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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디안 케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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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캐나디안 케이퍼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당시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탈출한 6명의 미국 외교관들을 캐나다 대사관이 숨겨주고 탈출을 도운 사건을 말한다. 이란의 새 정부가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외교관들을 인질로 잡은 상황에서, 캐나다 대사 케네스 D. 테일러와 존 시어다운은 미국 외교관들에게 캐나다 여권을 발급하고 영화 제작진으로 위장하여 탈출을 지원했다. 이 작전은 CIA의 지원을 받았으며, 2012년 영화 《아르고》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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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디안 케이퍼
캐나다 작전
아르고 영화 타이틀 카드
아르고 영화 타이틀 카드
사건 개요
발생일1980년 1월 27일에서 1980년 1월 28일
위치이란 테헤란
목표이란 혁명 기간 동안 테헤란에서 미국 외교관들을 구출하는 것
결과미국 외교관 6명 성공적으로 구출
교전 세력
미국미국 중앙정보국(CIA)
캐나다캐나다 정부
지휘관 및 지도자
미국지미 카터
캐나다조 클라크
CIA 요원토니 멘데스
캐나다 대사켄 테일러
관련 인물
미국 외교관로버트 앤더스
마크 리젝
코라 리젝
헨리 리 샤츠
조 스태포드
캐슬린 스태포드
작전 개요
작전명캐나다 작전 (Canadian Caper)
관련 영화아르고
추가 정보
배경1979년 이란 혁명과 이란 미국 인질 사건
목적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 중 인질로 잡히지 않은 6명을 안전하게 구출
방법캐나다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캐나다 외교관으로 위장
과정CIA 요원 토니 멘데스가 가짜 영화 제작을 기획
6명의 미국인은 캐나다 대사 켄 테일러의 보호를 받으며 대사관저와 캐나다 외교관 존 셰어다운의 집에서 은신
캐나다 정부는 위조 여권과 항공권을 제공
결과1980년 1월 28일, 6명의 미국인은 스위스 항공을 이용하여 이란을 탈출, 무사히 미국으로 귀환
기밀 해제CIA는 2023년, 캐나다 작전에 참여한 두 번째 CIA 요원의 신원을 공개했다. 그의 이름은 에드 존슨이다.

2. 배경

이란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의 지원을 받던 이란 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국외로 도피했다. 혼란 속에, 이맘 노선 추종 이슬람 학생들로 알려진 젊은 이슬람교도 무리가 1979년 11월 4일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습격하여 수십 명의 외교관을 포획하고 인질로 잡았다.[4] 그들은 샤를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이란으로 송환할 것을 요구했다.[4] 임시 정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총리 메흐디 바자르간과 그의 내각이 사임하면서 붕괴되었다.[5]

새 이란 정부는 인질범들이 자체적으로 행동하는 학생이라고 주장했지만, 샤의 송환 요구에 동참했다. 대부분의 인질들은 1981년 초까지 억류되었다.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 담을 넘는 학생들


인질이 된 미국 대사관 직원

2. 1. 이란 혁명과 미국 대사관 점거

이란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의 지원을 받던 이란 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국외로 도피했다. 혼란 속에, 이맘 노선 추종 이슬람 학생들로 알려진 젊은 이슬람교도 무리가 1979년 11월 4일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습격하여 수십 명의 외교관을 포획하고 인질로 잡았다.[4] 그들은 샤를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이란으로 송환할 것을 요구했다.[4] 임시 정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총리 메흐디 바자르간과 그의 내각이 사임하면서 붕괴되었다.[5]

새 이란 정부는 인질범들이 자체적으로 행동하는 학생이라고 주장했지만, 샤의 송환 요구에 동참했다. 대부분의 인질들은 1981년 초까지 억류되었다.

이란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 벽을 넘어 침입했을 때, 6명의 외교관들은 대사관과 별개의 건물에 있던 영사부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영국 대사관으로 향하라는 지시를 받고 테헤란 시내로 탈출했다. 이들 중 일부는 붙잡혀 대사관으로 끌려가 다른 인질들과 함께 감금되었다.

2. 2. 이란의 새 정부와 인질 사태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가 국외로 도피한 혼란 속에, 1979년 11월 4일 이맘 노선 추종 이슬람 학생들이라는 젊은 이슬람교도 무리가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습격하여 외교관들을 인질로 잡았다.[4] 이들은 샤를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이란으로 송환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로 인해 총리 메흐디 바자르간과 그의 내각이 사임하면서 임시 정부는 붕괴되었다.[5]

새 이란 정부는 인질범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학생들이라고 주장했지만, 샤의 송환 요구에 동참했다. 대부분의 인질들은 1981년 초까지 억류되었다.

이란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 벽을 넘어 침입했을 때, 6명의 미국 외교관들은 별도의 건물에 있던 영사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은 영국 대사관으로 향하라는 지시를 받고 테헤란 시내로 탈출했으나, 총영사 리처드 모어필드 등의 그룹은 영국 대사관으로 바로 가지 않아 붙잡혀 대사관에 감금되었다.

3. 캐나다 대사관의 미국 외교관 보호

1979년 11월, 반미 시위대가 주 이란 미국 대사관을 침입했을 때, 영사부에서 근무하던 로버트 앤더스, 코라 암번-리예크, 마크 리예크, 조셉 스태포드, 캐슬린 스태포드, 리 샤츠 등 6명의 미국 외교관들은 켄 테일러와 존 시어다운의 보호를 받으며 테헤란에서 탈출했다.[2] 이들은 영국 대사관으로 향했으나 시위 군중에 막혀 앤더스의 집으로 피신했다.[2] 이후 6일 동안 태국인 요리사 솜차이 "샘" 스리위아우네트르의 도움을 받으며 여러 집을 전전했고, 영국 거주 구역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6] 3일 후 바자르간 정부가 붕괴되자, 앤더스는 캐나다 이민관 존 셔다운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요청했다.[6]

11월 10일, 앤더스 그룹 5명은 셔다운의 집에 도착하여 켄 테일러 대사의 환영을 받았다. 스태포드 부부는 테일러 대사 부부의 관저로, 나머지 3명은 셔다운 부부의 집에 머물렀다.[7] 2주 후, 농무부 파견 직원 리 셔츠가 스웨덴 대사관과 스웨덴 영사 세실리아 리산데르의 아파트를 거쳐 셔다운의 집에 합류했다.[2] 이로써 6명의 미국인들은 총 79일 동안 캐나다 대사관과 셔다운의 집에서 은신 생활을 하게 되었다.[7]

캐나다 대사 켄 테일러와 존 셔다운은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 외교관들을 숨겨주었으며, 다른 두 "우방"도 지원하여 비어있는 외교관용 주거지가 피난처로 사용되었다.[2] 테일러는 캐나다 외무부 장관 플로라 맥도날드와 캐나다 총리 조 클라크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지지를 얻어냈고,[16] 캐나다 여권을 이용해 미국인들을 탈출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추밀원 명령을 통해 가짜 이란 비자가 포함된 캐나다 여권이 발급되었다.[16]

3. 1. 영국 대사관으로의 피난 시도와 실패

1980년, 로버트 앤더스, 코라 암번-리예크, 마크 리예크, 조셉 스태포드, 캐슬린 스태포드, 리 샤츠 등 6명의 미국 외교관들은 캐나다 외교관 켄 테일러와 존 시어다운의 보호를 받으며 테헤란 탈출을 시도했다.[2] 이들은 이란인들이 벽을 넘어왔을 때 대사관 구역 내 별도의 건물인 영사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두 그룹의 외교관들은 영국 대사관으로 도보 이동을 시도했다. 앤더스 그룹(샤츠 제외)은 영사 서비스를 받으려는 두 명의 미국인과 함께 이동했고, 리처드 모어필드 총영사가 포함된 두 번째 그룹은 우회로를 택했다가 붙잡혀 구내로 다시 끌려갔다.[2]

앤더스 그룹은 영국 대사관에 가까워졌지만, 대사관 앞에 시위하는 거대한 군중을 발견했다. 앤더스는 근처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2] 6일간의 여정 동안, 앤더스 그룹은 태국인 요리사 솜차이 "샘" 스리위아우네트르의 도움을 받아 집집마다 옮겨 다녔으며, 영국 거주 구역에서 하룻밤을 보냈다.[6] 3일 후, 바자르간 정부가 붕괴되면서 외교관들은 고난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대안을 찾던 앤더스는 오랜 친구이자 캐나다 이민관인 존 시어다운에게 연락했고, 그는 그룹 전체를 열렬히 초대했다.[6]

3. 2. 앤더스 그룹의 은신 생활

1980년, 로버트 앤더스, 코라 암번-리예크, 마크 리예크, 조셉 스태포드, 캐슬린 스태포드, 리 샤츠 등 6명의 미국 외교관들은 테헤란에서 탈출하여 캐나다 외교관 켄 테일러와 존 시어다운의 보호를 받았다.[2] 이들은 이란인들이 벽을 넘어왔을 때 대사관 구역 내 별도의 건물인 영사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앤더스 그룹은 영국 대사관으로 가던 중 시위대를 만나 앤더스의 집으로 피신했다.[2]

이들은 태국인 요리사 솜차이 "샘" 스리위아우네트르의 도움을 받으며 6일 동안 집집마다 옮겨 다녔고, 영국 거주 구역에서 하룻밤을 보냈다.[2] 3일 후, 바자르간 정부가 붕괴되면서 장기적인 은신이 필요함을 인지했다.[6] 앤더스는 캐나다 이민관 존 시어다운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요청했고, 시어다운은 이들을 흔쾌히 초대했다.[6]

11월 10일, 앤더스, 리예크 부부, 스태포드 부부는 시어다운의 집에 도착하여 제나 시어다운과 켄 테일러의 환영을 받았다. 스태포드 부부는 테일러의 집으로 옮겨져 패트리샤(팻) 테일러와 함께 지냈고, 나머지 세 명은 시어다운 부부와 함께 머물렀다.[7] 11월 27일, 테일러는 스웨덴 대사 카이 순드베르그로부터 리 샤츠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샤츠를 시어다운의 집에 머물게 했다.[2] 샤츠는 스웨덴 대사관과 영사 세실리아 리산데르의 아파트에 머물렀으나, 캐나다인으로 위장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되어 시어다운의 집으로 옮겨졌다.[2] 이들은 두 캐나다 가구와 비어 있는 외교관 거주지에서 총 79일 동안 은신했다.[7][2]

3. 3. 캐나다 대사관의 협력

1979년 11월, 반미 시위대가 주 이란 미국 대사관을 침입했을 때, 영사부에서 근무하던 로버트 앤더스, 코라 암번-리예크, 마크 리예크, 조셉 스태포드, 캐슬린 스태포드, 리 샤츠 등 6명의 미국 외교관들은 켄 테일러와 존 시어다운의 보호를 받으며 테헤란에서 탈출했다.[2] 이들은 영국 대사관으로 향했으나 시위 군중에 막혀 앤더스의 집으로 피신했다.[2] 이후 6일 동안 태국인 요리사 솜차이 "샘" 스리위아우네트르의 도움을 받으며 여러 집을 전전했고, 영국 거주 구역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6] 3일 후 바자르간 정부가 붕괴되자, 앤더스는 캐나다 이민관 존 셔다운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요청했다.[6]

11월 10일, 앤더스 그룹 5명은 셔다운의 집에 도착하여 켄 테일러 대사의 환영을 받았다. 스태퍼드 부부는 테일러 대사 부부의 관저로, 나머지 3명은 셔다운 부부의 집에 머물렀다.[7] 2주 후, 농무부 파견 직원 리 셔츠가 스웨덴 대사관과 스웨덴 영사 세실리아 리산데르의 아파트를 거쳐 셔다운의 집에 합류했다.[2] 이로써 6명의 미국인들은 총 79일 동안 캐나다 대사관과 셔다운의 집에서 은신 생활을 하게 되었다.[7]

캐나다 대사 켄 테일러와 존 셔다운은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 외교관들을 숨겨주었으며, 다른 두 "우방"도 지원하여 비어있는 외교관용 주거지가 피난처로 사용되었다.[2] 테일러는 캐나다 외무부 장관 플로라 맥도날드와 캐나다 총리 조 클라크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지지를 얻어냈고,[16] 캐나다 여권을 이용해 미국인들을 탈출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추밀원 명령을 통해 가짜 이란 비자가 포함된 캐나다 여권이 발급되었다.[16]

4. 탈출 작전 준비

캐나다 정부는 인질 사건 당시 미국 외교관들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켄 테일러 대사는 캐나다 외무 장관 플로라 맥도날드와 조 클라크 총리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이들은 6명의 미국인에게 캐나다 여권을 발급하고 국제선 항공편으로 탈출시키는 작전을 승인했다. 이를 위해 추밀원 칙령이 내려져, 미국 외교관들에게 캐나다 여권을 발급할 수 있게 되었다. CIA는 위조된 이란 비자를 제공했다.

CIA의 위장 및 탈출 전문가인 토니 멘데스는 오타와의 캐나다 정부 관계자들과 긴밀히 협력했다.[8] 캐나다는 택배를 이용하여 여권과 기타 지원 물자를 캐나다 대사관에 전달했다. 멘데스는 구출 작전을 지원하는 요원과 함께 테헤란으로 갔다.[8]

CIA가 위장 작전의 일환으로 제작한 영화 포스터


「Studio Six」의 서류


다양한 시나리오가 준비되었지만, 최종적으로 6명을 할리우드 영화 제작진으로 위장하여 로케이션 헌팅을 하는 캐나다인으로 꾸미는 시나리오가 선택되었다.[8] 이들은 로저 젤라즈니의 SF 소설 ''빛의 왕''을 각색한 ''아르고''라는 가짜 영화를 제작하는 것으로 위장했다.[8] 잭 커비의 컨셉 아트가 사용되었고, 중동 분위기의 행성을 배경으로 하여 이란에서 로케이션 헌팅을 하려는 이유를 설명했다.[8][9]

위장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 멘데스는 할리우드 베테랑 분장사 존 챔버스의 도움을 받았다.[10] 선셋 가워 스튜디오에 "스튜디오 식스 프로덕션"이라는 사무실을 열었고, 마이클 더글라스가 영화 ''차이나 신드롬'' (1979)을 제작하는 동안 사용했던 공간이었다.[7] 영화 제작 문의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었고, ''버라이어티'' 와 ''할리우드 리포터'' 같은 업계 잡지에 광고를 게재했다.[7] 챔버스의 친구인 로버트 시델은 영화 프로듀서로, 그의 아내 조안은 "스튜디오 식스"의 접수원으로 위장했다.[10][11] 챔버스는 이 작전의 공로로 CIA의 공로 훈장을 받았다.[10][11]

작전 중 비자 날짜에 오류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비자를 준비한 담당자가 이란력의 새해가 3월에 시작한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었다.[12] 캐나다 대사관 직원이 이 실수를 발견했고, 여분의 여권을 이용하여 멘데스는 이란력에 따른 새로운 비자를 만들 수 있었다.[12]

4. 1. 캐나다 정부의 지원과 CIA의 협력

캐나다 정부는 인질 사건 당시 미국 외교관들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켄 테일러 대사는 캐나다 외무 장관 플로라 맥도날드와 조 클라크 총리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이들은 6명의 미국인에게 캐나다 여권을 발급하고 국제선 항공편으로 탈출시키는 작전을 승인했다. 이를 위해 추밀원 칙령이 내려져, 미국 외교관들에게 캐나다 여권을 발급할 수 있게 되었다. CIA는 위조된 이란 비자를 제공했다.

CIA의 위장 및 탈출 전문가인 토니 멘데스는 오타와의 캐나다 정부 관계자들과 긴밀히 협력했다.[8] 캐나다는 택배를 이용하여 여권과 기타 지원 물자를 캐나다 대사관에 전달했다. 멘데스는 구출 작전을 지원하는 요원과 함께 테헤란으로 갔다.[8]

다양한 시나리오가 준비되었지만, 최종적으로 6명을 할리우드 영화 제작진으로 위장하여 로케이션 헌팅을 하는 캐나다인으로 꾸미는 시나리오가 선택되었다.[8] 이들은 로저 젤라즈니의 SF 소설 ''빛의 왕''을 각색한 ''아르고''라는 가짜 영화를 제작하는 것으로 위장했다.[8] 잭 커비의 컨셉 아트가 사용되었고, 중동 분위기의 행성을 배경으로 하여 이란에서 로케이션 헌팅을 하려는 이유를 설명했다.[8][9]

위장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 멘데스는 할리우드 베테랑 분장사 존 챔버스의 도움을 받았다.[10] 선셋 가워 스튜디오에 "스튜디오 식스 프로덕션"이라는 사무실을 열었고, 마이클 더글라스가 영화 ''차이나 신드롬'' (1979)을 제작하는 동안 사용했던 공간이었다.[7] 영화 제작 문의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었고, ''버라이어티'' 와 ''할리우드 리포터'' 같은 업계 잡지에 광고를 게재했다.[7] 챔버스의 친구인 로버트 시델은 영화 프로듀서로, 그의 아내 조안은 "스튜디오 식스"의 접수원으로 위장했다.[10][11] 챔버스는 이 작전의 공로로 CIA의 공로 훈장을 받았다.[10][11]

작전 중 비자 날짜에 오류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비자를 준비한 담당자가 이란력의 새해가 3월에 시작한다는 것을 கவனிக்க지 못했기 때문이었다.[12] 캐나다 대사관 직원이 이 실수를 발견했고, 여분의 여권을 이용하여 멘데스는 이란력에 따른 새로운 비자를 만들 수 있었다.[12]

4. 2. CIA의 위장 작전

CIA는 위장·탈출 공작 담당자 토니 멘데스와 "훌리오"(가명)의 협력을 얻어 위장 작전 준비를 했다.[8] 체류 이유, 서류, 복장, 변장 도구 등을 제공했다.[8] 멘데스는 오타와의 캐나다 정부 관계자와 긴밀히 협력했고, 그들은 캐나다 택배를 이용하여 여권과 기타 지원 물자를 캐나다 대사관에 전달했다.[8]

다양한 시나리오와 여권이 준비되었지만, 최종적으로 6명을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로 위장하여 영화 촬영 로케이션 헌팅을 하는 캐나다인으로 꾸미는 시나리오가 선택되었다.[8] 정교한 뒷이야기는 1967년 로저 젤라즈니의 SF 소설 ''빛의 왕''을 각색한 ''아르고''라는 영화에 관한 것이었다.[8] 잭 커비의 컨셉 아트가 존재했고, 대본은 중동 분위기의 행성을 배경으로 하여 팀이 이란에서 로케이션 헌팅을 하려는 이유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8][9]

위장을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멘데스와 존슨은 할리우드 베테랑 분장사 존 챔버스의 도움을 받았다.[10] 그들은 선셋 가워 스튜디오에 "스튜디오 식스 프로덕션" (6명의 외교관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사무실을 열었다.[7] 이 사무실은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가 영화 ''차이나 신드롬''(1979)을 제작하는 동안 사용했던 사무실 공간을 사용했다. 영화 제작에 대해 문의하는 전화가 오면 로스앤젤레스의 "스튜디오 식스" 사무실에서 응답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곧 개봉될 "스튜디오 식스" 영화에 대한 광고가 할리우드 간행물에 게재되었으며, 그러한 신문 중 하나는 코라 리예크가 위장 자료의 일부로 휴대하도록 주어졌다.[7] 팀은 또한 가짜 명함을 준비하고, 로스앤젤레스의 나이트클럽에서 영화 파티를 열었으며, 업계 잡지인 ''버라이어티'' 와 ''할리우드 리포터''에 영화 광고를 게재했다.[7] 챔버스의 친구이자 분장사인 로버트 시델은 관련 행사에서 영화 프로듀서로 위장했고, 그의 아내 조안은 "스튜디오 식스"의 접수원으로 활동했다.[10] 챔버스는 나중에 이 작전에 도움을 준 공로로 CIA의 공로 훈장을 받았다.[10][11]

작전 중 비자 날짜에 오류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비자를 준비한 담당자가 이란력은 춘분에 시작하므로 주의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12] 캐나다 대사관 요원이 실수를 지적했고, 여분의 여권을 이용하여 멘데스는 이란 달력에 근거한 새로운 비자를 위조할 수 있었다.[12]

4. 3. 비자 날짜 오류 수정

작전 중 비자 날짜에 오류가 발견되었다. 비자를 준비한 담당자가 이란력은 춘분에 시작되어 새해가 3월 말에 시작하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12] 캐나다 대사관 직원이 이 실수를 지적했고, 멘데스는 여분의 여권을 이용하여 이란 달력에 근거한 새로운 비자를 위조할 수 있었다.[12]

이 기간 동안 외교관들은 책을 읽거나 스크래블 등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13] 또한 테일러 대사는 공항의 출입국 관리를 속이기 위해 그들이 출국하는 이유를 날조하였고, 불필요한 캐나다 대사관 직원을 데리고 출국하며 불규칙한 패턴을 만들어 공항 절차를 파악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의심스러운 전화와 기타 활동 등 외교관의 은신이 발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5. 탈출

1980년 1월 27일 일요일 이른 아침, 토니 멘데스, 존슨, 그리고 가짜 캐나다 여권과 위조된 입국 서류를 소지한 6명의 미국 외교관들은 테헤란의 메흐라바드 국제공항의 보안 검색을 쉽게 통과했다.[2] 맥도넬 더글러스 DC-8-62의 기계적 문제로 인해 잠시 지연된 후, 일행은 스위스 항공 363편(등록번호: HB-IDL)에 탑승하여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14][8] 우연히도, 이 항공기는 스위스 북부의 아르가우 주를 따라 ''아르가우''로 명명되었다.[14][8] 취리히에 착륙하자, 6명의 외교관들은 CIA 요원들에 의해 산장에 위치한 안전가옥으로 옮겨져 하룻밤을 보냈다. 그곳에서 그들은 외교적 목적으로 언론과 인터뷰할 수 없으며, 인질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플로리다의 비밀 장소에 숨겨질 것이라고 들었다.[7] 멘데스와 존슨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했고, 멘데스는 그곳에서 작전 보고서를 작성했다.

다음 날, 이야기는 라 프레스의 워싱턴 특파원인 장 펠르티에가 쓴 기사로 몬트리올에서 보도되었고, 곧 국제 언론에 의해 보도되었다.[13] CIA는 6명의 외교관을 스위스에서 서독의 람슈타인 공군 기지로 이송하여 대서양을 건너 델라웨어의 도버 공군 기지로 비행시켰다.[15]

"케이퍼"에 참여한 8명의 미국인들은 1월 27일 일요일에 이란을 떠났다. 캐나다 대사관은 같은 날 폐쇄되었다. 테일러 대사와 남은 직원들은 캐나다로 돌아갔다. 6명의 미국 외교관들은 1980년 1월 30일에 미국에 도착했다.

요원 토니 멘데스가 지미 카터 대통령으로부터 아르고 작전의 성공에 대한 축하를 받고 있다.


구출된 6명의 미국 외교관:

  • 로버트 G. 앤더스, 54세 – 영사
  • 마크 J. 리예크, 29세 – 영사
  • 코라 A. 리예크, 25세 – 영사 보조
  • 헨리 L. 샤츠, 31세 – 농업 담당관
  • 조셉 D. 스태포드, 29세 – 영사
  • 캐슬린 F. 스태포드, 28세 – 영사 보조


지미 카터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협상 목적으로 실종된 모든 미국 외교관들이 인질로 잡혀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6명이 구출되었다는 소식은 대중에게 완전한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캐나다인들의 행동에 대한 미국의 감사는 많은 미국 텔레비전 인물들과 일반 시민들에 의해 널리 나타났으며, 특히 테일러에게 감사를 표했다. 캐나다 국기는 미국 전역의 여러 장소에서 게양되었고, "감사합니다" 빌보드 광고가 게재되었다.[16]

5. 1. 메헤라바도 공항에서의 탈출

1980년 1월 27일, 캐나다 여권을 소지한 6명의 미국 외교관들은 테헤란의 메헤라바드 국제공항에서 스위스 항공 363편(등록번호: HB-IDL)에 탑승하여 취리히로 향했다.[14][8] 이 항공기는 스위스 북부의 아르가우 주의 이름을 따 ''아르가우''로 명명되었다.[14][8] 맥도넬 더글러스 DC-8-62의 기계적 문제로 인해 잠시 지연되기도 했다.[2] 이들은 무사히 메헤라바도 공항의 보안 검색을 통과하여 스위스를 거쳐 귀환할 수 있었다.[2]

같은 날, 캐나다 대사관도 폐쇄되고 테일러 대사와 남아 있던 직원도 캐나다로 귀국했다.[16]

구출된 6명의 미국 외교관은 다음과 같다.[15]

  • 로버트 앤더스(Robert Anders), 54세 – 영사
  • 마크 J. 라이예크(Mark J. Lijek), 29세 – 영사
  • 코라 A. 라이예크(Cora A. Lijek), 25세 – 영사 보좌관
  • 헨리 L. 샤츠(Henry L. Schatz), 31세 – 농업 담당관
  • 조셉 D. 스태포드(Joseph D. Stafford), 29세 – 영사
  • 캐슬린 F. 스태포드(Kathleen F. Stafford), 28세 – 영사 보좌관


5. 2. 구출된 미국 외교관 명단

1980년 1월 27일, 6명의 미국 외교관들은 가짜 캐나다 여권과 위조된 입국 서류를 가지고 테헤란 메흐라바드 국제공항을 통과하여 스위스 항공 363편으로 스위스 취리히로 탈출했다.[2] 이들은 CIA 요원들에 의해 안전가옥으로 옮겨져 보호를 받았다.[7] 이후 CIA는 이들을 스위스에서 서독의 람슈타인 공군 기지를 거쳐 미국 델라웨어의 도버 공군 기지로 이송했다.[15]

구출된 6명의 미국 외교관은 다음과 같다.[16]

  • 로버트 G. 앤더스, 54세 – 영사
  • 마크 J. 리예크, 29세 – 영사
  • 코라 A. 리예크, 25세 – 영사 보조
  • 헨리 L. 샤츠, 31세 – 농업 담당관
  • 조셉 D. 스태포드, 29세 – 영사
  • 캐슬린 F. 스태포드, 28세 – 영사 보조


이들의 구출 작전은 라 프레스의 장 펠르티에 기자에 의해 보도되었고,[13] CIA의 역할은 1997년까지 비밀로 유지되었다.[7] 지미 카터 대통령은 모든 외교관이 인질로 잡혀 있다고 주장했지만, 6명의 구출 소식은 미국인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미국은 캐나다와 켄 테일러 대사에게 감사를 표하며, 미국 전역에 캐나다 국기를 게양하고 "감사합니다" 광고를 게재했다.[16]

6. 이후

많은 미국인들이 캐나다의 구출 노력, 특히 켄 테일러 대사의 협력에 대해 감사를 표명했다. 캐나다 국기가 고마움의 표시로 미국 전역에 걸렸고, "고마워요"라는 문구와 함께 미국 전역에 게양되었다.

「캐나다, 고마워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든 미국인


지미 카터 대통령은 모든 외교관이 인질로 잡혀 있다는 전제하에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6명의 구출은 큰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졌다.

켄 테일러 대사, 셔다운 부부, 패트리샤, 제나를 비롯한 대사관 요원 메리 캐서린 오플래허티, 로저 루시, 래버나 돌리모어는 캐나다에서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두 번째로 높은 훈장을 받았다. 제나 셔다운은 가이아나 태생의 영국 신민이었기 때문에 본래 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었으나, 맥도널드 외상의 개입으로 의례적인 형태로 수상 자격을 얻었다.

테일러 대사는 이 작전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의회로부터 의회 명예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장 페르티에, 몬트리올의 「라 프레스」지의 워싱턴 D.C. 특파원이었던 그는 이 책략이 완결되기 전에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 뉴스 가치에도 불구하고 탈출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보도를 거부했다.

다른 언론에서도 부분적으로 이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장 페르티에는 탈출자들이 이란을 떠났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되자마자 기사화했지만, 그 결과, 여전히 대사관에 인질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6명의 존재를 플로리다주의 기지 내에 비밀리에 격리하고, 사실을 은폐하려 했던 미국 정부의 계획이 실행 불가능하게 되었다. 6명의 탈출이 성공하고 영화 《아르고》는 중단되었지만, 남은 인질의 안전을 고려하여 미국과 캐나다 양국 정부는 토니 멘데스 등 CIA가 수행한 역할을 기밀로 했다. 한편, 남은 인질이 전원 석방된 것은 1981년 1월 20일이었다. 그러나 CIA의 관여는 1997년이 되어서야 밝혀졌다.

6. 1. 캐나다에 대한 감사 표시

많은 미국인들이 캐나다의 구출 노력, 특히 켄 테일러 대사의 협력에 대해 감사를 표명했다. 캐나다 국기가 고마움의 표시로 미국 전역에 걸렸고, "고마워요"라는 문구와 함께 미국 전역에 게양되었다. 테일러 대사는 이 작전에 끼친 공헌을 고려하여 의회 명예 황금 훈장을 수여받았다.

공식적으로, 지미 카터 대통령은 모든 외교관이 인질로 잡혀 있다는 전제하에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6명의 구출은 큰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졌다.

6. 2. 관련자 훈장 수여

켄 테일러 대사, 셔다운 부부, 패트리샤, 제나를 비롯한 대사관 요원 메리 캐서린 오플래허티, 로저 루시, 래버나 돌리모어는 캐나다에서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두 번째로 높은 훈장을 받았다. 제나 셔다운은 가이아나 태생의 영국 신민이었기 때문에 본래 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었으나, 맥도널드 외상의 개입으로 의례적인 형태로 수상 자격을 얻었다.

테일러 대사는 이 작전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의회로부터 의회 명예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6. 3. 기밀 유지와 진실 공개

캐나다의 구출 노력, 특히 테일러 대사의 협력은 많은 미국인들이 캐나다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명하게 했다. 캐나다 국기가 고마움의 표시로 미국 전체에 걸렸고, 테일러 대사, 셔다운, 퍼트리샤, 제나는 대사관 요원이었던 메리 캐서린 오플래허티, 로저 루시, 래버나 돌리모어와 함께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두 번째 고위 훈장을 받았다. 제나는 가이아나 태생의 영국 신민이었기 때문에 본래 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었지만, 맥도널드 외상의 개입에 의해 의례적인 형태로 수상 자격을 얻었다. 테일러 대사는 또한 이 작전에 끼친 공헌을 고려하여 의회 명예 황금 훈장을 수여받았다.

장 페르티에, 몬트리올의 「라 프레스」지의 워싱턴 D.C. 특파원이었던 그는 이 책략이 완결되기 전에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 뉴스 가치에도 불구하고 탈출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보도를 거부했다.

다른 언론에서도 부분적으로 이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장 페르티에는 탈출자들이 이란을 떠났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되자마자 기사화했지만, 그 결과, 여전히 대사관에 인질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6명의 존재를 플로리다주의 기지 내에 비밀리에 격리하고, 사실을 은폐하려 했던 미국 정부의 계획이 실행 불가능하게 되었다. 6명의 탈출이 성공하고 영화 《아르고》는 중단되었지만, 남은 인질의 안전을 고려하여 미국과 캐나다 양국 정부는 토니 멘데스 등 CIA가 수행한 역할을 기밀로 했다. 한편, 남은 인질이 전원 석방된 것은 1981년 1월 20일이었다. 그러나 CIA의 관여는 1997년이 되어서야 밝혀졌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모든 외교관이 인질로 잡혀 있다는 전제하에 협상을 진행, 6명의 구출은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졌다.

7. 대중 매체

2012년 해당 작전을 다룬 영화 《아르고》가 공개되었다.[6][19][20]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하여 3개의 오스카상을 수상했다.[23] 영화는 CIA의 역할에 크게 초점을 맞추고, 캐나다의 광범위한 참여와 전략 및 준비에 대한 기여는 최소화하였다.[21]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2013년 인터뷰에서 이를 인정하면서도 영화를 칭찬했다.[21]

영화에서는 6명의 미국 외교관이 영국 및 뉴질랜드 대사관에서 거부당했다고 잘못 묘사하고 있다. 미국 외교관들은 무장 세력이 외교관을 찾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지기 전, 영국 외교 공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관련된 모든 외교관들은 캐나다 대사의 관저가 그들을 보호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데 동의했다.[22]

1981년, 캐나다 케이퍼를 소재로 한 텔레비전 영화 ''이란 탈출: 캐나다 케이퍼(Escape from Iran: The Canadian Caper)''가 제작되었으며, 라몬트 존슨(Lamont Johnson)이 감독하고, 케네스 D. 테일러(Kenneth D. Taylor) 역은 고든 핀센트(Gordon Pinsent)가 맡았다.[17] 이 영화는 토론토와 그 주변에서 촬영되었으며, 미국-캐나다 합작 영화였다.[17] 이 사건에 대한 어린이 그림책은 2013년 에릭 호퍼상(Eric Hoffer Award) 수상자인 로라 스캔디피오(Laura Scandiffio)와 스테판 맥이처른(Stephen MacEachern)이 공동으로 집필하여, ''탈출!''(Escapes!)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18]

역사가 로버트 라이트(Robert Wright)는 그의 저서 ''테헤란의 우리 사람(Our Man in Tehran)''(2010)에서 이 사건들을 다루었다. 2013년에는 같은 제목의 동반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었다.[24] 그리고 인기 있는 영국 다큐드라마 텔레비전 시리즈 ''Banged Up Abroad(Banged Up Abroad)''는 2014년 시즌 9 에피소드 "진짜 아르고"(The Real Argo)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었다.

7. 1. 영화 '아르고'

2012년 해당 작전을 다룬 영화 《아르고》가 공개되었다.[6][19][20]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하여 3개의 오스카상을 수상했다.[23] 영화는 CIA의 역할에 크게 초점을 맞추고, 캐나다의 역할은 축소하였다.[21]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영화를 칭찬하면서도, 캐나다의 역할 축소에 대해 언급했다.[21]

영화에서는 6명의 미국 외교관이 영국 및 뉴질랜드 대사관에서 거부당했다고 묘사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국 외교관들은 영국 외교 공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캐나다 대사의 관저가 더 안전하다고 판단하여 이동했다.[22]

1981년에는 텔레비전 영화 ''이란 탈출: 캐나다 케이퍼(Escape from Iran: The Canadian Caper)''가 제작되었고[17], 2013년에는 에릭 호퍼상(Eric Hoffer Award) 수상 작가인 로라 스캔디피오와 스테판 맥이처른이 이 사건을 다룬 어린이 그림책 ''탈출!''(Escapes!)을 출판했다.[18] 2010년에는 로버트 라이트(Robert Wright)가 ''테헤란의 우리 사람(Our Man in Tehran)''을 저술했으며, 2013년에는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었다.[24] 2014년에는 영국 다큐드라마 텔레비전 시리즈 ''Banged Up Abroad(Banged Up Abroad)'' 시즌 9에서 "진짜 아르고"(The Real Argo) 에피소드를 통해 이 이야기를 다루었다.

7. 2. 기타 매체

1981년, 텔레비전 영화 ''이란 탈출: 캐나다 케이퍼(Escape from Iran: The Canadian Caper)''가 제작되었으며, 라몬트 존슨(Lamont Johnson)이 감독하고, 케네스 D. 테일러(Kenneth D. Taylor) 역은 고든 핀센트(Gordon Pinsent)가 맡았다.[17] 이 영화는 토론토와 그 주변에서 촬영되었으며, 미국-캐나다 합작 영화였다.[17] 2013년 에릭 호퍼상(Eric Hoffer Award) 수상자인 로라 스캔디피오(Laura Scandiffio)와 스테판 맥이처른(Stephen MacEachern)이 공동으로 집필한 어린이 그림책 ''탈출!''(Escapes!)이 출판되었다.[18]

역사가 로버트 라이트(Robert Wright)는 그의 저서 ''테헤란의 우리 사람(Our Man in Tehran)''(2010)에서 이 사건들을 다루었으며, 2013년에는 같은 제목의 동반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었다.[24] 영국 다큐드라마 텔레비전 시리즈 ''Banged Up Abroad(Banged Up Abroad)''는 2014년 시즌 9 에피소드 "진짜 아르고"(The Real Argo)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었다.

참조

[1] 뉴스 Canadian Caper helps Americans escape Tehran http://www.cbc.ca/ar[...] CBC Archives 1980-01-29
[2] 뉴스 Ken Taylor and the Canadian Caper http://international[...] Foreign Affairs, Trade and Development Canada
[3] 뉴스 C.I.A. Discloses Identity of Second Spy Involved in 'Argo' Operation https://www.nytimes.[...] 2023-09-14
[4] 뉴스 Radicals Reborn http://www.time.com/[...] 1999-11-15
[5] 서적 The Reign of the Ayatollahs: Iran and the Islamic Revolution https://archive.org/[...] Basic Books
[6] 뉴스 Our other man in Tehran https://ottawacitize[...] 2013-01-03
[7] 간행물 A Classic Case of Deception: CIA Goes Hollywood https://www.cia.gov/[...] Center for the Study of Intelligence
[8] 뉴스 How the CIA Used a Fake Sci-Fi Flick to Rescue Americans From Tehran https://www.wired.co[...] 2007-04-24
[9] 뉴스 Jack Kirby's Art for the Fake Movie in ''Argo'' Goes Up for Auction https://www.wired.co[...] 2013-07-29
[10] 뉴스 'Argo': John Chambers' friends recall the renowned makeup man https://www.latimes.[...] 2012-10-23
[11] 뉴스 Tony Mendez, clandestine CIA hero of Ben Affleck's 'Argo,' reveals the real story behind film smash http://www.washingto[...] 2012-10-10
[12] 서적 Our Man in Tehran: Ken Taylor, the CIA, and the Iran Hostage Crisis HarperCollins Canada
[13] 뉴스 Canada to the Rescue http://www.time.com/[...] 1980-02-11
[14] 웹사이트 Aviation Photo #0139560: McDonnell Douglas DC-8-62 - Swissair http://www.airliners[...]
[15] 잡지 The Talk of the Town 1980-05-12
[16] 뉴스 Iran rescue: Our bashful heroes https://news.google.[...] 1981-03-28
[17] 뉴스 TV captures heroic Iran escape https://news.google.[...] 1981-05-16
[18] 서적 Escapes! True Stories from the Edge Series https://archive.org/[...] Annick Press
[19] 뉴스 John Sheardown, Canadian Who Sheltered Americans in Tehran, Dies at 88 https://www.nytimes.[...] 2013-01-04
[20] 뉴스 How Accurate Is Argo? http://www.slate.com[...] 2012-10-12
[21] 웹사이트 Jimmy Carter On 'Argo:' 90 Per Cent Of Plan From Canadians (VIDEO) http://news.moviefon[...] News.moviefone.ca 2013-02-22
[22] 웹사이트 Ben Affleck's new film 'Argo' upsets British diplomats who helped Americans in Iran https://www.telegrap[...]
[23] 뉴스 Affleck's ''Argo'' wins best-picture Oscar http://www.sfgate.co[...] 2013-02-24
[24] 웹사이트 Movie review: Our Man in Tehran http://o.canada.com/[...] 201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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