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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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혜암은 1911년 태어나 2011년 입적한 대한민국의 승려이다. 12세에 출가하여 15세에 득도하였고, 101세에 입적하기 전까지 수행과 가르침을 펼쳤다. 그는 성월 스님과의 만남을 통해 참선 공부를 시작하여 대선지식으로 성장했으며, 참선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불교와 기독교의 동일성을 설파했다. 또한 혜암은 검소한 삶을 통해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종을 울렸으며, 다양한 법문을 통해 깨달음의 길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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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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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법명 | 혜암(惠菴) |
속명 | 미상 |
출생일 | 1885년 |
입적일 | 1985년 |
2. 생애
혜암은 3대 독자로 태어나 11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2세에 출가하여 15세에 득도하였다. 17세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방황하였다. 이후 수원 근교 광덕사에서 땡초왕을 만났고, 통도사 보광선원에서 조실 성월 스님으로 있던 그를 다시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성월 스님의 권유로 참선 공부를 시작하여 대선지식이 되었다.
101세에 입적하기 직전까지 눈푸른 납자에게는 서릿발 같은 호령으로 마음 문을 열어주고, 재가불자들에게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참선 수행의 길로 이끌어 주었다. 100세 때 미국 교포 신자들의 초청으로 도미하여 약 3개월 여 포교여행을 하였고, 언론사와의 대담을 통해 "훈풍 불 때 떠나리라" 하신 말씀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듬해 5월 열반에 들었다.
2. 1. 출가와 방황
혜암은 3대 독자로 태어나 11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2세에 출가하여 15세에 득도하였다. 그러나 속가의 어머니와 함께 한동안 절에서 살다가 17세에 모친마저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방황하였다.2. 2. 성월 스님과의 만남
혜암은 수원 근교 광덕사에서 땡초왕을 만났고, 이후 통도사 보광선원에서 조실 성월 스님으로 있던 그를 다시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성월 스님의 권유로 참선 공부를 시작하여 혜암은 대선지식이 되었다.2. 3. 수행과 열반
근대 한국불교계의 최고령인 101세에 입적하기 직전까지 눈푸른 납자에게는 서릿발 같은 호령으로 마음 문을 열어주고, 재가불자들에게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참선 수행의 길로 이끌어 주었던 혜암 스님은 대선지식으로 추앙받았다.100세 때 미국 교포 신자들의 초청으로 도미하여 약 3개월 여 포교여행을 하였고, 언론사와의 대담을 통해 훈풍 불 때 떠나리라 하신 말씀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듬해 5월 열반에 들었다. 그 불가사의한 도인의 삶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3. 가르침
혜암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꾸준히 참선 수행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숯을 굽는 것과 같이 평범한 일을 하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모든 중생은 신령스럽게 비치는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각자가 본래 갖추고 있는 참된 모습이라고 하였다.
석가세존의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예수의 "나를 따르면 천국이 너의 것이다"라는 말은 모두 각자의 '나'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불교와 기독교의 가르침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종교 간의 차이는 겉모습일 뿐이며 참된 진리는 하나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부드러운 옷과 맛있는 음식을 수용하면 마땅히 은혜가 무거워 공부해 나가는 데 손해가 됨이요, 떨어진 옷과 나물로 만든 밥은 반드시 시주 은혜가 가벼워 은덕을 쌓는다"라는 좌우명을 실천하며 검소하게 살았다.
혜암은 불상에 예배할 때 다음 세 가지를 강조했다.
- 첫째, 불상은 각자의 마음에서 나타난 그림자이므로, 불상이 곧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곧 불상이다.
- 둘째, 겉으로 드러난 형상인 등상불(等像佛)에게만 공경심을 내지 말고, 자기 마음에다 예배해야 한다.
- 셋째, 참선 수행자가 화두를 들 때 일어나는 의심하는 마음, 즉 의정(疑情) 속에서 예배하면 그것이 곧 마음에다 예배하는 것이다.
3. 1. 참선 수행
혜암은 참선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재가불자들에게도 참선 수행의 길을 제시하였다. "숯을 굽다가도 활연대오해야 한다"며, 일상생활 속에서의 꾸준한 수행을 강조하였다. 사람들은 공부를 한다고 시끄러운 곳을 피하고 조용한 곳을 찾지만 그것은 죽은 공부이며,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자기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공부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소를 잡다가도, 숯을 굽다가도 활연대오를 했다고 전해지며, 속인 중에서도 공부가 많이 된 분들이 많다고 하였다.3. 2. 참된 자아
일체 중생은 태어나고 죽을 때 육체만을 보고 생사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생(生)과 사(死)는 본래 없는 것이다. 개개인이 가진 신령스럽게 비치는 불성(佛性)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중생이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각자가 본래 갖추고 있는 참된 모습이다.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몸뚱이만 위하고 사랑하는 것은 헛된 것이다. 몸뚱이는 결국 죽은 송장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위하고 사랑해야 할 것은 "아무개야!" 하고 불렀을 때 "예." 하고 대답하는 그 한 물건, "어머님!" 하고 불렀을 때 "오냐." 하고 대답하는 바로 그 한 물건이다. 그 한 물건을 위하는 것이 진정으로 잘 위하고 효도하는 것이다.
3. 3. 불교와 기독교의 동일점
혜암은 석가세존의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예수의 "나를 따르면 천국이 너의 것이다"라는 말은 모두 각자의 '나'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혜암은 불교에서 불상을 위하는 것과 기독교에서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 같은 이치라고 말하며, 종교 간의 차이는 겉모습일 뿐이며 참된 진리는 하나임을 강조한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기를, 달 밝은 밤에 여러 그릇에 물을 떠 놓으면 그릇마다 달이 비치는 것처럼,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은 그릇의 모양은 달라도 같은 달을 비추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3. 4. 검소한 삶
"부드러운 옷과 맛있는 음식을 수용하면 마땅히 은혜가 무거워 공부해 나가는 데 손해가 됨이요, 떨어진 옷과 나물로 만든 밥은 반드시 시주 은혜가 가벼워 은덕을 쌓는다"는 좌우명을 실천하였다. 늘 시주의 은혜를 생각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용맹정진하였다.3. 5. 예배하는 법
혜암은 불상에 예배할 때 다음 세 가지를 강조했다.첫째, 불상이 어디서 왔는가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불상은 각자의 마음에서 나타난 그림자이다. 불상이 곧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곧 불상이어서 둘이 아니다.
둘째, 불상에 예배하되 반드시 자기 마음에다 예배해야 하며, 겉으로 드러난 형상인 등상불(等像佛)에게만 공경심을 내어서는 안 된다.
셋째, 자기 마음에다 예배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마음은 형상도 없고 부피도 없는데, 어떻게 마음에다 절을 하는가? 참선 수행자가 화두를 들 때 일어나는 의심하는 마음, 즉 의정(疑情) 속에서 예배하면 그것이 곧 마음에다 예배하는 것이다. 마음 밖에 있는 등상불에게 공경심을 내지 않으므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참 부처님께 예배하는 참 예배가 된다. 만일 그렇지 않고 눈앞에 나타난 형상만 따라 상(相)에 집착하여 절을 한다면, 공덕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악도(惡道)에 떨어질 원인이 된다고 조사(祖師)께서 경고하셨다.
4. 법문
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혜암의 법문은 다음과 같다.
- 칠현녀 법문: 시다림에서 송장을 보고 도를 깨친 칠현녀와 제석천왕의 문답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를 설명한다. 장로이 선사는 "서로서로 불러서 돌아오고 돌아가니, 일만 집 일천 문이 다 바른 춘색이로다"라는 말로 깨달음을 표현했고, 혜암은 "생각이 움직이기만 하면 곧 어긋난다"는 말로 '가시덤불'을, "문 앞의 한길이 장안으로 뚫렸다"는 말로 '부름과 돌아옴'을 설명했다.
- 결제법어: 결제와 해제를 통해 모이고 흩어지는 대중의 모습과,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결국 무슨 도리인지 묻는다. 혜암은 "몸과 마음을 바로잡아서 원래 동함이 없이, 묵묵히 띠집에 앉아서 오고 가는 왕래를 끊으니, 적적하고 고요하고 고요해 한 가지 일도 없나니, 다만 마음 부처를 보아 스스로 귀의해 돌아가라"는 게송을 읊었다.
- 열반상 법문: 혜암은 자신의 장례 절차를 간소화하고, 사리에 집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돌 하나라도 탑을 쌓는다면 자신과 원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상법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했다. 무상지법(無相之法)을 설하며, 상을 취하지 않으면 모든 성인의 뜻과 자신의 뜻이 화합한다고 말했다.
- 별 찾는 대화 법문: 만공 선사가 전강 선사에게 던진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혜암의 견해를 밝힌다. 혜암은 전강 선사의 행동과 만공 선사의 평가를 비판하며, "스님은 어느 곳에서 제 별을 보셨습니까?"라고 반문했을 것이라고 했다.
- 조사서래의 법문: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여러 선지식들의 견해를 소개한다. 혜암은 청허, 혜월, 만공, 용성 선사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공부하고 여러 선지식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함을 강조했다.
- 예배 법문: 참된 예배는 아만을 조복받고 어두운 마음을 굴복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겉모습에만 집착하는 거짓 예배를 경계하며, 안으로 탐, 진, 치를 일으키지 않고 항상 착한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교자와 선자의 문답 법문: 정혜(定慧), 불성(佛性), 자비심(慈悲心), 법(法), 일대장교(一大藏敎), 등각(等覺), 묘각(妙覺), 보리(菩提), 열반(涅槃), 부처, 조사(祖師) 등에 대한 선자의 답변을 통해 깨달음의 본질을 강조한다.
- 매미 소리 법문: 만공 선사의 매미 소리 법문에 대한 혜암의 견해를 밝힌다. 보월 스님의 행동과 만공 선사의 평가를 "함정미토"라고 평하며, "조실 스님께서는 어느 곳에서 매미 우는 것을 보셨습니까?"라고 반문했을 것이라고 했다.
- 어묵동정 법문: 용성 선사와 만공 선사의 어묵동정 법문답에 대한 전강 스님의 평가와 혜암의 견해를 소개한다. 혜암은 "파기상종(破器相從)"을 통해 어묵동정을 여의는 도리를 설명한다.
- 좌선 법문: 좌선의 참된 의미를 설명하며, 지선(至善)에 이르고 성성(惺惺)하여 온갖 생각을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가(那伽) 큰 선정(禪定)과 진여(眞如)의 묘한 본체를 설명하며, 참구(參究)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러야 함을 강조한다.
- 염화미소 법문: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이 꽃을 들어 보이자 가섭이 미소 지은 뜻을 설명한다. 혜암은 가섭의 미소를 비웃음으로 해석하며, 같잖다는 생각으로 웃었다고 말한다.
- 수덕사 수계법문: 수덕사에서 열린 비구니 수계산림에서 혜암 스님과 춘성 스님의 법문 내용을 소개한다. 혜암 스님은 질문과 답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묻는 곳이 분명하여야 답하는 곳에 친합한다"고 말했다.
- 육조선사 법문: 육조 혜능이 오조 홍인에게 깨달음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어야 함을 강조한 내용을 소개한다. 혜암은 "물은 파도를 여의지 못하고, 파도는 물을 여의지 못한다"는 비유를 통해 깨달음의 경지를 설명한다.
4. 1. 칠현녀 법문
七賢女중국어가 시다림에서 송장을 보고 도를 깨친 이야기는 제석천왕과의 문답과 그 의미를 통해 해석된다. 칠현녀는 제석천왕에게 세 가지를 요구했는데, 이는 깨달음의 경지를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다.장로이 | 경봉 | 혜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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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없는 나무 | 시다림 | 칠현녀의 모발 | 봄이 오매 풀이 스스로 푸르다(春來草自靑) | ||
음양이 없는 땅 | 칠현녀의 발 | 음양이 없을 때 곧 땅이 났다(無陰陽時 卽生地) | ||
메아리 없는 산골짜기 | 칠현녀의 입 | 메아리가 없는 산골짜기에 메아리 있는 것을 듣지 못한다(無響山谷 有響不聞) |
장로이 선사는 칠현녀가 가시덤불 속에 있다고 비유하며, "서로서로 불러서 돌아오고 돌아가니, 일만 집 일천 문이 다 바른 춘색이로다(相喚相呼歸去來 萬戶千門正春色)"라는 말로 깨달음을 표현했다. 혜암은 "생각이 움직이기만 하면 곧 어긋난다(動念卽乖)"는 말로 '가시덤불'을, "문 앞의 한길이 장안으로 뚫렸다(門前一路透長安)"는 말로 '부름과 돌아옴'을 설명했다.
4. 2. 결제법어
법상에 올라 한참 계시다가 "결제라 해서 대중이 모였다가 해제라 하여 대중이 흩어진다. 봄이 오고 가을이 가는 이런 때가 새로운 것인가? 묵은 것인가?" 하시며, 주장자로 법상을 치시고는 "결제라 해서 대중이 모이는 것인가? 해제라 해서 대중이 흩어지는 것인가? 이것이 가는 것인가? 이것이 오는 것인가? 이것이 새로운 것인가? 이것이 묵은 것인가? 이것이 변하는 것인가? 이것이 변하지 않는 것인가?" 하시었다. 주장자로 다시 한 번 치시고는 "이것은 맺는다 해도 안 되는 것이요, 이것은 푼다 해도 안 되는 것이며, 이것은 모인다 해도 안 되는 것이요, 이것은 흩어진다 해도 안 되는 것이며, 이것은 간다 해도 안 되는 것이요, 이것은 온다 해도 안 되는 것이며, 이것은 새롭다 해도 안 되는 것이요, 이것은 묵었다 해도 안 되는 것이니, 이것이 모두 안 되는 것이면, 결국 이것은 무슨 도리인가?" 하시고, 잠시 계시다가 대중이 아무 말이 없으므로, "만약에 이 한 마디를 바로 일러 오는 학인이 있다면, 또한 자광이 하늘에서 일어나고 바다 밑에서 연기가 일어난 도리를 일러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신 다음, 아래의 게송을 읊으셨다.身心把正元無動|신심파정원무동|몸과 마음을 바로잡아서 원래 동함이 없이중국어
默坐茅庵絶往來|묵좌모암절왕래|묵묵히 띠집에 앉아서 오고 가는 왕래를 끊으니중국어
寂寂寥寥無一事|적적요요무일사|적적하고 고요하고 고요해 한 가지 일도 없나니중국어
但看心佛自歸依|단간심불자귀의|다만 마음 부처를 보아 스스로 귀의해 돌아가라.중국어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치신 후 하좌하시다.
4. 3. 열반상 법문
문인들이 혜암 선사에게 열반 후 장례 절차를 묻자, 혜암 선사는 도시에서 죽으면 영구차로 화장하고, 산중에서 죽으면 상여 없이 석유 한 사발로 화장하라고 답했다. 또한, 상단에 향 하나 꽂고 삼정례를 올리고, 영단에도 향 하나 꽂고 심경 한 편 외우는 것 외에 물질적인 소비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혜암 선사는 자신이 부처님 사리를 숭배하지 않기 때문에 사리가 나지 않을 것이며, 혹시 사리가 나오더라도 땅에 묻거나 버리라고 했다. 돌 하나라도 탑을 쌓는다면 자신과 원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혜암 선사는 정법을 갖춘 대선지식이 법력으로 관하여 음사리는 피고름, 탐사리는 구렁이, 치사리는 도깨비로 화하게 하는 택사리를 해야 사리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처님 사리에 예배하는 것 또한 상법에 집착하는 것이므로 지옥으로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혜암 선사는 경전을 인용하며 "무릇 있는 바 상(相)이 모두 허망하다(凡所有相 皆是虛妄 범소유상 개시허망)"라고 말했다. 또한, "도무지 실로 정한 상이 없고, 환으로 정한 상이 없다(都無定相 幻無定相 도무정상 환무정상)"라며, 이를 무상지법(無相之法)이라 칭했다. 상을 취하지 않으면 모든 성인의 뜻과 자신의 뜻이 화합하며, 일체상을 여의면 성인의 뜻과 자신의 뜻이 화합한다고 설했다.
혜암 선사는 불심종의 문인들에게 밝게 오로지 공부에만 정진하고, 무량중생을 위해 행원을 철저히 할 것을 당부했다.
4. 4. 별 찾는 대화 법문
만공 선사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전강 선사에게 "부처님은 샛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셨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라고 물었다. 전강 선사는 땅에 엎드려 별을 찾는 시늉을 했고, 만공 선사는 "잘한다, 잘한다!"라며 인가하고 전법게를 지어 주었다.하지만 혜암 선사는 만약 전강 선사가 찾는 것이 별인 줄 알고 별 찾는 시늉을 한 것이라면, 이는 겉모습만 쫓는 개와 같은 행동(한로축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만공 선사가 이를 자세히 살피지 않고 칭찬한 것에 대해서도 같은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염려했다.
혜암 선사는 만약 자신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스님은 어느 곳에서 제 별을 보셨습니까?"라고 반문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4. 5. 조사서래의 법문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라는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니라."라고 답하는 화두가 있다. 이 화두에 대해 청허 스님은 "'용궁장경'에도 없는 격외선이다."라고 하시며, "고기가 가니 물이 흐리고 새가 날으니 털이 떨어진다."라고 해석하였다.혜암은 양산 통도사에 있을 때 이 해석에 의문을 품고 통도 내원사 조실 혜월 스님을 찾아가 여쭈었다. 혜월 스님은 처음에는 청허 스님의 해석이 맞다고 하였으나, 혜암이 다시 묻자 "아차, 내가 잘못 살폈구나"하며 혜암의 말이 맞다고 인정하였다.
이후 혜암은 정혜사의 만공 조실 스님을 찾아가 같은 질문을 하였다. 만공 선사는 "청허가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는데, 그것이 정말인가?"라고 반문하며, '선가구감'을 확인한 후 "이 글의 내용을 그 겉으로만 보지 말고 그 속의 안 까닭을 살펴야 한다."라고 하였다.
혜암은 다시 서울 대각사에 있는 용성 선사를 찾아가 여쭈었다. 용성 선사 역시 "그것은 맞지 않는 말이지. 청허 스님 말씀은 허물 구를 말씀하셨느니라. 그러므로, 공부란 샅샅이 살펴 가야 하는 것이지."라고 하였다.
이처럼 여러 선지식들의 견해는 청허 스님의 해석이 겉보기와는 달리, 그 속뜻을 살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혜암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선지식을 찾아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공부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4. 6. 예배 법문
예배는 법답게 해야 한다. 이체(理體)는 안으로 밝고 사상(事相)은 밖으로 변하는 것이므로 이체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요, 사상은 드러나고 감춤이 있는 것이니, 이런 뜻을 알아야 법을 의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禮)를 차린다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요, 절한다는 것은 아만(我慢)을 조복받는 것이니, 나의 참된 성품(性品)을 공경하고 어두운 마음을 굴복시켜야 비로소 예배라 할 수 있다.공경을 행하기 때문에 아만이 끊어져 훼상하지 못하고, 어두운 마음을 굴복시키기 때문에 방탕하지 못하는 것이니, 만일 악한 뜻을 길이 멸하고 착한 생각이 항상 있으면, 비록 형상을 다투어 공경하지 아니하여도 언제나 예배하는 것이 된다. 착한 생각이라는 것은 마음이 순진하고 솔직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工夫)하는 것을 말한다.
사상법(事相法)이란 밖으로 쓰면 나타나는 것이요, 안으로 버리면 감추는 것이라, 밖으로 공경함을 들어 안으로 진정 밝히는 것은 성품과 외상(外相)이 서로 응함을 표시하는 것이다. 만일 외상으로 쫓아 예배하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안으로는 탐(貪), 진(嗔), 치(痴)를 일으켜 항상 악념(惡念)을 행하고, 밖으로는 부질없이 외양(外樣)만을 나타내어 거짓 예경(禮敬)을 지을 것이니, 어찌 진실한 예배(禮拜)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성현(聖賢)을 속이는 것이라, 생사(生死)에 윤회(輪廻)하면서 악도(惡道)에 떨어짐을 면치 못할 것이다.
4. 7. 교자와 선자의 문답 법문
선자는 정혜(定慧)를 배우고 불성(佛性)을 밝게 본다는 것에 대해, "우리집에는 안팎 종이 없다"고 답한다. 자비심(慈悲心)에 대해서는 "부처를 이룰 것이 있는 줄로 보지 않는 것이 자(慈)이고, 중생을 제도할 것이 있는 줄로 보지 않는 것이 비(悲)"라고 설명한다.부처님의 법(法)이 중생을 제도할 수 없는 것인지 묻자, 선자는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가 있다고 말하면 비방하는 것이고, 없다고 말하면 그것도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며, "진실한 부처는 입이 없으니 설법할 수 없고, 참으로 듣는 것은 귀가 없거늘 누가 듣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일대장교(一大藏敎)가 쓸데없는 것인지 묻는 질문에는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다"며, "참으로 밝은 사람이면 달을 볼 것이고, 우둔한 자는 손가락을 볼 것"이라고 답한다. 이는 사자가 흙덩이를 던진 손을 물고, 개는 흙덩이를 쫓아가는 것에 비유된다.
등각(等覺)과 묘각(妙覺)은 막대기를 짊어진 귀신이고, 보리(菩提)와 열반(涅槃)은 당나귀를 붙들어 맨 말뚝이며, 명구(名句)를 인정하는 것은 똥덩이를 입에 문 것이고, 부처와 조사(祖師)가 되려는 것은 지옥에 들어가는 업(業)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부처와 조사에 대한 질문에 선자는 "부처란 환화(幻化)의 몸이고, 조사란 늙은 비구(比丘)"라고 답한다. 보살과 부처님께서 보시고 증득하신 곳이 없겠냐는 질문에는 "자기 눈을 어떻게 보며 자기 마음을 어떻게 증득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머리가 본래 그대로 있는데 스스로 얻었다 잃었다는 생각을 내며, 마음이 본래 평등한데 스스로 범부(凡夫)다 성현(聖賢)이다 하는 소견을 일으킨다"는 경전 구절을 인용하여 깨달음의 본질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그 이치(理致)를 묻자 선자는 "자기 본분(本分)에는 본래 이름이라는 것이 없지만, 방편으로 불러 정법안장열반묘심(正法眼藏涅槃妙心)이라 한다"고 답하고, 더 할 말이 있지만 다음으로 미룬다.
4. 8. 매미 소리 법문
만공(1871년~1946년) 스님 회상 때의 일이다. 대중이 수박 공양을 하려 할 때, 한여름 나무 가지에서 매미가 울고 있었다. 만공 스님이 매미 소리를 들으시고 대중을 둘러보시며 "누구든지 날랜 사람이 있어서 저 매미 소리를 제일 가까이에서, 제일 먼저 잡아 오는 사람에게는 수박 값을 받지 않을 것이요, 못 잡아 오는 사람에게는 동전 세 푼씩 받아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다.그때 대중 가운데 어떤 이는 매미 잡는 시늉을 하고, 어떤 이는 매미 우는 소리를 내었다. 금봉(금봉) 스님은 나와 원상(ㅇ)을 그려 놓고 "상중무불 불중무상(相中無佛 佛中無相), 즉 상 가운데 부처가 없고, 부처 가운데 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만공 선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침 보월(보월) 스님이 들어오자 선사께서 "지금 대중 스님네는 이러이러했으니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물었다. 보월 스님이 곧 주머니 끈을 풀고 돈 세 푼을 꺼내어 만공 선사에게 보였다. 선사께서 웃으며 "자네가 비로소 내 뜻을 알았네."라고 말씀하셨다.
벽초(벽초) 스님에게서 이 법문을 듣고 살펴보니, 보월 스님이 돈 서너 푼을 꺼내어 보인 데 그친 것은 "함정미토(含情未吐), 즉 뜻은 있어도 토하지 못함이로다."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토하는 법은 어떻게 하였어야 했겠는가? "시자야, 수박 사다 조실 스님께 올려라."라고 말씀을 하였어야 했을 것이다. 만공 조실 스님께서도 보월 스님에 대하여 "함정미토로다."라고 한 말씀 있었어야 했을 것인데 그 말씀이 없었으니, 조실 스님도 보월 스님과 꼭같이 함정미토가 아니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보월 스님이 그 돈을 꺼냈을 때 그 뜻이 서로 통했기 때문에 만공 스님께서 "내 뜻을 알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조실 스님께서는 어느 곳에서 매미 우는 것을 보셨습니까? 그 매미 운 것을 보신 곳을 말씀해 주시면 수박을 깎아 올릴 것이고, 만일 매미 운 것을 보신 곳을 말씀하지 아니하시면 수박이 곁에 있더라도 깎아 올리지를 못하겠습니다."라고 이렇게 대답을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만공 선사께 "어느 곳에서 매미 우는 것을 보셨습니까?"라고 반문하였을 것이다.
4. 9. 어묵동정 법문
용성 선사와 만공 선사가 선학원에서 법문답을 나누었다. 용성 선사가 "어묵동정(語默動靜)을 여의고 한 번 말해보시오?"라고 묻자, 만공 선사는 들은 체 만 체 했다. 용성 선사가 다시 "양구(良久)란 말이오?"라고 물었지만, 만공 선사는 "아니오."라고 답했다. 전강 스님은 이 대화를 듣고 만공 선사에게 "두 큰스님께서는 서로 멱살을 쥐고 흙탕물에 들어간 격입니다."라고 말했다. 만공 선사가 "그러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묻자, 전강 스님은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말하란 말입니까?"라고 답했고, 만공 선사는 "옳다 옳다!"라고 하였다.하지만, '여의고'라는 말이 있는데 어찌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어묵동정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말하지도, 잠자코 있지도, 움직이지도, 가만히 있지도 말라고 하는데, 몸은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어찌 가만히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만히 있지 않은 소식을 알려면 태중(胎中)에 들어가기 전 소식을 알아야 한다. 태중에 들어가기 전 소식이란 무엇인가? 혜암은 이를 "파기상종(破器相從)"이라 하였다. 파기상종은 깨어진 그릇은 맞추지 못한다는 뜻이다. 파기상종의 도리를 알아야 이(理)로나 사(事)로나 어묵동정을 여의는 도리를 이를 수 있다. 하지만, 그 도리를 분명히 말하더라도 근본 자체에는 미치지 못한다.
4. 10. 좌선 법문
좌선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지선(至善)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성성(惺惺)하여 온갖 생각을 끊고 혼침(昏沈)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며, 욕심 속에 있으면서 욕심이 없고 티끌 속에 살면서 티끌을 떠난 것을 선(禪)이라 한다. 밖에서 함부로 들어가지 않고 안에서 함부로 나가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며, 집착함도 없고 의지함도 없으며 항상 광명이 앞에 나타나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 밖에서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고 안이 고요하여 흔들리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며, 빛을 돌이켜 도로 비추어 법의 근원에 사무치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역(逆)이나 순(順)에 괴로워하지 않고, 소리(聲)와 빛깔(色)에 굴하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며, 그윽함을 비추면 그 밝음은 해와 달보다 더하고, 물건을 교화하면 그 힘이 하늘과 땅보다 센 것을 선(禪)이라 한다. 차별이 있는 경계(境界)에서 차별이 없는 정(定)에 드는 것을 좌(坐)라 하며, 차별(差別)이 있는 지혜(智慧)에서 차별이 없는 지혜를 보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 통틀어 말하면, 치연(熾然)히 작용하면서도 정체(正體)는 여여(如如)하며, 종횡(縱橫)으로 묘(妙)함을 얻어 어떤 일에도 걸림이 없는 것을 좌선(坐禪)이라 하느니라. 간략히 말하면 이렇거니와, 자세히 말하려면 종이와 먹으로 다할 수 없는 것이다.
나가(那伽) 큰 선정(禪定)은 고요함도 없고 움직임도 없으며, 진여(眞如)의 묘한 본체는 생(生)나지도 않고 멸(滅)하지도 않는다.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공(空)이면서 공이 아니요, 유(有)이면서 유도 아니다. 크게 포용하면 바깥이 없고, 가늘게 들어가면 안이 없도다. 신통(神通), 지혜(智慧), 광명(光明), 수량(壽量)과 그 대기(大器), 대용(大用)이 무궁무진(無窮無盡)하나니, 뜻이 있는 사람은 마땅히 잘 참구(參究)해야 하느니라. 빨리 정채(精彩)를 더하면 크게 깨침으로써 문(門)에 들어갈 것이며, 단지(團地)의 한 소리 뒤에는, 하고 많은 영묘(靈妙)함이 다 저절로 구족해지리니, 이것이 어찌 사마 외도(邪魔 外道)가 전(傳)하고 받음으로 사자(師資)를 삼으며, 소득(所得)이 있는 것으로 구경(究竟)을 삼는 것과 같겠는가? 바르게 공부하는 학인(學人)일진대 진중(鎭重)하고 진중하게 좌선(坐禪)에 들어가야 하느니라.
4. 11. 염화미소 법문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설법하실 때 백만억 대중이 모였다. 부처님이 꽃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자 오직 가섭만이 그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가섭은 부처님의 수제자였다. 그런데 가섭은 무엇 때문에 미소를 지었던가? 우리는 그 뜻을 알아야 한다. 누가 내게 묻더라도 나는 그 뜻을 전부는 말할 수 없고, 3분의 1만은 말할 수 있다. 그러면 가섭의 미소는 무슨 뜻인가? 그 웃음은 비웃음이다. 비웃음의 뜻을 알면 세존께서 꽃을 드신 뜻도 알 수 있고, 가섭이 미소한 뜻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대중은 말해 보라. 가섭이 무슨 뜻으로 비웃는 웃음을 지었던가? 만일 나에게 묻는다면 "같잖다는 생각으로 웃었느니라." 하리라.4. 12. 수덕사 수계법문
己酉年중국어 기유년 겨울, 수덕사에서 비구니 수계산림을 열고 혜암 스님과 춘성 스님을 모셨다. 이 법회에서 비구니들의 선문답이 있었다. 혜암 스님, 춘성 스님의 계법문 순서로 진행되었다. 춘성 스님의 법문이 끝나자 혜암 스님은 처소로 돌아가 시자에게 "나는 귀가 어두워 다른 스님 법문을 못 들었다. 네가 다시 말해 보라." 하였다. 시자는 춘성 스님이 만공 스님의 법어인 십우도 병풍의 견적에 대한 질문과, 이에 대한 비구니들의 답변을 전했다.혜암 스님은 "'음매, 음매!' 할 때에는 더 큰 소리로 '음매, 음매!' 하였을 것이요, 풀 한 줌 갖다 주라 할 때에는 풀뜯어 먹는 시늉을 내었을 것이며, '와, 와!' 할 때에는 잠깐 말을 그쳤을 것이요, 또 참으로 알고 절했다면 나도 웃으면서 절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또한, 혜암 스님은 "고인 말에 문처분명답처진(問處分明答處親)이라, '묻는 곳이 분명하여야 답하는 곳에 친합한다' 한 것이다."라며 질문과 답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4. 13. 육조선사 법문
혜암은 서울 상도동 반야선사에서 세계 각국 승려들의 계(戒) 살림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육조 혜능의 법문을 설한 내용이다. 오조 홍인이 혜능을 배웅하며 노를 저으려 하자, 혜능은 "제가 모를 때에는 스님께서 저를 건네 주었지만, 이제는 제가 알았으니, 제 힘으로 건너는 것이 옳은가 하나이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노를 젓겠다고 하였다. 이는 깨달음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오조는 "앞으로는 불법(佛法)이 너로 말미암아 크게 떨치리라."라고 혜능을 칭찬하였다.혜암은 "물은 파도를 여의지 못하고, 파도는 물을 여의지 못한다"는 비유를 통해 깨달음의 경지를 설명하며, 털끝만큼도 틈이 없이 이르는 도리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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