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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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황보밀은 후한의 무장 황보숭의 증손으로, 서진 시대의 학자이자 저술가이다. 안정군 조나현 출신으로, 관직에 나가지 않고 저술에 전념하며 "서음"으로 불렸다. 서진 무제의 초빙을 거절하고, 좌사의 "삼도부" 서문을 써 명성을 얻었다. 주요 저서로는 《침구갑을경》, 《제왕세기》, 《고사전》 등이 있으며, 여러 분야의 저술을 남겼으나, 대부분 유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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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밀 | |
---|---|
인물 정보 | |
이름 | 황보밀 |
한자 표기 | 皇甫謐 |
로마자 표기 | Hwangbo Mil |
자(字) | 사안(士安) |
출생 | 215년 |
사망 | 282년 |
국적 | 중국 |
시대 | 삼국 시대 - 서진 |
직업 | 학자, 의사 |
활동 분야 | 의학, 문학, 역사 |
주요 저서 | 침구갑을경 |
2. 생애
황보밀은 여러 전적과 제자백가서에 정통했으며, 평생 벼슬하지 않고 저술에 전념했다. 잠자고 먹는 것을 잊을 정도로 책을 읽어 "서음"이라고 불렸다.[5] 서진 무제가 여러 차례 불렀지만 벼슬을 거절했다. 황보밀이 무제에게 책을 빌려달라고 청하자, 무제는 수레 가득 책을 내렸다. 좌사가 "삼도부"를 썼을 당시 좌사가 무명이라 평판이 좋지 않았지만, 황보밀이 서문을 쓰자마자 모두 칭찬하게 되었다.[6][7] 이 서문은 『문선』에 수록되어 있다. 황보밀이 당시 유행하던 한식산(오석산)을 복용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루쉰의 "위진의 기풍 및 문장과 약 및 술의 관계"에 기록되어 있다.
2. 1. 출생과 가계
황보밀은 후한의 무장으로 유명한 황보숭의 증손이다. 안정군 조나현(현재의 닝샤 후이족 자치구 구위안 시 펑양 현) 출신이다.[5]2. 2. 학문과 저술 활동
여러 전적과 제자백가서에 널리 통달했으며, 평생 벼슬하지 않고 저술에 전념했다. 서진 무제 사마염이 여러 차례 초빙하려 했으나 끝내 거절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제자인 지우(摯虞), 장궤, 우종(牛綜), 석권(席純) 등은 모두 진나라의 명신이 되었다.[5]주요 저작으로는 〈삼도부서(三都賦序)〉·〈석권론(釋勸論)〉·〈현수론(玄守論)〉·〈독종론(篤終論)〉 등의 문장과 《제왕세기》·《연력(年曆)》·《고사전》·《일사전(逸士傳)》·《열녀전》 등의 역사전기서, 《현안춘추(玄晏春秋)》·《음양역술(陰陽曆術)》·《귀곡자주(鬼谷子注)》 등의 철학서, 《침구갑을경(針灸甲乙經)》 등의 의학서가 있다.
조위 말기인 256년부터 260년 사이에, 황보밀은 이전 시대에 쓰여진 다양한 침술에 관한 문헌들을 모아 《침구갑을경》(針灸甲乙經|침구갑을경중국어)을 편찬했다. 이 책은 12권 12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침술과 뜸에 관한 가장 초기의 체계적인 저작 중 하나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가 되었다.[4]
황보밀은 또한 《제왕세기》(帝王世紀|제왕세기중국어)라는 10권의 책을 편찬했다. 그는 《열녀전》(중국어: 列女傳; 병음: ''Liènǚ Zhuàn'')의 공동 저자였으며, 《고사전》(중국어:高士傳; 병음: ''Gāoshì Zhuàn'')의 저자이기도 하다.
잠자고 먹는 것을 잊고 책을 읽어 "서음"이라고 불렸다고 한다.[5] 서진의 무제는 여러 번 황보밀을 불렀지만, 황보밀은 벼슬을 거절했다. 황보밀이 무제에게 책을 빌리고 싶다고 청하자, 무제는 수레 가득 책을 내려 주었다.
좌사가 "삼도부"를 썼을 당시, 좌사가 무명이었기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았지만, 황보밀이 서문을 쓰자마자 모두가 칭찬하게 되었다고 한다.[6][7] 이 서문은 『문선』에 수록되어 있다.
황보밀이 당시 유행하던 한식산(오석산)을 복용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루쉰의 "위진의 기풍 및 문장과 약 및 술의 관계"에 기록되어 있다.
3. 주요 저작
황보밀은 여러 전적과 제자백가서에 널리 통달했으며, 평생 벼슬하지 않고 저술에 전념했다. 그의 주요 저작은 다음과 같다.[4]
분야 | 저작 |
---|---|
문장 | 〈삼도부서(三都賦序)〉, 〈석권론(釋勸論)〉, 〈현수론(玄守論)〉, 〈독종론(篤終論)〉 |
역사 및 전기 | 《제왕세기》, 《연력(年曆)》, 《고사전》, 《일사전(逸士傳)》, 《열녀전(列女傳)》 |
철학 | 《현안춘추(玄晏春秋)》, 《음양역술(陰陽曆術)》, 《귀곡자주(鬼谷子注)》 |
이 외에도 『수서』 경적지에는 《삭기장력(朔氣長暦)》, 《잡루각법(雜漏刻法)》과 같은 역산(曆算) 관련 서적, 한식산(寒食散) 처방 관련 서적, 《귀곡자》 주석 등이 황보밀의 저작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황보밀의 저작 대부분은 유실되었고, 일부 내용만이 다른 책에 인용되어 전해진다.
3. 1. 의학
황보밀은 256년부터 260년 사이, 조위 말기에 이전 시대에 쓰여진 다양한 침술에 관한 텍스트를 모아 《침구갑을경》(針灸甲乙經|Zhēnjiǔ jiǎyǐ jīng중국어)을 편찬했다. 이 책은 12권, 12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침술과 뜸에 관한 가장 초기의 체계적인 저작 중 하나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가 되었다.[4]3. 2. 역사 및 전기
황보밀은 여러 전적과 제자백가서에 널리 통달했으며, 평생 벼슬하지 않고 저술에 전념했다. 진 무제가 여러 차례 초징(招徵)의 뜻을 밝혔으나 끝내 고사하고 나아가지 않았다.[5] 제자인 지우(摯虞), 장궤, 우종(牛綜), 석권(席純) 등은 모두 진나라의 명신이 되었다.서진의 무제는 여러 번 황보밀을 불렀지만, 황보밀은 벼슬을 거절했다. 황보밀이 무제에게 책을 빌리고 싶다고 청하자, 무제는 수레 가득 책을 내렸다. 좌사가 "삼도부"를 썼을 당시, 좌사가 무명했기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았지만, 황보밀이 서문을 쓰자마자 모두가 칭찬하게 되었다고 한다.[6][7] 이 서문은 『문선』에 수록되어 있다.
황보밀이 당시 유행하던 한식산(오석산)을 복용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루쉰의 "위진의 기풍 및 문장과 약 및 술의 관계"에 기록되어 있다.
황보밀은 후한의 무장으로 유명한 황보숭의 증손이다. 안정군 조나현(현재의 닝샤 후이족 자치구 구위안 시 펑양 현) 출신이다. 256년부터 260년 사이에, 조위 말기에 그는 이전 시대에 쓰여진 다양한 침술에 관한 텍스트를 모아 《침구갑을경》(針灸甲乙經|침구갑을경중국어)을 편찬했다. 이 책은 12권으로 되어 있으며 128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침술과 뜸에 관한 가장 초기의 체계적인 저작 중 하나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가 되었다.[4] 황보밀은 또한 《제왕세기》(帝王世紀|제왕세기중국어)라는 시리즈로 10권의 책을 편찬했다. 그는 또한 《열녀전》(중국어: 列女傳; 병음: ''Liènǚ Zhuàn'')의 공동 저자였으며, 《고사전》(중국어:高士傳; 병음: ''Gāoshì Zhuàn'')의 저자이기도 했다.
황보밀은 많은 저작을 남겼지만, 대부분은 유실되었다. 그러나, 산일된 문구들이 종종 다른 책에 인용되어 남아 있다.
- 침구갑을경 - 침구에 관한 기본적이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적[8]。
- 현안춘추(玄晏春秋)
- 제왕세기 - 천지개벽부터 삼국 시대의 위 말까지의 왕통을 기록한 것.
- 연력(年暦)
- 고사전(高士伝) - 고결한 선비, 은자의 전기를 모은 것. 혜강의 『고사전』과는 별개. 『태평어람』에 인용됨.
- 일사전(逸士伝)
- 열녀전(列女伝) - 유향의 『열녀전』과는 별개. 『설부』에 수록.
『수서』경적지에는, 그 외에 『삭기장력(朔氣長暦)』, 『잡루각법(雜漏刻法)』과 같은 역산(暦算)에 관한 책, 한식산(寒食散)의 처방에 관한 책, 『귀곡자』의 주석 등을 황보밀의 저작으로 기록하고 있다.
3. 3. 기타
황보밀은 여러 전적과 제자백가서에 널리 통달했으며, 평생 벼슬하지 않고 저술에 전념했다. 진 무제가 여러 차례 초빙했으나 끝내 고사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제자인 지우(摯虞), 장궤, 우종(牛綜), 석권(席純) 등은 모두 진나라의 명신이 되었다.[8]주요 저작으로는 〈삼도부서(三都賦序)〉, 〈석권론(釋勸論)〉, 〈현수론(玄守論)〉, 〈독종론(篤終論)〉 등의 문장과 《제왕세기(帝王世紀)》, 《연력(年曆)》, 《고사전》, 《일사전(逸士傳)》, 《열녀전(列女傳)》 등의 역사전기서, 《현안춘추(玄晏春秋)》, 《음양역술(陰陽曆術)》, 《귀곡자주(鬼谷子注)》 등의 철학서, 《침구갑을경(針灸甲乙經)》 등의 의학서가 있다.[8]
황보밀은 많은 저작을 남겼지만, 대부분은 유실되었다. 그러나 산일된 문구들이 종종 다른 책에 인용되어 남아 있다.[8]
- 침구갑을경 - 침구에 관한 기본적이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적이다.[8]
- 현안춘추(玄晏春秋)[8]
- 제왕세기 - 천지개벽부터 삼국 시대의 위 말까지의 왕통을 기록한 것이다.[8]
- 연력(年暦)[8]
- 고사전 - 고결한 선비, 은자의 전기를 모은 것이다. 혜강의 《고사전》과는 별개이다. 《태평어람》에 인용되었다.[8]
- 일사전(逸士伝)[8]
- 열녀전(列女伝) - 유향의 《열녀전》과는 별개이다. 《설부》에 수록되었다.[8]
《수서》 경적지에는 그 외에 《삭기장력(朔氣長暦)》, 《잡루각법(雜漏刻法)》과 같은 역산(暦算)에 관한 책, 한식산(寒食散)의 처방에 관한 책, 《귀곡자》의 주석 등을 황보밀의 저작으로 기록하고 있다.[8]
4. 가계
참조
[1]
서적
Jin Shu
[2]
웹사이트
朝那镇三里村,乡村旅游好去处_政务_澎湃新闻-The Paper
https://www.thepaper[...]
2021-04-28
[3]
서적
Jin Shu (by Wang Yin) annotation in Shishuo Xinyu
[4]
서적
Chinese Acupuncture and Moxibustion
1987
[5]
서적
晋書皇甫謐「耽玩典籍、忘寝与食、時人謂之書淫。」
[6]
서적
世説新語
[7]
서적
晋書文苑伝・左思
s:zh:晉書/卷092#左思
[8]
서적
晋書皇甫謐列伝にはこの書について記さず、また『隋書』経籍志では『黄帝甲乙経』の書名を掲げるが著者名を記していない。現行本には皇甫謐の自序が付されており、また唐の楊玄操「集注難経」序に「昔皇甫元晏総三部為甲乙経」とあることなどから、皇甫謐の著であると考えられている
[9]
서적
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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