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는 1973년 앤 윌슨과 낸시 윌슨 자매를 중심으로 결성된 미국의 록 밴드이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빌보드 차트에서 싱글과 앨범 모두 톱 10에 진입했으며, 3,5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다. 1980년대에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며 "What About Love?", "These Dreams"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고, 2013년에는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16년 활동을 중단했으나, 2019년 재결합하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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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피셔 스티브 포슨 브라이언 존스톤 존 해나 마이클 데로지어 하워드 리스 마크 앤디스 데니 카마시 데니 퐁하이저 페르난도 손더스 마이크 아이네즈 톰 켈록 스콧 올슨 벤 스미스 길비 클라크 크레이그 바톡 다리안 사하나자 데비 샤이어 릭 마크만 크리스티안 아타드 댄 로스차일드 크리스 조이너 댄 워커 앤디 스톨러
2. 역사
1966년, 기타리스트 로저 피셔와 베이시스트 스티브 포센 등이 결성한 "아미(Army)"라는 밴드가 모체이다. 1968년 멤버 교체를 통해 "화이트 하트(White Heart)"로 개명했다. 1971년, 피셔와 포센이 오디션을 통해 앤 윌슨을 발견했고, 앤은 2, 3주만 참여할 생각이었지만, 투어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그대로 합류하여 "호커스 포커스(Hocus Pocus)"로 개명했다. 여기서 앤은 로저의 형인 마이크(호커스 포커스의 멤버이기도 했음)를 만났다. 1972년, "하트(Heart)"로 개명하고 마이크는 밴드 매니저가 되었다. 1973년부터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낸시는 가끔 라이브에 참여했고, 앤과 다른 멤버들에게 밴드에 합류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소설가를 지망했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데뷔 당시
1975년, 낸시 윌슨도 공식적으로 합류하여 윌슨 자매, 피셔, 포센의 4인조로 1976년 데뷔 앨범 『드림보트 애니(Dreamboat Annie)』를 발표했다. 레드 제플린(Red Zeppelin)의 강한 영향을 받은 음악성과 앤의 가창력, 자매 밴드라는 점 등이 주목을 받았고, "매직 맨(Magic Man)" (미국 빌보드 차트 9위), "크레이지 온 유(Crazy on You)" (미국 빌보드 차트 35위) 등의 곡이 히트했다. 이 시기에 앤과 마이크, 낸시와 로저는 연애 관계였다.
1977년에는 1집에도 참여했던 기타리스트/키보디스트 하워드 리스, 드러머 마이클 데로저를 추가하여 2집 앨범 『Little Queen』을 발표했다. 싱글 "바라쿠다(Barracuda)"는 미국 빌보드 차트 11위를 기록했다.
낸시 윌슨 & 로저 피셔(오른쪽) 1978년
1979년, 앤과 마이크, 낸시와 로저 두 커플이 결별하고 피셔가 탈퇴했다. 이 시점부터 윌슨 자매를 중심으로 한 밴드가 되었다.
1982년, 포센과 데로저가 탈퇴하고 베이스에 마크 안데스, 드럼에 데니 카마시(Denny Carmassi)가 합류했다. 이 무렵에는 상업적으로 부진기에 접어들었다.
1985년 발표한 8집 앨범 『Heart』에서는 당시 "서바이버(Survivor)"와 "키스(Kiss)" 등을 담당하며 히트작을 연발했던 론 네비슨을 프로듀서로 영입했다. 처음으로 외부 작곡가의 팝적이고 경쾌한 곡을 수록했고, 이것이 기사회생의 히트작이 되었다. "What About Love?"(미국 빌보드 차트 10위), "Never"(미국 빌보드 차트 4위), "These Dreams"(미국 빌보드 차트 1위), "Nothin' At All"(미국 빌보드 차트 10위) 등 싱글 히트를 연발했고, 앨범도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렇게 1987년 발표한 9집 앨범 『Bad Animals』(프로듀서/론 네비슨)도 미국 빌보드 차트 2위, 1990년 발표한 10집 앨범 『Brigade』도 미국 빌보드 차트 3위를 기록하며 밴드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에는 헤비메탈(Heavy Metal) 운동이 활발했고, 그 흐름을 타서 외모와 음악 스타일도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것으로 변화했다. 자매는 밴드 활동 휴지기였던 1990년대 후반 인터뷰에서 "론의 프로듀싱은 철저하게 팔리는 음악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철저하게 팔리는 음악 제작이 대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었다.
1993년 11집 앨범 『Desire Walks On』을 발표했지만, 당시 유행하던 그런지(Grunge) 붐에 밀려 밴드의 인기는 급격히 하락했다. 여기서 베이스의 마크는 참여하지 않았고, 1992~1993년에 탈퇴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부터 앤과 낸시는 "러브 몽거스(Lovemongers)"를 비롯한 밴드 외 프로젝트 활동과 솔로 활동을 중시하고, 사운드도 원점으로 돌아가는 어쿠스틱 라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데니는 데이비드 커버데일(David Coverdale)(보컬/ex: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과 지미 페이지(기타/ex: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프로젝트인 커버데일/페이지(Coverdale/Page)에 참여했다. 이어 커버데일이 재결성한 화이트스네이크에도 참여했다. 이렇게 1994년경 탈퇴했다.
1995년 MTV의 간판 프로그램 "언플러그드(MTV Unplugged)"에 출연하여 스트링스(Strings)를 배경으로 어쿠스틱 넘버를 선보였다. 이 모습은 나중에 라이브 작품 『The Road Home』에 수록되었다. 이 라이브에는 전 레드 제플린의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를 베이스로 맞이했다.
앤 윌슨 & 낸시 윌슨 (1998년)
1999년, 낸시 윌슨은 솔로로 "LIVE AT MCCABE'S GUITAR SHOP"을 발표했다.
2000년-2001년, 낸시는 당시 남편이었던 영화 감독 캐머런 크로우(Cameron Crowe)의 『어쩌면 사랑일지도 몰라(Almost Famous)』(2000년), 『바닐라 스카이(Vanilla Sky)』(2001년) 사운드트랙에 곡을 제공했다.
2002년, 하트(Heart)로서 밴드 멤버도 교체하고 오랜만에 여름 투어를 진행했다. 마지막 날에는 고향 시애틀에서 라이브 공연을 펼쳤고, 라이브 작품 『Alive in Seattle』로 발매했다. 이 투어에는 데뷔 초부터 밴드를 지원해 온 하워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2004년, 11년 만의 오리지널 12집 앨범 『Jupiter's Darling』을 발표[133]. 이 녹음에도 하워드는 참여하지 않았고 탈퇴가 확정되었다. 이렇게 밴드는 사실상 자매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하워드는 2008년경부터 배드 컴퍼니(Bad Company)의 지원 멤버로 투어에 참여했고, 2010년에는 일본에도 방문했다.
90년대 이후 장기 투어는 피하고 단발적인 라이브 활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유방암과 아프리카의 에이즈 빈곤 문제 등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05년, 캐머런 크로우(Cameron Crowe) 감독의 영화 『엘리자베스타운(Elizabethtown)』 사운드트랙에 낸시의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를 제공했다.
2006년, TV 프로그램 "DECADES ROCK LIVE"에서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 데이브 나바로(Dave Navarro), 캐리 언더우드(Carrie Underwood), 그레첸 윌슨(Gretchen Wilson), 더프 매케이건(Duff McKagan)(베이스/ex: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 현
2. 1. 1967년–1972년: 초기 밴드와 결성
1967년, 베이시스트 스티브 포센과 기타리스트 로저 피셔가 주축이 되어 결성된 더 아미(The Army)는 워싱턴주 보텔 지역에서 수년간 활동했다.[10][11] 1969년, 밴드는 멤버 교체를 거쳐 호커스 포커스(Hocus Pocus)로 이름을 바꾸었다.[10] 이후, 아서 C. 클라크의 ''화이트 하트 이야기''에서 밴드명을 착안, 화이트 하트(White Heart)로 다시 개명했다.[10] 1970년에는 밴드명을 하트(Heart)로 변경했다.[2] 1971년, 앤 윌슨이 보컬로 합류하면서 밴드의 핵심 멤버가 구성되었다.[2]
화이트 하트/하트 홍보 사진 (1970); 왼쪽부터: 게리 지겔만, 론 러지, 켄 핸슨, 로저 피셔, 스티브 포센, 제임스 시렐로
1972년, 앤 윌슨은 미국의 징병을 피해 캐나다로 도피한 로저 피셔의 형 마이크 피셔와 사랑에 빠져 그를 따라 캐나다로 이주했다.[12][14] 앤 윌슨은 그곳에서 마이크 피셔를 만나 그와 사랑에 빠졌고,[12] 그를 따라 캐나다로 갔다.[12]
2. 2. 1973년–1976년: 밴드 재편성과 데뷔
1966년, 기타리스트 로저 피셔와 베이시스트 스티브 포센 등이 결성한 "아미(Army)"라는 밴드가 하트의 모체이다. 1968년 멤버 교체를 통해 "화이트 하트(White Heart)"로 개명했다. 1971년, 피셔와 포센이 오디션을 통해 앤 윌슨을 발견했고, 앤은 2, 3주만 참여할 생각이었지만, 투어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그대로 합류하여 "호커스 포커스(Hocus Pocus)"로 개명했다. 여기서 앤은 로저의 형인 마이크(호커스 포커스의 멤버이기도 했음)를 만났다. 1972년, "하트(Heart)"로 개명하고 마이크는 밴드 매니저가 되었다. 1973년부터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17]
1973년, 앤 윌슨을 중심으로 존 한나(키보드), 브라이언 존스톤(드럼)과 함께 하트 밴드가 공식적으로 결성되었다. 이후 낸시는 가끔 라이브에 참여했고, 앤과 다른 멤버들에게 밴드에 합류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소설가를 지망했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1974년, 낸시 윌슨이 합류하여 윌슨 자매를 중심으로 밴드가 재편성되었다.
밴드는 새로운 거처인 밴쿠버에서 수많은 공연을 펼쳤고, 프로듀서 마이크 플리커와 세션 기타리스트 겸 키보디스트 하워드 리스의 도움을 받아 데모 테이프를 녹음했다.[17] 이때 이미 한나와 존스톤은 떠났고, 얼마 후 리스는 정식 멤버가 되었다. 플리커는 밴드의 첫 다섯 개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다.[18] 이 팀은 밴쿠버의 캔-베이스 스튜디오(후에 머쉬룸 스튜디오로 알려짐)에서 데뷔 앨범인 ''드림보트 애니''를 녹음했다. 마이크 데로시어는 결국 하트의 정식 드러머로 합류했다.[19]
1975년, 머쉬룸 레코드를 통해 데뷔 앨범 《드림보트 애니(Dreamboat Annie)》를 발표했다.[9][22] 이 앨범은 시겔에 의해 배급되었고, 발매 후 처음 몇 달 안에 캐나다에서 3만 장이 판매되었다.[22] 판매량 증가에는 10월 몬트리올 포럼에서 열린 로드 스튜어트 콘서트의 오프닝 무대를 맡은 것이 기여했다. 이 공연은 원래 예정되었던 오프닝 팀이 취소되기 하루 전에 하트에게 제안되었다.[23] "매직 맨(Magic Man)"의 라디오 성공 덕분에 콘서트 주최측은 하트에게 이 자리를 제공했다. 밴드는 공연을 위해 캐나다 서해안에서 몬트리올로 밤새도록 비행했다.[23] 시겔은 곧 미국에서도 이 앨범을 발매했다. 레드 제플린(Red Zeppelin)의 강한 영향을 받은 음악성과 앤의 가창력, 자매 밴드라는 점 등이 주목을 받았고, 1976년 두 개의 히트 싱글("크레이지 온 유(Crazy on You)영어"과 "매직 맨(Magic Man)영어"은 각각 빌보드 핫 100에서 35위와 9위에 올랐다)의 도움으로 빌보드 200에서 7위에 올랐다.[24] 결국 1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9] 특히, "크레이지 온 유"는 대한민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시기에 앤과 마이크, 낸시와 로저는 연애 관계였다.
2. 3. 1977년–1979년: 전성기와 멤버 변화
1977년, 하트는 포트레이트 레코드에서 두 번째 앨범 《리틀 퀸》을 발매했다. 이 앨범에는 히트곡 〈Barracuda〉(11위)[29]가 수록되어 있다.[9] 이 노래의 가사는 한 기자가 윌슨 자매가 레즈비언 연인이라고 시사한 후, 분노한 앤 윌슨이 호텔 방에서 쓴 것이다.[26]1977년 홍보 사진 속 하트 멤버들 같은 해, 머쉬룸 레코드는 윌슨 자매의 어깨가 드러난 사진을 사용하며 "처음이었을 뿐이에요!"라는 선정적인 문구를 담은 전면 광고를 게재했다.[19] 윌슨 자매는 ''롤링 스톤''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광고가 머쉬룸 레코드를 떠나게 된 주요 이유라고 밝혔다.[25]
머쉬룸 레코드와의 계약 문제로 인해, 부분적으로 완성된 앨범 《Magazine》이 1977년 초에 발매되었다.[9] 하트 측은 이 앨범을 미완성이라고 주장하며 판매 중지를 요청했고, 법원은 머쉬룸 레코드에 앨범 회수를 명령했다. 이후 하트는 트랙을 리믹스하고 새로운 보컬을 추가하여 1978년에 《Magazine》을 재발매했다.[16] 이 앨범은 미국에서 17위에 올랐고, 싱글 〈하트리스〉는 차트 24위를 기록했다.[27]
1978년에는 앨범 《Dog and Butterfly》가 발매되어 ''빌보드'' 200에서 17위에 올랐고,[16] 타이틀곡 〈독 앤 버터플라이〉(34위)와 〈스트레이트 온〉(15위)이 히트했다. 1979년, 윌슨 자매와 피셔 형제의 연애 관계가 끝나면서[9] 로저 피셔는 밴드에서 탈퇴했다.[16]
2. 4. 1980년–1984년: 상업적 침체기
하트는 1980년에 《비비 르 스트레인지(Bebe le Strange)》를 발매했다.[9] 이 앨범은 밴드의 세 번째 상위 10위권 앨범이 되어 5위까지 올랐고, 상위 40위권 히트곡 "이븐 잇 업(Even It Up)"을 배출했다.[30] 밴드는 이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77개 도시를 도는 투어를 시작했다.[46] 연말까지 밴드는 당시 가장 높은 차트 순위를 기록한 싱글, 발라드 "텔 잇 라이크 잇 이즈" 버전을 발표했고, 이 곡은 8위까지 올랐다.[38] 1980년 11월, 더블 앨범 《그레이티스트 히츠/라이브》가 발매되어 미국 차트 12위에 올랐고,[31] 결국 더블 플래티넘을 달성했다. 2장짜리 앨범에는 그때까지 하트의 싱글 대부분의 스튜디오 버전과 몇몇 새로운 스튜디오 트랙, 그리고 "언체인드 멜로디(Unchained Melody)", 레드 제플린의 "록 앤 롤", 비틀즈의 "아임 다운(I'm Down)" 버전 등 6개의 라이브 트랙이 포함되어 있었다.[32]
1982년, 포센과 데로지어가 밴드를 탈퇴하고, 그 자리를 마크 안데스(Mark Andes)와 데니 카마시(Denny Carmassi)가 대신하여 《프라이빗 오디션(Private Audition)》을 발매했다.[36] 이 앨범은 밴드가 처음으로 마이크 플리커가 프로듀싱하지 않은 앨범이었으며, 소규모 히트곡 "디스 맨 이즈 마인(This Man Is Mine)" (33위)을 배출했다.[34] 처음에 밴드는 지미 아이오바인(Jimmy Iovine)에게 프로듀싱을 의뢰했지만, 그가 곡들의 히트 가능성이 부족하다고 제안하여 윌슨 자매가 직접 앨범을 제작했다.[34] "퍼펙트 스트레인저" 트랙은 1980년대 중반 밴드 사운드를 지배하게 될 파워 발라드를 예고했다.[35]
1983년에 발매된 《패션웍스(Passionworks)》에서는 레코드 회사의 주장에 따라 키스 올슨(Keith Olsen)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36] 《프라이빗 오디션》과 《패션웍스》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골드 등급을 달성하지 못했지만,[16] "하우 캔 아이 리퓨즈?(How Can I Refuse)" 싱글은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38]
앤 윌슨 (2022년)
낸시 윌슨 (2010년)
2. 5. 1985년–1990년: 재기와 두 번째 전성기
하트는 캐피톨 레코드(Capitol Records)로 이적, 1985년에 앨범 ''Heart''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글램 메탈 스타일로의 변화를 보여주며, 500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고 4개의 톱 10 히트곡을 배출했다.[9][37] "왓 어바웃 러브(What About Love)" (10위, 1985), "네버" (4위, 1985), "디스 드림스(These Dreams)" (1위, 1986), "낫씽 앳 올" (10위, 1986)이 그것이다.[38] 특히, "These Dreams"는 대한민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다섯 번째 싱글 "이프 룩스 쿨드 킬"도 차트에 진입하며, 밴드는 처음으로 한 앨범에서 5개의 히트 싱글을 기록했다.[38]
1987년, 하트는 ''배드 애니멀스(Bad Animals)''를 발매하며 아레나 록 사운드로의 변화를 이어갔다.[39] 리드 싱글 "Alone"은 빌보드 핫 100에서 3주 동안 1위를 차지하며 밴드의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고,[40] 대한민국에서도 팝송 명곡으로 꼽히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후 윌 유 런 투(Who Will You Run To)" (7위)와 "데어스 더 걸(There's the Girl)" (12위)도 히트했다.[41] ''배드 애니멀스(Bad Animals)''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3, 4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고,[42][43] 영국 앨범 차트에서 톱 10에 진입한 첫 앨범이 되었다.[44] ''배드 애니멀스''의 성공으로 인해 1985년 앨범의 싱글들이 영국에서 재발매되어 "네버"/"디스 드림스" 더블 A면 싱글은 8위, "왓 어바웃 러브"는 14위에 오르는 등 새로운 관심을 받았다.[45]
1990년, ''Brigade''는 밴드의 여섯 번째 멀티 플래티넘 앨범이 되었고,[46] "스트랜디드" (13위), "아이 디든트 원트 투 니드 유(I Didn't Want to Need You)" (23위) 등의 히트곡을 추가했다. 리드 싱글 "올 아이 원나 두 이즈 메이크 러브 투 유(All I Wanna Do Is Make Love to You)"는 2위에 올랐으나,[6] 히치하이커를 태우는 여성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논란을 일으켰다.[47] "와일드 차일드" (3위)와 "톨, 다크 핸섬 스트레인저(Tall, Dark Handsome Stranger)" (24위)는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 차트에서 히트했다.[48] ''Brigade''는 영국에서 3위를 기록하며 밴드의 최고 차트 앨범이 되었다.[44]
2. 6. 1991년–2001년: 변화와 실험
1991년 가을, 하트는 첫 라이브 앨범인 《Rock the House Live!》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밴드의 하드 록적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히트곡보다는 《Brigade》 앨범의 수록곡들을 주로 담았다.[49]존 파넘의 "You're the Voice" 커버 버전은 싱글로 발매되어 메인스트림 록 차트에서 20위에 올랐다.[50]
1993년, 하트는 베이시스트 앤디스를 페르난도 손더스로 교체하고 《Desire Walks On》을 발표했다.[9] 이 앨범은 빌보드 200에서 48위에 올랐고, 골드 인증을 받았다. 타이틀곡 "Black on Black II"는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 차트에서 4위에 올랐고,[53] 싱글 "Will You Be There (In the Morning)"은 빌보드 핫 100에서 39위를 기록했다.[53] "The Woman In Me"는 컨템포러리 어덜트 차트에서 24위에 올랐지만, 핫 100에는 진입하지 못했다.[53] 특히, "Will You Be There (In the Morning)"은 영국에서 19위, 캐나다에서 8위를 기록하며 미국보다 다른 국가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54][45]
이 시기에 윌슨 자매는 오랜 작곡 파트너인 Sue Ennis, 프랭크 콕스와 함께 러브몽거스(The Lovemongers)라는 어쿠스틱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했다.[51][52] 러브몽거스는 1992년 라이브 EP 《Battle of Evermore》, 1997년 정규 앨범 《Whirlygig》, 1998년 크리스마스 노래 모음집 《Here is Christmas》를 발매했다.[52] 2001년 《Here Is Christmas》는 하트가 제작한 《Heart Presents a Lovemongers' Christmas》로 재발매되었다.[59]
1994년에는 5시간 분량의 오디오 영상이 담긴 대화형 CD-ROM인 《Heart: 20 Years of Rock & Roll》이 발매되었다.[56] 1995년, 하트는 레드 제플린의 존 폴 존스가 프로듀싱한 라이브 어쿠스틱 앨범 《The Road Home》을 발매했다.[9]
1995년 낸시 윌슨은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음악 활동을 중단했다.[57][58] 1998년 밴드는 VH1의 《Behind the Music》 에피소드에 소개되었고, 초기 작품들을 담은 《그레이티스트 히츠》 박스 세트를 발매했다.[9]
2. 7. 2002년–2016년: 재결성과 활동 지속
2002년, 앤과 낸시는 스콧 올슨, 벤 스미스, 앨리스 인 체인스의 베이시스트 마이크 이네즈, 그리고 키보디스트 톰 켈록을 포함한 새로운 라인업으로 활동을 재개했다.[60] 2003년, 하트는 투어 마지막 공연을 담은 DVD ''앨라이브 인 시애틀''을 발매했다.[61]
2004년, 하트는 1993년 이후 첫 스튜디오 앨범인 ''주피터스 달링''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하트의 초기 하드록 사운드로의 복귀와 함께, 빈티지 팝과 새로운 질감이 조화된 다양한 노래들을 담고 있다.[63]
2005년, 윌슨 자매는 CMT 뮤직 어워드에 컨트리 가수 그레첸 윌슨과 함께 출연하여 "Crazy on You"를 공연했다. 2006년 3월, 하트는 VH-1의 특집 프로그램 "데케이즈 록 라이브!"에서 앨리스 인 체인스, 필 앤셀모, 데이브 나바로, 루퍼스 웨인라이트, 캐리 언더우드 등과 함께 공연했다.[65] 이 콘서트는 2019년 ''라이브 인 애틀랜틱 시티''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66]
2007년 낸시 윌슨(록 가수)과 앤 윌슨
2007년, 하트는 VH1 록 명예의 전당에서 수상했으며, 그레첸 윌슨과 앨리스 인 체인스는 "바라쿠다(Barracuda)"를 공연하며 하트에게 경의를 표했다.[70] 2007년 9월, 앤 윌슨은 첫 솔로 앨범 ''희망과 영광(Hope & Glory)''을 발매했다.[69]
2008년, 하트는 스테이시 "퍼기" 퍼거슨(퍼기(Fergie))과 함께 ''아이돌 기브스 백(Idol Gives Back)''에 출연했다.[71] 2008년 중반, 하트는 저니(Journey)와 칩 트릭(Cheap Trick)과 함께 미국 투어를 진행했다.[72]
2012년 비컨 극장(뉴욕시)에서 공연하는 하트[76]
2010년, 새로운 스튜디오 앨범 ''레드 벨벳 카(Red Velvet Car)''가 발매되었다.[9] 이 앨범은 초기 앨범들의 멜로딕 하드록과 포크 사운드로의 스타일 회귀를 보여주었다.[77] ''빌보드'' 200에서 10위에 오르며,[78] 20년 만에 그룹의 첫 톱 10 앨범이 되었다.[78][79]
2012년 6월, ''스트레인지 유포리아(Strange Euphoria)''라는 박스 세트가 발매되었다. 2012년 9월 18일, 윌슨 자매는 자서전 ''킥킹 앤 드리밍: 어 스토리 오브 하트, 소울, 앤 록 앤 롤(Kicking and Dreaming: A Story of Heart, Soul, and Rock and Roll)''을 출간했다.[84] 2012년 9월 25일, 앤과 낸시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별을 받았다.[85]
밴드는 14번째 스튜디오 앨범 ''파나틱 (하트 앨범)(Fanatic)''을 2012년 10월 2일에 발매했고,[86] 이 앨범은 그룹의 12번째 톱 25 앨범이 되었다.[87] 2012년 12월, 앤과 낸시는 케네디 센터 명예상(Kennedy Center Honors)에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을 기리는 공연을 했다.[88]
2013년 4월 18일, 록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하트의 원년 멤버들이 재결합하여 "Crazy on You"를 연주했다.[92][93] 밴드는 크리스 코넬에 의해 헌액되었다.[94]
2016년, 하트는 앨범 ''뷰티풀 브로큰''을 발매했다. 메탈리카의 제임스 헷필드가 앤 윌슨과 함께 보컬을 주고받는 타이틀곡이 첫 번째 싱글이었다.[96]
2. 8. 2016년–현재: 활동 중단과 재결합
2016년 8월 27일, 앤 윌슨의 남편 딘 웨터가 낸시 윌슨의 16세 쌍둥이 아들들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99][100] 이 사건은 전날 워싱턴주 오번의 화이트 리버 암피시어터에서 열린 하트 공연 중에 발생했다.[99][100] 밴드는 남은 2016년 투어 일정을 소화했지만, 윌슨 자매는 투어 기간 동안 제3자를 통해서만 서로 연락했다.[101] 이 사건으로 인해 밴드는 활동을 중단했고, 2017년 4월 ''롤링 스톤'' 기사에 따르면, 2016년 투어가 끝난 이후 자매는 서로 대화하지 않고 문자 메시지로만 산발적으로 연락했다.[101] 2016년 10월 투어 종료 후, 자매들은 각자의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와 함께 투어를 진행했다.[101] 2017년 4월, 두 자매는 밴드가 영구적으로 해산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활동 중단 상태라고 밝혔다.[101]
2019년 2월, 하트는 활동 중단을 종료하고 여름에 러브 얼라이브(Love Alive) 투어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5] 3월에는 밴드가 활동 중단에 들어간 이후 처음으로 러브 록 NYC 자선 콘서트에서 무대에 함께 올랐다.[102] 앤과 낸시가 재결합했지만, 이전 하트 멤버들은 초대받지 못했고, 새로운 라인업은 앤의 투어 밴드로 구성되었다.[102] 2019년 6월, 밴드는 러브 얼라이브 투어가 10월까지 연장되었다고 발표했다.[103]
2022년, 낸시 윌슨은 "낸시 윌슨의 하트"라는 자신의 하트 버전을 발표하고,[104] 그 이름으로 투어를 하며 주로 하트의 노래들을 연주했다.[105]
2023년 12월 말, 하트는 4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 공연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두 차례 콘서트를 한 후 시애틀에서 새해 전야 콘서트를 열었고, 앤 윌슨의 밴드 트립시터가 백업 뮤지션으로 참여했다.[106][107] 2024년 1월 1일, 시애틀에서 열린 2024 NHL 윈터 클래식 첫 번째 인터미션 동안 "바라쿠다"와 "매직 맨"을 연주했다.[107][108][109]
2024년 1월 29일, 하트는 2024 로열 플러시 월드 투어를 발표했는데, 이 투어에서 치프 트릭, 데프 레퍼드, 저니, 스퀴즈와 함께 여러 공연을 할 예정이다.[110] 2024년 여름 영국과 유럽 공연은 5월 말 앤 윌슨이 악성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취소되었다.[111][112]
3. 음악 스타일 및 특징
하트는 하드 록 밴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포크, 팝, 하드 록, 때로는 헤비 메탈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113] 빌보드의 핫 100, 메인스트림 록 트랙, 하드 록 트랙 및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 싱글 차트를 기록했으며,[114] 2016년 로열 알버트 홀에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라이브 앨범은 빌보드 클래식 앨범 차트와 클래식 크로스오버 앨범 차트에서 상위 10위권에 진입했다.[114]
전 세계적으로 3,500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하고, 20개의 톱 40 싱글과 7개의 톱 10 앨범을 보유했으며,[115] 4개의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116]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10년대에 빌보드 차트에서 싱글과 톱 10 앨범을 기록하여,[38] 여성 보컬 밴드로서 40년에 걸친 톱 10 앨범 기록을 세웠다.[117]
VH1의 "하드 록 최고의 아티스트 100인"에 선정되었고,[118] 앤 윌슨과 낸시 윌슨 자매는 1999년 VH1의 "록 앤 롤 최고의 여성 100인"에서 40위를 차지했다.[119] 앤 윌슨은 2006년 히트 파레이더의 "역대 최고의 헤비 메탈 보컬리스트"에 선정되었다.[120] 2009년, 윌슨 자매는 작곡 경력을 인정받아 ASCAP의 창립자상을 수상했다.[121]
2011년, 하트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첫 후보에 올랐고, 2013년에 헌액되었다.[122][123] 명예의 전당 페이지에서는 윌슨 자매를 하드 록 밴드를 이끈 최초의 여성으로, "선구자… 여성들에게 전기 기타를 들거나 밴드를 시작하도록 영감을 준"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115] 제이크 브라운은 하트를 "음악계 여성들을 위한 혁명… 장르의 벽을 허물고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고 평가했다.[124]
"여성 로버트 플랜트"라고 불리는 앤 윌슨의 에너지 넘치는 보컬과 낸시 윌슨의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기타 연주는 하트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낸시 윌슨은 엘튼 존의 공동 작곡가인 버니 톱핀이 작사한 "These Dreams" 등을 불러 히트시키기도 했다. 하트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전반까지는 어쿠스틱 요소가 있는 하드록을, 1980년대 후반에는 멜로디가 강조된 상업적인 음악을 선보였으며, 2002년 이후에는 초기 음악성으로 회귀하여 그런지 요소를 더하기도 했다. 윌슨 자매는 시애틀 음악계에서 활동하며 닐 영, R.E.M., 펄 잼, 사운드가든, 앨리스 인 체인스 등 많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126]
미국 샌디에이고 공연 (2010년 12월)
3. 1. 대한민국과의 관계
4. 구성원
하트는 1973년 앤 윌슨과 낸시 윌슨 자매를 중심으로 결성된 미국의 록 밴드이다. 2023년부터 앤 윌슨, 낸시 윌슨, 라이언 워터스, 라이언 와리너, 폴 모크, 토니 루시도, 션 티 레인이 현재 구성원으로 활동 중이다.
'''앤 윌슨''' – 리드 및 백킹 보컬, 플루트, 오토하프,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마라카스 (1972년–1998년, 2002년–2016년, 2019년-현재)
'''낸시 윌슨''' – 리듬, 리드 및 어쿠스틱 기타, 백킹 및 리드 보컬, 하모니카, 만돌린, 키보드 (1974년–1995년, 2002년–2016년, 2019년-현재)
1976년에는 《드림보트 애니》를 발매하여 미국 빌보드 7위, 영국 36위를 기록했다. 1977년에 발매한 《리틀 퀸》은 미국 빌보드 9위, 영국 34위를 기록했다. 《매거진》은 1978년에 발매되어 미국 빌보드 17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발매된 《독 앤드 버터플라이》는 미국 빌보드 17위를 기록했다. 1980년에는 《베베 르 스트레인지》를 발매하여 미국 빌보드 5위를 기록했다.
1982년 발매된 《프라이빗 오디션》은 미국 빌보드 25위, 영국 77위를 기록했고, 1983년 발매된 《패션웍스》는 미국 빌보드 39위를 기록했다. 1985년에 발매한 《하트》는 미국 빌보드 1위, 영국 19위를 기록했고, 1987년 발매된 《배드 애니멀스》는 미국 빌보드 2위, 영국 7위를 기록했다. 1990년에는 《브리게이드》를 발매하여 미국 빌보드 3위, 영국 3위를 기록했다.
1993년 발매된 《디자이어 워크스 온》은 미국 빌보드 48위, 영국 32위를 기록했다. 2004년에는 《주피터스 달링》을 발매하여 미국 빌보드 94위를 기록했다. 2010년 발매된 《레드 벨벳 카》는 미국 빌보드 10위를 기록했고, 2012년 발매된 《패내틱》은 미국 빌보드 24위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뷰티풀 브로큰》을 발매하여 미국 빌보드 105위를 기록했다.
1976년에는 《드림보트 애니(Dreamboat Annie)》를 발매하여 미국 빌보드 7위, 영국 36위를 기록했다. 1977년에 발매한 《리틀 퀸(Little Queen)》은 미국 빌보드 9위, 영국 34위를 기록했다. 《매거진(Magazine)》은 1978년에 발매되어 미국 빌보드 17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발매된 《독 앤드 버터플라이(Dog & Butterfly)》는 미국 빌보드 17위를 기록했다. 1980년에는 《베베 르 스트레인지(Bebe Le Strange)》를 발매하여 미국 빌보드 5위를 기록했다.
1982년 발매된 《프라이빗 오디션》(Private Audition)은 미국 빌보드 25위, 영국 77위를 기록했고, 1983년 발매된 《패션웍스》(Passionworks)는 미국 빌보드 39위를 기록했다. 1985년에 발매한 《하트(Heart)》는 미국 빌보드 1위, 영국 19위를 기록했고, 1987년 발매된 《배드 애니멀스(Bad Animals)》는 미국 빌보드 2위, 영국 7위를 기록했다. 1990년에는 《브리게이드(Brigade)》를 발매하여 미국 빌보드 3위, 영국 3위를 기록했다.
1993년 발매된 《디자이어 워크스 온(Desire Walks On)》은 미국 빌보드 48위, 영국 32위를 기록했다. 2004년에는 《주피터스 달링(Jupiter's Darling)》을 발매하여 미국 빌보드 94위를 기록했다. 2010년 발매된 《레드 벨벳 카(Red Velvet Car)》는 미국 빌보드 10위를 기록했고, 2012년 발매된 《패내틱(Fanatic)》은 미국 빌보드 24위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뷰티풀 브로큰(Beautiful Broken)을 발매하여 미국 빌보드 105위를 기록했다.
6. 수상 및 명예
하트는 1986년에 앨범 ''하트''(Heart)로 최우수 보컬 듀오/그룹 록 연주상 후보에 올랐다. 1988년에는 "어론"(Alone)으로 최우수 보컬 듀오/그룹 팝 연주상, ''배드 애니멀스''(Bad Animals)로 최우수 보컬 듀오/그룹 록 연주상 후보에 올랐다. 1991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건 너와 사랑을 나누는 것뿐이야"(All I Wanna Do Is Make Love To You)로 최우수 보컬 듀오/그룹 팝 연주상 후보에 올랐다. 2023년에는 앤 윌슨과 낸시 윌슨이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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