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위원회
1. 개요
9/11 위원회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미국 의회에 의해 설립된 독립적인 조사 위원회이다. 헨리 키신저가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사임하였고, 토머스 킨이 후임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위원회는 2004년 7월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테러 발생 배경, 정부 대응 과정, 정보 기관의 실패 등을 분석하고, 테러리스트 자금 조달 등 부록 보고서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허위 진술과 CIA의 정보 은폐 의혹을 제기했으며, 위원과 직원의 이해 상충 문제, 보고서 내용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위원회는 테러 대응 정책 개선을 위한 권고안을 제시했으며,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위원회 활동의 제약과 어려움을 기록한 책을 발간했다.
| 공식 명칭 | 미국의 테러 공격에 관한 국가 위원회 |
|---|---|
| 영문 명칭 | 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Upon the United States |
| 약칭 | 9/11 위원회 |
| 설립일 | 2002년 11월 27일 |
| 해산일 | 2004년 8월 21일 |
| 관할 | 미국 정부 |
| 의장 | 토머스 키언 |
| 부의장 | 리 해밀턴 |
| 주요 문서 | 2003 회계연도 정보 승인법 |
|---|---|
| 웹사이트 | 9/11 위원회 (보관됨) |
| 보고서 명칭 | 미국의 테러 공격에 관한 국가 위원회의 최종 보고서 (9/11 보고서) |
|---|---|
| 발행일 | 2004년 7월 22일 |
| 출판사 | 미국 정부 인쇄소 |
| 링크 | 9/11 보고서 (GovInfo.go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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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중앙행정관청 -
미국 인구조사국
미국 인구조사국은 10년 단위 인구조사를 통해 하원 의석 배분 및 선거인단 구성에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연방 및 주 정부 자금 배분의 기준이 되는 인구 통계 및 사회경제적 자료를 수집·분석하며, 미국 사회 현황 파악 및 정책 결정에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
미국의 중앙행정관청 -
미국 지질조사국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1879년 설립된 미국의 연방 과학 기관으로, 지질학, 지도 제작, 지진 및 화산 모니터링, 수문학적 연구 등 광범위한 지구과학 연구를 수행하며, 자연재해 예측, 자원 관리, 환경 보호에 기여하고, 지형도 제작 및 디지털 지도 서비스를 제공한다. -
공식 웹사이트에 알 수 없는 변수를 사용한 문서 -
브루클린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은 1823년 브루클린 견습생 도서관으로 시작하여 현재 약 50만 점의 소장품을 보유한 뉴욕 브루클린 소재의 미술관으로, 다양한 분야의 예술 작품을 전시하며 특히 아프리카 미술과 여성주의 미술에 대한 기여가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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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방기상청
광주지방기상청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지역의 기상 예보, 특보, 관측, 기후 정보 제공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상청 소속 기관으로, 1949년 광주측후소로 설치되어 1992년 광주지방기상청으로 개편되었으며, 기획운영과, 예보과, 관측과, 기후서비스과와 전주기상지청, 목포기상대를 두고 있다. -
미국의 정치사 -
연합군 최고사령부
연합군 최고사령부(GHQ/SCAP)는 일본의 비군사화와 민주화를 목표로 일본 점령을 위해 설치되었으며, 1945년 포츠담 선언 이후 더글러스 맥아더를 최고사령관으로 하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다방면에 걸친 개혁을 진행했다. -
미국의 정치사 -
티파티 운동
티파티 운동은 2009년 미국에서 시작된 보수 정치 운동으로 작은 정부, 재정 건전성,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며 부시 행정부의 부채,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발 등으로 촉발되었으나, 2012년 이후 영향력이 감소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선 승리 후 사실상 해체되었지만 미국 정치 보수화와 양극화 심화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다.
2. 역사
9·11 테러 이후, 사건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독립적인 조사 위원회 설립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2002년 11월 27일,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미국 의회에 의해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에 관한 국가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이해 관계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임명된 지 몇 주 만에 사임하였다. 전 미국 상원의원 조지 J. 미첼이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었지만, 로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2002년 12월 10일에 사임했다. 2002년 12월 15일, 부시는 전 뉴저지주 주지사 톰 킨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2003년 봄, 위원회는 2004년 5월 27일 최종 보고서 제출 목표일을 맞추기 위해 추가 자금이 필요하여 활동이 더디게 시작되었다. 3월 말, 부시 행정부는 위원회에 900만 달러의 추가 자금을 제공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는 위원회가 요청한 금액보다 200만 달러 부족한 금액이었다. 위원회의 첫 청문회는 2003년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뉴욕시에서 개최되었다.
2.1. 설립 배경
9·11 테러 이후, 사건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독립적인 조사 위원회 설립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2002년 11월 27일,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미국 의회에 의해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에 관한 국가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이해 관계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임명된 지 몇 주 만에 사임하였다. 전 미국 상원의원 조지 J. 미첼이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었지만, 로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2002년 12월 10일에 사임했다. 2002년 12월 15일, 부시는 전 뉴저지주 주지사 톰 킨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2003년 봄, 위원회는 2004년 5월 27일 최종 보고서 제출 목표일을 맞추기 위해 추가 자금이 필요하여 활동이 더디게 시작되었다. 3월 말, 부시 행정부는 위원회에 900만 달러의 추가 자금을 제공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는 위원회가 요청한 금액보다 200만 달러 부족한 금액이었다. 위원회의 첫 청문회는 2003년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뉴욕시에서 개최되었다.
2.2. 초기 위원장 임명과 사임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미국 의회는 2002년 11월 27일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에 관한 국가 위원회를 설립하고,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를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키신저는 이해 관계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임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임했다. 전 미국 상원의원 조지 미첼이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로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2002년 12월 10일에 사임했다. 2002년 12월 15일, 부시는 전 뉴저지주 주지사 톰 킨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2.4. 위원회 활동
2002년 11월 27일,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미국 의회에 의해 설립된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에 관한 국가 위원회는 초기 활동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3년 봄까지 위원회는 2004년 5월 27일 최종 보고서 제출 목표일을 맞추기 위해 추가 자금이 필요했다. 3월 말, 부시 행정부는 위원회에 900만 달러의 추가 자금을 제공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는 위원회가 요청한 금액보다 200만 달러 부족한 금액이었다. 첫 청문회는 2003년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뉴욕시에서 열렸다.
3. 위원회 구성
9/11 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 [[토머스 킨]] (위원장, 공화당) - 전 뉴저지 주지사
* [[리 해밀턴]] (부위원장, 민주당) - 전 인디애나주 하원의원 (인디애나 제9선거구)
* [[리처드 벤베니스테]] (민주당) - 변호사, 전 워터게이트 특별 검사 사무실 워터게이트 태스크 포스 책임자
* [[맥스 클리랜드]] (민주당) - 전 조지아 (미국) 상원의원. 2003년 12월 사임, "백악관이 은폐했다"고 밝힘.
* [[프레드 F. 필딩]] (공화당) - 변호사, 전 백악관 법률 고문
* [[제이미 고렐릭]] (민주당) - 전 미국 법무부 차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 [[슬레이드 고턴]] (공화당) - 전 워싱턴 (주) 상원의원
* [[밥 케리]] (민주당) - 뉴 스쿨 대학교 총장, 전 네브래스카주 상원의원. 맥스 클리랜드의 사임 후 민주당 위원직을 승계
* [[존 리먼]] (공화당) - 전 해군 장관
* [[팀 로머]] (민주당) - 전 인디애나주 하원의원 (인디애나 제3선거구)
* [[짐 톰슨 (일리노이 정치인)|짐 톰슨]] (공화당) - 전 일리노이 주지사
위원회 직원은 다음과 같다.
* 필립 D. 젤리코프, 사무총장
* 크리스토퍼 A. 코짐, 부사무총장
* 다니엘 마커스, 법률 고문
* 존 파머 주니어, 수석 변호사
* 디터 스넬, 수석 변호사
* 재니스 케파트, 변호사
* 앨빈 S. 펠젠버그, 대변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처음에 전 국무부 장관이자 국가 안보 보좌관인 헨리 키신저를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의회가 키신저 어소시에이츠의 고객 이름 공개를 요구하자, 키신저는 이를 거부하고 위원장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부시는 1982년부터 1990년까지 2선 뉴저지 주지사를 지낸 토머스 킨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3.1. 위원
9/11 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 [[토머스 킨]] (위원장, 공화당), 전 뉴저지 주지사. 9/11 테러 희생자 유족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했다.
* [[리 해밀턴]] (부위원장, 민주당), 전 인디애나주 하원의원. 위원회 활동을 지원하고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냈다.
* [[리처드 벤베니스테]], 민주당, 변호사, 전 워터게이트 특별 검사 사무실 워터게이트 태스크 포스 책임자. 철저한 조사를 강조했다.
* [[맥스 클리랜드]], 민주당, 전 조지아주 상원의원. 2003년 12월 사임하면서 백악관의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 [[프레드 F. 필딩]], 공화당, 변호사, 전 백악관 법률 고문
* [[제이미 고렐릭]], 민주당, 전 미국 법무부 차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 [[슬레이드 고턴]], 공화당, 전 워싱턴주 상원의원. 정보 및 안보 분야 전문성을 보유했다.
* [[밥 케리]], 민주당, 뉴 스쿨 대학교 총장, 전 네브래스카주 상원의원. 맥스 클리랜드의 사임 후 민주당 위원직을 승계했다.
* [[존 리먼]], 공화당, 전 해군 장관
* [[팀 로머]], 민주당, 전 인디애나주 하원의원. 정보위원회 활동 경험이 있다.
* [[짐 톰슨 (일리노이 정치인)|짐 톰슨]], 공화당, 전 일리노이 주지사
위원회 직원은 다음과 같다.
* 필립 D. 젤리코프, 사무총장
* 크리스토퍼 A. 코짐, 부사무총장
* 다니엘 마커스, 법률 고문
* 존 파머 주니어, 수석 변호사
* 디터 스넬, 수석 변호사
* 재니스 케파트, 변호사
* 앨빈 S. 펠젠버그, 대변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처음에 전 국무부 장관이자 국가 안보 보좌관인 헨리 키신저를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의회가 키신저 어소시에이츠의 고객 이름 공개를 요구하자, 키신저는 이를 거부하고 위원장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부시는 토머스 킨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3.2. 직원
필립 D. 젤리코프는 사무총장으로서 위원회 활동을 총괄하고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다. 크리스토퍼 A. 코짐은 부사무총장으로서 젤리코프를 보좌하고 위원회 운영을 지원했다. 다니엘 마커스는 법률 고문을 맡았다. 존 파머 주니어와 디터 스넬은 수석 변호사로, 재니스 케파트는 변호사로 활동했다. 앨빈 S. 펠젠버그는 대변인을 맡았다.
4. 증언
9/11 위원회는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을 포함한 현직 및 전직 미국 연방 정부 관리들을 증인으로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은 비공개 증언을 했으며 선서하지 않았다. 부시는 증언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하려 했으나, 실제 회의는 3시간 10분 동안 진행되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앨 고어 전 부통령 또한 비공개 증언을 했으며, 이들의 증언은 녹음되었고 시간 제한은 없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 안보 보좌관은 처음에는 증언을 거부했으나, 결국 공개적으로 선서 후 증언했다.
이 외에도 콜린 파월 국무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조지 테넷 중앙 정보국 국장,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톰 리지 국토안보부 장관 및 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 등이 증언했다.
전직 관리 중에서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윌리엄 코헨 전 국방장관, 샌디 버거 전 국가 안보 보좌관, 리처드 A. 클라크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빌 클린턴 행정부의 전 국가 안보 회의 수석 대테러 고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재닛 리노 전 법무장관, 시벨 에드먼즈 전 FBI 번역가 등이 증언했다.
4.1. 주요 증인
9/11 위원회는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을 포함한 현직 및 전직 미국 연방 정부 관리들을 증인으로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은 비공개 증언을 했으며 선서하지 않았다. 부시는 증언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하려 했으나, 실제 회의는 3시간 10분 동안 진행되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앨 고어 전 부통령 또한 비공개 증언을 했으며, 이들의 증언은 녹음되었고 시간 제한은 없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 안보 보좌관은 처음에는 증언을 거부했으나, 결국 공개적으로 선서 후 증언했다.
이 외에도 콜린 파월 국무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조지 테넷 중앙정보국 국장,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톰 리지 국토안보부 장관,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 등이 증언했다.
전직 관리 중에서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윌리엄 코헨 전 국방장관, 샌디 버거 전 국가 안보 보좌관, 리처드 A. 클라크 전 국가 안보 회의 수석 대테러 고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재닛 리노 전 법무장관, 시벨 에드먼즈 전 FBI 번역가 등이 증언했다.
5. 9/11 위원회 보고서
위원회는 2004년 7월 22일에 최종 보고서인 9/11 위원회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 발표 후, 9/11 위원회 의장 토마스 킨은 두 명의 대통령인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가 연방 수사국과 중앙 정보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선언했다. 위원회는 10개국에서 1,200명 이상을 인터뷰했고, 엄격하게 관리되는 기밀 국가 안보 문서를 포함하여 250만 페이지 이상의 문서를 검토했다. 최종 공개 보고서는 위원회에서 공개되기 전에 잠재적으로 기밀 정보가 있는지 검토하고 필요에 따라 수정되었다.
위원회는 이후 테러리스트의 자금 조달, 여행 및 기타 문제에 대한 여러 부록 보고서를 발표했다.
5.1. 보고서 주요 내용
위원회는 2004년 7월 22일에 최종 보고서인 9/11 위원회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9.11 테러 발생 배경, 테러 조직의 활동, 미국 정부의 대응 과정 등을 상세히 분석하고, 정보 기관의 실패, 정부 부처 간 협력 부족 등 문제점을 지적했다. 보고서 발표 후, 9/11 위원회 의장 토마스 킨은 두 명의 대통령인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가 연방 수사국과 중앙 정보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선언했다. 위원회는 10개국에서 1,200명 이상을 인터뷰했고, 엄격하게 관리되는 기밀 국가 안보 문서를 포함하여 250만 페이지 이상의 문서를 검토했다. 최종 공개 보고서는 위원회에서 공개되기 전에 잠재적으로 기밀 정보가 있는지 검토하고 필요에 따라 수정되었다.
위원회는 이후 테러리스트의 자금 조달, 여행 및 기타 문제에 대한 여러 부록 보고서를 발표했다.
5.2. 보고서 발간 이후
9/11 위원회는 2004년 7월 22일에 최종 보고서인 9/11 위원회 보고서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보고서 발표 후, 위원장 토마스 킨은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두 명의 대통령이 연방 수사국(FBI)과 중앙 정보국(CIA)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위원회는 10개국에서 1,200명 이상을 인터뷰했고, 기밀 국가 안보 문서를 포함하여 250만 페이지 이상의 문서를 검토했다. 최종 공개 보고서는 위원회에서 공개되기 전에 잠재적으로 기밀 정보가 있는지 검토하고 필요에 따라 수정되었다.
위원회는 이후 테러리스트의 자금 조달, 여행 및 기타 문제에 대한 여러 부록 보고서를 발표했다.
6. 조사 결과 및 반응
6.1. NORAD의 허위 진술
존 파머 주니어 9/11 위원회 선임 변호사는 9/11 위원회가 "정부 및 군 고위 관계자들이 의회, 위원회, 언론, 그리고 대중에게 '누가 언제 무엇을 알았는지'에 대해 말한 내용이 거의 완전히, 그리고 알 수 없게도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파머는 "정부의 어떤 수준에서, 어떤 시점에 9/11 아침 공격에 대한 국가적 대응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 않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NORAD 테이프는 우리와 대중에게 알려진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말했다. 토마스 킨 9/11 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NORAD가 우리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진실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고 동의했다.
6.2. CIA의 정보 은폐
중앙정보국(CIA) 국장 조지 테넷은 위원회를 기만했으며 위원회에 증언할 때 "분명히 솔직하지 못했다"고 토마스 킨 위원장이 밝혔다. 2000년 봄, 빈 라덴 문제반은 알 카에다 조직원인 사우디 아라비아 국적의 칼리드 알 미흐다르와 나와프 알 하즈미가 미국에 입국하여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자신들의 이름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방 수사국(FBI) 요원 더그 밀러는 이 사실을 FBI에 알리고 싶었지만, CIA는 이를 막았다. 알 미흐다르와 알 하즈미는 모두 아메리칸 항공 77편의 납치범이었다. 이후 CIA는 공격 1년 전, 두 납치범의 입국과 미국 내 행적을 추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위원회에 밝히지 않았다. 킨 공동 위원장은 CIA가 이 정보를 위원회에 솔직하게 밝히지 않은 것은 실수라기보다는 고의적인 것이라고 믿으며, "아, 부주의한 실수 아니었습니다. 의도적인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조직의 DNA에는 비밀 유지가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7. 비판
9/11 위원회는 위원 및 직원의 이해 상충 의혹으로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는 위원회의 사무총장이자 콘돌리자 라이스와 함께 책을 공동 집필한 필립 D. 젤리코가 포함된다. 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인 9/11 위원회 보고서는 위원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비판을 받아왔다.
7.1. 이해 충돌 문제
9/11 위원회는 위원 및 직원의 이해 상충 의혹으로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는 위원회의 사무총장이자 콘돌리자 라이스와 함께 책을 공동 집필한 필립 D. 젤리코가 포함된다. 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인 9/11 위원회 보고서는 위원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비판을 받아왔다.
7.2. 보고서 내용에 대한 비판
9/11 위원회는 위원 및 직원의 이해 상충 의혹으로 비판을 받았다. 특히 위원회 사무총장 필립 D. 젤리코는 콘돌리자 라이스와 함께 책을 공동 집필한 이력이 있어 이러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인 9/11 위원회 보고서는 위원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비판을 받아왔다.
8. 유산
위원회에서 공식 보고서를 발표하고 활동을 종료한 지 몇 달 후, 위원회의 의장인 토머스 킨과 다른 위원들은 테러 위험 감소를 위한 위원회의 권고 사항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일부 권고 사항이 무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킨과 부의장 리 해밀턴은 위원으로서 직면한 제약에 대한 책을 썼으며, 제목은 『전례 없는 일: 9/11 위원회의 내부 이야기』였다.
이 책은 2006년 8월 15일에 발간되었으며, 킨과 해밀턴의 위원회 활동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했다. 이 책에서 킨과 해밀턴은 9/11 위원회가 "실패하도록 계획되었으며", 조사 과정에서 국방부와 연방 항공국 관리들의 반복적인 허위 진술에 위원회가 너무 실망하여 국방부 및 FAA 관리들의 사법 방해 가능성에 대한 별도의 조사를 고려했다고 썼다.
8.1. 테러 대응 정책 개선
9/11 위원회의 의장 토머스 킨과 부의장 리 해밀턴은 위원회 활동 종료 후, 테러 위험 감소를 위한 권고 사항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일부 권고 사항이 무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킨과 해밀턴은 위원회 활동의 제약에 대한 책 『전례 없는 일: 9/11 위원회의 내부 이야기』를 2006년 8월 15일에 발간했다. 이 책에서 9/11 위원회가 "실패하도록 계획되었으며", 조사 과정에서 국방부와 연방 항공국 관리들의 반복적인 허위 진술에 위원회가 너무 실망하여 이들의 사법 방해 가능성에 대한 별도의 조사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8.2. 위원회 활동의 의의
9/11 위원회는 초당적 협력을 통해 국가적 위기 상황을 조사하고, 미래를 위한 정책 제언을 제시한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위원회는 공식 보고서 발표 및 활동 종료 후에도, 위원장 토머스 킨과 부위원장 리 해밀턴을 비롯한 위원들이 테러 위험 감소를 위한 권고 사항의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일부 권고가 무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킨과 해밀턴은 『전례 없는 일: 9/11 위원회의 내부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위원회 활동의 제약과 조사 과정의 어려움을 상세히 기록했다. 2006년 8월 15일에 발간된 이 책에서 그들은 위원회가 실패하도록 계획되었으며, 국방부와 연방 항공국 관리들의 반복적인 허위 진술에 실망하여 사법 방해 가능성에 대한 별도 조사까지 고려했다고 밝혔다.