째와 네 번째였다.

1972년 오타와 리도 홀에서 패트 닉슨이 저스틴을 안고 있는 마가렛 트뤼도
1972년 오타와 리도 홀에서 패트 닉슨이 저스틴을 안고 있는 마가렛 트뤼도


트뤼도는 주로 스코틀랜드계프랑스계 캐나다인 혈통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사업가였던 샤를-에밀 트뤼도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제임스 싱클레어였는데, 후자는 어업 장관으로 루이 생 로랑 총리 내각에서 활동했다. 트뤼도의 외할아버지인 토마스 버나드는 인도네시아 마카사르에서 태어나 1906년 15세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펜티크턴으로 이민왔다. 버나드 가족을 통해 밴던 백작의 친척들과 관계가 있는 트뤼도는 윌리엄 퍼쿼 중장의 5대 증손자이다. 윌리엄 퍼쿼 중장은 근대 싱가포르 건설의 지도자였다. 트뤼도는 또한 먼 말레이계와 니아스족 혈통을 가지고 있다.

1972년 1월 16일, 트뤼도는 오타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1972년 4월 14일, 트뤼도의 부모는 국립 예술 센터에서 공식 만찬을 열었고, 방문 중이던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저는 캐나다의 미래 총리, 저스틴 피에르 트뤼도에게 건배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1977년 부모의 별거가 발표되고, 아버지가 트뤼도를 포함한 세 아들의 양육권을 가졌다. 1979년, 트뤼도는 총리 관저에서 야당 당수 관저인 스토노웨이로 이사했다. 1980년, 아버지의 총선 승리로 다시 총리 관저로 복귀했다. 록클리프 공원 공립학교에서 프랑스어 몰입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했고, 이후 사립학교인 리세 클로드 도타와에 1년 동안 재학했다. 1984년, 아버지의 은퇴 후 가족과 함께 몬트리올의 코르미에 하우스로 이주했고, 장 드 브레뵈프 컬리지를 졸업했다.

트뤼도는 맥길 대학교에서 문학 학사 학위를,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육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트뤼도는 밴쿠버에 머물면서 킬러니 고등학교 등 지역 학교에서 대체 교사로 일했고, 사립 웨스트포인트 그레이 아카데미에서 프랑스어와 수학 교사로 정규직으로 일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그는 몬트리올 폴리테크닉에서 공학을 공부했지만 졸업하지는 않았다. 그는 맥길 대학교에서 환경 지리학 석사 과정을 시작했지만 공직에 진출하기 위해 중퇴했다.

2.3. 학업 및 초기 경력

맥길 대학교에서 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시기 그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나이트클럽 경비원, 스노보드와 화이트 워터 래프팅 강사, 라디오 사회자, 수학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이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육학 학사를 취득하였다. 밴쿠버 지역 학교에서 대체 교사로 근무하다 웨스트포인트 그레이 아카데미에서 프랑스어와 수학 정규 교사로 근무했다.

2000년, 형 미셸이 스키 여행 중 눈사태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트뤼도와 그의 가족은 겨울 스포츠 안전을 위한 코카니 빙하 알파인 캠페인을 시작했다.

몬트리올 폴리테크닉에서 공학을 공부했으나 졸업하지 않았고, 맥길 대학교에서 환경 지리학 석사 과정을 시작했지만 공직 진출을 위해 중퇴했다.

2.4. 대중에게 알려지다

2000년, 쥐스탱 트뤼도는 부친 피에르 트뤼도의 국장에서 추도 연설을 하여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28세였던 그는 인상적인 추도 연설을 하였고, 이 연설은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방영되었다. 트뤼도는 이 연설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트뤼도는 몬트리올로 돌아와 부친이 창립한 청소년 서비스 프로그램인 카티마빅(Katimavik)의 의장을 맡았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이 직책을 수행하며 전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연설하였다.

2007년에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캐나다 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CBC 미니시리즈에 출연하여 연기 경력을 쌓기도 했다.

3. 정치 경력

2006년 자유당 당수 집회에서
2006년 자유당 당수 집회에서

정계에서 잠시 물러나 있던 쥐스탱 트뤼도는 청년 부흥을 위한 자유당 특별 조사단의 의장을 맡으며 정치에 다시 발을 들여놓았다. 이듬해 그는 몬트리올 파피노 구역에서 의석을 얻기 위한 선거 운동을 시작했고, 2008년 선거에서 승리했다. 2007년에는 역사 텔레비전 영화 《Great War》에서 전설적인 군인 탈보 파피노 역을 맡기도 했다.
2008년 트뤼도
2008년 트뤼도

2012년, 트뤼도는 자선 권투 경기에서 보수당 상원 의원 파트리크 브라조를 꺾고 승리하며 숙련된 권투 선수로서의 면모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정치인 트뤼도는 2013년 자유당 당수에 선출되었다.
2013년 트뤼도
2013년 트뤼도

이후 트뤼도는 여러 차례 선거를 통해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3.1. 야당 시절 (2008-2015)

2006년 자유당 당수 선거에서 트뤼도는 제럴드 케네디를 지지했다. 그러나 케네디는 2차 투표에서 전 환경 장관 스테판 디옹에게 패배했다. 2007년 2월 22일, 트뤼도는 몬트리올의 파피노 선거구에서 자유당 예비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2007년 4월 29일 실시된 예비선거에서 690표를 얻어 승리, 2008년 연방 총선에서 블록 퀘벡(퀘벡 연합)의 현역 의원 비비안 바르보와 경쟁하여 당선되었다.

2009년, 트뤼도는 자유당 전당대회 공동 의장을 맡았고, 다문화주의 및 청년 담당 비평가로 임명되었다. 2010년에는 청년, 시민권 및 이민 담당 비평가로 재배치되었다. 2011년 연방 총선에서 파피노 지역구에서 재선되었고, 고등 교육, 청년 및 아마추어 스포츠 담당 비평가로 임명되었다.

2012년, 트뤼도는 자선 복싱 시합에서 보수당 상원의원 패트릭 브라주에게 승리했다.

3.2. 자유당 당수 (2013-현재)

2013년 4월, 자유당 당대표 선거에서 트뤼도는 다른 후보들을 큰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당시 자유당은 당세가 저하되어 2011년 총선에서는 하원 제3당으로까지 후퇴했고, 마이클 이그나티에프(Michael Ignatieff) 당수는 낙선하는 상황이었다. 전 총리의 아들이자 뛰어난 외모를 가진 트뤼도는 자유당의 당세 회복을 위한 구세주로 큰 기대를 모으며 당수로 선출되었다.

2015년 10월 총선은 트뤼도가 당수로 맞이한 첫 번째 하원 총선거였다. 하원 해산 당시 야당 제1당인 신민주당(NDP)이 보수당과 자유당의 지지율을 앞질렀지만, 10월이 되자 마리화나 합법화를 공약으로 내건 자유당이 지지를 얻으면서 184석을 획득하여 압승했다. 트뤼도는 지지자들 앞에서 “오늘밤 역사를 만든 것은 저가 아니라 여러분입니다”라고 연설했다. 트뤼도는 당수 선출 당시 당원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약 10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스캔들의 발각으로 지지율은 점차 하락했고, 2019년 10월 총선에서는 자유당이 157석을 획득하여 제1당 자리를 유지했지만 득표수에서는 보수당을 밑돌았고, 단독 과반수에도 미치지 못했다. 11월 20일 자유당 단독으로 소수 여당 내각을 발족시켰다.

2021년 8월 15일, 메리 사이먼(Mary Simon) 총독을 방문하여 하원 해산을 요청하고 9월에 총선을 실시한다고 선언했다. 전 총선에서 자유당은 소수 여당이 되었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단독 과반수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캐나다 국내는 코로나19 델타 변이의 확대로 코로나19 감염의 4차 유행에 돌입했고, 감염이 확산되는 가운데의 해산 총선에 대해 최대 야당인 캐나다 보수당(CPC)의 에린 오툴(Erin O'Toole) 당수는 “정치적 게임이나 이익을 위해 (감염 확산의)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또한, 선거 운동 중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를 비롯한 여러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방해를 받기도 했다. 10월 26일 소수 여당에 의한 제3차 트뤼도 내각이 발족했다.

2022년에는 1월 말과 6월 13일에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격리되었지만, “백신을 접종했기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국민에게 접종을 촉구했다.

3.3. 총리 재임 (2015-현재)

트뤼도는 2015년 11월 4일 데이비드 존스턴 총독에 의해 총리로 취임했다. 그는 중산층에 대한 세금 감면과 상위 1% 소득자에 대한 세금 인상을 최우선 입법 과제로 삼았다. 또한 캐나다 원주민과의 관계 개선과 개방적이고 윤리적이며 투명한 정부 운영을 약속했다. 2015년 11월 5일, 자유당은 2010년 폐지된 장문의 인구조사를 2016년 인구조사부터 다시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부부와 함께 한 트뤼도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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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4일 취임 선서 후의 제29대 캐나다 내각
2015년 11월 4일 취임 선서 후의 제29대 캐나다 내각


트뤼도는 내각의 절반을 여성으로 임명하여 성별 균형을 이룬 내각을 구성하겠다는 선거 공약을 지켰다.

이후 여러 스캔들로 인해 지지율이 하락했고, 2019년 10월 총선에서는 자유당이 157석을 획득하여 제1당을 유지했지만 득표수에서는 보수당에 밀렸고, 단독 과반수 확보에도 실패했다. 이에 2019년 11월 20일 자유당은 단독으로 소수 정부를 구성했다.

2021년 총선에서 트뤼도는 다시 한번 하원 해산을 요청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 속에 치러진 선거에서 자유당은 160석을 얻어 3선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소수 정부를 유지하게 되었다.

2022년 3월, 자유당은 신민당과 신뢰 공급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으로 신민당은 44대 캐나다 의회 기간 동안 자유당에 대한 신임 투표를 지지하고, 자유당은 신민당의 주요 정책 우선순위를 지원하기로 했다.

2022년에는 1월과 6월에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백신 접종 덕분에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밝히며 국민들에게 백신 접종을 촉구했다.

2022년 9월, 트뤼도는 고 아베 신조 국장례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캐나다 동부 지역의 온대 저기압 피해로 인해 참례를 보류했다.

일본 내각총리대신기시다 후미오와 (2023년 1월)
일본 내각총리대신기시다 후미오와 (2023년 1월)

3.3.1. 2015년 연방 총선

2년 후, 트뤼도는 총리직에 도전했다. 그는 선거 운동에서 캐나다 유권자들에게 "실질적 변화"를 약속하며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과 중산층에 대한 감세를 요구하였다. 또한 대마초 합법화와 유산 권리 보호를 약속하고,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국가의 기후 변화 정책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그의 긍정적인 선거 운동은 재선에 도전하는 스티븐 하퍼와는 대조적이었다.

2013년 4월, 트뤼도는 자유당 당수 선거에서 다른 후보들을 큰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당시 자유당은 2011년 총선에서 하원 제3당으로까지 밀려났고, 마이클 이그나티에프(Michael Ignatieff) 당수는 낙선하는 상황이었다. 전직 총리의 아들이자 뛰어난 외모를 가진 트뤼도는 자유당 재건을 위한 구원투수로 큰 기대를 받으며 당수로 선출되었다.

2015년 10월 총선에서 트뤼도는 자유당을 이끌고 184석을 획득하여 다수당이 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캐나다 역사상 의석수가 가장 크게 증가한 사례였다. 이로써 2006년부터 총리직을 맡았던 보수당의 스티븐 하퍼는 물러나게 되었다. 내셔널 포스트에 따르면, 트뤼도는 승리 연설에서 "캐나다인들이 긍정적이고 야심적이며 희망에 찬 국가를 위한 전망과 협의 사항을 가진 정부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밤 저는 그 정부를 이끌 것을 약속합니다."라고 말했다. 43세의 나이로 총리가 된 트뤼도는 1979년 40세 생일 전에 총리로 취임한 조 클라크에 이어 두 번째로 최연소 캐나다 총리가 되었다. 트뤼도는 그의 6번째 증조모가 말레이시아인이었던 비유럽계 혈통을 가진 첫 총리였다. 당시 야당 제1당이었던 신민주당(NDP)이 보수당과 자유당의 지지율을 앞질렀지만, 10월이 되자 마리화나 합법화를 공약으로 내건 자유당이 지지를 얻으면서 압승했다. 트뤼도는 지지자들 앞에서 “오늘밤 역사를 만든 것은 저가 아니라 여러분입니다”라고 연설했다.

3.3.2. 국내 정책

트뤼도 정부의 경제 정책은 초기에는 증가된 정부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세수 증대에 의존했다. 정부는 예산 균형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까지 매년 캐나다의 국가부채 대 GDP 비율을 감소시켰다.

트뤼도의 자칭 진보적이고 페미니스트적인 사회 정책에는 낙태 권리에 대한 강력한 옹호가 포함되어 있다. 그의 정부는 캐나다에서 전환 치료를 불법화하는 법안을 도입했다. 2018년 10월에는 기호품으로서의 대마를 합법화했고, 2016년에는 의사 조력 자살의 권리를 도입했다.

2015년 선거 이후 캐나다는 이민자와 난민 수를 늘리기 위한 목표를 설정했다. 2022년 11월, 트뤼도 정부는 2025년까지 매년 50만 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의 환경 정책에는 2030년 이전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30% 줄이고 2050년까지 순 제로 배출량을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그의 주요 수단은 연방 탄소 가격 책정 정책이다. 트뤼도는 2019년에 일회용 플라스틱 금지를 약속했다. 2022년 그의 정부는 2022년 12월부터 일회용 플라스틱의 생산 및 수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품목의 판매는 2023년 12월부터, 수출은 2025년부터 금지될 것이다.

총리로서 트뤼도는 실종 및 살해된 원주민 여성에 대한 국가 조사(MMIWG)를 포함한 세 가지 주요 독립 조사를 시작했다. MMIWG 조사는 캐나다의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이 집단 학살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트뤼도는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트뤼도는 전 세계적인 COVID-19 범유행 기간 동안 캐나다 총리였다. 그의 정부는 팬데믹에 대한 대응으로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2020년 팬데믹의 경제적 영향에 대처하기 위해 트뤼도는 학자금 대출 상환을 면제하고, 캐나다 아동 수당을 증액하고, 연간 상품 및 서비스 세 납부액을 두 배로 늘리고, 캐나다 긴급 지원 혜택(CERB)을 도입했다. 2020년 4월 트뤼도는 캐나다 긴급 임금 보조금, 캐나다 긴급 사업 계좌, 캐나다 긴급 학생 지원금을 도입했다.

캐나다 트럭 시위는 2022년 1월 15일 캐나다 정부가 도입한 트럭 운전사들의 국경 육로 재입국을 위한 COVID-19 백신 의무화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트뤼도 총리는 오타와에서 발생한 시위로 인한 공공 질서 비상 사태를 이유로 1988년 제정된 이후 처음으로 2022년 2월 14일 긴급사태법을 발동했다.

3.3.3. 외교 정책

일본 내각총리대신기시다 후미오와 (2023년 1월)
일본 내각총리대신기시다 후미오와 (2023년 1월)


2018년 5월, 미국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 조치를 발표했다. 트뤼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을 통해 미국의 입장을 비난했다. 이 직후, 캐나다가 의장국이 되어 개최된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도 경제 문제를 놓고 캐나다(및 유럽 국가들)와 미국이 대립했다. 일단은 정상 선언이 발표되었지만,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양국 관계에 균열을 만들었다.

2024년 11월 25일,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마약 및 불법 이민 대책을 이유로 캐나다산 전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4일 후인 11월 29일, 트뤼도는 긴급히 트럼프의 사저를 방문하여 만찬을 함께하며 회담을 가졌다.

2013년 중국의 독재 정치가 경제 성장을 가져왔다는 발언을 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3.3.4. 2019년 연방 총선

2019년 9월 11일, 쥘리 파예트 총독에게 의회 해산을 요청하여 선거가 실시되었다. 선거 운동 기간 중 트뤼도가 과거 흑인 분장을 한 사진 및 비디오가 공개되어 논란이 일었고, 트뤼도는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2019년 10월 총선에서 자유당은 157석을 획득하여 제1당 자리를 유지했지만, 득표수에서는 보수당에 뒤졌고 단독 과반수 확보에도 실패했다. 11월 20일, 자유당은 단독으로 소수 정부를 구성했다.

3.3.5. 2021년 연방 총선

2021년 8월 15일, 쥐스탱 트뤼도는 메리 사이먼 총독을 방문하여 하원 해산을 요청하고 9월에 총선을 실시한다고 선언했다. 2019년 캐나다 총선에서 자유당은 소수 여당이 되었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단독 과반수 획득을 목표로 하였다. 하지만 캐나다 국내는 코로나19 델타 변이의 확대로 코로나19 감염의 4차 유행에 돌입했고, 감염이 확산되는 가운데의 해산 총선에 대해 최대 야당인 캐나다 보수당에린 오툴 당수는 “정치적 게임이나 이익을 위해 (감염 확산의)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선거 운동 중 트뤼도는 맥주 양조장을 방문했지만,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를 비롯한 여러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방해를 받았다. 버스로 돌아가려던 중 투석을 받았지만 부상자는 없었다. 이 일련의 항의에 대해 트뤼도는 “캐나다 사회의 ‘극히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의 주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 결과 자유당은 160석을 획득하여 3선에 성공하고 두 번째 소수 정부를 구성하였다. 10월 26일 소수 여당에 의한 제3차 트뤼도 내각이 발족했다.

3.3.6. 신뢰 공급 협약

2022년 3월 22일, 자유당과 신민당은 신뢰 공급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에 따라 신민당은 44대 의회 기간 동안 자유당에 대한 신임 투표를 지지하기로 약속했다. 그 대가로 자유당은 신민당의 주요 정책 우선순위를 지지하기로 했다.

3.4. 윤리 문제

쥐스탱 트뤼도는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여러 윤리 문제에 직면했다.

* 자금 모금 방식 논란 (2016): 상세한 내용은 원문에 나타나 있지 않다.
* 아가 칸 섬 휴가 논란 (2017): 상세한 내용은 원문에 나타나 있지 않다.
* 자스팔 아트왈 초청 논란 (2018): 상세한 내용은 원문에 나타나 있지 않다.
* SNC-라발린 사건 (2019): 상세한 내용은 원문에 나타나 있지 않다.
* WE 자선단체 스캔들 (2020): 상세한 내용은 원문에 나타나 있지 않다.

이러한 스캔들 발각으로 트뤼도의 지지율은 점차 하락했다.

4. 사생활

트뤼도는 2005년 캐나다의 텔레비전 및 라디오 사회자인 소피 그레고아르와 결혼했다. 슬하에 자비에(Xavier), 엘라그라스(Ella-Grace), 아드리앵(Hadrien) 세 자녀를 두었다. 2014년, 트뤼도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자서전 《Common Ground》를 출간했다.

트뤼도는 몬트리올에서 어린 시절 소피 그레고아르를 처음 만났는데, 그녀는 트뤼도 남동생 미셸의 급우이자 어린 시절 친구였다. 2003년 6월, 성인이 된 후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몇 달 후 교제를 시작했고, 2004년 10월 약혼하여 2005년 5월 28일 몬트리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017년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 전야에 열린 함부르크 글로벌 시티즌 페스티벌에서 아내 소피 그레고아르와 함께 있는 트뤼도
2017년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 전야에 열린 함부르크 글로벌 시티즌 페스티벌에서 아내 소피 그레고아르와 함께 있는 트뤼도


2013년 6월, 트뤼도가 자유당 당수가 된 지 두 달 후, 부부는 몬트리올 코트데네주(Côte-des-Neiges) 지역에 있는 집을 팔고 오타와의 록클리프 파크(Rockcliffe Park)에 있는 임대 주택에서 살기 시작했다.

2023년 8월 2일, 트뤼도는 그레고아르와 별거한다고 발표했다.

트뤼도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자였으나, 18세에 신앙을 떠났다가 1998년 형 미셸의 죽음 이후 신앙을 회복했다.

5. 기타

권투가 취미이며, 총리 취임 전에는 왼쪽 어깨에 문신을 새기고 단련된 체격을 과시하는 포즈를 취한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양자 컴퓨터에 대한 지식도 보유하고 있다.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서는 일과 삶의 조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2016년 일본에서 열린 제42회 선진국 정상회의(이세시마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5월 25일에는 공무를 하루 쉬고 부인과 함께 미에현 청봉산 정상 부근의 정복사 경내를 산책하는 등 결혼기념일 휴가를 즐겼다.

성소수자(성적 소수자)를 이해하는 스트레이트 아라이로 알려져 있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캐나다 최대 도시 토론토의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2016년과 2017년에 참가했다. 페미니스트임을 공언하며 내각 구성 단계에서 장관을 남녀 동수로 임명했고, LGBT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성소수자도 장관으로 임명했다. 2017년 11월에는 캐나다 정부의 과거 성소수자 및 원주민 차별에 대해 총리로서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2019년 10월 총선거 직전, 과거 여러 차례 유색인종으로 분장하여 비하했던 사실이 드러나 비판이 쇄도했다. 2019년 9월 19일, 이 사건에 대해 당시에는 인종차별에 대해 무지했다며 사과했다.

한때 청렴결백·다양성 존중의 이미지였으나, 2019년 캐나다 대형 건설회사 SNC라발랭의 리비아에서의 뇌물수수 의혹 형사 재판 회피를 위해 사법장관에게 압력을 가한 스캔들, 소수민족 출신 여성 장관 2명이 트뤼도 총리의 압력이나 부정에 대한 혐오로 사임하면서, 특히 트뤼도 총리에 대한 기대가 컸던 10대부터 30대 여성 지지층 사이에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2019년 12월 3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여 존슨 영국 총리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과 회담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험담하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찍혀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2023년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는 마지막 날인 5월 21일에 본인의 강한 희망에 따라 원폭 자료관을 재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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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탱 트뤼도가 받은 훈장
훈장 리본설명참고
--캐나다 엘리자베스 2세 즉위 60주년 기념 메달(Queen Elizabeth II Diamond Jubilee Medal for Canada)
--플레이아데 훈장(Order of La Pléiade) 대십자장
--우크라이나 자유 훈장(Order of Liberty (Ukra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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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탱 트뤼도가 받은 명예 박사 학위
수여 장소날짜학교학위졸업식 연설
2017년 7월 5일에든버러 대학교명예 박사 학위
2018년 5월 16일뉴욕 대학교법학 박사(Doctor of Laws) (L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