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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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리둔은 원시 이란어 '*Θraitauna-'와 원시 인도 이란어 '*Traitaunas'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조로아스터교 경전과 페르시아 문학 작품에서 중요한 인물로 묘사된다. 아베스타에서는 용 자하크를 물리친 영웅으로, 샤나메에서는 폭군 자하크를 몰아내고 왕국을 세 아들에게 분할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막내 아들 이레지를 가장 총애했지만, 형제들의 질투로 이레지가 살해당하면서 이란-투란 전쟁의 발단을 제공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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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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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 | |
본명 | 페레둔 |
다른 이름 | 아페레둔 (آفریدون) |
로마자 표기 | Afereydun |
페르시아어 | فریدون |
아베스타어 | Traētaona (𐬚𐬭𐬀𐬉𐬙𐬀𐬊𐬥𐬀) |
팔라비어 | Frēdōn (𐭯𐭫𐭩𐭲𐭥𐭭) |
출생지 | 타미샤 |
알려진 업적 | 아지 다하카를 물리침 |
가계 | |
왕조 | 피쉬다디안 왕조의 샤 |
아버지 | 아브틴 |
어머니 | 파라낙 |
배우자 | 아르나바즈 |
자녀 | 살름 |
통치 | |
통치 기간 | 기원전 550년 ~ 기원전 530년 |
2. 어원
위에서 제시된 모든 이름 형태는 규칙적인 음운 변화를 통해 원시 이란어 ''*Θraitauna-'' (아베스타어 ''Θraētaona-'')와 원시 인도 이란어 ''*Traitaunas''에서 유래되었다.
아베스타에서 스레타오나는 아스비야의 아들이며, 따라서 "아스비야 가문 출신"을 의미하는 ''Āθβiyāni''라고 불린다. 그는 용 자하크(''Aži Dahāk'')의 살해자로 기록되었다.[3]
페르도우시의 샤나메에 따르면, 페레이둔은 아브틴의 아들이자 잠시드의 후손이었다. 그는 카베와 함께 폭군 자하크에 반란을 일으켜 그를 물리치고 알보르즈 산맥에서 체포했다. 이후 왕이 된 페레이둔은 아르나바즈와 결혼하여 약 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18][19]
Traitaunas는 증대사 접미사 -una/-auna가 붙은 ''Tritas''의 파생어이며, 이는 베다의 ''Trita''와 아베스타어의 ''Θrita''에 반영된 신 또는 영웅의 이름이다. 두 이름은 "셋째"를 의미하는 형용사와 동일하며, 이는 두 명의 다른 신과 함께 삼위일체를 형성하는 하위 신에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인도의 베다에서 Trita는 천둥의 신과 바람의 신과 연관되어 있다. Trita는 또한 ''Āptya''라고 불리는데, 이는 3세기에 수집된 조로아스터교 경전인 ''Avestā''에서 Thraetaona의 아버지의 이름인 ''Āθβiya''와 어원이 같을 것이다. 따라서 Traitaunas는 "Tritas의 위대한 아들"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이름은 파르티아어에서 고전 아르메니아어로 차용되어 ''Hrudēn''이 되었다.
3. 조로아스터교 문헌
반대로, 중세 페르시아어 텍스트에서는 다하카/다하그가 다마반드 산의 아몰에 갇혔다.
사산 왕조 시대에 분량이 줄어들고 구어화된 민중판 『아베스타』(아베스타그)에 대해, 파흘라비어로 정리하고 재편집된 서적이 성립되었다. 『흠정 아베스타그』[4] 제20권 『치후르다드』에서 '''프레둔'''은 악룡 아지 다하카를 쓰러뜨리고 500년 동안 왕위에 올랐다. 왕좌에서 물러날 때 장남 살름에게 로마, 차남 토즈에게 투르케스탄, 삼남 에리즈에게 에이란 샤흐르를 나누어 주었다. 형들은 가장 풍요로운 에이란 샤흐르가 막내에게 주어지자 에리즈를 시기하여 죽였다. 에리즈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프레둔에게로 도망쳤다. 손녀와 할아버지 사이임에도 두 사람은 관계를 맺어 마누슈치흐르가 태어났다. 이윽고 마누슈치흐르는 큰아버지들을 토벌하고, 그 후 에이란 샤흐르를 500년 넘게 지배했다.[5]
4. 샤나메
4. 1. 자하크와의 대결
페르도우시의 샤나메에 따르면, 페레이둔은 아브틴의 아들이자 잠시드의 후손이었다. 페레이둔은 카베와 함께 폭군 자하크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7][8]
16세에 어머니로부터 자하크에 대한 진실을 듣고 그를 쓰러뜨리기로 결심한다. 18명의 아들 중 17명을 자하크에게 희생당한 대장장이 카베는 페레이둔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고, 그의 앞치마를 깃발로 삼아 봉기했다.[9][10][11][12][13] 페레이둔은 카베에게 암소 빌마야의 머리를 본뜬 소머리 창을 만들게 하여 자신의 무기로 삼았다.[14][15]
페레이둔 일행은 바그다드에서 티그리스강을 건너 예루살렘에 있는 자하크의 성으로 향했다. 페레이둔은 동료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함락했지만, 자하크는 인도로 가 부재중이었다.[16][17] 자하크는 악마와 인간의 혼성군을 이끌고 돌아왔지만, 페레이둔 군대는 그들을 맞이했다. 페레이둔은 궁궐 안에서 자하크와 대면하여 그의 머리를 소머리 창으로 부쉈다. 페레이둔이 자하크를 죽이려 하자 천사 소루쉬가 나타나 그를 막았다. 페레이둔은 자하크를 다마반드 산 근처의 시르한까지 데려가 다시 죽이려 했지만, 또 소루쉬에 의해 저지당했다. 소루쉬의 조언에 따라 페레이둔은 자하크의 손발을 사자 가죽으로 만든 밧줄로 묶어 다마반드 산의 동굴에 유폐하고, 철 말뚝과 쇠사슬로 움직임을 봉쇄했다.[18][19]
4. 2. 세 아들과의 갈등
페레이둔은 말년에 자신의 왕국을 세 아들, 살름, 투르, 이레지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레지는 막내이자 가장 총애받는 아들로서 왕국의 가장 좋은 부분인 이란을 상속받았다.[4] 살름은 아나톨리아 (룸, 로마 제국, 그리스-로마 세계, 또는 "서방")를, 투르는 중앙아시아 (투란, 아무다리야 북쪽과 동쪽, 중국까지의 모든 땅)를 상속받았다.[4]
그러나 이러한 분배는 이레지의 형제들의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비옥한 땅을 막내에게 주자 형들은 이레지를 시기하여 죽였다.[5] 샤나메에 따르면, 장남 살름에게는 룸과 유라시아 대륙 서쪽을, 투르에게는 투란과 중국을, 이라지에게는 이란을 주었으나, 이라지를 시기한 두 형은 이를 불공정하다고 비난했다.[24] 페레이둔은 단호하게 맞서 싸울 것을 표명했지만, 이라지는 형제들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복종을 선택했다. 결국 형들에게 서신을 보냈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이라지를 살해했다.[24]
이레지가 살해된 후, 페레이둔은 이레지의 손자인 마누체르를 왕위에 앉혔다. 이레지의 딸과 남편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자, 페레이둔은 신에게 기도하여 실명했던 눈의 빛을 되찾고 증손에게 마누체르라는 이름을 주었다.[26] 마누체르가 성장하자 살름과 투르는 보신을 위해 화해를 제안했지만, 페레이둔은 그들의 속셈을 간파하고 마누체흐르를 시켜 그들을 쳐부수게 했다.[26] 마누체르의 승리를 지켜본 페레이둔은 왕위를 물려주고, 삼에게 증손의 후견을 명했다. 그 후 페레이둔은 속세에서 물러나 죽은 세 아들의 머리를 앞에 두고 슬퍼하다 생을 마감했다.[26][27]
4. 3. 마누체르와 복수
فریدون|Fereydūnfa은 샤나메에 따르면, 아브틴의 아들이자 잠시드의 후손이었다. 자하크에 대항하여 카베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그를 물리치고 알보르즈 산맥에서 체포하였다. 이후 왕이 된 페레이둔은 아르나바즈를 아내로 맞이하여, 신화에 따르면 약 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18][19]
페레이둔은 말년에 자신의 왕국을 세 아들, 살름, 투르, 이레지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레지는 페레이둔의 막내이자 가장 총애를 받는 아들이었고, 이란을 포함한 왕국의 가장 좋은 부분을 상속받았다. 살름은 아나톨리아 ("룸", 더 일반적으로는 로마 제국, 그리스-로마 세계, 또는 "서방"을 의미)를, 투르는 중앙아시아 ("투란", 아무다리야 북쪽과 동쪽, 중국까지의 모든 땅)를 각각 상속받았다.[24][25]
하지만 이레지의 형제들은 이를 시기하여 이레지를 살해하였다. 이후 페레이둔은 이레지의 손자인 마누체르를 왕위에 앉혔다. 마누체르가 할아버지의 죽음에 복수하려 하면서 이란-투란 전쟁이 시작되었다.[26][27]
참조
[1]
서적
王書 - 古代ペルシャの神話・伝説
[2]
서적
ペルシアの神話 - 光と闇のたたかい
[3]
서적
[4]
서적
[5]
서적
[6]
서적
[7]
서적
第1部 第5章「3 フェリドゥーンの誕生」
[8]
서적
III 邪悪の蛇王 「ファリードゥーンの誕生」
[9]
서적
第1部 第5章「3 フェリドゥーンの誕生」
[10]
서적
III 邪悪の蛇王 「ファリードゥーンの誕生」
[11]
서적
第1部 第5章「4 革命の口火」
[12]
서적
III 邪悪の蛇王 「かじ屋のカーヴェ」
[13]
서적
[14]
서적
第1部 第5章「4 革命の口火」
[15]
서적
III 邪悪の蛇王 「牛頭の矛」
[16]
서적
第1部 第5章「5 フェリドゥーンの出撃」
[17]
서적
III 邪悪の蛇王 「牛頭の矛」
[18]
서적
第1部 第5章「6 鎖につながれた蛇王」
[19]
서적
III 邪悪の蛇王 「ザッハークとの戦い」
[20]
서적
第1部 第6章「1 第六代 新生の王」、「2 三王子の花嫁さがし」、「3 イエメン王の返事」、「4 三王子イエメンへ行く」、「5 イエメン王の魔法」
[21]
서적
IV 善き王ファリードゥーン 「ファリードゥーン王」、「三人の王子」、「イエメン王の婿選び」
[22]
서적
第1部 第6章「6 三王子の試練」、「7 国分け」
[23]
서적
IV 善き王ファリードゥーン 「国分け」
[24]
서적
第1部 第6章「8 長兄サルムの嫉妬」、「9 サルムの挑戦」、「10 フェリドゥーン王の返事」、「11 兄を訪ねる末弟イーラジ」、「12 謀殺」、「13 老王の嘆き」
[25]
서적
IV 善き王ファリードゥーン 「兄弟のいさかい」、「非業の死」
[26]
서적
第1部 第6章 「13 老王の嘆き」、「14 マヌーチェフルの仇討」、「15 フェリドゥーン王の死」
[27]
서적
IV 善き王ファリードゥーン 「イーラジの孫マヌーチェフル」、「復讐」、「老王の悲し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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